퇴마록 말세편 4권 8화 – 하르마게돈 2 : 악마와의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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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말세편 4권 8화 – 하르마게돈 2 : 악마와의 거래


악마와의 거래

현암은 이내 다시 정신을 차렸다. 기이하게도 갑자기 온몸에 돌던 수면 가스의 기운이 썰물처럼 사라져 갔기 때문이다. 마취 가 풀리자 아까 얻어맞은 온몸의 고통이 점점 생생해졌지만 빙 빙 돌거나 중심을 잡지 못하던 현상은 사라졌다. 아무리 고통스 럽다 해도 지금의 상황이 훨씬 나았다.

돌아보니 자신이 정신을 잃은 것은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던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하여 이렇듯 신속하게 수면 가스의 효과 가 사라지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다시 주위를 둘러본 현암은 뜻밖의 상황을 보았다. 백호가 허 공에 떠 있는 것이 아닌가. 백호의 원래 모습은 사라지고 블랙 엔젤의 검은 안개가 몸을 둘러싸고 있었지만, 입은 옷으로 보아 틀림없는 백호였다.

그 주위에는 세 명의 노인들이 무시무시한 안색으로 백호를 향해 양손을 뻗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계속하여 염불을 외우 고 있었다. 그들은 평복을 입고 있었지만, 지금은 옷매무새가 몹 시 흐트러지고 모자 같은 것들이 모두 벗겨져 민머리와 이마의 계인(印)이 확연히 드러났다. 모두가 승려들이었다.

블랙 엔젤은 검은 안개를 퍼뜨리면서 금방이라도 뛰쳐나가려 고 하는 듯했지만, 세 노인들의 수법도 대단한지라 뛰쳐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 사람들도 대단하구나! 세 명이 힘을 합쳤다고는 해도 악마를 저렇게까지 잡아둘 수 있다니!’

일단 어느 쪽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팽팽한 상태였다. 사 실 블랙 엔젤의 힘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지만 악마의 힘은 신앙 의 힘과 극단에 있는 법이다. 게다가 세 노승은 공력을 합해 복 마진법(伏魔陣法)이라는 진을 형성했기 때문에 그 무시무시한 블랙 엔젤의 힘을 묶어 둘 수 있었다.

그때 블랙 엔젤이 현암을 향해 소리쳤다.

이 등신아! 구경만 할 거야?

현암이 움찔하면서 돌아보니 우 사부는 블랙 엔젤이 어떻게 손을 썼는지 입가에 피를 흘리면서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두 명 의 봉술가들은 현암을 놓아둔 채 꼼짝 못하는 블랙 엔젤을 노리 고 몸을 날리려 하고 있었다.

해밀튼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은 채 바닥에 묵묵히 앉아만 있었다.

현암은 훅 하고 숨을 들이마시면서 외쳤다.

“멈추시오!”

여기저기 아프기는 했지만 눈앞이 흔들리거나 공력의 순환이 막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더구나 그대로 두면 블랙 엔젤이 아니 라 백호의 몸이 죽고 말 것 같아 현암은 급히 몸을 날렸다.

이제는 눈앞이 돌지 않아 훨씬 수월했고, 살초를 쓰지 않아도 두 남자 정도는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아 현암은 일단 검기부터 거둬들였다. 월향검은 굳이 쓸 필요도 없을 것 같아 검집에 넣 으며 동시에 청홍검을 휘둘러 두 남자의 등 뒤에 칼바람 소리를 냈다.

두 남자도 보통 무술인은 아니었기에 그 소리를 듣고 즉각 달 려가던 자세에서 멈추면서 뒤로 돌아 방어 자세를 취했다. 현암 은 다시 청홍검을 휙휙 허공에 그어 보이고는 문득 검을 핑그르 르 돌리면서 위로 던졌다. 두 남자는 현암이 무슨 기이한 술법이 라도 부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자신도 모르게 검을 따라 눈길을 보냈다.

현암이 노린 것은 그 순간이었다. 두 남자가 워낙 위력적인 현 암의 내공과 검기를 보았다면 방심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 들은 현암의 검법만 보았지 기공을 본 적은 없었다. 그들로서는 검기를 뿜을 정도의 달인이 검을 그냥 허공으로 던지고 맨몸으 로 달려들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현암은 달려들었다. 더구나 현암이 달려든 목표는 두 남자의 몸이 아니라 두 남자가 휘두르는 봉이었다. 현암의 손이 봉 쪽으로 뻗치며 날아들자 두 남자는 봉 끝에 힘을 가하면서 현 암의 호구(口)를 쳐 상처를 입히려고 했다.

하지만 기공이 완전히 들어간 현암의 손은 청홍검의 검신만큼이나 단단해 쇠붙이 울리는 소리만 냈을 뿐이었다. 다음 순간, 두 남자의 단봉이 하나씩 현암의 손아귀에 잡혔다. 보통이 넘는 두 남자는 자신들의 무기가 잡히자 즉각 단봉에 공력을 가했다. 내공을 지닌 자라면 공력으로 충격을 가해 무기를 잡고 있는 손 을 튕겨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그들은 현암의 내공이 자신들 과 상대가 되기 힘들 정도로 막강하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현암은 봉을 잡음과 동시에 ‘흡’ 자결을 써서 상대의 내공을 빨아들였다가 일순간 ‘추’ 자결로 바꾸어 벼락같이 상대의 공력 을 무찌르고 밀어냈다. 그러면서 밀려 나가는 상대의 공력에 또 다시 ‘발’ 자결의 공력을 더하여 밀어붙였다.

0.5초도 되지 않는 순간에 운용법을 세 번이나 바꾸는 이변 화는 현암이 몇 년에 걸쳐 피나는 수련으로 이루어 낸 것이었다. 이 수련법으로 현암은 종래 지니고 있던 기술에서 세 배 이상 의 힘을 지니게 되었다고 해도 좋았다.

두 남자는 신음조차 지르지 못한 채 저만치로 날아갔다. 그리 고 비행기의 동체가 찌그러질 정도로 거세게 부딪힌 두 남자의 몸은 다음 순간 포대처럼 힘없이 철퍽 넘어져 버렸다. 부딪힌 충 격 때문이 아니라 거센 공력의 충격 때문이었다.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 현암은 재빨리 뒤로 몸을 돌렸다. 뒤에서는 우 사부가 또다시 스프레이 통을 들고 현암에게 뿌리 려 했다. 별것 아닐 거라고 넘어가려는 찰나 현암은 스프레이 통의 색깔이 아까 수면 가스가 들었던 통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다.

더 이상 어찌할 겨를이 없어 현암은 급히 양손을 내미는데 아 까 던진 청홍검이 떨어져 내려왔다. 청홍검은 무척 예리한 검이 라 자칫하다가는 얇은 비행기 동체를 뚫을 수도 있었다.

현암은 급히 왼손으로 서툴게 청홍검을 쥐면서 오른손을 ‘폭’ 자결의 수법으로 내뻗었다. ‘폭’ 자결은 원래 손이 닿은 물체를 글자 그대로 폭파시키는 위력을 지닌 수법이었지만 허공에 ‘폭’ 자결을 썼을 경우에는 공기가 폭파되는 셈이 되므로 바람이 크 게 일게 된다. 물론 전설상의 장풍처럼 강력한 위력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강력한 바람이 퍼져 나간다.

우 사부가 뿌린 정체 모를 스프레이는 현암의 ‘폭’자 결에 의 해 도로 우사부에게로 날아갔다. 그 스프레이를 뒤집어쓴 우 사 부는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면서 팔을 휘저었다. 그의 옷과 머리칼이 마구 타들어 가면서 피부도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매 캐하고 역한 살 타는 냄새가 흰 연기와 함께 우 사부의 몸에서 피어오르더니 우 사부는 이윽고 버둥거리던 것을 멈추고 풀썩 땅에 쓰러졌다.

현암은 우 사부가 내쏜 스프레이가 이토록 지독하다는 것에 놀랐고 또 상황도 급했지만 일단 우 사부가 죽지 않았을까 걱정 되어 급히 무릎을 꿇고 우 사부의 상처를 보았다.

우 사부는 아직 죽지 않았으나 그야말로 참혹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시큼한 냄새가 악취에 섞여 풍겨 나오는 것으로 보아 스 프레이에 염산 같은 것이 들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밝은 빛이 퍼져 나오는 것을 느끼고 현암은 황급히 뒤로 돌아섰다. 같은 편들이 잇달아 쓰러지자 세 노인이 다급해져 최후의 술수를 펼치려는 것 같았다. 세 노인의 몸에서 는 환한 광채가 솟구쳐 나와 한데 모여 현암의 ‘탄’ 자 결과 유사 하게 노란빛의 구체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구체의 빛 에 비친 백호, 아니 블랙 엔젤의 얼굴에는 공포와 분노가 이글거 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현암은 암담해졌다.

‘이건 좋지 않다!’

현암은 그 구체의 위력이 무지무지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 었다. 느낌만으로 볼 때에도 자신의 최고 수인 ‘탄’ 자결보다 강한 것 같았다. 이것을 정통으로 맞으면 블랙 엔젤도 위험할지 몰랐고, 잇달아 백호가 죽어 버릴 것 같아 걱정도 되었다. 비행 기가 통째로 공중 폭발할 위험마저 있었다.

“멈춰!”

현암은 소리를 지르면서 즉시 청홍검을 내던지고 양손에 ‘탄’ 자결의 구체를 맺기 시작했다. 혼신의 공력을 기울인 터라 즉시 현암의 양손에 각각 세 개씩, 여섯 개의 빛의 구체가 솟구쳐 올라왔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더욱 공력을 가하자 여섯 개의 구체는 한데 합해져 하나의 커다란 구체를 만들어 냈다.

‘탄’자 결과 노승들의 구체가 격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러나 당장 노승들의 구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두 구체의 힘이 비슷하다면 서로 반응 해 없어질 수도 있었다. 만약 상반된 것이라면 거대한 폭발이 일 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도 살아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죽기 아니면 살기다!’

현암은 이를 악물었다. 아무래도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해밀튼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일이지만, 만약 폭 발이 일어난다면 아하스 페르츠도 동시에 소멸되어 주기를 바 랐다.

자만하지 않더라도 지금 세상에서 이보다 더 큰 영력의 폭발 은 없을 것 같았다. 이 안에서도 아하스 페르츠가 멀쩡하다면 어 차피 자신으로는 앞으로 그를 막을 어떤 방법도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며칠 전 꿈속에서 들었던 현아의 목소리가 귓 속에 메아리쳤다.

-아직 아냐. 아직 때가 아냐…………….

그와 동시에 공항에서 헤어지면서 속삭이던 승희의 목소리도 떠올랐다.

-조심해. 무조건 돌격하지 말구. 알았어?

그리고 박 신부의 온화한 모습이 느닷없이 눈앞에 비쳤다.

‘그렇다. 나는 아하스 페르츠에게도 살 권리가 있다고 방금 전 까지 주장했다. 그리고 힘으로 생명을 없애면서까지 바로잡을 수 있는 일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뭐냐? 내가 남의 생명을 걸고 도박을 할 권리가 있단 말인가? 정말 이것 말 고는 방법이 없단 말인가? 신부님이었다면 어쩌셨을까? 어쩌 셨을까?’

만에 하나 잘못되면 백호는 어찌 될 것인가? 해밀튼이나 우사 부나 이 용화교 인물들은 또 어찌 될 것인가? 현암 자신도 죽겠 지만, 그들의 목숨은 어떻게 변상할 수 있단 말인가?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뼈저린 질책이 마음속에 휘몰아쳤다. 현암은 순식간에 공력을 거둬들였다. 백 년이 넘는 혼신의 공력 을 갑자기 거두어 몸 안으로 휘몰아치는 것은 곧바로 자살행위 나 다름없었다.

순간적으로 조금 남은 공력과 도로 거둬들인 내공이 충돌해 단전이 텅 비면서 격렬한 고통이 휘몰아쳤다. 그와 동시에 현암 은 몸을 날려 노승들이 막 쏘아 보내는 노란빛의 구체를 몸으로 막아섰다. 그리고 그 순간 현암의 몸에서도 노란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현암은 의식을 잃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평상시보다 훨씬 더 의식이 또렷했다. 현암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금빛 광채와 다음 순간 번득인 노승들의 놀란 얼굴, 그들이 동시에 앞으로 풀 썩 고꾸라지는 모습, 백호의 몸을 빌린 블랙 엔젤의 알 수 없는 질린 얼굴과 그 순간까지도 담담한 해밀튼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다음 순간, 자신은 블랙 엔젤과 해밀튼 씨의 중간에 털썩하고 떨어져 내렸다. 고통은 없었다. 그리고 폭발도 없었다. 노승들이 만들어 낸 구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노승들도 죽거나 큰 타격을 입지 않은 듯 곧 일제히 머리를 들 었는데, 그들의 얼굴에도 놀라운 표정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었 다. 현암도 얼떨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블랙 엔젤의 얼 굴에까지 멍한 놀라움이 떠올라 있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뭘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눈썹 긴 노승이 몸을 부르르 떨면서 현암의 멍한 얼굴을 손가 락으로 가리켰다.

“네 ・・・・・・ 네가…………… 우리의 힘을…..”

노승은 아주 약간의 영어를 알고 있는 듯, 아주 서툴게 말했다. 그 말에 현암은 깜짝 놀랐다.

‘내가 저들의 힘을 정말 소멸시킨 것인가?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나는 몸으로 막으려 한 것뿐인데………………’

그때 현암은 자신이 보았던 금빛 광채를 머릿속에 돌이켜보았다. 그 빛은 자신에게 몹시 친숙했다. 현암은 속으로 외쳤다.

그렇구나! 부동심결!’

현암은 마지막 날아가는 순간에 남은 공력과 뿜어낸 내공이 일시에 충돌해 단전이 텅 비었다. 그 순간 무의식적으로 현암은 불가의 최고 정수라 할 수 있는 부동심결의 광채를 뿜어낸 것이 었다.

부동심결은 온몸의 내력을 그야말로 모조리 쏟아 내거나 그와 반대로 내력이 하나도 남지 않은 텅 빈 상태가 아니면 발휘되지 않는 술수였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반야심경』의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현암은 공력을 주무기로 싸우는 처지라 공력이 텅 빈 상황보다 있는 공력을 다 쓰는 방법으로 부동심결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로 최후의 수단으로 부동심결을 이용해 왔다 고 봐도 좋았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탄’자 결이 아니라 부동심결이야말 로 노승들의 구체를 소멸시킬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수법이었던 것이다. 부동심결은 힘이 아니라 광채로 마물들을 물리치고 사 악한 것을 멸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상승 수법 중의 상승 수법이 었다.

노승들의 삼재복마현현진도 대단한 위력을 지녔지만 그것은 힘으로 마를 굴복시키는 수법이었고 그 또한 불가에 바탕을 둔 수법이었던지라, 근본적으로 공(空)의 힘을 인정하는 불가의 도 리에 더 가까운 부동심결의 힘에 고스란히 흡수되고 만 것이다. 노승들이 뒤로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고꾸라진 것도 힘을 흡수 당해서였다.

몸속의 공력 충돌은 노승들의 공력이 흡수되면서 사라져 현암 은 주화입마에 걸리거나 목숨을 잃지 않게 되었지만 그것까지는 현암이 깨닫지 못했다.

좌우간 이것은 현암에게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 다. 현암은 ‘탄’ 자결을 사용하려 했지만, ‘탄’ 자결의 기공이 도 가(道)에 근본을 둔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힘 대 힘으로 맞서는 폭발이 일어나 비행기 가 폭발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현암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픈 곳은 더 이상 없었다. 

‘이건 기회다. 이 노승들과 맞서 싸우는 것은 나로서는 무리 다. 지금이 기회니, 일단 이들을 제압해 그냥 돌려보내자.’

현암은 탈진해 쓰러진 노승들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그러 나 뚱뚱한 노승은 아직 약간의 여력이 남아 있는지 몸을 부르르 떨면서 공력을 발해 현암에게 저항했다.

다음 순간 우당탕하는 소리가 나면서 나가떨어진 것은 놀랍게도 현암이었다.

현암은 놀라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크게 부르짖었다.

‘공력! 내 공력이!’

현암에게는 공력이 하나도 남지 않았던 것이다. 아까 공력을 무리하게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 노승 의 내공력은 현암에게 흡수되었지만 그 힘들은 현암이 융화시킬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때문에 그 공력은 자연스럽게 현암의 남아 있던 공력과 되돌 아온 공력들에 반응해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다시 긴 시간 운기행공을 해 회복하기 전까지 현암은 약간의 공력도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그러나 믿어지지 않는 듯한 얼굴을 한 것은 뚱뚱한 노숭도 마 찬가지였다. 도대체 인간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신력을 발휘하던 현암이 자신의 약한 저항에 아무런 기운도 없이 나가 떨어지다니!

그는 조금 멍하니 현암과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가 비틀거리 면서 두 명의 다른 노승들을 살펴보았다. 그들은 공력이 모두 빠 져나가 탈진해서인지 움직일 수조차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뚱보 노승이 손가락을 세워 그들의 몸을 몇 번 쿡쿡 찌르자 서서히 몸 을 일으켰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백호의 얼굴이 핏기 없이 파리한 것으로 보아 블랙 엔젤은 이미 빠져나가 도망쳐 버린 듯했다. 블랙 엔젤은 악마라 역시 부동심결의 빛에 약했다. 이번에도 재빨리 빠져 나간 것이 틀림없었다.

아무튼 한 줄기 공력도 끌어 올릴 수 없는 상태에서 그나마 도 움을 주었던 블랙 엔젤이 없다면 세 명의 노승을 상대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도망칠 곳도 없었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방법은 월향검이었는데, 아무리 월향 검을 사용한다 해도 이 노인들을 이겨 낼 자신이 없었다. 솔직히 몸이 정상이었더라도 대단히 힘들 것이다. 노승들도 공력이 탈 진된 상태지만 현암은 그보다 더 탈진된 상태가 아닌가.

그런데 해밀튼의 상태가 좀 이상했다.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던 해밀튼이 바닥에 쓰러져 고통스럽게 신음하고 있었다. 현 암은 해밀튼을 구하고 싶었으나 노승들의 눈치를 보느라 접근할 수가 없었다.

노승들은 모두 일어섰지만 해밀튼을 먼저 처리할 것인가, 아 니면 현암을 먼저 제압할 것인가 아직 결정하지 못한 것 같아 보 였다. 그때 해밀튼의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모두들………… 어서 ・・・・・・ 도망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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