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세계편 1권 1화 – 비어 있는 관 1 : 이상한 방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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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세계편 1권 1화 – 비어 있는 관 1 : 이상한 방랑자


이상한 방랑자

“정지! 정지!”

호각 소리가 울려 퍼졌다. 찢어지는 브레이크 음을 내며 자동 차들이 연달아 급정거를 했고 하마터면 연쇄 충돌이 일어날 뻔 했다. 소란의 원인은 간단했다. 버젓이 차들이 지나다니고 있는 큰길 한복판에 웬 초라한 행색의 남자 하나가 비틀거리며 들어 섰기 때문이다. 교통경찰이 씩씩거리며 남자에게 달려갔으나 남 자는 여전히 묘하게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한 방향을 향해 걸어 갔다.

“뭐 하는 거요! 죽고 싶어욧?”

교통경찰은 남자의 팔을 잡았다. 그러나 남자는 경찰의 말에 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여전히 한쪽만을 쳐다보면서 얼빠진 듯 이 걸음을 옮겼다.

“이봐요! 정신 나갔습니까?”

경찰은 남자를 쳐다보았다. 눈이 멍한 게 성한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옷은 너덜너덜 해어져 낡았고 머리카락이며 손은 몇 주일이나 씻지도 않았는지 몹시 더러웠다. 얼굴은 누렇게 떠서 혈색이라곤 아예 없었고 눈은 그야말로 초점을 잃은 채 멍했다.

‘정신이 나간 사람인가?’

경찰은 남자의 팔을 잡고 끌었다.

“길을 막고 있으면 안 되니 저리 갑시다.”

그러나 남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경찰은 화가 나서 힘을 주 어 남자를 끌어당겼으나 남자는 도리어 경찰을 끌고 반대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뭐, 뭡니까! 어딜 가려구! 어어어, 이거!”

경찰은 꽤 힘이 좋아 보였는데도 마치 옷에 붙은 검불처럼 남 자에게 끌려가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몇몇 사람들이 경찰을 도 와 남자를 끌어내려 했다. 그러나 남자의 힘은 엄청났다. 정신병 자들은 힘이 좋다 하지만 이건 그 정도를 넘어섰다. 네 명이 안 간힘을 다하는데도 남자는 그들을 끌고 한 방향으로 비척비척 걸음을 옮겼다. 교통경찰이 고함을 쳤다.

“이봐! 순순히・・・・・・ 어이쿠!”

남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초점 없는 눈은 여전히 그대로였고 입에서는 알 수 없는 말이 조금씩 중얼거리듯 흘러나왔다.

“나・・・・・・ 나…… 거……… 거기로…………… 가…………… 가야………….”

“이봐! 뭐라고 하는 거야!”

화가 난 경찰이 남자의 팔을 비틀려 했다. 그러나 남자의 팔은 마치 나무토막이나 돌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 가야………… 가야………….”

경찰이 자신을 도와 정체 모를 남자를 끌어당기는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동시에 잡아당겨요. 끌어냅시다!”

네 명이 남자의 왼팔을 있는 힘껏 잡아당겼으나 남자는 계속 가야 한다는 말만 중얼거리면서 걸음을 옮겼다. 넷은 안간힘을 다해서 버텼다. 그때였다. 갑자기 우지직 소리가 나면서 남자의 왼팔이 쫙 뜯겨 나갔다.

사람들은 놀라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서거나 엉덩방아를 찧 었다. 그러나 남자는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도리 어 홀가분한 듯 다시 비척거리는 다리를 끌듯이 옮겼다. 주변에 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오가던 차들이 급히 멈추 어섰다. 길을 지나던 여자 하나가 기절해 쓰러졌고 남자의 팔을 잡아끌던 사내 중 하나가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두 사내는 멀찌 감치 물러서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경찰은 입에서 쥐어짜는 듯한 소리를 내며 남자의 잘린 팔을 들고서 덜덜덜 떨고 있었다.

그런데 피가 거의 나지 않았다. 마치 석고상의 팔을 떼어 낸 듯 팔의 뜯긴 부분에서 시커멓고 찐득찐득한 피가 조금 보일 뿐이 었다. 경찰의 눈이 허옇게 뒤집혀 갔다.

“이, 이, 이럴 수가…….”

마치 처음부터 왼팔이 없었던 양 원래의 비척거리는 걸음걸 이로 남자는 계속 걸어갔다. 경찰은 잘린 남자의 팔을 던져 버렸 다. 팔은 떨어져서도 또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비명 소리와 아우성 소리가 사방을 휩쓸었다. 사람들은 이유 도 모르면서 사방으로 뛰어 도망쳤고, 그 자리에 주저앉거나 소 리를 지르면서 울기도 했다. 꿈틀대는 손이 경찰 쪽으로 기어 오 기 시작했다. 경찰은 거품을 물면서 뒤로 넘어져 버렸고, 주저앉 았던 남자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기어서 도망쳤다.

멀리서 트럭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차들이 혼란스럽 게 급정거하는 것을 보고 영문을 알 리 없는 트럭은 급히 핸들을 꺾었다. 그때 눈앞에 불쑥 나타난 외팔이 남자를 트럭 운전사는 미처 보지 못했다.

“으아아앗!”

남자를 들이받으며 그 기세 그대로 방향을 튼 거대한 8톤 트 럭은 길옆 건물의 담벼락으로 향했다. 차에 받히면서 남자의 몸 이 위로 튀어 오르더니 트럭의 유리창을 깨면서 남자의 머리가 쑥 들어왔다. 트럭이 담벼락을 들이받는 짧은 사이에 운전사는 보았다. 그리고 전혀 표정이 없는 남자의 얼굴과 그의 입에서 중얼거리듯 흘러나왔던 말을 똑똑히 기억했다. 그것은 잊으려 해 도 잊을 수가 없었다.

“가야 해……”

트럭은 육중한 굉음을 내면서 담벼락을 들이받고는 그 반동으 로 뒤로 조금 밀려나더니 잠시 후 멈추었다. 사람들이 다시 비명 을 지르면서 트럭 쪽으로 뛰어갔다. 어느새 반대편 차선에 있던 경찰차가 180도 방향을 돌려서 사이렌을 울리며 다가왔다. 트럭 과 벽 사이에서 남자의 납작하게 짓눌린 몸이 풀썩 쓰러졌다. 충 돌하는 순간 속도가 많이 줄었기 때문에 다행히 운전사는 다치 지는 않았는지 문에서 거의 굴러떨어지듯이 내려왔다.

“김 순경! 앰뷸런스를!”

최순경이 차에서 내려 널브러진 남자에게 달려가면서 소리 쳤다. 그러고는 남자의 몸을 막 끌어 내리려다 최 순경은 비명을 지르며 우당탕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미 박살이 나 버린 남자의 몸이 아직까지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무튀튀한 피에 젖 은 입은 아직도 움직이며 소리를 냈다. 작은 소리였지만 최 순경 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가…………… 가야…………… 나………… 나는 가야…………… 해.”

거의 반쯤 오징어처럼 되어 버린 남자의 몸이 꿈틀댔다. 범퍼 와 담 사이에 끼어 으스러진 양다리는 흐느적거릴 뿐이었지만,

왼팔마저 뜯겨 나간 남자의 상체는 하나 남은 오른팔로 트럭 창문에서 머리를 빼며 천천히 기어 나왔다. 그럼에도 남자의 얼굴 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고통을 느끼기커녕 멍한 것이 백치와 같 았다.

“이……… 이게 뭐야…………….”

최순경은 정신을 차리려 애썼지만 잘되지 않았다. 사고나 처 참한 시체는 몇 번이나 목격했기에 어지간해서는 마음이 흔들리 지 않는다. 허나 이건 뭔가 느낌이 달랐다. 부서진 남자의 움직 임은 고통이나 충격, 살기 위한 안간힘 같은 것이 아니었다. 부 스러진 시체가 의지를 가지고 움직인다는 것이 최 순경의 몸을 통나무처럼 경직시켰다.

남자가 기어 나오다가 풀썩 쓰러지며 하나밖에 남지 않은 오 른손을 뻗어 허공에 휘둘러 댔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 기라도 잡으려는 듯한 동작이었다.

“가………… 가야……..?”

“어…… 어…… 당신……………”

최순경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도움을 주지도 못했고, 그렇다 고 등을 돌려 도망치지도 못했다. 그냥 덜덜 떨며 남자의 움직임 을 눈으로 좋을 뿐.

남자의 손이 먼저 최 순경의 옷깃을 잡았다. 터지고 찢긴 남자 의 몸이 소리를 내며 최 순경에게 다가왔다. 남자의, 아니 부서진 시체의 표정 없는 멍한 얼굴이 최 순경의 얼굴로 바싹 다가왔 다. 최순경은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방금 본 남자의 표 정 때문이었다. 뭔가 어울리지 않게, 고통을 호소하거나 살려 달 라는 것이 아닌, 애절히 간구하는 그 표정이 무서웠다. 허나 눈을 감았음에도 그의 입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아…………… 나아르을………… 데…………… 데에려다…………… 데려다 아…………….”

최순경은 퍼렇게 질린 입술을 덜덜 떨었지만 죽을힘을 다해 눈을 떠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남자는 여전히 멍한 눈을 반 쯤 뒤집은 채 최순경의 바로 코앞에 얼굴을 들이대고 있었다. 최 순경은 머리가 빙 돌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눈을 질 끈 감았다 뜬 최 순경의 코앞에 남자의 숨결이 느껴졌다. 냉기까 지 느껴지는 차갑고 갸날픈 숨결이었다.

“내애…………가아… 이이…………… 있더・・・・・・・・・・・・ 고…….. 옷으로・・・・・・ “

남자의 목소리는 이제 바람 빠진 풍선처럼 질질 끌듯 흘러나 왔다. 최순경은 간신히 대답했다.

“어….어디…??”

“내애….가….쉬이………..ㄷ….운….고….옷….”

다른 경찰들이 몰려와서 남자를 최 순경에게서 떼어 냈다. 두 명의 경찰이 서둘러서 남자를 떠메더니 경찰차로 옮겼다. 박살나고 으깨어진 남자의 다리가 바람에 나부끼듯 흔들거렸고, 그때마다 거무튀튀하고 걸쭉한 액체만이 여기저기 조금씩 튀었다. 최순경은 김 순경이 부축해서 몸을 일으킬 때까지 넋이 나간 듯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쉬던 곳・・・・・・ 쉬던 곳…………….”

다른 경찰 하나가 뜯겨 나간 남자의 팔을 발견하고 집어 들려 다가 비명을 질렀다. 김 순경이 외쳤다.

“왜 그래?”

순경은 팔을 휙 집어 던지고 손으로 입을 막으며 뒤로 물러섰다. 손가락 사이로 비명 소리가 새어 나왔다.

“뭐야! 시신을 왜 함부로 만지고 그래?”

“이 이게 움직여! 팔이…………….”

뜯겨 나간 남자의 왼팔이 마치 벌레처럼 꿈틀댔다. 손가락들 이 아스팔트를 처참히 쥐어뜯었다. 그것을 본 경찰들은 지옥이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하나같이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몸만 벌벌 떨었다. 해맑은 초봄, 햇볕도 쨍쨍한 대낮의 일이었다.


박신부가 전화를 받았다. 장 박사에게 걸려 온 전화였다. 

“누군가? 아하! 장 박사님이구먼.”

원래 장 박사는 놀라거나 흥분하는 일이 없는 냉정한 사람이 었는데, 지금 전화상의 목소리는 억누를 수 없는 흥분과 불안감으로 떨리고 있었다.

“가…………… 가짜 신부, 자넨가? 잘됐네. 도와주게! 빨리 이리 와줘.”

장 박사는 태연한 척도 않고 아예 대놓고 도와 달라고 했다. 흔하지 않은 일이다.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낀 박 신부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슨 일인가?”

“나도 몰라. 모른다구! 알 수가 없어! 자네라면 알지도…………….”

아니, 알 사람은 자네밖에 없어.”

“대강이라도 말해 보게.”

“그・・・・・・ 그건 아이구! 이봐, 잡아! 어서 잡아! 우아앗!”

수화기에서 뭔가가 부서지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울리고 흥분 한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고함 소리가 뒤섞이더니 이내 전화는 끊어져 버렸다. 박 신부는 불안했다. 이번만큼 불안한 적은 없었 다. 현암은 마침 준후가 뭔가 졸라 대는 통에 밖에 나가 있었고 거실에는 승희가 있었다.


장 박사가 근무하는 경찰 병원 안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하기야 시체실이나 부검실 주변에 사람이 많을 리는 없겠지만, 그곳의 수위나 부서 사람들이 경계의 눈초리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박 신부와 승희도 건물의 문전에서 제지당했다. 통제가 지나칠 정도로 심했다. 박 신부는 장 박사를 호출 해 달라고 했다. 잠시 후 얼굴이 해쓱하게 질린 장 박사의 모습 이 보였고 그 옆에는 체격이 건장한 검은 점퍼를 입은 삼십 대의 남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남자는 불을 붙이지 않은 생담배를 입 에 물고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그러나 우락부락하게 보이는 생김새답지 않게 얼굴빛은 몹시 창백했고 뒷머리를 유달리 길게 기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표정이 없었고 도리어 입술로 장난 스럽게 돌려 대는 담배가 말을 더 많이 하고 있는 듯했다.

“왔구먼! 잘 왔네! 자네밖에는 도움이 될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박신부는 아무래도 큰일이 벌어진 게 아닌가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우선 말이지, 마음을 진정시켜 두게나. 상식적으로 절대 믿지 못할 일이니 말일세.”

장박사는 어지간히 흥분한 모양이었다. 옆에서 승희가 피식 웃으면서 박 신부를 쳐다보았다. 장 박사의 마음을 읽어 보면 어 떠나는 표시였다. 그러나 박 신부는 그러지 말라는 눈짓을 보내 고는 장 박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장 박사는 퇴마사들이 얼마나 믿어지지 않을 일들을 겪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으니 그런 말 을 한 것이 어쩌면 당연했지만, 아무튼 냉정하기 그지없는 장박 사가 저 정도라면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자. 말해 보게, 아니면 직접 보여 주든지. 대체 무슨 일인가?” 

“이봐, 가짜 신부. 자네는 종교가 있는 사람이지? 이번 일은 자네 같은 사람이 해결해야 할 거야. 자네는 종교인 아닌가.” 

“그만뜸 들이게 무슨 일인가?”

장박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었다.

“어떻게 말을 할 수가 없군. 자, 이리 와서 직접 보게나.” 

장박사는 박 신부와 승희를 데리고 구석진 곳의 철문을 열었 다. 일행의 뒤를 따라온 얼굴 흰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곳 을 지키고 있던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열어 주었다. 엘리베이 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박 신부는 병원의 이런 깊은 곳까지 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승희도 불안했지만 왠지 주눅 이 들어서 투시를 할 생각은 않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지하 삼층에서 멎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 자, 일행은 몇 사람이 웅성거리면서 문 하나를 막아서고 있는 것 을 보았다. 장 박사가 눈짓을 하자 박 신부와 승희는 좁다란 창 살문으로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 아니!”

“으아악! 웩!”

승희가 기겁을 하면서 뒤로 물러서더니 토악질을 해댔다. 방 안에는 차마 믿기 어려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분명 사람이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었다. 팔 하나가 떨어져 나가 고 하반신이 완전히 짓뭉개진 채 결박당한 상태였다. 배 아랫부 분은 터져서 내장이 비집고 나와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만 이 아니었다. 분명 시체여야 하는데도, 시체가 아니었다. 살아서 움직였다. 그것도 경련을 일으키듯 강하게 꿈틀거려서 육중한 철 침대가 계속 들썩거렸다. 남자는 뭔가 외치려는 듯 참혹할 정도 로 입을 뻐끔거렸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저.. 저 사람이 살아 있다는 말인가?”

장 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빠른 속도로 대답했다.

“살아 있냐구? 살아 있냐구? 그걸 물어보기 위해서 자네를 부 른 거야. 왜 나에게 묻지? 모두들 나에게 물어보는데, 자네마저 나에게 물어보면 어쩌라는 거야? 저 사람은 죽었어! 분명히 죽 었다구! 하반신이 완전히 뭉개졌어. 장은 완전히 파열되었고 폐 마저 으깨져 버렸네. 왼팔이 뜯겨 나갔고, 그리고・・・・・・ 그리고 말 일세. 저 남자의 혈액은 이미 거의 다 응고되어 버렸어. 몸에는 아무것도 없어, 신원조차 밝혀낼 수가 없다네.”

박신부가 심한 충격을 받은 듯 긴장된 눈으로 장 박사를 돌아보았다.

“혈액이?”

“그래, 그리고・・・・・・ 그리고, 저 남자의 온몸은 이미 부패하 고 있네. 죽은 거지! 그런데…………… 그런데도 말일세, 보게! 움직여! 세 사람이 달려들어도 당해 내지 못해 엄청난 힘이지.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응?”

박 신부는 다시 고개를 돌려 몸부림치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박신부의 눈은 조금씩 냉정을 찾아가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왜 저러는 거지?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은데?”

“폐가 박살 나서 말을 못해 제기랄! 벌써 여기 옮겨진지 네시간이 지났네. 네 시간 동안 숨을 쉰 적이 없는 사람이야. 그런 데 뭐? 말? 말을 한다구?”

“저 사람은 뭔가를 말하려 하고 있네. 분명해.”

담배를 물고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얼굴 창백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현장 목격자 말에 따르면 ‘가야 한다. 자기가 왔던 곳, 쉬던 곳으로 가야 한다’고 했답니다.”

“쉬던 곳?”

박신부의 눈이 빛났다. 박 신부는 승희를 불렀다. 승희는 눈 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무척 해쓱해졌고 기회만 나면 도 망갈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박 신부가 조용히 부르자 입술 을 깨물며 의식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박 신부는 기다렸다.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신부님, 저럴수가 안돼요! 거의 읽을 수가 없어요. 저건…….”

“왜 그러지? 승희야?”

“마음이 없어요. 조금은・・・・・・ 아니, 거의 없어요. 오로지 한가지뿐.”

“그게 뭔데?”

“가야 한다고…………”

“가야 한다?”

“예, 그러니까………… 저…………… 자기가 자기가 쉬던 곳! 그리로・・・・・・ “

“틀림없군.”

박신부가 휴우 한숨을 내쉬었다. 장 박사와 얼굴이 창백한 남자가 긴장해서 물었다.

“뭐지? 저 남자가 왜 저렇게 된 거지? 말해 봐!”

박신부가 고개를 들었다.

“저 남자는 좀비가 된 걸세. 아아………… 왜 우리나라에서까지…….”

“좀비? 아니, 그건 영화에 나오는 썩은 시체………….”

“아닐세!”

박신부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좀비는 완전히 죽은 사람이 아닐세. 죽었다고 믿고 있다고 할까.”

“좀비라는 것이 정말 있단 말이야? 믿을 수가 없어!”

“아이티 섬의 토속 주술일세. 나도 자세히는 모르네만…”

장 박사는 공포에 질려서 다시 방 안을 쳐다보았다. 신음하고 있는 찢긴 시체. 저 시체 아닌 시체가 좀비라니………………

“아이티 섬에는 부두교라는 원시 종교가 있네. 그 종교의 주술사 중에는 죽은 사람을 마음대로 부리는 능력을 가진 자가 있다 고 하지.”

장 박사가 소리쳤다.

“죽은 자를 부린다구? 자네는 신부 아닌가! 죽음을 이길 권세 를 지닌 자는 예수뿐이라고………….”

박신부가 언성을 높였다.

“그건 물론일세! 좀 더 들어 보게. 그런 주술사들이 무덤에서 불러내어 부려 먹는 자들을 좀비라고 하지. 그러나 그들은 완전 히죽은 게 아니야.”

“그러면?”

“주술력으로 생명을 단절시켜 놓은 것이네. 따라서 그 사람의 영혼은 몸에서 아주 떠나가지는 않지. 이성을 상실한 존재가 되 는 것뿐이야. 그 대신 그들은 육체적으로는 주술력의 지배를 받 기 때문에 아픔도 느끼지 않고 자신의 잠재력을 다 발휘하는 존 재가 되지. 모든 것을 잊고 단지 주술사가 시키는 대로 하는 노 예가 되는 거야. 내가 보기에 저 사람은 어떤 계기에 의해 정신 을 차리게 된 것 같아. 그래서 도망쳐 온 거겠지. 그러나 몸의 주 술은 아직 풀리지 않아서, 그리고 스스로의 의지 때문에 저렇게 까지 되어서도…..”

“저 사람이 살아 있다는 말인가? 자네의 말대로 의식을 상실 한 것뿐이라면, 아무리 주술이나 의지가 있다 해도 어떻게 사람 이 저 꼴이 된 채 살아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응?”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신비로운 일이 아주 많지. 그리고 그 중에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사악한 것들도 있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강한 것들도 있네. 섣부른 이성으로 판단하려 해서는 안 되는.”

박 신부는 잠시 말을 끊고는 주위에서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남자들을 둘러보았다.

“들어가게 해 주시오.”

얼굴 창백한 남자가 뭔가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 는 담배 끝을 이로 깨물고 있었다.

박 신부는 십자가를 꺼내 들고 발광하는 남자의 곁으로 걸어 갔다. 박 신부는 남자를 고요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박 신부의 눈에 동정의 눈물이 잠시 번뜩였다. 남자, 아니 남자의 찢어지고 해어진 몸뚱이는 서서히 발광을 멈추기 시작했다. 박 신부가 십 자가를 양손에 쥐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가련한 어린 양이여, 두려워 말라. 늘 하느님이 함께하실 것이니.”

박 신부의 몸 둘레에서 환한 오라가 나왔다. 남자들이 몸을 움찔했고 얼굴 흰 남자의 눈이 크게 떠졌다. 장 박사가 놀라 안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승희가 조용히 장 박사를 저지했다.

박 신부의 오라는 점점 환해졌고 따뜻하게 주변을 감쌌다. 남 자의 조각 난 몸은 후들후들 떨다가 점점 잠잠해졌다. 남자의 눈 이 박 신부를 올려다보았다. 눈은 아직도 멍하고 힘이 없었으나, 조금씩 제정신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박 신부를 향해 애타게 갈구하는 눈길을 보냈다. 승희는 그사이 열심히 양 손가락을 머리에 대고 투시를 행했으나 쉬던 곳에 가고 싶다는 것밖에는 알아낼 수 없었다.

돌연 박 신부의 손이 남자의 몸을 묶은 줄을 끄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밖을 향해 소리쳤다.

“어서! 도와주게!”

장 박사가 소리쳤다.

“자네, 뭐 하는 건가!””이 사람을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보내 주어야 하네. 이 사람

은 주술에서 점점 깨어나고 있어.”

“뭐? 미쳤나?”

박신부가 준엄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은 이제 곧 죽을 걸세. 그전에 원래 있던 곳으로 보내 주어야 해. 이 사람의 눈빛이 보이지 않는가? 영혼을 구제해 주 어야 한다구. 자신의 무덤으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거야. 거기서 편안히 쉬도록 해야 해.”

“어떻게? 어떻게 저 사람을 풀어 준다는 말인가! 저 상태로 길거리를 헤매게 한단 말야?”

얼굴 흰 남자가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주변의 남자들에게 명령했다.

“도와주도록 해.”

장 박사가 눈을 크게 떴다. 창백한 남자는 장 박사에게만 들리 도록 나직하게 말했다.

“저 신부님, 대단한 것 같군요. 난 저분을 믿어 보겠어요. 그리 고 만약 저 시체가 무덤으로 되돌아간다면 신원도 파악할 수 있 겠죠?”

“그렇지만 당신의 임무는 이 일이 알려지는 것을 막으려는 게 아닙니까?”

승희가 눈을 크게 떴다. 저 얼굴빛 창백한 남자는 비밀 작업을 수행하는 특수 분야를 맡고 있는 사람 같았다.

“염려 마십쇼.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거요. 근본적으로 이런 일을 막으려면, 먼저 이 일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게 그분의 뜻이기도…………….”

승희는 몸을 흠칫했다. 저 창백한 남자의 말대로라면 이런 일 이 지금까지 여러 번 벌어졌다는 말인가? 그래서 특별 검사라도 출동했다는 말인가? 그러고 보니 병원 출입이 심하게 통제되고 있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누가 이런 악랄한 짓을 한단 말인가? ・・・・・・또 ‘그분’은 누구지?

박신부의 인도하에 사람들이 남자를 들것에 싣고 나갔다. 박 신부는 희미하게나마 계속 오라를 발하고 있었다. 그것은 혹시 라도 주술력이 끊어져서 남자가 바라던 곳으로 가기 전에 죽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장 박사와 얼굴 창백한 남자의 대화가 중 단되었다. 남자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영혼이란 게 정말 있는 건가 보군.”

급히 구급차가 준비되었다. 일행은 구급차에 남자의 몸을 옮 겼다. 승희는 잠깐 빠져나가 현암에게 연락을 하려 했으나 사복 경찰인 듯한 남자들에 의해 저지당했다.

구급차가 떠나고 검은 승용차 두 대가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그들은 어두운 병원 한 귀퉁이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눈이 있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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