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세계편 1권 16화 – 세크메트의 분노 4 : 커크 교수의 정체
커크 교수의 정체
승희가 어느덧 수화기를 놓으며 말했다.
“영기 씨 말에 의하면 홍 박사님의 필적과, 서툰 영어로 되어있는 다른 사람의 필적이 섞여 있대요.’
“음.”
현암이 눈을 치켜떴다.
“그렇다면 이상하군. 그러면 미리 겉봉을 홍 박사가 써 두고 나중에 다른 사람이 편지를 발송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저렇게 지독하게 빙의된 사람이 혼자 귀국한다고 나섰을 리가 없어 수상해!”
모두가 현암의 말에 동의하였다. 소혼술을 하는데도 떨어지지 않고 늘어질 정도의 영에 빙의된 사람이 혼자 귀국하려고 나갔 다가 실종되었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박 신부가 말했다.
“홍 박사는 마지막 편지를 썼을 때에 이미 무슨 일을 당했다고 보는 것이 좋겠군. 그러면 커크 교수가 그 사실을 숨기려고 귀국 하기 위해 떠났다는 핑계를 댔단 말인가? 대체 왜?”
연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나직한 신음소리 같은 것을 냈다.
“어쩌면・・・・・・ 그 석실은……………..
준후가 긴장된 얼굴로 연희를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이 나요. 연희 누나? 난 하나도 모르겠어.”
“도굴은 꼭 도굴범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야. 발 굴자가 값진 유물을 빼돌리는 경우도 얼마든지………….”
연희의 말에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렇게 추리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연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일동의 마음속에서는 공통된 하나의 시나리오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석실에는 무언가 비밀이 있다. 유물의 존재를 알아차린 발굴 단들은 석실의 공개를 뒤로 미루고 암암리에 문을 열고 미리 들 어가 값진 유물들을 챙겼고, 이에 분노한 고대의 영이 홍 박사에 게 빙의된다. 빙의된 홍 박사는 고대의 언어로 편지에 ‘문은 이 미 열렸다’는 내용을 가필하고 발굴단에게 저항하다가 살해되었 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발굴단의 탈을 쓴 도굴범들은 홍 박사가 서둘러 귀국했다는 것과, 실종 시기를 은폐하기 위해 그가 써 둔 편지를 한국으로 우송하고 한참 뒤에야 홍 박사가 한국으로 떠 났다고 발표한다. 단, 그들이 상형문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승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일단은 커크 교수와 카프너라는 독일인에게 혐의를 두어야 할 것 같군요. 홍 박사를 제외하면 그들이 대표자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박신부가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더 큰 곳에 있을지도 몰라. 기억하나? 홍 박사의 영이 마지막으로 부르짖던 소리를 분노를 막아야만 한다고 하던 소 리 말일세.”
현암이 고개를 저으면서 소리치듯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도대체 알 수 있는 것이 없잖아요. 그 분노가 과연 세크메트의 분노인지, 그리고 세크메트가 맞더라도 왜 세 크메트가 분노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나타날 것이며 어떻게 막 을 수 있는지, 아니 그것보다는 우리의 생각 자체가 과연 맞는지 부터 확인해 보아야 해요!”
“맞아!”
승희가 손뼉을 쳤다. 모두의 시선이 승희를 향했다.
“뭐지?”
“간단하죠. 커크 교수의 마음을 투시해 보는 거예요. 그가 정 말 죄를 지었다면 일은 간단하겠죠? 후후.”
그러고 보니 그런 편한 방법이 있었다. 연희가 고개를 끄덕이 면서 말했다. 연희는 짧은 시간 내에 영리하게도 네 퇴마사들의 능력과 특징을 잘 파악하여 그들의 스타일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있었다.
“커크 교수는 지금쯤 한국에 와 있을 거예요. 그러니 찾기 쉬 울 겁니다.”
준후가 커크 교수의 얼굴이 실린 신문을 찾아내었고, 승희는 양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짚은 자세로 땀을 흘리면서 투시를 시 작했다. 모두는 커크 교수가 과연 범인일지 아닐지의 여부에 관 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한참 만에 투시를 끝낸 승희의 입에서 나 온 말은 모두를 다시 한번 놀라게 만들었다.
“커크 교수는…………. 이미 죽었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뭐라고요? 커크 교수는 내일부터 열릴 유물 전시회에 참석하여 강연과 인터뷰를 할 계획이 있어요! 죽다뇨?”
승희도 충격을 받은 듯 안색이 변해 있었다.
“몰라요. 하여간에 그는 분명히………….”
박신부도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승희가 틀리지는 않았을 거야. 저런! 아마 내일이면 발표가 나겠군. 아멘.”
현암은 포기하지 않고 말했다.
“그러면 발굴 기사였다던 오토 카프너는? 그 사람은?”
커크 교수의 사진 뒤쪽에 오토 카프너의 사진도 나와 있었다. 카프너까지도 한국에 와 있는 것인지의 여부는 확실하지 않았 으나 어쨌거나 지금 투시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사람은 카프너뿐 이었다. 이번에는 퍽 시간이 오래 걸렸다. 승희는 온몸에서 땀을 흘리며 기진맥진하는 듯하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눈을 떴다.
“이상해요. 이상해.”
“왜 그러지? 카프너도 죽었나?”
“아니에요. 살아 있어요. 그리고 한국에 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데?”
“마음속이 읽혀지지 않아요. 마치 예전에 강한 주술사들을 대했을 때처럼 말예요. 먹장을 친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현암이 주먹을 쥐었다.
“이건 도대체가!”
박신부가 긴장한 듯, 안경 속의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러면 카프너라는 자도 주술사거나 영능력자란 말인가? 자기 스스로 마음을 감출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는 그리 많지 않아.”
현암이 몸을 일으켰다.
“제가 백호에게 전화를 해 보죠. 어쨌거나 커크 교수가 이 세 상 사람이 아니라면, 수습을 해야 할 테니 미리 알려 주는 것이 좋을 거예요.’
현암은 곧바로 백호의 직통선으로 연락을 취했고, 백호는 속 히 조사하겠다고 답하고는 급히 전화를 끊었다. 일행들은 묵묵 히 자신들이 알아낸 일들을 검토해 보았다. 연희는 약속마저도 잊고 같이 추리에 골몰했다. 한참이나 이야기들을 나누었으나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다른 가설을 세워 보았으나 말이 되는 이야기는 이 한 가지밖에 없었다.
전화벨이 울리자 현암이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나직 하게 몇 마디를 중얼거린 후 현암은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 렸다.
“커크 교수는 멀쩡하대. 지금 호텔에서 전화를 받았다더군. 백호가 직접 통화했대.”
“그럴 리가!”
승희가 벌떡 일어섰다. 자신의 투시가 틀렸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커크 교수는 틀림없이 죽었어요.”
“승희야, 잘못 짚은 것 아냐?”
“아니에요. 확실해요!”
현암은 다시 백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 백호가 커크 교수와 바로 회선을 연결해 주겠다는군. 그러니 목소리를 들어 봐.”
승희는 화난 표정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잠시 딸깍하는 소리 가 나더니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승희는 침착하려고 애 쓰면서 수화기에 대고 이야기했다.
“닥터 커크?”
“예스”
승희는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사람은 분명 히 커크 교수가 아니다. 승희는 놀라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 다. 이자의 마음이 전혀 투시가 되지 않았다. 분명 주술사아니면 영능력자였다.
“Who are you?”
날카로운 목소리로 승희가 질문을 하자 남자는 당황한 듯, 잠시 마음이 흔들려 마음속의 생각이 비쳐 보였다. 그건・・・・・・
승희가 남자의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수화기를 떨어뜨렸다. 그러더니 소리를 질렀다.
“가짜예요! 가짜 커크 교수예요! 이자 역시도………….”
현암이 재빨리 수화기를 집어 들었으나 연결은 이미 끊겨 있었고 어찌 된 일이냐고 묻는 백호의 목소리만 들려왔다. 승희는 소리쳤다.
“이자…………… 이자의 마음도 닫혀 있어요. 또 다른 주술력을 지 닌・・・・・・ 그리고 이자의 마음을 읽었어요! 이자는…………. 아아, 이 자도………….”
박신부도 긴장된 얼굴로 다급하게 물었다.
“뭐지? 승희야?”
승희의 눈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블랙서클의 일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