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세계편 1권 21화 – 세크메트의 분노 9 : 제6기계화 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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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세계편 1권 21화 – 세크메트의 분노 9 : 제6기계화 여단


제6기계화 여단

요원이 운전하는 차는 앞자리에는 백호를, 뒷자리에는 퇴마사 들을 태우고 시내를 벗어나 어느덧 국도로 접어들고 있었다. 지나는 길에 급히 동원되는 군부대의 수송 차량들이 보였다. 그런 광경을 보고 박 신부와 현암, 준후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들이 제6기계화 여단 내로 침투하려다가 잡히거나 최악의 경 우 목숨을 잃어도 세상에서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그들 에게는 자신이 목숨을 잃거나 해를 당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 다.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이 아니었고, 그런 생각을 꼭 감 추려고 한 것도 아니었지만

준후가 두려운 듯 몸을 떨었다. 그러나 그들은 준후 없이는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같이 갈 수밖에 없었다.

현암이 떨고 있는 준후 어깨에 손을 얹었다. 준후는 고개를 돌려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형, 나 무서워요.”

현암은 준후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애써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 고 얼굴의 표정에 변화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준후는 가 냘픈 목소리로, 그러나 다부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꼭 해내고 말 거예요. 저도 그 정도는 알아요.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해내야만 할 때가 있다는 걸요.”

앞자리에서 백호가 무전을 꺼내 들고 쓸데없는 명령들을 외치 듯이 내리고 있었다. 준후의 목소리에 마음이 약해지려는 것을 막아보려는 듯……………. 현암이 세크메트의 눈을 쥐었으나 승희가 연희와 작업에 몰두하느라 세크메트의 눈을 손에 쥐고 있지 않 아서인지 승희의 마음속은 읽을 수 없었다.

현암은 세크메트의 눈을 꺼내 들었다. 박 신부는 내내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은 채 기도를 올리고 있는지 은은하게 몸에서 오라 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고, 준후도 눈을 감은 채 잡념을 떨치고 잠을 자려는 것 같았다. 현암도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감고 기를 순환시키면서 왼손에 차고 있는 월향검의 칼집을 쓰다듬었다.

차가 국도를 계속 달리는 동안 일행은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 었다. 갈수록 민간 차량의 발길은 뜸해졌으며 군부대의 차량이 늘어났다. 병력을 수송하는 트럭도 있었고 장비를 실은 차량들 에 장갑차까지 굴러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태가 급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참을 가다 보니 국도에 비상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고 무 장을 한 군인들이 그 앞을 지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미 리 연락이 되어 있었던 듯 일행이 탄 차는 중간에 정지하는 일 없이 쉽게 바리케이드를 통과했다. 백호가 손을 써 놓은 모양이 었다. 그런데 도중에 한 장교가 달려와서 백호에게 붉은 잉크로 1급 비밀 도장이 찍힌 두툼한 봉투를 전해 주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가고 있는데 봉투를 꺼내 서류를 뒤적거 리던 백호가 입을 열었다.

“제6기계화 여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최신의 장비로 무장된 부대입니다. 원래는 수도를 방어하기 위한 특수 부대이기도 하 며, 각종 최첨단 장비들을 제일 먼저 시험하는 곳이기도 하지요. 여러분에게는 좋지 않은 일이 되고 말았지만, 이 부대에서는 이 번에 대량의 신형 장비들을 입수하여 실전 시험을 하기 위하여 기동훈련중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부대의 보유 장비에 대한 것 은 방금 제가 받은 봉투의 겉면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1급 기밀 사항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미리 알려 드리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군요.”

제6기계화 여단은 다른 부대와 연계를 하지 않아도 독자적인 작전 수행이 가능하도록 자체가 하나의 독립적인 부대로 편성되 어 있는 특수한 부대라고 백호는 말했다. 1개 포병 대대, 1개 전 차대대 2개 전투용 헬리콥터 중대, 그리고 2개 기계화 보병 대 대, 2개 보급 중대, 1개 전자전 및 통신 중대 등으로 이루어진 막 강한 전투력을 자랑하는 부대였다.

백호는 간략한 설명을 한 뒤 제6기계화 여단의 편성 현황을 뒤로 넘겼고 셋은 그 내용을 간략히 훑어보았다.

“특히 제6기계화 여단 산하 3233 포병 대대에는 우리나라에 서 새로 개발한 지대지 미사일 봉황 중대가 딸려 있습 니다. 봉황 미사일은 국내에서 주로 개발된 것이기는 하지만 명 중률이나 화력이 막강한 특수 무기입니다. 북한의 스커드 미사 일과는 비교도 되지 않지요. 그리고 여단 산하 헬리콥터 중대에 는 최첨단 전자 장비 및 야간 감시 장비를 갖춘 중무장 헬리콥터 들이 각각 네 대씩 편성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에 대해 말씀드리 는 이유는, 이 헬리콥터들 역시 강력한 성능을 지닌 신무기로 무 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인(對人) 병기로 원거리 적외선 감지 장치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 장비를 사용하면 아무리 잘 숨 어 있다 하더라도, 살아 있는 것이라면 체온을 감지하여 공중에 서 위치를 탐색하고 감지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헬리콥터에는 웬만한 병력쯤은 즉각 제압할 수 있는 화력도 갖추고 있지요.

보고에 의하면 이 헬리콥터들이 계속 제6기계화 여단이 진을 치 고 있는 부근을 정찰하고 있다는 겁니다.”

늘씬한, 그러나 살벌한 모습을 한 기다란 미사일과 앞코에 적 외선 감지기를 비죽하게 달고 있는 괴기한 모양의 헬리콥터 사 진들이 뒷자리로 넘어왔다. 그것들을 본 준후가 인상을 찌푸리 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 이외에 보병 부대에 편성된 장비들도 기가 막힌 게 많았다. 그중에서도 부대 내로 침투해 들어가려는 퇴마사 일행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감시 및 관측 장비였다. 인간의 몸에 서 나오는 열을 감지하는 적외선 감지 장비가 눈에 띄었다. 또 별빛 같은 미미한 빛을 수만 배로 증폭하여 어둠 속에서도 사물 을 쉽게 식별할 수 있게 해 주는 소총 부착용 스타라이트 스코프 는 이미 월남전부터 상용화되고 있었던 장비였고 전 군부대에 많이 보급되어 있던 장비였지만 지금 제6기계화 여단이 소장하 는 있는 멀티 스타라이트 스코프의 경우는 증폭력이 한층 강해 져서 종래의 스타라이트 스코프가 녹색으로 약간 침침하게 보이 는 것과 달리 대낮과 같은 밝기의 해상도를 제공하는 최첨단 장 비였다.

“그 외에도 제6기계화 여단은 특히 지뢰 및 폭발물 쪽에 능한 기술을 가진 특수 처리반을 운용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그 정보에 의하면 제6기계화 여단이 만약 인접을 저지하려는 부 대들과 대치 상태에 들어가 밤에 숙영할 경우, 그 주위 수 킬로 미터 내에는 엄청난 지뢰가 거미줄처럼 깔릴 것입니다. 그 내용 들에 대해서는 시간상 일일이 설명드릴 수 없으니 이것을 참고 하십시오.”

백호는 봉투를 뒤적거리며 남아 있던 꽤 두툼한 목록을 통째로 넘겨주었다. 현암이 그 목록을 받아서 내용을 훑어보았다.

대인 살상 지뢰, 발목 지뢰, 도약 지뢰, 조명 지뢰, 대전차 지 뢰. 일반적인 통념처럼 땅속만이 아니라 기둥, 돌 틈, 나무의 갈 라진 틈새나 가지 위 등등, 사방에 매설할 수 있는 지뢰의 종류 는 엄청나게 많았고 그 각종의 지뢰들이 한 번에 매설되어 주변 의 경계망을 설치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통과해 나갈 수 있 는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고 마지막 남은 보고서를 다 읽고 나서 백호가 말했다.

“지금 군부에서는 제6기계화 여단의 진군을 평화적으로 저지 하기 위한 최종 협상을 준비중에 있습니다. 이미 제6기계화 여 단의 주위는 자체 전자전 부대의 활동으로 전자 방어망이 쳐져 서 외부와의 통신은 두절된 듯하군요. 아마도 군 수뇌부에서는 더 이상 통신에 의존하지 않고 특사를 파견할 분위기입니다. 오 늘 밤 내로 특사가 저쪽으로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따라 서 그곳으로 침투하기 위한 마지막 기회가 오늘 밤인 듯합니다.”

현암이 물었다.

“오늘 밤 안으로 특사를 파견한다고요? 제6기계화 여단은 틀 림없이 일시적이나마 진군을 멈추고 현재 있는 곳에서 머문다고 봐야겠군요. 그렇다면 최소한 오늘 밤 내에 전투가 벌어질 것 같 지는 않으니까 결과적으로 시간은 오늘 밤밖에 없군요.”

박신부가 말했다.

“그런데 백호 씨, 전자 방어막이 쳐져 있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백호가 대답했다.

“모든 주파수 영역에 걸쳐서 방해 전파를 발동시켜 외부의 전 파 같은 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기술이지요. 제6기계화 여 단은 이 때문에 모든 장비들을 유선화시키고 또는 그들만이 사 용할 수 있는 주파수대, 그러니까 아주 영역이 짧은 주파수대를 열어서 자체 통신을 가능하게 만드는 그러한 전자 장비도 시 험중에 있습니다. 기술적인 것은 저도 잘 모릅니다만, 아무튼 제 6기계화 여단의 영역권 내에 들어가면 외부와의 무선 통신은 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겁니다.”

준후는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백호가 넘겨준 자료들을 훑어보았다. 박 신부는 자신들 이 이용할 수 있는 주술적인 능력이 어떻게 이러한 최첨단 장비 들을 무력화시키는 데 사용될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곰곰이 떠올리고 있었다. 그것은 준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암은 아직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은 제6 기계화 여단 근처까지라도 무사히 갈 수 있느냐 없느냐에 신경 을 곤두세우고 싶었다.

현암은 원래 성질이 급해서인지 먼 미래에 대해서 미리 걱정 을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현암은 승희에게 서 무슨 연락이 오지 않을까 초조하게 세크메트의 눈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일단 제6기계화 여단 내부로 들어가는 것도 큰 문제겠지만 생 각해 보니 들어간 다음도 문제였다. 아까 준후가 추리해 내고 승 희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장인석 소장은 단순한 빙의 상태에 놓 여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환영을 보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면 그 방법에 대해서도 효과적으로 세크메트 사도들의 영을 떼어 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현암의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주된 문 제였다. 현암은 옆자리에 앉은 준후를 툭 치며 물어보았다. 

“준후야, 너는 그 세크메트의 네 사도들이 어떤 환영술로 장인 석 소장과 참모들의 정신을 흐려 놓았는지 짐작이 가냐?” 

준후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만 들어요. 또 거의 확실할 거구요. 제가 읽은 고대의 어떤 경전에 비슷한 내용이 있어서 그 렇게 추측을 해 본 거였어요. 그러나 저 역시 정확한 방법은 몰라요.”

“그렇다면 장인석 소장과 참모들이 처해 있는 처지는 단순한 빙의 상태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니? 그런 상태에서는 제령해서 영을 떼어 내는 일은 소용이 없을 것 같은데?”

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흠! 일리가 있어요. 그러나 그때가 되면 다른 방법이 있겠죠. 뭐.”

현암은 더 이상 말하진 않았지만 속으론 매우 불안했다. 자신 들이 상대해 본 적이 없는 이집트의 술수. 아까 연희가 말하길 미라로 변해 있었던 세크메트의 여제사장이 이집트 비전의 권위 자라 했다. 이집트 비전이라는 것은 이집트 고대의 술수라는 것 이고, 그 술수가 얼마나 초월적인 힘을 발휘하는지는 아무도 알 지 못했다.

고대의 역사를 놓고 따진다면 이집트 쪽의 유래는 준후가 배 운 밀교, 즉 인도 고대의 역사보다도 훨씬 오래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런 태곳적 주술을 세크메트의 네 사도들이 사용한 다니 준후나 박 신부 또는 자신이 거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과연 찾아낼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대처 방안을 강구하려면 최소한 그에 대한 자료나 단서가 필요하다. 그 환영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거기에 걸 수 있는 마지막 기대는 연희가 해독하는 사토니 우쟈 티의 제단에서 발견된 파피루스밖에 없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차는 어느덧 여러 병사들과 전 투 장비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어느 야전 부대의 이동식 간 이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여태까지 몇 번의 검문소를 거쳐 오면 서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은 적이 없었으나 이번만은 달랐다. 백 호는 차에서 내려서 삼엄하게 주변을 감시하면서 일행을 쳐다보 고 있는 군인들을 한번 쓰윽 훑어보더니 인솔자인 듯한 대위에 게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 주었다. 대위는 거수경례를 하더니 백 호를 안으로 안내했다. 앞장선 대위의 뒤를 따라 백호와 박 신부 와 현암, 준후가 안으로 들어갔다. 주변에 늘어선 군인들은 도대 체 정체를 알 수 없는 각기 다른 사람들, 그것도 신부와 한복을 입은 꼬마가 부대로 들어온 것을 희한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 었다. 그들이 공포에 휩싸여 있다는 것을 눈치 빠른 준후는 느낄 수 있었다.

“현암 형, 저들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어요. 조금 있다가 전투 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예고를 받은 모양이죠?”

현암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를 벌여야 하다니. 그것 도 정당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외부의 사악한 집단의 음모에 의해서 이 땅의 젊은이들이 서로 싸우고 피를 흘려야 되 는 사태가 발생되기 일보 직전이라니. 현암은 매우 울적했다.

대위의 인솔로 백호와 퇴마사들은 경비가 삼엄한 방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는 꽤 계급이 높은 듯한 대령이 (대령 계급장을 달고 있었으나 나이가 많고 얼굴이 검은 것이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인 듯했다) 백호를 보고 반갑게 아는 척을 하며 인사를 했다. 둘은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 같았다. 백호의 나이가 훨씬 젊었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사이는 거의 친구처럼 보였다. 백호는 잠시 세 명의 퇴마사들을 옆방에 가 있게 하고는 다른 사 람의 눈에 띄지 않게 일행에게만 눈을 찡긋 윙크를 해 보였다. 일행은 야전 건물 안의 간이 응접실에 앉아서 백호가 이야기 를 끝내고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지루한 시간이었 다. 창문 밖으로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오가기를 반복하고 있었 다. 박 신부는 계속 눈을 감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박 신부의 몸에서 점점 강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현암의 마 음속으로 전해 왔다. 기도력을 미리 응축시켜서 나중의 사태에 대비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준후는 아까 백호가 넘겨준 자료와 보고서 들을 열심히 뒤적 거리면서 그 장비들에 대적할 자신의 술수가 어떤 것이 있는지 확인을 하고 준비해 온 부적들을 테이블 위에 잔뜩 벌여 놓고 부산을 떨고 있었다.

현암은 창가로 다가가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부대 내의 동정을 파악하고 지나가는 장병들의 얼굴을 한 사람 한 사람들 여다보았다. 손에는 여전히 세크메트의 눈을 꼭 쥐고 있었으나 승희에게서 별다른 연락은 오질 않았다.

현암은 블랙서클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승희가 투시해 낸 바로는 블랙서클의 마스터는 인도인이라 했고, 그 옆에 금발 의 여인 하나가 같이 투시되었다고 말했다. 그들이 모든 일의 원 흉일까? 현암이 겪은 블랙서클의 악인들은 여러 가지 국적을 가 진 그리고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초인들이었다. 부두교의 호응 간, 유체 이탈을 할 줄 알던 한국 국적의 남자, 불가리아 출신의 케인, 이번에는 이집트 출신의 이름도 알지 못한 비전의 주술사, 그리고 금발의 여인, 마스터라고 불리는 인도 남자 등.

“도대체 블랙서클의 조직은 얼마나 방대하기에 이런 모든 것 들을 포괄할 수 있단 말인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문이 벌컥 열렸다. 박 신부와 현암, 준 후는 문을 열고 나온 백호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백호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목이 약간 쉰 것으로 보아 세 퇴 마사들을 제6기계화 여단 부근까지 데려다 주기로 한 약속을 지 키기 위해 사령관과 꽤 오랫동안 설전을 치른 것 같았다. 백호는 셋에게 손짓을 하여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힘들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목적했던 바는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백호는 중얼거리며 어느 중위의 안내를 받아 커다란 컨테이너 차량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박 신부와 현암, 준후도 뒤를 따랐다. 컨테이너 차량 안은 뭐가 뭔지 알 수도 없는 각종 무기들 과 개인화기 같은 여러 가지 물건들로 그득했다. 안에서 두 명 의 다른 요원이 장비들을 점검하고 있다가 백호가 들어오자 부 동자세를 취했다. 그 두 사람은 군인이 아니라 간편한 사복 차림 을 한 요원이라는 표현이 적당해 보였다. 백호가 고개를 끄덕이 며 손짓을 하자 그들은 다시 목록을 대조하면서 열심히 장비를 꾸리기 시작했다. 백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은 단순한 검사로 알고 있었던 제가 군부대 내에서 자 유롭게 활동하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무리는 아니지요. 저는 원래 검사의 직책을 가지고 있지만, 꼭 사법부 쪽에만 속해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박 신부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백호의 신분이나 경력 같은 것은 굳이 알려고 할 필요가 없었고, 그것이 중요한 것도 아니었 다. 다만 퇴마사들에게 백호는 같이 일을 한 동료이자 자기들이 손을 댈 수 없는 영역에 꽤나 강력한 힘을 행사하여 주는 믿음직 한 후원자였다.

백호는 박 신부가 더 듣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 는 것을 보고 피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저는 한때 특수 부대에 속해 있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사람 이 이것저것 할 줄 아는 게 많으면 피곤해진다고 했던가요? 우연 한 공을 세우는 바람에 특수 부대에도 잠시 있었고 많은 훈련을 받았지요. 이번에 써먹을 기회가 온 것 같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바라고 있던 일은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허허허.”

백호가 하는 말을 듣고 현암과 박 신부는 눈을 크게 떴다. 준 후만 아직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이쪽저쪽을 번갈아 쳐 다보고 있었다. 백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6기계화 여단에 저도 같이 갑니다. 아니, 제가 대장이라고

해야 하는 게 옳겠지요?”

“예? 백호 씨도 같이 가는 겁니까?”

“하하하.”

백호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저 작은 꼬마까지도 위험을 무릅쓰는데. 하하하. 왜 저는 안됩니까?”

반농담조로 이야기하던 백호의 표정이 엄숙해졌다.

“제가 동행하지 않고서는 여러분만 저곳에 들여 놓을 구실이 없습니다. 저는 군에서도 특수 부대 경력을 인정하는 터이고, 상 부로부터 가능한 한 이 일에 개입하여 도움을 주라는 명령도 받 아 놓았습니다. 게다가 무기나 방어 작전에 대한 것들은 제가 더 잘 알고 있으니까요.”

박 신부가 뭔가를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민간인의 신분으로 군의 일에 개입하는 것도 사실 주제넘은 일이라 할 수 있었고, 자신들은 영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무기나 군의 방어 방법에 대한 것은 전혀 알고 있지 못했다. 백호가 같이 가 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박신부가 동의하자 현암도 고개를 끄덕였고, 준후는 반가운 미소를 띠었다. 백호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장비를 챙깁시다. 여러분도 그런 눈에 띄는 옷차림으 로는 행동이 어려울 테니 옷부터 갈아입으시고 장비를 원하는 대 로 챙기십시오.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모두 가지고 가세요.”

현암은 월향검을 보았고, 준후는 부적 뭉치를, 박 신부는 십자 가와 성수 뿌리개를 점검했다. 백호가 그 광경을 보고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현암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저희는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최신 장비들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백호 씨께서 필요한 것들 을 챙기세요. 저희는 옷만 갈아입으면 될 것 같습니다.” 

백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장비 쪽으로 눈을 돌렸다.


연희와 승희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연구실 안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후배 민지가 사다준 샌드위치 몇 조각을 먹은 것 외에는 먹지도 쉬지도 못하면서 작업에만 몰두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낮인데다 다행히 방학중이라 학생들이 드나들지 않아서 방 해받지는 않았지만, 일이 너무 힘들었고 해가 밝은데도 왠지 으 슬한 기분이 들었다. 옆에서 알짱거리던 민지도 보이지 않았고, 또 어디 갔는지 돌아볼 여유도 없이 연희는 해독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승희 또한 투시를 마치자마자 연희가 부탁한 이집트에 관계된 어휘나 자료들을 뒤지느라 정신이 없었다. 연희가 사태 의 심각성을 깨닫고 무척 빠르게 해독을 해 나가기 시작했기 때 문이었다. 다행히 아까 민지에게서 이집트와 연관된 책을 수십 권 받아 놓아 자료 조사는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었고, 그 때문 에 연희의 해석 작업도 빨리 진행되었다. 승희는 간간이 세크메 트의 눈을 통하여 박 신부와 현암, 그리고 준후에게 그동안 연희 가 해석한 것들을 보내 줄까도 생각했지만 연희가 틈틈이 요구 하는 자료를 조사하느라 그럴 짬이 없었다.

마구 갈겨써서 알아보기 힘든 빽빽한 연희의 해석 용지가 어 느새 수십 장이나 되었다. 문득 어떤 한 부분에서 연희가 주춤하 더니 천천히 양손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얼굴을 몇 번 어루만졌 다. 몹시 피곤해 보였다.

“연희 씨, 괜찮아요? 과로한 것 아닌가요?”

“아니에요. 지금까진 드문드문 해석하기는 했지만 대충 윤곽 은 알아냈어요. 아직 몇 군데 해독되지 못한 부분만 빼고는요.” 

“아직 해독되지 않은 부분의 내용은 뭐지요?”

승희는 연희가 갈겨써 놓은 종이들을 구석에 씌어 있는 일련 번호에 따라 정리하면서 물었다. 연희가 말했다.

“특히 한 부분의 해석이 어려워요. 세크메트의 네 사도에 대한 이야기인데…………….”

승희가 주춤했다. 어쩌면 그 내용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일 지도 몰랐다. 그 내용만 해석이 어렵다니.

그러나 뭔가 문제점이 있어서 번역이 안 되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승희는 연희에게 그 부분을 해석하도록 다시 한번 애써 달라고 말하고, 나머지 부분들을 대강 읽어 보았다. 앞부분 은 연희도 별 중요성을 느끼지 않았는지 대략적인 해석만 되어 있었다.

사토니 우쟈 티는 평민 출신으로 태어났으나 날 적부터 비전에 대한 특이한 능력을 보여 대술사인 아멘투트에게서 비전의 기술 을 배웠다. 특히 그녀는 애당초 하토르 계열의 비전 술수들을 익 히는 데 능했으나 후에는 하토르의 변신인 위대한 세크메트를 섬 기는 제사장으로 멤피스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연희가 번역한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여 머릿속에 집어넣 었다.

‘미라가 되었던 그 여자는 원래 세크메트 숭배가 성행했던 멤 피스 지방의 여제사장이었구나. 그리고 비전의 특이한 능력을 지녔었고 그 정도 되는 사람이었으니 후에 미라가 되었다가도 살아서 움직일 수 있었겠지.’

중간 부분은 사토니 우쟈 티의 여러 가지 기적 같은 술수와 신비한 능력들에 관한 예찬 비슷한 문구로 채워져 있었다.

한참을 대강 훑어내려 가다가 승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글귀를 발견했다.

우리들과 강이 바다를 건너온 외적들에 의하여 침공당하고, 우리의 수비군이 그들의 계략에 몰려 괴멸되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무방비 상태인 우리의 도시와 신전으로 적들이 진군하고 있을 때 사토니 우쟈 티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를 추종 하던 네 명의 세크메트의 사도들의 힘을 빌려 사토니 우쟈 티는 적을 대혼란에 빠뜨리고 자멸 상태로 만들었다. 이것은 모두 영 화로우신 세크메트 신에 의한………….

불행히도 뒷부분은 연희로서도 힘에 벅찼던지 제대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중간중간의 작은 메모들, ‘세크메트의 사도들 은 짐작건대’라든가 ‘적의 사령관의 목을 베어’ 같은 단편적인 문구만이 있었으나 그 문구들이 아직 한데 결합되어 있지 않아 서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곳일지도 모르는데…………. 아마도 이 부분에 네 사도들의 정체와 사토니 우쟈 티가 환영술인가 무엇 인가 하는 방법으로 적들을 물리친 방법이 나올 텐데………..”

한동안 끊어진 뒤 문장이 다시 시작되었다.

파라오는 이러한 사토니 우쟈 티의 능력을 대단히 칭찬하여 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는 말을 하였다. 그러나 우리 의 현명한 여제사장인 사토니 우쟈 티는 별다른 욕심이 없이, 단 지 세크메트를 보다 훌륭히 섬길 수 있는 조용한 석실 하나만을 요구했을 뿐이었다. 덴데라에 건축되고 있던 하토르의 신전 밑에 석실을 지음으로써 세속의 이목을 피하고 오로지 경건한 비전의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만 된다면, 우리의 욕심 없는 토니 우쟈 티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었을 것이다. 단지 한 사람만의 영 적인 힘으로 적의 군대를 괴멸시킨 사토니 우쟈 티는 당연히 많 은 사람에게 숭배를 받았고, 사토니 우쟈 티가 일반 대중과 접견 을 전혀 하지 않은 채 비전 연구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사토니 우 쟈 티를 따르는 추종자들은 점점 더 많이 늘어났다.

파라오는 라의 아들이라 자처하면서도 세크메트의 힘을 두려 워하기 시작했다. 전승의 기념으로 파라오는 세크메트의 황금 상 을 덴데라 신전의 앞부분에 장식해 놓았었으나, 차차 사토니 우 쟈티의 능력이 자신을 핍박하는 데 쓰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위대한 파라오라고 하나 그는 의심이 많은 한 사람 의 인간에 불구하였으니, 오! 의심이라는 것은 위대한 인간을 얼 마나 치졸한 존재로 떨어뜨릴 수 있는 것인가?

파라오는 마침내 세크메트의 황금 상을 부수고 거기에 박혀 있 던 세크메트의 눈을 빼앗으려 한다. 그러나 사토니 우쟈 티를 추 종하는 네 명의 사도들은 세크메트 힘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세 크메트의 눈을 사토니 우쟈 티에게 전해 주었다. 파라오는 마침 내 군대를 몰아 사토니 우쟈 티를 결박하게 되었고, 사토니 우쟈 티를 따르는 대중들이 그 앞을 막아서 자칫 전쟁의 위험까지 생 기게 되었다. 그러나 선량한 사토니 우쟈 티는 그러한 것을 바라 지 않았다. 스스로 발휘한 힘에 의해 다른 사람의 의심을 사게 된 사토니 우쟈 티는 비전의 술수에 따라서 영원히 잠들 것을 다짐 하여 네 명의 사도들에게 몸을 맡기고 다시 돌아올 것을 기약하 며 미라가 되어 편히 쉬게 되었다.

사토니 우쟈 티가 원하지 않을 때 잠을 깨우면 사토니 우쟈 티 는 그것을 파라오가 세크메트의 눈을 빼앗으려 하는 것으로 상정 하기로 하고, 세크메트의 분노를 이집트 땅에 불러일으킬 것이라 고 말했다.

승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한 것을 블랙서클에서 먼저 알아냈구나. 그래서 사토니 우쟈 티의 잠을 일부러 깨우려 하고 거기에다가 한술 더 떠서 사 토니 우쟈 티의 미라를 우리 손으로 파괴하게끔 만듦으로써 그 다음의 단계까지 대비한 거로군. 바보 같은 것들. 사토니 우쟈 티는 이집트 땅이라는 말을 넣어서 예언을 했으니 이 땅에 이유 없이 저주를 부릴 까닭이 없다. 아니, 가만! 블랙서클에서 이것 까지 계산에 넣고 사토니 우쟈 티의 미라를 파괴하게끔 애당초 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것일까?”

승희는 연희가 번역한 것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힐끗 연희를 보니 연희는 눈이 침침해졌는지 큰 눈을 약간 찌푸리고 두꺼운 책들을 뒤져 가며 이상한 단어와 상형문자들을 적은 쪽지를 잡 은 채 씨름하고 있었다. 승희는 연희의 번역물을 계속 읽었다.

사토니 우쟈 티는 세크메트의 눈이 가지고 있는 무서운 힘이 의심과 욕심이 많은 파라오에게 넘어갈 것이 두려워 자신이 영원 히 간직하기로 마음먹었다. 사토니 우쟈 티는 신비로운 힘으로 세크메트의 눈을 자신의 심장에 집어넣고 네 명의 사도에게 자신 을 어느 누구도 절대 열 수 없는 관 속에 넣어서 파라오의 눈을 피 하게 해 달라는 말을 남겨 스스로 이승과 피안의 강 중간에 머무 르고자 했다. 영원히 열 수 없는 관을 만들기 위해 네 명의 사도는 우리 사토니 우쟈 티의 추종자에게 말을 하고, 사토니 우쟈 티의 미라를 불뿜는 산까지 운반하게 한 후 그 산에 스스로 뛰어들었 다. 뛰어들기 전에 그들은 사토니 우쟈 티를 세크메트의 대주술 에 의해 영원히 수호할 것이며, 사토니 우쟈 티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는 누구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맹세를 하였던 것이다.

신비롭게도 그들이 뛰어들자 커다란 두 쪽의 바위가 용암 속에서 솟아올랐다. 우리는 그 바위 속에 사토니 우쟈 티를 넣어 영원히 잠들게 하였다. 네 명의 사도의 몸은 없어졌지만 바위의 틈 사이 에 우리는 네 개의 우쟈 티를 넣어 네 사도의 뜻을 기리고, 사토니 우쟈 티의 잠을 누구도 깰 수 없도록 두 개의 갈라진 틈을 용암으로 메웠다.

승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군. 우리가 추리한 게 대부분 맞아들어가고 있었어.”

영원한 생명의 상징인 심장으로 둘러싸서 지키고 있는 세크메 트의 눈과 영원히 떨어지지 않도록, 우리는 사토니 우쟈 티의 관 을 세크메트의 제단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하여 세크메트에게 바 치는 공양물이 사토니 우쟈 티에게도 계속 바쳐질 수 있도록 하 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사토니 우쟈 티의 제단을 그가 비전을 연 구하던 신전 밑의 석실에 안치하고, 석실 내에 사토니 우쟈 티의 저술들을 소중히 보관했다. 그리고 세크메트에게 바치는 공양물 들을 모두 넣은 채 석실을 밀봉하였다.

그다음 부분은 한참 비어 있었다. 생략을 했다는 표시 다음에 중간 해석이라는 표기가 있었다. 그 부분에서 연희가 즐겨 쓰는 세크메트의 분노의 정체라는 말과, 번역한 다른 부분이 있었다.

세크메트의 분노는 이 땅에 피를 불렀다. 모든 지배자와 권력 을 지닌 자들은 서로를 인간이 아닌 괴물과 야수로 보고 미친 듯 이 싸웠다. 모두가 전멸할 때까지 그들의 광기는 멈추지 않았고, 이 모든 저주를 내리게 한 것은 세크메트의 힘이었다.

세크메트의 대주술을 중단시키는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 다. 그러나 오랫동안 세크메트의 사도들이 그 주술을 알려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일 강이 피로 물들었다.

“세크메트의 분노의 힘, 그건 바로 환영술을 의미했구나. 수많 은 장군이나 지도자 같은 이들에게 환영을 걸었다면 그들은 서 로 죽을 때까지 싸웠을 것이고, 정말로 강이 피로 덮여 아수라장이 될 수도 있었겠군. 무서운 일이야. 그런 일이 지금 우리나라 에서 벌어지고 있다니.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데………….”

승희는 안타까운 마음에 책을 뒤지고 있던 연희에게 말을 걸었다.

“연희 씨, 세크메트의 대주술이라는 것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 것은 없나요?”

연희가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책장을 넘기면서 대답했다.

“저도 정말 그 문제를 알아내고 싶어요. 그러나 너무나 희한한 단어들과 이상한 용법들이 많이 쓰여서 뜻을 알아낼 수가 없어 요. 제가 이집트학 쪽에 조금 더 관심이 많았더라면 좋았으련만. 이집트의 히에로글리프는 표음문자이기 때문에 단어의 뜻을 알 지 못하고서는 내용을 해석할 수가 없잖아요? 지금 결정적인 키워드가 될 수 있는 몇 가지가 전혀 그 뜻이 밝혀지지 않네요. 그 러다 보니 주술에 대한 내용도 알아낼 수 없구요. 언뜻 보아서는 뭔가 내용이 있을 것도 같은데.”

책에서 눈을 뗀 연희는 자신이 번역해 놓은 종이쪽지들을 승 희에게 받아서 뒤적거렸다. 그러다가 그중의 한 장을 승희에게 내밀었다.

“이걸 보세요. 단서가 있을 것도 같아요.”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씌어 있었다. 다른 구절들은 긴 문장을 줄여서 옮겨 놓은 것이라 대부분 연희의 의역을 따른 것 이었으나, 이 대목만큼은 거의 직역에 가까웠다.

남들이 갖지 않은 힘을 가진 자들에게 사토니 우쟈 티가 경고 하노니, 힘은 소유하여 이용하는 것이 아니고 힘은 자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세크메트의 대주술은……..

승희가 안타까운 나머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 승희를 연희 가 힐끗 보았다. 연희의 태도는 여전히 침착하기는 했지만, 연희 역시 그 내용에서 빨리 알아내고 싶은 마음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키워드를 찾아내지 못한 상태라면 더 이상의 해석은 무리라는 것을 둘 다 잘 알고 있었다. 연희가 고개를 젓 고 나서 긴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다.

“미안해요. 제 능력이 모자라서 자꾸 시간이 지체되네요.” 

승희가 말했다.

“연희 씨의 탓이 아녜요. 저야말로 좀 더 이집트학에 대해서 공부를 해 두었더라면・・・・・・ . 아, 학교 다닐 때 왜 공부를 안 했던가.”

승희는 답답했던지 묻지도 않은 말까지 해 가며 푸념을 했다. 연희가 한숨을 쉬고는 책으로 눈을 돌렸다. 잠시 후 연희는 고개 를 들어 승희에게 말했다.

“승희 씨, 현재까지 알아낸 것 중에서라도 중요하다고 생각되 는 것은 신부님에게 전달해 주세요. 제 생각엔 아마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크메트의 눈이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물건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군요. 그것을 반드시 몸에 지니도록 환기시 켜 주어야 할 것 같아요.”

승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연희는 과로해서인지 코피를 흘렸 다. 흰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나 금방 붉은 피가 손수건에 번졌다. 승희는 고개를 저으면서 세크메트의 눈을 손에 쥐었다. 그러나 통신이 되질 않았다. 승희는 제기랄 하면서 발로 땅을 찼다.

“바보 현암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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