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세계편 1권 4화 – 비어 있는 관 4 : 백호의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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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세계편 1권 4화 – 비어 있는 관 4 : 백호의 실종


백호의 실종

엄청난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자 근처의 텅 빈 공장 건물 의 유리창들이 와르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현암이 내지르는 사자후에 요원들은 충격으로 귀를 막으며 땅에 굴렀고, 승희와 박 신부마저도 몸을 움찔했다. 좀비들은 현암이 내지르는 엄청 난 사자후를 듣자, 마치 인형처럼 흐트러지면서 비틀거리기 시 작했다. 몇몇 놈들은 들고 있던 몽둥이며 막대기를 떨어뜨렸고 윌리엄스 신부를 붙들고 있던 놈들도 힘이 풀렸다. 윌리엄스 신 부도 멍해졌고 내심 놀라기도 했지만 때를 놓치지 않고 십자가 를 꺼내 들어 라틴어로 기도를 읊었다. 윌리엄스 신부도 기도력 을 얻은 듯 그의 양손과 십자가에 흰빛이 발하기 시작했다. 비록 박 신부의 엄청난 오라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윌리엄스 신부 의 능력도 범상한 것은 아니었다. 윌리엄스 신부가 희게 빛나는 십자가를 자신을 잡고 있던 좀비의 팔에 대고 누르자 좀비는 비 명을 지르면서 손을 놓아 버렸다. 영력에 의한 것은 이 좀비들에 게는 통하지 않으니까 윌리엄스 신부의 기도력도 물리력을 동반 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송 요원이 좀비들이 주춤거리는 틈을 타서 다시 무전기로 구원 신호를 보내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까와는 다른 찍찍거 리는 높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갑자기 승희가 다급히 소리쳤다.

“아아…………… 그 무전기. 어서 그걸 꺼욧! 어서!”


“야아아아압!”

현암은 기공력을 모아 비틀거리는 좀비들을 우르르 밀어붙였 다. 비록 현암의 몸 내부에까지 기공을 돌릴 수 없어서 엄청난 힘은 내지 못하지만, 겉으로 기공을 응축시키는 것만으로도 현 암은 열 명 이상의 힘을 낼 수 있었다. 현암에게 밀린 좀비들은 자기들끼리 뒤엉키고 벽에 부딪히기도 했다. 현암은 이를 악물 고 옆에 있던 아이빔 하나를 집어 들어 좀비들을 벽에 밀어붙였 다. 좀비들은 아우성을 치며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여럿이 엉켜 있어서 중심을 잡지 못했고, 현암이 있는 대로 힘을 가한 오른손 에 뻗친 기공력에 눌려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무슨 말이오! 어서 무전을 보내야 지원을…………….”

송 요원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큰 소리로 외쳤다. 저편에서 는 박 신부도 오라를 힘껏 발휘하여 남아 있던 여섯 명의 좀비를 저항하지 못하도록 벽에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것 말고는 좀비 들을 제압할 다른 방도가 없을 것 같았다. 윌리엄스 신부는 기도 력으로 두 명의 좀비를 밀어냈고, 최 요원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박 요원은 총에 맞아 발악하는 좀비를 내리깔고 앉아 팔을 꺾고 있었다.

“무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요! 저건, 아아…………….”

무전에서 들리는 소리는 언뜻 들으면 잡음과 같았으나 승희 는 무의식중에 그 소리 속에 뭔가가 들어 있음을 느꼈다. 잡음 같이 들리는 전파 속에서 사악한 부르짖음 같은 것이 느껴졌다. 승희는 눈을 감고 그 부르짖음을 영상으로 보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비틀거리던 좀비들이 갑자기 고함과 신음 소리가 섞인 듯한 소리를 지르면서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열두 명이나 되는 좀비 들을 벽에 누르고 있던 현암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오면 서 현암의 발이 조금씩 땅속으로 파묻혀 들어갔다. 좀비들은 구 령에 맞추듯이 일정한 간격으로 괴성을 지르며 현암에 맞서고 있었다. 박 신부가 오라로 낚아챈 좀비들도 미친 듯이 발악을 해 댔고, 그에 따라 박 신부의 기도성도 미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윌리엄스 신부가 기도력으로 두 놈의 좀비를 잡고 눌러 대다가 승희의 외침과 무전기의 소리를 듣고 소리를 쳤다.

“아이티, 아이티의 만트라(진언)! 오오오! 어서, 어서 무전기를!”

눈을 감고 투시에 잠겼던 승희는 놀라움에 눈을 번쩍 떴다.

“아아! 피………… 닭의 피! 그리고 불… 춤…… 아아!”

승희의 눈에 떠오른 영상, 그것은 방금 목이 잘려 피를 흘리고 있는 닭의 머리, 사방에 이글이글 타고 있는 불길, 이상한 칠을

한채 피를 뒤집어쓰면서 춤을 추는 여러 사람들의 일그러진 형상, 몽롱한 연기………….

윌리엄스 신부도 승희가 투시해 낸 것을 재투시한 듯했다. 그 의 입에서도 경악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Feast of Voodoo (부두의 향연)! 아아, 저 무전기에서…………… 만트라, 아이티의 만트라가…………. 어서!”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송 요원이 얼른 무전기를 꼈으 나 이미 때는 늦은 듯, 헉헉거리는 구령 같은 소리를 지르는 좀 비들과 겨루던 현암의 발이 땅에 깊은 자국을 남기며 조금씩 밀 려나기 시작했다. 고통에 겨워서인지 현암의 얼굴은 벌겋게 질 려 가고 있었다. 이성을 상실하고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열두 명의 좀비. 박 신부는 더더욱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박 신부의 영력도 현암보다 결코 떨어지지 않았지만, 박 신부는 직접 힘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라를 뿜는 것으로 좀비 들을 밀어내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힘의 소모가 심했다. 현암처 럼 좀비들의 무기나 손톱에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면 모르 지만…………….

승희가 재빨리 윌리엄스 신부의 마음속을 투시했다. 윌리엄스 신부는 어휘력이 모자라는데다가 두 명의 좀비가 덤벼드는 바 람에 미처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티의 만트라…………. 좀비를 부리는 호웅간의 주문…………. 호웅간은 어디에 선가 이들의 무전기를 입수하여 그 무전 전파를 통해 좀비들에 게 공격하라는 만트라를 퍼뜨린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잡음처 럼 들렸던 그 소리는 그들의 향연중에 벌어지는 슛슛 하는 소리, 불이 타오르는 소리, 그리고 요란한 악기 소리 같은 것이 뒤섞인 소리가 분명했다. 승희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진작 그 잡음에 주목을 했더라면. 그러나 그럴 틈이 없었다.

현암과 좀비들이 기대어 밀고 당기던 빈약한 블록 벽이 더 이 상 힘을 이기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좀비들은 뒤로 자 빠져 버렸고 현암은 휘청하다가 날렵하게 몸을 한 바퀴 돌려서 중심을 잡았다. 한바탕 흙먼지가 자욱하게 이는 가운데에 좀비 들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어나는 그들의 몰골은 더더욱 흉악해 보였다. 현암은 이를 악 물며 힘을 모으려 했지만 기공력만이 아니라 몸의 기운도 심하 게 썼기 때문에 몹시 지친 듯 숨을 헐떡였다.


“어어어엇!”

저쪽에서 윌리엄스 신부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윌리엄스 신 부가 방심한 사이에 좀비 한 놈이 신부의 뒷덜미를 붙잡은 것이 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녀석은 윌리엄스 신부를 잡자마자 그 대로 질질 끌고 반대편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신부님!”

승희가 반사적으로 뛰어 나가려 했으나 또 다른 좀비 하나가 앞을 막고 섰다. 좀비의 딱딱한 손가락이 덮쳐들자 승희는 비명 을 질렀고 박 신부가 다급한 나머지 오라력으로 눌러 대던 좀비 들을 그냥 놓아둔 채 승희에게 덤벼드는 좀비에게 뛰어들며 어 깨로 밀어붙였다.

“캑!”

오라력과 거대한 박 신부의 덩치에 밀린 좀비는 담벼락으로 튕기듯이 날아가서 벽에 부딪힌 뒤 뒤로 자빠져 버렸다. 송 요원 과 박 요원은 이를 악물고 총을 꺼내어 윌리엄스 신부를 미친 듯 질질 끌면서 달아나는 좀비를 겨누려 했으나 자칫하면 신부가 맞을 것 같았다.

“이런 제기랄!”

박 요원이 중얼거리는 순간 갑자기 벽돌 하나가 날아 왔다. 다 리에 정통으로 벽돌을 맞은 박 요원은 허물어지듯 앞으로 쓰러 져 버렸다. 박 신부의 오라에 눌려 있던 여섯 명의 좀비들이 다 시 풀려나 돌을 던지고 있었다. 승희가 등에 돌을 맞고 큭 하는 소리를 냈다. 돌에 맞은 통증 때문에 무릎이 꺾였다. 그런데 저 만치에 끌려가는 윌리엄스 신부가 골목길을 도는 순간 뭔가를 이쪽으로 잡아 던지는 모습이 보였다. 부두교의 부적이었다.

박신부가 넘어지는 승희의 앞을 가로막았다. 박 신부가 앞으로 오라를 발하자 여섯 명의 좀비는 마치 바위 벽에 부딪힌 듯 밀려났으나, 무너진 벽 틈새로 기어 나온 좀비들이 몽둥이를 주 워 들고 박 신부의 옆구리를 노렸다. 이를 본 송 요원이 대항하 려 했으나 빗발처럼 쏟아지는 몽둥이에 강타당해 쓰러져 버렸 다. 박 신부가 승희와 송 요원을 막아서면서 몸을 돌리는데, 대 여섯 개가 되는 몽둥이가 일제히 박 신부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 들었다. 좀비들은 이제 쉿쉿 하는 소리에 박자를 맞추어 일사불 란하게 몽둥이를 휘둘러 댔다. 현암이 기합 소리와 함께 몸을 날 렸다. 현암의 왼팔에서 월향이 귀곡성을 내며 허공에 날카로운 선을 그리자, 박 신부의 머리로 날아들던 몽둥이들이 우수수 잘 려 허공으로 튀었다. 좀비들이 헛손질하자, 이번에는 허공에 뜬 현암의 얼굴을 향해 다른 좀비들이 쇠파이프를 휘둘러 댔다. 폐 허가 된 공장 지대에는 무기가 될 만한 물건들이 너무 많았다. 현암이 급한 김에 오른팔에 기공을 돌려 막자 쇠 파이프들은 탕 탕 쇳소리를 내면서 구부러졌다. 아무리 기공력이 있다지만 현 암 역시 시큰한 통증을 느꼈다. 더욱이 몸을 허공에 날린 상태에 서 공격을 받자 현암의 몸은 균형을 잃고 그대로 땅에 처박혀 버 렸다. 그때, 다리에 총을 맞고 주춤하던 좀비 한 놈이 쓰러진 현 암의 몸을 끌어안았다.

“어엇!”

현암은 일어날 수 없었다. 박 신부와 승희는 여섯 놈의 좀비들이 미친 듯이 던져 대는 돌과 흙먼지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다시 쇠꼬챙이와 철근이 날아드는데도 좀비가 강력하게 조이는 통 에 현암은 몸을 뺄 수가 없었다.

“월향!”

현암의 소리를 듣고 월향이 비명을 지르며 돌아왔다. 순간, 한 놈의 좀비가 날아오는 월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

“어엇!”

월향은 놈의 몸에 그대로 박혀 들어갔다. 놈은 몸을 움츠리면 서까지 월향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잡았다. 월향의 소리가 점 차 들리지 않고 놈이 양손으로 감싸 쥔 틈으로 선혈이 마구 뿜어 져 나왔다. 월향검이 안에서 요동을 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놈은 아픔도 느끼지 않는지 야릇한 미소를 띤 채 온 힘을 다해 월향을 자기 몸속에 잡아 두려 하고 있었다.

무거운 철근이 날아와 현암의 가슴에 큰 소리를 내며 부딪히자 현암은 큭 하는 신음을 토했다. 현암이 신음을 내는 것과 동 시에 날카로운 쇠꼬챙이가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현암은 간발 의 차이로 얼굴을 돌려 간신히 피했다.

박 신부의 기도성이 커지기 시작했다. 오라 막이 점점 팽창하 자 다른 녀석들이 던지는 돌덩이들이 허공에서 튕기면서 부서 졌다. 박 신부가 현암을 보호하기 위해 힘겹게 몸을 돌리려 하자 뒤쪽으로 삐죽삐죽한 막대기를 창처럼 치켜든 좀비 한 녀석이 달려들었다. 그것을 본 승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신부님, 조심!”

그때였다. 갑자기 조그마한 그림자가 뛰어들면서 박 신부에게 덤벼들던 좀비에게 뭔가를 끼얹었다. 준후였다.

“야아아앗! 받아랏!”

준후는 들고 있던 찌그러진 양동이에 든 것을 사방에 뿌렸다. 승희는 소금을 구하러 간 준후가 왜 저런 것을 뿌려 대나 의아 했으나, 준후가 뿌린 작은 물방울이 튀어 승희의 입속으로 들어 오자 “아아!” 하고 감탄했다. 영리한 꼬마 녀석…………. 바닷물이었다.


준후는 소금을 직접 먹이는 대신에 바닷물을 한 양동이 퍼와 서 좀비들에게 끼얹었다. 오히려 그편이 훨씬 효과가 좋았다. 무 의식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입을 헤벌리고 있는 좀비들의 입속으 로 바닷물이 들어가기도 했고, 혹은 바닷물을 뒤집어쓴 채 계속 공격을 하다가 입안으로 흘러 들어간 놈도 있는 듯했다. 짠맛을 본 좀비들이 현기증을 일으키듯 비틀거리다가 픽픽 쓰러지기 시 작했다. 현암이 뒤에서 자신을 조이고 있던 좀비를 뿌리치고 일 어나서 입안에다가 바닷물을 튕겨 넣었다. 놈은 눈을 감고 마치 잠이 든 것처럼 고개를 꺾었다. 아직 두어 놈이 더 버티고 있었 지만 준후가 마지막 남은 바닷물을 좀비들에게 냅다 끼얹자 잠시 바둥거리다가 역시 쓰러져 버렸다. 쉿쉿 하는 구령을 붙이고 있는 놈들이라 물을 끼얹기만 하면 입안으로 바닷물이 그냥 들 어갔다. 너무도 간단하게 놈들이 쓰러져 버리자 박 신부가 한숨 을 토해 냈다.

“앞으론・・・・・・ 성당식으로 성수를 만들어 가지고 다녀야겠군*.” 

박 신부와 현암 등 퇴마사 일행은 쓰러진 좀비들을 수습하는 한편, 상처를 입은 박 요원을 일으켜 세웠다. 그런데 송 요원과 최 요원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현암은 넘어져 있는 좀비들의 수를 헤아려 보았다. 자신이 상 대하던 녀석들 열둘, 박 신부가 여섯, 윌리엄스 신부가 둘, 그리 고 쓰러졌던 한 놈과 박 요원이 싸우던 놈까지 좀비는 총 스물두 명이었던 것 같았는데, 여기 넘어져 있는 녀석들의 수는 열여덟 밖에 되지 않았다. 아까 윌리엄스 신부를 끌고 달아난 놈을 빼고 라도 스물하나여야 맞는데…………. 그러면 혼전중에 세 놈의 좀비는 또 어디로 사라져 버렸단 말인가?

“이런 망할……. 다 잡고야 말겠어!”

현암은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기세였다. 옆에 있던 박 신부가 현암을 만류했다.

“현암군! 급하게 서두를 것이 아니야. 지금 당장 추적을 하지 않더라도 승희의 힘을 빌면 그들이 잡혀간 곳을 알아낼 수 있을 거네.”

“그러나 그사이에 윌리엄스 신부님이나 요원들이 또 좀비로 변해 버리면 어떻게 하지요? 그러면 그 사람들과도 싸워야 하나요?”

갑자기 처절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까 다리에 총을 맞 아 다리뼈가 완전히 으스러진, 아니 이제는 의식을 차린 사람으 로 돌아온 좀비가 고통을 느끼는지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다. 그 리고 이어서 끄르륵하는 신음 소리도 들려왔다. 월향검을 몸으 로 받아 낸 녀석………. 월향이 놈의 몸에서 쑥 빠져나왔다. 월향 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피를 공중에서 털어 내고는 힘없이 현 암의 주위를 돌았다. 월향이 사람에게 저렇게까지 직접적으로 상처를 준 것은 처음이었다. 비록 사람의 형상은 아니었지만 칼 에 봉인되어 있는 월향은 산 사람과 진배없었다. 현암은 과거 월 향을 만났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달과 같이 창백하던 여인,


* 성당에서 쓰는 성수는 상당량의 소금이 들어 있다. 그러나 원래 성수는 축성을 한 물에 불과하지, 반드시 소금을 넣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성당에서 쓰는 성수 에 소금을 넣는 것은 종교적인 이유도 있지만, 부패를 방지할 목적, 특히 성당에 들어갈 때 모든 신자들이 공동으로 성수를 찍어 성호를 긋기 때문에 소독의 의미 가 있다. 그러나 혼자 활동하는 박 신부로서는 굳이 성수를 그렇게 만들 이유가 없기에 아주 맑고 신선한 자연의 악수를 축성하여 만든다. 그러므로 박 신부의 성수에는 성당 성수와는 달리 소금성분이 없으니 이 점 의아하게 생각하지 마시  바란다.


가련한 여인…………. 현암이 떨리는 손을 내밀자 월향검은 투지만만한 기색을 잃고 마치 비틀거리듯이 천천히 현암의 손에 내려 앉았다. 현암은 말없이 월향을 감싸 쥐고는 침통하게 눈을 감았 다. 마치 아기를 달래듯이………………

“괜찮아……. 어쩔 수 없었던 거야…. 괜찮아…….”

현암은 눈을 감은 채 월향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넸으나 사람 이나 다름없는 월향은 인간의 배 속을 헤집었다는 사실에 충격 을 받은 듯, 계속 파르르 떨었다. 비록 표정이 변하지는 않았지 만 현암의 입에서 이를 악문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박 신부는 준후가 재빨리 차에서 꺼내 온 구급약품을 이용해 서 쓰러져 있는 좀비들에게 응급 처치를 해 주려 했으나 신통치 않았다. 특히 월향에게 온통 배 속을 헤집힌 자는 가망이 없어 보였다. 박 신부의 긴장된 얼굴에 땀이 흘러내렸고 손이며 사제 복 자락에 피가 금세 배어 올라왔다. 진통제 주사를 찾았으나 없 었다. 하는 수 없이 박 신부는 이를 악문 채 남자의 배 속을 바로 잡으려 했고, 준후는 신음을 하면서 남자가 발버둥을 치지 못하 게 있는 힘을 다해 팔을 누르고 있었다.

승희는 아직도 비명을 지르고 있는 다리가 절단 난 좀비에게 갔으나 너무나 참혹한 상처에 온통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 사 방에서는 이제 제정신을 차려 가는 좀비 인간들의 고통스런 신 음 소리들이 아우성처럼 들려오고 있었다. 물론 다치지 않게 하려고 주술은 이용하지 않았지만 혼전중에 심한 상처를 입은 자 들이 많았다. 마치 수라장같이 어질러진 사이에서 들리는 고통 소리에 차라리 귀를 막고 싶었다. 그래도 승희는 이를 악물고 부 러진 뼈를 대강이나마 맞추어 보려고 했으나 가까이서 45구경탄 을 맞은 그자의 다리뼈는 복합 골절이 되어 박살 나 있었다. 승 희가 힘을 주자 남자는 숨이 넘어가는 듯한 소리를 지르면서 혀 를 깨물었는지 의식을 잃어버렸다. 승희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박 신부가 돌보던 남자가 결국 크으윽 하는 소리와 함께 숨을 거두자 준후는 남자의 팔을 놓고 고개를 돌렸다. 준후의 작은 몸 이 떨고 있었다. 그러나 박 신부는 억지로 참고 있는 듯, 양 뺨에 경련이 일어 후들후들 떨었고 눈은 무섭도록 빛나고 있었다. 박 신부는 천천히 손을 거두어 남자의 눈을 감겨 주었다. 왜 이렇게 비참하게 이용당하고 죽어야 하는가.

“가련한 자여, 이제 편안히 쉴 수 있으리라…………….”

박신부는 나직이 몇 마디 말만을 힘겹게 중얼거렸다. 그러고 는 승희가 망연히 다리를 붙들고 있는 남자에게로 돌아섰다. 승희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떨려서 알아 듣기 어려운 말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게…… 이게 우리의 승리인가요? 나…………… 나는 우리가 항상・・・・・・ 악한 자들과 싸우고………… 그리고 이기면…………….”

“승희야, 진정하렴.”

박 신부가 조용히 승희를 남자에게서 떼어 내고 어깨를 감싸 안았다. 승희의 옷에 선혈이 번져 갔다. 승희는 마치 정신을 잃 은 것처럼 몸을 덜덜 떨면서 중얼거렸다.

“이긴다는 것・・・・・・ 이긴다는 것은…… 항상 영광스럽고………… 신나는 것일 줄…… 그런데…. 그런데…….”

준후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러고는 쪼르르 내달려서 저만 치 달려가더니 땅에서 뭔가를 집어 들었다. 윌리엄스 신부가 내 던지고 간 부적이었다. 준후는 부적을 들고 말없이 서 있었다. 현암이 칼집을 빼어 승희에게 주면서 말했다.

“승희야, 보관해 주렴. 이번 일에는 아무리 급해도 월향을 쓰지 않겠다.”

현암은 아무리 칼이라도 월향에게 이런 일을 시킬 수는 없다 고 생각했다. 적이 악령이나 초자연적인 것이라면 몰라도 이번 경우는 상대가 사람, 그것도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이기에 월향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승희는 멍하니 월향을 받아들었 다. 이번엔 현암이 준후에게로 몸을 돌렸다. 박 신부는 혼신의 힘을 다해 다리가 박살 난 자의 응급 처치를 하느라 정신이 없 었다.

“승희야, 신부님과 함께 여기를 수습해라. 나는 놈들을 쫓겠다.” 승희가 갑자기 정신이 든 듯 고개를 저었다.

“현암군, 위험해! 사람들을 모아서 같이………….”

“어차피 요원들은 필요가 없어. 난 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막 이야기를 하려는 참에 급하게 차 떠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준후가 눈을 반짝이며 소리쳤다.

“저 차! 이 근처는 인적도 없는데. 저 차가 바로 신부님과 요원 들을 잡아둔 차예요!”

“가자, 준후야!”

현암은 앞뒤 가릴 것 없이 준후를 거의 처넣다시피 차에 태우 고 재빨리 시동을 걸었다. 차는 끼이이익 하는 파열음을 내면서 그대로 출발해 버렸다.

“아니야. 그래도… 백호 씨! 백호 씨를 부르면!”

승희는 현암을 제지하지 못하고 반사적으로 눈을 감은 채 백호 가 도대체 어디서 뭉그적거리는지 알아보기 위해 정신을 모았다.


박 신부가 놀라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현암이 준후를 태 워 차를 몰고 떠나 버린 다음이었다. 응급 처치를 마친 박 신부 는 피가 묻지 않은 소매의 한쪽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의아 하다는 듯 두리번거렸다.

“왜 그러지, 승희야? 그리고 현암 군은 어딜 저리 급하게 가는 거야?”

“백호 씨, 백호 씨가 없어요. 투시가 안 돼! 죽었거나 아니면 의식을 잃은 게 틀림없어요.” 

“뭐, 뭐라구?”

박 신부는 대경실색했다. 분명 그들은 호웅간이 있는 곳으로 쳐들어간 백호가 걱정돼서 먼저 떠난 것인데 벌써 무슨 일을 당 한 것 같다니 불안했다.

“현암군은 윌리엄스 신부와 두 명의 요원을 잡아간 차를 쫓아 간 건데.”

박 신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직 정확하게 상황을 판단 하지는 못했지만 일이 잘못되어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 다. 박 신부는 땅에 떨어져 있는 무전기를 집어 들어 막 의식을 차리고 있는 박 요원에게 건네주며 다짜고짜 큰 소리로 말했다. 

“여기를 수습해 주게. 만약 백호가 그들에게 잡혀서 좀비가 되 었다면…………. 현암 군과 준후가 위험해!”

승희도 박 신부가 서두르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현암과 준후 는 좀비를 투시해 낼 능력이 없었다. 윌리엄스 신부의 부적을 가 지고 있기는 하지만 좀비가 된 백호가 다른 좀비들 틈에 섞여 다 가와서 총질이라도 해 댄다면…………. 승희는 소름이 쫙 끼쳤다. 도 움이 될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걸 현암과 준후는 모르기 때 문이었다.

“큰일이네요!”

“그러니 서둘러야지.”

박 신부는 승희가 현암과 같이 갔더라면 좋았을 거란 말을 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아직 철이 없고 경험이 많지 않은 승희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우리도 가자. 승희야, 현암 군이 가는 곳을 추적할 수 있지?”

“예. 될 거예요.”

“그래, 좋다.”

박 신부는 멍하니 주위를 둘레둘레 둘러보고 있는 박 요원에 게 제대로 설명도 해 주지 않고 재빨리 남은 차를 타고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피해 차를 몰았다.

현암의 뒤를 추적하고 있는 박 신부의 차에는 다행히 카폰이 설치되어 있었다. 승희는 박 신부의 옆자리에 앉아서 눈을 감고 양손의 손가락을 관자놀이 부근에 댄 채 현암을 투시하기 시작 했다. 박 신부가 조급히 물었다.

“승희야, 어느 쪽이지?”

승희가 잠시 인상을 쓰더니 눈을 감은 채 소리쳤다. 

“왼쪽, 왼쪽 길로 들어서세요! 그쪽으로 가고 있어요!” 

박 신부가 급히 핸들을 돌리자 차는 끼이익 하는 마찰음을 내 면서 급회전했다. 승희는 잠시 휘청하고 눈을 떴다가 카폰을 보 고는 투시를 멈추고 수화기 다이얼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 나 현암의 차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카폰 수화기가 제대로 놓여있지 않은 것을 현암과 준후는 미처 모르는 듯했다.

“이런 망할! 바보 현암군!”

승희가 소리를 지르면서 수화기를 끊자마자 다른 차에서 호출 하는 듯한 신호음이 들려왔다. 승희가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까마귀, 까마귀! 여기는 독수리. 큰일이다. 캡틴과의 연락이 두절되었다. 오버.”

아마도 백호가 잡혀갔다는 사실을 사방에 연락하는 모양이었 다. 승희가 수화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인제 알았냐! 이 멍청한 작자들아! 연락 두절된 사람은 또 있단 말야!”

박신부가 먼발치의 갈림길을 보고 승희에게 소리쳤다.

“승희야, 어느 쪽이냐!”

“까마귀, 무슨 소리냐? 박요원이 아닌가? 너는 누구지?” 

박 신부가 승희에게서 수화기를 빼앗아 들었다. 승희는 뭐라 할 사이도 없이 눈을 꽉 감으며 투시를 행했다. 갈림길에 다다르 자박 신부가 재차 다급하게 말했다.

“어서, 승희야! 어느쪽이냐!”

“무슨소리냐? 그 차량은 국가의 특수 임무를 위해 만든…………….”

“오른쪽이에요. 그쪽으로 가고 있어요.”

박신부는 커브를 틀면서 수화기에 대고 외쳤다.

“우리는 박 요원, 송 요원, 백호와 같이 임무 수행중인 사람들이다. 백호가…………….”

“신부님, 오른쪽!”

다시 박 신부가 핸들을 돌리자 끼이익 하며 차가 심하게 흔들 렸다. 지나가던 몇 대의 차들이 사방으로 피하면서 미친 듯이 질 주하는 차에 뭐라고 욕을 해댔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문제가 아 니었다.

“백호가 어디서 실종되었는가? 중요한 일이다.”

“당신들의 신분을 밝혀라. 그리고 어떻게 그 차량을 입수하게 되었는지 밝히지 않으면 체포하겠……”

“어서 말하라니까!”

“그 차에는 추적 장치가 부착……”

“악마에게나 가 봐랏!”

박 신부가 수화기를 집어 던졌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혼자 중얼거렸다.

“아멘. 용서하소서.”

승희가 일러 주는 대로 박 신부는 운전 실력을 최대로 발휘해 서 길을 헤쳐 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순간,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

“어어어엇!”

박신부가 급브레이크를 밟는 동시에 사이드 브레이크까지 당 기자 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한 바퀴 돌다가 옆에 있는 담을 스치고는 바로 앞에서 멈추어 섰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죄송해요, 신부님. 저는 단지 방향만 알 수 있지 길까지 알 수는 없어요.”

혀를 끌끌 찼으나 박 신부도 별수 없었다. 승희가 투시를 계 속한다 해도 현암의 위치가 대략 어디인지만 알아낼 수 있을 뿐 정확한 도로의 위치까지는 알 수 없다는 데야 어쩔 수 없는 노릇 이었다.

“할 수 없다. 전화는 안 되니?”

“수화기를 잘못 놓은 것 같아요. 실수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일부러?”

“알 수 없지!”

박 신부는 입술을 깨물면서 차를 요란하게 돌렸다. 차의 뒷부 분이 벽에 긁히면서 조금은 익살스러운 소리가 박 신부와 승희 의 귓전에 들려왔다.


현암 역시 정신이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박 신부보다 먼저 출발하기는 했지만 윌리엄스 신부와 두 명의 요원을 납치한 게 분명한 앞차는 아직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준후가 나름대로 땀 을 흘리며 투시를 해서 윌리엄스 신부의 행방을 추적하려 애쓰 고 있었고, 현암은 귀를 곤두세우고 아까 들었던 차의 소리를 기억하려 힘쓰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곧 저만치에서 앞서 달려가고 있는 커다란 트럭 하나를 볼 수 있었다.

“저거예요. 현암 형!”

현암이 싸늘한 냉소를 머금었다. 현암이 지금 상당히 흥분 상태 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준후로서는 그 미소가 무섭게 느껴졌다.

“꽉 잡아라, 준후야!”

현암이 있는 대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자 위이이잉 하고 엔진이 타는 소리를 내면서 계기판의 바늘이 급작스레 올라갔다. 현암 의 차가 약간 맛이 간 고물이긴 해도 앞차는 꽤 큰 컨테이너 트 럭이라 아무리 가속을 해 봤자 일정 이상의 속도를 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네온등이 빨려들 듯이 현암의 귀를 휙휙 스치더니 이내 두 차의 간격이 점차 좁혀지기 시작했다.

앞차가 자신들이 추적당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듯, 이리저 리 곡선으로 주행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앞차의 컨테이너 문이 열리는 게 보였다.

현암이 흠 하는 신음 소리를 냈다.

“저놈들이………….”

갑자기 운전석 쪽의 사이드 미러가 와장창 깨지면서 박살 나 버렸다. 놈들이 총질을 해 댄 것이었다.

“으윽! 이런.”

“현암 형! 놈들이…………….”

“준후야! 사정 봐줄 것 없다. 너도 창문을 열고 한 방 갈겨라!”

주술을 쓰지 않으려 했지만 지금은 자신들의 생명이 위태한 상태. 할 수 없이 준후는 창문을 열고 인장을 맺어 손에 기운을 모으기 시작했다.

“쇠로 된 컨테이너라. 그러면 뇌전!”

준후의 손에서 바지하는 기운이 뻗치더니 인드라의 뇌전 한 방이 컨테이너의 문을 강타했다. 전기 충격을 받자 컨테이너의 문이 덜컹 반쯤 열리면서 한 놈이 떨어질 것처럼 보였다. 당황했 는지 그놈이 손에 든 권총을 떨어뜨렸다. 놈이 차에서 떨어진 것 으로 생각한 현암이 순간적으로 속도를 줄였으나 놈은 준후의 공격에 큰 상처를 받지는 않았는지 낑낑대면서 몸을 올리더니 후다닥 컨테이너로 틀어박혀 버렸다.

“하하하! 맛이 어떠냐!”

준후가 신나게 웃었다. 그때였다. 준후가 손에 들고 있는, 윌 리엄스 신부가 내던지고 간 부적이 파르르 떨었다. 이제 큰길을 지나서 차는 바닷가에 있는 한적하고 썰렁한 공장 지대로 들어 서고 있었다. 트럭은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더니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아니! 어딜 갔지?”

현암이 서서히 차의 속도를 줄이면서 주위를 살폈으나 그 큰 트럭은 땅으로 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의 공장들은 문을 닫은 듯, 불빛 하나 없었다. 준후가 소리쳤다.

“부적이 반응하고 있어요. 좀비들은 틀림없이 이 근처에 있어요.”

현암은 입을 꼭 다물고 주변을 살폈다.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 으로 텅 빈 공장들의 모습이 마치 공룡의 뼈대처럼 을씨년스러 웠다. 퍽 오래전에 폐쇄되었는지 주변에는 쓰레기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간혹 반쯤 부서진 건물들도 보였다. 아주 조용했다. 

“음?”

저쪽에 서 있는 승용차의 모습이 현암의 눈에 들어왔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뭔가 수상했다. 문이 열려 있었다. 오래된 차도 아 니거니와 폐차 역시 아니었다.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는 차. 그런 차가 왜 문까지 열린 채 이런 폐허와 같은 공장 지대에 있을까? 거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차 문도 닫지 않을 만큼 급했단 말인 가 틀림없이 뭔가가 있는 듯했다.

“준후야, 저쪽으로 가보자. 아참! 너는 먼저 신부님에게 연락부터 하렴.”

준후가 카폰을 두드리려다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카폰 수화기가 잘못 놓여 있는 것을 몰랐네요. 근데 어디로 걸어야 하죠?”

그러고 보니 어디로 연락을 해야 하는지 현암도 미처 몰랐다. 수화기가 잘못 놓여 있었으니 박 신부도 연락을 하다가 포기했는지도 모르고…..

“할 수 없지. 준후야, 우리끼리라도 가자. 윌리엄스 신부님과 요원들을 어서 구해야 해. 안 그러면.”

현암의 인상이 굳어졌다.

“좀비가 될지도 몰라. 놈들의 의식이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이라면 그때는………..”

준후도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먼저 할 일이 있었다. 소금이나 바닷물을 구해 와야 했다. 현암과 준후는 천천히 주위를 살피며 혹시 매복한 좀비가 없나 경계하면서 차 에서 내렸다. 주변이 너무나 조용해 오히려 불안감이 스며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준후가 야명주를 읊어 주변을 어슴푸레 밝 히자, 현암은 차가 서 있던 으슥한 골목으로 조용히 걸음을 옮겼 고준후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통을 트렁크에서 꺼냈다.

차에는 생각대로 아무도 없었다. 현암은 왜 차가 여기 버려져 있을까 골똘히 그 이유를 생각하면서 내부를 훑어보았으나 별로 특이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현암은 차의 방향을 살피기 시작했 다. 맞은편은 커다란 시멘트 벽뿐. 언뜻 보아 무슨 창고의 벽 같 았다. 현암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갑자기 커다란 차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것은 있을 수 없 다 마술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인데. 아니, 그렇지, 마술, 마술이 분명하다! 아마 눈속임일 거야.’

준후는 물통을 들고 채 몇 발자국 가지도 않고 바닷물을 뽑아 쓴 것으로 보이는 펌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도 바닷물을 공 업용수로 썼던 모양이었다. 하긴, 이곳은 바닷가 근처의 공장 지 대였다. 물통에 욕심껏 바닷물을 채워서 돌아서는 준후를 현암 이 조용히 불렀다. 현암은 시멘트 벽 앞에 서서 준후를 향해 조 용히 손짓을 해 보였다.

“형, 왜요?”

“차는 이리로 들어갔어. 틀림없다.”

“예? 벽으로요?”

“이건 보기와는 달리 시멘트 벽이 아니야. 강철로 된 문이 틀림없을 거야.”

준후는 다가가서 벽에 손을 짚어 보았다. 역시 그랬다. 시멘 트 벽처럼 보이게 위장을 한 벽이었다. 벽에서 강철 특유의 차가 움이 느껴졌다. 그러나 문이라면 의당 홈이 나 있어야 하는데 벽 전체에는 조그마한 홈도 보이지 않았다. 준후가 고개를 갸웃하 자 현암이 말했다.

“이 벽 전체가 열리고 차가 들어간 후 문을 닫아 버린 것이 틀림없어.”

“예? 이거 전체가요? 와!”

준후는 벽을 쳐다보았다. 언뜻 보기에도 벽의 높이는 최소한 오미터, 폭은 십 미터 이상이나 되어 보였다.

“형은 어떻게 알았어요?”

“그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거든. 그런데 준후야 이 문은 도저히 나 혼자서는 열 수 없을 것 같아. 무슨 방법이 없겠니?”

“흠…..”

준후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눈을 빛냈다.

“리매를 불러 보죠. 리매들은 힘이 좋으니까.”

“그래, 좋은 생각이구나. 서두르자. 소금물은 준비됐지?” 준후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눈을 감고 리매를 불러내는 주문 을 외웠다. 늦은 밤, 공단의 으슥한 뒷골목 중간에서 두 개의 흰 기운이 안개와 같이 엉키기 시작했다.

준후가 불러낸 두 개의 리매의 기운은 점차 크게 엉켜서 구름 덩어리 같은 사람의 형상으로 바뀌어 갔다. 현암도 조용히 눈을 감고 선 채로 운기하여 내력을 오른손에 집중시켰다. 주문을 외 우고 있던 준후의 눈에 언뜻 현암의 머리 위쪽으로 흰 김 같은 것이 모락모락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현암이 내력을 최대로 돌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리매야, 이 문을 들어 올려라!”

준후가 지시하자 엄청난 크기의 두 리매는 느릿느릿 철문으로 다가가서 힘껏 밀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 밀지 말고 들어 올려!”

그러나 리매들은 계속 문을 만지작거릴 뿐 들어 올리지를 못했다. 잡을 곳이 없어서 힘을 주기가 곤란한 모양이었다.

“내가 하지. 조금 소란스럽겠지만.”

현암이 입을 꾹 다물고 앞으로 나섰다. 현암이 오른손에 힘을 모으자 손에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감도는 것이 맨눈으로도 보였다.

쾅!

현암이 기공력이 실린 주먹을 철판에 가하자 철판은 안으로 꺼져 들어갔다. 현암은 다른 곳에도 연달아 주먹을 가해서 움푹 들어간 홈을 여러 개 만들었다.

리매들과 현암이 함께 홈을 붙들고 용을 쓰자 거대한 철문에 서 우지직우지직 소리가 났다. 두께가 오 밀리라고 해도 그 정 도 크기의 철문이면 어림잡아 무게가 삼톤은 넘을 터였다. 거기 에 무슨 걸쇠로 잠겨 있는 듯, 현암의 얼굴이 붉게 변하고 리매 들이 용을 쓰느라 이상한 괴성을 지르는데도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에구구! 힘을 내요, 힘을!”

준후가 안타까워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갑자기 문에서 끽끽 쇠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안쪽에서 와장창하고 뭔가 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문이 우편함처럼 서서히 위로 들리기 시작했다.

문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현암은 그 문을 리매들에게 맡기고 재빨리 몸을 돌려 뒤로 피하면서 멀거니 서 있는 준후의 앞을 감 쌌다. 혹시 안쪽에서 놈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아까처럼 기습적 으로 총질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현암의 예상은 적중했 다. 좀비인지 사람인지 분간할 수 없는 무엇이 입이 막힌 듯한 괴성을 지르면서 쇠 파이프를 휘두르며 달려 나왔다. 그러나 그 들이 휘두르는 쇠 파이프는 안개 같은 리매의 몸에 맞고는 튕겨 졌다. 그놈들 뒤쪽에 키가 작은 외국인 남자 하나가 서 있다가 리매의 모습을 보고는 질겁을 하고 돌아서는 것을 현암은 놓치 지 않았다.

“거기서라!”

리매를 보고 겁을 먹은 것을 보니 분명 좀비는 아닌 듯했다. 현암은 준후에게 두 명의 좀비를 맡겨 두고 총알같이 몸을 날려 서 도망치려는 남자의 뒤를 따랐다. 철문으로 닫혀 있던 창고의 안쪽에는 현암이 생각했던 대로 추적한 컨테이너 트럭의 문이 활짝 열린 채 있었고 키 작은 외국인은 트럭 뒤를 돌아 도망치고 있었다. 현암은 생각이고 뭐고 할 것 없이 그자의 뒤를 쫓았다. 좀비가 아닌 이상, 그놈을 잡아야 사건의 실타래를 대강이나마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준후는 좀비들에게 바닷물을 뿌렸다. 그러나 반응이 없었다. 이 상하게 여겨 자세히 보니 그들의 입은 반창고로 봉해져 있었다.

“이런! 리매야, 저 둘을 잡아!”

준후가 소리치자 단순한 리매들은 잡고 있던 문을 놓고 좀비 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리매들이 손을 놓자 들려 있던 철문은 쇳소리를 내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고 엉겁결에 뛰어든 준후 와 좀비들을 그 육중한 무게로 창고 안으로 밀어 넣으면서 요란 한 소리와 함께 닫혀 버렸다.

“아이쿠!”

무거운 철문에 밀려 들어간 준후는 몸무게가 가벼워서인지 현 암이 남자를 추적해 들어간 쪽으로 몸을 데굴데굴 굴렀다. 준후 의 손에 들려 있던 물통의 바닷물은 거의 다 땅에 쏟아져 버렸 고리매들은 미처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문 저편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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