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세계편 2권 11화 – 왕은 아발론 섬에 잠들고 11 : 아더왕을 찾아서
아더왕을 찾아서
일행은 쉴 겨를도 없이 무거운 마음으로 도심의 호텔로 돌아 왔다. 월터 보울이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보고 수소문을 해 본 결 과, 캐드베리에서 일어났던 기사들의 유령 소동은 수습되기는커 녕 영국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고 했다. 고대 켈트족의 자취가 남 아 있는 지역에서 유령의 무리가 새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 수 는 현재 나타난 것까지만 해도 천 이상을 헤아린다는 것이었다.
일반인들이 유령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었다. 사제 단을 동원해 기도를 읊고 힘을 써서 한둘은 없앨 수 있었지만, 수많은 유령들이 말을 타고 사방을 활보하며 돌아다녔다. 공포 에 질린 사람들은 점점 내륙으로 몰리기 시작했고 유령들이 점 령하다시피 한 구역은 더 넓어져 갔다. 윌리엄스 신부는 초조하 게 말했다.
“큰일입니다. 이러다가 영국은 유령의 나라가 되어 버릴지도 모릅니다. 긴급 출동한 군대들이 필사적으로 유령들의 확산을 막으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답니다. 성공회 사제단들이 특수 그 룹을 조직해서 유령들 중 일부를 기도와 의식을 통해 제거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수는 소수에 불과해서 오히려 점점 늘고 있 다고 합니다. 전국에서 유령 때문에 놀라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람이 이십여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더 두려운 것은 유령들의 행동이 점차 난폭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박신부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큰일이군. 우리의 힘으로도 이렇게 퍼져 나가는 수많은 유령 들을 막을 수는 없어. 아아! 우리가 조금 더 빨랐더라면 코제트 가왕의 명령을 내리지 못했을 텐데. 그 많은 유령들을 한꺼번에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일까?”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겨 있던 현암이 말했다.
“글쎄요. 모두 왕의 명령에 충성을 맹세하고 또 주술로 얽혀서 평생을 살다가 잠든 자들이니만큼, 쉬운 일 같지는 않습니다. 정말 왕의 명령・・・・・・ 왕의 명령?”
뭔가 생각이 난 듯 현암이 손뼉을 치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한 가지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방법이죠, 현암 형?”
준후가 물었다.
“유령들은 아더 왕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 고 있어. 그러나 명령을 내린 것은 아더 왕이 아니야. 멀린과 비 비안의 힘을 가진 블랙서클의 코제트였지. 만약에 진짜 아더 왕 이 유령들에게 안식처로 돌아가라고 명령을 내리게 할 수만 있다면 유령들도 안식을 찾을 것이고, 영국 전역을 휩쓰는 유령 소 동도 마무리될 거야.”
윌리엄스 신부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아더 왕을 어떻게 찾는단 말이요? 아더 왕 무덤의 위 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아니에요.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준후나 승희의 능력을 최대 한 이용한다면 불가능할 것이 없어요.”
박 신부도 무릎을 쳤다.
“그것이 가장 그럴듯하네. 가장 평화적인 해결 방법이고, 제 일 효과가 좋은 방법일 것 같네. 솔직히 다른 방법이 없어. 유령 기사들이 아더왕을 믿고 저렇게 설쳐 대는 것을 보면 아더 왕도 실존 인물이었음이 분명해.”
현암이 박 신부의 말을 받았다.
“아더 왕이 실존 인물이었다면 어디선가 자취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승희야, 준후야, 수고를 좀 해다오. 이번만은 정말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윌리엄스 신부님과 월터 보울 씨는 어떤 곳이든 아더 왕이 잠들어 있다고 믿어지는 장소가 나오면, 속히 갈 수 있도록 이동 수단을 준비해 주셨으면 합니다.”
월터 보울이 말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태에 여왕님께서도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희 심령학회로 특별 메시지가 날아들었어요. 여러분에 대해서는 여왕님께서도 들어서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준후가 눈을 굴리며 말했다.
“그럼 아더 왕의 영을 소혼해 볼까요?”
박신부가 각각의 일을 분담해 주었다.
“좋은 생각이야. 이번만은 준후 네가 애써 줘야겠구나. 승희 너도 아더 왕의 위치에 대해서 다시 한번 투시해서 짚어 보도록 하고.”
“예, 알았어요.”
“연희 양은 투시한 결과에 의해서 단서가 나오면 그 단서를 해석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예, 알았어요.”
윌리엄스 신부와 월터 보울은 가능한 모든 운송편을 준비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다. 승희는 조용한 옆방으로 들어가서 투시 를 행하기 시작했고, 준후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하여 현 암과 박 신부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소혼술을 행했다. 그러나 잘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참이 지나서 준후가 땀을 뻘뻘 흘리면 서 한숨을 쉬고 말했다.
“아더 왕쯤 되는 사람이고, 또 멀린 같은 주술사를 옆에 둔 만큼 왕을 불러내는 일은 내 힘으로 안 될 것 같아요. 아직도 어떤 주술력으로 보호되고 있는 것 같은데, 무슨 힘엔가에 의해서………………”
현암이 초조한 듯 얼굴에 긴장된 빛을 띠며 말했다.
“지금 우리는 단서가 필요한 거야. 어쨌든 아더 왕과 접촉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낼 수는 없어. 음, 그럼 준후야. 아 더 왕이 아니더라도 왕 부근에 있는, 그러니까 아더 왕을 주술적 으로 수호하고 있는 영들에게 물어볼 수는 없을까?”
준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눈을 감고 한참 동안 주문을 읊고 도형을 그리기도 하며 애를 썼다.
“아더 왕은 세 영이 수호하고 있군요. 셋 모두 여자 같아요. 아! 그중 하나하고는 접촉이 될 것 같아요. 그쪽에서도 응하는 것 같군요. 어디… 해 볼게요.”
준후가 한동안 눈을 감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애를 쓰자, 바닥에 그려 놓은 도형들이 서서히 뭉개지면서 어렴풋한 형체가 도 형들이 있던 자리에 솟아나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형체가 아닌 어른어른한 모습을 한 영의 형체였다. 그 주변으로 반짝거리는 빛을 밤하늘의 별처럼 내뿜었다.
준후의 몸을 이용하는 듯 여자의 영이 준후의 몸으로 스르르 스며들었다. 준후의 입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준후 를 매개로 하여 여자의 영이 말하고 있었다.
여자의 말은 라틴어 같기도 하고 고대 영어 같기도 하여 알아 듣기 어려웠다. 박 신부는 옆에 있던 연희에게 해석을 요청했다.
“너희는 왜 평온히 잠들어 있는 아더 왕을 깨우려 하는가 하 고 묻고요. 자기는 아더 왕을 수호하는 호수의 비비안이라고 하네요.”
“비비안? 그렇다면 코제트에게 힘을 불어 넣어 주었던 고대의 마법사 아니야?”
연희가 다시 준후의 여자 목소리를 알아듣고 해석을 해 주었 다. 영은 이쪽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모양이었다.
“힘을 빌려 준 것은 내가 아니고 세상에 퍼진 힘을 나를 매개 로 하여 누가 끌어 쓴 것에 불과하다. 그 일과 나는 무관하다. 내 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아더 왕을 편안히 쉬도록 지켜 주는 일뿐이다.”
“우리는 아더 왕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
여인은 대꾸했다.
“아더를 깨우지 마라. 평안한 안식을 방해하면 안 된다.”
현암이 다그쳤다.
“아더 왕 혼자만의 안식이 중요한가? 아더 왕의 부하들은 지 금천 수백 년 동안이나 안식을 얻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이 제 일어나 떠돌고 있다. 아더 왕을 만나게 해다오. 우리만의 일 이 아니라 아더왕을 믿고 섬기는 신하들을 구해야 할 것이 아닌가?”
여인의 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박 신부를 가만히 쳐다보며 말했다.
“네 품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박신부는 베케트의 십자가를 생각해 냈다. 영이 무언가를 느낀 것 같았다.
“이것 말인가?”
박 신부가 베케트의 십자가를 꺼내어 손에 들고 약간의 힘을 넣자 십자가에서 희미한 울림이 번져 나오면서 주위에 오라가 맺혔다. 비비안이 몸을 떨었다.
“그것이군. 내가 믿고 내 선조들이 믿었던 고대의 힘을 물리 친 그 힘이로군그래. 나는 영적으로 그 십자가의 주인과 약간의 소통이 있었다. 그는 나와 믿는 바는 다르지만 좋은 사람이었지. 그래, 당신들을 믿어 보겠다. 나중에 기회가 오면 그 빛을 비추어라. 그러면 내가 오겠다. 그러나 아더 왕을 만나고 못 만나고는 당신들의 문제이다. 아더 왕은 명예를 지닌 기사가 아니면 만날 수가 없다.”
“기사?”
“아더 왕은 무인이다. 검을 쓰고 명예를 존중할 줄 아는 기사 가 아니면 아더왕을 만날 수가 없다.”
박신부와 현암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지금 이런 판국에 기사 니 뭐니 하는 명분이 필요하단 말인가. 그러나 칼자루를 쥔 쪽에 서 격식을 중시한다면 이쪽에서도 걸맞은 대응을 해야 했다. 현 암이 과장된 몸짓으로 손을 내밀어 보이며 말했다.
“내가 검을 쓴다. 내가 기사다.”
비비안이 말했다.
“그대의 출생은 어디이고 내력은 어떠한가?”
“나는 동방에서 태어난 사람이라 설명을 해도 모를 것이다. 그 러나 나도 검을 쓸 줄 알고 무예를 숭상하니, 기사 자격은 있다 고 생각한다.”
비비안이 말했다.
“판단은 내가 내리지 않는다. 왕께서 하신다. 행운을 빈다.” 박신부가 떠나려는 영을 향해 다급하게 소리쳤다.
“잠깐만! 도대체 어디로 가야 왕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인가?”
영은 노래 구절을 읊으면서 서서히 사라져 갔다.
연희가 그 구절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영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에 해석해 주었다.
“왕은 잠들어 있네. 왕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왕은 섬으 로 갔으나………… 그 섬은 물 위에는 없다네…………. 평화로움과 영 원한 안식을 위해 세 여인이 시중드는 곳….. 평화로운 아 발론에서…………… 왕은 항상 하늘을 보고 있다네…………….”
박신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발론? 음, 역시 아발론이군.”
연희가 말했다.
“아더 왕 전설에 의하면 아더 왕은 세 명의 여인들이 탄 배에 실려 갔다고 해요. 어디 보자. 제가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 두었 던 책 중에 아더왕의 마지막에 관한 전설이 기록되어 있는 책이 있었어요.”
연희가 그 내용을 읽어 주었다.
반란을 일으킨 모드레드와 아더가 마지막으로 싸워 모드레드 가 죽고 아더 또한 머리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지자, 옆에 있던 기 사인 베디비어 경이 아더 왕을 일으켜 세워 바닷가에서 그리 멀 지 않은 예배당으로 데려갔다. 아더 왕은 수많은 고귀한 기사가 죽은 것을 탄식하며 베디비어 경에게 말했다.
“내 목숨이 촌각을 다투고 있다. 내 마법의 칼 엑스칼리버를 가지고 물가로 가라. 그리고 물가에 이르거든 그 칼을 물속에 던지고 돌아와 그대가 본 것을 내게 이야기해 달라.”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베디비어 경은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아더 곁을 떠났다. 도중 에 온통 진귀한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는 칼자루를 본 베디비어 경은 엑스칼리버를 나무 밑에 숨겨 두고는 돌아와 이야기했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나를 사랑한다면 칼을 아낌없이 던져 버려라.”
베디비어 경은 다시 그곳으로 가 칼을 던지려 하였으나 이렇게 훌륭한 칼을 버린다는 것은 죄악이고 수치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다시 그것을 감추고 돌아와 왕의 명령을 수행했다고 말했다. 왕이 물었다.
“거기서 그대는 무엇을 보았는가?”
“큰 바다와 출렁이는 파도밖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왕이 말했다.
“이 불충한 자야. 너는 나를 두 번이나 배반했구나. 어서 가서 내가 명하는 대로 하라. 오래 지체하면 너는 내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 것이다.”
그제야 베디비어 경은 용기를 내어 칼을 힘껏 물속에 집어 던 졌다. 그러자 물속으로부터 팔과 손이 나타나더니 칼을 받아서 세 번 흔들고 휘두른 뒤에, 물속으로 사라졌다. 베디비어 경은 돌아와 자기가 목격한 것을 말했다.
“그곳으로 나를 데려가다오. 너무 오래 지체한 것 같구나.” 베디비어 경은 왕을 업고 물가로 갔다. 그곳에는 세 명의 귀부 인을 실은 배 한 척이 있었다. 그들은…….”
연희가 간단하게 뒷부분을 마무리 지었다.
“아더는 중상을 치료하기 위하여 아발론 섬으로 간다고 되어 있어요. 그리고 왕을 태우고 갔던 세 왕비는 한 명은 왕의 동생인 모르간 르 페이였고, 또 한 명은 북 갤리스의 왕비였으며, 또 하나는 호수의 여왕인 비비안이었다고 해요. 이야기는 원래 원탁 의 기사였던 베디비어 경이 사람을 시켜서 쓰도록 한 것이죠.”
“음, 그렇다면 세 여인이 수호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그 세 명? 그럼 아까 준후가 읽어 낸 아더 왕을 수호하고 있다는 세 여자 영은 그 세 여인의 영들이 틀림없군. 그런데 비비안의 영 이 말해 준 시를 보면 왕은 틀림없이 아발론 섬으로 간 것 같은데……”
준후가 중얼거렸다.
“왕은 아발론 섬에 잠들어 있을 거예요.”
연희가 한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아발론이라는 지명이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지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되어 있어요. 아무도…………. 아더왕이 마지막 전투를 벌였던 도버 해안 근처에는 섬이라고는 하 나도 없고 사람들은 글래스톤베리 언덕이 과거에 섬이었기에 아 발론 섬이라고 추정하고는 있지만 정확한 것은 아무도 몰라요.
“아니야, 알 수 있어.”
박신부가 말했다. 그러면서 시의 한 구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섬은 물 위에는 없다네’라고 씌어 있는 부분이야.”
“모든 사람들이 섬을 찾았겠지. 물 위에 떠 있는 작은 섬을 말 이야 그러나 이 구절을 보면 그 섬은 물 위에는 없다고 되어 있 어.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준후가 말했다.
“육지를 말하는 걸까요?”
“육지라면 섬이라고 했을 이유가 없지.”
현암이 뭔가를 알아낸 것 같았다.
“섬이라니 분명 물과 관련이 있을 거야.”
승희가 그들의 이야기를 옆방에서 들었던 듯,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달려 나오며 말했다.
“맞아. 나도 알 것 같아요. 아발론 섬은 물속에 있어.”
“물속의 섬?”
“위치가 그래. 대강, 대강 보여.”
“위치를 알아낼 수 있니 승희야?”
승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박신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모두 준비하자!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