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세계편 2권 13화 – 왕은 아발론 섬에 잠들고 13 : 에필로그
에필로그
유령 기사들은 충실하게 아더 왕의 명령을 따랐다. 명예를 중시하는 기사들이어서일까. 현암이 엑스칼리버의 빛을 비춘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방을 어슬렁거리던 유령들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들이 왜 나타났다가 사라졌는지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극소수뿐이었다.
윌리엄스 신부와 월터 보울은 현암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영국의 제일가는 국보라고 할 수 있는 신검 엑스칼리버를 손에 쥔 이국 청년에게 차마 달라는 얘기는 하지 못했지만, 그들이 무 슨 생각을 하는지는 현암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윌리엄스와 월터 보울은 현암이 엑스칼리버를 가지고 있었다 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기로 맹세했으나, 현암이 아더 왕과 약속한 대로 엑스칼리버를 가지고 바닷가로 향하는 길까지 따라 가면서 제대로 말도 못하고 얼굴이 새빨개진 채 웅얼웅얼거렸 다. 엑스칼리버를 박물관에 보존하였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다 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현암은 미소만 띤 채 아무 말 도 하지 않았다. 사실 월터 보울은 아발론 섬을 다시 탐색해 보 려는 듯했으나 세 영의 힘으로 수호되는 왕의 안식처가 다시 발 견될 가능성은 없다고 준후가 웃으며 말해 주었다.
드디어 목적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아더 왕이 마지막 전투를 치렀다고 하는, 도버 해협이 보이는 그 들판, 옛날 이 자리에 작 은 암자가 있었을 것이고 그 부근에서 아더 왕은 마지막 숨을 쉬 면서 베디비어 경을 시켜 칼을 물에 버리라고 했을 것이다. 윌리엄스 신부가 상기된 얼굴로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엑스칼리버를 힐끗 쳐다보고 탄식을 올렸다.
“오, 마이 갓.”
월터 보울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 주저하다가 심각하게 현암에게 물었다.
“칼을 진짜 물속에 던질 겁니까?”
현암이 웃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약속은 약속이니까.”
월터 보울이 뭐라고 더 말을 늘어놓으려는 것을 무시하고 현 암은 뚜벅뚜벅 암자가 있던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마침 저녁 해 가 저물고 있었다. 현암은 손에 들고 있는 미끈한 칼을 훑어보았 다. 화려하고 기품이 있는 정말로 훌륭한 칼이었다. 그러나 주인 에게 돌려줄 시간이 왔다.
현암은 기합 소리를 길게 넣으면서 있는 힘을 다해 엑스칼리 버를 허공에서 몇 번 휘둘러 보았다.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엑스 칼리버는 현암이 휘두르는 데에 따라 화려한 무늬를 그렸고 현 암도 칼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마음에 들었다. 검술을 익힌 사람 에게 좋은 검만큼 탐나는 것이 있을까? 하지만 현암은 오히려 몇 몇 검법을 마지막으로 해 보려던 생각을 버렸다.
“이러면 안 돼. 나마저도 욕심이 날 것 같네.”
현암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팔을 크게 휘둘러 엑스칼리버를 물속으로 던졌다. 순간 윌리엄스 신부와 월터 보울은 자신도 모르 게 헉 하는 신음 소리를 냈다. 칼은 길게 호선을 그리며 손잡이 를 아래로 향한 채 물 위로 떨어져 내려갔다. 그 순간 물속에서 뭔가 번쩍하는 것이 보였다. 현암도, 윌리엄스 신부도, 월터 보 울도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전 설대로 바다에서 요정의 손이 나와서 엑스칼리버를 아더 왕에게 돌려주러 간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칼이 물에 빠지면서 저녁 햇살에 반사된 것일까?
현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월터 보울과 윌리엄스 신부는 털썩 주저앉아 출렁거리는 바다를 멍한 눈으로 하염없이 바라보 고 있었다. 현암은 아발론 섬의 산호의 빛을 생각하며 희망으로 돌아오고 싶었다던 아더 왕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왕이여. 편히 잠드소서…………….’
현암은 바다를 향해 미소를 보내고는 몸을 돌렸다.
등 뒤로 현란한 빛을 뿜어내는 저녁 해가 엑스칼리버처럼 바 닷속으로 서서히 아주 서서히 잠겨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