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외전 14화 – 준후의 학교 기행 3 : 빗나간 자기소개

퇴마록 외전 14화 – 준후의 학교 기행 3 : 빗나간 자기소개


빗나간 자기소개

“자, 오늘은 새로 온 친구가 있어요. 여러분 모두 사이좋게 지내야 해요.”

새로 배정받은 반의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교실에 낭랑하게 울 려 퍼졌다. 3학년 4반. 이제는 준후의 반이다. 준후는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따라 교단 위에 섰다. 사실은 많이 긴장했지만 티 내지 않으려 용을 써서 이 정도인 셈이다. 학급 안에는 삼사십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빼곡히 앉아 한결같이 준후를 쳐다보고 있었는 데, 준후는 그 눈빛들이 부담스러워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준후는 속으로 생각했다.

‘뭘 이리 쳐다보지? 병아리 떼들처럼. 쳐다보는 게 당연한데도 속으로는 불만스럽게 투덜대는 준후다. “자, 여기 새로운 친구의 이름은 장준후라고 해요.”

선생님이 말하자 아이들은 까르르 웃기도 하고 박수도 치고 재잘 재잘 떠들기도 하면서 시끄럽게 지껄여댔다. 학급 중에서도 자유 로운 분위기의 반이었다. 하지만 준후는 너무 긴장한 탓에 아이들이 티 없이 맑고 장난스럽게 떠드는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아니, 알아들을 필요도 없었다.


항상 본성을 억제하고 참는 훈련만 했으며, 숭고한 의지와 질서만 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살아온 준후다. ‘학급’, ‘학교’라는 단어에 보 다 굳건한 질서와 엄숙함 같은 기대감이 자연스레 쌓였을 수밖에 없 다. 그런 준후의 기대가 아이들의 ‘와’ 소리 한 방에 와르르 허물어졌 다. 말로는 배울 것이 없다고 큰소리쳤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은근히 기대감을 가졌었다. 그러나 ‘보통의 아이’들이 이 정도로 무질서하 고 혼잡하며 제멋대로일 줄은 예상도 못 했다. 준후에게 악의는 느 껴지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소음이나 병아리 떼가 지저 귀는 것처럼만 들려왔다.

‘의미도 없고, 자제도 모르고. 여기 온 게 잘한 일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재촉했다.

“준후야, 뭐 하고 있어? 친구들하고 인사해야지. 자기소개도 하고.” 

선생님이 말하자 교실 곳곳에서 웃으며 소리치는 아이들이 몇 있었다.

“자기소개해야 돼!”

“노래 한 곡 해 봐!”

“장기 자랑!”

준후는 기가 막혀서 눈을 약간 치켜떴다.

‘도대체 사람과의 첫 대면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생각 없는 어 린애들 같으니라고..’

자기와 똑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준후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 했다. 그렇다고 현암의 당부를 잊은 것은 아니다. 너무 자기식으로 소개하는 것은 확실히 이상할 것 같고…………. 그렇다고 저렇게 생각 없는 애들을 똑같이 흉내 내기도 싫었다. 이윽고 준후는 꼿꼿이 선 채 최대한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장준후다. 앞으로 잘해 보자.”

준후 나름대로는 그들을 친구 대접해 준다고 한 말이었다. 낮추지 도 높이지도 않고 담담하게 중용의 도를 지켜 행하려 한 행동이다. 그러나 그건 준후 혼자 생각일 뿐이다. 중용의 도니 뭐니 설명해 줘 도 모를 아이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담담한 미소는 ‘비웃 음’으로, 꼿꼿한 허리는 ‘시건방짐’으로, 앞의 인사말도 생략한 채, ‘장준후입니다’도 아닌 ‘장준다’는 ‘막 나가는 녀석’으로밖에 보이 지 않았다. 순식간에 교실 내 분위기가 몇 도나 낮아진 것처럼 싸해 졌다.

“아이, 튀는데?”

“쟤, 좀 노는 애 같지?”

“그런가 봐.”

“생긴거랑 다르네.”

여기저기서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청각이 남보다 예민한 준후에게는 그런 소리들도 다 들렸다. 그러나 준후는 여기서 말하는, ‘자식’도 아닌 ‘짜아식’이 뭔지도, ‘노는 것’이 뭔지도 알 수 없었다. 차라리 느낌만 믿었다면 좋지 않은 분위기임을 알 수 있었 을 텐데, 좋은 머리 때문에 워낙 어휘에 민감하다 보니 진의를 파악 하기 전까지는 단정 내리지 않는 게 버릇이 돼서 오해가 생기고, 그 골은 깊어져만 갔다.

눈치가 없어서나 생각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너무 지나쳐서 오히 려 문제가 된 셈이다. 상대의 의도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었기에 준 후는 아이들의 비아냥거림 속에서도 그냥 뻣뻣하게 서 있을 뿐이었 다. 어쩌면 뭔가 묘해지는 분위기가 은근히 두려워서, 기가 질린 속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힘을 주어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허나 반대로 아이들에게는 더 악영향을 주었다. 아이들에게는 ‘뻗대는 것’으로만 보였다.

결국은 당황한 선생님이 준후에게 말했다.

“그, 그게 아니라…………. 좀 더 부드럽게 소개를…………”

선생님은 준후를 타이르려 했으나 준후는 고개만 살짝 돌린 채 선 생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미동도 없었다. 물론 준후는 그냥 존 경하는 스승님의 말씀에 최대한 경의를 표하며 집중하기 위해 눈을 크게 뜨고 똑바로 본 것이다. 허나 일단 선입견을 가지게 된 선생님 에게 그 행동은 ‘선생님에게도 눈을 똑바로 뜨고 대드는 아이로 밖에 비춰지지 않았다. 더구나 가뜩이나 요즘 애들이 드세고 다루기 어려워진다는 고민을 해 오던 마음 약한 여선생님에게는 충격적으 로 받아들여졌다. 그건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선생님 눈 똑바로 쳐다보는 것 좀 봐. 전학 온 첫날부터.”

“이야, 대단하지? 짱 되려나 봐.”

“휴・・・・・・ 생긴 건 그렇지 않은데.”

“원래 저런 애들이 빗나가면 더 무서운 거야.”

“무섭다.”


‘어서 말씀해 주세요. 가르침을 내려 주세요.’

준후는 거의 식은땀까지 흘리며 선생님의 말을 들으려 애썼다. 다 만 입을 열지는 못했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니 현암이 신신당부한 대로 아예 입을 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나름 최선을 다했으나, 어디까지나 ‘나름’이었을 뿐이다. 노력과 결과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고개 돌려.”

선생님이 큰마음 먹고 엄하게 말하자 준후는 즉시 ‘말씀’대로 고 개를 돌렸다. 그러나 동작이 하도 빨라 이 행동조차도 선생님에게는 작은 굴욕감을 안겼을 뿐이다.

“됐으니 저 뒤에 있는 빈자리에 가서 앉아, 장준후.”

선생님도 아까보다는 훨씬 가라앉은 목소리로 준후에게 말했다. 준후는 조금 힘들었지만, 설마 고개 돌린 것 하나로 말씀이 끝났는 지 의심스러워졌다. 준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학급 내의 아이들도 활기차게 재잘대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모두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자 기만 바라보고 있다. 이상함과, 불편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허나 준 후는 이해하지 못했고, 자신에게 뭔가 부족함이 있어 이렇게 된 것 이라고 오해했다.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는데 내가 너무 가만히 있었나?’

준후는 칠판 앞으로 가서 분필을 집어 들고 칠판에 장준후라는 자 기 이름 세 글자를 한자로 썼다. 보는 아이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손 이 빨랐고, 글자도 아이들이 흔히 그러듯 대충 그린 듯한 한자가 아 니라 서예가가 뽑아 놓은 것처럼 당당하고도 멀쩡한 필체였다. 그러 나 한번 싸해진 다음이라 아무도 그것을 보고 감탄하지 않았다. 오 히려 아이들 몇이 더 수군거렸다.

“뭐지, 저거? 잘난 척하니, 쟤?”

“세상에 완전히 지 멋대로야.”

선생님조차 기가 막혀서 가만히 있었는데 준후는 세 글자를 쓰고 나서 다시 한번, 준후로서는 최대한 용기를 쥐어 짜내어 말했다.

“나 장준후다. 잘 부탁한다.”

준후는 부끄러웠지만 그 말까지 하고 나서야 쪼르르 달려가 선생 님이 말한 자리에 앉았다. 분위기는 이상했지만 자기는 잘못이 없었 다. 당부대로 입을 함부로 놀리지도 않았고 주술이나 그런 것을 보 이지도 않았으며, 선생님의 말대로 행동했으니까. 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것은 준후 혼자 생각이었고, 생각이 너무 깊어서 도리어 이상 하게 되었다는 것은 깨닫지 못했다.

준후는 애써 최대한 스스럼없는 태도로 앉아 있으려 했지만 보고있는 선생님이나 아이들은 그렇지 못했다. 선생님은 어떻게 해야 저 아이의 기를 꺾어 고분고분하게 만들 수 있을지 걱정했고, 드센 아 이들은 준후와 자기 중 누가 셀까 견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음 약 한 아이들은 불안에 빠졌다. 준후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 옆에 앉아 있던 여자아이는 울상이 되었다.

준후는 내색하지 않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못났나? 울고 싶을 정도로?’

무서워서 그랬다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으니, 나온 결론이 그것뿐 이었다. 준후가 속으로 한숨을 쉬는데, 여자아이는 준후에게서 조금 이라도 떨어져 앉으려는 듯 의자를 삐걱대며 끌었다.

‘그 정도로 내가 못생겼니?’

은근히 마음에 상처를 입은 준후는 흘낏 옆으로 눈을 돌려 보았다. 원래 수줍음도 많고 눈치 빠른 준후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른 들 사이에 있을 때에 한해서다. 어른들만으로 꽉 차 있는 해동밀교 안에서 후는 자신의 위치를 찾는 법을 익혔고, 박 신부와 현암도 따지고 보면 윗사람들이었기에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자기 와 같은 나이의 아이들 안에서는 어떻게 해야 좋은지 알 수 없었다. 보통 아이였다면 그냥 마음대로 했을 테고 오히려 별 탈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격한 규율과 수련 속에서 살아온 준후는 뭔 가 합리적으로 파악하거나 방법을 찾으려고 애썼는데, 그게 더 악영 향을 미쳤다. 친구고, 동격이니까 밀교에서 보았던 동일 항렬의 승 려들 간의 관계를 비슷하게 흉내 내면 될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 외 에는 뭘 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아무것도 모른 채 모험하는 기분이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준후는 억지로 용기를 내고 있 었다. 준후는 당당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다른 아이들 눈에는 절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겠지만…………….


준후가 다시 똑바로 옆의 짝을 바라보자 여자애는 울상 짓는 수준 을 넘어 정말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어 고개를 홱 돌렸다. 준후의 거리 낌 없는 행동이 무서워서 그런 것이겠지만 준후의 입장에서는 자기 를 피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못났어도 나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사실 준후는 못난 것이 아니라 지나칠 정도로 잘생겼다. 그런 아이 가 무섭게 구니까 더 무서워서 그런 것인데, 짝의 행동을 완전히 오 해한 준후는 속이 상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가지고 그렇게 적개심을 드러내다니, 여자는 역시 요물……………’

속으로 화를 조금 내다가 준후는 화들짝 스스로 놀라 내심 마음을 다잡았다.

‘아, 아니, 그런 생각하지 말랬지. 그냥 관두자. 아무 말도 말자.’ 준후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은 준후 때문에 싸해진 분위 기를 어떻게든 수습해 보려는 듯 웃으며 수업을 진행해 갔다. 준후 도 눈을 똑바로 뜨고 수업에 집중하려 애를 썼다. 다행히도 첫 시간 은 도덕 시간이었다. 일상의 도덕 개념은 준후가 다른 아이들보다 몇천 배는 강한 편인데다 아는 것도 많은지라, 준후는 비교적 쉽게 첫 시간을 넘길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쉬워서 의아할 정도였지만, 준후는 나름 ‘쉬운 데 진리가 있는 법이라 여기며 그 문구를 수백 번이나 다른 자의적 의미로 해독해 가며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