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외전 3화 – 그들이 살아가는 법 3 : 마음에 뚫린 구멍

랜덤 이미지

퇴마록 외전 3화 – 그들이 살아가는 법 3 : 마음에 뚫린 구멍


마음에 뚫린 구멍

낡고 오래되었지만 넓은 집이었다. 물론 처음 본 대로 뜰에는 잡 초가 우거지고 여기저기 나무가 시커멓게 말라 죽어 흔적만 남아 있 었다. 그런 고사목 그림자가 곳곳에 드리워져 약간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라 보통 사람들 같으면 겁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 세 사람에게 그런 것은 전혀 상관없었다. 오히려 현암은 생각보다 아늑하다고 여겼다.

박 신부는 시간이 없어 집을 돌보지 않았노라 했지만 먼지가 소복 이 여기저기 쌓여 있고 뜰이 황폐해졌을 뿐 특별히 어지럽혀 있지는 않았다. 박 신부의 깔끔한 성품이 그대로 반영된 듯 가구나 집기들 이 잘 정돈되어 있어서 현암은 오히려 단아하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준후를 안은 박 신부는 복도 한쪽 구석의 방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 다. 그리고 조용히 문을 연 다음 안을 들여다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그나마 여기는 그럭저럭 쓸 만하군. 원래 손님방이었던 곳인데 침대도 있고 방도 넓으니 일단 여기서 지내도록 하게.”

현암이 안을 들여다보니 방 안에는 낡고 커다란 철제 침대가 벽에 면해 붙어 있었고 몇 개의 서랍장이 있을 뿐 휑하니 넓기만 했다. 박 신부는 침대에 쌓인 먼지가 쑥스러운 듯 말했다.

“내가 시트를 새로 가져다줌세.”

“괜찮습니다.”

“그래도 먼지가 많이 쌓였는데…..”

현암은 또다시 입술이 뒤틀린 미소를 지었다.

“바위 위나 맨땅바닥에서도 잘 잤습니다. 이 정도면 저에겐 호화 판객실인 셈이죠.”

박신부는 두말하지 않고 대답했다.

“새 시트 가져가게. 적어도 여기서 지내려면 그렇게 대강 지낼 생각은 말게.”

현암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은근히 걱정이 되는 면 이 있었으나 차마 박 신부에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현암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냥 운기조식이라도 하면서 밤을 새 버릴까. 아니, 그것도 좋은 방 법은 아니고・・・・・・ . 지금은 나도 조금 쉬어야 하겠는데. 괜찮을까…………….. ‘

그런 생각을 하며 박 신부에게 받은 시트를 침대 위에 깔고 누웠 다. 박 신부는 잘 갖춰지지 않은 방이라 했으나, 이런 큼지막한 침대 에 누워 보는 것이 몇 년 만인지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잠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현암은 몸을 벌떡 일으키며 생각했다.

‘아니, 그래도 안 돼. 혹시라도…………?’

현암은 허리띠를 풀었다. 그리고 그 허리띠로 자신의 오른팔을 허리와 함께 감아 벨트를 조인 후에야 자리에 누웠다. 그제야 조금 안 심할 수 있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박 신부는 돌연 들려온 굉음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쟁에서의 경험 때문일까. 굉음이 마치 벙커가 포탄에 맞아 부서지는 소리와 흡사해서 더 놀랐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깨어 보니 누워 있는 곳은 자신의 집이었다. 그리고 박 신부의 옆에서는 준후가 놀라 벌떡 일어나는 참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박 신부가 황급히 안경을 찾아 쓰자 준후가 가만히 있다가 손가락 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켜 보였다. 처음에 박 신부는 그게 무슨 뜻인 지 몰랐으나 생각해 보니 아까 현암을 안내해 준 방이 있는 방향이 었다. 박 신부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잠옷 바람으로 복도를 지나 현암의 방으로 다가갔다.

‘무슨 사고가 생겼든지, 가스 폭발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대체 무슨….’

생각하며 급히 문을 열자 뜻밖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현암은 침 대 위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꼭 망나니 앞에 목을 늘어뜨린 사형수 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가 누워 있던 침대 옆 한쪽 벽은 완 전히 부서져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곳에서는 아직도 흙먼지 가 푸슬푸슬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보기에는 포탄 같은 것이 날아 와 터진 것 같았다. 그러나 벽이 무너져 있는 것 외에 방 안은 차분히 정돈된 상태였다. 당연히 벽을 뚫고 날아든 물건 같은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건……..’

짐작이 갔지만 믿을 수가 없어서 박 신부는 현암에게 물었다.

“현암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박 신부가 영문을 알 수 없어 묻자 현암이 갑자기 흐흑 울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자네, 다치지 않았나?”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설명을 해 주겠나? 이…… 자네 정말 괜찮은건가? 바로 옆에 그런 큰 구멍이 뚫렸는데….”.

현암은 죄인처럼 고개를 꾸벅거리고 울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런 겁니다.”

그때 박 신부의 눈에 끊어진 채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기다란 물체 가 들어왔다. 현암의 허리띠 같아 보였다. 그가 의아해서 눈을 굴리 자 고개를 푹 숙인 현암이 말했다.

“… 제 공력이란 게 이런 겁니다. 그・・・・・・ 그래서 ・・・・・・ 여기 머물지 않으려 한 겁니다. 제가 악몽을 꾸고・・・・・・ . 저도 모르게 팔을 휘두르면 이런 일이・・・・・・ .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현암이 울며 다시 말꼬리를 흐리자 박 신부는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갔다. 현암의 허리띠가 왜 바닥에 떨어졌는지도 알 것 같았 다. 오른팔에 도는 공력이 주는 힘을 주체할 수 없는지라, 현암은 행 여 자신이 잠자다 몸부림이라도 칠까 봐 팔을 묶어 둔 것 같았다. 그 러나 소용없었다. 무슨 악몽이라도 꾸었는지, 현암이 자다가 공력을 돌린 채 오른팔을 휘두르자 허리띠는 끊어져 버렸고 잠결의 몸짓 한번에 벽이 완전히 무너져 버린 것이다.

박 신부는 놀랍다기보다는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현암이 말했다.

“이…… 이건 능력이 아닙니다. 저주죠. 그러니・・・・・・ 저 같은 놈을집에 두시면 안…….”

박 신부는 아무 말 없이 현암 옆으로 걸어가 그의 어깨를 안으며 말했다.

“괜찮네, 현암 군. 괜찮아.”

“신부님, 죄송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원래대로…”

“괜찮네…….”

박 신부는 굳게 현암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현암은 울음을 터뜨 리며 아까 준후가 그랬던 것처럼 박 신부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한 없이 울어 댔다.


현암은 그날 밤을 앉아서 뜬눈으로 지샜다. 그러고는 아침이 되자 박 신부에게로 왔다. 박 신부는 간밤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는 낮으로 맞이했다.

“왜 그러나?”

현암은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나가봐야겠습니다.”

박 신부는 안경을 치켜 올리며 빤히 바라보았다.

“혹시 떠나 버리려는 것 아니지?”

현암은 정색을 했다.

“저, 절대 아닙니다. 제가 한 게 있으니, 어떻게든 고쳐야 하니까………… 자재를 구하려고요.”

“인부를 부르면 되지 뭘 그러나?”

“아닙니다. 제가 꼭・・・・・・ 제가 꼭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게 해주십시오.”

“아니, 자네, 벽도 쌓을 줄 아나?”

현암은 수줍은 듯 살짝 웃었다.

“막일이라면 안 해 본 게 없습니다. 그리고 제 성격이 좀 꼼꼼해서…… 꽤 합니다.”

박 신부는 굳이 현암에게 그런 일을 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허나 책임감을 만족시켜 주려는 마음에, 또 이렇게라도 붙잡아 두려는 생 각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러게나.”

박 신부의 말을 듣고 나간 현암은 종일 쏘다니며 막노동 시장을 찾 아 나섰다. 꼬박 하루를 인력 시장이 열리는 장소를 찾는 데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현암은 커다란 라면 상자 하나와 버너, 코펠 이든 등산용 보퉁이 하나를 사가지고 왔다. 박 신부는 그것을 보고 물었다.

“자네, 그게 다 뭔가?”

“제 식량입니다.”

“아니, 자네 왜 그래. 식사는 함께…….”

현암은 고개를 저었다.

“신부님은 회 좋아하시잖아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도 그렇고 준후도 그렇고 그런 것은 냄새도 못 맡습니다. 그렇다고 신부님더러 드시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요. 식사는 아무래도 당분간 따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편이 저도 편하고요.”

“이보게, 현암 군. 아무리 그래도 자네 라면만 먹으면…….” 

“절대 몸 축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현암이 고집스레 말하자 박 신부도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현암은 벽에 구멍이 뻥 뚫린 방에 들어앉아 버너와 코펠로 라면을 끓여 먹 었다. 박 신부가 보기에는 고집스럽기도, 또 한없이 궁상맞아 보이 기도 했지만 뭐라 말을 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박 신부의 고민거리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입이 짧은 준후도 현암의 모습을 보더니 슬쩍 말하는 것이다.

“저, 아저씨……. 아니, 신부님이라고 하셨죠? 신부님.”

“왜 그러니, 준후야.”

“저도 저런 거 하나 사주세요.”

준후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가리킨 것은 현암이 궁상스레 라면을 끓여 먹는 버너와 코펠이었다. 그러자 박 신부는 말했다.

“준후야, 너는 나와 같이…………… 밥을 먹으면 되지 않겠니?”

준후는 야멸차게 고개를 저었다.

“속이 뒤틀려요.”

그 말에 박 신부는 다소 충격을 받아 울적한 표정이 되었다. 결국 은 준후가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박 신부는 준후에게도 버너와 코펠을 사주었다. 돌아와 보니 준후는 부엌 찬장에서 밀가루 한 봉지를 찾아 꺼내 놓고 있었다.

“그걸로 뭐 하려고?”

“먹으려고요.”

준후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박 신부는 어이가 없어 가만히 두고 보 았는데 준후는 꽤 능숙하게 그릇을 찾아 밀가루를 넣고 거기다 물 을 부어 반죽을 했다. 아이답지 않게 손은 날렵했지만 넣는 것이라 곤 밀가루와 소금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다. 박 신부 는 기가 막혀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그런 뒤, 준후는 박 신부가 사 온 버너의 상자를 열어 보고는 여기저기 샅샅이 훑어보더니 설명서 를 집어 들었다. 곧 준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박 신부가 사 온 버너 는 하필 수입품이었는지 영어로 씌어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기호죠?”

박 신부는 조심스레 말했다.

“그건 다른 나라 글자란다. 영어야, 영어.”

“영국 글자인가요?”

“응, 원래 따지자면 그렇지만…. 이건 미국산인가? 아니, 나도 봐야 알겠는데.”

“됐어요.”

준후는 토라진 듯했다. 자기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에 자 존심이 상한 듯 눈에서 불꽃이 이는 것 같았다. 아이답지 않게 엄청 나게 고집스러운 표정이었다. 준후는 뚫어지게 몇 분 동안 버너의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설명서의 그림만 보았는데도, 곧 현암의 맞은 편 방으로 쪼르르 달려가서 버너를 놓고, 연료를 주입하고 불을 붙여 피웠다.

불을 만지기에는 아직 어린 것 같아 박 신부는 걱정이 되었다. 그 래서 따라가 지켜보았지만 준후는 능숙하게 버너를 다뤘다. 그런데 그 버너는 가스버너가 아니라, 오래된 구형 석유버너라서 여러 번 아래에 달린 피스톤을 움직여 펌프질을 해야 했다. 그것을 몇 번 하 다가 준후는 짜증 나는 듯 버너 위에 코펠 뚜껑을 프라이팬 대신 올 려놓고는 손을 기묘하게 움직였다.

박신부가 무엇을 하나 보고 있었더니, 손끝에서 불꽃이 일어나 코 펠과 버너를 한꺼번에 덮었다. 물론 코펠 뚜껑을 데울 정도의 작은 불이었고, 이미 해동밀교에서 준후가 손에서 이상한 기운들을 뿜어 내는 광경을 목격한 바 있지만, 다시 그런 힘을 보니 새삼 놀라웠다. 그것도 밀가루 부침개를 부치기 위해 주술을 쓰는 셈이니 박 신부는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었다.

박 신부가 그러건 말건 준후는 뚜껑이 달궈지자 자신이 반죽한 밀 가루를 얹어 부침개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놀랍고 다 른 한편으로는 귀여웠으나, 한편으로는 불쌍하기 그지없었다.

‘이 아이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을까…………’

식사를 하는 모습 하나로 이제까지 이들의 생활을 알 수 있을 듯했 다. 박 신부는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혼자 거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초라한 모습으로 식기를 찾아 자

신의 식사를 준비했다. 우울하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러면・・・・・・ 예전과 다를 것이 없잖아……”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