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외전 4화 – 그들이 살아가는 법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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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외전 4화 – 그들이 살아가는 법 4


함께 살아가는 법

그렇게 세 사람은 한 지붕 밑에서 생활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제각 각 생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준후는 밤이 되면 서글퍼지는지. 겨우 모습을 드러내 박 신부의 옆에서 잠을 잤다. 하지만 눈을 뜨자 마자 도둑고양이처럼 사라져 아침이면 언제나 보이지 않았다. 현암 은 며칠 동안 어디에서 일이라도 하는지, 새벽 일찍 동도 트기 전에 나갔다가 밤이 되어서야 들어오곤 했다. 그리고 올 때마다 시멘트며 벽돌들을 한 짐씩 들고 와 쌓아 놓았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손수 시 멘트를 이겨 자기가 무너뜨린 벽을 메우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거 의 따로 생활했다. 현암은 여전히 방에 들어앉아 버너로 라면을 끓 여 먹었고, 자다가 벽을 부순 일이 마음에 계속 걸리는지 이제는 침 대를 방 한가운데 놓고 잠을 잤다. 그렇게 하면 팔을 휘둘러도 허공 을 칠 뿐이니 큰 문제는 없다 생각했다. 현암 자신도 그때 일을 떠올 리며 더욱 조심해서 비슷한 일은 생기지 않았다. 준후는 주술까지 사용해서 부침개를 부쳐 먹다가 그것도 지쳤는지 버너만 곱게 상자 에 넣어 두고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박 신부는 답답했다. 한 지붕 밑에 있는 두 사람이 저렇게 궁상을 떨고 있는 것도 마음이 아팠고, 걱정되기도 했다.

박 신부는 외출하여 과일 가게에 들렸다. 일단 사과를 두 상자 사가지고 집에 들여놓았다. 그리고 밤늦게 현암이 돌아오자 쌓여 있는 사과상자를 가리켜 보였다.

“이건 괜찮지?”

현암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미안해했다.

“감사합니다. 저도 돈을 버니 이런 것은 제가 준비했어야 하는 건데.”

박 신부는 고개를 저었다.

“자네가 건실하게 생활하는 것은 보기 좋네만・・・・・・ 그보다는 자네, 수련이란 것을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말에 현암은 고개를 숙이며 입을 다물었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수련이란 건 오래 하면 할수록 좋은 것 아니던가. 내력이나 공력 이 뭔지 나는 잘 모르겠네만 오래 연마할수록 도움이 되면 모를까, 나빠질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현암도 긍정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박 신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조만간 자네 힘이 필요할지도 모르니 괜한 곳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수련에 열중하는 것이 어떻겠나?”

현암은 곧 고개를 끄덕이며 넌지시 물었다.

“뭔가 찾으셨습니까?”

“글쎄……. 아직 단언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큰 힘이 느껴져. 뭐 랄까, 상대가 물리적인 힘을 구사하는 것 같아서 아무래도 나 혼자 만의 힘으로 상대하기보다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 벽을 고칠 때까지만 기다려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면서 현암은 계속 마음에 걸리는 듯 반 정도 쌓인 벽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박 신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재료도 다 갖추 어져 있는 상태에서 저 정도 구멍을 메우는 것은 반나절도 걸리지 않을 일이었다. 그러나 현암은 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회를 이기고 벽돌을 쌓는데, 한 번에 쌓는 것이 아니라, 한 장 한 장 차근차근 살 펴가며 쌓는 것 같았다. 그러기에 며칠이 지났음에도 구멍을 반도 메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현암 스스로가 벽돌 한 장마다 마음의 지표를 하나씩 새겨 새로이 쌓아 나간다는 뜻일지 모 른다. 현암이 쌓는 것은 벽이 아니라 현암의 새로운 각오일 것이다. 자기가 만든 구멍을 메우려는 양심의 가책에 의한 행위라기보다, 뭔 가 새로운 길을 걷기 전 행하는 나름의 의식일지도 모른다. 박 신부 는 일도 급했지만 현암의 마음을 소중히 여기는 생각에 말없이 고개 를 끄덕여 주었다. 현암도 말했다.

“일단 일은 나가지 않겠습니다. 가급적 빨리 쌓도록 하죠.”

“그렇게 하게나. 서두를 필요는 없네.”


그다음 날은 박 신부가 외출을 했고, 현암은 일을 나가지 않고 하 루 종일 집에 있었다. 현암은 벽돌 한 장을 집어 그것을 삼십 분이 넘 도록 가만히 움직이지도 않고 바라보았다. 이윽고 천천히 움직여 벽 돌 위에 지긋이 올려놓으며 벽을 쌓아 나갔다. 그런 식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벽을 쌓아 메우는 바람에, 아침 일찍 일어나 시작했는 데도 점심때가 넘도록 한 줄도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장 한장벽 돌을 쌓는 현암의 이마와 등, 그리고 온몸에는 힘들다힘든 노동을 하는 것처럼 땀이 흠뻑 배어났다. 벽돌 몇 장을 쌓는 데 하루 온종일을 보낸 것도 모자라, 지쳐 탈진할 지경이 되었다. 무겁거나 힘들어 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 몸까지 피곤해진 것이다.


“어어……!”

지쳐 잠들었다가 문득 잠에서 깬 현암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깜 짝 놀라서였다. 돌아보니 자신의 옆에 박 신부가 등을 돌린 채 누워 태연스레 코를 골고 있다. 침대를 방 한가운데로 옮겨 놓아 더 이상 벽을 부수지는 않았고, 지난번에 애꿎은 허리띠만 끊어 먹은 뒤로는 어지간한 것으로 묶어 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동안 그 냥 잠을 잤었다. 한데 박 신부가 자기 옆에 누워서 자고 있을 줄은 상 상도 못 했다.

“시・・・・・・ 신부님! 뭐…………… 뭐 하시는 겁니까?”

현암이 놀라 말하자 박 신부는 잠에서 깬 듯 눈을 부비며 고개를 조금 들고 말했다.

“어, 현암군. 왜 그러나?”

“신부님! 왜 제 옆에 누워 계신 겁니까?”

“어? 글쎄. 그냥 그러고 싶어서.”

“신부님. 제 옆에 왔다가 제가 또 팔을 휘두르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대체 왜…….”

그러자 박 신부는 태연히 웃으며 몸을 일으키고 안경을 찾아 썼다.

“무슨 소리를 하는가? 위험하다니 뭐가?”

“신부님, 제・・・・・・ 제가 주먹으로 벽 부순 거 보셨지 않습니까?”

“응. 봤지.”

“그런데 어떻게 제 옆에…………….”

박 신부는 태연히 말했다.

“안 하지 않았나?”

“예?”

“안 하지 않았냐고. 난 벽이 아니거든.”

“그래도 그건 너무 위험한….. 저 그러면 여기 못 있습니다.”

“어허, 현암 군. 그게 아니야.”

박신부는 한숨을 쉬더니 차분히 말했다.

“자넨 자네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고 있어. 자네는 그리 분별없 는 사람이 아니야. 비록 잠이 들어 아무것도 모른다 생각할지 모르 지만 결코 그렇지 않아. 자네는 힘을 통제할 줄 아는 사람이야. 난 그 렇게 믿었네만 자네가 그걸 믿지 않는 것 같아. 그래서……”

박 신부는 그래서 현암이 깊이 잠들었을 때 일부러 옆에 누워 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현암도 박 신부의 의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 었다. 마음이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시・・・・・・ 신부님. 허나 그러다가 혹시라도 어떻게 되면…”

“어허. 나는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을 걸 알았다니까? 내가 자네 는 아니지만 분명 안 그렇다는 걸 아는데, 왜 자네가 몰라? 왜 자네 는 스스로를 못 믿지?”

박 신부의 말에 현암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러나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박 신부는 현암 스스로를 깨우쳐 주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 다고도 볼 수 있다. 한 방에 담벼락을 박살 내는 현암의 주먹이 잠든 사람의 몸에 떨어졌을 때,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는 상상만 해도 끔 찍했다. 그러나 박 신부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듯했다. 아 니, 아예 그럴 리가 없다고 믿은 것이 분명했다. 말만 그렇게 하고 속 으로는 불안해하며 자리를 지킨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코까지 골며 편하게 잠들 수는 없다. 정말 현암을 신뢰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박 신부는 모험을 한 것도, 목숨을 건 것도 아니다. 다만 현암이 조용히, 그리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행동으로 보여 준 것이다. 현암의 눈에서 눈물이 솟구쳤다.

“시・・・・・・ 신부님. 저는.”

“어허.”

박 신부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다시 자리에 누웠다. 현암은 눈 물을 닦으며 몇 번이고 뭐라 말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박 신부가 말했다.

“아직 일러. 자네도 좀 더 자게.”

“저…… 저는.”

“더자.”

“예. 알았습니다.”

현암은 쭈뼛거리며 박 신부의 옆에 누웠다. 그러자 박 신부가 조용히 말했다.

“자네 스스로를 좀 더 믿어 봐. 도혜 스님이라고 했나? 난 그분 의 눈을 믿네. 자네가 함부로 힘을 휘두를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자네 체질이 아무리 고약하고 공력을 받아들일 수 없어도, 그런 사람이기에 그분이 그렇게 하셨을 거야. 난 비록 만나 본 적 없는 분이지 만・・・・・・ 그건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지.”

“예. 그렇죠.”

“그런 분이 절대 잘못 보셨을리 없다고 생각했고, 내가 맞았네. 자네가 틀렸어. 그러니 인정하고 자네 스스로를 용서하게. 알겠나?”

“네, 신부님.”

현암은 눈을 감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잠을 자면서도 악몽에 휘둘 려서 이를 갈고 분노하여, 자신도 모르게 공력을 끌어 올려 허공을 휘둘러 쳤던 것이. 비록 동생 현아의 복수를 하지 않는 길을 택했지 만 마음속으로는 아직도 복수심이 앙금처럼 남아 있었는지 모른다. 그것이 그를 놓아주지 않고, 자조하게 하며 괴롭혀 왔던 것일지도. 그러나 이제 현암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현암은 박 신부 옆에 누우며 눈을 감았다. 눈물이 계 속 흘러나왔지만 이제는 편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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