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1권 – 1장 : 제국의 공적 –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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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 랩소디 1권 – 1장 : 제국의 공적 – 11화



오닉스는 주춤한 자신에 대해 분노했다.

그의 손이 급격하게 움직이며 키 드레이번에게 손짓을 보내었다. 슈마허나 율리아나 공주는 거의 알아볼 수 없는 동작이었지만, 해묵은 뱃사람인 엘 리엇 선장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재수 없음, 불길함을 뜻하는 손짓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고 그 중간 중간 오닉스는 턱으로 율리아나 공주를 가리 켰다. 레보스호를 점거하고 있던 해적들은 오닉스의 손짓에 불안한 표정을 띄워올렸다. 이들도 뱃사람들의 오랜 미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러나 키 드레이번은 오닉스의 손짓이 끝날 때까지 묵묵히 기다린 다음, 다시 조금 더 침묵했고, 그리고 다시 침묵했다. 그래서 오닉스는 굴욕감을 삼키며 초조한 심정으로 키 드레이번의 대답을 기다려야 했다. 조금 후, 키 드레이번은 나직하게 말했다.

“그녀가 두렵나.”

오닉스는 거의 고함을 지를 뻔했다. 평생의 맹세가 깨어질 뻔한 순간, 오닉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욕설과 저주들은 오닉스를 상 당히 힘들게 만들며 도로 아래로 내려갔다. 덕분에 몇 년 후 위궤양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오닉스는 그런 데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그러나 키 드레이번은 충분히 여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그녀를 자유호로 에스코트해 주면 좋겠군.”

그리고 키 드레이번은 몸을 돌렸다. 오닉스는 ‘키 드레이번!’ 하고 고함 지르는 대신 오른발로 갑판을 쾅 굴렀다. 키 드레이번은 멈춰 서서는 고개만 돌려 오닉스를 바라보았다. 오닉스의 손이 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내 말에 대답해라! 여자는 바다에 던져야 한다!’

키는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여자가 필요하다. 더 이상 설명하고 싶진 않군.”

율리아나 공주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갑판에 쓰러진 채 피를 흘리고 있던 슈마허는 키 드레이번의 말에 분통을 터뜨리며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마음뿐, 그의 몸은 그의 명령을 거부했다. 그래서 슈마허는 쓰러진 채 상대를 위협하려 드는 꼴불견을 연출하고 말았다.

“닥쳐라, 더러운 해적놈!”

그러나 키는 쓰러진 상대의 위협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키는 그대로 몸을 돌려 걸어갔다. 창백해진 얼굴로 키의 등을 바라보던 율리아나 공주는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딱딱하게 말했다.

“오닉스 씨라고 했죠?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저를 바다에 던져요.”

오닉스는 그만 겨드랑이에 끼고 있는 여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라이온은 오닉스의 겨드랑이에 끼어 있는 여자를 어 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확고한 대책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오닉스의 가슴을 떠밀며 재빨리 율리아나 공주를 안아들었다. 공주는 작게 비명을 질렀 고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난 오닉스는 잇소리를 내며 배틀 엑스를 쥐어올렸다. 하지만 라이온은 웃으며 뒷걸음질쳤다.

“어이, 어이! 진정해요. 당신도 들었지요? 선장님께서는 이 레이디를 필요로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공주님. 아까 체중 어쩌고 하셨는데, 의외로 상 당하십니다. 하하하!”

“나를 내려놓아요!”

“아아, 걱정해 주실 필요 없습니다. 이 팔이 비록 연약해 보일지는 몰라도 이 정도 무게는 감당할 수 있습니다.”

“다, 당신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에요! 나를 걱정하는 거죠!”

“그거라면 더욱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안전하게 모셔다드리지요.”

그리고 라이온은 그대로 자유호를 향해 걸어갔다. 슈마허는 일어나려 애쓰면서 고함 질렀지만, 라이온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음으로써 슈마허의 필 사의 외침을 개소리로 만들어버렸다. 오닉스는 입매를 떨면서 라이온의 등을 쏘아보았다.

자유호의 선상에 올라선 라이온은 율리아나 공주를 갑판에 내려놓았다. 공주는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쳤고, 그런 공주를 향해 라이온은 허리를 깊이 숙여보였다.

“더럽고 야비하고 무례하고 냉혹한 해적놈들의 소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율리아나 공주는 치맛자락을 쓸어내리고는 라이온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고마워요. 답례로 비밀을 하나 알려드리죠.”

“비밀?”

“당신이 운반한 짐짝에는 손이 달려 있어요.”

쫘악! 라이온은 따귀를 맞은 볼을 움켜쥐고는 동그래진 눈으로 공주를 바라보았다. 율리아나 공주는 새침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받기 싫은 선물이나 되는 것처럼 이 사람 손에서 저 사람 손으로 마구 옮겨다닌 것에 대한 대가예요. 마음에 심한 상처나 입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라이온 갑판장은 자신의 볼을 움켜쥔 채 얼빠진 얼굴로 율리아나 공주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공주는 이제 하고 싶은 일을 마쳤다는 듯한 얼굴로 몸 을 홱 돌렸다.

“어어어?”

라이온은 얼빠진 비명 소리를 내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몸을 돌린 공주는 그대로 뱃전을 향해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라이온은 다급하 게 외쳤다.

“잡아! 빠질 생각이야앗!”

그러나 그 순간 해적들은 뼛속까지 스며 있는 미신적 믿음 때문에 주춤거렸다. 갑판장이나 오닉스 선장 같은 사람이면 모르지, 우리 같은 놈들이 여 자를 만지면? 해적들은 몇 년 동안 횡액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춤거렸다. 그래서 율리아나 공주는 아무 방해 없이 갑판을 가로질러갔다.

거의 그랬다는 말이다. 느닷없이 갑판 해치가 열리지만 않았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공주의 진로에 있던 갑판 해치가 느닷없이 열리며 아래로부터 사내의 머리 하나가 불쑥 올라왔다. 율리아나 공주는 해치 바로 앞에서 가까스로 멈춰 섰고, 그래서 사내는 공주의 치마 속으로 머리를 들이민 형국이 되어버렸다. 공주는 기겁성을 지르며 치맛단을 여몄다.

“꺄아아악!”

뒤로 물러나던 공주는 그대로 갑판에 주저앉았고 치맛자락이 치워지자 그곳에서는 한 노잡이 노예의 멍한 얼굴이 나타났다. 갑판 위의 모든 사람들 이 굳어 있는 가운데,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노예는 후다닥 갑판 위로 뛰어올라왔다. 그러나 노예는 멀리 도망가지 못했다. 급히 달려온 라이온 갑판 장의 손아귀가 노예의 팔목을 나꿔채어 뒤로 꺾어올리자 노예는 비명을 내질렀다. 일단 노예를 붙잡긴 했지만, 라이온 역시 당황하여 노예의 뒤통수 를 향해 무턱대고 호통을 쳤다.

“어? 이놈! 너 누구냐?”

그때 노예장의 찢어지는 고함이 아래로부터 튀어올라왔다.

“오스발, 너 이 자식! 거기 안 서? 제발 서란 말이다! 안 때릴 테니까 거기서! 너 이 자식, 잡히면 죽어!”

노예장의 앞뒤 맞지도 않는 고함에는 거의 애걸하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노예가 갑판 위까지 뛰어올라온다는 것은 그 노예의 목을 쳐버리는 것만으 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노예를 감독해야 할 노예장 자신도 무사하기 어려운 대사건이다. 잠시 후, 오스발이 뛰어나온 구멍으로부터 만인의 황당한 시선을 받으며 노예장의 벌겋게 변한 얼굴이 불쑥 올라왔다. 씨근거리며 사다리를 올라서던 노예장은 눈앞의 광경을 보자 그만 굳어버리고 말았다. 

“가, 갑판장님…..!”

라이온은 자신이 붙잡은 노예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놈 노잡이야?”

“그, 그렇습니다만.”

“아! 그렇지. 아까 기절했던 그놈이구먼?”

라이온 갑판장은 껄껄거리며 오스발을 놓아주었다. 오스발은 팔을 주무르며 황급히 무릎을 꿇었고 그러자 라이온은 다시 싱긋 웃었다. 라이온은 주 저앉은 공주를 부축하며 오스발에게 말했다.

“찢어 죽일 놈이다만, 덕분에 나도 살고 공주님도 살았다. 감히 갑판 위까지 뛰어올라온 것은 용서해 주지.”

오스발은 이마를 갑판에 부딪히며 라이온에게 감사를 표했다. 미소를 지으며 오스발을 보던 라이온은 고개를 돌려 갑판 위로 올라온 노예장을 싸늘 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네녀석은 용서 못해. 노예 관리를 어떻게 하면 노잡이를 기절시키고 갑판 위까지 도망치게 만들 수 있는 거냐? 조금 있다가 나한테 찾아와!” 

노예장의 얼굴이 노랗게 바뀌었지만 그 역시 아무 말 없이 이마를 바닥에 댄 채 무릎 꿇었다. 라이온은 그런 노예장을 무시하며 율리아나 공주의 팔 을 힘주어 붙잡았다. 하지만 율리아나 공주는 그때까지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갑판에 주저앉아 있었기에 그렇게 힘을 쓸 필요는 없었다. 

“공주님. 선장실로 안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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