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5권 – 부록 : ‘폴라리스 랩소디’의 몇몇 수수께끼들

폴라리스 랩소디 5권 – 부록 : ‘폴라리스 랩소디’의 몇몇 수수께끼들


부록 1 『폴라리스 랩소디』의 몇몇 수수께끼들 

인물 2

하이낙스 : 인간의 역사에서 나타난 최고의 마법사. 신성 펠라론의 법황들이 1700여 년에 걸쳐 보여준 기적들도 하이낙스가 그 짧은 생애 동안 보여 준 마법들에 비해 보면 그 빛을 잃는다. 이 천재적인 마법사가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전쟁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하이낙스 그 자신뿐만 아니라 인류에게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하이낙스에게 현실 개조의 의지가 있었다는 점은 너무도 분명하지만 그렇잖으면 왜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겠는가 그가 정확히 어떤 세상을 꿈꾸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이낙스의 청년기 이후의 생애는 대부분 정복 전쟁을 수 행하는 일에 돌려져 있었기에 그 자신의 저술이나 기록은 얼마 되지 않으며, 그나마도 그의 사후에 행하여진 기록 말살 때문에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오늘날 그의 사상이나 심리를 연구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 되었다. 오로지 그의 적들의 기록을 통해서만 하이낙스를 연구해 볼 수 있지만, 악 의에 가득 찬 그 기록들에서 진실과 흑색 선전을 구분하는 것은 몹시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그의 적은 제국 전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 그의 행 동을 연대기적으로 복원해 보는 것은 그럭저럭 가능하지만 그의 사상, 철학, 목표는 알기 어렵다. 이것은 제국에 있어 또 하나의 딜레마다. 제국은 아 직도 그의 가장 강력했던 적이 왜 자신을 공격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 추론해 볼 수 있는 근거는 있다.

하이낙스의 업적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물론 쥬르노 산을 없애버려 사람들로 하여금 그 이름을 쥬르노 평원으로 바꿔 부르게끔 한 일이다. (……) 도저 히 믿을 수 없는 이 기적을 보았을 때 사람들이 하이낙스를 창조주의 재림으로 여긴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이낙스는 그렇게 주장하지 않았다. 진위 자체는 논외로 하더라도 전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을 수행하고 있던 하이낙스는 오히려 그렇게 주장했어야 당연할 것이다. 자 신의 적에게 공포를 주고 동료들에게 신뢰를 이끌어내는 데 있어 그보다 더 효과적인 수단은 없었을 것이다. 이 점은 무수한 반란자들과 이단자, 사 이비 종교인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가장 이성적인 자들마저 ‘신이 아니고선 할 수 없다’고 선언하게끔 만든 기적을 일으킨 직후에도 하이낙스는 자신을 신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이 점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그가 신정 사회를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는 공화제를 원했던 것일까? 하지만 그의 업적 대부분 전쟁이었지만-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공화제의 가장 미약 한 근거도 찾기는 어렵다. 그는 왕이라 주장하진 않았지만 왕처럼 행동했으며, 그 모습은 스스로를 제왕이라 주장할 필요가 없는 제왕 라오코네스를 연상시키는 점이 많다. (……)

린타 : 사트로니아 출신의 문학가, 철학가, 변호사. 하지만 이 말들은 변론가가 직업이 될 수 없기에 사용되는 말일 뿐, 린타는 언제나 자신을 변론가 로 여겼고 그를 아는 사람들도 그를 그렇게 대했다. 변론가란 말로써 사리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자다. 따라서 변론가는 그 의미상 웅변가와 학자의 중간에 속하는 자라 할 수 있다. 변론가는 웅변가처럼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납득시키려 시도하지만, 그 시도를 위해 웅변가가 사용하는 말의 기 술 대신 학자적인 논리성을 동원한다. 거꾸로 말한다면 변론가는 학자처럼 진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진리에의 수탐을 위해 과학적인 탐구 대신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이들은 인간의 진리는 인간 속에 있다고 믿기 때문에 자신이 과학적 엄격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괴로워하 지는 않는다. 린타 또한 그런 사실에 대해 괴로워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린타의 고민은 그가 너무나 우수한 말의 기술을 소지했다는 점에 있다. 그 는 다른 변론가들처럼 대화를 통해 인간의 진리에 도달하려 시도했지만, 대화의 끝에서 그는 언제나 진리 대신 어느새 자신의 화술에 말려든 상대방 의 모습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린타가 웅변가였다면 그는 그 사실에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린타는 사실의 정합성과 논리성에 관심을 가진 변론가였고 따라서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의 화술에 매료되는 청중이 아니라 끝까지 굽히지 않고 진리에의 수탐에 동반해 줄 토론 상대자였다. 진리에의 관심을 포기할 수 없었던 린타 는 결국 두 가지 선택밖에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변론을 포기하고 다른 수단을 찾거나, 변론을 도와줄 토론 상대를 찾아내는 것. 전자는 타고난 변 론가였던 린타에게 불가능했고 결국 린타는 토론 상대를 찾아 세계를 방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를 방랑하며 많은 달변가들을 격파해댄 린타는 드디어 그 유명한 만남을 성취하게 되었다. 악마 아델토와 만나게 된 것이다.

판데모니엄의 하이마스터이자 황금의 조커인 아델토를 만나게 된 린타는 평생을 갈고 닦은 변론술을 화려하게 펼쳐보였고 이에 대해 아델토는 지옥 의 일곱 지배자들 중 조커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다운 초인적인 변론술로 응답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들의 치열한 토론은 아흐레 밤낮 동안 계속 되었다. 결국 아흐레 밤, 아델토는 자승자박에 빠져 스스로를 봉인하게 되었고 다시는 판데모니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악마 중에서도 최고의 변론가를 상대로 승리했지만 린타에게 승리감은 찾아오지 않았다. 대신 뼈저린 후회만이 그가 느낀 감정의 전부였다. 린타는 피로와 후회와 부끄러 움과 노여움 속에서 부들부들 떨며 아델토에게 외쳤다 한다.

“이 빌어먹을 악마 녀석. 악마는 모두 거짓말쟁이라는 걸 고백했어야 될 거 아냐!”

그는 진리의 반대편 극단에 선 존재와 더불어 아흐레 동안이나 진리를 찾으려 애썼던 것이다.

아달탄 대왕 페인 제국의 시조. 그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많이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에 그중 정사와 야사, 실제 사건과 가공의 전설을 전부 구분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위대한 제국의 시조라는 점을 놓고 볼 때 아달탄 대왕의 일대기가 정확하게 씌어질 수 없다는 점은 기이하게 여겨질지도 모르 지만, 대왕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정확한 형태로 남기길 꺼려했으며 어떤 경우 후대인들의 조사를 고의적으로 방해하기까지 했다. 음유시인이 되 어 대륙을 주유했다는 유명한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아달탄 대왕은 상당히 낭만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어쩌면 가이너 카쉬냅의 푸념처럼 자신 이 건국한 제국에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기보다는 자신이 지은 노래 한 구절을 더 전하고 싶어했을지도 모른다. (……) 그의 정복 전쟁에 대한 기록은 다른 이야기들에 비해 사실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도 꺼림칙한 면이 많다. 종군 일지라기보다는 서사시에 가까운 형태로 저술된 대왕의 원정기들은 그를 연구하려는 전사학자들을 먼저 난처하게 만들었고 그 시적 어휘들의 수렁 속을 헤맨 끝에 도달한 결 론은 전사학자들을 좌절하게 만들었다. 물론 전사학자들은 많은 부분에 걸쳐 위대한 천재 전략가의 모습을 발견해 내고 그 모습에 감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의 비슷한 비율로 뻔뻔한 허풍쟁이의 모습이 발견된다는 것은 그들의 치열한 노력을 일시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리기에 충분했다. …………) 하 지만 모든 면에 성실하지 못하다고 해서 악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으며, 역사가들의 재앙이라 할 만큼 그 자신의 기록에 불성실했던 아달탄 대왕도 신 제국의 통치에 있어서는 공정하고 현명한 지배자의 모습을 보였다. 아직 그 지지 기반이 불확실한 신제국은 거의 매일같이 위기를 맞이해야 했다. 하 지만 아달탄 대왕은 쾌활한 호인의 모습을 잃지 않은 채 그 위기들을 모두 해결해 나갔다. 물론 신제국의 토대를 굳건히 세우기 위해 그가 수행했던 일들은 그 특유의 허풍과 과장과 은유로 감춰져 있고, 이 점 때문에 그를 ‘2인자의 자질의 집대성’, 혹은 ‘임기응변의 제왕’이라는 악의에 찬 별명으 로 부르는 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가장 엄격한 기준들을 통해 간신히 진실임이 보증된 기록들을 통해 추측되는 아달탄 대왕의 모습은 위대한 창조자 이자 건설자이자 통치자의 모습이다. (……) ‘평화시에 왕좌에 올랐다간 반란이나 당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건달이지만, 질풍노도의 혼란기엔 능히 제 국이라도 건설해 버릴 위인’이라는 가이너 카쉬냅의 촌평처럼 아달탄 대왕은 노도의 시기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이며 그 자체가 이미 노도인 인물일 것이다. (……)

대드래곤 라오코네스 먼 옛적, 아직 세계의 갈피갈피에 창세의 잔광이 반짝이고 있었던 시절부터 이 위대하고 강력한 존재는 이미 모든 생명 위에 군 림하고 있었다. 인류의 집단 의식이 희미해지는 그 시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대드래곤 라오코네스는 항상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라오코네스가 본격적으로 역사에 기록된 것은 의외로 가까운 시기이며, 인간의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가장 오래된 엘프의 기록에서조차 라오코네스의 이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왕은 군림할 뿐 자신을 이해해 주길 바라지는 않는다. 모든 생명체의 왕인 라오코네스에게 있어 허리를 굽혀 다른 존재에게 자신을 설명하거나 하는 일은 절대적으로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의 자기 규정에 있어 필요한 것은 그 자신이 었을 뿐, 모든 타인의 존재는 그에게 단지 군림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다른 드래곤까지도! 지금은 숨죽인 목소리로 이야기되는 옛이야기를 통 해서만 그 위대한 모습을 짐작할 수 있지만 엘프들의 기록과 인간의 초기 역사에서 드래곤들은 뚜렷한 공포의 대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하늘을 날 고 땅을 불태우고 그 노여움으로 세계를 진감케 했던 이 장엄한 생명체는, 그러나 때론 선량한 이를 돕고 정의로운 이의 편에 서서 싸우기조차 했다. 하지만 라오코네스가 다른 생명체뿐만 아니라 다른 드래곤들에 대해서도 어떤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존재의 처음부 터 제왕이었고 고독한 왕 이외엔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왕의 빛깔인 붉은색을 몸에 두르고 일몰 속을 날아가는 그의 모습에서 공포와 더불어 경외감 을 느끼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위대한 존재가 인간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어 군림 이외의 다른 관계맺음을 시도한 것은 제국력 207년의 일이었다. 라오코 네스는 미노 만이 자신의 영토라는 사실을 인간들이 받아들이게끔 요구했고 거기에 대해 어떤 설명도 덧붙이진 않았다. 인간은 그에 응락했고, 제왕 은 돌아갔다. 그리고 안개와 미명 속으로 사라져 다시는 인간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장소

왕자의 땅 군사 전략이라는 것은 군사력을 적용하여 국가 목표 및 정책을 달성하기 위해 한 나라의 군사력을 사용하는 기술과 과학일 것이다. 그리고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한 나라가 가질 수 있는 군사력이라는 것은 그 국가의 위치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은 자명하다(사막 지대에서 운용 가능한 군사력이 란 미미할 수밖에 없다). 이 두 가지 사실에서 전략 요충지라는 개념을 도출할 수 있으며, 제국의 넓디넓은 영토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전략 요충지를 꼽아보라면 왕자의 땅이 그에 해당한다. 다른 이름으로는 오 왕자의 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왕자의 땅이란 제왕을 탄생시킬 정도의 전략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며 지정학적으로는 미리온 산맥 남쪽과 검은 황야 사 이에 끼인 듯이 위치한 지대를 가리킨다. 왕자의 땅 남쪽에는 대륙에서 가장 높은 밀 생산량을 가진 비옥한 농토와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노천광 지대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북쪽에는 미리온 산맥 중턱에 위치한 대규모 철광산 지대와 흔히 록소나 종으로 알려진 우수한 명마의 산지가 존재한다. 현재 왕자의 땅에는 이 네 개의 요소를 기반으로 각자 팔라레온, 다케온, 다벨, 록소나의 네 나라가 할거하고 있다.

네 가지 요소인데 왜 다섯이라는 숫자가 사용되었는지 의아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 왕자의 검이라는 말을 최초로 꺼낸 이는 페인 제국의 개조인 위 대한 아달탄 대왕이었고 대왕은 이 말에 다른 설명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전략가들과 전략가 지망생들은 이 말의 수수께끼에 도전했고 큰 어려움 없 이 하나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밀과 다이아몬드, 그리고 철과 말은 이미 강력한 힘이다. 밀은 생존의 당연한 요소이며 다이아몬드는 막대한 부 의 원천이다. 그리고 철은 산업의 기반이며 말은 강력한 전투력의 상징이다. 강력한 힘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칼이라는 상징으로 불리어졌을 것이다. 어쨌든 그 네 개의 검은 스스로의 존립을 유지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그러하다. 하지만 그 네 가지 검이 하나로 합쳐졌을 때만이 유기 적으로 연결된 네 검은 제왕을 탄생시킬 정도의 전략 요충지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다섯 번째의 검, 그 네 가지 검을 하나로 합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며 그것은 땅이 아닌 하나의 인간일 것이다. 그리고 다섯 번째의 검인 그 인간은 스스로 제왕이 될 것이다. 전략가 들은 아달탄 대왕의 뜻을 이 정도로 해석했다. 하지만 일찍이 그런 인간은 나타난 바 없고 페인 제국마저도 그 네 나라가 하나로 묶여질 가능성은 극 히 희박하다고 보았기에 왕자의 땅에 대하여 특별한 제재를 가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오 왕자의 검이 하나로 모이면 왕이 탄생하리라’는 아달탄 대 왕의 말은 전략가들의 오랜 전설 비슷한 것이 되었다.

잊혀진 탑 대륙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카밀카르에서는 예로부터 대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풍습이나 이채로운 광경 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항해술의 발달과 더불어 카밀카르는 이제 더 이상 바다 저편의 신비로운 땅은 아니게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여행객이나 모 험가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드는 모습들은 충분하며, 그 중에서도 가장 신비로운 모습을 찾아본다면 잊혀진 탑이 바로 그것이다.

잊혀진 탑은 카밀카르 본토에서 서쪽으로 약간 떨어진 무인도에 위치한 거대한 탑이다. 거대하다는 말은 이 탑의 경이적인 높이를 설명하기엔 부족 한 말일지도 모른다. 바다에서 바라볼 때 모든 사물은 수평선 아래로부터 솟아오르는 모습으로 보이게 되지만 잊혀진 탑만은 허공이 수직으로 갈라 지듯 갑자기 시야 한가운데 나타난다. 그리고 이미 시야에 들어온 다음엔 아무리 고개를 높이 들어도 절대로 그 첨단부를 볼 수 없다. 그 사실 때문에 본토에서 이 탑을 볼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짧아서가 아니라 본토에서 볼 땐 너무 가늘어서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조차 있을 지경이다.

그 기적적인 높이는 이미 그 건축가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명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인간이 건축했을 리가 없다는 사실 이외엔 이 탑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 엘프나 바다의 악마, 혹은 창조주 자신이 건축했다는 가설들이 분분하지만 그 중 어느 것도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그 절대적으로 부조리한 높이는 이미 경외감과 공포로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으며, 무모함에 가까운 용기를 끌어낼 수 있었던 일부 탐험가들의 탐사 에서도 그 입구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 내부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기이한 건축물의 건축가나 그 이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으며, 가 장 오래된 기록에서도 이 탑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불가능한 일을 나타내는 오래된 격언에 ‘잊혀진 탑의 이름을 맞추는 것만큼이나 어렵 다’는 말이 전해질 뿐이다.

펠라론 게이트 대대로 법황은 기적으로 자신을 증거하며 법황이 거주하는 신성 펠라론은 그 자체로 이미 기적이다. 그러나 펠라론의 시민들에게 가 장 거대한 기적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그들은 말없이 손을 들어 신성한 자케산의 중턱을 가리킨다. 그곳에 펠라론 게이트가 존재한다.

인간의 역사보다 더 오래된 옛날부터 그곳에 있었지만, 펠라론 게이트의 모습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아지랑이나 오랜 추억이 그렇듯 직시하 면 똑바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곁눈질로 바라볼 때 언뜻언뜻 그 모습이 보이긴 하지만 이 또한 부정확하다. 바라보는 사람들마다 세부에서 약간씩 다른 목격담을 늘어놓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략적으로 펠라론 게이트는 거대한 타원형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서는 암흑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모습이다. 그 테두리의 위쪽에는, 역시 곁눈질로 보았을 때만 흐릿하게 보여지는 엘핀이 적혀 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거룩하신 주님의 영광에 의지하여’라는 뜻이다. 그 높이는 대략 15피트 가량이며 가장 넓은 곳의 직경은 5피트 가량이다. 자를 이용하여 재어볼 수도 없기에 그 수치는 부정확하다. 펠라론 게이트는 만져지지 않으며 어떤 연구가는 길다란 장대를 휘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실험의 결과를 통해 펠라론 게이트는 일종의 환각이라는 가능성이 강력하게 제기되었지만, 그 소용돌이치는 암흑 속으로 들어선 이는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단순히 환각으로만 치부될 수도 없다. 장대는 걸리지 않지만, 그 안으로 들어선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탐사자의 미귀환은 무서운 사건이었지만 그 테두리에 새겨져 있는 신성한 글귀 때문에 악마의 사악한 창조물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 없었던 법황청은 – 그 글귀가 아니더라도 신성한 자케산 중턱에 악마의 창조물이 있다는 것은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론이다 펠라론 게이트에 대 해 아무런 판단도 내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즉 펠라론에 있는 무수한 기적의 증거물들과 같이 취급하지만 그것에 대해 설명하지는 않는 것이다.

법황청이 어떤 설명도 하지 않는 것과 상관없이 대중들은 펠라론 게이트에 대해 많은 설명을 가지고 있다. 그중 지배적인 것은 그것이 천국으로 통 하는 문이라는 가설이다. 신성한 자케산 중턱에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윗부분에 있는 글귀 등을 놓고 볼 때 이 가설은 일견 상당한 신빙성을 갖춘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신학자들은 성전 어디에도 창조주가 천국으로의 문을 따로 창조했다는 대목이 없다는 점을 들어 그 가설을 거부한다. 더 군다나 문이 존재한다면 천상과 지상이 구분된 이유가 모호해지기도 한다. 신학자들은 그렇게 반문하는 것이다. ‘문을 만들 거라면 왜 두 세계를 구 분하는가?” 그러나 ‘그렇다면 그건 도대체 뭔가?”라는 질문에 대해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었던 신학자도 없다. 어떤 설명도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낭 만적인 모험가들과 삶에 지쳐버린 도피가들은 계속해서 펠라론 게이트에 그 몸을 던지며, 그들 중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사물

갤리어스 항구의 감미로운 유혹을 떨치고 적막하고 공포스럽기까지 한 수평선을 향해 나아갈 때, 뱃사람들이라면 열에 아홉은 대형 십[船]에 그 몸을 의탁하고 싶어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수병이거나 해적이라면, 즉 바다뿐만이 아니라 인간과도 싸워야 되는 뱃사람이라면 주저없이 갤리어스를 선택 할 것이다. 범선과 노도선의 장점을 아울러 갖춘 이 강력한 함선보다 더 해전에 적합한 전함은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 통상 항해를 할 때 갤리어스는 십이나 프리깃처럼 그 돛을 펼쳐 풍력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전투에 돌입했을 때 갤리어스는 불화살 등의 공격에 취약한 돛을 접은 다음 선체 옆에 줄줄이 늘어선 노를 이용하여 민첩하게 움직인다. 노잡이들은 불운한 노예들로 구성되며 이들은 보통 배와 하나로, 즉 의장이나 삭구와 마찬가지로 취급되는 것이 보통이다.

롱 갤리어스는 대포의 탑재량을 늘이기 위해 선체를 길게 만든 본격적인 전함이다. 자마쉬에서 최초로 제조되었고 이후 다른 국가로 급속히 전파된 이 갤리어스는 놀라운 전투력을 보이지만, 긴 선체 때문에 피치를 일으킬 때(파도를 타고 넘을 때)는 약간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제국의 해전은 모두 연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이 점은 큰 장애가 되진 않는다. 그리고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카밀카르의 경우엔 카밀카르 갤리어스라 불리 는 보다 원양 항해에 적합한 갤리어스를 제조한다. 대개 전함인 갤리어스는 많은 전투병과 노잡이들이 탑승하므로 그 페이로드가 낮고, 따라서 갤리 어스로 이루어진 선단에는 헤비 갤리어스라 불리는 페이로드가 높은 전함이 포함되게 된다. 해비 갤리어스는 노와 대포의 숫자가 약간 작은 대신 일 반적인 갤리어스의 1.5배를 상회하는 용적을 가지며 선단의 보급창 역할을 담당한다. 이렇듯 여러 가지 목적에 부합하는 다양한 변종이 있으나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을 꼽아보라면 역시 왕국 레갈루스에서 건조되는 터릿 갤리어스일 것이다. ‘강철의 레이디’를 탑재한 터릿 갤리어스는 일반적인 갤 리어스는 꿈도 꾸지 못할 초장거리 사격이 가능하다. ‘강철의 레이디’는 그 가공할 파괴력 때문에 법황의 칙령에 의해 ‘모든 땅에서 사용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실제로 이 대포가 사용되는 곳은 전세계에서 터릿 갤리어스의 선상뿐이다.

강철의 레이디 폭발의 비밀, 그리고 폭발력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 물체를 비행하게 하는 지식이 발견되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또한 마법사들 의 수많은 장난 중 하나이겠거니 생각하고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포는 마법사에 의해 제조된 것이 아니며 이 신병기의 가능성을 깨달은 지휘관들은 전율을 금할 수 없었다. 대포는 이전까지의 전쟁의 규칙을 완전히 뜯어고쳤으며 오직 롱보우에 의해 약간씩 점쳐지고 있던 제압 사격의 가능성, 즉 화망을 형성하여 적군을 일거에 격퇴하는 전법을 단숨에 현실화시켰다.

마법사는 자신들과 대포가 비교되는 것조차 거부했고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대포는 메마른 농토에 비를 불러올 수도 없고 대리석 제단 위에 한 떨기 백합을 피어나게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지휘관들에게 있어 마법사와 대포는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결국 대포를 선택한 다음 더 이상 마법사들의 간섭과 불평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그리고 마법사들도 더 이상 전쟁이라는 거대한 부조리에 찬조 출연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대포는 신속히 도입되고 계속 발전되었다. 그리고 그 발생 초기부터 예측되고 있던 딜레마에 빠르게 도달했다. 그 딜레마는 간단한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다. ‘거대한 것은 강하다. 하지만 무겁다.’ 이 두 극단에서 우리는 ‘강철의 레이디’와 ‘핸드건’을 발견하게 된 다.

강철의 레이디는 가장 유서 깊은 대포 제조의 역사를 가진 레모에서 개발된 거대한 대포이며 최초로 이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들 그것이 요새포 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레모의 대포공들은 그것이 야전용이라고 대꾸했고 그래서 사람들은 레모의 대포공들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레모의 대포공들이 미칠 정도의 상상력도 가지지 못함을 알고 있었던 지휘관이 하나 있었다. 켄타로니아의 장수 록소드라는 강철의 레이디를 채용했고 그것은 그의 군대의 행군 속도를 최악으로 떨어뜨렸다. 그의 적뿐만 아니라 그의 부하들까지도 록소드라를 비웃었지만, 전장에 도착한 강철의 레이 디가 불을 뿜었을 때 웃을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록소드라 자신까지도. 록소드라는 단 두 번의 일제 사격 명령만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이 결과를 본 열국은 앞다투어 레모의 대포공들에게 주문서를 발송했다.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진 레모의 대포공들이 막 용광로에 불을 지폈을 때, 펠라론으로부터 법황의 칙령이 공포되었다. 이 경이적인 대포에서 법황청이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구제할 길이 없는 악의뿐이었고, 그래 서 법황은 모든 땅에서 강철의 레이디의 사용을 금지시켰다. 열국은 주문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고 레모의 대포공들은 얼이 빠졌다. 하지만 법황의 칙 령에서 허점을 발견한 레갈루스의 함선 설계자들은 그들의 주문을 취소하지 않았다. 레모의 대포공들은 의아해하면서도 서둘러 강철의 레이디를 납 품했고, 얼마 후 그들이 미증유의 전투 병기의 탄생에 일조했음을 알게 되었다. 레갈루스의 함선 설계자들 또한 미칠 정도의 상상력도 갖추지 못한 인물들이었고, 그래서 그들은 모든 땅에서 사용이 금지된 강철의 레이디를 배에 실어버렸다. 터릿 갤리어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전함의 탄생이었 다.

핸드건은 강철의 레이디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으로 발전되어 온 대포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핸드건은 손에 쥐고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된 대포다. 미술과 건축, 기계 설계와 정치학 등 여러 분야의 천재였던 가이너 카쉬냅은 어느 날 대포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칠 년 동안 연구 한 끝에 일견 장난감처럼 보이는 조그마한 대포를 제조해 내었다. 주위 사람들은 이 조그마한 대포가 과연 석궁만큼의 파괴력이라도 있을지 의심스 러워했다. 하지만 가이너 카쉬냅은 조롱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에게 핸드건의 능력을 보여주는 대신 시제품과 설계도 전부를 펠라론에 바쳤다. 그리고 펠라론은 그것을 법황청의 가장 은밀한 장소에 숨겼다. 핸드건이 최초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가이너 카쉬냅 사후의 일이었 다. 핸드건이 발사되었을 때 사람들은 가이너 카쉬냅이 진정한 천재였음을 알게 되었다. 핸드건은 손으로 들 수 있는 그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일 반적인 야포에도 뒤지지 않는 파괴력과, 일반적인 야포보다 월등히 뛰어난 발사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이너 카쉬냅이 진정한 천재인 까닭은 다른 천재들과 달리 이 병기가 가져올 재난을 앞서 짐작하고 그것을 펠라론에 바쳤다는 점이다. 이후 핸드건은 고위 성직자와 법황청이 특별 히 선택한 사람만이 소지, 사용을 허가받는 무적의 병기가 되었고 가이너 카쉬냅은 복자에 서품되었다.

스팻 학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난처한 기분에 빠져들게 하며 자신의 직업 선택을 후회하게끔 만드는 문제는 대부분 가장 단순해 보이는 문제들 이다. 그리고 생명에 대한 정의 또한 그런 문제에 속한다. 성인이 된 이후에 죽은 것과 살아 있는 것의 구분이 불가능한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그들 에게 살아 있는 것의 정의를 내려보라고 말하면 백과사전 편찬자들의 엉터리 같은 수법을 도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명 = 모든 생물이 공통적인 특질, 생물 = 생명을 가진 물질’. 따라서 생명에 대한 학구적인 설명이 요구될 때 학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일반적으로 생명체라 생각되는 물 질들의 특징을 남김없이 열거해 버리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이 말하는 생명, 즉 생물의 특징은 생장, 생식, 자극 반응성, 물질대사, 진화 등이 다. 겨울철 유리에 끼는 성에는 일견 생장하고 생식(자가분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질대사를 하지 않으며 자극에 반응하지도 않으므로 도저히 생물 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여러 가지 잣대들이 이용될 때 학자들은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생물과 무생물을 그럭저럭 구분해 낼 수 있다.

하지만 스팻이 발견된 이후로 그러한 잣대들은 효용성을 잃고 말았다. 오랜 세월 동안 스팻에 대한 이야기는 미신적인 뱃사람들의 신화로 취급되어 왔지만, 뱃사람들과 함께 승선한 학자들 앞에 스팻의 모습이 나타났을 때 그것은 더 이상 신화가 아니게 되었다. 비록 오랜 세월 동안 그 존재가 이야 기되어 왔고 이름까지도 붙어 있었지만, 스팻은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학자들 앞에 무턱대고 나타난 셈이었다. 스팻은 바닷물이다. 끓이면 증발하고 추우면 언다. 맛을 보면 짜며 그 속에서 물고기가 헤엄쳐 다닌다. 학자들은 직업적 자존심을 걸고 스팻이 일반적인 바닷물과 모든 점에서 일치한다고 선언했다. 단 한 가지 사소한 점만 제외한다면, 스팻은 살아 있는 것이다.

아무도 스팻의 생명성을 부인할 수 없었다. 스팻은 바닷물 속에서 내키는 대로 움직이며 촉수 같은 물줄기를 뻗어 사람이나 다른 물체를 움켜쥐기도 한다. 자극에 반응하는 그 활동 형태에는 놀랍게도 ‘성격’의 존재를 나타내는 증거가 너무나 많다. 하지만 스팻은 물질대사 같은 것은 하지도 않을 뿐 더러 생식이나 생장하는 모습은 조금도 보여주지 않았다. 일부 학자들은 좌절하고, 일부 학자들은 모른 체했지만, 스팻의 생명성을 해석하겠다고 결 심한 학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모든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일반적인 바닷물과 스팻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 학자들은 데샨 카라돔과 법황청 에 절망에 찬 질문을 던졌지만 바닷물에 마법을 건 마법사나 바닷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기적을 발휘한 법황의 기록은 없었다.

학자들은 그들의 자존심의 최후의 보루로써 스팻이 충분히 연구될 수 없다는 사실을 들 수밖에 없었다. 스팻은 살아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바닷물일 뿐이며 바닷물을 체포할 방법 같은 것은 없다. 스팻은 그물눈 사이로 새어버리며 용기에 담기면 용기 안쪽 면을 타고 솟아올라 배 밖으로 도망쳤다. 뚜껑 달린 용기에 일부를 담아온 학자가 있었지만 육지로 돌아와 개봉하자마자 스팻은 용기 안에서 솟아올라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사람들은 지하수 와 강물 등에 섞여 바다로 돌아갔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이후로 스팻은 뚜껑 달린 용기가 다가오는 것을 피하게 되었다. 스팻이 기억력까지 가지고 있 다는 사실은 그 생명성을 더욱 공고히 했고 학자들로 하여금 바닥이 없는 늪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스팻은 충분 히 연구될 방법이 없으며, 오늘날도 대양의 한편에서 손톱을 물어뜯는 학자들의 절망에 찬 시선을 받으며 유유히 헤엄쳐 다니고 있다.


집단

노스윈드 선단 고래로부터 뱃사람을 공포에 젖게 만드는 것은 많았다. 폭풍, 무풍, 암초, 괴혈병, 사이렌의 노래, 켈프, 그리고 그 목격자가 아무도 살 아 돌아오지 않았기에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무수한 괴수들과 바닷속의 악마들. 대부분의 공포가 증오를 동반한다는 것은 육상의 상식일 뿐, 그 깊이 조차 알 수 없는 심원한 대해에서 다가오는 공포는 항상 순결한 공포 그 자체로서 가련한 뱃사람들을 엄습하곤 했다. 그러나 뱃사람들 또한 육지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공포와 더불어 격심한 증오로 몰아가는 존재가 하나 있으니 해적이 바로 그것이다.

혹자는 전술했던 공포의 대상들과 해적을 같은 위상에 놓는 것에 난감함을 느낄지 모른다. 해적은 인간의 한 범죄 형태일 뿐 대해의 공포라고 하기 엔 그 기원부터가 다르다는 것이 이런 부류의 반론이다. 하지만 그 폐해를 놓고 볼 때 같은 취급에 분개해야 되는 것은 오히려 해적 쪽일지도 모른다. 바다의 다른 공포들이 배와 뱃사람에게 끼치는 폐해를 전부 더하더라도 해적이 끼치는 폐해보다 크지는 않다. 항해의 역사 초기에서부터 해적은 항 상 최악의 재난으로 존재해 왔고 뱃사람들은 언제나 그들과의 전투에서 피를 흘려야 했다. 그리고 역사에 기록된 최악의 해적이 역사책의 갈피가 아 닌 현재의 바다를 누비고 있음은 수부들의 불운이라 하겠다. 노스윈드 선단. 극악무도한 해적이자 제국의 공적 제1호 키 ‘노스윈드’ 드레이번의 불측 한 해적 함대가 바로 그것이다. (…..) 혹 그대가 남달리 담대한 견습 선원이라면 노스윈드의 해적들을 다른 해적들과 마찬가지로, 즉 약간 큰 연장을 가졌을 뿐 본질적으로 올바르게 살아갈 정도의 용기조차 가지지 못한 좀도둑으로 취급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틀림없이 바다사자호의 선장 두캉가 ‘빅’ 노보라면 호쾌하게 웃으며 맞장구를 쳐 그대를 어리둥절하게 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흑기사호의 선장 오닉스 ‘사일런트’ 나이트는 그 대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을 것이며 그 침묵은 그대에게도 옮겨져 그 입을 다물게 할 것이다. 그리고 물수리호의 선장인 저 무서운 알버트 ‘네일 드렉슬러 앞에서 그대는 다시 입을 열 용기마저도 잃고 말 것이다. 달아나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은 이미 늦었다. 그대가 어떤 항해술을 가졌을지 언정 질풍호의 선장 ‘원아이드’ 트로포스에게서 달아날 수는 없다. 맞서 싸우겠다고? 그랜드파더호의 선장 ‘자마쉬’ 돌탄은 그대에게 강철의 레이디 를 겨냥할 것이다. 그대의 최후가 명예롭기만을 바랄 뿐. 그렇다면 그랜드머더호의 선장 킬리 ‘바드’ 스타드는 그대의 마지막에 진혼곡 정도는 베풀 어줄 것이다. 종부성사도 없이 맞이하는 비참한 죽음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페가서스호의 선장인 저 경건한 하리야 ‘파더’’헌처크라면 그대를 위한 기도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카밀카르 왕가 바다 건너 동쪽의 거대한 섬 카밀카르. 바다에 의해 본토와 단절되어 있는 이 땅은 예로부터 대륙의 문화와는 다른 이국적인 문화가 많이 발달했다. 하지만 카밀카르인들과 본토인의 외견상의 차이는 거의 없으며, 따라서 카밀카르인들이 대륙에서 건너온 사람일 거라 추측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동은 역사 이전의 일이었을 것이다. 항해술이 본격적으로 발달한 이후에 카밀카르에 도착한 본토인들은 이미 훌륭하게 발달해 있 는 카밀카르 왕국을 발견했다.

카밀카르에서는 엘프의 유적이나 유물들이 본토보다 많이 발견되며, 이 사실과 본토와 단절된 상태에서 발달되었다는 사실을 들어 일부 카밀카르인 들은 자신들이 엘프의 직계 후손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양심적인 카밀카르 학자들은 제국의 다른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카밀카르인들 또 한 본토의 인간과 똑같은 인간이라고 말하며 카밀카르에서 엘프의 유적이나 유품이 많이 발견되는 것은 카밀카르가 본토보다 역사가 짧기 때문에 고 고학적 훼손이 덜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만 최초의 카밀카르인들이 카밀카르로 넘어왔을 때 엘프의 도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은 아직 가설 로서 남아 있다.

하지만 카밀카르인 중 확실히 인간에 속하는지 말하기 곤란한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카밀카르의 왕족이 그들이다.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카밀 카르 왕가에서는 간혹 머맨/머메이드가 태어난다. 이들은 인간의 모습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인간과 똑같이 태어나지만, 바닷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머맨/머메이드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이 점 때문에 카밀카르 왕가의 세례식에서는 신생아를 바닷속에 담가 보는 절차가 포함되어 있다). 머맨/머메이드는 바닷속에서만 생식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간과의 교접은 불가능하고, 따라서 머맨/머메이드의 혈통은 당대로 끝나게 된다. 간혹, 아주 희귀한 우연으 로 왕가 내에 머맨과 머메이드가 동시에 태어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이 행운의 커플은 왕가의 축복 속에 결혼하게 되지만, 그들의 자손은 대개 인 간의 모습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대부분의 카밀카르의 머맨/머메이드들에겐 이런 행운이 없었고 그들은 대개 왕가의 테두리 속에서만 고독하게 살다 가 고령화되면 바다 저편으로 사라져버리곤 했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져갈 때 그들은 열에 열 모두 본토의 반대쪽, 동쪽을 향해 떠나갔다 한다.

항해술의 고도 발달 이후로 카밀카르는 본토와 긴밀하게 연결되었고 그들의 고유 문화는 이제 몇 가지 전통적인 것을 제외하곤 본토의 문화와 별 차 이를 찾을 수 없다. 그들 또한 본토의 열국들과 마찬가지로 제국의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며 제국의 문화를 향유한다. 하지만 정치적인 발전 속도와 정신적인 발전 속도가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전술했던 엘프 기원설 같은 것은 카밀카르인들의 민족 의식을 나타내어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들 의 내면 깊은 곳에서 카밀카르인들은 그들과 본토인들 사이의 차이를 느끼며, 하이낙스의 공세 앞에서 힘없이 무너진 페인 제국의 모습은 그들의 독 립 정신을 더욱 부추겼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현재에, 카밀카르 왕가에서는 세기의 신부라 불리는 미녀 율리아나 카밀카르 공주가 나타난다.


기타

대륙 9대 불가사의 현명한 자는 부를 축적하기보다는 지식을 축적한다. 부는 늘어날 수도 있고 줄어들 수도 있지만 지식은 늘어나기만 할 뿐 절대로 줄어들지는 않으며, 따라서 현자에게 있어 어떤 것에 투자하는 것이 더 현명한 처사인지는 자명하다. 넓디넓은 제국의 대학과 수도원마다 들려오는 것은 진리의 수탐에 정진하는 학자와 수사들의 우필 움직이는 소리이며, 일견 혼란스럽고 때론 퇴보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해도 사람들은 분명 어제 보다는 더 현명해진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토록이나 축적된 지혜로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세계에는 존재한다. 분명히 존재하며 육안으로 바라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설명할 수 없는 그것들을 가리켜 사람들은 대륙의 9대 불가사의라고 부른다.

1. 하늘의 다리: 머나먼 혼족의 땅에 있다고 알려진 이 다리는 제국의 학자들에겐 그 모습이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것이 꼭 교량의 모습을 하 고 있는 것인지조차 불명확하다. 어떤 이들은 이 다리가 까마득한 하늘 위를 통해 잊혀진 탑과 연결되어 있다는 재미있는 가설을 말하기도 한다. 

2. 사무이다크의 고원: 제국 북서쪽 사무이다크 지방에 있는 광대한 고원 지대. 고랭지인데다 풀 한 포기 찾기 힘든 척박하기 그지없는 땅인지라 활 용 가치가 거의 없지만, 기이하게도 야생동물들은 그곳에서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다. 대륙의 다른 지방에서는 거의 멸종되다시피 한 야생 들소들도 이곳에선 수천 마리씩의 거대한 무리로 발견되기도 하며, 학자들은 그 동물들이 도대체 뭘 먹고 사는지에 대해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어떤 상상력 풍 부한 사람들은 이 고원이 창조주의 실험장, 즉 동물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연구하던 곳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무수한 동물들이 있다는 점 때문에 이 고원을 황제의 개인 사냥터로 지정한 황제가 있었지만 그 후대의 황제들은 아무도 이 이상한 땅에 가까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황제의 공식 명칭에 붙는 ‘사무이다크의 공작’이라는 이름을 통해 아직 이 땅은 황제의 개인 영토로 귀속되어 있다.

3. 펠라론 게이트:신성 펠라론의 성스러운 자케산 중턱에 있는 불가사의한 검은 물체’. 직시하면 흐릿하게 보이기 때문에 물체라는 말이 사용되지 만 대략 거울이나 거대한 문과 비슷하게 생겼으며, 실제로 문처럼 그 안으로 들어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간 사람 중 아무도 돌아오지 않 았다.

4. 탄젤론의 미궁 : 마법사들의 땅인 데샨 카라돔에 있는 거대한 지하 미궁. 입구 가까운 곳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그 이상 안으로 들어서면 반 드시 길을 잃게 되며, 따라서 그 전체 규모나 내부 구조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대가의 앞에서 서툰 재주를 자랑하는 자를 비웃고 싶을 때 사 람들은 ‘탄젤론 토끼’라는 속담을 사용한다. 탄젤론의 미궁 옆에 조그마한 굴을 파놓고 아무도 자신을 못 잡을 거라 믿는 토끼에 비유하는 속담이다.

5. 도스 계곡 : 노래하는 꽃 싱잉 플로라로 유명한 계곡이다. 대륙의 이 곳에서만 자라나는 싱잉 플로라는 밤마다 노래를 부르며 그 노래는 남성들에 게만 들린다. 그 노래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우며, 따라서 밤의 도스 계곡을 감히 건너려는 여행자는 몽환적인 감동과 끔찍한 공 포를 한꺼번에 느끼게 된다.

6. 잊혀진 탑 : 카밀카르 서쪽의 거대한 무인도에 위치한 그 높이를 알 수 없는 탑. 입구가 없기 때문에 그 내부로 들어가 본 사람은 없으며, 어떤 위 치에서든 그 꼭대기를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7. 미노 만: 검은 황야 저편에 위치한 만. 항상 안개로 둘러싸여 있고 햇빛을 볼 수 없다. 800여 년 전 단 한 번 사람들에게 접근해 왔던 대드래곤 라오코네스는 미노 만을 자신의 영토라 주장했으며 따라서 사람들은 미노 만 어디엔가 대드래곤 라오코네스가 있으리라 믿는다.

8. 아흔아홉 눈의 섬 : 남해의 어딘가에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아무도 그 위치를 모르는 섬. 사람들은 항구를 떠났다가 돌아오지 않은 배들 중 일부 는 그 섬에 가 닿았을 것이라고 속삭이기도 한다. 기나긴 제국의 역사를 통틀어 오로지 단 한 명만이 그 섬에 가봤다고 주장했으며 그는 다름아닌 아 달탄 대왕이다. 음유시인으로 행세하며 대륙을 주유하던 시절 아달탄 대왕은 남해의 항구 중 한 곳에서 배를 타고 떠났으며, 돌아온 이후 자신을 ‘아 흔아홉 눈의 섬의 백작’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달탄 대왕은 그 섬의 형태나 위치 등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흔아홉 눈의 섬의 백작 이라는 명칭은 황제의 공식 명칭에 포함되게 되었다.

9. 아홉 번째의 불가사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존재할지는 몰라도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는 않다. 사람들은 왜 그런지 이유도 모른 채 9대 불 가사의라는 말을 사용하며, 이것을 8대 불가사의로 개칭하려 시도한 학자는 없다. 왜냐하면 가장 오래된 엘프들의 기록에서도 9대 불가사의라는 말 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록 어디에서도 아홉 번째의 불가사의가 무엇인지는 나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일을 가리키 는 속담으로 ‘아홉 번째 불가사의’라고 말하곤 한다.


xaxos daily과 판데모니엄의 하이마스터들 3)

일몰의 왕 라오코네스, ‘대식’: 라오코네스에 대해서는 인물 항목 참조. 그는 ‘낮의 끝에 매달린 자’를 버리고 ‘밤을 이끄는 자’인 엔도 바스톨 장군을 선택했다. 또한 벨로린에 의하여 그가 비니힐로 하여금 파킨슨 신부를 선택하게 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신부를 펠라론 게이트에 들여보내 잊혀진 탑에 도달하게 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구울의 왕자 직스라드, ‘분노’: 발도 로네스 경을 선택하며, 직스라드는 그를 ‘공포를 모르는 자’라고 불렀다.

철탑의 인슬레이버 바라미, ‘음란’ : 그녀의 본명은 에레로아이며 벨로린에 의하여 ‘추억을 가진 하이마스터’라 불린다. 강력한 유혹자이며 대사(大蛇) 로서 철탑에서 왕자의 땅이 하나가 되지 못하도록 파수를 서고 있었다. 각각 바람과 나무에 은유된 하리야 헌처크 선장과 법황 퓨아리스 사이에서 그 녀는 하리야를 선택한다.

노래의 불꽃 벨로린, ‘질투’: 도스 계곡의 싱잉 플로라로 나타나 율리아나 공주의 혼수품으로 레보스호에 실렸다. 알버트 선장에 의하여 리포밍된 후 그를 아버지라 부른다. 노래의 불꽃을 지피는 자(킬리)와 불꽃으로 노래를 태우는 자(휘리) 사이에서 그녀는 바라미가 말한 바 ‘동정심’으로서 킬리 스 타드를 선택한다.

잊혀진 탑의 비니힐, ‘나태’: 이 하이마스터에 관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적다고, 또 다른 하이마스터인 벨로린이 말하고 있다. 그는 존재와 부재 사이 에 걸쳐 있으며 잊혀진 탑에서 나올 수 없는 듯하다. 그곳을 찾아간 파킨슨 신부를 선택하였다.

새매의 공작 기릭스, ‘탐욕’: 그는 거짓말쟁이 하이마스터로 불리며, 데스필드와 정확히 같은 모습을 취하고 또 한 명의 패스파인더로 살아가는 것 역시 그러한 특성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못 박혀 움직일 수 없는 자와 움직임 위에 못 박힌 자, 즉 알버트 선장과 데스필드 사이에서 그는 선장 을 선택함으로써 ‘복수’의 승리를 가져온다. 그의 선택에 따라 xaxds dailwv은 현현하여,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세상의 주인이었던 그가 이제부터 세상의 노예가 되어 세상을 지배하고, 사랑하고 보살피며 ‘복수할 것을 다짐하게 된다.

황금의 조커 아델토: 그가 대표하는 악덕은 교만이다. 지지점과 지렛대 사이에서 지렛대인 트로포스를 선택한다.


주석

1) 시인이자 연대기 작가, 가수이며 변설가이기도 한 이 이야기의 서술자는, 이야기에 출현하고 있으나 그 정체가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몇 가지 대상에 대하여 작중 세계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몇몇 자료를 인용하는 형태로 해설하는 데 동의하였다. 하기의 인용은 비록 그가 굳게 견지하고 있는바, 작가는 작품 그 자체를 통하여 말한다는 원칙으로 인하여 그다지 친절한 해설은 되지 못할지 모르나, 『폴라리스 랩소디』의 애독자들이라면 그 안에서 몇몇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항목은 우선 네 종류로 나뉜 다. ‘인물’, ‘장소’, ‘사물’, ‘집단’, 그리고 ‘대륙 9대 불가사의’와 ‘판데모니엄의 하이마스터’에 관한 요약을 기타 항목으로 덧붙였다. 이는 각각 ‘장소’와 ‘집단’에 들어갈 수 있 으나 상기의 사항에 중복되는 것이 섞여 있으며 특별히 분리할 만한 의의가 있으므로 따로 정리하였다. 작가는 실제로 한두 항목에 대하여 해설의 요청에 부응하지 않은바, 작 품 내용으로부터 작성된 그 부분의 정리 및 배열에 미비함이 있다면 이는 모두 편집자의 실책이다.

2) 인간이 아니더라도 언어를 사용하는 지각 있는 존재는 인물 항목으로 분류하였다.

3) 이 항목에 관하여 서술자는 응답을 거부하였으므로, 작중에 등장한 하이마스터들 및 그들의 선택지를 정리하는 것으로 갈음한다. 하이마스터들의 순서는 등장순에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