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5권 – 21장 : 별의 꿈 – 4화

폴라리스 랩소디 5권 – 21장 : 별의 꿈 – 4화


벨로린은 움찔한 모습으로 한참 동안 굳어 있었다. 하리야는 멀리서 들려오는 포성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가 다시 벨로린을 바라보았지만 벨로린은 여전히 똑같은 모습이었다. 하리야는 할 수 없이 말을 건네었다.

“벨로린? 왜 그러지?”

벨로린은 눈을 깜빡거리다가 겨우 하리야를 쳐다보았다.

“아아, 미안해. 율리아나 카밀카르와 휘리 노이에스는 조금 전에 만났어. 둘은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군.”

“재미있는?”

“율리아나는…………… 베일을 쓴 모습으로 나타났어.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휘리는 자신의 노래로 그 베일을………… 들어올리겠다고 말하고 있고.”

하리야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하! 아달탄 대왕의 이야기군? 아마도 율리아나 공주의 기획이겠군. 그 공주님 재미있는 성격이었지. 그러고 보니 어울리는 이야기로군. 휘리는 음유시인이었고 아직도 초록색 옷을 입으니까. 그렇다면 공주가 미지의 여인 역할을 하고 있고 휘리가 아달탄 대왕의 역할이란 말이지.”

하리야의 눈매가 갑자기 날카로워졌다.

“흐음. 재미있군. 이것은 카밀카르가 휘리를 정복왕으로 대접한다는 의미가 담긴 제스처인가?”

“글쎄. 율리아나 카밀카르는 상대편이 그렇게 생각해 주면 좋다는 심정이야. 확언은 해주기 싫은 것 같아. 그래서 그런 모호한, 보기만 좋은 제스처 를 선택한 것 같고.”

“으흐음. 그렇게 된 것이군. 좋아, 노래는?”

“지금 시작되었어. 한참 동안은 별로 해줄 말이 없겠군.”

“그러면 난 잠시 외성 쪽의 소식 좀 알아보고 오겠어. 괜찮겠지?”

“그래.”

하리야는 몸을 일으켜 집무실을 나섰다. 홀로 남은 벨로린은 긴장했던 몸을 소파에 기대며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벨로린은 라미를 떠올리며 미간을 찡그렸다. 그녀는 하이마스터의 분노를 몇 배로 불려서 받게 될 율리아나에 대해 동정심을 느꼈다. 

‘라미가 이 일을 알면 율리아나를 더 증오하게 되겠군. 어리석은 계집. 하필이면 라미의 이야기를 소재로 끌어내다니.’


율리아나의 곁에 앉아 있던 데아첵 제독은 감탄을 느꼈다. 그는 이 회담에서 카밀카르의 입장을 되도록 불명확하게 해두는 것이 목적이었고 따라서 회담이 지체되는 것은 오히려 반기는 입장이었기에 마음놓고 휘리의 노래를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음율에 그다지 조예가 없는 데아첵 제독도 휘 리의 노래가 일급이라는 말도 모자랄 지경인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아버지가 악마라는 소문이 따라다니는 이유를 알겠군.’

테이블 저편에 앉아 있는 발도 로네스는 팔짱을 낀 채 무표정하게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회담이 지체되고 있는 것에 대한 불 만도, 자신의 약혼녀에게 구애가를 부르고 있는 휘리에 대한 분노 같은 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휘리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본성부터 탤런트인 휘리는 설령 발도 로네스가 분노에 찬 표정으로 칼춤을 추고 있었다 해도 노래를 멈추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순간 그는 휘리 노이에스라기보다는 음유시인으로 변장한 채 대륙을 주유하던 아달탄 대왕 그 자체였다. 어느샌가 노래가 멈추었다.

자신도 모르게 열렬하게 박수를 치던 데아첵 제독은 황급히 박수를 멈추었다. 이 고풍스러운 이야기에서 박수를 쳐주는 역할 따위는 원래 없다. 데 아첵 제독이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는 동안 휘리는 차분히 율리아나를 올려다보았다.

율리아나의 오른손이 서서히 올라갔다.

율리아나는 귀 뒤로 연결되어 있는 베일의 매듭을 풀었다. 휘리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그 베일이 치워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베일이 완전히 치워진 순간 휘리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다…………… 당신은!”

율리아나는 풀어낸 베일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았다. 그리고 휘리를 내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오래간만이군요, 휘리 노이에스. 날개는 아직 찾지 못했어요.”


진지를 들어서던 서 소사라는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공포 속에서 두어 시간을 보낸 병사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닌 얼굴을 한 채 걸어오고 있었다. 서 소사라 자신도 그렇게 깔끔하다고는 볼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진영에 남아 있던 기병들과 포병들은 측은한 얼굴로 전우들을 맞이하고 있었 다.

8군단은 필마온 함대와의 연합 작전으로 폴라리스에 대한 위장 공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강철의 레이디에게 대포나 기병을 다 내어줄 수 는 없었기에 서 소사라는 보병들을 주축으로 한 공격조를 편성했다. 이에 폴라리스는 10여 발씩 날아오는 견제 사격으로 응수해 왔다. 양자의 행동은 잘 조화되었고 그래서 공격조는 강철의 레이디가 작열하는 벌판에서 두 시간 동안 포환과 술래잡기를 벌여야 했다. 적은 숫자로 날아오는 포환은 어 쨌든 보고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며, 신경이 곤두선 상태에서 두어 시간을 그런 식으로 도망쳐 다니는 것은 차라리 포환 을 맞고 싶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고역이다.

말고삐를 당번병에게 건넨 서 소사라는 지친 표정으로 막사를 향했다. 그러나 막사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서 소사라는 얼굴 표정을 밝게 바꾸며 말했 다.

“아직 안 죽었군?”

침대에 누워 있던 서 소팔라는 싱긋 웃었다.

“피곤하지?”

소사라는 망토 조임새를 푼 다음 걸레가 되다시피 한 망토를 맥없이 바라보다가 옆으로 집어던졌다. 의자에 몸을 던진 소사라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길게 심호흡을 했다.

“사이다 한 컵과 시집 한 권과 꽤 넓은 나무그늘 하나만 있으면 좋겠군.”

“사이다를 몸에 바르고 시집을 베고 그늘에서 일광욕하는 것도 나름대로 흥미로운 도전이겠는걸.”

“부러진 것이 다리가 아니라 이였다면 좋았을걸.”

“피해는?”

“스무 명 정도. 정신없이 피하려다가 오히려 피탄 지점에 몸을 던진 놈들이 태반이야.”

“어때? 좀 익숙해지는 거 같더냐?”

“모르겠어. 그 포격에 익숙해지려면 한 달 이상은 걸릴 것 같은데.”

“그럼 안됐지만 좀더 돌려야겠군.”

소사라는 신발을 하나씩 벗으며 침울하게 말했다.

“그래야겠지만… 난 병사들이 포격에 익숙해지기 전에 반란을 일으키게 될까 봐 겁날 정도인데. 나도 그 포격엔 익숙해질 자신이 없어.”

“포수장들의 말은 사실이었나?”

“모르겠어.”

“모르겠다니?”

“포수장들은 그 포격이 절대로 3회 이상 연속 발사되진 않을 거라고 했지. 배 자체가 흔들려버리니까. 하지만 오늘 폴라리스는 연속 발사를 하지 않 아서 확인할 수가 없어. 폴라리스 놈들은 우리들이 위장 공격을 한다는 것을 잘 안다는 듯이 띄엄띄엄 마구잡이 식으로 쏘던데. 그러고 보니 또 가슴 아프군. 그렇게 무턱대고 쏘는 대포에 스무 명이나 잃다니.”

“하지만 포수장들의 말은 사실일 거다. 합리적이잖아? 아무리 뛰어난 관측사가 있다 해도 배가 흔들리는 것까지는 어찌할 수 없다는 건 확실히 말이 되지. 따라서 그 포격에 익숙해져야 해. 최초의 3회 발사 동안만 혼란에 빠지지 않으면…………”

“성벽 바로 아래까지 육박해서 포격을 피할 수 있다. 그래, 말이 되는 이야기야. 다만 너무 과중한 요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군.”

서 소팔라는 입을 다물고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막사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 있던 서 소팔라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베개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다. 멀뚱히 바라보는 동생을 향해 서 소팔라는 베개 아래에서 꺼낸 책을 던져주었다. 소사라는 제목을 확인하고는 감탄하며 동시에 질책의 눈길을 보내 었다.

“시집을 그런 용도로 쓰나?”

“하도 심심해서 구해 오라고 했지만 도저히 읽을 수 없던걸. 그리고 테이블 위의 그건 물병이 아냐.”

소사라는 솔깃한 표정으로 병을 들어 잔에 부었다. 노르스름한 액체가 잔에 쏟아지며 독특한 향취가 피어올랐다.

“아아, 사이다로군. 키스해 줘도 돼?”

“다음에 제수씨에게 대신 받지. 탈영했던 노예병 하나가 돌아오면서 그걸 구해 왔더군. 나한테 선물하고 용서를 빌 생각이었지만 난 그거 싫어하잖 아. 나무그늘은 네가 알아서 구해.”

소사라는 즐거운 표정으로 잔을 들어올렸다.

“형과 그 노예병에게 축복 있기를.”

소사라가 건배하듯 잔을 높이 들어올렸을 때였다.

굉음이 울려퍼지며 폭풍이 천막을 덮쳤다. 소팔라는 침대째로 뒤집혀버렸고 의자에서 나동그라진 소사라는 박살난 사이다 병을 바라보며 분루를 삼 켰다. 하지만 소사라는 재빨리 기어가 침대를 치우고 형을 일으켜 앉혔다. 소팔라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했다.

“사이다가 너무 익었나?”

소사라는 침대로 방호물을 만들며 그 너머로 눈을 내밀었다. 천막은 어디론가 날아가버렸고 소사라의 시선에는 천막 근처에서 피어오르는 포연이 들어왔다.

“제기랄, 우린 포격을 당하고 있어!”

“강철의 레이디가 여기까지 쏜다고 말하는 거야?”

“그건 모르겠어. 하지만 우린 분명히……”

콰아앙!

소사라는 소팔라를 덮치며 침대 뒤로 엎드렸다. 이번에는 약간 떨어진 곳인 듯 폭풍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동생의 아래에 깔려 있던 서 소팔라는 어 디선가 날아와 떨어지는 프라이팬을 보며 기막힌 표정을 지었다. “얼씨구, 솥은 안 날아오나?” 쾅, 뎅그렁! …금발 미녀! 금발 미녀는 안 날아오나? 목욕 수건만 두른…………”

“관둬, 형. 취사장 쪽이 당한 모양이군. 일어날 수 있겠어?”

“겁탈당한다 해도 못 일어나. 놔두고 부하들이나 빨리 살펴봐.”

소사라는 굳은 얼굴로 소팔라를 바라보았지만 행동은 빨랐다. 그는 재빨리 침대와 테이블의 잔해 등으로 형의 몸을 덮어주고는 검을 챙겨들며 일어 났다. 허리를 잔뜩 숙인 채 달리며 소사라는 포격의 방향을 찾았다. 잠시 후 소사라는 포격이 폴라리스 방향이 아닌 진지 좌측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좌측이다! 진지 좌측에서 포격이다, 모두들 엄폐물을 찾아라!”

‘강철의 레이디가 아니다.’

방향이 틀릴 뿐만 아니라 하늘 어디에도 포환은 보이지 않았다.

‘직사인가?’

그때 다시 소사라의 근처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소사라는 몸을 구부린 채 몇 바퀴나 굴러갔다. 갑옷을 벗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기에 앞서 소사라는 자신이 신발을 벗었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했다. 넘어진 달구지를 발견한 소사라는 그 뒤로 몸을 날린 다음 한손으로 발바닥을 움켜쥐며 진 지 좌측을 관찰했다.

그리고 서 소사라는 헛바람을 삼켰다.

진지 좌측으로 일단의 기병들이 달리고 있었다. 중장갑을 걸친 기병들은 진지의 뒤쪽에서부터 다벨 진영을 우회하여 폴라리스 방향으로 달리고 있 었다.

그리고 포격은 바로 그 기병이 가하고 있었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기병들은 전투보속으로 말을 달리며 다벨군을 향해 오른손을 옆으로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오른손으로부터 섬광이 일어 났다. 소사라는 잠깐 동안 그들이 거울을 들고 있다는 상상을 해보았지만 도무지 어울리는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들의 오른손에서 섬광이 일어 날 때마다 다벨군 진지 어느 곳에선가 폭발이 일어나는 이상 그것은 분명히 포격이었다.

고정 관념이 위협당하면 사람은 환상에서 답을 끌어낸다. 소사라도 하마터면 그들이 악마 군단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기도문을 외울 뻔했다. 그러나 기도문을 떠올렸을 때 소사라는 가까스로 교회의 유명한 성물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핸드건? 맙소사, 핸드건을 든 기병이라니! 저놈들이 대관절 뭐하는 놈들이기에 교회의 성물을……?

교회를 떠올린 서 소사라는 곧 법황청이 최근에 가지게 된 기사단의 이름을 떠올렸다. 서 소사라는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바이올 기사단!”


하리야는 망원경을 조금 더 앞으로 내밀려고 애썼고 그래서 두캉가 선장은 그의 허리춤을 붙잡아야 했다.

“조금 더 몸을 내밀면 자넨 하리야 파이가 될걸세.”

하리야는 두캉가에게 허리춤을 잡힌 상태로 흉벽 너머로 몸을 내밀며 감탄했다.

“굉장하군요. 달리면서 쏘는 거라 명중률은 그저 그렇지만 다벨군은 도저히 반격할 여유도 갖지 못하는데요?”

“흐음. 우리한테까지 오지 않고 도착하자마자 곧장 기습한 것은 그 때문인가 보군. 그러면 우리도 도우러 나가야 되나?”

“아, 아니오.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방금 다벨군의 기병이 움직였습니다. 그레고리?”

하리야는 망원경을 눈에서 떼며 그레고리를 돌아보았다.

“다벨의 추격대가 용기병들의 뒤를 따르고 있다. 엄호사격할 수 있겠나?”

“강철의 레이디로 말입니까? 하리야 선장님. 말씀드렸지만 저는 관측사지 신이 아닙니다.”

“용기병을 피해서 다벨 기병을 맞추라고는 하지 않았어. 그냥 근처에 몇 발 떨어지게 해줘. 그거라면 가능하겠지?”

그레고리는 코를 한번 훔친 다음 하리야에게서 망원경을 받아들었다. 전장을 쓱 훑어본 그레고리는 곧 허리춤에 꽂아둔 깃발을 들어올렸다. 하리야 는 당황해서 외쳤다.

“아니, 계산 안하나?”

“저 근처는 워낙 많이 쏴서 어떻게 쏘면 어디 떨어진다는 것쯤 훤합니다. 풍향, 풍속도 일정하고, 맡겨두시죠.”

초원에서는 200기의 용기병들이 무려 6,000기에 달하는 다벨 기병의 추격을 받고 있었다. 다벨 기병을 이끌고 있던 서 기리우는 이 갑작스러운 기 습에 크게 노하여 고성을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고성뿐, 실상은 따라붙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용기병들은 달아나면서도 가끔 몸을 뒤로 돌려 핸드 건을 쏘아대고 있었고 그때마다 다벨의 기병들이 하늘로 날아오르거나 땅을 구르거나 혹은 그 둘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다. 서 기리우는 상하체가 따로 날아가는 부하들을 보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활을 꺼내라! 경장기병, 활을 꺼내라!”

그리고 서 기리우도 안장 옆에 꽂아둔 활을 꺼내었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 위에서도 서 기리우는 능숙하게 화살을 메겨 활을 들어올렸다. 기리우 는 가장 뒤쪽에 달리고 있는 용기병의 등을 겨냥하여 활시위를 한껏 당겼다.

휘리리리 릭!

기리우는 질겁하며 시위를 놓았고 발사 순간에 흐트러진 화살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하늘을 가로질러 들려온 것은 가느다란 휘파람 소리였 지만 기리우와 다벨 병사들에게는 폭음이나 비명보다 더 끔찍한 소리였다. 결과적으로 6,000기의 기병들이 동시에 겁에 질린 눈으로 위를 바라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 소리의 의미를 몰랐기에 다벨군의 이 기이한 모습에 의아해하던 용기병들은 잠시 후 들려온 굉음에 크게 놀랐다.

다벨 기병과 용기병들의 양쪽으로 40로드쯤 떨어진 곳에서 폭발이 파도처럼 일어났다.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잠시 쉴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휘리는 몸을 일으켜 그대로 천막 밖으로 나왔다. 지지부진한 회담을 계속하고 있던 발도나 데아첵 제독 모두 그를 붙잡지는 않았다. 특히 데아첵 제 독은 품에서 책 한 권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고, 발도 로네스는 책을 준비해 온 카밀카르의 제독을 물끄러미 노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밤이었다. 병사들은 이 회담이 발각되는 것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많은 수의 호위병들과 전함까지 있었으므로 원래부터 은밀한 회담이라고 하 기는 어렵다. 그래서 병사들은 곳곳에 화톳불을 피워 주위를 밝게 해놓았다. 천막을 나온 휘리는 곳곳에서 타오르는 불빛과 그 주위를 가로지르는 그 림자를 보다가 발길을 해변 쪽으로 돌렸다.

경계근무를 서던 몇 명의 병사들이 휘리를 바라보았지만 휘리는 그들에게 가볍게 목례하며 인적이 적은 곳으로 걸어갔다. 물결 조잘거리는 밤바다 에는 병사들이 피워둔 화톳불의 빛이 기형으로 자란 나무처럼 드리워져 있었고 젖은 모래는 휘리의 발걸음에 감겼다가 소리없이 부서져 내렸다.

휘리는 해변에 주저앉았다.

무슨 회담을 했는지 기억도 제대로 남지 않았다. 율리아나는 인사만 건넨 다음 천막을 떠났고 그녀가 천막을 떠날 때 휘리의 정신도 같이 떠나간 듯 했다. 남은 세 명의 무인들은 무인다운 이야기를 나눠보려 했지만 데아첵 제독은 자꾸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거나 주제를 흐트러뜨리기만 했다. “그렇소이다. 현재 폴라리스는 리저드라이더를 보유하고 있지요. 그런데 그 자들은 목도리도마뱀들에게 고기를 익혀서 줄까요, 날것으로 줄까요? 난 그게 참 궁금합니다. 소금으로 간을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아첵 제독은 가장 무성의한 회담자는 아니었는데, 휘리의 언동이 조금 더 심각했기 때문이다.

“서 휘리.”

“예? 나를 불렀습니까?”

“그랬소. 일곱 번째로.”

결국 발도 로네스는 카밀카르에 대해 깨끗이 포기했다.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지만 떠나지도 않는다는 확인을 받은 다음, 발도는 데아첵 제독을 거의 무시해 버렸다. 데아첵 제독은 계속해서 이야기에 끼여들었지만 발도는 휘리에게만 이야기를 걸었다. 발도의 집요한 질문에 휘리는 어느 정도 정신을 수습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세 가지 정도의 합의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은유적인 단어와 비유적인 표현들로 이루어져 있어 세심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알아보기 어려운 합의였지만 대충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필마온 기사단은 다벨의 폴라리스 공략을 돕는다. 다만 이것은 비밀동맹이며 문서로 남기지도 않는다. 대외적으로 둘은 별개의 목적을 가진 별개 의 군사 집단이다. 다벨은 전범을 보호하고 있는 폴라리스를 공격하는 것이고 필마온은 이단의 혐의가 뚜렷한 알버트 선장을 공격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암암리에 결정되어 있던 사실의 재확인에 불과하다.

2. 전후 다벨은 폴라리스의 영토를, 그리고 필마온 기사단은 노스윈드의 전함들과 노스윈드의 보물을 가진다. 그 보물은 이미 상당수 소모된 것이 분명하며, 따라서 필마온 기사단이 원하는 것은 노스윈드의 전함들이다. 휘리는 별말없이 찬성했다. 만약 바탈리언 남작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절대 로 양보하지 않았겠지만 그는 이레다벨에서 4개 군단의 창설에 여념이 없었다. 폴라리스를 건국한 것이 바로 노스윈드의 전함들이므로, 거칠게 말한 다면 노스윈드의 전함을 주는 것은 바로 폴라리스를 내주는 것과 같다고도 할 수 있다.

3. 필마온 기사단과 다벨은 이 협조 관계를 향후로도 계속 유지하며 그 공조로 얻은 결과에 대해서는 폴라리스의 경우를 전례로 삼는다. 이 말은 바 꿔 말한다면 대륙의 동부 해안선을 따라 분포해 있는 모든 나라들이 다벨과 필마온 기사단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되며 그때마다 다벨은 영토 를, 필마온은 재화와 전함들을 얻게 된다는 의미다. 그런 문구는 하나도 들어 있지 않았지만 3항이야말로 휘리 노이에스에 의한 대륙 재통일의 의지 가 담겨 있는 문항이며 데아첵 제독이 가장 열성적으로 훼방놓았던 것도 바로 3항이다. 그리고 휘리가 천막을 나와버린 것은 바로 그 3항의 합의를 앞둔 상황이었다.

휘리 역시도 3항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다. 땅을 가진다 해도 무장을 모두 저편에 넘겨주는 식이라면 결국 땅 또한 주게 되는 것이다. ‘그 런데 데아첵 제독이 반대하고 나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휘리는 데아첵 제독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별로 생각할 필요도 없이 간단히 결론이 나왔다. 카밀카르 또한 저 3가지 합의 사항에 찬성하는 것이다. 다만 ‘필마온 기사단’이라는 이름이 들어갈 자리에 ‘카밀카르’라는 이름을 넣고 싶어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휘리는 밤바다를 향해 씩 웃었다.

“두 미녀가 나에게 추파를 던지는 건가.”

“좋겠네요.”

휘리는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동시에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젖은 모래에 발이 미끄러졌고 그래서 휘리는 몇 번 허둥거린 다음에야 똑바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율리아나는 웃음을 머금은 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휘리는 다급하게 외쳤다.

“율리아나 공주님!”

“예. 말씀하세요.”

“예? 아, 아니오. 그냥…… 부른 겁니다.”

“그러신가요.”

휘리는 심장을 쿵쾅쿵쾅 울리며 이 자리만 벗어날 수 있다면 그가 교수대에 선 사형수라도 좋으니 기꺼이 자리를 바꾸겠다고 생각했다. 휘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율리아나는 모래밭을 보다가 앉으려는 시늉을 했다. 휘리는 자신도 모르게 황급히 팔을 뻗어 율리아나의 팔을 움켜쥐었다.

율리아나는 휘리의 손아귀에 붙잡힌 자신의 팔을 보다가 휘리를 올려다보았고 휘리는 비명처럼 외쳤다.

“죄송, 죄송합니다! 자, 잠시 기다리십시오!”

휘리는 잡아뜯듯이 자신의 망토를 풀어내어서는 정성껏 모래바닥에 깔았다. 그리고 율리아나는 휘리의 손에 세게 붙잡혔던 팔을 문지르면서 그 모 습을 바라보았다. 망토를 다 깐 휘리는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망토를 가리켜보였다. 율리아나는 망토 위에 앉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자상하시군요. 내 팔을 부러뜨릴 뻔한 건 용서해 드리죠.”

“죄, 죄송합니다!”

“서 휘리께서도 앉으시지요?”

“저는 괜찮습니다.”

“내가 괜찮지 않아요. 올려다보려면.”

휘리는 망토 바깥의 모래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바다를 향해 휘리가 앉아 있는 꼴이 어떤가 하면 남달리 엄격한 백부장이 있다면 그 모습을 초상화 로 그려 신병들의 교육 자료로 쓰고 싶어할 만큼의 부동자세였다.

‘보아라. 이것이 군인의 앉는 자세이니라.’

율리아나는 빙긋 웃으며 역시 바다 쪽을 쳐다보았다.

물결은 끊임없이 모래사장으로 다가서고 있었고, 아쉬움 속에 도로 물러났다.

율리아나는 세운 무릎을 가슴에 끌어안고는 그 위에 턱을 얹은 채 물결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휘리는 자신에게 가장 필요없는 신체 부위는 심장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큰소리를 내고 있는 거지? 이 미치광이 심장아, 좀 얌전히 굴지 못해? 그때 율리아나가 바다를 보며 뭐 라고 말했다. 휘리는 고개를 약간 돌리며 물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장미 꽃다발과 백마가 끄는 마차는 준비하셨는지 물어봤어요.”

휘리는 정수리에 벼락이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용서하십시오. 저, 저는 카밀카르의 공주님이시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아니, 저, 제 말은 그러니까 신분이 낮은 여인에게는 항상 추파를 던진다는 말은 절실히, 아니, 절대로 아닙니다. 그건 결코 희롱이나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무, 물론 카밀카르의 공주님께 그런 말을 드린 것이 잘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다만, 그러니까 그것은 제 본심에서 우러나온, 뭐라고 말할까, 그러니까 말입니다. 예, 물론 잘못했습니다. 사과드리겠습 니다, 용서하십시오. 그러니까 그 왜…………”

율리아나는 휘리의 횡설수설을 중간에서 자르기로 결심했다.

“그때 거기엔 왜 계신 거지요?”

“예?”

“롱레인저들과 함께 다림 근교에 계셨었지요. 그건 정복지 사전 답사였나요?”

“비슷합니다.”

“이해가 안 되는군요. 당신은 이중 인격자인가요?”

휘리는 정신이 번쩍 든 얼굴로 율리아나를 돌아보았다. 분노한 표정을 지으려 했지만 그의 얼굴은 그를 배신했고 그래서 휘리는 율리아나의 옆얼굴 을 향해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어째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서 휘리. 당신은 그때 부하 사병을 죽이고 고해하러 왔지요. 하지만 그게 정복지 사전 답사였다면 당신은 이미 많은 사람을 죽일 심산이었다는 말 이 되는데요.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잖나요?”

휘리는 입을 다물었다. 잠시 동안 물결 소리에 공간을 내준 채 침묵하던 휘리는 잘게 무서지는 파도를 보며 말했다.

“뭐라 말씀드려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변명을 하지 않는 것은 멋진 자세겠지요. 하지만 난 당신의 행동을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앞뒤가 맞지 않는 그 행동에 대해 궁금해하는 거예요. 뭔가 자신을 설명해 볼 수 없나요?”

“당신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율리아나가 휘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휘리는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율리아나는 휘리의 옆얼굴을 향해 묻는 시선을 보내 었다.

“당신에게 뭔가를 전가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율리아나 공주님. 제가 지은 것은 제가 받습니다. 하지만 설명을 요구하셨기에 말씀드립니다. 당신 때 문입니다. 아니, 당신 덕택입니다.”

“설명해 주시죠.”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당시의 저는 피에 다가가는 것이 아버지에 다가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가장 증오하는 아버지 말입니 다.”

“타르타니어스?”

휘리는 놀라지 않았다. 그만큼 율리아나의 말을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휘리 또한 다른 사람이 그런 질문을 꺼냈을 때 보였을 반응을 하나도 보이지 않은 채 되물었다.

“어떻게 짐작하셨습니까?”

“당신의 노래가 어머니를 잇는 거라면 무장으로서의 자질은 아버지를 잇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만약 당신의 아버지가 이름 없는 혼 족 전사였다면 당신의 그 증오는 너무 과하지요. 유명한 아버지였기에 증오도 더 커지는 것이겠지요. 위대한 혼 족의 무장이라면 떠오르는 이름은 얼마 되지 않아 요.”

“정확한 추측이십니다. 공주님.”

휘리는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출생에 대해 고백했다. 어떤 해방감 같은 것이 찾아든 것도 아니고 모멸감이 찾아오지도 않았다. 휘리는 자신이 그렇 게 평온하게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말을 이었다.

“저는 타르타니어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노이에스이고 싶었지요. 그래서 피에 다가서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 정찰행은 메르데린 공작이 저에게 내린 일종의 시험이었습니다. 저는 여러 차례 그의 제안을 거절했고 또한 이웃나라라는 것이 서가에서 책을 빼듯 그렇게 쉽게 얻어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공작은 제게 직접 가서 보고 오라고, 그 다음에 말해 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람이나 하자는 심정으로 그의 제안을 받 아들였습니다. 공작은 팔라레온에 대한 정찰을 요구한 것이지만 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지요. 예. 롱레인저들과 함께 사람 잡아먹는 아피르 족이 우글거리는 검은 황야를 누빈다는 것은 제게는 매력적이고 근사한 모험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저는 공주님을 뵌 것입니다.”

휘리는 별을 보며 한숨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해 보니 정말 굉장한 모험이었군요.”

밤바람이 율리아나의 머릿결을 흩어놓았고 그래서 율리아나는 머리를 쓸어넘긴 다음 다시 휘리를 바라보았다. 휘리는 짧게 침묵했다가 곧 말을 계 속했다.

“공주님께서는 아버지의 아들이 아닌 저 자신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순간 저는 제가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 었습니다. 꼴보기 싫은 녀석이 저녁 식사로 빵과 감자를 먹는다고 해서 자신은 죽과 콩만 먹겠다고 드는 사람은 바보겠지요. 제가 그랬습니다. 제 속 의 어떤 부분이 아버지를 닮았다고 해서 그것이 아버지인 것은 아닙니다. 그것 또한 저 자신입니다. 저는 타르타니어스이고 싶지 않아서 노이에스가 되려 했지만, 그것은 타르타니어스가 되려는 것만큼 바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휘리는 고개를 돌려 율리아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타르타니어스도 아니고 노이에스도 아닌 휘리였습니다.”

율리아나는 눈을 투명하게 빛내며 휘리의 시선을 마주보았다. 그 눈을 바라보던 휘리는 그 눈이 슬퍼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뭐라 말하기 전에 율리아나는 고개를 돌렸다. 밤바다를 바라보며 율리아나는 어깨를 살짝 떨었다.

“발 때문이야……”

“예?”

“미안해요.”

휘리는 수심 어린 눈으로 율리아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율리아나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으며 그 시선을 피했다. 밤 속에서 다시 어둠 속으로 숨어 든 율리아나는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그때 취해 있었지요.”

휘리는 율리아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율리아나가 하는 말은 휘리가 이해하는 바와는 다른 의미였다. 그녀가 취해 있었던 것은 술이 아니었다.

“그래서 당신에게 그렇게 말했죠. 나 자신도 그러지 못할 거라는 걸 머릿속으로 부정하며, 나는 율리아나 카밀카르가 아닌 유리가 되지 못해요. 세 번이나 두드려봤지만 문은 열리지 않지요. 그렇지만……………”

율리아나는 고개를 들어 다시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휘리는 그 눈이 젖어 있는 것을 보며 가슴을 찌르는 아픔을 느꼈다.

“아직도 취해 있어요.”

휘리는 두 팔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몸을 돌렸고 그리고 천천히 율리아나에게 다가갔다. 율리아나는 가득 아롱진 눈물 너머로 바다만 바라보 고 있었다. 휘리는 두 팔을 천천히 내밀었다.

그러나 휘리가 그녀를 안기 전, 율리아나는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휘리는 그만 가슴이 터져버린 것 같은 기분을 느꼈지만 일어선 율리아나는 여전 히 바다를 보며 말했다.

“서 휘리. 폴라리스를 정복해 주세요.”

휘리는 입술을 꽉 깨문 채 율리아나를 올려다보았다. 만약 입을 열었다면 비명이나 노래가 터져나왔을지언정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갑자기 불 어온 바람이 율리아나의 옷을 펄럭이게 만들고 그 머리카락을 흩날리게 만들었지만 그 소란 속에서 율리아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키 드레이번을 이 세상에서 없애주세요. 그렇게 하겠다면 카밀카르는 모든 전력으로 당신을 도울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끝났을 때 카밀카 르는 위대한 정복왕에게 율리아나 노이에스라는 족쇄를 채우겠지요.”

휘리는 그만 입을 열고 말았다.

“예에?”

비명 같은 반문에도 율리아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카밀카르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알잖아요? 두 미녀가 추파를 보낸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율리아나는 아무런 미련이나 아쉬움도 없는 경쾌한 동작으로 몸을 돌렸다. 율리아나는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갔고 해변에 남은 휘리는 한 손 으로 망토를,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자신의 가슴을 움켜쥔 채 그 뒷모습을 끝없이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