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처 워커 3권 – 5장 거짓된 사랑의 진실 (하) 5

퓨처 워커 3권 – 5장 거짓된 사랑의 진실 (하) 5


5

레이디 케이트 데솔로는 어리둥절했다.

그렇게 해본 적은 별로 없었지만, 케이트 데솔로 양은 침대에서 일어나 얌전히 나이트 가운을 걸치고 거실로 나왔다. 조심스럽게 문을 연 케이트 양 은 잠시 밤중의 거실 모습에 당황하다가, 간신히 낮에 보아왔던 모습을 떠올리고는 마음을 놓았다. 그러고는 거실의 커다란 창문을 통해 그녀를 잠에 서 깨운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내다보았다.

거기에는 켄턴 성벽의 위용 있는 모습과 그 위를 바쁘게 오가는 많은 횃불들이 보였다. 데스나이트들의 흉흉한 노랫소리가 그녀를 질겁하게 만든 것 은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얌전한 케이트 양은 문 밖 출입을 별로 하지 않았고 창을 든 키 큰 경비 대원들을 흠모해 본 경험도 없었다. 그래서 데스나 이트들이 이 도시를 침공한다는 소식을 들어도 케이트 양에겐 모호한 개념밖에 생기지 않았다. 사실 그 모호한 개념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할 만큼 겁 을 집어먹고 있었지만, 오늘 밤 그녀를 놀라 일어나게 만든 것은 그 무시무시한 노랫소리가 아니었다.

그때 하녀 하나가 거실로 들어오다가 케이트 양의 모습을 보았다.

“아가씨? 주무시지 않고……………. 하긴 너무 시끄러워서 못 주무시겠군요.”

“저게 무슨 소리예요, 다이앤?”

하녀 다이앤은 기겁하며 말했다.

“안 돼요. 저건 나쁜 귀신들의 노랫소리랍니다, 아가씨. 저 노랫소리에 신경을 쓰면 귀신들이 영혼을 훔쳐가요. 들으시면 안 돼요.”

케이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나도 그것은 안다는 듯한 당당한 얼굴로 말했다.

“데스나이트의 노래 말고, 다른 노래가 들리는걸. 저건 송가잖아요?”

“예? 아아, 저 노래 말씀인가요.”

다이앤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짓고 말았다. 케이트는 그 미소를 보며 입술을 조금 내밀었다.

“저 노래라면 들으셔도 괜찮을 거예요. 아가씨 말씀대로 저건 송가랍니다.”

“송가를 왜 ‘저렇게’ 부르는 거예요?”

케이트는 ‘저렇게’라는 말에 상당히 매력적인 강조를 두어 자신의 의문을 명확히 했다. 하녀 다이앤은 잠시 이 사태를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했다. 그 러다가 다이앤은 문득 케이트의 모습을 똑바로 보았고,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밤에 잘 자는 편인 케이트 양은 나이트 가운 차림으로 돌아다 니는 무례한 짓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녀의 나이트 가운 차림이 생소했던 탓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케이트는 뒤로는 나이트 가운 자락을 바닥에 질질 끌고, 앞으로는 허리를 묶고 나서 남은 허리끈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어쨌든 그녀는 여덟 살 이었고 그녀의 후견인인 주리오 시장은 여덟 살짜리 꼬마 숙녀의 밤 의상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케이트 양은 주리오 시장님의 시 집간 딸이 남겨준 거대한 나이트 가운을 질질 끌고서 나타난 것이었다.

다이앤은 케이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의 허리끈을 정돈해 주며 말했다.

“글쎄요, 아가씨. 제게 물어보신다면, 저는 대마법사 솔로처는 그 명성만큼이나 괴팍하신 분이라고밖에 대답할 수가 없네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다이앤?”

“그건 말입니다……”

“신물 나도록 말한 거지만, 다시 말해 주겠다. 나는 너희놈들이 싫어!”

“얼얼어어붙붙은은 마마음음! 핏핏빛빛 깃깃발발! 데데스스나나이이트트의의 율율법법!”

“그 해괴망측한 노래는 더 싫어!”

그레이는 고래고래 고함질렀다. 솔로처는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찬성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지금 옆에서 고함을 지르는 그레이의 목소리가 더 신물 날 지경이었다. 게다가 갑주도 없이 셔츠와 바지만 걸친 잠옷 비슷한 차림으로 이 야밤에 성벽 위에 올라와서 고래고래 고함지르고 있는 그레이의 모 습에는 일스 기사단원의 전설적인 영웅의 명성이란 아교로 가져다 붙이고 밧줄로 친친 묶어도 미끄러져 떨어질 지경이었다.

“그레이. 그렇게 외쳐봤자 들리지도 않을 텐데, 주위의 사람들 좀 그만 괴롭히지 않겠소? 그대는 피곤하지도 않소?”

그레이는 와락 고개를 돌려 핏발 선 눈을 들이댔고, 솔로처는 헛바람을 삼켰다.

“나도 피곤해요. 낮 동안 그렇게 날아다녔으니 루미너스의 달빛 아래에서는 자고 싶단 말입니다.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아요. 침대의 색깔이나 시트 의 바느질 방식 같은 것은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잠들면 느끼지도 못하는 거니까.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내 몸 하나 눕힐 침대와, 그리고 고요함입니다. 하지만 저놈들의 저, 우렁차다는 점 이외에는 어떤 미덕도 없는 노랫소리 좀 들어보십시오! 무스타파! 나 조용하지 않으면 잠 못 자는 거 알지? 나가서 한 바퀴 돌고 오자. 저 녀석들을 잠잠하게 해놓지 않으면 난 오늘 밤 절대로 못 자!”

무스타파는 음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때 딤라이트가 입을 열었다.

“묻겠는데, 그건 명령인가?”

“응?”

“명령이 아니라면 사양하겠다. 이 야심한 시각에 데스나이트들의 창끝 위를 비행하겠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잠자리에서 뛰쳐나와 성벽 위에 서 있다는 점에서는 다른 두 기사들과 마찬가지였지만 위아래로 갑주를 정확하게 착용하고 그 위에 망토를 두 르고 손에는 장갑을, 허리에는 검까지 차고 나타나서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저 기사는 저런 차림으로 자나?’ 하는 평가를 받고 있는 딤라이트의 주위 에는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엄숙함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레이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누가 너더러 같이 나가자고 그랬냐? 무스타파에게 말한 거야.”

엄숙함이 박살날 때도 소리가 난다면 지금 켄턴의 성벽 위로는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퍼졌을 것이다. 불쌍한 딤라이트는 이를 부득부득 갈아댔고 주 리오 시장은 예의바르게 그 광경으로부터 고개를 돌려 솔로처에게 말했다.

“대마법사님, 어떻게 할까요? 공격을 시도할까요?”

“솔로처라고 부르시오. 공격은, 글쎄. 로터스 경비 대장의 안색을 보아하니 찬성하고 싶지 않군.”

솔로처는 툭 던지듯이 그렇게 말했다. 주리오 시장은 솔로처의 시선을 따라 계단을 올라오는 로터스 경비 대장을 한 번 쳐다본 것으로 공격이라는 말은 꺼내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의 얼굴은 이 어두운 밤에 조명으로 써도 충분할 만큼 창백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로터스 경비 대장은 말하고 싶었다. 이건 너무하다. 감시망을 세 배로 늘여놓았는데도 데스나이트들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이 꼭 내가 멍 청해서는 아니다. 공포, 절망, 어둠의 데스나이트잖은가. 공포와 절망은 내 알 바 아니지만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데스나이트들을 감시하는 데 실패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잖은가. 그러니 저 녀석들이 저렇게 화살 거리 바로 바깥까지 와서 노래를 불러댄들 나는 아무 책임이 없다. 갤러리 위로 뛰어오 른 로터스 경비 대장은 주리오 시장 앞에 멈춰 서서 당당하게 외쳤다.

“죽여주십시오!”

딤라이트만 감동했을 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주리오 시장 역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경비대원들은 어떻게 되었소?”

“준비는 끝냈습니다. 하지만 저들이 …………….”

“저렇게 성벽 가까이에 진을 치고 있다는 것 때문에 모두들 겁을 집어먹고 있다는 거요?”

“그렇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런 말이 오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대원들 사이에는 지금 끔찍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습니다. 대원들을 통솔하기에도 벅찰 지경입니다.”

“무슨 끔찍한 이야기?”

“말씀드리기도 무섭습니다. 지금 저 데스나이트들의 노래가 끝나면 성벽이 무너질 거랍니다! 그러면 데스나이트들은 곧장 켄턴 시내로 돌격한답니 다.”

주리오 시장은 하얗게 변한 얼굴로 솔로처를 바라보았다. 솔로처는 굵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거 재미있군. 하긴 저렇게 가까운 거리니 조금만 돌격하면 성벽을 강타할 방법도 있겠지. 흐음. 그런 위험한 방법까지도 필요없을지 모르겠군. 녀 석들이 한꺼번에 이 성 안으로 텔레포트해 버리면……………”

“예? 그게 가능합니까?”

주리오 시장의 반문은 거의 비명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솔로처는 태평하게 말했다.

“낮에야 그런 방법을 못 썼지만 지금은 밤 아니오. 검은 안개도 필요없으니 마음 놓고 이동할 수 있겠지. 하지만 걱정 마시오. 데스나이트들은 이 성 안의 모습을 몰라요. 모르는 장소로 텔레포트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주리오 시장은 기나긴 한숨을 내쉬었다. 솔로처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말했다.

“왜 저러는 건지 모르겠군. 기습하려면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고, 그냥 공격하겠다면 저 위치에서 저렇게 멈춰 서 있을 이유가 없고, 자 장가를 불러주려는 거라면 집어치우라는 대답밖엔 해줄 게 없는 음정 박자로군. 왜 저런 이상한 위치에서 노래를 불러대고 있는 건지.”

엄숙한 딤라이트가(주리오 시장은 속으로 그를 그렇게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엄숙하게 말했다.

“저들의 행동 원리는 사람과는 다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흐음? 무슨 말이오, 딤라이트?”

“사람들이라면 죽여서 없애는 것을 목적으로 하겠지만, 저들은 순수한 의미에서의 공포를 더 원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들은 영토를 확장하거 나 세력을 넓힌다거나 하는 개념과는 무관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을 조속히 공략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300년 전의 이야 기이긴 합니다만, 저는 데스나이트가 콜로넬 계곡을 점거한 이후 켄턴과 이파실은 계속 공격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그런데?”

“계속 공격을 받았다는 것은, 그 두 도시가 계속 존속했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데스나이트들은 두 도시를 지상에서 완전히 쓸어버리지 않았습 니다. 그들에게 그럴 힘이 없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그럴 의지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어쨌든 저들은 어둠의 세력이고, 의지나 희망 같은 것과는 무관한 존재들이니까요. 언데드에게 열정과 목표 의식이 있다는 것도 우습지 않습니까.”

솔로처는 조금 놀란 눈으로 딤라이트를 바라보았다.

“그거 합리적인데? 그럴듯하오, 딤라이트. 어떻게 그런 생각을? 아, 참. 당신은 일스 기사단원이지. 흐음. 당신이 프리스트라고도 할 수 있는 기사 라는 것을 잠시 잊었소.”

바로 옆에 전혀 신성 기사답지 못한 당신의 우두머리가 있으니까. 솔로처는 자신의 생각에 빙긋 웃었다. 그 신성 기사답지 못한 기사는 턱을 늘어뜨 린 채 딤라이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햐! 그렇군. 그럼 저 녀석들은 열심히 싸워 이곳을 끝장낼 계획은 없다는 말이렷다? 그냥 우리들을 겁주고 즐거워하기 위해 저러는 거라는 말이지? 그럼 내려가서 자도 되는 거야?”

딤라이트가 그레이의 말에 대답하기도 전에 데스나이트들의 고함 소리가 다시 울려퍼졌다.

“얼얼어어붙붙은은 마마음음! 핏핏빛빛 깃깃발발! 데데스스나나이이트트의의 율율법법!”

그레이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젠장. 저 노래 때문에 안면은 요원하겠군.”

딤라이트는 그제서야 그레이의 말에 대답할 기회를 얻었다.

“끝장낼 생각은 있을 것이다. 다만 인간처럼 조급하게 굴지는 않을 거라는 말이지.”

“응?”

딤라이트는 고개를 돌려 데스나이트들에게 사나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천천히, 그 과정 자체를 즐기면서 이 성과 그 주민들을 파멸시키는 것이 저들의 행동 방식일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전쟁은 비극이기에 빨리 끝난 다. 그리고 빨리 잊으려 노력하고. 하지만 저놈들은 그것만이 유일한 목적이지. 인간이 즐거운 자리를 오래 유지하려 노력하듯이 저 녀석들도 이 성 의 공략을 최대한 즐긴 다음에 완료할 거야. 어쨌든 저들은 헬카네스의 조화와 유피넬의 혼돈의 세계에서 온 자들이니까………….”

딤라이트의 말이 잦아듦에 따라 성벽 위의 공기도 살을 엘 듯이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봄밤의 흥취는 오간 데 없고 성벽 위에 도열한 아처리들은 침 묵 속에서 손에 쥔 화살을 부러뜨릴 정도로 경직했다. 주리오 시장은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솔로처가 말했다.

“좋을 대로 하라지!”

시장 한구석의 장사치들이 외치는 듯한 상스럽고 거침없는 어조였다. 솔로처는 왼손에 쥔 지팡이로 오른 손바닥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내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지. 무릇 마법사라면 유피넬의 저울 눈금을 속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그 말씀에 따라 정진해 온 내가 헬 카네스의 저울추라고 해서 속이지 못할 리는 없소! 그런 내가 여기 있는 이상 저 친구들의 즐거움은 상당히 줄어들고 말걸? 게다가 여기에는 천공의 3기사도 계시오.”

무스타파는 빙긋 웃었다. 저 노인은 이 성벽 위의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 하는군.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작용했다. 핸드레이크의 이름보다 솔로처의 이름에 더 친숙한 켄턴의 경비 대원들은 두 눈 가득 경외감을 담고 솔로처를 바라보았다.

솔로처는 세차게 몸을 돌려 딤라이트를 바라보며 명랑하게 말했다.

“나는 마나의 움직임은 이해해도 군대의 움직임은 잘 이해하지 못하오. 대륙의 북방을 정벌할 때 허즐릿 경이 가장 무서워한 상대는 다름 아닌 바로 나였소. 그가 전략 회의에서 아무리 원대한 계획을 이야기해도 나는 도통 이해하지를 못했거든?”

주리오 시장은 실소하고 말았다. 루트에리노 대왕의 여덟 별 중 하나이자 방대한 병서를 집필함으로써 지금까지도 전략가 지망생들의 원망의 대상 이 되어 있는 허즐릿 경이 솔로처만은 이해시키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다른 이들에게서도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성벽 위의 분위기가 한결 밝 아진 가운데 솔로처는 싱긋 웃었다.

“그러니 이 사태에 대한 설명 좀 부탁합시다. 저 녀석들이 저렇게 되지도 않는 노래를 불러대는 까닭은 우리들의 안면을 방해함과 동시에 신경을 곤 두서게 만들어주고 싶은 욕구에서라고 보는데, 내 생각이 맞소?”

“동의합니다. 말했듯이, 우리들의 공포는 우리들의 피만큼이나 저놈들에게 자극적인 기호품일 테니까요.”

“그럼 목이 쉴 때까지 노래나 부르라지. 아니, 더 좋은 생각이 떠올랐군. 여보쇼, 시장님. 레티의 수도원에 급전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경비 대원들 중 영창에 드나든 경험이 있는 친구들을 좀 모아주시오.”

“예?”

한 시간 후, 레티의 성스러운 형제들은 한밤중의 요청이었음에도 점잖은 얼굴을 한 채 성벽 위에 나타났다. 그리고 경비 대원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 는 경비 대장 로터스의 정확한 안목에 의해 영창을 바라크 드나들듯이 하는 성질 더러운 경비 대원들 20여 명도, 레티의 프리스트들과는 완전히 반대 되는 험악한 얼굴을 한 채 몰려들었다. 주리오 시장의 지시가 떨어지자 ‘성질 더러운’ 경비 대원들은 예외 없이 성질을 부려댔지만 솔로처의 매서운 눈빛 아래에서는 함부로 불평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레티의 ‘성스러운’ 형제들은 기쁜 마음으로 시장의 지시를 받아들였다. 레티의 프리스트들은 비 록 열악한 환경과 되어먹지 않은 학생들에 애먹었지만 성심성의를 다해 지도했고, 그리하여 솔로처가 입이 찢어져라 사악한 미소를 짓고 딤라이트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곤혹스러워하는 가운데 켄턴의 아름다운 밤은 데스나이트들과 성질 더러운 켄턴 경비 대원들의 노래 대결로 치달아 갔다.

“얼얼어어붙붙은은 마마음음! 핏핏빛빛 깃깃발발! 데데스스나나이이트트의의 율율법법!”

“약속된 파멸을 내재한 창조여! 하나된 허무로 회귀할 만물이여!”

“공공포포, 절절망망, 어어둠둠의의 데데스스나나이이트트!”

“레티의 검 아래 스러진 것들에 남겨질 이름은 없다! 파멸의 레티여!”

찬송가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살벌한 레티의 송가를 데스나이트의 노래와 대결시킨다는 황당 무쌍한 계획을 실현시킨 솔로처는 끔찍한 미소 를 지었다.

“이놈들아, 노래는 너희들만 부를 줄 안다더냐?”

하지만 데스나이트들은 전혀 미소를 지을 마음이 나지 않았다. 신의 이름과 그 찬송가가 불리자(그것도 달밤에 성벽 위에서 노래를 부르라는 기괴한 명령 때 문에 폭발하기 일보 직전까지 흥분해 버린 ‘성질 더러운’ 경비 대원들의 험악한 목소리로), 데스나이트들의 진열에서 포효와 비명이 터져나오며 노랫소리가 흐트 러지기 시작했다. 무스타파는 도저히 이 말을 참을 수 없었다.

“흐음. 누구 앞에서는 ‘사악한’ 데스나이트라고 말하긴 힘들겠군요.”

“댁도 아시겠지? 내 성격에서 반인륜적인 모습들은 주로 우리 스승님의 성격에 기인한 것들이오.”

“……무례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당신 스승께서는 부활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군.”

머리카락을 너무 쥐어뜯은 나머지 눈물을 찔끔거리던 딤라이트는 그레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딤라이트는 그레이의 모습을 찾 아보기 시작했고, 눈보다 귀로 먼저 그레이를 찾아냈다. 그레이는 경비 대원들의 선두에 서서 방금 배운 노래를 주먹까지 휘둘러가며 목이 터져라 불 러젖히고 있었다. 그 모습 앞에서는, 장미와 정의의 오렘의 기사로서 다른 종단의 송가를 부르느냐는 등의 준엄한 질책을 할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난폭한 경비 대원들이 불러도 송가는 송가다. 그 속에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모습으로나마 어쨌든 신의 진리가 내재되어 있 었다. 그리고 신의 ‘이름’의 경우에는 그 자체로 신의 권능을 상징한다. 공포, 절망, 어둠의 사악한 권능과 위대한 파괴신의 권능은 비록 노래의 형태 로 부딪혔다고는 하나 그 결과가 처음부터 자명했다. 노래로써 켄턴 시민들을 공포에 몰아넣을 계획이었던 데스나이트들은 그들 스스로가 노래에 의 해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다. 데스나이트들은 진열을 풀고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제 스스로 도취되어 버린 성질 더러운 경비 대원들은 물러나는 데스나이트의 뒤통수를 향해 목이 찢어져라 노래를 불러대기를 멈추지 않 았다. 주리오 시장과 다른 관리들, 그리고 성벽 위의 아처리들과 그들에게 송가를 가르친 레티의 성스러운 형제들이 험악한 표정으로 쏘아보는 가운 데에서도 경비대 합창단은 노래를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로터스 경비 대장은 날이 새는 대로 이 녀석들을 몽땅 영창에 처넣겠다고 마음 먹게 되었다.

그러나 영창에 집어넣어지는 경비대원 합창단의 선두에 천공의 기사 그레이가 앞장서서 걸어야 된다는 사실이 경비대장 로터스를 심히 괴롭혔다. 그레이는 성질 더러운 경비 대원들의 무리 가운데서도 단연 두각을 드러낼 만큼 용솟음치는 정열로 고문에 가까운 목소리를 뽐내며 노래를 불러대고 있었다. 레티의 프리스트들은 그들의 아름다운(?) 송가에 그런 만행이 저질러진다는 데 모두 혀를 깨물고 죽어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끄아아아! 레티이잇! 그으으의 카알로오 주욱느은드아앗!”


“노래로 싸워요?”

“그렇지요, 케이트 아가씨.”

“와! 같이 나가봐요, 다이앤!”

다이앤은 기겁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천만의 말씀! 절대로 안 돼요, 아가씨, 말씀드렸잖아요? 착한 숙녀는 밤이슬에 발을 적셔서는 안 된다고요.”

이 말이 장성한 처녀들에게 주어질 때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겠지만, 케이트는 다이앤이 원하는 대로 그 말을 밤에 나돌아다니지 말라는 말 정도 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케이트는 그 말을 따를 생각이 별로 없었다. 케이트는 아랫입술을 터질 정도로 내밀고는 콧소리를 냈다.

“흐으응. 한 번만. 응? 한 번만 나가봐요. 제발!”

다이앤은 놀랐다. 레이디 케이트는 제발이라는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시장의 피보호자가 된 케이트는 굽히지 않는 성격이었다. 시장의 양녀 비슷한 높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하녀들 사이에 어린 나이에 어떻게 저리 착한지 모르겠다는 칭찬이 오갈 정도로 거만함과 는 거리가 먼 케이트였지만 예리한 자존심은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처지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줄 다이앤은 아니었다. 다이앤은 완강한 얼굴로 케이트를 끌고 가다시피 해서 침대에 데려다 눕혔다. 만 일 케이트에게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높은 자존심이 없었더라면 바닥에 주저앉아 칭얼거려 보기라도 했겠지만, 그녀는 결코 그렇게 품위 없는 짓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랬기에 케이트는 다이앤이 이끄는 대로 다시 침대에 들어가 누웠다. 케이트는 마지막으로 불평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다이앤을 쏘아보았지만, 다 이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이마에 키스를 한 다음 시트를 덮어주고 방을 나갔을 뿐이었다.

케이트는 입술을 앙다문 채 침실의 문을 쏘아보았다. 잠은 전혀 오지 않았다.

비록 그녀를 조숙하게 만든 드높은 자존심은 있었지만, 역시 케이트는 어린애에 불과했다. 그녀는 이대로 잠들어서 죽어버리면 좋겠다는 둥의 생각 을 하고 있었다. 이대로 죽으면 다이앤은 죄의식을 느끼겠지. 크게 슬퍼할 거야. 그리고 나를 데리고 나가지 않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거야. 시장님은 내 무덤 앞에서 다이앤을 크게 꾸짖을 테고.

그러는 동안 케이트는 밖으로 나가서 천공의 기사라는 아저씨들과 무지개의 마법사, 그리고 나쁜 귀신들과 경비대원 합창대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 점점 더 억울하게 느껴졌다. 치! 재미있는 것은 자기들끼리만 하고 나는 끼워주지도 않아. ‘착한 아이는 일찍 자야 해요.’ ‘저기 가서 벽 모퉁이에 서 있어요!’ ‘부끄러움을 알아야지!’ ‘그래서는 안 돼요.’ 흥흥흥! 나는 늦게 잘 거야. 음식을 남길 거야. 테이블 다리를 찰 거야. 접시를 포크에, 아, 아니 다. 포크를 접시에 넣어서 휘저을 거야. 복도에서 깡총깡총 뛸 거야!

케이트는 이런 어마어마한 범죄 모의를 하는 동안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물론 그와 동시에 이런 못된 생각을 하자마자 ‘억’하고 죽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무서움도 느꼈다. 그래서 멀리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 순간 케이트는 심장이 멎을 정도로 놀라며 시트를 머리 위까지 끌어올렸다. 콩닥 거리는 자신의 심장 소리에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케이트는 시트 속에서 그 작은 몸을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나를 잡으러 왔나 봐! 어쩌면 좋아, 어쩌면! 생각만 한 건데. 진짜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히이잉!’

그러나 잠시 후 케이트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점점 가까워지는 그 소리에는 분명히 웃음소리들이 섞여 있었다. 케이트는 천천히 시트 바깥으 로 머리를 내밀었다. 웃음소리와 요란한 고함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흠칫흠칫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자신의 안위는 걱정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 의 왕성한 호기심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다시 나이트 가운을 걸치며(다이앤 왈, “밤에 혼자 있을 때도 숙녀는 품위를 지켜야 해요!”), 케이트는 세심하게 문을 감시했다. 그러나 케이트는 나이트 가운 을 걸쳐야 된다는 것만을 알고 있었을 뿐이었고, 그래서 가운 자락을 걷어올려 허리끈에 집어넣어 두 다리를 다 드러내고 소매는 어깨까지 걷어올리 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가 계획하는 모험에는 활동이 편한 복장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퍽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고 말았지 만, 그녀는 자신이 주리오 시장의 피보호자로서 손색이 없는 품위 있는 모습이라고 여겼다. 그런 ‘품위 있는’ 모습으로 케이트는 책상 앞에 있던 의자 를 끌어다가 창문 아래에 가져다놓았다.

의자 위에 올라간 케이트는 창문을 열었다. 약간 차가운 봄바람이 불어왔지만 케이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이앤이 주워섬긴 규칙들 중에 창문으 로 드나들지 말라는 규칙은 없었기에 양심에 거리낌도 없었다.

그녀의 키에는 약간 높았지만, 케이트는 대담하게 창문 아래의 정원으로 뛰어내렸다. 폴짝. 그러나 밤의 어둠 속에서 케이트는 풀잎을 밟아 미끄러 지고 말았다. 나이트 가운을 걷어올렸기 때문에 드러난 하반신이 땅에 요란하게 부딪히며 두 눈에 불이 번쩍했다. 아이코! 케이트는 엉덩이에 구멍이 났나 만져보고는 낑낑거리며 일어났다.

시장 관사의 넓은 정원에서는 온갖 나무들과 풀잎들이 밤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흥분한 케이트는 그런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디 보자. 어디로 가면 성벽이 가장 잘 보일까? 케이트가 기획한 ‘어마어마한 모험’은 사실 창문 밖으로 기어나와서 성벽을 바라본다는 것으로 끝나 는 단순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침대에 누워 빨리 잠들어야 된다는 다이앤의 지시를 어기는 것임과 동시에 밤에 밖을 나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규 칙까지도 어기는 것이었기 때문에, 케이트는 상당한 스릴을 맛볼 수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케이트는 정원 한구석에 있는 버드나무를 떠올렸다. 여름이면 그 아래에 자리를 펴고 앉아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거나 하는 곳이라 그녀가 퍽 좋아하는 나무였다. 케이트는 그 위에 올라가면 성벽도 잘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잠깐. 다이앤이 나무를 오르지 말라고 했던가? 그런 말은 안 했나?”

갈팡질팡하며 고민하던 케이트는 그만 포기해 버렸다. 그런 말은 안 했을 거야. 우아하게 결정을 내린 케이트는 익숙하지 않은 밤의 정원을 가로질 러 버드나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못 보고 지나친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케이트의 눈앞에 버드나무가 나타났다. 케이트는 만족스럽게 나무껍질을 만져보고는 나 무에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버드나무가 갑자기 자랐나?’

머리가 굵은 어른이라면 케이트의 의문에 적당한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밤에는 눈에 들어오는 사물이 어둠에 가려 거리가 더 멀게 느껴진다. 그러 나 케이트는 그런 대답을 도출해 낼 수 없었고 그래서 많은 고민 끝에 간신히 앉을 만한 자리에 기어올랐지만, 오르고 나서는 그런 의문 같은 것은 싹 잊어버렸다.

‘와! 다 올라왔다.’

케이트는 나뭇결에 쏠린 팔다리를 열심히 만지작거리면서도 벅찬 기쁨에 어깨를 떨었다. 자신의 힘만으로 까마득히 높은(실제로는 성인 남성의 머리 높 이 정도 되는) 이곳까지 올라왔다는 것이 자랑스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흥분을 가라앉히며 케이트는 성벽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케이트는 곧 좌절하고 말았다.

무성하게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들은 그렇지 않아도 어두운 시야를 대폭 가렸다. 나뭇가지가 바람에 살랑거릴 때마다 성벽 쪽의 횃불이 언뜻언뜻 드 러나는 것은 그녀를 더욱 약오르게 만들었다. 비키란 말이야! 케이트는 소리 없이 나뭇가지들에게 외쳤지만 버들가지들은 케이트를 놀리듯 미풍에 천천히 흐느적거릴 뿐이었다.

게다가 창문을 빠져나오고 정원을 가로지르고 나무에 기어오르는 이 굉장 무쌍한 모험을 치르느라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데스나이트들과 경비 대원 들의 거친 노랫소리는 이미 멎어 있었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흥얼거림뿐이었다. 케이트는 너무 약오르고 분해서 눈앞이 하얗게 변할 지경이었다.

‘이이이…………, 나빠! 다이앤은 나빠! 버드나무도 나빠! 나쁜 귀신들도 나쁘고 마법사도 다 나빠!’

“거기 누구냐.”

하마터면 나무 아래로 추락할 뻔했지만 나뭇가지를 확 끌어안았기에 간신히 떨어지지 않았다. 케이트는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목소리가 들려온 쪽 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더욱 겁을 먹었다.

달빛 아래 드러난 것은 무장을 갖춘 남자의 모습이었다. 남자는 손에 달빛을 받아 번뜩이는 것이 쥐고 있었다. 케이트는 그것이 롱 소드라는 것을 깨 닫고 기절할 지경이었다. 남자가 걸친 망토는 밤바람에 나부끼며 그의 실루엣을 더욱 크고 무시무시해 보이게 만들었다.

남자는 다시 끔찍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무 위의 너, 말해라. 누구냐? 말하지 않으면 벤다.”

“헉, 케, 케이트인데요………….”

남자는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올 줄은 몰랐기에 경악하고 말았다. ‘야심한 밤에 나뭇가지 사이에 앉아서 흐느끼는 소녀의 목소리로 말하는 희끄무레 한 것’은 남자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남자는 검을 집어넣지 않은 채 주의 깊게 접근해 왔다. 케이트는 그가 검을 뽑아든 그대로 걸어오자 이제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고,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짜냈다.

“저, 저, 저는 케이트 데솔로, 케이트 데솔로예요. 주리오 시장님의 피, 피보호자고, 다, 다이앤의 반짇고리에서 파란 실을 훔친 것은 잘못했어요. 부끄러움을 알아요!” 

케이트는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몰랐지만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는 말은 많이 들은 터였다. 

“마, 많이 훔치지도 않았어요. 1큐빗도, 그 정도도 안 될 거예요! 고, 공책에 잉크를 흘린 것은 제가 아니고 고양이가………….”

“주리오 시장님의 피보호자 케이트 데솔로라고………… 하셨습니까?”

남자는 오로지 그만이 할 수 있는 정중하고 엄격한 태도로 말했다. 케이트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남자에게는 자신이 잘 보이지 않을 거라는 것을 깨닫고는 말했다.

“예! 예! 그래요. 그래요!”

남자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다가 롱 소드를 다시 검집에 집어넣었다. 찰칵. 롱 소드가 검집에 들어가며 나는 소리를 들으며 케이트는 눈물이 나올 정 도로 기뻤다. 남자는 바람에 나부끼던 망토를 휘잡아 등 뒤로 추스르고는 정중하게 말했다.

“저는 일스의 딤라이트 이스트필드라고 합니다. 딤라이트 경이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레이디 케이트 데솔로께서는 이 야심한 시각에 이 런 이해하기 어려운 장소에서 무엇을 하시고 계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구, 구경하려고요. 딤라이트 경 아저씨.”

이 호칭에 갑주 아래의 뱃가죽을 부르르 떨면서도 딤라이트는 웃지 않았다. 대신 딤라이트는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했다.

“허락하신다면 나무 아래로 내려드리고 싶습니다만.”

“예? 예…….”

케이트가 뭐라고 명확한 대답을 하기도 전에 딤라이트는 케이트의 허리를 붙잡아 번쩍 들어올렸다. 잠시 허공에 뜬 기분에 아찔했는가 싶자 케이트 는 이미 나무 아래로 내려졌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주저앉을 뻔했지만 케이트는 나무를 짚으며 간신히 주저앉지 않았다. 단단한 땅을 딛고 서게 되 자, 그녀의 자존심도 되살아났다.

그래서 케이트는 먼저 새침하게 기침을 한 다음 실례했다는 듯이 소맷자락으로 입가를 가볍게 톡톡 두드리고서 말했다.

“경황중이라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렸군요. 제 이름은 들으셨다시피 케이트 데솔로라고 합니다. 딤라이트 경이라고 하셨던가요?”

딤라이트는 잠시 케이트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조금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렇습니다. 일스의 기사 딤라이트 이스트필드가 레이디 케이트 데솔로에게 인사 여쭙습니다.”

“만나뵈어서 영광이에요, 딤라이트 경.”

“감사합니다. 레이디 케이트.”

딤라이트도 케이트도 전혀 어색해하지 않았지만, 누군가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10년 묵은 원수에게라도 찾아가서 이야기해 주고 싶었을 것이다. 달 빛도 좋고, 봄바람도 좋았고, 정원수들이 연주하는 밤의 음악도 그럴듯한 가운데, 위풍당당한 기사가 나이트 가운을 둘둘 말다시피 입고 있는 소녀에 게 예법에 맞게 인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레이디 역을 맡은 케이트는 매끄럽게 말했다.

“일스의 기사라고 하셨던가요? 그러하다면 이 저택에는 어떻게 찾아오셨고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 묻고 싶은 것은 저입니다만?”

딤라이트는 레이디로 하여금 고개를 꺾어가며 올려다보지 않도록 배려했다. 즉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말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레이디 케이트. 저는 우연한 기회에 이 도시를 찾게 되었고 지금은 이 도시가 직면한 데스나이트들과의 대전에 미력한 힘이나 마 일조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지나던 까닭은 마구간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마구간에는 어인 용무가 있으신지요?”

“제 페가수스 헐스루인이 그곳에서 쉬고 있습니다. 조금 전 데스나이트들은 진열을 풀고 후퇴했습니다만 동료들과의 협의 아래 그들의 동향을 감시 하기로 결정했기에………….”

“페가수스요!”

케이트는 간신히 지켜오던 품위를 잊고는 팔짝 뛰고 말았다. 딤라이트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습니다. 레이디 케이트.”

“그러면 딤라이트 경은 페가수스를 타고 다니세요? 정말로?”

“예, 레이디 케이트.”

케이트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빛나는 눈으로 딤라이트를 바라보았다. 딤라이트는 엄격한 표정 그대로 케이트를 마주보았지만 이제는 슬슬 일어 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딤라이트는 그녀를 방에 데려다주겠다고 말하려 했다. 그때 케이트가 갑자기 외쳤다.

“저 순결해요!”

딤라이트는 혀를 깨물어버리고 잠시 고통을 달랬다. 고뇌에 찬 기사의 표정을 정확하게 연기해 내던 딤라이트는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무슨 말씀입니까?”

“저 순결한 처녀예요. 그러니까 페가수스도 저 싫어하지 않을 거예요.”

“……혹, 유니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 아, 그건 유니콘인가? 그럼 페가수스는 순결하지 않은 여자를 좋아해요?”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딤라이트는 그제서야 이 어린 레이디가 순결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이 나오는 까닭도 짐작해 버 렸다. 케이트는 기뻐 날뛰며 말했다.

“그럼 상관없겠네요! 마구간으로 가신댔죠? 나실 거죠? 하늘을? 페가수스로? 지금?”

케이트의 질문은 뒤죽박죽이었지만 딤라이트는 이해할 수 있었다.

“예, 그렇습니다. 레이디 케이트. 그런데… 혹여………….”

“저도 태워주세요!”

“안 됩니다. 레이디 케이트.”

“왜요! 저 아까 저녁에 목욕했어요. 순결하다고요.”

확실해. 딤라이트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치수 모자란 레이디가 아는 순결은 이런 의미였군.

“실례 말씀 여쭙겠습니다만 레이디의………… 침모는 누구인지요. 그 다이앤이라는 이름이 레이디의 침모를 가리킵니까?”

딤라이트는 거의 ‘유모’라고 말할 뻔했지만 케이트의 도도해 보이는 턱이 한껏 올라간 순간 재빨리 말을 바꿀 수 있었다. 그리고 케이트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런 제스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난 것에 크게 감명받았다.

“예. 그런데 제 침모는 왜요?”

딤라이트는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히 허락을 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딤라이트는 그 다이앤이 침모인지 하녀인지야 알 도리가 없지만 절대로 허락할 리 없다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침모에게 허락을 얻어야 된다는 말 은, 케이트에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그녀의 엉덩이를 후려칠 수 있는 사람에게 그녀를 맡겨버리려는 의도를 다분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딤라이트에게는 불행하게도, 케이트는 천공의 기사의 서툰 말장난에 놀아날 소녀는 아니었다. 명백한 이유나 합리적인 설명은 할 수 없었지 만 케이트는 다이앤이 그것을 허락할 리가 없다는 것을 단숨에 이해했다. 그래서 케이트는 완강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저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기에 미숙해 보이시나요?”

딤라이트는 투정이나 심술, 눈물, 혹은 억지 등에 대해서는 조금씩이나마 고려해 두고 있었지만 설마 이 조그만 레이디의 입에서 이런 고차원적인 항의가 나올 줄은 몰랐다. 그레이 휠드런이었다면 ‘인마, 그럼 네가 스스로의 행동을 결정할 능력이 있는 성인이냐?”라고 말했을 테지만 딤라이트 이 스트필드는 도저히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만일 케이트의 이 말이 그녀가 몰래 드나들곤 하는 주리오 시장의 서재에 꽂혀 있는 책에서 나온 것이라 는 것을 알았다면 딤라이트의 당황도 상당히 줄어들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딤라이트는 여덟 살짜리 레이디를 상 대로 합리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우를 저지르고 말았다.

“물론 아닙니다(여기서 웅변가 딤라이트는 이미 낙제감). 레이디의 의지와 그 의지를 실현시킬 권리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험악한 교사였다면 학생 딤라이트에 대해 체벌도 서슴지 않았을 대목). 하지만 무릇 한 공동체에 귀속된 개인은 공동체 전체의 선을 따를 의무도 권리와 아울 러 가지는 법입니다(어떤 웅변술 강의에서라도 학생 딤라이트를 퇴학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레이디 케이트는 천공의 기사가 저지르는 것과 같은 우는 저지르지 않았다. 그녀는 경쾌하게까지 느껴지는 단도직입적인 태도로 자신의 의 지를 전달했다.

“태워줘요오! 제발!”

딤라이트는 케이트가 말하는 제발이라는 단어가 어느 정도로 중요한 의미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녀의 찢어지는 고함 소리에 그만 함락당하고 말 았다.


“하아, 그렇게 보이지는 않을 겁니다만 무스타파가 가장 난잡하지요.”

그레이는 술잔을 잡은 채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성벽 위에서 고생한 경비 대원들과 아처리, 그리고 레티의 프리스트들을 위로하기 위해 주리오 시장 이 독한 마음을 먹고 마련한 술자리는 성문 바로 안쪽의 광장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경비 대원들은 곳곳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소를 통째로 구워대는 호기를 부리고 있었다. 조금 전 케이트가 침실에서 들었던 소리는 잔치 재료를 가지러 온 경비 대원들의 소란이었다.

이 잔치는 요 며칠 동안 데스나이트들과 격전에 시달린 켄턴 경비 대원들에 대한 위로도 겸하고 있었다. 비록 전선을 질타하며 병사들을 독려해 본 경험은 없지만, 주리오 시장은 이런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전투 중인지라 모든 병력이 다 참석할 수는 없었다. 예비대로 뽑힌 경비 대원들은 눈물을 삼키며 성벽 주위에서 대기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레이는 술잔을 몇 번이나 연거푸 들이키고는 불쾌해진 얼굴로 말했다.

“신기할 지경입니다. 흐음. 옛날 일이지만, 일스 기사단으로 보내져 오는 편지 중 3분의 1은 무스타파에게 오는 러브레터였지요. 저 목석 같은 녀석 이 어쩌다 퍼레이드나 무도회 같은 데라도 한번 참석하고 나면 그 다음날은 일스의 우편 행정이 마비될 지경이라는 농담도 있었지요. 아, 이런 농담 도 있었습니다. 일스 기사단이 위기에 빠지더라도 무스타파의 애인 부대가 출동하면 당장 부대가 두 배로 늘어날 거라는. 그래서 일스 기사단은 상승 (常勝)이라지요.”

무스타파는 이런 자리에는 이런 농담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빙긋 웃으며 그레이가 떠드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숨겨진 비 사에 귀를 기울이던 주리오 시장과 켄턴 시민들은 지대한 호기심을 내비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켄턴 사람들은 무스타파에게 짓궂게 그게 사실이냐고 물었지만 무스타파는 그저 웃으며 모호한 대답으로 일관했다. 그레이는 한탄하듯이 말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저 시커먼 괴물을 타고 다니는 또 하나의 시커먼 괴물 녀석이 왜 그렇게 인기가 있었는지. 킨 크라이를 보세요. 얼마나 우아합니 까?”

주리오 시장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우아하다면 페가수스를 빼놓을 수는 없을 텐데, 딤라이트 경의 여성 편력은 어떠했습니까?”

그 질문에 그레이와 무스타파는 동시에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솔로처도 빙긋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레이는 숨넘어가는 소리로 말했 다.

“그, 그 친구 말입니까? 술 마시라고 불렀더니 데스나이트들을 감시해야겠다고 가버리는 녀석이? 물론 좋은 친구지요. 아마 그의 머릿속 생각은 이 럴 겁니다. 우리들이 편히 술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자신이 감시를 맡겠다는, 뭐, 그런 기특한 생각. 그런 딱딱한 녀석에게 무슨 여자가. 그 녀석은 여 자를 만날 때도 관등성명을 대고 오렘의 축복을 요구한 다음 절도와 품위로 주위를 장식하고 나서야 이렇게 말할 겁니다. ‘다음에 만나면 안 되겠습 니까? 지금 바빠서요..”

그레이는 딤라이트의 엄격한 말투를 흉내냈고, 결과적으로 주위의 켄턴 시민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그레이 역시 자신의 말에 한참 웃은 다음 말했다.

“그 친구는 자기 페가수스의 이름도 헐스루인으로 붙여서 다른 여자의 접근을 막아버린 친구입니다.”

“어? 그렇게 된 겁니까? 헐스루인 공주를 애모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알아주기를 바란 거죠. 하지만 우리들은 잘 알죠. 그 친구의 주변머리로는 굉장한 재치였습니다. 자기 페가수스에 바이서스 공주님의 이름 을 붙여버리면, 이웃나라 공주님과 경쟁할 자신이 없는 여자들은 다 떨어져나가게 되는 거죠. 아무래도 그 친구는 여자를 싫어하나 봐요. 혹시 어린 애를 좋아하나?”

이번에도 켄턴 시민들은 웃고 말았다. 엄격한 기사 딤라이트와 미성년자 애호가라는 말은 절대로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마음놓고 웃을 수 있었다. 역시 싱긋 웃으며 술잔을 비우던 무스타파는, 그러나 술잔을 다 비우고 나서도 고개를 내리지 못했다.

그레이와 주리오 시장은 무스타파가 이상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무스타파는 술잔을 다 비운 마지막 자세로 하늘을 쏘아보며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술잔은 아래로 내려왔지만 무스타파의 얼굴은 그대로 하늘을 쏘아보는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갑자기 말했다.

“그레이.”

“응?”

“그거 농담 아니었나? 나는 몰랐는데, 정말 그랬어?”

“무슨 말이야?”

“딤라이트가 어린애를 좋아하나?”

그레이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러나 한번 더 농담을 했다.

“야! 몰랐어? 그 친구는 변태야. 그래서 다 큰 처녀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고. 그 친구는 나한테도 간혹 이상하게 뜨거운 눈빛을 보내던데? 어 쩌면 남자를 좋아하는 걸지도…………..”

“………맙소사, 오렘이여!”

그레이는 그제서야 무스타파가 그냥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떠 있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레이는 상체를 젖혀 하늘을 보았고, 그대로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꽈당!

그때 밤하늘에서 페가수스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켄턴의 밤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딤라이트 경의 모습을 올려 다보았다. 주리오 시장과 다른 켄턴 사람들은 검은 하늘을 희게 끊어내는 그 흰 날개를 보며 감탄했다. 하지만 천공의 3기사처럼 굉장한 시력을(하늘 의 기사인 만큼 시력이 엄청나게 좋아야 한다.) 갖고 있지는 않은 그들도 페가수스 위에 딤라이트가 혼자 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까지는 알아볼 수 있었 다.

주리오 시장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어, 앞에 무슨 꾸러미 같은 것을…………, 음? 사람인가? 누군가를 태우고 가시는군요. 누구지요?”

솔로처는 시력이 시원찮았다. 어두운 마법 연구실에서 밤낮 없이 책을 읽고 해괴한 것을 끓여대며 독한 증기를 뒤집어쓰는 마법사들에게는 시력 저 하가 일종의 직업병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솔로처는 멀뚱멀뚱한 눈으로 무스타파를 돌아보며 말했다.

“음? 혼자가 아닌가? 누굴 태우고 있소?”

“….말씀드리기 그렇습니다만, 음…………, 어디서 찾아냈지? 어쨌든 페어리나, 아니, 어린 엘프라고 생각될 정도로 깜찍한 소녀를 태우고 있는데…”

“뭐요? 소녀?”

“구해야 돼!”

만취한 그레이는 뒤로 쓰러진 자세 그대로 하늘을 향해 외치더니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앉아서 술잔을 비우고 있는 무스타파의 어깨에 올라타면 서 외쳤다.

“가자, 킨 크라이! 소녀를 구하는 거야!”

무스타파는 으르렁거리며 그레이를 집어던졌고 그레이는 나가떨어지며 외쳤다.

“반역이다!”

그레이와 무스타파가 이렇게 우정을 다지고 있는 동안 솔로처는 다시 눈을 잔뜩 찌푸린 채 하늘을 쏘아보다가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솔로처는 다시 고개를 내려 주리오 시장을 바라보았다. 대마법사의 얼굴에 드리워진 곤혹스러운 표정에 시장은 놀랐다.

“시장님. 이거 이상한 우연이군. 혹시 케이트라는 소녀의 후견인이시오?”

“예? 어, 그렇습니다. 제 가신 중 하나의 딸인데 부모가 모두 타계한 후로 제가 보살피고 있습…………, 예? 그럼 저게 키티 데시입니까!” “키티 데시?”

“아, 아니 케이트 데솔로입니까?”

한편 상공에서는 딤라이트가 솔로처가 보내온 메시지를 받고서는 자신의 가슴 앞에 앉아 있는 소녀에게 질문하고 있었다.

“레이디 케이트, 혹 키티라는 이름으로 불리십니까?”

밤하늘의 정취에 넋이 나가 있던 케이트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웅얼거리듯이 대답했다.

“키티 데시? 그 이름 싫어요. 꼭 달리는 고양이 같잖아요.”

“실례했습니다.”

딤라이트는 다시 솔로처의 메시지에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케이트 데솔로, 일명 키티 데시라는 소녀와 함께 비행중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시장님의 피보호자라고 들었습니다. 위험은 충분히 알고 있는 만큼 데스나이트들에게 지나치게 접근하는 일은 삼갈 것입니다. 예? 죄송합니다만 미성년자 애 호가라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러나 솔로처는 딤라이트의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주리오 시장을 향해 황당한 표정을 보냈다.

“케이트…………… 데솔로라고요?”

“하, 하하. 예, 솔로처의 케이트, 멋진 이름이잖습니까? 대마법사님의 시대 이후로 저희 도시에는 그런 성이 몇 개 생겼지요. 그리고 케이트라는 이 름은 이 도시에서 딸 가진 부모의 첫 번째 고려 대상이 되었습니다. 시집간 제 여식도 케이트라는 이름을 가졌지요. 아마 대마법사께서 ‘케이트야!’라 고 부르시면 일개 소대에 육박하는 케이트가 몰려들 겁니다.”

주리오 시장은 그렇게 말해서 솔로처를 실소하게 만든 다음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치 케이트가 보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럼 딤라이트 경께서는 페가수스 헐스루인을 데리러 가는 길에 케이트를 만나셨나 보군요. 그럼 뻔합니다. 케이트가 태워달라고 졸랐겠지요. 고집이 있는 아이랍니다.”

쓰러진 그레이의 몸 위에 올라탄 채 목을 조르고 있던 무스타파가 말했다.

“음. 그래도 어린애를 태우고 저 위험한 하늘을 날다니, 딤라이트가 무슨 정신인지 모르겠습니다.”

“적당히 조르고 놔주시오. 댁의 우두머리를 두 번 죽이겠소. 글쎄, 하늘을 나는 일이라면 천공의 기사보다 우수한 보호자가 어디 있겠소?”

솔로처는 그렇게 말한 다음 고개를 들어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페가수스의 흰 날개를 바라보며 말했다.

“흐음. 저 소녀는 300년 전의 어떤 레이디도 이룩하지 못한 일을 성취했군. 켄턴의 케이트는 마법의 이름임에 틀림없어.”

역시 켄턴의 케이트에 의해 데스나이트와 싸우게 된 노마법사의 혼잣말은 꽤나 적절했다. 주리오 시장은 다시 부지불식간에 웃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