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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1부 – 44화


사실… 장명이 구월화의 가족들을 어지간한(?) 곳에 감금해 놓았다면 이렇게 여러 사람 모아놓고 따져 볼 것도 없었을 것이다.

이 중에서 대충 아무에게나 ‘너, **라는 문파에 가서 사람들 데려와! 가능하면 지키는 인간들 죽이지 말고…’ 정도만 얘기해도 간단하게 해결되었을 것이다.

헌데, 그렇게 간단히 해결될 수가 없는 것이… 구월화 가족들이 감금되어 있는 장소가 하필이면 관공소(?)라는 점이 문제였다.

구월화의 진술을 토대로 월영당에게 조사를 시킨 바로는 지방 관리 중의 한 명이 장명과 호형호제하는 사이인데, 바로 그 자 관할의 뇌옥에 구월화 가족들이 ‘죄인’으로 감금되어 있단다.

장명 놈은 그동안 몇몇 썩어빠진 정파 인사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입지를 높이는데 지 마누라인 구월화의 쭉쭉빵빵한 육체를 이용한 미인계를 썼다.

그 과정에서 구월화가 그녀에게 푹 빠진 놈을 이용해 가족들을 구한다거나 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나름대로 잔머리를 굴린 듯싶었다.

나처럼 이곳 물정에 어두운 자도 알고 있는 강호의 상식 중의 상식이 관(官)과 강호인은 상호불가침(相呼不可侵)이라는 것. 아무리 최강의 조폭 연합 비화곡이라도 국가를 상대로는 좀…

그래서… 이번 작전을 말썽 없이 진행하려면 작전 지휘관으로 일반적인 간부들 성격과는 좀 다른, 신중한 사람이 필요할 듯싶었다.

“지금부터 내가 호명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나서도록… 먼저, 만독당(萬毒堂) 당주 독수라(毒修羅) 마상민..!”

내게 호명되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는 백발 노인… 앉으나 일어서나 그게 그거인 듯 보이는 꾸부정한 체형에 무슨 험악한 사고를 되풀이 당한 듯 심각하게 일그러지고 비틀린 괴이한 얼굴을 한 노인인데도 이상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어 평소에는 잘 눈에 띄지도 않는다.

총관 말에 의하면, 독(毒)을 주로 쓰는 사람들은 상대의 방심을 파고드는 심리적 트릭의 명수이기 마련인데, 저 마상민 노인은 그런 점에서 아주 탁월한 인물이라고 한다.

마상민 노인이 이끄는 만독당의 목표가 된 고수들은 보통 미리 만독당의 선고를 받기 때문에 엄청나게 주변을 신경 쓰고 조심하지만, 결국엔 예고된 날짜에 어김없이 독살되기 마련이라고 한다.

“미염당 당주 참절마녀 고리라!”

조금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일어서는 예의 청순 미녀 고리라…

“외당 당주 옥면마수 고시기!”

짜슥…! 같은 고씨인 미염당주를 보며 싱글거리며 일어서는 군. 하여간 저 인간은 머리 속에 여자 꼬시는 일만 가득 찬 듯… 응? 몽몽이 제공하는 에너지 그래프를 보니까 내공이 2갑자가 넘네..? 하긴, 명색이 중간 보스인데 단순한 호색한은 아니겠지?

“이 세 명만 남고 모두 돌아가도 좋아. 그리고 이 작전 진행 중에는 이들이 원하면 다른 간부들도 무엇이든 지원해 주어야 한다는 점을 알아두도록..!”

수십 명의 간부들이 우르르 몰려 나가고 나자, 이제 대청각 안에는 내가 선택한 3인과 총관 대교 자매 총 7인이… 아참, 나까지 총 8인만이 남아서 다소 한산한 기분이 든다.

“우선… 고시리 당주가 좋아하는 미녀 한 명을 모두에게 소개해 주어야겠군.”

내가 말하자마자 눈치 빠른 미령이가 재빨리 뒤쪽의 밀실로 들어가 구월화를 데리고 들어왔다.

고시리 당주가 작게 휘익-! 휘파람을 불었다.

“이 고모의 두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미녀는… 해남파의 삼홍랑 구아가씨가 아니신가!”

천연덕스럽게 유부녀를 아가씨라고 부르는 고시리 당주에게 구월화는 특유의 요염한 미소로 화답하며 입을 열었다.

“천하의 옥면공자께서 이 하찮은 계집을 알고 계실 줄은 몰랐네요.”

고시리는 구월화가 자신을 옥면마수라 부르지 않자, 먼저 포권하며 쪼개느라 정신이 없었다.

“쓸모 없는 해남파 인사들 중에서 가치가 있는 사람은 오직 삼홍랑 한 분이니 어찌 내가 모를 리가 있겠소.”

이 인간 하는 꼬라지 보니, 천하의 미녀라고 하면 거의 다 수소문해서 알아놓은 모양이다. 그중에서 몇 명이나 손에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구월화는 고시리의 아부성 발언에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만독당주 마상민에게 먼저 정중하게 포권하며 인사했다.

“만독당의 주인이시며 실체를 알 길이 없는 신비로운 어르신이라 들었는데, 오늘 제가 안목을 넓히게 되었습니다.”

“어르신은 무슨… 그냥, 마노인이라 부르시구려.”

사실 나도 만독당주의 목소리는 처음 들어보는데, 뜻밖에도 아주 소박하고 인자한 음성이었다. 외모로 봐서는 무지하게 음침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을 줄 알았는데…

“후… 같은 여인인 제가 봐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이니, 세외미(世外美) 고리라님이 분명하겠군요.”

“강호의 호사가들이 그저 그렇게 부르는 것이지요. 삼홍랑님 이야말로 제게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분인 것 같네요.”

흠… 서로 꽤나 정중하고 정감 있게 인사를 나누고 있군. 누가 보면 같은 계열 사람들인 줄 알겠다.

“인사들 끝났으면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나는 우리 측 3인을 정면에 앉히고, 구월화는 총관과 함께 우측에 자리하도록 했다.

“뭐, 짐작했겠지만… 바로 이 구월화의 가족들을 구출하는 것이 자네들이 해야 할 일이야. 당주급 3인을 동원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신경 쓰는 작전이라는 것은 알 만할 것이고… 먼저, 이번 작전의 책임자는 만독당주로 하겠어.”

내 말이 끝나자 만독당주는 천천히 좌우의 두 당주들을 돌아보았다. 같은 계급이기는 하나, 만독당주가 나이나 경력 모두 현격히 앞서서 그런지 다른 두 당주들도 별 불만이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선택한 세 명에 대해 보충 설명하자면…

우선, 무협지에 거의 틀림없이 등장하는 음침하고 기괴한 용모의 노인, 만독당주…

만독당과 그 주인인 독수라 노친네가 강호에 치명적인 악명을 떨치는 계기가 되었다는 40년 전의 일화가 있다.

당시 혼자 독학으로 무서운 검법을 만들어내 명성을 떨치던 고수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협객행(俠客行)에 재미를 들려 비화곡 소속 고수들을 몇 명 해치웠던 모양이다.

그로 인해 비화곡에서 죽일 사람에게 미리 보내는 사망첩(死亡帖)을 받았고… 그걸 받자마자 사태의 심각함을 깨달은 이 사람은 당장에 체면이고 뭐고 대홍산 지하 동굴로 잠적해 버렸단다.

동굴로 들어간 다음 입구를 파괴했기 때문에, 사망첩에 명시된 날짜가 지난 후에 그의 친구들이 몇 시간에 걸쳐 입구를 파헤치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는 이미 독살당한 후였다고 한다.

동굴 안으로 누가 들어갈 수도, 들어간 흔적도 없는데 이루어진 독살 사건… 꼭 밀실 추리물 같은 이야기지만, 하여간 그래서 강호에는 독수라의 독이 미치지 못하는 곳은 저승밖에 없다는 무협지틱한 말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조직의 짱이라고 해도 실무자의 노하우를 캐물을 수는 없는 관계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밀실 살인’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상당히 치밀한 두뇌파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지휘관으로 선택한 인물이다.

다음은 미염당주…

구월화가 말했듯, 그녀의 또 다른 별호는 ‘세외미(世外美)’이다. 강호의 호사가들이 천하 미녀를 선발할 때 그녀는 사마외도의 인물이라는 이유로 제외되었었다.

그런데… 그녀의 미모에 대한 소문이 계속되면서, 천하 미인들의 반열에 그녀가 빠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여론이 결국 그녀를 ‘세상 밖의 미녀’라는 명호로 부르게 되었다.

그녀 산하의 미염당 요원들도 모두 으악! 소리나게 예쁜 소녀들로서, 평소엔 천하 각지에 암약하면서 그녀의 명령에 따라 요인들을 유혹하여 암살하거나 이용해 먹는다고 했다.

뭐…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비리 공직자들이 돈과 여자에 약한 것은 상식이다. 만약의 경우가 발생하면 공직자들 입을 막는 역할로 미염당이 필요할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외당의 고시리 당주…

외당(外堂)은 비화곡의 대외적인 활동을 전반적으로 처리하는 곳이다.

소위 조폭들이 밖으로 싸돌아다녀야 하다 보니, 외당 당주와 요원들은 변장에 능하다고 한다.

이 옥면마수라는 인간은 스스로 명호를 ‘옥면공자(玉面公子)’로 바꿔 부를 만큼, 평소엔 지 잘난 맛에 변장도 안 하고 여자들을 꼬시고 다니는 문제아… 아니 ‘문제 어른’이긴 하지만, 마음먹고 변장을 하면 자기 부모도 몰라 볼 정도로 ‘변신’에 가까운 능력을 발휘한다고 했다.

음… 이 고시리 당주가 필요한 이유는 좀 특별한데, 상황에 따라 필요할 수도 있고 필요 없을 수도 있다. 뭐, 그건 나중에 다시 설명하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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