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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1부 – 48화


  • 48 –

난 우선 혈랑대가 단체로 거처하고 있다는 건물로 찾아갔다.
찾아간다고 표현했지만, 내 직속 호위대인 만큼 거주지도 무지 가깝다.
내 처소가 있는 건물 뒤쪽의 단층 건물인데, 꼭 구형 군대 막사 같이 생겼고 지난번에 보니 내부 구조도 영판 군대 막사였다.
양쪽으로 침상과 관물대가 주욱 늘어선… 그래서 웬지 정이 가지만 또 한편으론 ‘지겨워서’ 쳐다보기 싫어지기도 했다.

연락을 받고 나는 듯 마중을 나온 혈랑대주 흑랑검마(黑狼劍魔) 정천우.
삼십대 중반 정도로 여겨지는 강인한 인상의 사내.. 왼쪽 눈에 안대를 하고 있는 일명 애꾸눈 남자인데,
검은 안대 밑으로 흉터가 엄청 굵직하게 위에서 아래로 그어져 있는 것이 살벌한 인상에 한층 강도를 높여 주고 있었다.

그 살벌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약한 모습이랄까?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어쩔 줄 모르며 날 반기는 모습을 대하고 보니,
멀지도 않은데도 처음 왔던 시기에 한 번 와보고는 지금까지 무심했던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혈랑대 무사 두 명 정도 쓸까 하는데.. 뭐, 그동안 다들 얼굴 본지도 꽤 된 것 같아서 직접 왔어.”

“곡주께서 직접 왕림해 주신 것만으로도 저희 혈랑대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것입니다.”

검은 안대부터 시작해서 검은 망토에 검은 옷.. 그래서 흑랑(黑狼)이라고 불리는 모양인 정천우를 따라 막사(?)로 들어가 보니 예상대로 분위기가 난리가 아니다.
양쪽 침상에 수십.. 아니 수백 명인가..? 하여간 엄청 많은 젊은 무사들이 주욱 기립해 있었다.

“혈랑대가 곡주님을 뵙습니다!”

동시에 터져 나와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
으.. 미리 각오(?)하고 있었는데도 주눅이 드는 느낌이고.. 그리고 귀도 좀 아프다.
이 비화곡의 체계가 본래 군대 느낌이 많이 들지만 그중에서 이 혈랑대가 가장 압권인 것 같았다.

“아.. 다들 앉아, 편히 있으라구. 그냥 와 본 거니까, 나 신경 쓰지 말고 다들 하던 일 계속해.”

음.. 내가 이렇게 말해도 다들 자세를 풀지 않는군.
부담되게스리.. 그렇다면 역시 군대식으로 해야겠지?

“백인장(白人長)들은 집합하고 나머지는 해산!”

내가 스윽 쳐다보니, 역시 대주가 알아서 명령을 내리는군.
그리고 오호.. 역시 군기 센 부대답게 동작이 빠르기도 하여라.
어느 틈에 백인장들로 보이는 자들 다섯 명이 내 앞에 모여들어 포권하며 인사를 해 온다.

에.. 근데 이건 좀 문제인 걸?
번득이는 눈빛하며 하나 같이 지나치게 살벌한 인상들이잖아?
눈에 안 띄게 민간 시찰 나가려는 건데 이런 애들 데리고 다닌다는 건… 음, 그래도 맨 오른쪽의 백인장이 얼굴에 흉터도 없고 그나마 가장 정상인에 가까운 것 같군.

“이봐, 너.. 얼굴 좀 풀어봐.”

“예..?”

“그렇게 눈에 힘주고 있지 말고, 표정을 부드럽게 풀어 보라구.”

내 명령에 순간적으로 당혹한 듯했지만, 녀석은 곧 애써 표정을 부드럽게 하느라 애쓰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이 하도 어설퍼서 좀 웃기긴 했지만 좀 더 연습시키면 나아질 듯싶었다.

“…좀 낫군. 일단은 이 한 명하고.. 그리고 계급은 상관없으니까,
좀 얌전하고 평범한 인상을 가진 자가 한 명 더 필요하거든?”

혈랑대주와 5인의 백인장들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것 같더니 한 백인장이 손을 들었다.

“십인장(十人長) 백상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평소 너무 착한 인상이라고 동료들에게 놀림을 받고 있는..”

잠시 후, 불려 온 십인장 백상을 보니 혈랑대에도 이런 자가 있구나 싶었다.
다른 혈랑들과는 달리 살이 쪄서 몸매와 얼굴이 넉넉한 식당 주방장 같은 느낌을 주는 데다,
가만있어도 약간 웃는 듯이 보이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자네.. 용케도 그 몸매를 유지하고 있군, 그래.”

“제가 식성이 너무 좋아 그렇습니다.
훈련량이 많은 혈랑대 소속이 아니었으면 벌써 돼지가 되어 버렸을 겁니다, 곡주님.”

넉살 좋게 나에게 농담까지 하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드는군.
좋아 나머지 한 명은 이 놈이다.

“혈랑대주, 앞으로 당분간 이 두 명 좀 빌려 줘.
그리고.. 그동안 내가 좀 무심했던 것 같은데, 혈랑대에 내가 해줄 만한 일이 있으면 말해봐.”

“혈랑대는 오직 곡주님만을 위해 존재하는 자들입니다.
어찌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있겠습니까.”

“뭐, 꼭 대가라기보다도 말야. 그냥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래.
항상 수고하는데 별로 해준 것도 없는 것 같고..”

군대에서 군바리에게 가장 큰 선물(?)은 당연히, 휴가나 외출..
그다음은 ‘회식’이다.
이 많은 인원 모두 모조리 휴가나 외출 내보내는 건 어려울 것 같으니 좀 멕이기나 할까?

“총관에게 말해서 술과 안주를 준비하라고 해놓을 테니까.
적당한 날 잡아서 회식.. 아니 잔치나 한 번 벌이도록 해.
음.. 지금 절반 정도 인원은 내 경호 훈련 중이라고 했지?
그들도 불러서 함께 하는 것이 좋겠군.”

“존명!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

든든한 창고를 가진 부자(?) 군대가 먹는 거 가지고 난리 칠 것 같지는 않았는데, 생각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다.
혈랑대주가 내가 나가기 전에 ‘회식’ 소식을 부하들에게 알리자, 입구로 걸어 나가던 내 뒤에서 어마어마한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곡주님 만세’를 외치는 이들을 모른체하고 그냥 나가기도 뭐해서 슬쩍 돌아보고 손 한 번 흔들어 주었다.
거.. 무지 어색하고 쑥스럽구만. 부대에 돼지 한 마리 기증하고 환호성을 받던 우리 부대 자매 청년회 회장 기분은 어땠으려나..?

“평소에 혈랑대 짬밥 아니 식사가 좀 부족해..?”

나와서 내가 농담처럼 묻자 따라 나선 혈랑대 십인장 백상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희 혈랑대에게 곡주님은 부모님과도 같습니다. 부모에게 인정받는 것을 자식이 어찌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

대교 자매들 교육해서 한 동안 이런 ‘위대한 수령 어버이’ 식의 ‘닭살 대사’ 안 듣는가 했더니 또 시작인가?
이 놈도 같이 다니려면 교육 좀 시켜야겠군.
흠.. 근데 생각해 보면 혈랑대 같은 경우 그런 행동들이 아주 이해가 안 돼는 건 아니다.
이 비화곡 아해들에게는 기본적으로 곡주에 대한 무한 충성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지만, 혈랑대 같은 경우 그게 아주 심한 모양이었다.
애초에 강호 각지에서 부모 형제 일가 피붙이가 없는 고아들만을 모아 구성된 부대였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원판)를 따라다니며 철저히 저 사람만을 위해 살아라.. 고 세뇌 교육을 받으며 오늘날 평균 나이 20대의 청년이 되도록 살아왔으니까 말이다.
과장해서 표현하면, 먹는 것도 숨 쉬는 것도 오직 진하운 곡주를 위해서 한다고 하는 무리들인 것이다.
아무리 지금은 내가 그 숭배의 대상이라고 해도, 이들의 행동에 웬지 안쓰러운 마음이 앞서는 거 보면 나는 아직 정상인가 보다.
이 두 명.. 백인장 황성과 십인장 백상.
내가 달리 해 줄 건 없고, 오늘 데리고 나가서 맛난 거나 많이 사줘야겠다.

“에..? 뭐, 뭐야..?”

당황해 하는 나를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며 귀여운 백의 소년.. 아니 남장을 한 미령이는 살짝 혀를 내밀고 짓궂은 표정으로 웃고 있다.

“너, 너도 따라오려구..?”

“미령이는 곡주님의 호위 무사인데, 어디에 가신들 곁에서 지켜드려야지요.”

기집애, 그런 즐겁게 놀러 나가는 표정으로 말하는 데 설득력이 있을 것 같으냐?
으… 혈랑대 두 명과 내가 입을 평범한 복장 구해 오랬더니 그 사이에 지도 남장을 하고 나타나다니..

“곡 내 시찰이니 그리 위험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만.. 미령이가 특히 안심을 못하고 성화이니 데려가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그러는 소교 너도 눈치챘니? 내가 밖에서 여자 꼬시려는 거 알고 미령이를 감시 역으로 붙이는 거 아니냐구. 으…
예정에 없던 상황이라 별의별 생각이 다 났지만, 바깥 나들이에 대한 기대에 차 눈빛을 반짝이며 날 바라보는 미령이를 차마 떨구고 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알겠다, 미령이 너도 같이 가자.”

“감사합니다. 곡주님!”

폴짝거리고 뛸 듯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애는 애다.
에구.. 결국 정말 민간 시찰이나 하고 와야겠군. 제기~!

혈랑 두 명과 미령이를 대동하고 처소를 나선 지 어언(?) 두 시간이 넘고 있다.
우쒸- 처음 이 곳에 올 때는 가마 타고 와서 잘 몰랐는데 마을은 디게 멀었다.
본부 건물 나와서 바깥으로 나가는 초소를 통과하기까지 내 걸음으로 한 시간이나 걸렸고, 이후 산길만 그 정도 시간을 더 걷고 있는 참이었다.
본래의 내 몸이라면 이 정도 산길 걷는 거야 애들 장난이었겠지만, 이 ‘극악..’ 놈의 몸은 체력이 개판이라 벌써 힘들어 죽겠다.

“후.. 모두 십 분간 휴식-!”

“예..?”

“..좀 쉬었다 가자구.”

“존명!”

내가 길가의 적당한 바위를 찾아 엉덩이를 걸치고 앉자 미령이가 재빨리 손수건을 꺼내 건네준다.
제기랄! 이 놈의 땀.. 숨은 또 왜 이리 차는 거야?
이게 사내놈의 몸 맞아..? 빌어먹을….

“곡주님, 이걸 드십시오.”

백인장 황성이 허리에 차고 있던 호리병 수통을 내밀었고, 십인장 백상은 어느 사이 잎사귀 많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양산처럼 내 머리 위에 드리운다.
미령이도 커다란 잎사귀를 떼어와 부채처럼 부쳐주기 시작했다. 이 것들이 장난치나…

“됐어. 백상도 미령이도 그 것들 치워. 난 괜찮아.”

아.. 존심 상해.
혈랑들은 나보다 두 어살 어린 젊은 청년들이니 그렇다 쳐도, 저 어린 소녀 미령이 만도 못한 체력이라니… 새삼 그리워라, 본래 몸이여…

——————————

“다들 쉬면서 경치 감상이나 해. 오랜만에 나왔을 거 아냐.”

민간 지역 마을에 도착하기 전에 저 놈들의 말투부터 고치라고 해야겠다. 음… 앞으로 30분 정도면 도착한다니까 나부터 슬슬 점검해 볼까?

거울에 비친 내 얼굴… 쓰불, 이등병 때 첫 행군하며 맛이 간 그 표정이군.

어쨌거나 인피면구 상태는 괜찮은 거 같고, 일단 선택한 백의(白衣) 도련님 복장도 크게 이상한 점은 없어 보인다.

역시 수수한 백의 차림의 나머지 세 사람… 십인장 백상이 생긴 것부터 가장 눈에 안 띄는 스타일, 백인장 황성은 아직도 표정이 너무 살벌하게 굳어 있으니 풀라고 해야겠고… 가장 문제는 역시 미령이었다.

긴 머리채는 위로 말아 올린 후 두건을 써서 가렸으며, 얼굴의 화장기는 말끔히 지워져 있고, 가슴은 바짝 동여매고 허리띠는 일부러 느슨하게 하는 등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긴 했지만… 문제는 얼굴이 너무 예쁘다는 점이었다.

나는 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길가의 들꽃을 들여다보고 있는 미령이를 가리키며 혈랑들에게 물었다.

“이봐, 두 사람이 보기엔 재 남장한 거 어때?”

“남장 자체는 특별히 나무랄 데가 없는데, 역시 너무 예쁜 소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흐흐… 아마도 소년 취향의 사내가 보면 환장을 할 겁니다.”

“흠… 역시…”

“흥-!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그 살찐 몸을 감추려면 몇 달은 족히 고생해야 할 걸?”

미령이의 뾰족한 목소리였다. 음… 귀도 밝군. 십인장 백상의 말투에 화가 난 모양이지?

“미령 아가씨의 지나치게 예쁜 얼굴이 남들 시선을 끄는 것이 문제지. 제 살이야 감추지 않아도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저야 본래 이 넉넉한 몸 때문에 곡주님 동행으로 뽑힌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

미령이는 태연히 지껄이며 웃는 십인장 백상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흥-! 혈랑들은 모두 백인장 황성님처럼 과묵한 무사들인 줄 알았더니, 당신처럼 철면피도 있었군요?”

미령이의 신경질적인 말에도 백상은 여유 있게 자신의 풍성한 배를 두드리며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미령이는 그런 상대의 반응이 더욱 분한 모양이지만, 더 이상 뭐라고 하진 못하고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후후… 한 말빨하는 미령이가 드디어 임자 만났군 그래.

“에… 싸우지들 마. 그리고 마을에 도착하면 각자 호칭부터 조심해. 공연히 나에게 곡주 어쩌고 하면 산통 깨지니까 말야.”

“존명!”

“그 말부터 쓰지 마.”

“예! 도련님!”

역시, 십인장 백상이 가장 적응이 빠르군. 어디 가나 별종은 하나 있기 마련이라더니, 그 살벌한 군기의 혈랑대에도 이런 유들유들한 녀석이 있었다.

“그럼, 미령이 변장 조금 손보고 나서 다시 출발하도록 하자.”

마을 입구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다시 40분 정도가 더 지난 후였다. 그 사이 또 땀 깨나 흘리며 불쾌해졌던 기분이 마을에 들어서자 한결 나아진다.

“…그러고 보니 오늘 가경촌(歌磬村)에 장이 서는 날이로군요.”

백인장 황성… 아니, 이제부터는 나들이 나온 도련님의 하인인 황성의 말처럼 마을은 매우 북적대고 요란한 분위기였다.

하핫! 장날이라… 이제야 사람 냄새가 나는 곳에 온 기분이랄까? 나는 힘든 것도 잊고 천천히 걸으며 오가는 사람들과 마을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시대와 상황이 다르지만, 어쩐지 우리 한국의 시골 장터와 비슷한 정겨운 느낌이 드는 것이…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다’라는 말이 실감 난다.

쉬었던 장소에서, 내가 여벌로 준비했던 특수한 약물을 피부에 발라 약간 햇빛에 그을리고 거칠어진 피부로 보이게 된 미령이도 즐거워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곡… 아니 도련님. 저것 좀 보세요!”

미령이가 반색하며 기뻐하더니, 이윽고 결심한 듯 내 팔을 잡아끌었다. 내가 끌려간(?) 곳은 웬 원숭이 한 마리와 깜찍하게 생긴 10대 초반의 소녀가 함께 쇼를 하는 장소였다.

빙 둘러싼 구경꾼들 앞에서 소녀는 원숭이와 함께 어우러져 재주를 넘고 난리였다. 동작만 봐서는 누가 원숭이인지 사람 소녀인지도 모르겠다.

조금 지나자, 박수를 치며 구경하던 사람들로부터 동전이 마구 날았다. 음… 나도 몇 개 던져 줄까?

내가 던져 준 동전은 바닥을 기어다니며 떨어진 동전을 줍던 중년의 턱수염 남자 앞으로 떨어졌다.

즉시 표정이 변하여 날 올려다보는 턱수염 남자…

어랏-? 내가 던져 준 게 동전이 아니었잖아..?

돈주머니에서 잡히는 대로 두어 개 던졌는데, 그게 은전이었네? 전에 들었던 화폐 단위를 생각해 보면, 나는 수십만 원을 던져 준 셈인가..?

우… 엄청난 시선 집중! 이런, 이런…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슬며시 구경꾼들 틈에서 빠져나왔다. 에구구… 철없는(?) 무협지 주인공이 하는 공연히 눈에 띄는 짓을 내가 저지르다니.

어쩐지 이번엔 저 앞에 ‘내기 무술 시합’하는 패거리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과연… 있군.

…근데, 여기 정말 비화곡 안이 맞아?

저런 썰렁한 수준의 무술(나도 그동안 눈이 높아졌다.) 솜씨로 내기 시합을 벌이다니… 가장 쎄 보이는 저 대머리 근육질 사내도 미령이가 널널하게 깰 수 있겠는걸? 미령이도 그들이 시시해 보였는지, 코웃음을 치더니만 더 구경하자고도 않는다.

——————————

“일단, 점심이나 먹고 더 돌아다녀 볼까?”

내 말에 우리 일행은 모두 근처의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허름하지만 제법 넓은 실내였고, 사람들이 꽤 많은 곳이었다.

음… 무협지에서 보면 주인공이 마을에 뜨면 거의 내기 무술 하는 곳이나 아까 같은 원숭이 곡예 하는 곳 아니면 보편적으로 ‘식당’ 같은 곳에서 꼭 무슨 말썽이 일어나지. 난 무협지 주인공도 아닌데 설마 그 공식대로 되는 건 아니겠지?

“헤헤… 손님들 무얼 주문하시겠습니까?”

일단은 예상대로(?) 헤헤거리는 웃음소리와 약간 천박한 표정의 젊은 점소이가 등장하는군.

“여기서 제일 자신 있는 게 뭐지?”

“헤헤헤… 이 비화곡에 들어 오신 지 얼마 안 된 분이로군요. 강호에서 손꼽히던 마두이자 천하 제일의 요리사인 식인왕(食人王) 오두명이 운영하는 식당을 몰라보시다니요.”

식당 주인이 식인왕…? 이거 장난치나.

“여기서… 사람 고기로 만든 만두… 그런 것도 판다는 거야?”

“헤헷-! 평범한 음식에 질린 분들이 주문하시는 경우가 있읍지요.”

점소이는 짐짓 목소리를 깔며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비화곡 안의 치안은 천하의 어느 곳보다 철저한지라… 싱싱한 인육을 구하기가 쉽지 않지요.”

“…되긴 된다는 거야?”

“물론 입죠. 재료가 귀해 가격이 다소 높은 것이 흠이지만 맛은 끝내 준답니다요.”

기어이 마인들의 천국 비화곡 영토라는 티를 내는 구만. 제기, 하필… 밥맛 떨어져서 그냥 나가고 싶었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은 표정의 혈랑들 앞에서 약한 모습 보이기가 싫어 그냥 주문하기로 했다.

“….난 별로 배 안 고프니까. 그냥 국수나 하나 말아 줘. 너희들도 각자 뭐든 주문하고.”

미령이도 인육 얘기가 거슬렸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나와 같은 국수를 시키면서 ‘고기’는 빼라는 주문까지 했지만, 혈랑들은 태연히 국수에다가 고기 만두를 추가시킨다. 비위들도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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