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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1부 – 56화


이런…!!

그 동안, 허구 헌 날 들락거리면 대교의 무공 수련에 방해가 될 것 같아 내려가는 걸 자제하고 있던 것이 무색하게 오늘 군가 가르쳐주고 나도 부르며 놀다가 몇 시간을 허비시키고 말았군.

하지만… 확실히 재미는 있었다. 담엔 사제 여자 가수들 노래를 좀 가르쳐 줄까? 아예 테크노 춤도 가르쳐서 비화곡의 ‘이정현’으로… 후, 나 또 오버하려드는 군. 참자, 참아…!

대교도 만나고 왔겠다, 또 공부나 하자. 이렇게 침상에 누워 눈감은 채, 몽몽에게 자료 요청만 하면 되니까 필요한 책 찾느라 뒤적거릴 필요도 없어 정말 편하다. 그래서 갈수록 더 게을러지는 것 같긴 하지만… 가만있자- 아까 오전에 보려던 것이 오행 뭐라던 보법(步法)에 관한 자료였었지?

아, 그래 오행미종보(五行迷踪步).

사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기는 해도, 막상 비무가 시작되었을 때 장청란이 내 예상 이상으로 강할 경우… 그런 최악의 경우를 만나게 되더라도, 대교에게 치고 빠지는 ‘아웃복싱’식으로 싸우게 하기 위해서 요 며칠은 주로 보법을 알아보고 있었다.

몽몽에게 그냥 괜찮은 거 골라 달라고 해도 될 것이고, 솔직히 내 수준에 무공 연구까지 하기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보법 분석에 도전해 보는 것도 나름대로 공부가 되겠다는 건설적인 생각으로, 오행미종보라는 지극히 난해하고 수준 높은(그렇다고 들은) 보법 자료를 요청해 볼 참이다.

어디- 명칭 그대로 오행(五行)의 원리를 따라 발놀림을 하는 것이 기본이며 일단 시전 하면 적의 시야에서 벗어나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상승보법이라- 그런 간단한 소개 글은 다른 보법들과 별다를 것이 없고…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오행미종보의 초식(招式). 총 162초(招), 26244식(式)으로 이루어졌다고…?

162가지 기본 동작을 조합해서 26244가지의 다양한 연속 동작을 만들었다는 의미인데, 나 같으면 써먹기는커녕 외우다 지쳐 죽겠다. 한 십분 정도 시범 보일 특공 무술 연습할 때도 순서 헷갈려 중대장에게 깨졌던 일이 숱했었는데 말이다.

음… 기본에 충실하여 오래 수련한 자는 초식에 억매이지 않고 임의로 자기류의 식(式)을 구현할 수도 있다고…? 딴 보법보다는 좀 융통성이 있는 것 같다. 이거와 비슷해 보였던 잠종보(潛踪步)인가는 철저하게 초식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강조되어 있었다.

일단, 오행미종보 초식 설명 화면은 오른 쪽 구석으로 옮기고… 바탕화면(?)으로 오행미종보를 시전하는 가상의 인물과 그 인물의 동작대로 발자국에 번호 붙여 찍어 놓은 그림을 함께 봐야겠다.

그 동안 공부하면서 느낀 건데, 많은 무협지에 나오는 것처럼 사부가 이제 막 제자로 삼은 천재 주인공에게 말로 주저리주저리 무공을 전수해 주는 장면은 전부 말도 안돼는 거다.

본래 같은 파의 무공을 오래 수련했다면 그 파에서 쓰는 용어에 익숙해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지만, 비홍횡강(飛鴻橫江)이니 금반탁월(金盤托月)이니 하는 초식명만 가지고 무슨 동작을 연상할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 같은 초식명인데도 각파에서 제각각 다르게 해석하는 초식명을 검색해 봤더니, 그런 건 아예 셀 수조차 없었다.

나 같은 경우 기초적인 지식이 전혀 없으니 더더욱 문서 자료만으로는 어떤 것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그림자료와 함께 보는 것이 필수이다. 물론 나로써는 그래도 이거 뭐, 춤추는 스탭 같기도 하고 과연 효과가 있기나 한 수법인지 잘 이해가 안가지만…

아무래도 가상의 상대를 지정해 직접 시전하는 동영상을 보는 것이 빠를 것 같다.

그럼 우선 그림 화면 끄고, 가상의 상대는 장청란… 오행미종보 시전자는 대교… 음… 준비됐지? 실행!

동영상 실행 속도를 적당히 줄여 놨기 때문에 양측의 동작은 내가 충분히 알아 볼 수가 있다.

음…! 장청란이 다가오는 순간, 대교가 재빨리 오행미종보를 펼치기 시작한다. 왼발 방위는 토생금(土生金), 오른발은 수생목(水生木)… 이어 왼발은 다시 금생수(金生水), 오른발은 목생화(木生火), 그러면서 손이 비스듬히 검을 들어올리니 장청란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긋던 검의 진로가 날카로운 각도로 꺾여 비켜 나간다. 여기까지의 통합 초식명이 회선망월(回旋望月), 이어 왼발의 움직임은 수극화(水剋火), 오른발은 화극금(火剋金)으로 갑작스런 변화를 일으키며 몸은 전체적으로 거의 주저앉듯 수그리는 것이 살기이뇌(殺氣裏腦)…

하핫-!! 이거 골치 아프면서도 재미있는걸?

지금까지의 과정을 간단히 표현하면, 공격에 들어오는 상대의 검을 오른쪽으로 몸을 90도 가량 회전하며 비켜 보내고는 같은 방향으로 급격히 360도 더 회전하고는 쪼그려 앉아 버리는 거다.

그런 결과를 보면, 공격한 장청란은 아직까지 정면을 향한 자세를 바꾸지 못했는데 대교는 자연스럽게 장청란의 후위를 점하고 더구나 그녀가 뒤를 돌아보아도 바로 알 수 없을 정도의 위치와 낮은 자세인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당근, 반격이 아주 수월… 응? 계속 진행시켜보니 장청란도 만만치 않은 걸? 상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바로 경신법을 펼쳐 멀찍이 튀어 버리네? 그럼 다시 재 격돌…!!

이번엔- 그게~ 으… 잠깐, 잠깐! 잠시 중지!

후우~! 전에 음양(陰陽) 오행(五行)에 관한 기본 지식을 예습해 놔서 기본적인 초식과 응용동작은 그럭저럭 알 것 같은데, 조금 변화가 심해지니까 이건 도무지… 으~ 역시 지금의 나에겐 무리일까?

…제기! 나도 오기가 있지 시작하자마자 포기할 수는 없잖아. 다시 도전이다. 어떤 학문이든 일단 기초를 탄탄히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음양 오행 다시 복습하고, 그리고 며칠 전에 조금 보다 말았던 팔괘(八卦)까지 익히고 다시 시작해야겠다.

먼저, 음양! 우주와 인간 사회의 현상은 천(天)에 대하여서는 지(地)가 있고 해(日)에 대해서는 달(月)… 기타 등등, 하여간 + 와 – 로 환원시켜 서로 상대적으로 파악할 수가 있다.

음…
오행..! 만물의 요소는 목, 화, 토, 금, 수 다섯 가지로 우주와 인간계의 현상은 그 다섯 가지 요소가 운행변전(運行變轉)하여 발생.. 오행의 상생(相生)이란 목(木)은 화(火)를 생하고 화는 토(土)를, 토는 금(金)을, 금은 수(水)를, 수는 목을 행하는 이치이며 상극(相克)이라는 것은…….

으음….

역경(易經)의 팔괘는.. 태극(太極)에서 음양이 갈라지고 음양은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은 팔괘로 구분할 수 있다. 서죽(筮竹)을 조작하여 남은 수가 기수(奇數)일 때는 양(陽), 우수(偶數) 일 때는 음(陰).. 이 것을 세 번 반복하여 건(乾), 태(台), 이(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 곤(坤) 여덟 괘의 상을 얻는다. 이 팔괘를 조합하여 64괘를 얻는데, 이 64괘 각각 설명을 괘사(卦辭)라 하고, 기수와 음수를 각각 효(爻)라고 하거니와 이 효의 설명을 효사(爻辭)라 하며, 효로 이루어진 괘에 다른 괘가 합쳐져 이룬 64괘를 일원(一元) 십방(十方)..

으으…

‘건’은 충만한 양기요, 태는 음에 괸 물, 이는 불에 둘러싸인 물, 진은 음 사이에 진동하는 양, 손은 밑으로 들어가기 쉬우며, 감은 땅에 묻힌 물, 간은 음을 누르고 솟은 양, 곤은 가득한 음…

무극(無極), 구궁(九宮), 십방(十方), 양의(兩儀), 삼재(三才), 사상(四象), 육합(六合), 칠성(七星), 구궁정위(九宮正位)……….

으아아아~~!!!

“곡주님..?”

“으으…”

“어찌 이러십니까, 곡주님-!”

응~? 모야, 이거-

“곡주님, 제발 심화를 다스리세요. 제발~!”

“…어, 어? 야, 됐어, 왜 그래..?”

눈을 떠보니 울기 일보 직전의 표정인 소교가 날 내려다보고 있다.

“곡주님, 괜찮으세요? 무사하신 거죠? 그렇죠?”

“………….”

“곡주님..?”

“…그래,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안심해.”

“아~!”

소교는 그래도 내 손목을 잡아 맥을 집어 보고, 이마에 손을 얹어 열을 재보고 하여간 난리가 아니다.

“트, 특별한 이상은 없는 것 같은데 어찌… 당장 의화각 사람들을 부르겠습니다.”

“어, 아냐, 됐어! 부르지 마!”

나는 단호하게 말하고는, 까딱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억지로 웃으면서 침상에서 일어나 앉았다.

눈감고 누운 채 몽몽이 제공하는 가상 현실의 자료를 보다가 그냥 속으로, ‘왜 이렇게 복잡한 거야?’라며 머리를 쥐어뜯는- 그런 의식을 했었는데, 아무래도 현실에서도 비슷한 행동까지 한 모양이다.

아무리 내가 공부 체질이 아니라지만… 좀 어려운 공부한다고 해서 발작(?)을 일으켰단 말인가? 아이고 쪽팔려라.

“..진정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으신 겁니까? 갑자기 그러셔서, 소녀는.. 소녀는….”

“괘, 괜찮다니까, 참..”

니가 그러니까 더 쪽팔리다. 으으~

“그냥 좀… 잘 안 풀리는 생각이 있어서 그랬나봐. 허헛~!”

웃긴 웃는다만, 무지 어색하구만….

“후우~ 다행입니다. 곡주님께서 하시는 일에 일천한 소녀의 재주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혹여 모르는 일이니, 소녀에게 알려 주실 수 없을까요?”

기본적인 공부하다가 그렇다고 고백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애가 이렇게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하는데 무시할 수도 없고, 제기- 괜히 진짜 어려운 거 했다고 뻥쳐야겠다.

“음… 오행미종보라는 보법은 너도 알지?”

“전설적인 보법이라는 것은 알지만, 자세한 것은..”

“그 보법을 보완하여 좀더 발전시키는.. 그런 연구를 하고 있었어.”

“아-! 오행미종보라면 실전 된지 백년이 넘은 상승 보법… 그것을 곡주님은 알고 계실뿐더러 보완하여 발전시킬 생각이시라니, 소녀는 실로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보완 발전은커녕, 기본적인 용어도 헷갈려서 이 모양인 것을… 아무리 내가 얼굴 깔고 이 짓 하는 거지만, 이건 너무 민망한 노릇이다.

“소교야, 머리 좀 식히고 싶으니까. 주안상이나 좀 마련해 줄래?”

“예!”

에구구, 진짜 오늘은 이만 쉬어야겠다. 원판 녀석 정말 머리가 좋긴 좋았나 보다. 오늘의 어려운(?) 자료뿐 아니라 그동안 본 자료들을 포함하여 현재 몽몽에게 입력되어 있는 자료, 성지의 책들을 모조리 외우고 있었다니.. 어쩌면 원판은 지나친 공부로 미쳐버렸던 아닐까? 나도 미치지 않으려면 좀 쉬엄쉬엄 공부해야겠다. 음… 벌써 핑계거리 생겼군.

다시 며칠이 지났다.

오늘 드디어 구월화 가족을 구해내는 작전 때문에 파견 나간 만독당주로부터 1차 보고가 들어왔다.

두루마기 10개 분량의 보고서…..

만독당주의 치밀한 성격을 말해 주듯, 아주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상황이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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