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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1부 – 85화


  • 85 –

사영의 절혼무저갱 입갱 결정 5일 후.
나와 장로들의 동의가 없었어도 자신들의 아버지 사영은 기어이 일을 벌일 사람이었다고 자매들은 입을 모아 말했고…

야후장로의 오해(이건 자매들에게 얘기 안 해 주었다.)가 있기도 했지만 어쨌든 간에 내 잘못도 없지는 않은 것 같아서 공연히 자매들 대하기가 껄끄러운 며칠이었다.
본단으로부터 약 5 KM 정도 떨어진 해발 1350미터 높이의 험준한 산 속에 위치한 문제의 절혼무저갱.
입구는 산 정상 부근에 커다란 우물 형태로 되어있어 더 섬뜩했는데, 출구는 산 아래에 있다. 지하 동굴을 통해 산 내부를 일주하는 코스인 셈이다. 이 시대에 참 별놈의 공사를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절혼무저갱 입구에 온 사람들은 나와 자매들 셋, 내 호위로 혈랑대 잔득, 그리고 당사자인 사영이었다. 장로들은 내가 올 필요 없다고 하니까 ‘그러시구려’하며 한 명도 따라 오지 않았다.
사영은 그동안 나름대로 준비를 했는지 뭔가가 잔득 든 군장… 아니 보따리 같은 것을 등에 메고 있었고, 날렵한 흑의 경장 차림에 머리에는 검은 머리띠를 질끈 묶은 모습으로 본래 한 용모하는 인물이라 그런지 꽤 폼은 나지만… 폼이 위기에서 구해주는 건 아니니 걱정이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곡주님.”

간단히 내게 인사한 그는 절혼무저갱의 입구로 주저 없이 걸어갔고 입구 안으로 뛰어 들려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딸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아버지……!”

차마 크게 부르지도 못한 소교의 가냘픈 음성이 바람결에 실려 갔을까? 사영이 문득 고개를 돌려 소교에게 시선을 주었다. 다음엔 소령이, 미령이 순으로 한 번씩 바라보더니 씨익-! 한 번 웃어 주고는 훌쩍 입구로 몸을 날렸다.

“아버지……!”

또 쓰러지는 거 아닌가 싶어 돌아보았지만 다행히 소교는 괜찮아 보이는 것이, 그동안 각오를 단단히 한 모양이었다. 자매들이 잠시 감상에 빠져있는 시간을 주고 나서 나는 공연히 딱딱하게 외쳤다.

“가자, 모두 철수!”

사영이 무사할 경우 돌아올 예정일 – 과거 이소모가 당시 곡주에게 말했던 7일 – 까지 참 피곤한 하루 하루였다. 나는 본래 계획되어 있던 것을 진행하면서도 자꾸 절혼무저갱 속의 사영이 떠올라 착찹한 마음에 일손을 놓기 일쑤였다.
제기, 내 잘못 아니잖아. 그 인간이 자처한 거고 장로들 일도 야후 장로가 멋대로… 하여간 사영이 죽더라도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은 없다구. 안 그래…?
식으로 생각도 해보았지만, 후- 그런다고 맘이 편해질 리가 없었다.

“소교는…? 오늘도 거기 갔니?”

“예, 어쩌면 오늘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으면……”

“않으면……?”

“아닙니다. 어쩌면 당분간 언니는 절혼무저갱의 입구에서 떠나려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령이 녀석 공연히 사람 불안하게 하는 군. 내가 봐도 사영이 나오지 않는 한 소교는 거기서 마냥 기다릴 것 같기는 했다. 제기.

“미령이 네가 가라. 억지로 귀단 시키려 하지 말고, 오늘부터 너도 같이 있어. 갈 때 솜씨 좋은 의화각 사람들 몇 명 데려가고.”

그렇게 소교, 미령이를 절혼무저갱 입구에 보낸 후 다시 7일이 지났다. 그 7일 동안 혼자 남은 소령이는 얼굴표정은 그다지 티를 내지 않았으나 접시를 두 번인가 깨먹었고, 자남초 차 가져 오랬는데 술 가져오고 술잔에 흑주차 따르는 등 살짝 맛이 가있었다.

[ 주인님. 가상의 대교와 장청란의 732회 째 모의 비무가 끝났습니다. 양측 대전 경험 데이터를 자동으로 업데이트 하시겠습니까? ]

“응? 어, 그래.”

대답을 하고 보니 방금까지 본 가상 현실 속의 대교와 장청란의 싸움이 거의 기억 안 난다. 망막 스크린 기능을 멈추고 침상에서 일어서는데 문득 쓴웃음이 지어졌다. 맛이 간 건 나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아무리 맘에 드는 사람이라고 해도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사영의 생사가 이렇게까지 신경 쓰일 줄이야… 나도 모르게 자매들의 감정에 동화되어 버린 건가?

“소령아, 준비해라. 오늘은 나도 절혼무저갱에 가봐야겠다.”

그동안 거기 안 가본 건 금방 픽 쓰러질 것 같은 얼굴로 ‘괜찮다’고 말하는 소교를 대하기 싫어서였다. 그러나 이대로, 이 분위기로 며칠 후 돌아올 대교까지 대하는 건 더욱 꼴이 말이 아니다. 뭔가… 매듭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곡주님. 출타하실 준비가 되었습니다.”

가마며 호위 병력이 대기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소령이에게 나는 말했다.

“확실히 1급 거민의 신병문제는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하지만… 절혼무저갱, 그거 없애는 건 내 맘이지.”

“예? 고, 곡주님……?”

통과 못하는 곳이라면 부셔 버리겠다는 생각, 처음부터 안 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사영이 들어가기 전에 절혼무저갱을 없애 버렸다면 사영에게는 어차피 또 다른 어려운 과제가 주어졌을 것이다.
지금… 사람들을 동원해 절혼무저갱을 부셔서 파헤치겠다는 건 사영의 시체를 확인하겠다는 거다.

제기-! 어쩔 수 없다. 남은 사람들이 언제까지고 헛된 기다림을 안고 사는 것보단 낫다.
제기랄! 나라도 끝내야 한다.
나는 모진 마음을 먹으며 처소를 나섰고 비장한 각오와 함께 총관까지 불렀다.
절혼무저갱을 내 독단으로 없앨 수 있다는 건 이미 며칠 전에 확인해 놓았었다.

“곡주님. 저기- 저길 보십시오.”

막 가마에 오르려던 나는 소령이의 말에 따라 시선을 옮겼다.
…응? 본단 입구 쪽에 한 떼의 사람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아직 멀어서 확실하진 않지만 맨 앞의 선두는 소교…?
미령이도 있는 것 같고, 그리고 의화각 사람들로 보이는 자들이 들고 뛰어오는 건 사람이 실린 들것이다. 그럼……?

“의무실, 아니 의화각! 그래 의화각 빨리 비상대기 시켜! 야, 의화각주 어딨어?”

나는 정신없이 외치며 의화각으로 달렸다.

들어갈 때와는 달리 저-언혀 폼 나지 않은 꼴로, 삼 년 군대에서 뺑이 치다가 말년에 산사태 만난 몰골로…
그러나 어쨌건 숨이 붙어 있는 채 사영은 돌아왔다.

“그래, 기분은 어떻소.”

난 의화각에 실려 온지 5일 만에 의식을 되찾은 사영에게 공연히 퉁명스럽게 물었다.
혼자 몸도 아니고 아버지씩이나 되어 딸내미들 걱정이나 시키는 그가 무지 괘씸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눈과 입만 겨우 드러나 있을 뿐 전신이 붕대에 감겨져 있는 사영은 말없이 천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몸조리나 잘 하쇼. 그 몸 가지고 날 따러 나설 수나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는데, 그제야 사영의 음성이 들려왔다.

“살수로써… 살아오며… 인간이 견디기 어려운… 끔찍한 경험… 많았소… 또……”

처음 실려왔을 때의 처참한 상태를 생각해 보면 사실은 지금 저 정도로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용타.

“무서운 사람… 장소… 무수히 만나고… 가보았소… 허나 들은 그대로인 곳은… 그 곳뿐이었소.”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다시 사영을 보았다.

“들은 대로… 지옥이었소. 그 곳… 절혼무저갱……”

얼굴 대부분도 붕대로 감겨 있어 표정을 알 수 없었고 지금 그의 몸이 가늘게 떨고 있는 것이 공포 때문인지 아닌지도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공연히 목소리 높여 한 소리 하고 병실을 나섰다.

“젠장! 그러게 누가 들어가라고 했소? 고생 좀 하시오. 딴 사람들 맘 고생시킨 만큼.”

제기, 그런 소리하려고 간 건 아니었는데 조금 흥분해 버렸던 것 같다.
지가 무슨 지장보살도 아니고 스스로 지옥에는 뭐 하러 걸어 들어가? 하마터면 자매들은 고아되고 난 술고아(?) 될 뻔했잖은가 말이다.

“곡주님, 자남초 차입니다.”

처소에서 소령이가 내온 차 한 잔 마시고 있자니 이제야 모두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시고 있는 차가 자남초 맞는 걸 보니……
나는 창가로 나가 이제는 많이 날씨가 풀린 바깥을 내다보며 대교를 생각했다.
드디어 그녀가 올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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