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4권 5화 – 크라레스 군부의 반발

크라레스 군부의 반발

똑똑.

가벼운 노크 소리였지만, 가장 윗자리에 앉아있던 노장군은 매우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무슨 일이냐?”

그러자 그 회의 석상에 앉아 있던 모든 장군들의 이목이 문 쪽으로 쏠렸다. 그때, 문밖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도 방위 사령부 예하 부대로부터 긴급 전문이 도착했습니다.”

“그래, 가져오게.”

“옛!”

곧이어 두터운 회의실 문이 열리고, 젊은 장교 한 명이 날랜 걸음걸이로 걸어 들어왔다. 그는 회의실 안에 거의 20여 명이나 되는 장군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매우 긴장한 듯했지만, 그런 표시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재빨리 오른손 주먹을 꽉 쥔 채 왼쪽 가슴에 절도 있게 올려붙이며 경례를 올렸다. 그런 후 재빨 리 노장군에게 자신이 가져온 전문을 건넸다. 그런 다음 다시 한 번 더 경례를 올리고는 신속히 방에서 나갔다.

전문을 받아 들고 훑어보던 노장군이 한껏 격앙된 음성으로 외쳤다.

“경들, 희소식이 도착했소.”

노장군은 주위를 쭉 둘러본 후 말했다.

“스바시에 대공 전하께옵서 이곳으로 오고 계신다고 하오.”

그러자 여태껏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실내의 분위기가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장군, 총사령관 전하께서 돌아오신다면 이제 케프라 공작의 독주는 끝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령관 전하께서는 절대로 저 빌어먹을 흑마법사들이나 구역질나는 몬스터 따위에 의지하지 않으실 겁니다.”

“우선 냄새나는 몬스터들을 황궁에서만이라도 쫓아내 버려야 합니다.”

갑자기 여기저기에서 별의별 의견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루빈스키 대공이 중상을 당한 후, 그다음에 벌어진 토지에르 폰 케프라 공작의 독주. 많은 수의 몬스 터들을 아군으로 끌어들인 것까지는 그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을 최전선에 투입하여 지금도 꽤나 많은 실리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 다.

하지만 지금 크라레스 제국의 모든 실권은 토지에르가 움켜쥐고 있었다. 황실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가짜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이곳에 모인 장군들 중 의 상당수도 토지에르의 의견에 찬동하여 그와 함께 행동했었다. 하지만 반란에 성공한 후, 토지에르는 안전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오로지 그만이 지하에 모셔 둔 황제를 알현했다. 그런 다음 황제의 이름을 빌려 모든 업무를 독선적으로 처리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였을 뿐, 장군들의 불만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게 된 원인은 따로 있었다. 각 장군들이 말했듯이, 군대가 해야 할 몫을 몬스터들이 대신함으로 인해서 그들이 설 자리가 없어져 버린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자자, 모두들 참으시오. 수도 외곽에서 연락이 왔었으니 한 시간 정도만 기다리면 전하를 뵈올 수 있을 것이오.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전하께서 도착하시면 다시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소.”

노장군은 주위에 앉아 있는 장군들의 얼굴을 쭉 훑어본 후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전선에 파견 나가 있는 각 기사단에도 통보를 해 주는 것이 좋겠소.”

“예, 그건 제가 지시해 두겠습니다.”

장군들이 초조하게 기다리는 가운데, 루빈스키가 도착했다. 장군들은 루빈스키가 탄 마차가 호위병들에게 둘러싸인 채 성내로 들어서는 것을 마중했다. 그들은 저 교활하기 그지없는 토지에르와 만나기 전에 그보다 먼저 루빈스키 공작을 만나서 설득하여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일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서 오시옵소서, 스바시에 대공 전하!”

저마다 인사를 건네는 장군들을 보며, 루빈스키는 약간 창백한 얼굴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의 몸은 아직 완쾌되지 않았다. 하지만 조국 크라레스가 국운을 건 마지막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데 가만히 누워 있을 수는 없었기에 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달려온 것이다.

“경들, 오랜만이구려. 전쟁으로 바쁠 텐데 이렇게 모두들 나를 마중 나와 줘서 고맙소. 제국과 폐하께서 가장 나를 필요로 하실 때 자리를 떠나 있을 수밖에 없었던 점을 매우 유감으로 생각하오.”

루빈스키는 장군들을 쭉 둘러본 후 말을 이었다.

“일단 모두들 모여 있는 것을 보니, 내가 따로 그대들을 소환할 필요는 없어진 것 같군. 폐하를 알현한 후에 회의를 시작할 테니 모두들 그렇게 알고 준비해 두시 오.”

“가셔도 폐하를 만나시기는 어려울 것이옵니다, 전하.”

“그건 무슨 말이오?”

“케프라 공작 전하께서는 전세가 완전히 기운 것을 느끼시고 황실의 안전만이라도 도모하기 위해서 반란을 일으키셨습니다.”

“아아, 그 일은 알고 있소. 토지에르는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병석에 있는 나에게 놀라지 말라면서 전령을 보내 주었소.”

“예, 그것은 케프라 공작 전하께서 황제의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코린트로부터 폐하를 인도하라는 요청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음을 저희들도 잘 알고 있 사옵니다. 하지만 그 조치가 지금에 이르러서는 매우 변질되어 버렸사옵니다.”

“어떻게 말이오?”

“케프라 공작은 폐하를 대신하여 국가의 전권을 잡고난 후에 권력이 주는 달콤함에 맛이 들었는지, 지금은 모든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하고 있사옵니다. 현재 돌아 가는 상황으로 봤을 때, 실제로 폐하를 유폐시킨 후 자신이 황제가 되려고……..

노장군의 말에 루빈스키는 안색을 굳히며 꾸짖었다.

“닥치시오! 토지에르는 이전부터 국가의 모든 중대사를 도맡아서 처리해 왔소. 그런 그가 새삼스레 권력에 탐닉(眈)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소?”

“하지만 전하, 황제의 자리와 신하의 자리는 완전히 다른 것이옵니다. 지금 케프라 공작 전하께서는 완전히 황제처럼 행동하고 있사옵니다. 반란이 성공한 후 케 프라 공작을 제외한 그 누구도 황제 폐하를 뵌 사람이 없사옵니다. 어쩌면 케프라 공작은 폐하를 이미 시해해 버렸는지도…….”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따위 망상이나 할 시간이 있으면, 국가와 폐하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그거나 생각해 보시오!”

루빈스키는 더 이상 들어 볼 것도 없다는 듯 서둘러서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표면적으로는 몬스터들을 앞에다가 세워 놨지만, 이것도 분명히 전쟁이었다. 이번 전쟁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코린트를 끝장내 버려야 한다. 코린트라는 거대한 산맥을 넘기 위해서 모두가 일치단결을 해도 모자랄 판에, 자신이 얼마나 자리를 비 웠다고 벌써부터 내분의 조짐이 보이다니…….

“쓸모없는 것들!”

루빈스키는 곧장 토지에르를 만나러 갔다.

“드시라고 하십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토지에르의 모습은 너무나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는 과거와 달리 주렁주렁한 장식물이 달려 있는 해괴하게 생긴 갑옷을 입고 있었으며, 실내 임에도 불구하고 갑옷의 투구까지 써서 눈만 드러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상관을 맞이하면서 그는 투구를 벗을 생각도 하지 않고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스바시에 대공 전하.”

루빈스키는 과거와는 달리 그의 몸에서 엄청나게 사악하기 그지없는 이상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동안에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알 수 없 었고, 또 여태껏 온갖 고난을 함께해 온 토지에르였기에 루빈스키는 반가운 어조로 인사를 받았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자리를 비워서 미안하게 되었네. 그래, 잘 있었는가?”

“예, 그리고 이 갑옷은 몬스터들을 조종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오랜만에 뵙는 전하의 앞에서 계속 착용하고 있어야 함을 이해해 주십시 오.”

토지에르는 루빈스키가 물어보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쳤다. 갑옷을 입고 있는 이유는 몸을 리치로 만든 것을 숨기면서, 동시에 아직까지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자신 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당분간은 이 사실을 숨길 필요가 있었다. 바로 눈앞에 서 있는 이 무사는 아직까지 이용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않으니까 마음 쓸 필요 없네. 갑옷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사악한 기운도 그것과 관계가 있는 것인가?”

“예, 원래가 몬스터라는 것이 악의 기운과 연관이 있는 것들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고 몸은 좀 어떠십니까?”

“그런대로 돌아다닐 만은 하네.”

“그것 참 다행이군요. 그렇잖아도 전하께서 안 계시다 보니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지금 전쟁은 두 곳에서 집중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알카사스 방면과 아르곤 방면이지요. 아직까지는 코린트를 향해서 이빨을 드러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당연한 선택이야.”

“코린트에서 몬스터 뒤에 본국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코린트가 그것을 눈치 채고 본국을 타도하기 위한 행동에 들어가기 전에 아르 곤이나 알카사스 둘 중 하나는 끝장내야만 합니다. 전하께서 그것을 좀 맡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좋아, 최선을 다하겠네. 그건 그렇고, 전선으로 떠나기 전에 폐하를 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네. 모두들 폐하를 뵙고 싶다면 자네를 통해야만 한다고 하더군. 주선을 해 주겠나?”

속으로 뜨끔했지만, 토지에르는 내색하지 않고 여태껏 생각해 뒀던 대답을 호기롭게 떠들어댔다.

“물론입니다. 폐하께서도 전하를 뵙기를 학수고대하시며 기다리셨으니까요. 하지만 폐하께서는 이곳 황궁이 아닌 다른 안전한 장소에 피신해 계시다 보니 지금 당장 뵙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스바시에 전하께서는 크라레스를 지탱하는 가장 큰 기둥, 따라서 수도 주변에 각국에서 보낸 숨겨진 눈들이 전하를 예의 주시하고 있음은 당연할 것이고, 자칫 들킬 염려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또한 전선의 상태는 1분 1초를 지체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언제 코린트가 간섭해 올지 알 수 없으니까 말입니다. 폐하를 뵙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일단 전선이 안정되고 난 후에 돌아오셔서 폐하와 느긋하게 포도주라도 한잔 나누면서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루빈스키는 조금 전에 장군들로부터 들은 말이 있었기에 약간 미심쩍은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토지에르의 말 또한 일리가 있었기에 뒤로 물러섰다.

“으음, 자네 말에도 일리가 있군. 그렇다면 다음에 폐하를 뵐 때, 아르곤 교황의 목이나 알카사스 국왕의 목을 선물로 가져와야겠군.”

“그렇게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보세나.”

루빈스키가 문을 나서고 난 후 어디선가 껄끄러운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

“그를 죽여 뒤탈을 없애는 것이 좋지 않았겠사옵니까?”

“아직은 쓸모가 있어. 만약 뭔가 눈치 챈다면 사로잡아서 꼭두각시로 만들면 돼. 이 늙은 육신을 버리고, 저 녀석의 육체를 쓰면 되지 않겠나? 아주 단련이 잘된 육 체였어. 드래곤에는 비길 수 없겠지만, 내가 본 것 중에는 인간들 중에서 최고로군. 크카카카카.”

토지에르의 목소리는 변해 있었다. 리치와 같은 미라와 같이 바짝 말라 버린 언데드(Undead)가 되어 버린 이상 그의 목소리는 변할 수밖에 없었다. 루빈스키가 방 문했을 때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마법을 통해서 음성변조(音聲變造)를 해야 했지만, 이제 그가 떠난 마당에 더 이상 숨길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