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90화 : NWG (Neo Wind Gate). II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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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4부 – 90화 : NWG (Neo Wind Gate). II (2)


7. NWG (Neo Wind Gate). II (2)

「주인님은 흑주님이 인사를 받은 것만으로도 감격하신 거 같네요?」

-뭐, 감격까지는 아니래도, 기분은 좋다, 요몽. 저 흑주 녀석이 보통 비싸게 구는 게 아니다보니, 응?

내 옆에 있던 대교가 어느 사이에 흑주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나 반가워하는 표정으로 두 팔을 내밀어 흑주를 살짝 안았다. 흑주는 여전히 특유의 쿨하면서도 멍때리는 표정인 것 같았으나, 대교의 포옹 인사를 거부하는 기색도 없었다.

「오호! 역시 대교님다우시네. 주인님의 흑주님에 대한 애정을 막을 수는 없다고 판단, 유일무이한 연적까지 대범하게 포용하겠다는, 저 큰 마님

모드!」

「주인님.」

-어, 그래, 몽몽, 맘껏 체포해 가라.

「에? 제가 뭘 어쨌다고!」

알 수 없는 대상의 알권리를 위해 애쓰던 요몽 기자는, 끝내 체포 및 구금되었고, 나는 뒤쪽으로 조금 고개를 돌렸다.

“미안, 기다리게 했네.”

내가 가볍게 사과한 건 시그마와 산드라 커플이었다. 내가 S패밀리들(?)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에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뱀프 커플이 즉각 앞으로 나섰다.

“인사들 하시죠. 그리고 다들 상대측의 얘기는 미리 들으셨겠죠?”

나의 성의 없는 상호 소개에도, 양측 커플은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훗~! 양측 다, 기본적으로 정중한 태도인건 같은데, 격식에서 차이가 나는군. S는 현대식으로 단순히 고개와 상체를 숙였을 뿐이지만, 시그마 쪽은 한손을 반대편 가슴으로 붙이며 상대보다 깊숙이 상체를 숙이는 인사였다.

누가 보면 S쪽이 선배 뱀파이어인줄 알겠네. 내가 시그마에게 S에 대해서 알려줄 때, ‘내가 형님처럼 생각하는 분’이라고 해서 그런가? 뭐, 어차피 뱀파이어들 간의 서열은, 뱀파이어가 된 시점보다 어느 쪽이 ‘진조’에 가까운가로 정해진다고 하니까, 그런 건 자기들끼리 알아서 따지겠지?

여인네들의 경우를 보자면, S에 비해 미스 카이는 좀 더 눈치가 빨라서, 산드라가 드레스 자락을 양 손으로 잡고 무릎까지 살짝 굽히는 인사를 하자, 자신도 재빨리 비슷한 인사로 바꾸는 센스를 발휘했다. 산드라가 미스 카이를 ‘마담’이라고 칭하자, 그냥 편하게 이름을 불러달라고 하기도 한다. 어디보자~, 내가 외모 지상주의자는 아니지만, 워낙에 비주얼이 특별한 이들이다 보니, 비교를 안 하려야 안할 수가 없네, 그려. 남정네들을 먼저 비교해 보자면, 으음. 안타깝게도(?) 우리쪽 S행님이 조금 밀리는 거 같군.

둘은 동서양으로 인종이 다르지만, 그건 평가 항목에서 제외되어야 할 거 같았다. 뱀파이어라는 공통점이 인종의 차이를 상쇄할 만큼 강력하게 두 남정네의 이미지를 동일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정적인 차이는 역시 ‘나이’였다. S행님이 뱀파이어가 되면서 굉장한 회춘을했다고는 해도, 이십대 중반쯤에 뱀파이어가 되었다는 시그마보다 동안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S는 본래 상당히 강하고 날카로운 스타일이어서, 시그마처럼 아이돌스러운 미모라고 하긴 어려워. 뭐, 물론, 미스 카이의 경우처럼, 열렬한 마니아층은 더 두터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좀 더 흥미로운 건 여인네들 쪽이었다. 기본적으로 타고난 미모는 난형난제, 아니, 여자들이니까, 난자난매가 맞나? 이건 어감이 좀, 으음. 암튼, 비슷한 수준이었을 것 같아. 그런데 현재의 모습은 누가 봐도 산드라 쪽이 어느 정도 우위에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을 거야. 미스 카이에게 없고, 산드라에게만 있는 것, 그건 바로 뱀파이어 특유의 몽환적인 매력이지.

S가 왜 아직도 미스 카이를 뱀파이어로 만들지 않았는지까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미스 카이는 지금 아직 뱀파이어가 아님에도 산드라에 근접할 정도로 매력적인 여인네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하겠다.

흐으으음. 만약 저 두 여인네들이 맘먹고 ‘미모 전쟁’을 벌이게 되면, 그거 꽤 재밌겠는 걸? 둘 다 업그레이드의 여지가 상당히 많으니 말야. 예를 들어, 미스 카이가 어느날 갑자기 S의 변덕에 의해서 냅다 물려 버리는 거야. 뱀파이어가 되어 버린 미스 카이의 미모는 단번에 산드라와 동급이나 그 이상이 되어버리는 거지. 그렇다면 산드라는? 그녀도 얌전히 미모 순위 변동을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 그녀에게도 숨겨진 카드가 있으니 말야.

산드라는 이백 년 전쯤에, 시그마와 함께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나름 개과천선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전까지 큰 죄의식 없이 인간을 식량화했었던 과거를 접고, 인명을 중시하는 금혈 생활을 실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바다를 멀리하고 살아 온 인어가 미모를 잃었다가 바다로 돌아가면서 확 피어나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이백 년이나 거의 쫄쫄 굶어왔던 산드라가 다시 인간의 피를 마시게 되면, 지금과는 현격히 다른 미모를 자랑하게 될 여지가 충분한 것이다.

산드라가 피 다이어트를 버리고 뱀파이어 본연의 섹쉬 마력을 뽐내기 시작하면, 그 꼴을 두고 볼 미스 카이가 아니야. 승부욕이 강한 그녀는 소심한

산드라와 달리, 더 미친 듯이 피를 탐닉하고 말 걸? 피를 마시는 것도 모자라, 피 목욕, 피 마사지, 피뜸, 피 부황…은 좀 아닌가? 하여간 양으로

승부하는 그녀를 보다 못 한 산드라도 심기일전, 지난번처럼 시그마를 냉큼 물어 버리는 거지! 불사의 계약이고 나발이고, 여자의 미모 욕심에 한계가 어디 있겠어? 그런데 마스터가 산드라에게만 있나? 미스 카이도 지지 않고 S행님이 퍼질러 잘 때, 빨대 꽂고………………

-오라버니?

-으, 응? 아, 대교?

-오라버니의 무아지경을 방해하고 싶진 않았지만, 더 이상 다른 분들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뭔가 다급하게 처리해야 할

사안이었나요?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하, 핫! 알았어. 정신 챙길게.

대교가 무아지경이라고 미화해 준, ‘무한괘도 망상’ 습관은 정말이지, 고쳐지지도 않네. 어쨌거나, 나의 무한 망상이 언제 쓸모가 있었겠는가마는, 방금 전까지의 망상이 특히 더 쓸데없었어. 영원한 ‘미모 깡패’, 울 이쁜 대교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다른 그 어떤 여자들의 미모 다툼도 허무할 뿐이지, 암!

지극히 나스럽게 생각을 마무리하며 상황을 확인해 보니, 내가 무한 망상에 빠져있는 사이에 뱀파이어 커플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끄음. 기척으로 봐선, 저 앞의 출입구를 통해서 따로 마련된 식사 장소로 간 모양이네. 하긴, 오늘 우리가 여기에 온 명분은 ‘저녁 식사 초대’였지? 미스 카이가 애써 준비한 음식들이 식으면 곤란・・・ 아, 아닌가?

서둘러 식사 장소를 향해 걸음을 떼던 내가 조금 주춤한 것은, 아직 인사를 나누지 않은 인물 하나가 출입구로부터 마주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로드오브 헬!”

나를 ‘지옥의 군주’라 부르는 이 남자, ‘데릭 허버트’. 화이트 판타지아 섬에서 S에게 물린 이후, 소위 ‘뱀파이어 증후군’으로 고생깨나 하다가, 불과 이틀 전에야 겨우 회복했다고 들었었다.

“데릭. 안색이 나쁘지 않아 보이기는 한데, 이젠 정말 괜찮은 거야?”

“물론입니다, 로드.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사라진 입으로 환하게 웃는 걸 보니, 이제 완전히 인간으로 돌아오긴 한 모양이군. 근데 이 남자, 소위 ‘집사’ 분위기의 복장을 하고, 서빙 카트까지 끌고 있는 폼이, 아직 자기 집에 돌아 갈 생각이 없는 것 같네?

“로드!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데릭은 서빙카트를 놓고, 나와 대교를 안내해 주었다. 그야말로 영화 속에서나 봤던 유럽 귀족들의 식사 장소 같은 분위기의 넓고 긴 식탁에 앉아있던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 쪽으로 모여들었다.

“하핫! 미안해요! 갑자기 중요한(?) 생각이 떠올라서 그만.”

“상관없네, 유준. 산드라 양의 얘기가 흥미로워서, 솔직히 자네가 없는 줄도 몰랐었네.”

S의 평소 같지 않은 농담에 모두의 웃음이 작게 실내를 울렸다. 나를 까먹고 있었다는 말은 농담인지 몰라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훈훈한 것만은 사실인 거 같았다. 나와 대교는 흑주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는데, 그 사이에 미스 카이가 산드라를 가볍게 재촉하여, 나 때문에 중단되었던 산드라의 얘기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흠. 이제 보니, 태양빛을 막을 수 있는, 마녀 가문의 특제 화장품 만드는 법을 알려 주고 있었나 보군.

-맞아요, 오라버니. 제가 오라버니께 가기 위해서 일어서기 전에는 데릭씨의 경우를 설명해 주기도 했었어요.

흐음. 오늘의 식사 자리가 본래 취지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 거 같군. 오늘 우리는 S와 카이 커플의 초대로 온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사실 이 자리는, 내가 윈드 게이트 시스템 시운행에 맞춰서 주선한 ‘뱀파이어들의 친목 모임’이니까 말야.

20일 정도 전쯤, 나는 서울의 떡볶이 골목에서 산드라를 만났을 때, 언제 한번, 우리측 뱀파이어들과 만나서, 선배 뱀파이어의 노하우를 가르쳐 줬으면 좋겠다’라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산드라도 그때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었는지, 그녀의 여행 가방에는 ‘태양빛을 완벽하게 차단하여 뱀파이어도 주간 활동이 가능해지는 화장품’도 챙겨져 있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다 좋은데, 식사 메뉴가 쫌, 거시기 하네. 데릭이 지금 뱀파이어들 쪽에 내려놓기 시작한 접시들에 담긴 저거, 핏물이 주르르 흐를 듯한 초레어 스테이크잖아. 나와 대교에게도 설마 저런 걸… 아, 다행히 아니로군. 우리 쪽은 잘 익혀서 나온 거 같네.

사실, 뱀파이어들이 핏물 뚝뚝 스테이크와 함께 시뻘건 와인 잔을 기울이는 모습은 그리 별스러울 것도 없었다. 꼭 뱀파이어가 아니라도, 서양인들 중에는 본래 저런 취향인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들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이 자리에서 가장 특이한 식사를 하는 건, 흑주였다.

“흑주! 너, 그렇게 먹고 되겠냐?”

“응.”

단출한 대답과 함께 나이프와 포크를 든 흑주는, 자신 앞의 커다란 접시 위에 달랑 한 개 놓여져 있는, 미트볼 같은 것을 정교하게 자르기 시작했다. 나로서는 그냥 한 입에 넣어도 될 걸 왜 굳이 썰어대는 건지부터 의문이었다.

먹는 방식이야 그렇다 쳐도, 식사량 자체가 문제네. 설마 몸매 관리 차원에서 다이어트를 하는 건 아닐 테고, 몸을 항상 가볍게 유지하여, 지 아빠 캔들 리 경호에 만전을 기하려고 저러는 거겠지? 아무리 그래도 저 녀석은 아직 성장기 나이인데 식사량이 저래서야 어디………………

공연히 아빠 모드 비스무리한 상태가 되고 있는 나에게 데릭이 다가섰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로드. 흑주 아가씨도 아침 식사는 충분히 드십니다. 로드께서도 보시면 놀랄… 헛!”

데릭이 말을 채 끝내지 못한 것은 날카로운 무언가가 그의 눈앞을 스치듯 날았기 때문이었다. 데릭은 벽에 박힌 흑주의 나이프를 힐끔 확인하고는 작게 몸을 떨었다. 데릭은 그렇게 흑주를 이틀 정도밖에 겪어보지 못한 티를 냈지만, 그를 도와 서빙 보조를 해주고 있던 페트라는 태연한 기색으로 흑주에게 다가가더니, 녀석 앞에 새로운 나이프를 놓아 주었다. 페트라는 흑주 앞의 빈 접시를 치우며 다른 접시를 내려놓기도 했는데, 거기에도 콩으로 보이는 거 몇 알만 담겨있었다.

저 녀석, 콩알까지도 몇 토막을 내서 먹네. 데릭의 발설로, 흑주가 항상 저렇게만 먹는 게 아니라는 건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 해도 별로 바람직하지는 않을 거 같아.

“흑주! 왜 그러는지는 알겠는데, 하루 한 끼만 폭식하면 쉽게 살찐다더라.”

“한 끼, 아냐. 두 끼.”

얼결에 아침뿐 아니라 점심까지는 꽤 푸짐하게 먹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백해 버린 흑주의 무표정 얼굴에 살짝 붉은 기가 돌았다.

-어머, 귀엽.

-동감.

대교와 나의 평가는 그랬으나, 흑주 본인은 우리의 뜨거운(?) 관심을 담은 시선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흑주는 ‘이게 전부 당신 때문이야’라고 하는 것처럼 데릭을 노려보기 시작했고, 데릭은 도망치듯 카트를 밀고 나가 버렸다.

-몽몽. 저 데릭 말인데, 이젠 정말 완전히 인간으로 돌아 온 거겠지?

「현재로서는 그렇게 판단됩니다. 세계정화재단과 산드라로부터 확보된 뱀파이어 관련 데이터, 조금 전까지 진행된 저의 스캔 결과로도 같은 결론이 도출됩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긴 했지만, 사실 데릭의 뱀파이어 증후군이 다시 발작한다고 해도, 크게 걱정할 문제가 아니긴 해. 화이트 판타지아에서 보았듯, 데릭 정도의 어설픈 뱀프는 미스 카이도 못 이겼는데, 흑주의 상대가 될 리가 없지.

여기서 최근까지 알게 된, 뱀파이어 관련 상식(?) 하나. 그건 모든 인간이 뱀파이어에게 물리는 족족 그냥 같은 뱀파이어가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마스터가 되는 뱀파이어가 자신의 피를 역으로 상대에게 먹이는, ‘어둠의 세례인가 뭔가 하는 과정이 있어야만 비로소 새로운 뱀파이어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데릭처럼 어둠의 세례를 받지 못한 인간이라도, 대략 72시간 정도는 어느 정도 뱀파이어로서의 특성을 가지게 된다고 하지. 문제는 72시간이 지난 후인데, 여기부터는 개인의 자질 혹은 체질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나? 마스터로부터 받은 마력의 효과가 떨어지는 시점에서 예의 ‘죽음의 쇼크’라는 게 일시에 찾아오면서 대부분 즉사해 버리고, 데릭처럼 살아남아서 인간으로 되돌아 올 확률은 극히 낮다고 하지. 이건 마스터쪽에서 자연스럽게 알아 볼 수가 있다고 했고, 다행히 데릭은 생존 쪽 체질이라는 진단(?)이 나와서 ‘감금 치료’를 하게 되었던 거야.

데릭처럼 나름 뱀프 체질인데도 마스터에게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그야말로 어설픈 뱀프 신세가 되기 마련이라고 한다. 흡혈에 대한 욕망을 참고 버티면 다시 인간으로 돌아 올 수가 있는데 참지 못하고 피를 탐닉하게 되다보니, 당연하게도 다른 인간들의 ‘뱀파이어 사냥’에 걸려 메롱되는 것이다. 마약 중독자가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하는 것처럼, 뱀파이어 증후군 환자들도 피를 지속적으로 마시면, 어느 정도의 젊음과 인간 이상의 괴력을 유지할 수는 있다고 하지. 하지만 그 정도 어설프고 비루한 상태로 뱀프 생활을 했다가는, 얼마 못가 인간들의 뱀파이어 사냥에 걸려서 목 잘리고 말뚝 박히기 마련이다. 나로서는 데릭이 그렇게 되는 꼴을 보긴 쫌 그래서, 일단 인간으로 되돌리기로 한 건데, 솔직히 데릭 본인의 마음은 잘 모르겠네.

-대교, 대교가 보기에는 어때? 데릭이 뱀파이어 증후군 증상이 사라졌는데도 여기에 남아있는 건, 나와 S에 대해 품고 있는 순수한(?) 동경과 존경심 때문일까? 아니면 언제고 S의 마음이 바뀌어서 자기를 진짜 뱀파이어로 만들어 주길 바라는 걸까?

나는 후식을 공수해 오기 시작하는 데릭을 보면서 물었고, 대교는 새삼 데릭의 충실한 집사 모드를 살피며 대답했다.

-저로서는 오라버니처럼 인간의 깊은 본심을 알아보기 어렵네요. 그렇지만, 오라버니께서 이미 데릭씨를 용서하시고, 이렇게 신경 써 주시게 된 것만 봐도, 데릭씨는 이제 다시는 지난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군. 이 영특쟁이 아가씨가 요점을 잘 깨우쳐 주었어. 데릭이 지금 구체적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어. 데릭이 나와 만나기 전의 인간 말종으로 되돌아 가지만 않는다면, 그러면 된 거야.

대교의 소위 ‘내 입안의 혀’ 모드는 너무나 강렬한 키스 욕구를 불러 일으켰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금장도(?)로 허벅지 찌르며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의 뜨거우면서도 그윽한(?) 시선을, 대교가 살포시 무시하며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흑주? 그러고 보니까, 우리들 앞에 놓이고 있는 과일 접시와 달리 흑주의 후식은… 흠, 역시나 후식도 단출하군. “흑주 아가씨, 오늘은 ‘실크베리 샤워코롱입니다.”

도무지 감이 안 오는 설명과 함께 요리 접시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막대 사탕’을 들어 올리더니, 정성껏 껍질을 까서 다시 내려놓았다. 흑주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살기만 거두어 나름의 흡족함을 드러냈고, 데릭도 비로소 안도하는 기색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나로선 짐작도 어려운 맛의 막대 사탕을 물고 있는 흑주에게 너무나 사랑스러워하는 시선을 보내던 S가입을 열었다.

“대교양, 나와 흑주가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건, 모두 사영 선배님 덕분이야. 선배님이 초대에 응하지 않으셔서 아쉽군.”

“아버지는 일단 맡은 일에는 철저한 분이에요. 오늘은 저희가 따로 인사드리러 갈 거니까, S님은 편안히 좋은 시간 가지셔도 될 거예요.”

대교의 사려 깊은 대응은 당연하지만, S가 새삼 사영 어르신의 존재를 중요시하는 발언을 꺼내는 건, 동기가 약간 수상(?)하군.

“후후. 미스 카이와 다른 곳도 아니고, 언더 월드의 지하 격투 대회에 가느라 경호 임무를 땡땡이 친 건, 아직 사영 어르신께 들키지 않았나요?” 내가 짓궂게 끼어들자, 천하의 S도 난처한 기색으로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건 천천히 얘기할 생각이네. 누군가가 굳이 먼저 발설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후훗. 그 누군가는 생각보다 입이 무거우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도 그렇게 믿고 싶네.”

“뭡니까, 난 물에 빠지면 입부터 가라앉을 정도로 입만 무거운 사람인데 왜 그렇게 못미더운 표정인 거죠?”

“비유가 뭔가 어색하네만, 어쨌든 믿어보겠네.”

쳇. 어차피 믿음이 없다면, 그냥 진짜 확 까발려 버려서 수다 본능이나 충족시켜? 그리고 나서 분노한 사영 어르신과 S의 칼부림 맞짱을 구경하는 재미도 나름 쏠쏠할 거 같은……………….

「주인님! 코드명 사영. 캔들 리 경호 팀의 팀장으로부터의 연락입니다.」

에? 이런 타이밍에? 사영 어르신이 설마, 타임씨와도 계약을 맺은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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