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92화 : 최악의 뱀파이어.(1)
8. 최악의 뱀파이어.(1)
캔들 리가 성공하길 바라서 S에게 이번 일을 숨긴 거라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꺼낸 사영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내가 ‘캔들 리’라는 남자를 가깝게 지켜보게 된 기간은 정말 짧지.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를 알게 되었네. 그래서 오랜 세월 프리메이슨 놈들을 치기 위해서 갈았던 칼을 이곳에서, 그를 위해 꺼내든 거야.”
‘프리메이슨 때문에 갈아 온 칼’, 혈의문 살수들을 말하시는 거군. 사영이 혈의문을 캔들 리 경호에 쓰겠다고 했을 때, 난 솔직히 지난번 미령이 납치 사건 때, 얼결에(?) 그들을 등장시키는 바람에 그냥 계속 공개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말았었지. 그런데 사실은, 애초에 캔들 리를 위해서 자신의 ‘비장의 무기’까지 꺼내 들었던 거였나?
“난 이렇게 생각하네. ‘캔들 리와 같은 인물이 이 나라의 수장이 되어 자신의 뜻을 펼칠 수만 있다면, 프리메이슨 놈들도 감히 세계의 지배자를 자처할 수 없을 거다’라고 말이야.”
이, 이런, 사윗감인 나의 부탁, 자신의 현역 복귀를 위한 워밍업, 의리파 남자 S에 대한 호의, 그런 것들로만 캔들 리 경호에 매진해 계셨던 것이 아니었나? 난 사영이 이렇게까지 생각하시는지는 몰랐는데, 공연히 민망해지네.
“그런데, 유준. 정치라는 건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네. 예를 들어, 도널드 웨인도 당장은 수상하고 위협적일 수 있으나, 그는 또한 사회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지. 만약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반드시 큰 힘이 될 수 있을 거야.”
으으음, 과연 연륜이 있으신 분답군. 경호를 넘어서 선거까지 신경을 쓰고 계셨었어. S의 태도가 캔들 리에게 목숨 걸고 있는 건 이해가되지만,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영까지 이럴 정도면, 우리 흑주 아빠가 대단한 인물이 맞긴 한 모양이네.
“이제 대충 알겠습니다. 장인어른이 S에게 이일을 숨겼던 이유는 두 가지였군요. 우선 캔들 리에 앞서, S 자신의 안전! 도널드 웨인이란 자가 캔들 리 경호 반경에 거주하던 여자를 희생양 삼은 건, S에 대한 도발 및 유인책, 만약 장인어른께서 먼저 상황을 알아채지 못하고 S가 알게 되었다면, 그는 십중팔구 혼자서 도널드 웨인에게 날아갔을 성격이죠. 물론, 우리의 막강 뱀파이어 S도, 적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든 쉽게 당할 리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꽤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았겠어요.”
물론, 도널드 웨인이라는 자가 어느 정도 급의 뱀파이어인지는 몰라도, S는 시그마와 산드라가 인정할 정도로 진조에 가까운 막강 뱀파이어이다. 하지만 문제는 도널드 웨인은 아무래도, 오랜 세월 보통 인간인척하며 세력을 키워 온 자로서, 엄청난 수준의 사조직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여기에 또 하나, 장인어른은 아직 정치 기반이 약한 캔들 리의 상황을 생각하시고, 도널드 웨인 같은 후견인이 아쉽다고 판단하셔서, 가급적
싸움보단 협상이나 포섭을 염두에 둔 만남을 추천하고 싶으신 거고 말이죠.”
“그런 얘기지.”
“결국, 골치 아픈 최종 판단을 저에게 떠맡기시는 거네요?”
“왜, 그럼 안 되나?”
쳇, 이쁜 딸내미를 둔 예비 장인의, 뻔뻔하고 당당한 태도를 맘껏 즐기고 계시는군.
“어차피, 총대장은 자네 아닌가, 마군황 나으리.”
“S는 내 수하도 아니고, 장인어른도 언제 제 명령을 그렇게 들었다고… 으~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일단 가보기로 하죠.”
사영은 비로소 만족스럽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사삭!
웃! 장난이 아닌데?
어느 정도 예상했으면서도 놀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신법이었다. 나는 한순간에 놓칠 뻔한 사영의 뒤를 따르며 나도 모르게 ‘울 장인어른 킹왕짱’을 중얼거렸다. 우리 둘의 신형은 순식간에 최상위 부자 동네의 담을 넘어, 나무숲을 저공비행했다.
「와우! 역시 대교님의 파파, 사영님!」
요몽이 생각보다 빨리 풀려났군.
「담장 주변부터 계속 감시 카메라와, 침입자 감지 장치가 엄청 많아요. 그런데도 이런 스피드로 사각지대만을 찾아서 이동할 수가 있다니!」 요몽은, 계속 요란하게 감탄했고, 나도 녀석이 스캔해 주는 보안 장치들의 규모와 수준을 보며 새삼 예비 장인어른의 능력에 존경심 비스므래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난밤에 철저히 파악해 두었기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어, 가만? 이거, 웃을 일이 아니잖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영이 먼저 어딘가의 나무 위에 착지하며 멈췄고, 나 역시 그 옆의 가지위에 내려섰다. 사영은 이제 50여 미터 떨어진 지점의 한 저택을 노려보며 안색을 굳히고 있었다.
말이 저택이지, 그야말로 궁궐이네. 홍콩에 있는 마녀 여옥의 저택도 마당이 차로 이동해야할 지경이었는데, 저긴 그보다 두 배가 넘는 것 같아. 그런데 문제는, 아직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닌데, 저 멀리(?) 본 건물의 중앙부에만 불이 켜져 있을 뿐, 너무나 어둡군. 게다가 벌써부터 느껴져 오는, 이 불길한 기운은… 제기! 우연의 일치로 몇 가지 일이 이어진 걸 사영이 오버해서 판단한 거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는데, 이건 아무래도 정말 거물급 뱀파이어가 등장한 모양이야.
-내가 어젯밤에 이쯤에서 멈추고 저 안까지 침투하는 것을 그만둔 건, 왠지 나의 접근이 이미 저들에게 간파되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어,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사영의 표정과 전음에는 새삼스런 쓴웃음이 배어 있었다.
-제가 보기에는 지금도 그런 거 같네요. 장인어른과 저의 접근을 이정도 거리에서 감 잡을 정도면, 이미 인간이 아니죠.
몽몽 남매의 진단으로는 프리메이슨급 첨단 장비에 의한 탐지는 아닌 것 같다니까, 역시 오컬트 계열의 능력자가 저 안에 있다는 결론이다.
-그럼에도 지난밤에 장인어른이 침투하셨던 루트의 보안 장비들이 변함없었던 걸 보면, 역시 저 음침한 궁궐의 주인은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얘기겠죠. 유인 혹은 초대의 목적이 뭔지는 몰라도 말이죠.
-그래, 이제 어쩔 텐가.
-그을쎄요? 본래 초대받은 건 제가 아니고, 장인 어르신 생각처럼, 소위 ‘정치적 판단도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지금부터 딱 10초간 더 고민해보고 결정할랍니다.
사영이 어이없어하는 가운데, 요몽이 눈치 빠르게 진짜 허공에 10부터 카운트되는 숫자 영상을 띄웠다. 나는 나름의 진지한 고민을 10초씩이나(?) 한 다음에 결론을 내리고 사영에게 물었다.
-장인어른 캔들 리의 이웃집 아가씨, 희생된 여자 분의 이름은요?
-낸시, 낸시 윌슨.
-알겠습니다. 그럼, 갑니다.
나는 몸을 숨기고 있던 나무로부터 훌쩍 뛰어 내리고, 정글도를 어깨에 걸쳤다.
-정글아, 정신 챙겨! 찐한 살풀이 한 판 하게 될 거 같다.
그래, 사영의 얘기를 끝까지 들었던 것도, 10초의 추가 고민 제스처도 사영에 대한 예의 차리기에 불과했어. 사영이 날 어떻게 봤는지 몰라도, 정치적 판단? 난 그런 거 몰라! 안 해!
꽈쾅!
생사금마도결이 펼쳐진 거대 철문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좌우로 벌려졌다. 나는 그 사이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지만, 곧바로 누군가가 막아서지는 않고 있었다.
「주의하십시오, 주인님. 일차 스캔 결과 전방의 나무 그늘 속의 적들은 평범한 인간들이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전투가 시작될 거 같으니까 몽몽이 교대해서 나왔군. 그거야 어쨌든, 이거, 예상보다 한층 더 껄적지근한 기분이 들기 시작하네.
몽몽의 스캔 영상이 아니라도, 내 감각에 느껴지는 놈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문제는 머릿수가 아니라, 놈들이 풍기고 있는
기운의 정체였다.
뭐,지? 이 낯익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낯선, 기묘한 느낌은? 한 놈, 한 놈이 모두 만만찮은 기운이라는 거 자체가 긴장 타야할 이유지만,
정체불명이라는 점이 더 거슬리는군.
나는 놈들의 선제공격을 바라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보았으나, 매복자들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공공보법을 써서 속도를 높여도
마찬가지여서, 결국 아무런 방해도 없이 드넓은 정원을 가로질러, 본 건물 앞까지 올 수가 있었다.
막상 헤아려보니, 총 13명이었어. 정원 규모에 비해서는 상당히 적은 숫자지만, 이 13명의 추정되는 전력은 최소한 대대급 이상의 특수군 느낌이야. 도널드 웨인이란 자는 대체 어떤 수하들을 거느리고 있는 거지?
「주인님! 분석이 늦어 죄송합니다. 적들의 정체는…………….
몽몽의 보고가 끝나기도 전에, 궁궐급 저택의 현관문이 소리 없이 열려지고 있었다. 3, 4미터정도 높이의 문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검은 양복을 입은 금발의 백인 남자였다. 나와 비슷한 키에 호리호리한 체형, 여자처럼 갸름한 얼굴에 가늘게 뜬 눈이 왠지 소름끼치는 인상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웨인님의 북쪽 별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놈은 자랑하듯 송곳니를 반짝이며 지껄였지만, 나는 별다른 대꾸 없이 놈과 놈 뒤쪽의 공간에서 느껴지는 기운의 흐름을 가늠해보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아, 물론, 사신께서 보낸 분일 경우에 그렇다는 겁니다.”
내 생깜에 기분이 상했는지, 놈에게서 은근한 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먼저 묻지. 낸시 윌슨이라는 여자를 물었던 건, 너야? 아니면 너의 마스터냐.”
놈은 잠시 살기를 멈추고 뭔가 망설이는 것 같더니, 약간의 쓴웃음과 함께 대답했다.
“낸시 양은 보기 드물게 순결한 처녀였습니다. 사신께 보낼 귀한 선물에 제가 손을 댈 수는 없었지요.”
“그럼 넌 일단 빠져.”
난 말을 마침과 동시에 가볍게 도약했다. 단숨에 위쪽으로 솟구쳐 오르자, 2층 중앙의 발코니가 바로 눈앞이었다. 바깥에서 보았을 때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던 방으로 통하는 발코니였다.
반쯤 쳐진 커튼 너머로 보이는 백인 노인네, 저 자가 도널드 웨인인가? 노인네고 뭐고, 오늘은 그냥 확!
“무례한 분이군요.”
등 뒤에서 차가운 음성이 들려 온 직후, 뭔가가 피웃! 바람을 갈랐다.
웃차. 이정도야 가볍게 피할 수 있지만, 뭐였지? 칼날이 아닌데도 칼날처럼 날카로운 카드정도 크기의…가, 아니라, 카드 맞군.
현관에서 날 맞이했던 놈이 발코니 난간에 서서 양 손으로 몇 장인지 모를 트럼프 카드들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발코니 안쪽으로 몇 미터정도 들어선 상태의 나는, 놈의 양 손바닥 사이에서 살아있는 것처럼 오가며 차르륵- 소리를 내는 카드를 보며 피식 웃었다.
“우째 여태 안 나오나 했다.”
“무슨 뜻 입니까?”
“아니 그냥, 만화나 영화 보면, 서양 악당 캐릭터 중에서 항상 카드를 암기처럼 쓰는 놈이 나왔었던 것 같아서 말야.”
“흠. 전 그렇게 싸구려 캐릭터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당신에 비해서는 개성이 부족한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요.”
“뭐, 임마. 양복입고 정글도 휘두르는 인간, 첨보냐?”
“전 영생의 육신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오늘밤 처음 보고 있는 중입니다.”
“뱀파이어가 된지 얼마 안 되었다고? 그거 안됐군.”
말과 함께 도기 한방을 날려보았으나, 예상대로 놈의 몸을 지나쳐 날아갔을 뿐이었다.
“마력을 이런 식으로 쓰는 뱀파이어는… 아, 방금 당신 스스로 ‘인간’이라고 칭하셨던가요? 당신, 설마?”
“뭐가 설마냐? 난 그냥 보통 인간이야,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같은 것이 아니고.”
카드를 암기로 쓰는 뱀파이어 남자는, 나를 찬찬히 살피며 말을 이었다.
“우리와 같지는 않더라도 당신이 보통 인간일리가요. 동양인들의 무공이라 불리는, 황당한 마법 전투 영화를 몇 편 본 일이 있긴 합니다. 정말 있었군요, 그 무공이란 것을 쓸 수 있는 인간이.”
이런 제기. 누가 누구더러 황당한 존재래? 이 적반하장 흡혈귀 놈을 단칼에 요절 내…주고 싶지만, 젠장! 좀 전까지의 움직임만 봐도, 만만찮은 강적이야. 느껴지는 마력은 내가 아는 뱀프들보다 약한 거 같은데, 움직임은 그에 못지않아. 느낌도 뭔가 다른 듯한・・・ 아, 가만?
-몽몽, 너 좀 전에 정원에 매복하고 있는 놈들 정체가 뭐라고 했지?
「‘하이브리드 웨어 울프’라는 보고였습니다.」
웨어 울프, 이건 늑대 인간이란 소리고. 하이브리드? 이게 무슨 뜻이었더라?
「웨어 울프를 인위적으로 강화시킨 것인지, 생체 강화 인간이 웨어 울프가 된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합니다.」
에구, 융합이란 뜻이었구나. 근데, 생체 강화 전사가 늑대 인간의 힘까지 갖추고 있는 거라고? 우쒸! 그래서 내가 헷갈렸구나. 양쪽 다 겪어봤지만, 둘이 합쳐진 건 처음이니 말야. 그리고 그렇다면, 당장 눈앞의 이 녀석은 혹시?
“너, 생체 강화 인간이면서 뱀파이어가 된 거냐?”
계속 여유를 보이고 있던 녀석의 얼굴이 처음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놀랍군요. 동양의 마법으로 그런 것까지 알아 낼 수 있는 겁니까?”
빌어먹을, 강적일 수밖에 없었구나! 으~ 그런데, 프리메이슨 놈들이 이런 식으로 휴전을 깨고 뒤통수를 친…다고 보기에는 뭔가 이상하네?
“너, 나 몰라? 프리메이슨에서 내 얘기 못 들었냐?”
하이브리드 뱀파이어의 얼굴이 더욱 굳어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살기와 마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동양 마법의 힘이 아니었군요. 누굽니까, 당신은? 사신이 아니라, 그들이 보낸 겁니까?”
프리메이슨을 알고, 난 모른다? 그리고 프리메이슨을 별로 좋아하는 거 같지도 않네?
“난 누가 보내서 온 게 아니야. 난……”
“그렇다면 더 들을 것도 없군. 웨인님이 초대한 자가 아닌 이상, 당신은 이제 집으로 돌아 갈수가 없을 겁니다.”
놈의 새파란 눈동자에 같은 색의 불길이 일렁이는 것 같았고, 내 얼굴에는 쓰디쓴 웃음이 번졌다.
촤라라라라~!
놈의 손 안에 있던 카드들이 분수처럼 사방으로 쏟아져 나왔다. 한 벌 정도로 보였던 카드들이 수백 장으로 늘어나며 그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나비로 변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다음 순간, 나는 놈의 모습을 놓쳤다.
사라졌다? 기척까지? 마법? 아니, 그보다!
실처럼 가느다란 카드 암기의 파공음이 사방에서 거의 동시에 엄습해왔다.
그래도, 정확히 동시에는 아니야!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틀고 정글도를 휘두르며, 카드들을 피하고 쳐냈다. 그러나 한차례의 카드 폭우가 지나간 후에도, 사방의 허공에 떠있는 카드들의 수는, 조금도 줄어든 것 같지가 않았다.
전부 방어하기는 했어도, 정글도를 통해 느껴진 위력은 나이 호신강기를 우습게 파고들 수준. 더 많은 수가 덮쳐오면… 윽, 역시나!
샥! 샥! 샥! 샥! 샥! 샥!
두 배 이상 많아진, 카드 암기의 만천화우를 정신없이 피하고 쳐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몇 개인가가 옷과 피부를 스쳤다. 새삼스럽게 머리로 피가 몰리며 빡이 돌아 버렸다.
썅! 이 비싼, 단벌 양복을!
카콱!콱콱!
내력의 배분이고 나발이고, 사방으로 도기의 폭풍을 날려 버렸다. 한순간에 허공의 카드 무리가 흩날려 흩어지며, 놈의 형체와 기운이 포착되었다. 이게 오히려 정답이었나? 놈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카드 무리 속에 자신을 감춘 것이었어!
번쩍!
감 잡은 놈의 기운에 삼시전결이 쏘아졌다. 그러나 놈의 신형이 옆으로 흐르듯 피해 버리는 것이 한 박자 빨랐다.
이씨! 이제 개나 소나 다 피해? 삼시전결을 뭘로 보고!
이를 악물고 날린 전결의 섬광은 네 개! 그 중 하나에 걸린 놈의 입에서 크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뒤로 튕겨지듯 물러나는 놈을 따라 붙으며 마무리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머리 위쪽에서 무서운 기운이 폭사 되었다.
꽈직!
간신히 방향을 바꾼 직후, 내가 갔었을 자리의 돌바닥이 두부처럼 깨져 버렸다.
하이브… 우쒸, 몰라! 하여간 늑대 새뀌 하나가 끼어들었군. 겉모습은 전에 만났었던 ‘라이칸스로프’와 비슷한, 두 발로 선 거대 늑대 괴물인데, 풍기는 기운은 뭔가 달라. 자연산과 인공 양식에 맛의 차이, 아니, 강함의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지.
“크우~ ‘리버’에게 상처를 입히다니, 인간이면서, 크~ 강하구나.”
짐승의 목 울림이 섞인 목소리 톤도 비슷하네. 그리고 ‘리버’라는 건 카드놀이 뱀프의 이름인 모양이지?
“크르~ 리버가 당한 그대로, 아니 몇 배로 갚아 주마!”
“이봐, 동료애 강한 늑대씨! 그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게다가 쟨, 벌써 부활중인 거 같은데, 난 평범한 인간이라 저렇게는 안 된다구.”
공연히 말을 걸며 상황을 가늠해 보는 건, 이 대표 웨어 울프의 뒤쪽 난간으로, 다른 웨어 울프들도 하나 둘, 뛰어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제엔장 맞을, 타임씨. 날 게임 속 캐릭터로 여기는 거야, 뭐야? 왜 내가 좀 강해졌다싶으면, 때맞춰 더 강한 괴물들을 등장시키는 거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