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105화 : 마계 콜로세움. (2)
2. 마계 콜로세움. (2)
「맙소사! 어떡해요! 저것들이 전부 대교님께 달려들면 어떡해요!」
요몽의 어쩔 줄 몰라 하는 외침이 아니더라도, 나 역시 진작에 정글도를 움켜쥐며 의자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요몽! 산드라에게……………
「예! 얼른 산드라씨를 이쪽으로 호출할게요!」
-그게 아냐, 임마! 당장 거기서, S와 함께 리버를 이용한 웨인 추적을 시작하라고 해! 단, 최대한 신중하게!
「에? 진짜요? 그럼 대교님께는 직접 달려가시게요? 물론 주인님의 경공도 장난이 아니… 어? 지금 모하시는 거예요?」
나는 요몽이 놀라거나 말거나,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요몽. 너, 시끄러워서 안 되겠다. 당장 몽몽에게 전권을………….
「앗! 잘못했어요! 이제 조용할게요!」
요몽은 울상을 지으며 화면에서 사라졌고, 나는 잠시 눈을 질끈 감고 있다가 다시 떴다.
침착하자, 침착해. 아직 웨인 놈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니야.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대교는 강해!
나는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 화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화면속의 문자 정보로는 ‘아이스하키장’이라고 표시되고 있었으나, 현재의 상태는 고대 로마의 원형 경기장 분위기에 가까웠다. 대교와 길모르는 경기에 출전한 선수처럼 한쪽 진영에 서있었고, 그 반대편 진영에는 예상대로 살리나와 붕대소녀 피비, 프랑켄슈타인이 대기하고 있었다.
라이칸스로프는 보이지 않는군. 그놈은 마계로 돌려보내고, 이번에는 다른 놈을 부를 생각인 걸까? 하지만 어차피 저 관중석의 그 어떤 놈이라도 나서면・・・ 이, 이런! 벌써 한 놈이 뛰어들었어.
거대 도마뱀이 두발로 선 모습인데다, 머리가 세 개나 되는 괴물이었다. 그런 괴물놈이 머리마다 징그러운 혀를 날름거리며 대교에게 저벅저벅 다가서고 있었다.
“제물! 최상의 제물이다! 나는 기다림이 싫어! 내가 직접 싸워서 먹어치우겠다!”
저 씨앙노무 도마뱀 시키가 감히 누굴, 에?
스걱!
낮은 절단음과 함께 도마뱀 머리 하나가 허공을 날았다. 대교의 청명검이 언제 뽑혔다가 다시 들어갔는지는 나도 제대로 보지 못했고, 그건 도마뱀 괴물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어, 어떻게? 자, 잠깐! 우리가 너무 흥분했다! 용서해라!”
도마뱀 괴물은 대교의 눈치를 살피며 주춤주춤 물러나다가, 결국에는 후다닥 몸을 돌려 관중석으로 달아나 버렸다. 관중석에서 웃음소리로 여겨지는 소리와 야유로 느껴지는 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뭐야, 저 삼두 도마뱀. 무슨 단발 개그 캐릭도 아니고, 마족 중에도 저렇게 어설픈 놈이 있는 건가? 응…? 가만?
「주인님. 방금의 파충류 형태 생물체를 포함한, 현재 공간의 생명체들에 관한 1차 스캔 및 분석이 완료되었습니다.」
보고 내용이 무엇이든, 몽몽이 직접 한다는 사실이 우선 반가웠다. 처음엔, 대교가 저곳에 들어가는 거 자체를 반대할 정도였지만, 이제 몽몽도 여유가 생긴 모양이니 말이다.
「웨인의 친위대를 제외한 모두가, 이세계(異世界)를 기원으로 하는 구성 코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즉, 모두 마계의 손님입니다.」 역시 그랬군. 난 지금 저 놈들을 가까이 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서 헷갈렸지만, 그래도 왠지 그런 느낌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도마뱀 괴물도 대뜸 마족으로 인식했던 거야.
이렇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단순히 생각하면, 웨인 놈의 뱀프나 늑대 인간 떼거지보다, 저 엄청난 마족들이 훨씬 더 위험하고 무섭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라프가 있다. 마계의 왕자 격인 라프가 뜨면, 마족들 머릿수가 아무리 많아도 별문제 없이 수습될 수도 있다.
「마족들은 다양한 형태의 고대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조금 전의 도마뱀 형태 마족은 고어체 영어였습니다.」
관중석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번역되어 자막으로 찍히기 시작했는데, 좀 전에 내가 느꼈던 대로, 도마뱀 괴물을 비웃고 야유하는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관중석의 수천 마리 괴물들을 돌아보던 대교가 빙긋이 웃었다.
“알고 보니, 다른 세계에서 오신 손님들이셨군요. 저는 보시다시피 인간의 여자, 이름은 대교라고 하지요.”
대교 특유의 미성이 그녀의 내공에 실려 드넓은 경기장 전체에 퍼져나갔다. 잠시 그녀의 인사 소리를 듣기 위해 조용해졌던 관중석에서 ‘맘에 든다’, ‘탐난다’ 같은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비현실적이고 흉폭한 울림의 소리들은 그냥 ‘잔혹하게 잡아먹고 싶다’로 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대교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낭랑한 목소리를 이었다.
“저는 곧 진유준이라는 분과 맺어질 여자입니다. 아쉬워도 포기해 주세요.”
애고, 대교가 또 저런 식으로 자기소개를? 아, 아니지 지금은 꼭 밝혀두어야 할 얘기였어.
더 많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들이, 이 마계의 콜로세움과도 같은 장소를, 보통의 스포츠 경기장 같은 분위기로 바꾸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문득, 주가혜 시절의 대교가 이보다도 많은 관객들 앞에서 무대 인사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사랑받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대교의 아이돌 오오라가 인간계를 넘어 마계의 마족들에게까지 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는 오늘, 다른 이들에게 보여질 싸움을 하러 온 것이 아니에요. 하지만, 이미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계셨으니, 어쩔 수가 없군요. 최선을 다할 테니, 잘 지켜봐 주세요, 인간 여자의 ‘무공’이란 것을!”
저건, ‘오늘 나를 잘 보고, 앞으로는 인간계에 오더라도 너무 까불지 말고 다녀라’는 의미가 담긴 말 같지만, 마족 관중들은 의미를 따지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우오어~ 크와아~ 캬우우! 키케에엑~!
인사를 마치고 돌아서는 대교에게, 각양각색 괴이 끔찍한 응원의 함성이 쏟아지고 있었다. 대교를 믿고 작전을 강행하고 있는 거지만, 내심
무지하게 걱정이 심했던 나로서는, 다소 벌쭘할 정도의 분위기였다.
“놀랍군요.”
그래. 나도 꽤 놀라고 있는데, 너희들은 더 놀랍겠지, 살리나.
“이렇게 많은 마족들 앞에서도 겁먹지 않고, 오히려 자신에게 유리한 분위기로 이끌었어요. 진유준님이 당신을 믿고 혼자 보낸 이유를 알겠어요.” “제가 혼자 보내졌다고요?”
대교는 자신보다 약간 뒤에 서있는 길모르를 돌아보며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분께 실례되는 말이었어요. 길모르씨는 비록 천주와 직접 겨뤄보진 않았지만, 천주께서는 길모르씨가 자신보다 약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고까지 말씀하셨죠.”
응?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생각은 잘 안 나지만, 뭐, 길모르의 강함은 정말 장난이 아니니까, 일단 그랬다 치자.
“대교양 과학자로서의 내게 강하다는 건 큰 의미가 없소. 하지만 소위 남자로서는 기분 좋은, 최고의 칭찬이로군.”
길모르는 특유의 굵직한 미소와 함께 앞으로 나서며 친위대 삼인조를 지긋이 응시했다.
“모두 흥미로운 존재들이군. 어디, 누가 먼저 나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겠오?”
내식대로하면 ‘아무나 뎀벼’일 텐데, 꽤 학구적으로(?) 표현하는군. 어쨌든 살리나 쪽의 반응은?
“고르곤!”
아, 그래. 저 프랑켄슈타인의 이름이 ‘고르곤’이었지? 어쨌거나, 양측 첫 출전자들의 비슷한 덩치만 보면, 아주 전형적인 맞짱 패턴이로군. “크우어어어~!”
고르곤은 아예 노골적으로 킹콩스러운(?) 포효를 하고는, 쿠웅! 쿠웅! 묵직한 발걸음 소리를 내며 길모르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초점 없는 두 눈 때문에 더욱 힘만 짱센 무뇌괴물처럼 보였다.
하지만 저 놈은, 스피드와 파괴력을 겸비한 대장 늑대 크루버를 압도적으로 이겼었어. 보기와 다른 어떤 측면이… 웃! 저, 저건?
콰직, 하는 소리가 들렸다 싶은 순간, 고르곤의 거구가 엄청난 스피드로 길모르에게 엄습해갔다.
꽈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몸통박치기에 걸린 길모르의 육중한 몸이 뒤쪽으로 튕겨졌다.
꽈직!
이어진 폭음은 길모르의 몸이 경기장 외벽에 쳐 박히는 소리였다. 대충 봐도 삼십여 미터, 그 거리를 날아가 시멘트벽에 반쯤 박혀버린 길모르의 몸 주위로 쩌적, 벽 갈라지는 소리가 더 이어지고 있었다.
고르곤, 저놈! 내 기대(?)를 저버리고, 저렇게 엄청나게 뻔한 패턴의 공격을 해오다니! 물론, 지금의 공격도, 크루버 같은 늑대 인간처럼 빠른 괴물이라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폭발적인 순발력을 보여줬다는 것을 인정해. 하지만, 지금 고르곤의 상대는 늑대 인간이 아니야. 보기와 달리, 아인슈타인급 두뇌를 가진 길모르가 과연, 저렇게 뻔한 공격을 예측하지 못하고 쉽게 당한 걸까?
일견, 케이크에 던져진 인형처럼 벽에 박혀있던 길모르가 끄음~ 소리를 내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을 벽에서 빼내면서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툭툭 쳐서 시멘트 부스러기를 털어내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애써 공격을 받아 줘 봤는데, 생각보다 별거 아니로군’이라고 말하는 듯 한 태도였다.
“실수했군. 싸우러 오면서 이런 걸 입다니.”
지금 길모르는, 밝은 회색 털 스웨터를 입고 있는데, 먼지가 잘 털어지지 않는 모양이군. 여유를 보이고 있는 건 좋은데, 고르곤은 다시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네. 잔뜩 웅크려 도사린 몸 위로 뭔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저 모습은, 조금 전보다 몇 배로 강력한 돌진을 해올 태세인 건데, 길모르는 과연… 에?
길모르는, 고르곤의 무시무시한 공격 태세를 무시한 채, 웃옷을 벗고 있었다. 경기장 외벽은 시멘트 벽 위에 철망이 쳐진 구조였는데, 길모르는 자기 옷을 철망에 잘 걸어놓고 나서야 다시 고르곤을 향해 섰다.
무시무시함을 무시, 나름 나쁘지 않은 말장난…인건 그렇다 치고, 길모르의 우람한 상체가 아놀드 행님 싸다구 날릴 수준이라는 것도 그렇다 치고, 고르곤의 기세에 분노가 더해지고 있는 것도 그렇다 치, 아니, 이건 그렇다 칠 게 아니구나!
“크와아아아~”
다시 터져 나온 포효와 함께, 고르곤의 바위 같은 몸이 대포알처럼 쏘아졌다.
쿠콱!
받아 냈, 아니, 밀린다? 저, 저거, 저거!
꽝! 꽈릉!
격렬한 굉음과 함께, 경기장 외벽의 한쪽이 그야말로 박살나고 있었다. 그쪽 벽 주위의 마족 관중들이 황급히 몸을 피하는 가운데, 경기장 외벽에는 결국 커다란 구멍이 뚫려 버렸다. 그 구멍 속에서 계속 꽝! 꽈릉! 파괴음이 들려왔다.
-몽몽!
「이미 저의 스캔 범위 밖으로 멀어졌습니다. 격돌 순간의 분석만으로는 승패 예측이 어렵습니다.」
쳇. 알겠다. 넌 이제 다시 대교 서포트에 집중해.
승패가 중요한 건 당연하지만, 난 사실 길모르의 전투 자체가 궁금했었다. 내 수하가 된 남자지만, 난 아직도 그의 진정한 힘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주인님! 산드라씨 연락이에요! 연결할까요?」
-오! 그래? 당장 연결해
「넵!」
요몽의 대답 직후, 기다리던 산드라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로드. 리버가 웨인의 의식을 인지하는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저와 S님의 판단으로는, 웨인 쪽에선 아직 리버의 의식이 접근하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좋아! 일단, 기대대로 잘 진행되기 시작한 모양이군.
「“지금 막 리버가 웨인이 보는 것을 함께 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아! 대교님? 대교님이 웨인을 상대하고 계신 것입니까?”」
-아니, 그건 아닐 거야. 지금 대교가 어떻게 보이지? 정면으로 보이는 건가? 각도나 눈높이는?
“그런・・・거 같습니다. 예. 약간 불확실하지만, 분명히 정면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눈높이도 비슷합니다.”」
-그럼 역시, 웨인 놈은 살리나의 눈을 통해서 대교를 보고 있는 거야. 핫~! 이거 대체 몇 중 방송(?)인거지? 살리나의 눈을 통해서 웨인 놈이 보고 있는 것을, 다시 리버가 보고, 그걸 당신이 또 읽어내고, 난 또 그걸 이렇게 보고받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대교가 가진 장비를 통해서 살리나를 보고 있지.
「“저어, 로드.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조금 혼란스럽습니다.”」
-하핫. 미안. 나도 말하면서 헷갈릴 정도이긴 했어. 이제 산드라는 계속 리버의 의식을 유도하고 읽어내는 일에만 집중해줘.
「“예, 로드. 그런데, 대교님이 평소와 다르게 보이십니다. 살리나, 혹은 웨인이 대교님을 많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음? 이 얘긴… 아, 그런가? 지금 산드라가 엿보고 있는 것은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이 아니야. 대교를 보고 있는 자의 감정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의식의 투영인 거지.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살리나는 지금 우리 대교에게 잔뜩 겁먹고 있다는 거지.
내 눈에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저 사랑스럽고, 이쁘기만 한 우리 대교. 그녀는 길모르와 고르곤 때문에 생겨버린, 외벽의 커다란 동굴(?)을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천천히 살리나 쪽으로 몸을 바로 했다.
“금방 돌아오지는 않을 것 같네요. 그럼, 이제 우리도 시작해 볼까요?”
대교가 잔잔하게 웃으며 걸음을 떼기 시작하자, 살리나는 주춤, 뒤로 한 걸음을 물러나기부터 했다. 현재 웨인 놈의 눈과 귀를 대신하고 있는 살리나가 너무 빨리 죽어도 곤란했지만, 더 이상 대교에게 일부러 시간을 끌라고 할 수도 없었다.
“자, 잠깐! 당신의 상대는 우리가 아니에요!”
살리나는 다급하게 외쳤지만, 대교는 가벼운 코웃음을 쳤다.
“누가 상대를 지정해 달라고 했나요? 당신들은, 모두 본래 저의 싸움 상대가 아니에요. 따끔한 징계의 대상일 뿐.”
말을 마침과 동시에 청명검이 스렁- 뽑히며 차가운 검광을 뿌렸다.
촤라라라락~!
분광가검(分光加劍), 아니, 분광진검식(分光眞劍式)이 펼쳐지며, 눈부신 검기의 폭우가 살리나와 피비에게 퍼부어졌다.
“큿! 피비님!”
나름 수준급 뱀프다운 초고속 이동으로, 간신히 분광진검식의 사정권에서 벗어난 살리나가, 피비를 외쳐 불렀다. 피비는 피할 생각도 없이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던 것 같았고, 그녀의 주위 허공에 하얀 천 조각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지난번처럼 저 붕대로 방어를? 아니, 그보다, 대교가 처음부터 피비는 해칠 생각이 없었던 거야.
대교는, 멀찍이 튄 살리나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으면서, 이제는 붕대 소녀가 아니게 된 피비만을 찬찬히 살피고 있었다. 피비 역시 대교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보고 있었는데, 현장에 있지 않은, 내가 오히려 눈길을 어디로 향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저 피비인지 뭐시긴지, 그냥 다른 뭔가로 방어 할 것이지, 붕대가 싹 날아가니까, 완전 올 누드 상태잖아? 쟨 대체 왜 저따위 패션(?)인 거냐구! “피비. 나도 당신을 그렇게 불러도 될까요?”
대교는 비교적 다정한 음성으로 피비에게 말을 걸었지만, 피비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어 보였다.
“피비. 당신은 아까 그 불쌍한 거인과 달리, 자신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아까의 거인? 고르곤을 말 하는가 본데, 대교는 그 놈을 ‘마음이 없는 생체 로봇’정도로 느꼈나보군. 나도 어느 정도 그런 느낌을 받긴 했었지만, 확신을 할 수는 없었는데, 대교가 그렇다면 그런 거는, 일단 중요한 게 아니고!
“피비. 당신과 웨인이란 자는… 아, 알겠어요.”
대교의 질문이 묘하게 끊긴 것은, 피비가 한손을 들어, 대교의 뒤쪽을 가리켰기 때문이었다. 대교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쓴웃음부터 떠올렸다. “지금 막, 제 후위를 점한 자를 쓰러트려야만, 저의 의문에 답해 줄 수 있다는 거죠?”
“아니! 틀렸어, 인간 여자!”
대신 입을 연 놈은 방금 관중석에서 날아와 대교의 뒤쪽에 내려선 마족 놈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 소환된 동족들 중에서, 그녀와 제대로 계약을 하고 초대된 것은 나뿐이지. 하지만 계약 내용 중에 인간 따위, 그것도 여자에게 패하라는 내용은 없었다.”
“아, 그러신가요?”
대교는 그쪽으로 몸을 돌리며 ‘당신은 계약을 지킬 수 없게 될 거예요.’ 정도의 대사를 하려던 것 같았다. 하지만 대교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녀처럼 왠지 싸~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다른 마족들과 달리, 인간형인건 좋은데, 차림새가 쫌 그러네. 대교보다 머리 두 개쯤 크고 우람한 덩치의, 근육질의 상체를 드러내고 망토만 달랑 두르고 있으며, 양 손에 든 창과 방패, 목소리까지 과도하게 굵고 거칠게 내고 있는, 당장에라도 우렁차게 ‘스파~르타아~라고 외칠 듯 한 분위기랄까?
“나는 ‘투루가’! 고대의 인간들은 나를 전쟁의 신으로 섬겼었지.”
전쟁의 신, 투르가? 전쟁의 신까지는 몰라도, 보기와 달리 … 아, 영화 ‘300′ 때문에 이상한 선입견이 생겼지만, 사실 저게 원래는 강한 이미지의 비주얼이 맞던가? 하여간, 몽몽이 제공하는 정보창에 나오는 에너지 방사 수치 4k, 살리나의 세배 가까이 높아. 이거, 아무리 천하의 대교라도 쉽지 않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