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109화 : 오페라의 유령 (3)
3. 오페라의 유령 (3)
상대가 뱀파이어고 뭐고 상관없다는, 자신감이 넘치는 태도로군. 나타샤가 그만큼 강한거야 알지만, 그래도 기본 사항은 체크해야겠지?
-요몽. 수상한 놈은 주연배우 하나냐? 다른 극단원들이나 관계자들은 어때?
「예. 저희들과 경호팀의 다각도 검증에 더 걸린 사람은 없어요. 문제의 인물은 ‘에릭 브리튼’이라는 이름의 배우인데, 4년 전의 오디션 때, 그전까지
무명이었던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매혹적인 목소리로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하면서 ‘유령’역을 차지했었데요.」
뱀파이어의 특기중의 하나가 인간을 홀리는 ‘마성(魔聲)이니까, 그때쯤에 이미 뱀파이어가 됐었다는 얘기로군.
「베일에 싸여있는 사생활, 게다가 이름도 극중의 유령 캐릭터와 같은 ‘에릭’, 그래서 ‘혹시 진짜 유령이나 뱀프같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닐까?”라는 소문이 돌기도 한다는데, 오늘 우리가 그걸 확인한 셈이네요.」
훗. 자기 주인인 웨인 놈과 달리, 아예 대놓고 ‘나 뱀파이어요’라는 정책으로 지내온 놈이었군. 어쨌거나 중요한 건, 보통 인간을 잠시 어떻게 해버리고 친위대 놈이 대신 무대에 올랐던 것이 아니라, 원래 예전부터 친위대가 배우 활동을 해왔었다는 거야. 현재 상황에서 대외적으로는 분명 인간 배우인 녀석을 메롱시키면, 캔들 리에게 좋지 않은 여론이 형성될 수도………………
「주인님! 나타샤가 목적지로 향하는 통로 부근까지 도착했네요.」
요몽은 보고와 함께 극장 건물 내부를 비추는 영상창을 띄웠다. 요몽 말대로 나타샤는 사람 많은 로비를 거의 가로질러, 정문에서 가장 먼 구석의 통로 부근을 걷고 있었다.
뭐야? 나타샤가 어째, 안 쓰던 뿔테 안경까지 쓰고 출근(?)했었네? 보통은 지적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안경을 소품으로 쓰곤 한다지만, 쟤는
‘폐쇄적이고 깐깐한 사감 선생’ 분위기만 더 강해질 것 같은…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고!
-답신 보내라. ‘기존 명령 유지. 캔들 리의 비서진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것’이라고 말야.
명령이 즉각 시행되었는지, 나타샤가 천천히 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녀석은 이미 가려던 통로 바로 앞까지 도착한 상태였는데,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으로 내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살짝 쓴웃음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이상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요몽. 나타샤의 스마트폰을 통해서 저쪽의 소리도 들을 수 있겠지?
「당근입죠. 보통 기기도 가능하지만, 지난주에 어사조 전원이 새로운 기기를 지급받았다고 했잖아요.」
아참. 그랬었지? 지하무림 전체는 아니라도, 내 직속 어사조들에게는 몽몽 남매가 항상 쉽게 연동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지급되었다고 했어. 바로 지금과 같은 중요작전 상황에서 전체 병력 지휘에 용이하도록 말야.
곧바로 나타샤의 또각또각, 구두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평소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으나, 약간은 더 안정적이면서도 빠른 느낌이 들었다. 그런 나타샤의 걸음이 다시 멈춘 것은 한적한 통로로 들어서고 나서 몇 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붉고 굵은 줄이 복도를 가로질러 쳐져있고, 복도 한쪽 벽의 책상에 정장차림의 남자가 앉아있네. 간단히 말해서 관계자외 출입금지’라는 거군. 저 중년의 백인 남자도 안내원이라기보다 경비원 느낌이 더 강한 남자로군. 하지만 나타샤는 꽃다발 사이에 꽂혀있는 메시지 카드를 보여주면서 간단히 통과해 버리네? 유력한 차기 주지사가 보내는 꽃이라서? 아니, 저건 순수한 ‘인기’로군.
안내 겸 경비를 맡고 있는 남자의 입에서 ‘극단원 모두 캔들씨의 지지자이니, 다들 기뻐할 겁니다.”라는 소리가 나왔던 것이다. 나는 ‘역시 우리 흑주 아빠는 킹왕짱을 중얼거리며 다시 나타샤를 주목했다.
나타샤가 다소(?) 호전적이고 쬐금(?) 성깔 있는 건 알지만, 그래도 지금은 캔들 리의 비서실 직원이야. 캔들 리가 곤란해질 만한 사고를 칠 정도로 철부지는 아닌데, 왜 이렇게 은근 불안한 건지 모르겠네.
나는 계속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면서 지켜보고 있었으나, 정작 나타샤는 계속 별다른 기색 없이 자연스럽고 태연하게 극단원들의 대기실 겸 휴게실 같은 곳을 찾아들고 있었다. 그리고 나타샤가 극단원들의 조용한 환대 속에서 꽃다발과 메시지 카드를 전달하는 과정도, 특별한 상황 없이 평이하게 진행되었다.
내가 괜한 걱정을 했었나? 문제의 유령 놈은 어디 갔는지 대기실안에 있지도 않고, 그래서 나타샤는 결국 놈과의 만남조차 없이 돌아서고 있네. 「아! 이제야 그가 나오고 있어요!」
요몽의 외침과 함께, 대기실 한쪽의 작은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에릭! 그 분장, 갑갑하지도 않아?”
동료 배우 한명의 말처럼, 놈은 흉측한 유령 캐릭터의 얼굴 그대로였다.
“이번에도 캔들씨가 우리 모두에게 아름다운 꽃과 향기로운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왔네. 역시 그 사람은…….”
유령 놈은, 이어지는 동료의 말을 생까며, 황급히 나타샤가 나간 문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잠깐!”
복도로 뛰쳐나간 유령이 외치자, 조금 멀어지던 나타샤의 걸음이 멈추었다. 돌아서는 나타샤를 향해서 몇 걸음을 다가간 유령이, 천천히 자신의
얼굴에서 흉측한 분장을 벗겨냈다.
「마치 가면 아래에 또 다른 가면을 쓰고 있기라도 한 듯, 비인간적으로 아름다운 남자의 얼굴과 강렬한 눈빛이 나타샤의 영혼까지 흔들어 버리는 충격 때문에 겨울의 여왕이라 불리던 그녀의 차가운 심장마저 뜨겁게 요동치기 시작하는……………
-얌마, 요몽! 네 멋대로 나레이션 깔지 마!
「헤헤. 그치만 저 유령 뱀프, 우리 시그마씨 못지않은 섹시 가이인데다, 목소리는 솔직히 한수 위예염. 인간 여자라면 누구라도 홀려버릴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내가 봐도, 예상보다 뛰어난 꽃돌 유령인건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 같긴했다. 시그마가 ‘빵 발’형님 스타일의 꽃돌이라면, 이 놈은 목소리도 그렇고, ‘파리넬리’ 스타일의 섹시 가이라고 할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 겨울의 여왕 나타샤양이 요몽말처럼 쉽게 넘어가지는 않겠지만 말야.
“난, 에릭! 유령과 같은 이름을 가진 남자요. 아가씨는?”
“나타샤.”
짧게 이름만을 밝히자, 유령 에릭은 약간의 쓴웃음과 함께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타샤~.”
나타샤의 이름을 낮게 되뇌이는 유령의 목소리가 기묘한 울림으로 퍼져나갔다. 나타샤의 차분했던 표정과 눈동자가 미묘하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나타샤~ 무대 위에서 당신을 보았소. 나타샤~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너무나 궁금했었소. 나타샤~ 그래서 이렇게 불러 세운 것이니, 부디 무례를 용서하시오.”
뭐야 이 놈. 진짜 나타샤한테 꽂혀서 작업 거는 거야? 내 측근 여자들 중에서 최고 보통 미모(?)’인 나타샤에게? 아, 아니, 이건 나타샤의 얼음에 맞아 죽을지 모를 생각이었으니까, 취소! 어쨌든 간에, 저 유령 놈의 눈빛과 목소리가 너무 심상치 않은데? 저거, 진짜 진심일까?
“나타샤~ 부디 당신이 누구인지, 내게 알려주지 않겠소?”
유령 놈의 에코 목소리(?)와 강렬한 서치라이트 눈빛은 정말 그 어떤 여자라도 녹여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나타샤를 믿고 있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점차 불안감도 커지고 있었다.
-요몽! 나타샤의 체온 측정값도 정보창에 띄워!
「예? 그건 왜, 아? 체온이 0도?」
에고. 내 이럴 줄 알았다. 나타샤 녀석, 상대의 유혹질에 흔들리기는커녕, 오히려 빡돌아서 발동 걸리기 직전이야.
“나타샤~ 왜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 것이오.”
눈치 없는 유령 놈이 더욱 애절한 에코 목소리를 내자, 나타샤의 입가가 실룩, 비틀린 미소를 그렸다. 순식간에 영하로 곤두박질치던 체온이 멈칫한 것은 녀석의 스마트폰이 작게 진동했기 때문이었다.
‘참아! 보는 눈이 많다!’
그렇게 보낸 나의 메시지를 확인한 나타샤의 체온이 다시 천천히 상승하고 있었다.
“에릭씨!”
드디어 나타샤의 입이 열리자, 유령 놈의 얼굴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그러나 나타샤는 유령 놈 뒤쪽의 대기실 문이 빼꼼히 열려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말을 이었다.
“전, 캔들 리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어요. 궁금하신 사항은 그쪽으로 문의해 주세요.”
지극히 사무적이고 냉랭한 반응에 당황한 유령은, 나타샤가 냉각 능력을 발동하지도 않았는데도 얼어붙은 것처럼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나타샤가 가벼운 목례와 함께 돌아서자, 유령은 다시 애써 용기를 끌어올리는 것 같았다.
“잠깐! 나타샤아~! 나는 오늘 공연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소! 오늘밤 공연에 다시 와준다면, 진정한 나를 보여 주겠소오! 나타샤아!”
이거야 원. 유령 조놈, 아무래도 웨인의 명령 때문에 이러는 것이 아니라, 진짜 진심으로 우리 나타샤에게 뻑간 거 같네. 보통은 ‘안경 미녀’라고해서,
안경으로 미모를 가리고 있다가 벗어버리는 순간에 미녀로 돌변하는 설정이 많은데, 나타샤는 반대로 안경을 써야만 미모가 꽃피는 스타일이었단 말인가?
내가 엄한 상황분석을 해보는 사이, 나타샤는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고 유령 놈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결국 축 처진 어깨와 침울한 얼굴로
돌아서는 유령 놈이, 같은 남자로서 안돼 보이기까지 했다.
유령 놈의 나타샤에 대한 애정 공세는 뜻밖이었지만, 어쨌든 그냥저냥 잘 넘어간 거 같군.
-요몽. 나타샤한테 통화 연결해 봐라.
-넵. 참고로 나타샤가 지급받은 장비 중에는 지하무림판 최신 블루투스도 있습죠. 」
-나타샤! 잘 참았다! 수고했어.
“훗. 캡틴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참지 못했을지도 모르죠. 개인감정을 조절하지 못했던 점, 인정해요.”
-알면 됐다. 그런데 나타샤. 유령 뱀프 놈, 아니, ‘유령’ 호칭은 좀 그러니까, 그냥 ‘에릭’이라고 부르자.
생각해보니, 나타샤의 동생 사사키가 ‘침묵의 유령’이라서 ‘유령’ 호칭이 좀 겹친다 싶어서 그런 건데, 그거야 어쨌든.
-내가 보기에는, 뱀프 에릭이 너에게 접근해 온건, 누가 시켜서가 아닌 거 같은데 말야.
슬쩍 찔러보자, 나타샤는 대뜸 시니컬한 표정부터 떠올렸다.
“캡틴, 말 돌리지 말고, 명령하세요. 에릭을 포획해 드릴까요, 아니면 제거할까요?”
짜식이, 바로 돌직구를 날려오네. 솔직히, 나도 에릭 놈의 처리가 망설여져서, 연애 사건(?) 당사자인 나타샤의 반응을 보면서 결정하고 싶었던 건데, 어쩔 수가 없군.
-솔직히 말하마. 나도 아직 에릭이란 자가 필요할지 어떨지 판단이 안 선다. 그러니까, 캔들 리가 곤란해지지 않을 선에서는 네 맘대로 처리해.
“오케이.”
-저기,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데, 에릭이란 자가 적이라고는 해도, 남자인 내가 봐도 비주얼과 음향(?)까지 남다르긴 하더라. 그런 녀석에게 넌 정말 아무 감정도 안 느껴지는…
“캡틴! 나, 이제 바빠요.”
-으, 응? 어, 그래. 알았다. 수고.
나타샤는 극장 정문 부근에서 기다리고 있던 캔들 리 쪽 차량에 탑승하면서 전화를 끊었고, 나는 쩝, 쓴 입맛을 다셨다.
-요몽, 대교. 나는 저 녀석, 나타샤를 ‘눈에 띄지 않는 근접 경호원’으로 배치한 건데,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네?
옆에서 계속 함께 영상을 보던 대교가 한손으로 입을 가리며 소리죽여 웃었다. 요몽도 웃는 표정이긴 했으나, 녀석은 팔짱을 낀 자세로 고개를 저어 보이기도 했다.
「하여간, 주인님은, 대교님 외의 여성들 미모를 너무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서 탈이에요. 나타샤도 사실,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미모의 소유자라고요! 당근, 저도 마찬가지고요!」
여기서 요몽 지가 왜 슬쩍 끼워지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일단 그렇다 치고.
-요몽. 현재 각 팀의 상황을 보고해봐.
나는, 그렇게 명령하며 내가 앉아있는 러브 하우스의 내부는 직접 고개 돌려 살펴보았다.
「나타샤는 바로 캔들 리 진영에 복귀하여 천우신님의 업무를 돕기 시작했어요. 캔들 리의 오늘 남은 일정은 ‘보스턴 택시 조합원들과 만남인데, ‘오페라의 유령 밤 공연’ 시간과 겹치네요. 아쉽게도, 말이에요.」
지가 왜 아쉽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것도 그렇다 치고.
「캔들 리 경호팀 건물에서는요. 길모르씨가 산드라씨까지 잘 꼬드겼(?)네요. 그래서 길모르씨는 지금 산드라씨와 엘사, 두 뱀프 아가씨와 과학과 비과학이 짬뽕된, 어쨌거나 학구적인 대화 중입지요. 아, 은사마군도 근처에서 대화 내용에 귀 기울이고 있는 눈치라서, 어영부영 합류할지도 모르겠네요.」
으음. 길모르 박사, 은근 바람둥이(?) 재능이 있는 것도 같군.
「다음은, 본래는 웨인 소유였다가, 지금은 페트라 언니와 몽몽 오빠가 장악한 건물 상황입니당. 근데 거긴, 후움~ 뭐, 주인님께서 지금보고 계신 이곳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랄까요?」
여기? 지금 다들 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여기저기 퍼져서 뒹굴거리고 있는, 어벤져스인지 노숙자 집단인지 모를, 저런 분위기란 말이지?
-거기까지 라면을 챙겨 줄 수는 없어서 미안했는데, 뭔가 알아서 챙겨들 먹은 거냐?
「후후. 거긴 보급짱, 페트라 언니가 있잖아요. 이쪽 소식 듣고 질수 없었는지, 근처 대형마트의 라면 코너를 싹쓰리해서리, 임시 영입된 뱀프들까지 포함해서 대대적인 라면 파티를 열었습지요.」
-그랬냐?
-호오. 그랬단 말이지? 그렇다면 이쪽에 몇 개 남은 라면은, 조금 있다가 나와 대교가 차지해도 되겠…………
「호홍~! 그건 신경 쓰실 필요 없을 걸요? 좀 전에 주인님께서 나타샤쪽 상황 보시느라 정신없으실 때, 자룡대주도 이 근처 마트로 어사조 요원들을 보냈거든요.」
-에? 그랬,냐?
자룡대주와 페트라, 이 두 아가씨는 자룡대의 대주와 부대주로 신분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라이벌 관계였다고 하더니, 엄한 ‘라면 파티’로 예전의
라이벌 의식이 살짝 되살아난 건가? 어쨌거나, 내가 처음 얘기했던 휴식 타임은 이제 끝나 가는데, 지금은 ‘다시 일하자하고 하면 반란이라도 일어날 분위기일세? 으으음. 지하무림의 평화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결정을 해야겠어. 그래. 지금은, 무엇보다 웨인 노무 쥐시키의 예상보다 빠른 도발에, 열 받았던 때와는 상황이 달라.
나는 웨인 놈 쪽의 흐름을 다시 한 번 감잡아보고, 우리측 상황 등을 종합적, 심층적으로 1분 정도나 고찰해 본 다음에 결정을 내렸다.
-요몽. 휴식 타임 연장이다. 쉬는 김에 팍팍 쉬라고 해. 단, 밤늦게 작전 재개하게 될 테니까, 그 점은 주지시키고!
와우! 전 대찬성이예요! 후훗! 당장 윈드군에게 우리나라 ‘편스토랑 요리법을 알려주어야겠어요!」
-그거야 니 맘이다만, 조금 있다가 해라. 넌 잔업이 좀 남았다.
「으이! 너무해요! 왜 저만!」
훗! 우리의 나타샤양이, 매혹 기술 전문의 뱀프를, 그것도 적인 놈팽이를 어떻게 역으로 매혹시켰는지 알아보는 일인데, 싫으냐?
「오잉? 그런 거였어요?」
-그래. 그러니까,오페라 극장 녹화 영상을 같이 분석 해보자.
「그럽지요. 근데 주인님. 혹시 이거 하시려고 휴식 타임을 연장하신 건가요?」
-어허~ 그럴 리가 있나! 이번 휴식도 어디까지나 그야말로 작전 타임’이야. 녹화 영상 분석 같은 건, 그냥 시간이 때마침, 남았으니까 하는 거고! 그 그리고 우리의 중요 전력과 적의 친위대간의 유기적 상관관계에 관한 이성적 고찰활동은 매우 정당하며 중요한 지휘관으로서의 자질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끔. 미안하다. 옛날 버릇 나왔다.
「크큭! 알겠어염. 더 따지지 않을께욤.」
그로부터 얼마간 나와 대교, 요몽. 우리 아줌마군황 패밀리 3인조(?)는 나타샤+에릭 핑크기류 까발리기(?) 영상 분석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내가 먼저 격한(?) 지루함을 느껴야 했다.
젠장. 역시 난 이런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멀어. 아무리 궁금한 사항이 있다 해도 그 장면이 언제 나올지 알고 이 지루한 노래를 계속 들어야하는 건지. 아, 가만?
-요몽! 영상을 내가 말하는 시간대부터 돌려봐라.
요몽이 내 지시에 따르자, 대교가 먼저 작은 감탄성을 울렸다.
-아! 유령 에릭의 노래가 갑자기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그전까지는 뭔가 억지로 갑갑하게 이어가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아~ 너무나 아름다운 울림이에요!
음감이 뛰어난 대교가 감탄할 수밖에 없겠어. 단순무식 막귀인 나도 ‘이것 봐라? 이런 걸 돈 내고 들으러가는 사람들이 조금 이해가 될 것도 같아’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야. 디지털 재생음을 듣고 있는 우리가 이정도이니, 현장의 관객들은 그야말로 홀려 버렸겠어.
-오라버니. 저 유령 에릭이 극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건, 혹시?
-훗. 그래. 바로 대교, 너의 덕분이야. 에릭은 그전까지, 자기 마스터인 웨인 놈의 눈과 귀를 대신하느라 공연에 집중할 수가 없었던 거야. 그런데, 대교 네가 살리나의 목을 친 순간, 웨인 놈도 놀라서 서브들과의 정신 연결을 놓쳤고, 에릭은 그제야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게 된 거지.
-역시 그랬었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너무 늦었었나 봐요.
대교는 그렇게 말하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표정으로 영상을 보고 있었다. 영상은 관객석에 앉아있는 나타샤를 비추고 있었는데, 그녀는 매우 단정한 자세로, 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