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110화 : 좋은 뱀프. 나쁜 뱀프. 이상한 뱀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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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4부 – 110화 : 좋은 뱀프. 나쁜 뱀프. 이상한 뱀프. (1)


4. 좋은 뱀프. 나쁜 뱀프. 이상한 뱀프. (1)

파리넬리!

나는 뱀프 에릭을 처음 보았을 때, 영화 파리넬리의 주인공을 떠올렸었다. 용모의 유사성과 목소리로 사람들을 매혹시킨다는 공통점 때문이었다. 그런데 직접 보게 된 뱀프 에릭과 나타샤의 첫 만남 장면 또한, 영화 파리넬리의 한 장면과 닮아 있었다.

-으음. 어쩐지, 영화 파리넬리의 한 장면이 떠오르네요.

훗. 이럴 때도 이심전심인가?

-대교 너도 그래? 나도 그 영화 생각났어.

「어? 주인님께서 그런 영화도 보셨어요? 그거, 액션 영화 아닌데?」

-야! 나도 나름 다양한 문화생활은 하는 사람이야!

솔직히, 친구 놈이 보자고 우겼던 거고, 야한 장면이 솔찮이 나온다고 해서 못 이기는 척 함께 보러간 거였었지만, 크흠. 암튼!

영화에서 파리넬리는 그 황홀한 노래로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으며, 특히 여자들은 노래를 듣다가 졸도하는 사태가 속출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그런데 영화 후반부에서였던가? 파리넬리가 노래를 부르는 공연장에서 감히(!) 꾸벅꾸벅 졸고 있는 여성이 등장하는 장면이 나왔었다. 그때의 파리넬리처럼, 뱀프 에릭도 자신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는 장소에서 퍼질러까지는 아니라도, 하여간 잠을 잘 수 있는 여자에게 분노함과 동시에 신선한 매력까지 느끼게 되었던 건가?

우리나라 막장 드라마의 공식 중 하나도 떠올랐다. 재벌2세인 남자 주인공에게, 평범한 배경의 여자 주인공이 마구 대들거나, 상황에 따라 따귀 한 대라도 올려붙이면, 재벌2세가 ‘앗! 나를 이렇게 대하는 여자는 처음이야! 너무 신선해! 이 여자, 쥐뿔도 없고, 십중팔구 고아일거 같고, 양아치 오빠만 있을 것도 같지만, 그래도 이쁜, 이 여자를 기필코 사랑하고 말거야!’라고 부르짖는(?), 그런 설정 말이다.

으음. 그런 스토리 맥락에서 보자면, 아까 나타샤보고 싸다구 한 대 날리라고 할 걸 그랬나? 아니, 아직 늦지 않았어.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면 얼음 불꽃싸다구를, 아니, 나타샤한테 제대로 걸리면 아무리 불사의 뱀프라도 급사할 가능성이 더 높은………….

「주인님! 주인니임!」

-으, 응? 아, 미안, 미안!

「훗. 괜찮아요. 주인님께서 혼자 뜬금없이 무한루프에 빠지시는 건, 하루 이틀 일도 아니잖아요. 우린 이제 다들 익숙해요.」

-그, 그래. 눈물나게 고맙다.

「그보다, 이제부터가 중요한 장면이예요! 뱀프 에릭의 달라진 노래가 계속되니까, 나타샤도 눈을 떴다고요!」

요몽, 이 녀석은 곧 영화 속과 같은 장면이 이어질 거라고 기대하는 모양이군. 아까 나타샤와 에릭이 따로 만났을 때, 나타샤가 어떤 태도를 보였었는지는 벌써 잊고 말이지.

영화 파리넬리에서 주인공 파리넬리는, 쫀심에 스크래치 생긴 분노를 노래에 실어서 더욱 열창을 했고, 결국에는 졸고 있던 여자를 깨우게 된다. 그리고 내친김에(?) 더더욱 폭풍 매력 노래 폭격을 감행, 끝내는 그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고야 만다. 그러나 이쪽의 현실은 내 예상대로, 영화와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일단 조는 걸 멈추고, 주변을 의식하여 표정과 자세를 가다듬은 나타샤. 뱀프 에릭은 그런 나타샤에게 더욱 강렬한 눈빛 광선을 쏘아대면서 열창을 이어가는데, 우리 나타샤양은 작게 입을 벌려 하품을 해버리는군. 지금, 노래 소리가 순간적으로 주춤한 거 같았지?

극이 막바지로 향하면서, 뱀프 에릭의 더욱 격정적인 열창이 관객석을 몰아치고 있었다. 그런 폭풍 노래 어택에도 나타샤는 끄떡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잠시 노래에 귀를 기울여보는 기색이다가도 곧 흥미를 잃은 듯 스마트폰 화면에 시선을 옮기곤 했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티가 날 정도로 불쾌한 표정까지 떠올리고 있었다.

-노래는 그냥저냥 들어 줄만해. 하지만 공연이 끝난 후의 날씨나 일정 체크하는 일이 더 중요해. 그리고 저 자식은, 왜 자꾸 재수 없는 눈으로 나를 꼬나보는 거야? 짱나게!

「윽! 이번에는 주인님이 나타샤의 내면 나래이션을 깔아보신 거예요?」

-그래. 아까 니가 했던 것보다, 이게 더 정확할 걸?

「으음. 지금은 그런 것도 같네요. 에효~ 나타샤는 정말로 차가운 겨울의 여왕이 맞나 봐요. 보통 인간 여자라면, 절대로 저런 특급 섹시 가이의 음파에 무심할 수는 없다고요.」

요몽은 급격히 흥미가 떨어진다는 기색으로 불만스럽게 종알댔지만, 대교는 다른 의견을 가진 것 같았다.

-그렇지 않을 거야, 요몽. 겉으로는 냉정하고 강해보이는 사람 중에도 의외로 섬세하고 풍부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도 많단다. 나는 나타샤도 그런

소녀라고 생각해.

「어, 저도 나타샤를 나쁘게만 보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 나타샤가 저렇게 수준 높은 문화 충격에도 주인님급의 무신경함을 보인 건

사실이잖아요.」

-어머, 요몽. 말이 지나치구나. 오라버니께서도 가끔 나타샤처럼 오해를 받곤 하지만, 그건 마군황으로서의 냉엄함을 항시 유지하시고 있기

때문인거야.

「에이~ 주인님의 만성적 문화 결핍은 전 지구인이 다 아는데… 어? 갑자기 근접 거리에서 살기가 감지되는, 아! 주인님?」

요몽, 이 노무 자슥. 대교가 ‘귀엽게 봐주세요.’라는 전음을 보내와서 참아준다만, 언젠가 조만간곧!) 두고 보자.

-끄음! 뭐가 어찌되었든, 이제 뱀프 에릭이 수많은 관객들 중에서 나타샤를 주목하게 된 이유는 알게 된 거 같군. 난, 뭐, 이정도만 알면 호기심 충족 끝이야. 나타샤가 처음부터 뱀프 에릭의 관심에 오히려 화가나 있던 거 정도는 알고 있었거든.

그래. 나타샤가 나에게 에릭의 처리를 물었던 메시지 분위기도 그렇고, 나타샤는 계속 ‘임전태세’라는 것이 느껴졌었지. 그게 전직 에레보스로서의 기본적인 성향인건지, 별 관심 없는 남자의 집적거림이 싫어서였는지가 궁금했던 건데, 아무래도 후자였지 싶었다.

-내가 보기엔, 뱀프 에릭은 나타샤의 취향이 아님. 뱀프 에릭의 나타샤에 대한 ‘관심’이 ‘사랑’으로 급속 변환되었는지 어떤지와 관계없이, 조만간 우리는 ‘얼어죽은 뱀프’를 보게 될 가능성이 90프로 이상!

나의 명쾌한(?) 정리 및 결론에, 대교와 요몽도 별다른 이견을 내지 못했다. 아직 많은 영상창 속에서 공연을 끝낸 뱀프 에릭이 다른 배우들과 함께 무대 인사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에릭은 여전히 관객석의 한곳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고, 엄청난 환호와 박수를 보내고 있는 관객들과 달리, 나타샤는 조용히 자기 안경을 닦고 있었다.

「저기, 주인님! 각자 다른 조직에 속한 남녀가 조직 간의 전쟁 때문에 서로의 목숨을 노려야하는 상황 속에서도 기어이 흐르기 시작하는 핑크 기류, 그 애절한 러브 스토리에 대한 기대는 일단, 접기로 했어요.」

훗. 현재 자기 마음을 상당히 디테일하게 표현하는군. 그런데, 일단,이라고? 이 녀석 설마?

「그치만, 여기서 멈추는 건 너무 아쉬워요. 뱀프 에릭이 아까, 나타샤에게 ‘밤 공연에는 꼭 와 달라’고 부탁했었잖아요. 그래서 지금 확인해보니까, 한 시간 후에 시작될 공연의 좌석 하나가 나타샤 이름으로 예약되어 있더라구요!」

-그냐? 에릭 놈이 그랬나보군. 하지만 그래봤자, 나타샤가 안가면, 말짱 황이지.

「맞아욧! 그러니까, 주인님께서 천우신님께 부탁해서, 나타샤를 다시 극장에 보내주시면 안될까요?」

-얌마! 나타샤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파견된 요원이야! 이런 일로 움직이게 한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 그건, 나타샤 본연의 임무에서 아주 벗어난 것도 아니잖아요. 적의 친위대 전력 탐색!」

젠장! 나도 솔직히, 적당한 핑계로 나타샤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냐.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명령을 내리면, 수하들 일에까지 별걸 다 참견하고 다니는 아줌마군황 티가 너무 팍팍 나잖아!

-전력 탐색은 아까 이미 근접해서 한거나 마찬가지잖아. 엄한 ‘핑크 기류 탐색’이 되었었고 말야.

「아이 참! 주인님은 항상 그러셨잖아요! ‘일단 뽑은 정글도로는 깍두기라도 썰어야 한다.’라고욧!」

-야! 내가 언제 그런 비유를 했냐.

「비슷하게는 하시잖아요. 암튼, 오늘밤 공연이 아니면, 두 사람이 다시 평화롭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잖아요!」

-뭐, 거의 그렇다고 봐야지. 요몽 너, 이럴 때는 상황 파악이 제법이다?

「우이~ 그게 문제가 아니고! 아무리 적이지만, 에릭이 불쌍해요! 사랑하는 여자의 손에 죽어야하는 운명이라닛!」

난 ‘너 대체 누구 편이냐?’라고 묻고 싶었지만, 더 이상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계속 듣고만 있던 대교도 심상치 않은(?) 기색으로 입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요몽. 이제 그만하렴. 오라버니께서 곤란해 하시잖니.

고개를 젓는 동작과 말은 요몽을 만류하는 쪽에 가까웠으나,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심하게 달랐다.

대교의 저 애틋하면서도 처연한 표정과 눈빛은, 정방사수하던 드라마 방영과 설거지 시간이 겹쳤을 때 보이던 그것이로군! 으으~ 나로선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무언의 압력이야! 결국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타샤를 보내야하는 건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의 그럴듯한 명분은 있어야…………….

「앗! 주인님! 갑작스런 낭보예요!」

에? 뜬금없이 뭔 낭보?

「캔들 리의 오늘 저녁 일정이 갑자기, 며칠 연기 되었대요! 약속 건물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나 봐요. 그래서 장소를 바꾸었는데, 거긴 또 갑자기 전기 설비 고장이………………」

-요몽! 너, 설마?

「에? 지금 저를 의심하시는 거예요? 저도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아는 요정이라구욧!」

-어머! 이번엔 오라버니께서 너무하셨어요. 요몽처럼 순수한 아이를 의심하시다니요.

-아, 아니, 난 그냥 무심결에 끄음. 알았다, 요몽. 미안하다, 의심해서.

요몽은 정말 억울했는지, 인상을 구기며 입술을 삐죽였으나, 곧바로 ‘아참!’하는 표정이 되고 있었다.

「그보다! 캔들 리가 ‘마침 잘되었군. 나도 오늘은 일찍 쉬고 싶었다’라고 하셨어요! 이제 나타샤가 오페라 극장에 갈 수 있게 되었어요!」

-훗. 캔들 리가 그런다고 천우신이 자신과 비서실 업무까지 일찍 끝낼 인물이냐? 그 친구 ‘바지런 병’, 알잖냐.

「그, 그야, 주인님께서, 주인님의 귀차니즘 바이러스를 천우신님께 전염시켜주시… 아, 이것도 지금 막 해결되었어요!」

-그건 또 뭔 소리야?

「소령님이 천우신님과 톡 대화하다가, 무심결에 ‘나 지금 보스턴’이라고 밝혀 버리셨어요! 천우신님은 곧장 자신과 비서진 모두의 퇴근을 결정하셨고요!」

윽! 설마 대교가 소령이를 조종?

-오라버닛!

-으, 응? 내가 멀? 나 지금 암말도 안했는데?

-그냥, 저를 의심하는 시선을 보내신 거 같아서요.

-그, 그랬나? 그랬다면 미안.

사과를 하긴 한다만, 왠지 억울하네. 그리고 난 사실 나타샤를 보내는 것으로 마음을 바꿨었지만, 흐름이 이러니까 괜히 반발하고 싶어져! -뭐가 어찌되었든, 결국 선택은 나타샤가 하는 거야. 난 분명 에릭에 관한 사항을 나타샤에게 일임했단 말야!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주인님께서 지시하시면 아, 나타샤의 연락이에욧!」

‘퇴근 후, 오페라 극장 방문 예정. 내 컵라면은 미령이에게 양보’

대체 뭐냐? 나타샤, 얘는 또,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꾼 거지?

내가 잠시 멍 때리고 있는 사이, 요몽이 바쁘게 상황을 확인해 보는 것 같았다.

「우후~ 어떻게 된 거냐면요. 비서실의 최고참 여직원 분이, 아까 오페라 극장 화장실에서 귀걸이를 깜박하고 오셨다네요? 그런데 이분이 갑자기 오한이 나는 등, 컨디션이 좋지 않아졌데요. 그래서 비서실 막내이자, 여자 화장실 출입이 가능한 나타샤가 대신 가게 된 거예요.」

이, 이건, 요몽이나 대교를 의심할만한 전개가 아니잖아. 이렇게까지 우연에 우연이 겹치면서 억지 짜 맞추기 전개를 현실화 할 수 있는 인간, 아니 존재는 하나뿐이야. 바로, ‘타임씨!

「주인니임. 후훗~!」

이젠 나에게 더 뭘 부탁할 필요도 없어졌다고 생각한 요몽이 실실 쪼개는 것이 약간 얄밉게 보이기도 했으나, 대교까지 생글거리며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나도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타임씨, 이 양반. 전부터, 스토리 딸리고 아이디어 고갈되면 이딴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는 성향이 다분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또 이렇게 노골적으로 뻔뻔하게 상황 전개를 하다니! 아무리 시청률(?)이 중요해도 그렇지, 그래봐야 대교와 요몽, 나까지 포함해도 그게 시청률 몇프로나 올린다고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그, 뭐, 까짓 거, 이번만은 나도 더 따지지 말고 넘어가 주기로 할까? 크흠!


대략 삼십 분쯤 후.

요몽은 실황 중계방송(?) 준비한다고 바빴고, 잠시 자리를 비웠던 대교는 데릭과 함께 차와 주전부리 몇 가지를 준비해서 돌아왔다.

-오라버니. 소령이는, 오라버니의 허락도 없이 천우신님께 자신의 위치를 누설했기에, 제가 따로 혼을 내줬어요.

혼을 내줬다고? 조금 전까지 대교에게 어딘가로 끌려(?)갔었던 소령이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돌아오는 걸 다 봤지만, 이것도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어쨌거나, 티타임까지 겸해서 시청준비 완료로군. 대교와 요몽은 벌써부터 지들끼리, 에릭의 애정 공세 패턴과 나타샤의 대응을 예측해보며 흥미진진해하고 있네.

「주인님! 드디어 나타샤가 극장에 도착했어요! 공연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요!」

요몽이 띄운 영상 창이, 마악 극장 앞에 멈춘 차에서 나타샤가 내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영상창이 뜨더니, 공연 준비를 마친 무대 위의 상황을 비추기 시작했다.

-요몽. 넌,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요정이라고 했지? 전체 상황체크, 확실히 해라.

「그야, 당근입죠! 지금 극장안의 직원들은 물론이고, 관객들의 신원 확인까지 모두 끝내놨답니다!」

-잘하긴 했다만, 우리들의 적은 뱀프나 웨어울프, 언제라도 보통 인간들을 같은 존재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

「넵! 그래서 지금까지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한 ‘인체 인식 프로그램’을 가동 중인데, 아직까지는 뱀프 에릭 말고는, 수상한 인간이 탐지되지는 않았어요.」

흐음. 그래도 나름 열심히 하고 있긴 하네.

-좋아. 그럼 이제, 네가 그렇게 고대하던 드라마를 보기로 하자. 과연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될지, ‘애통한(?) 사망 이야기’가 될지 말야.

「으~ 끝까지 분위기 초치시기예요?」

요몽은 버릇없이 투덜댔지만, 사마외도의 프린세스 대교는 작게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드라마는 일단, ‘애틋한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뱀프 에릭 녀석, 아직 오르지 않은 막 뒤쪽에서 몰래 관객석을 살피고 있네. 하지만 우리의 도도한 나타샤양은 공연장 출입구는 쳐다보지도 않고, 화장실로 향하고 있어.

「어? 거기 아닌데? 그 비서실 고참 아줌마가 좌우를 반대로 알려줬나 봐요! 제가 얼른 나타샤에게 메시지를…………

-요몽! 끼어들지 마!

「으~ 알겠어요. 하지만 이제 곧 막이 오를 거라서, 아! 대교님! 에릭의 저 애타는 표정 좀 보세요!」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는 남자와, 전혀 서둘지 않는 태도로 천천히 걷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전형적인 연출이로군. 요몽에게는 심하게, 대교에게도 어느 정도는 먹히고 있는 거 같아.

「아이 참! 나타샤는 대체 왜, 오늘따라 저렇게 느리게 행동하고 있는 거야? 이제 곧 막이 오를 텐데!」

요몽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은 명백히 오버였다. 나타샤가 두 번째로 찾아간 화장실에서 ‘고참이 잃어버린 귀걸이를 찾아서 나오는데 걸린 시간도 그렇고, 그녀의 걸음걸이도 일관되게 평소의 속도였던 것이다.

「와! 다행이다! 저 사람이 에릭에게 알려주고 있어!」

흐음. 저 남자는, 아까 나타샤가 꽃 배달 심부름을 갈 때 통로에서 만났던 극장 직원이군. 막이 오르기 직전에 에릭에게 전화를 하다니, 저런 것도 타임씨의 사악한 연출. 응? 뭐야, 저거!

「으잇! 나타샤가 왜 저리로 가지? 주인님! 어떻게 된 거죠? 나타샤가 왜 다시 극장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거죠?」

요몽은 안타깝게 외치면서 나를 돌아보았지만, 내 인상이 굳어진 것은 나타샤의 행동 때문이 아니었다.

-얌마! 그건 나타샤 맘이고! 그보다, 정신 챙겨! 뭔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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