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112화 : 좋은 뱀프. 나쁜 뱀프. 이상한 뱀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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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4부 – 112화 : 좋은 뱀프. 나쁜 뱀프. 이상한 뱀프. (3)


4. 좋은 뱀프. 나쁜 뱀프. 이상한 뱀프 (3)

기분 탓일까? BTS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로비, 아니, 오페라 극장 전체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동작을 멈추고 노래에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보였다. 아까 요몽과 대교 사이에 오갔던 대화중에서 나온, ‘문화적 충격’이라는 말에서 힌트를 얻은 방법인데, 이게 효과가 있을지는 둘째치고, 당장 웨인 놈의 행동만은 멈추게 하는데 성공한 것 같군.

웨인 놈은 나타샤가 자신의 마성에 홀리는지 확신이 서지 않자, 다시 음파 공격을 하려고 입을 벌리려던 참이었었다. 그러다가 어색하게 멈춘 것은, 갑자기 자신이 알 수 없는 노래를 튼 나타샤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인 듯 했다.

“이게 무슨 짓이지?”

웨인은, 이제 막 데스크 뒤에서 몸을 일으킨 나타샤에게 물은 것이었다.

-어머. 나타샤는 역시 항상 몸가짐이 야무지군요.

대교의 감탄은 핀트가 다소 애매했지만, 어쨌든 나타샤는, 강력한 음파 공격에 적중되어 날려갔던 녀석답지 않게 평소의 말끔한 모습 그대로였다. 설마 그 와중에 화장까지 손 본 건 아니겠지, 같은 건,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저 녀석, 마치 진짜 안내 데스크 직원 같은 분위기로 조용히 한손을 들어 저쪽을 한번 보라’는 동작을 하는군.

약간 망설이는 기색으로 고개를 돌려 본 웨인의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떠올랐다. 좀비화 되어있던 사람들의 눈이 차츰 초점을 되찾으면서 정신을 차리는 기색이 역력했기 때문이었다.

와우! 혹시나 했는데, 정말로 사람들의 최면 상태를 깨버렸네? 우리 ‘총알 막는 아그들은 진짜 촘, 짱인듯!

「으아! 정말 해냈어! BTS, 만세!」

나도 꽤 감탄했고 요몽은 격하게 기뻐하며 아예 방방 날았지만, 나타샤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뱀파이어의 강력한 마력이 실린 노래로 잠시 사람들을 현혹시킬 수도 있겠지만, 순수한 인간의 진짜 노래를 이길 수는 없는 거예요. 에릭!” 말을 마친 나타샤 앞의 허공에 축구공 정도 크기의 얼음 덩어리 하나가 떠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크고 작은 얼음 조각들이 날아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합쳐져서 사람의 몇 배 크기의 구체가 되었다. 비록 얼음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처럼 아름답게 빛나고 되었다.

사람들도 참, 에릭의 최면에서 깨어나자마자, 이번에는 나타샤의 거대 ‘물방울 다이아(?)’에 넋을 잃어버리는구먼. 하지만 저건 관상용 보석이 절대 아니지.

후웅!

예상대로 초거대 물방울 다이아는 무서운 속도로 사람들 머리 위를 날아서 출입구를 향해 돌진해 버렸다.

꽈쾅~!

굉음과 함께, 출입구의 쇠사슬이고 나발이고, 문 전체가 날아가 버렸다. 분명 최면에서 벗어났음에도, 다른 이유로 멍하니 정신줄 놓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샤의 차가운 경고 소리가 이어졌다.

“더 이상은 챙겨 줄 마음 없어요. 다들 도망쳐요! 당장!”

누군가가 나타샤의 말에 떠밀리듯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가 냅다 스피드를 올려 달려 나가버리자, 다른 사람들도 전부 미친 듯이 출구를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출구 쪽에서는 아직 보이지 않았지만, 건물 밖을 비추는 영상창에는 페트라와 시그마의 수습팀이 속속 도착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페트라가 동원한 수십 대의 구급차며 컨테이너 박스 차량들이 건물을 에워싸고 있었으며, 시그마를 임시 대장으로 한, 수십 명의 뱀프들도 주변 건물의 옥상 위나 건물들 사이에서 초고속으로 움직이고 있네. 하지만 내가 저 대규모 지원팀에게 지시한 것은, 어디까지나 ‘뒤처리’뿐. 극장 안의 싸움은 여전히 나타샤의 몫이지.

문제는 이제 웨인 놈이 어떻게 나오느냐 라고 할 수 있었다. 나타샤는 데스크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가 싶더니, 한순간 쉬익, 놀라운 속도로 웨인 놈 앞까지 이동해버렸다. 아까 어설픈 속도로 공중에 날아올랐던 것은 인질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각도로 공격을 유도하기 위해서 그랬을 뿐, 맘먹고 움직이면 뱀프 못지않은 스피드까지 낼 수 있다고 시위해 보인 셈이었다.

내가 보기엔, 바닥이 빙판이라는 조건이 있어야하고, 당연히 급회전과 멈춤에 어려움이 있는 이동 방식 같지만, 그거야 어쨌든. 지금 웨인 놈은 그런 걸 눈여겨보고 파악할 여력이 없는 상태로군. 저런 것도 자중지란이라고 해야 하나?

나타샤가 인질들을 밖으로 내모는 동안에 웨인 놈이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했던 것은, 그때쯤부터 웨인 놈이 에릭의 몸을 지배하는데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잠들어있던 에릭의 의식도 BTS의 음악과 나타샤의 말에 자극을 받고 깨어났는지, 웨인에게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상황이 누가 봐도 뻔하게 보여지고 있네. 얼마간 웨인 놈 얼굴이었던 에릭의 얼굴이 괴이하게 일그러지며 여기저기가 실룩실룩, 난리가 아니야. 결국 쓰러질 듯 비틀대며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고 괴로워하는데, 손 사이로 보이는 얼굴이 순간적으로 웨인과 에릭 사이를 오가고 있군.

“에릭.”

지켜보고만 있던 나타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녀에게 이름이 불리자, 요동치던 에릭의 얼굴과 몸까지 멈칫하는 것 같았다.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에 힘을 얻어 악마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주인공 스토리는 다소 전형적이긴 하지만, 대체로 무난한 감동을 주는 스토리이기는 했다. 그러나 우리의 나타샤양은 그런 감동 스토리의 장면을 연출할 마음이 전혀 없어보였다.

“각오해요.”

짧고 냉랭한 선언과 동시에, 내밀어진 나타샤의 오른손 손아귀에서, 작고 검은 보석 같은 것들이 반짝였다. 웨인+에릭도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하고 초고속 이동을 시작했으나, 반 박자 늦었다.

퍼엉~!

작은 폭음과 함께, 에릭의 한쪽 어깨 바로 아래의 팔이 통째로 떨어져 나갔다. 웨인+에릭의 몸은, 이미 시작한 초고속 이동의 관성으로 수십 미터 거리까지 달아난 상태였지만, 다시 한 번 여지없이 나타샤의 공격이 작렬했다. 이번에는 한쪽 옆구리의 상당 부분이 날아가 버리는 것 같았다. 결국 힘없이 주저앉은 웨인+에릭의 얼굴에 경악과 공포가 떠오르고 있었다.

손톱보다도 작은 보석, 아니, 자석 알이 쏘아진 것뿐이고, 두발 모두 직격된 것도 아니야. 그런데도 저런 위력이라니!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나도 감탄했고, 에릭+웨인은 이제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그러나 나타샤의 냉혹한 시선과 손은 멈추지 않았다. 움직일 수 없게 된 에릭의 몸 중에서, 정확하게 머리를 겨냥했던 것이다.

「마, 말려주세요, 주인님!」

-멈춰! 나타샤!

나의 명령이 빠르게 전달되었는지 어쩐지, 하여간 나타샤는 마무리 공격을 실행하지는 않았다. 오페라 극장 안과 관전자인 우리 쪽까지, 잠시 적막이 흘렀다.

-그래, 나타샤. 그만하면 됐어. 무엇보다, 이쪽의 여린 소녀들이 무서워한다.

솔직히, 나도 무섭다. 이 살벌한 기집애야, 라는 말은 생략.

“오케이. 이 정도로 끝낼게요. 이제 진짜, 퇴근해도 되죠?”

-그래, 해라. 퇴근.

잔업(?) 종료를 확실히 해주자, 그제야 나타샤는 생긋, 쪼개고는, 내밀었던 손을 거두었다. 아직도 손아귀 안에 꽤 많이 남아있는 자석 알들은 다시 길게 이어져 나타샤의 손목으로 돌아갔다.

나타샤가 항상 차고 다니는 저 자석 팔찌가 녀석의 진짜 비밀 병기임은, 전부터 짐작했었어. 주어들은(본?) 토막 지식이지만, 극저온 상태에서는 자성 물체를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게 할 수가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정말 장난 아닌 위력의 충격파까지 발생할 정도의 속도로군. 미군에서 실제로 개발했다는 병기 ‘레일 건’도 저 정도 위력을 가진 병기려나?

“나타샤 언니, 이제 보니, 진짜 무셔! 무셔!”

소령이였다. 녀석은 자신의 노트북 화면을 보면서 작게 고개를 젓고 있었다. 나는 아까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무렵부터, 모든 어벤져스의 개인 IT장비에도 실황 중계를 해주라고 지시했었다. 막연하게 말로만 ‘약속했던 휴식 시간을 일찍 끝내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보다, 직접 상황을 보여주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쪽의 소녀’들이 무서워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던 건데, 해당되는 소녀들은 요몽과 패티, 소령이 정도려나? 우리 마군황 패밀리의 여인네들은 대부분 지들도 한 칼 하니까 말이지. 으으음. 그런데, 나타샤는 나의 명령 때문에 마지막 공격을 멈춘 것이었을까? 아니면 자신도 에릭을 굳이 완전히 말살할 생각까지는 없었던 것일까?

현재로서는 속을 알 수 없는 나타샤가 또각, 또각, 야무진 구둣발 소리와 함께 에릭이 처참한 몰골로 주저앉아있는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냥, 출입구가 마침 그쪽이라서 그랬을 뿐이라고 하는 듯, 무심한 얼굴로 에릭 앞을 지나쳐 가려했다.

“나타샤~”

으음. 에릭 녀석. 저런 몰골로도 용케 에코 목소리로 나타샤를 부르는구먼. 어쨌든 이제 완전히 본래의 에릭으로 돌아오긴 한 거 같고, 나타샤도 일단 멈춰주기는 하네. 전투에서 승리한 여왕님께서 처절하게 깨진 적국의 패잔병을 차갑게 내려다보는 구도여서 좀 그렇지만, 그래도 어쨌든, 이대로 그냥 헤어지는 광경을 보는 건 다소 아쉬웠는데, 과연?

“나타샤~ 이제 한 가지만 대답해 주겠소?”

“또 뭐죠?”

“나에게 영혼을 빼앗겼던 사람들, 그들의 영혼을 울려 깨워버린 그 노래. 그건 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다시 들을 수 있는 거요?”

에릭은 자못 진지하고 절실하게 묻는 것이었지만, 나타샤는 어이없어하며 뾰족한 목소리부터 내기 시작했다.

“BTS도 몰라요? 에릭, 당신은 정말 편협한 세계에만 갇혀 있었군요.”

나타샤는 자기 스마트폰으로 재빨리 BTS를 검색해서 화면을 에릭의 눈앞에 들이댔다.

“총탄을 막을 수 있는 소년들? 역시 나보다 강력한 메아리 전사들인 모양이오!”

에구. 나타샤가 직역 위주 번역 사이트를 열어준 모양이네. 응? 근데 지금 나타샤가 웃어 버렸지? 비록 어이없음이 반쯤 섞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타샤가 상대를 비웃거나 신경질적이지도 않으면서 살기도 없는, 나름 순수한 웃음을 보이다니!

에릭의 본의 아닌 ‘진유준 아재 개그’가 통한 셈이었다. 나타샤는 정말이지 드물게 떠오른 순수 미소를 지우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나에게는 ‘좋은 뱀프’ 친구들이 있어요. 물론 세상에는 당신의 마스터처럼 ‘나쁜 뱀프’도 많이 있겠죠. 하지만 에릭 당신은, 후훗~! 일단, ‘이상한 뱀프’로 기억해 두겠어요.”

“내가 이상한 뱀프? 그렇다면 나타샤~ 그대는 이상한 여왕님이로군.”

훗. 이번에는 에릭도 나름 나쁘지 않은 대꾸를 한 것 같군. 나타샤가 이번에도 작게나마 순수(!) 미소를 떠올렸어. 아, 가만? 그러고 보니 나타샤가 처음부터 계속 에릭에게 쌀쌀맞게 대하긴 했어도, 결국 부르면 부르는 대로 멈추고 얘기를 꼬박꼬박 다 들어 줬던 것도 같네?

나는 그런 점을 깨닫고, 새삼 나타샤를 주목해 보았으나, 녀석은 더 이상 진도(?) 나갈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나, 이제 갈게요.”

문득 짧게 인사를 남기고 돌아서는 나타샤의 모습은 어느 사이 평소의 분위기로 돌아와 있는 것 같았다. 에릭도 더는 나타샤를 잡지 못하고 조용히 멀어지는 나타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후후. 요몽, 질 나쁜 악역이 끼어들어서, 다소 흉한 모습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결말이 난 것 같구나.

대교의 감상평은 그랬으나, 요몽은 난감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그, 글쎄요? 대교님이 그러시니까, 나쁘지 않은 결말 같기도 한데, 그래도 전 쫌.」

‘왜 그냐, 요몽. 물론, 여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을 개박살내서 피투성이 걸레 꼴을 만들어 버리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서로 웃으면서 나중을 기약하는 듯한 분위기의 여운까지 남기고 끝나는, 그런 훈훈한 결말이었잖냐. 안 그래?” 이렇게 놀리고 싶은 걸 참으려니까, 입이 꽤나 근질거리네.

「아, 주인님! 시그마씨가 에릭의 처리에 대해서 묻는 연락이 왔어요.」

에릭은 그사이,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지만, 그 앞에 버티고 선 시그마의 위세 때문에 더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뭐, 그냥 놔주라고 해.

솔직히, 에릭도 리버처럼 웨인 추적에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더 이상 군식구(?) 늘이기도 싫고 하니 그냥 쿨한 척 보내주지 뭐. 나는 그렇게 오페라 극장 싸움 관전 및 지휘를 끝내고 영상창도 닫게 했다. 슬쩍 주변을 살펴보니, 다들 여전히 긴장감 없는 모습들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도 아까처럼 일시키기 미안할 정도로 늘어져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저런 모드가 되라고 쌈박질 동영상 관람을 시켜준 건데, 우째 정작 ‘일거리(?) 소식이 없네? 웨인 놈과 에릭의 연결이 끊기는 순간에 산드라 쪽의 심층 추적도 중단되었을 텐데, 산드라가 아직도 보고를 하지 않고 있다는 건, 이번에도 별로 건진 게 없다는 얘긴가?

-산드라!

리버의 거처에 있는 산드라에게 전음을 보내자, 산드라는 약간의 뜸을 들인 후에야 텔레파시를 보내왔다.

‘죄송합니다, 웨인의 의식을 좀 더 많이 읽어내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의식의 파편들을 조합해보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의식의 파편?

‘예, 로드. 보통의 경우, 현재 집중하고 있는 일이 아닌 기억의 의식들은 매우 산만하게 조각조각 흩어진 형태로 보이게 됩니다.”

-그걸 퍼즐 맞추듯 조합해야 한다는 건데, 쉽지 않겠군. 기억이란 때로, 본인조차 언제 일인지 헷갈릴 때가 있는 거니 말야.

‘그렇습니다, 로드. 리버와 함께 좀 더 협의해서 뭔가 알게 되면………..?

-잠시 대기.

“예?”

-정신노동이 육체노동보다도 힘들 때가 있지. 당신과 리버, 둘 다 수고했으니까 이제 좀 쉬고 있어.

‘아, 감사합니다, 로드.’

사실은 내가 뭔가 떠올라서 그거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거지만, 같은 말이라도 이렇게 해야 대빵으로서의 인기가… 크흠. 나, 우째 이런 잔머리

요령만 느는 거 같네. 정작 웨인 놈 추적에 결정적으로 필요했던 요령은 뒤늦게 깨달았는데 말이지.

내가 뒤늦게 깨달은 결정적 요령은, ‘나타샤를 시켜서, 웨인 놈으로 하여금 자신이 숨은 장소를 떠올릴만한 말을 하게 하기’였다. 그 간단한(?) 방법을 쓰지 못하고, 쌈구경만 하는 바람에 찬스를 놓쳐버린 것이다.

좀 전에는 순간적으로, ‘이건 산드라의 실수잖아. 왜 그런 요령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어!’라는 생각이 들었었지. 이런 일에는 아무래도 산드라가 더 전문가이니 말야. 하지만, 지금 보니 정작 산드라는 방금 보고하는 동안에도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어. 훗! 이번 일로 산드라가 그동안 자신의 텔레파시 능력을 악용한(?) 경험이 별로 없었다는 걸 확인하게 된 셈인가? 결국 수하의 성향을 생각 못한 내 잘못이지. 수백 년 묵은 뱀프답지 않게 순박한(?) 구석이 있는 산드라를 탓하기보다는 내가 죽일 놈…까지는, 너무 심한 반성인 것 같고, 끄으음. 좋아, 좋다구, 진유준. 실수를 깨닫고 반성까지 실컷(?)했으니, 이제 만회할 방법을 따져보자.

-요몽. 몽몽은 지금 뭐하냐?

「어, 몽몽 오빠 지금, 친위대의 핵심 인물로 추정되는, 코드명 ‘피비’의 마법진과 그녀의 출신에 대해서 연구 중이에요.」

역시 몽몽은 너무 성실해서 문제인 녀석이로군. 이쪽이 조금 더 중요한 사안 같기는 하지만, 확실한 것도 아니니까, 일단 요몽과 기본적인 진행을 하기로 하자.

-하는 수 없지. 일단, 너하고라도 시작해야겠다.

「윽! 그런 모욕적인 말씀을! 으~ 하지만 궁금해서 참겠어요. 대체 무슨 일인데요?」

-훗. 나름 재밌기는 할 거다. 너희들도 텔레파시를 직접 수신해 본 적은 없지?

「그야, 저희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낼 사람이 없으니까요. 어, 그럼 혹시, 산드라씨에게 그걸 시키시게요?」

-그래. 산드라가 너희를 대상으로 텔레파시를 보내면, 수신 및 분석, 가능하겠냐?

「그럼요! 한 번도 안 해봤지만, 이론상으로는 충분히 가능해요!」

요몽은 안 해봤던 일이라서 더욱 반가워하는 것 같았지만, 문득 주춤하는 기색을 보였다.

「아, 그치만, 보안상의 문제가 있을 거 같아요.」

웬일로 요몽이 먼저 보안에 신경을 쓰네? 아,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최근에 보안 교육을 새로 받았었지?

「그게, 텔레파시를 수신하려면, 저희들 본체가 먼저 ‘인간의 뇌파를 발신해서 존재를 알리는 준비가 필수예요. 그래야 텔레파시 능력자가 그걸 본능적으로 감 잡고 동조할 수 있는 신호와 암호를 구성할 수 있거든요.」

-그 얘긴, 뭐, 대충은 알고 있다. 전에 몽몽이, 너희들도 텔레파시 도청을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 줄 때 같이 나온 얘기였지.

「헤에~ 기억하고 계셨구나」

-그래. 어쨌든 문제는, 너희들이 인간과 같은 뇌파를 발산하게 되면, 당장 너희들의 정체가 의심받을 거라는 얘기잖아. 그건 뭐, 어떻게 대충 넘길 수 있을 테니까, 일단 진행하자.

「와우~! 유난히 적극적이시네요? 근데, 이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요? 산드라씨와 주인님의 의사소통은 지금도 문제가 없으시잖아요.」

-단순한 의사소통으로 될 일이 아니니까 그렇지.

그래 난, 산드라가 읽은, 혹은 본 것들을 우리 모두가 함께 분석해 볼 생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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