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117화 : 지하 판타지 전쟁. (2)
6. 지하 판타지 전쟁. (2)
바위덩어리?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형체였으나, 쿠웅 소리를 내며 착지하는 놈에게는 분명 팔다리가 있었다. 미령이의 몇 미터 앞에서 스윽- 몸을 세우는 놈의 크기는 미령이의 세 배쯤은 되어 보였다.
둥근 타원형의 몸체에 부자연스럽게 붙은 인간의 팔다리, 새의 부리처럼 약간 앞으로 돌출한 형태의 입과 둥근 대머리 주변부근에만 지저분하게 난 머리카락, 무엇보다 무겁고 단단해 보이는 등껍질이 왠지 많이 낯익네.
“일본 하동?”
미령이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나는 막연하게 ‘흉물버전 닌자 거북이’ 쯤의 표현을 떠올렸는데, 미령이는 좀 더 구체적으로 정답에 가까운 생각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일본 설화에 나오는 물요괴 하동의 구체적인 형상은 잘 모르겠지만, 일본 만화에서는 저 비슷한 이미지로 등장했던 것도 같았다.
만약, 정말 일본 요괴가 맞다면 왜 미국 보스턴 지하에서 출몰하고 지롤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처음 뛰쳐나온 놈이 두목인 듯 했고, 다른 조금 작은 놈들도 일제히 수로 안에서 기어 나오고 있군. 아직은 십여 마리에 불과하지만, 수로 안에 얼마나 많은 숫자가 있는지는 가늠이 안 되고 있어. 「계속 물속에 숨어서 기습 공격만 시도해 오더니, 드디어 실체를 드러냈네요. 으휴~ 무슨 거북이가 저렇게 흉측하담?」
거북 요괴들이 유난히 흉측하게 보이는 건, 다른 곳보다 상대적으로 밝은 조명(?) 불빛 때문에 다른 곳에 등장한 존재들보다 실체가 더욱 적나라하게 보이고 있어서 그렇기도 했다. 저긴 기본 조명이 있는 곳인데다, 미령이가 몸주위로 일으킨 불꽃까지 더욱 환하게 주변을 비추고 있는 것이다.
“이봐요! 말은 할 수 있는 건가요?”
미령이가 뾰족한 음성으로 묻자, 미령이 뒤쪽의 우리 병력 전체를 살피고 있던 거북 요괴의 뱀같은 눈이 다시 미령이 쪽으로 향했다. 놈은 처음 뭍으로(?) 올라온 직후에만 잠깐 미령이를 확인하고는, 계속 다른 이들쪽만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작고 어린 여자야! 왜 네가 앞에 나와 있는 것이냐.”
인간의 말, 그중에서도 영어이긴한데, 발음과 어투가 어딘가 거슬리는군. 미령이는 그런 거 까지 따지기에 앞서, 자신을 깔보는 듯 한 상대의 태도가 더 거슬리는 모양이지만 말야.
“흥! 내가 조금 어린 것이 무슨 상관이죠? 난 오늘 이곳에 파견된 병력의 대장이에요!”
암. 대장+공주님이시지. 그것도 열 받으면 상당히 무서운 공주님.
“네가 이들의 대장이라고? 그럴 리가?”
믿지 못하겠다는 거북 요괴의 말과 태도는 미령 공주의 심기를 더욱 건드렸고, 녀석의 불꽃이 대뜸 커지며 짙은 선홍색으로 일렁였다. 비로소 거북 요괴가 조금 움찔하는 것 같았다.
“과연, 너의 그 불은 보통이 아니로군. 그렇다면 나의 부하들을 죽인 것도 너였던 거냐?”
“아니, 그건 아니지만.”
미령이는 애매하게 말을 잇지 못했고, 녀석 뒤쪽의 웨어 울프와 어사조들이 무심결에, 그리고 거의 일제히 자신들의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을 받게 된 토르가 어색한 태도로 히죽 웃었다.
「그게요, 주인님. 어사조 몇 명이 기습받았을 때, 토르가 전격 공격으로 구해내긴 했어요. 이쪽 파견 어사조들이 절연복과 장비를 갖추고 있지
않았다면, 적병들과 함께 우리편까지 감전사 할 뻔한 상황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무사해요.」
우리 지하무림 보급관들의 우수성이 또 한 번 증명 되었었군. 어쨌든, 토르는 그때부터 적들이 물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몸을 사리기 시작한 모양이고 말야.
“하이~ 닌자 거북씨! 고의는 아니었어. 난 약한 전기를 썼는데, 그쪽이 젖어 있어서 그런 거라구!”
토르의 자백 겸 책임회피 발언을 들은 거북 요괴가 본격적으로 살기를 일으키는 것 같았다.
“전기? 그렇다면 네가 바로, 살리나가 말한 ‘천둥 신’이로구나!”
거북 요괴는 복수심과 호승심이 함께 일어나는 모양이었지만, 정작 토르는 노골적으로 상대하기 싫다는 표정으로 손을 저었다.
“오우~ 난 그런 거 아냐! 난 싸우는 것도 싫어해! 난 평화주의자야!”
토르는 택도 없는 소리를 하면서 미령이를 보았고, 미령이는 피식 웃으며 한 팔을 옆으로 들어 올렸다. 그 팔의 손바닥 위에 화르르~ 화염 덩어리가 생겨났다. 배구공 정도 크기였고, 자니가 맘먹고 만든 화염구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상당히 위협적인 비주얼의 화염구였다.
“난 저 천둥 신의 친구, ‘불꽃 미령’.”
훗. 미령이 녀석, 자기도 멋진 별명을 짓겠다고 여러모로 고민한다고 하더니, 아직도 딱 결정하지 못한 모양이군.
“당신 이름은?”
미령이가 묻자, 거북 요괴도 미령이의 화염구를 경계하는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웨인님 직속 치위대의 일원이며, 이 보스턴 지하의 강을 지배하는 자, ‘오겡키!”
뭐야, 저 귀에 무지 익은 이름은? 어쨌거나, 일본 요괴가 맞나보네?
미령이는 조금 어이없어하는 기색이면서도 화염구를 던지려는 자세가 되었고, 거북 요괴는 스윽-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화염구를 정면으로 받아내려는 듯 한 자세를 취했다.
아니, 저건 수비보단 공격 태세야! 게다가 지금 구루룩하고 뭔가 액체같은 것이 끌어 올려지는 소리가 감지됐지?
후웅! 카앗!
미령이의 화염구가 던져지는 순간, 거북 요괴의 입에서도 강력한 뭔가가 쏘아졌다.
과앗! 추이익~!
화염구에 물(또는 위액?)이 적중되는 순간, 굉장한 기세의 수증기가 사방으로 폭사되었다.
삽시간에 나는 물론이고 현장 모두의 시야까지 차단되는 상황이었다.
-토르! 엄호 공격해!
반사적으로 지시한 직후, 수증기 안개 속에서 번쩍 번쩍 섬광이 일었다.
후와아아~!
거센 바람이 일며 안개가 날아가 버린 것은 미령이의 불길이 폭발적으로 커지며 발생한, 소규모 폭풍 현상 때문인 것 같았다. 어느 때보다 강력한 불꽃에 싸인 미령이 앞에는 거북 요괴 오겡키와 다른 부하 요괴들까지도 보이지 않았다.
물속으로 숨었군. 두목 거북이 오겡키는 육탄 공격 스타일로 보였는데, 놈도 미령이의 화염구가 보통의 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나보군.
미령 선수가 강속구로 날린 화염구는 두목 거북 오겡키가 서있던 공간을 지나서 수로 너머의 벽에 박혔는지, 아직도 벽에 치직- 거리는 불꽃 잔해가 있었다. 그리고 일단 몸을 피한 것은 적군뿐이 아니었다.
-요몽! 우리쪽 피해 상황은?
「이, 일단 크게 다친 사람은 없는 거 같아요.」
미령이는 지금 넓은 공터에 홀로 남은 것처럼 보였고, 그건 우리측 병력들이 전부 미령이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진 벽쪽에 바짝 붙어 대피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우려한 것은 적의 공격에 의한 피해가 아니었다.
「에고야! 다른 웨어울프들은 방열복 때문에 괜찮은데, 변신하느라 방열복이 찢겨진 몇 명은 털에 불붙은 거 겨우 끄고 나니까, 몰골이 영~ 아니네요.」
끄음. 적의 공격이 예상되니까, 소대장 아이언과 몇 명은 미령이를 지키겠다고 먼저 변신했었던 모양이군. 만약 앞으로도 웨어 울프들을 미령이 곁에 배치하게 된다면, 탄력 있는 재질의 방열복을 지급해야겠구먼.
우리 병력들이 적군보다도 아군 지휘관을 피해서 대피해야하는, 매우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미령이는 어차피 도움 받을 생각도 없다는 듯 수로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봐요. 닌자 거북, 오겡키씨! 이 작고 어린 소녀가 무서워서 달아난 건가요?”
비웃음을 담은 미령이의 앳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수로의 수면 여기저기서 거북 요괴들의 등껍질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일제히 강력한 뭔가를 쏘아댔다.
「소방용 호스를 이용한, 소위 물대포를 능가하는 초강력 물총(?)이에요. 그치만 보시다시피, 미령님의 초초강력 화력 앞에서는 별 수 없네요.」 물대포인지 물총인지의 집중포화도 미령이의 몸에 닿기도 전에 기화되어 수증기만 더욱 자욱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미령이가 보기 어려운 지점의 수면이 솟구쳐 올랐다.
-미령! 피햇!
다급한 나의 경고와 거의 동시에 거북 요괴 하나의 육탄 미사일이 미령이를 엄습하고 있었다. 맹렬하게 회전하며 날아드는 위세가 거대한 탄두를 연상케 했다.
“흥!”
짧은 코웃음과 함께 몸을 날려 피하는 미령이의 바로 옆을 거북 대포알(?)이 스쳐갔다. 스쳐가는 풍압만으로도 미령이의 불꽃 일부가 흩날릴 정도로 무서운 위력의 포격(?)이었다.
푸악! 푸앗!!
연이어 수면을 박차고 날아오른 거북 대포알들이 무차별 폭격을 시작하여 미령이와 주변 공간까지 거의 동시에 휩쓸어 버리고 있었다. “미령!”
토르의 안타까운 부름과 미령이의 아악~ 하는 비명이 엇갈리고 있었다.
꽝!꽈릉!꽈콱!
거북 대포알들이 여기저기의 시멘트벽에 꽂히는 소리가 공터에 가득 했다. 팔다리를 등껍질 안으로 숨기고, 타원형의 등껍질 채 대포알처럼 쏘아졌던 놈들이 하나둘 팔다리를 다시 내밀어서 자신들이 박힌 벽에서 몸을 빼내고 있었다. 미령이를 폭습(폭격+습격?)할 때와는 달리 느긋한 태도의 움직임이었다.
“미려어엉!”
다시 미령이를 외쳐 부른 토르의 몸에서 엄청난 전기 스파크가 일어나고 있었다.
빠측! 꽈칫!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파열음과 전기 스파크 섬광이, 먼 지상의 내 머리털까지 쭈뼛 곤두서는 느낌을 줄 정도였다. 영상창을 가득 채웠던 섬광이 사그라지고 나서야 겨우 현장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적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토르가 퍼부은 분노의 전격에 적중된 거북 요괴들이 새카맣게 그을려 널브러져있는 모습이었다. 토르는 이제야 물에 대한 트라우마까지 잊은 듯 미령이가 마지막으로 서있던 곳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미령이는 이미…………
“토르! 미쳤어요?”
토르에게 성질을 내기 시작했다.
“나까지 죽을 뻔했잖아요! 그렇게 무식하게 전격을 날려대면 어떡해요?”
“아, 아니, 난 미령이 다친 줄 알았어. 그래서………….”
“당신 때문에 다칠 뻔한 거예요! 전기 쓸 때는 항상 조심하라고 했죠?”
“미안! 미안! 괜찮아, 미령?”
토르의 거듭된 사과가 미령이를 조금 진정시키는 듯 했다. 하지만 무심결에 자신의 뒷머리를 매만지던 미령이가 다시 인상을 구겼다.
“아얏! 머리에 혹이 나버렸어”
하아~ 그래. 저 녀석 미령이가 아까 비명을 질렀던 것은, 적의 공격을 다급하게 피하느라 과도한 불꽃의 힘으로 날아올랐다가, 천정에 머리를 박았기 때문이었다. 지가 실수로 맨땅, 아니 맨 천정에 헤딩해 놓고 애꿎은 토르에게 승질부리다니, 나의 예비 처제라고는 해도, 저노무 승질머리는 참.
“머리에 혹? 어째서?”
토르가 의아해하며 다가가려하자, 미령이는 손을 저어 접근을 거부하며, 새삼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리고는 거북 요괴들이 득시글거리는 수로쪽을 무섭게 노려보며, 화르륵~! 무서운 불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옴마야! 순식간에 지금까지의 최고 온도 기록을 갱신했어요! 조담씨와 싸울 때의 자니와 비슷할 정도예욧!」
저 녀석, 토르 다음에는 거북 요괴들에게 화풀이 할 셈인가? 하긴 뭐, 거북 요괴들이 미령 공주의 머리에 혹이 생기게 된 원인 제공자가 맞기는 하지. 근데, 적들은 그렇다 쳐도, 저 빡돌은 미령이를 제외한 우리측 병력들까지 안돼 보이는 건 왜일까?
나는 토르를 비롯한 나의 수하들 백여 명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빡돌은 미령이를 말리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슬그머니 외면하며 요몽을 불렀다.
-요몽! 다른 팀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냐?
「어? 미령님 싸움인데, 좀 더 지켜보시지 않을 거예요?」
-얌마!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미령이가 아무리 나의 예비 처제라고 해도, 녀석만 편애할 수는 없잖아.
순전히 그래서이다. 빡 돈 미령이가 성깔 부리는 건 나도 말리기 어려워서는 절대로 아니지, 암!
-커흠! 암튼, 길모르쪽은 어떠냐? 아직도 시작 안했어?
「예? 아, 그게, 저, 그쪽에도 적이 나타나긴 했어요.. 그치만, 그게.」
뭐야? 이 녀석 왜 이렇게 버벅대?
요몽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기색이 역력하면서도 결국 길모르쪽의 영상창을 활성화했다. 이쪽 팀에도 어사조가 배치되지 않아서 조금 걱정했지만, 의외로 상당히 안정적인 영상 데이터가 보내져 오는 것 같았다.
「여긴요. 길모르씨가 지급된 장비를 확인하고는 웨어 울프들에게 영상 데이터 수집 요령 같은 걸 단시간에 교육시키더라구요.」
과연 길모르. 닥터 제이도 아끼는 인재답게 여러모로 안정적인 일처리 능력을 보여 주는군. 외모와 성별은 정반대지만, 세계정화재단의 ‘최윤희’ 과장삘이 난다고 할까? 뭐, 일단 그거야 어쨌든.
현재 길모르는 다른 팀들보다 상당히 넓은 공간속에 있는 중이었다. 그냥 공터라기보다 광장에 가까운 넓이였고, 사방으로 통하는 수로 겸 통로가 나있는 구조였다. 이런 곳의 정식 명칭은 모르겠지만, 통로의 ‘로터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렇게 나름 교통의 요지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길모르팀 전체가 포위를 당해있는 형국이로군. 저 헤아릴 엄두도 안 나는 쥐들의 대군에게 말이지. 「으~ 이래서 이쪽은 보고 싶지 않았는데!」
요몽은 길모르쪽 영상창을 띄움과 동시에 자기는 사삭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요몽이 자신만의 공간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보는지 어쩐지, 하여간 보는 걸 거부하고 싶어 하는 기분을 알 것도 같았다. 그리고 그건 작은 쥐들이 우글우글거리는 광경 때문만이 아니었다.
길모르가 보고 있는 방향의 통로의 쥐떼 앞의 저건 또 뭐야? 저게 쥐야 곰이야?
커다란 쥐괴물을 전혀 예상 못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막상 저렇게 사람보다도 큰 시궁쥐가 화면 가득 떠오르니, 새삼 쓴웃음과 함께 한숨이 흘러나왔다. 왜인지 설명하긴 어렵지만, 아예 현실과 동떨어진 존재들의 등장보다도, 저렇게 현실에서 자주 본 생명체가 괴이하고 공포스럽게 변모한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소름끼치고 거부감이 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나 같은 평범한(?) 사람 얘긴가? 과학자인 길모르는 오히려 흥미로워하며 반기는 기색이야. 뭐, 길모르 자신이 웬만한 곰보다 큰 덩치이니, 저 정도 대형 쥐도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네.
-길모르! 나요. 그런 곳에서까지 동물 실험을 하게 된 모양이군.
“흠. 그런 거 같소, 캡틴. 이 변종 설치류들의 생성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몇 마리를 생포해야 할 거 같은데, 허락해 주겠소?」”
-훗. 생포야 당신맘이지만, 저런 것들을 구중천에 들이려면, 나보다 자룡대주의 허락이 있어야………………
아니, 잠깐? 지금 ‘변종들’이라고 했지? 에고야. 이거, 나부터 허락이 망설여지기 시작한다.
길모르는 스윽- 고개를 돌려 다른 통로들까지 살피기 시작했는데, 그의 시선과 카메라 앵글이 옮겨가는 순서대로 또 다른 대형 쥐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나같이 사람보다도 컸지만, 그 중 한 마리는 유독 크고 강력한 포스를 뿜어내는, 그야말로 ‘괴물 쥐’였다.
다른 대형 쥐들이 나름 귀여운(?) 반달곰 수준이라면, 저건 ‘그리즐리’급이라고 해야겠군. 젠장. 웨인 쥐시키가 대왕 쥐답게, 장군 쥐까지 키워냈었던 건가? 하여간, 저 그리즐리급 쥐 장군이 친위대라면, 지능까지 인간 수준인 요괴 쥐겠지?
“안녕하십니까, 닥터 길모르.”
역시 말까지 할 줄 아는 쥐이고, 목소리도 의외로 점잖은…아니, 아니! 지금 저 장군 쥐는 입을 열지도 않았어!
거대한 장군 쥐의 뒤편 어둠 속에서 또 하나의 그림자가 움직여, 모습을 드러냈다. 장군 쥐에 비해서는 매우 작고 왜소한, 보통 인간의 체구를 가진, ‘호박 귀신’이었다.
끄으음! 진짜 쥐떼 조종자는 저 놈이었군. 엄청 호리호리한 체형에 호박 머리, 입고 있는 복장까지도 영화 ‘크리스마스의 악몽’에 나오는 주인공 캐릭터 ‘잭’이 현실로 걸어 나온 듯 한 분위기야.
“저는 웨인님 직속 친위대의 일원인, ‘잭”
이름도 영화 속 캐릭터와 같은 ‘잭’이라고? 어째 본명이 아닌 거 같고, 호박 머리도 진짜가 아닌 가면 같은 느낌이야. 적어도 진짜 호박 귀신은 아닌데, 영화 크리스마스의 악몽 코스프레를 즐기는 놈인 거 같아. 그거야 어쨌든, 저 놈을 바라보고 있는 길모르의 표정이 뭔가 이상하네. 항상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던 얼굴이 저렇게까지 심각해져있는 건 거의 처음인데, 그만큼 지금 나타난 놈이 심상치 않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