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120화 : 다시 날아든 새. (2)
7. 다시 날아든 새. (2)
마법사가 상급의 해골바가지를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마법사 자신도 해골바가지라고?
시그마의 뱀프 부대와 해골바가지 부대가 여기저기서 쌈박질을 벌이고 있는 구역은 다른 곳의 평균적인 수로와 통로보다 두 배쯤 넓은 곳이었다. 그래도 뱀프 삼십 여명과 해골바가지 떼거지가 동시에 맞짱 뜰 수 있을 만한 폭은 아니어서, 해골바가지 떼거지들은 꽤 긴 형태의 대형을 이루고 있었다.
문제의 황금 해골바가지는 대형의 맨 뒤쪽 바닥에 앉아있는, 저 놈인 모양이군. 그런데, 잿빛 망토로 전신을 감고 있으며, 망토와 일체인 후드를 깊이 눌러쓰고 있어서, 당장은 용모를 파악하기 어렵네.
‘시그마’
‘예, 로드!’
훗. 역시 텔레파시가 편하긴 하네.
‘바쁜데 전화 아니, 텔레파시 보내서 미안.’
‘아닙니다, 로드, 뱀프 타운의 친구들이 생각보다 잘해 주어서, 저는 아직 여유가 있는 상황입니다.’
‘흠. 다행이군. 그런데, 그쪽에 나타난 마법사가, 마법사면서 스켈레톤이기도 하다면서? 그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가?’
시그마는 잠시 해골바가지들 너머의 마법사쪽을 노려보며 생각을 정리해 보고나서 텔레파시를 이었다.
‘골든 스켈레톤은 저희 귀족들보다도 약점이 없는 불사의 존재입니다. 일단 탄생한 골든 스켈레톤은, 그를 만든 마법사를 죽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마법사 본인이 골든 스켈레톤이 되어버리면, ‘불사의 고리를 끊을 방법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와하. 그런 얍삽이 아이디어로 완전에 가까운 불사의 존재가 된 놈이라 이거지?
‘저런 불사의 마법사를 ‘리치몬드’라고 부르며, 저희들도 직접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과거에도 꽤 드문 케이스였나 보군.
‘산드라도 리치몬드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은 알지 못합니다. 게르만 전설에 의하면, 800여 년 전에 처음 등장했던 리치몬드도 끝내 아무도 죽이지 못하여 유럽 어딘가에 아직도 봉인되어 있다고 합니다.”
‘뭐야. 그럼 오늘 거기 나온 놈이, 바로 그놈이라는 건가?’
‘확실한 것은 아직 모르겠습니다. 리치몬드는 역사상 단 두 번의 출현 기록이 있으며, 두 번째 리치몬드의 행방도 아직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산드라는 물론이고,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리치몬드라는 특수 해골바가지를 죽일 방법은 아무도 알아내지 못했다는 거고, 그래서 지금 시그마의 태도가 애매한 거군. 지지않을 자신은 있지만, 딱히 해치울 방법도 없고 해서 말이지.
‘그럼 뭐, 일단 계속 상대해 주고 있어. 어차피 오늘 목적이 그 놈한테 있는 것도 아니고, 부담 갖지 말고 적당히 상대하면서 다음 작전 지시를 기다리도록 해.’
‘알겠습니다, 로드.’
‘이번 싸움이 잘 마무리 되어도, 산드라는 당분간 심심하지 않겠군.’
‘예? 무슨 말씀이신지.’
‘리치몬드가 어떻게 하면 죽는지, 아무도 모른다며. 그걸 산드라가 알아내면 마법계에서도 길이 남을 업적이랄지, 하여간 산드라의 명성도 높아질 거 아냐. 내가 허락할 테니까 마음껏 그 놈 사망 실험을 해보라고 할 생각이야. 얼리고 태우고 찌고, 어떻게 지지고 볶든… 음? 왜 그래, 시그마?” “아, 아닙니다,’
뭐야? 왜 이렇게 난감해하면서 두려워하는 기색까지 느껴지지?
‘그런데, 로드, 산드라에 대한 배려는 감사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잔인한 실험을 원치 않을 것 같습니다.”
엑. 이 친구, 내 얘기를 직설적으로 받아들였군.
‘저기, 시그마, 리치몬드를 얼리고 태우고, 지지고 볶는다거나 그런 얘기는 그냥 내 평소 습관…………’
「주인님! 주인님!」
젠장. 그런 말은 내 습관적 과장 표현일 뿐, 그냥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하라는 뜻임을 설명하려는데, 절묘한 타이밍으로 끊네?
「조담씨 팀이 다음 작전 포인트에 거의 도착했어요!」
끄음. 해명을 조금 미룬다고 진짜 나를 오해하는 건 아니겠지?
-좋아, 요몽. 모든 팀의 지휘관들에게 작전 전환 대비 메시지를 보내!
「네엡!」
조담 쪽의 싸움이 가장 먼저 끝나있었던 것은 사이드 영상을 가끔 확인한 것만으로도 알고 있었다. 당연히 우리측 크루버와 그의 직속 웨어
울프부대의 압승! 그리고 살리나는 겨우 살아남은 고르곤과 몇몇 생체 로봇들만을 수습하여 처량 맞게 도주 중이었다.
크루버는 아직 우리측 작전을 세세하게 몰라서, 광분한 김에 살리나를 추적하여 말살하고 싶어 했지만, 자룡대주가 잘 막아주었어.
“크루버 대장. 밤은 길어요. 천주께선 느긋한 사냥을 즐기고 싶어 하십니다.”
이것도, 나의 선량함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오해가 쌓일 법한 대사였지만, 그거야 어쨌든.
자룡대주의 말대로 느긋하게 추적을 시작한 조담팀은 이제야 마악 웨인 놈이 짱박혀 있는 비밀 소굴을, 짐짓 모르는 척 지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자룡대주! 이제 적당한 지점에서 멈추고 뜸 좀 들이고 있어줘.
자룡대주는 즉각 걸음을 멈추었고, 그에 따라 조담과 자룡대주의 측근 어사조 몇 명도 함께 걸음을 멈추었다.
“무슨 일입니까, 자룡대주님!”
선발대로 앞서가고 있던 크루버가 연락을 받고 달려오자, 자룡대주는 별일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다른 팀들이 아직 움직이지 못하고 있어요. 이대로 우리만 먼저 전진하면 포위망이 흐트러지게 될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조담을 돌아보자, 녀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쯤에서 잠시 쉬어가도록 하지.”
조담이 동의하자, 자룡대주는 어사조들에게 조담이 앉아서 쉴 의자까지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크루버도 할 수 없이 자신의 부하들에게
경계 및 휴식 지시를 내렸고, 이로써 조담팀은 웨인 놈의 비밀 소굴의 입구 부근에 진을 치는 상황이 되었다.
웨인 놈의 현재 표정이 궁금해지는군. 놈이 이제 어떻게 나올지 기다리는 동안, 나도 최종 점검을 좀 해야겠어.
몽몽! 비출!
비상호출된 몽몽이 한 박자 늦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니, 내가 녀석에게 따로 시켜두었던 일이 아직 마무리가 안 되었지 싶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두 가지 임무 중, 아직 한 가지 임무가 완료되지 못했습니다.」
하는 수 없지. 완료된 건, ‘피비’에 관한 사항이겠지?
「그렇습니다, 주인님. 웨인의 최측근으로 추정되는 코드명 피비, 그녀와 그녀가 속한 ‘나누크’ 가문에 대한 조사 및 분석 결과, 현재 코드명 피비는 웨인의 도주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훗. 다행이군. 이번 ‘웨인 쥐시키 때려잡기’ 작전에 있어서,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은 바로 그 붕대 문신 소녀 피비였어. 웨인 놈을 아무리 궁지에 몰아도, 놈이 그녀의 마법진을 이용해서 튀어 버리면 대략난감일 테니 말이지.
-반가운 소식이다만, 근거는?
「나누크 가문에 전승되는 공간 이동 마법은, 코드명 산드라의 공간 이동에 비해 제약이 많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출발점과 도착지에 반드시 해당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어야하며, 출발점은 코드명 피비의 전신에 그려진 마법진, 즉, 그녀 자신이 출발점입니다. 또한 도착지점의 마법진 제작 조건도 까다로워, 나누크 가문에서도 많은 마법진 게이트를 만들지는 못했다는 기록이 확인되었습니다.」
우리 산드라에 비하면 무엇보다 워프 가능 지점을 확보하는 것이 더 까다롭고, 반자동(?) 산드라에 비해 비루한 수동식 느낌이로군.
-그래도 미리 부지런하게 여기저기에 게이트를 만들어 놓았다면 우리측 못지않게 워프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할 거라고 하는 거 보니까, 현재 피비가 고장(?)이라는 얘기지?
「그렇습니다. 나누크 가문의 데이터를 토대로 한 분석 결과, 코드명 피비는 마족 투르가를 소환하는데 쓰였던 마법진 운용에 과도한 영력(力)을 소모하여, 해당 시점으로부터 최소한 96시간 동안 가사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가사 상태라, 지난번에 대교 앞에서 마법진 워프로 사라질 때 무지 힘겨워하며 간신히 한다싶더니, 그야말로 완전히 방전되었던 거군. 소위 마계 콜로세움까지 조성하면서 나를 잡으려고 했던 것이 놈들의 결정적인 실수였던 거야.
-좋아, 몽몽. 더욱 마음껏 놈을 사냥할 수 있겠다. 그런데 아직 완료하지 못한 사안, 그건 어느 정도까지 알아 본거지?
「그건……………」
몽몽은 녀석답지 않게 조금 망설이다가 보고를 시작했고, 듣는 나도 상당히 껄적지근해지는 얘기였다.
-그래? 역시 그렇게 되었다고? 쳇. 그 녀석들은 또 왜 그런 곳으로… 젠장!
「주인니임. 몽몽 오빠는 걱정 많이 했는데, 근데 주인님 반응은 생각보다 심하지 않으신 거 같네요?」
요몽에게는 지금 나의 무지막지 난감하고 썰렁한 감정이 잘 측정되지 않는 모양이군. 요즘 나의 정신 수양 레벨이 많이 오르긴 했나벼.
-뭐, 어쩌겠냐. 최악의 경우, 정말로 그 녀석들이 개입한다고 해도, 뭐 어찌되겠지. 부딪치면서, 혹은 다음에 천천히 고민할 거야. 지금은 당장의 상황에만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지. 안 그래?
「와후~! 전 이럴 때의 주인님이 제일 좋아요! 감정 변화까지 내일로 미룰 수 있는 울 주인님 은 역시 킹왕짱!」
칭찬은 칭찬인데 뭔가 쫌.
-됐고, 아직 웨인 놈은 반응 없냐?
「후후. 다른 쪽은 아직 애매한데, 조담씨 쪽으로 살리나가 다시 오고 있는 거 같아요.」
훗. 웨인 놈의 응가줄이 타기 시작한 모양이군.
-자룡대주! 시작하자!
내가 작전개시를 알리자, 자룡대주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고, 그녀는 살리나가 다시 나타났다는 경계병의 보고를 듣는 둥 마는 둥한 태도로 어사조 한 명을 불렀다.
“진유준님! 저는 웨인님의 전언을 전하기 위해서…………….”
살리나는 웨인놈이 날 정식으로 초대했다거나, 여하간 다른 곳에서 끝장을 보자는 식의 말을 하고 싶었겠지만, 조담 녀석이 한 손을 들어서 막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자룡대주는 어사조 한 명이 등에 매고 왔던 배낭 속에서 뭔가를 꺼내, 조담 앞의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그건?”
자룡대주가 꺼내놓은 것은 A4용지와 비슷한 크기의 정사각형 판이었고, 마치 크고 기괴한 분위기의 나침판처럼 보였다.
“살리나씨. 아까 당신들이 빨리 나타나는 바람에 깜박하고 있었네요. 우리에게는 사실, 산드라가 준 ‘추적용 윗치 보드’를 가지고 있었어요.
당신에게 굳이 안내받지 않아도, 우린 도널드 웨인을 추적할 수 있다는 얘기죠.”
물론 개뻥이지만, 저 ‘윗치 보드’의 외형 디자인만큼은 진짜와 똑같다고 했다.
“거, 거짓말! 아무리 마녀 산드라의 물건이라고 해도, 그녀는 추적을 위한, 웨인님의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못해요!”
흐음. 저 여자, 살리나도 마법에 대해서 좀 알고 있긴 한 모양이군.
“글쎄요? 전 마법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산드라 말로는 이 윗치 보드의 중심부에 도널드 웨인의 서브인 리버의 피를 한 방울 떨구면, 마스터의 위치까지 안내 받을 수 있다고 하던데요? 아, 맞아요. 이 중심부의 바늘이 ‘오르하켄’이라는 것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더군요.”
“오르하켄? 그, 그런 ‘사라진 금속’을 산드라가 어떻게?”
믿을 수 없다는 살리나의 반응을 생까면서, 자룡대주는 작은 약병 같은 것에 담겨있던 피를 한 방울 떨구었다. 그러자 보드 위의 오르 뭐시긴지로 만들었다고 뻥친 바늘이 맹렬한 속도로 돌기 시작했다.
“어머? 진짜 뭔가 반응이 있네?”
자룡대주는 놀랍고 신기하다는 표정 연기를 하며 보드를 들여다보았지만, 저 바늘을 회전시키고 있는 것은 조담 녀석의
‘능공섭물(綾空攝物)’이었다.
저 커플을 제외한 모두가 정신줄 놓고 바늘끝이 어디로 향할지에 몰입하고 있군. 이제 저 바늘이 가리킬 비밀 문 너머의 웨인 놈도 살리나처럼 저렇게 설마하면서도 조마조마 가슴 졸이는 표정을 하고 있으려나?
“아~!”
자룡대주가 먼저 탄성을 울려 분위기를 고조시키더니, 드디어 멈춘 바늘 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흥! 이제 보니, 우릴 속이려고 돌아왔던 거군요, 살리나!”
자룡대주는 절망하고 있는 살리나에게 한 소리 쏘아붙이는 걸 잊지 않으면서 보드를 들고 일어섰다. 자룡대주는 보드의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고, 조담 녀석은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그 뒤를 따랐다.
좋아! 이제 곧 내 차례다!
나는 정글도를 어깨에 걸쳤고, 징검다리 2호의 바깥 문 걸쇠가 자동으로 풀려졌다. 징검다리 2호의 출입문 바로 아래에는 곧장 지하로 향할 수 있는 맨홀 뚜껑이 있지만, 아직 나의 출격 루트가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산드라!
“예, 로드! 요몽양의 지시대로, 조금 전부터 시작했습니다. 아! 웨인은 지금 리버의 접속을 의식하지 못 할 정도로 공포에 사로잡혀있습니다.” 당근, 그렇겠지. 내가(조담이) 바로 자기 방문(?) 앞에서 으르렁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자룡대주! 비켜!”
자룡대주가 재빨리 물러나자마자, 조담 녀석의 칼에 강력한 기운이 차올랐다.
“영역을 만들어야! 아니, 저자는 영역으로도 막을 수 없어! 달아나야 해!”
산드라가 웨인의 의식을 그대로 전달하기 시작했다.
꽈릉!
조담의 직격인(直擊印)이 펼쳐진 시멘트벽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버렸다. 보이지 않게 위장된 문이 있었겠지만, 조담 녀석의 일격에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는지, 그냥 휑한 동굴의 입구처럼 보이고 있었다.
“역시 안 돼! 이길 수 없어! 날 죽일 거야! 달아나야 해! 안 돼! 피비는? 나의 그녀는? 아니야! 저자는 피비를 죽이지 않아! 나만이라도 먼저 달아나야 해!”
산드라를 통해서 전달되는 웨인놈의 소위 마음의 소리! 그런데 피비를 ‘나의 그녀’라고? 저 늙은 쥐시키가 피비처럼 어린 소녀를… 아니, 피비의 실제 나이도 알 수 없으니,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고!
“웨이인!”
조담이 웨인을 부르는 일갈에는, 내가 듣기에도 무서울 정도로 살기가 만땅이었다. 조담은 딱히 웨인에게 원한이 없으니, 자룡대주가 ‘웨인을 해치우면 뽀뽀 백번’ 같은 포상 약속을 했지 싶었다.
꽈직! 퍼엉!
안쪽에도 있던 다른 문들까지 폭발하듯 날아가 버리고서야, 웨인 놈의 비밀 소굴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훨씬 큰, 광활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큰 지하 공간이었다. 최소한 이백 미터가 넘을 듯 한 거리의 반대편 벽의 작은 문이 열려지고, 거기로 달아나는 웨인 놈의 뒷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거기 섯!”
크게 외친 조담 녀석이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지만, 거대 소굴 안에는 아직도 꽤 많은 수의 괴물들이 있다가 조담을 막아서기 시작했다.
“로드!”
웨인의 의식에서 확정된 도주로를 읽어낸 산드라의 알림이 너무나 반가웠다.
드디어! 겨우! 이제야! 나도 출격! 이게 대체 얼마만이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