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152화 : 귀신의 날. (1)
8. 귀신의 날. (1)
할로윈 중의 할로윈!
천우신에게는 이런 말로 들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파티의 기본 분위기상 그렇게 이해해도 무리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우리 대교 마님의 이번 이벤트를 할로윈의 틀에 넣는 건 너무 아니지 싶었다.
-이봐, 우신, 오해는 하지 말게.
나는, 상당히 기대에 찬 얼굴로 러브 하우스 현관을 보고 있는 천우신에게 보충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보게 될 장면을 특별한 할로윈이라고 생각하면 안 될 거야. 물론 보면 바로 알게 될………….
내가 말끝을 흐린 것은, 천우신이 여전히 웃는 낯이면서도 조금 고까워하는 기색으로 돌아보았기 때문이었다.
-이보게, 유준. 자넨 아무래도 지금의 나를 너무 얕보고 있는 것 같군. 자네 식 표현을 빌리자면, ‘띄엄띄엄 본다’고 할까?
천우신은 스윽- 파티장 전체를 다시 훑어보고는, 이어서 우리 가족 테이블의 빈자리도 새삼 돌아보았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사영 옆자리의 소교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며 말을 이었다.
-여러 아가씨들의 움직임이 일상 패턴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네. 그리고 몇 가지 정황상, 그런 흐름은 둘째 아가씨로부터 기인한다는 생각이 들더군. 어떤가, 유준. 내 판단이 틀렸나?
이, 이런! 이 친구말대로, 내가 내 친구를 너무 띄엄띄엄 보았던 것 같군!
와아~ 과연 천우신님! 천이단 전설의 단주이자, 울 눈치마왕 주인님의 절친다워요!」
나를 끼워 넣은 부분은 그렇다 치고, 요몽 말대로 이 친구 역시 전설의 인물이지, 암! -미안하네, 친구!
나는 진심으로 사과하며 천우신의 잔에 술을 채웠다.
-내가 한동안 자네보다 많은 것을 보고 겪었다는 인식 때문에, 나도 모르게 자네를 내려보는 마음이 생겼었나봐. 용서하게, 친구! 내가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고 술잔을 내밀자, 천우신도 즉각 약간의 삐딱한 표정을 풀며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었다.
-훗~ 솔직한 것도 그렇고, 술 한 잔으로 실수를 넘기려는 뻔뻔함도 여전하군.
응? 뭐?
내가 문득 동작을 멈춘 것은, 천우신의 말투에서 과거의 날 기억한다’는 뉘앙스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건 천우신 자신도 마찬가지인 듯, 그 역시 나처럼 건배한 잔을 마시지 못하고 있었다.
-이, 이거, 묘하군. 방금은 순간적으로 자네가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졌었네. 사실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막연한 느낌이었는데, 그런데 불연 듯…………… 천우신은 익숙함이 낯선, 모순적인 감정을 느끼며 어색해하는 것 같았고, 나는 다른 이유로 어색하게 말했다.
-저기, 우신. 뭐든 되살리는 건 좋은데, 하필이면 그런 일부터인 거야? 나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도 꽤 많을 텐데 말이야.
-으음. 그건 말일세, 유준.
천우신은 잠깐 미루었던 원샷으로 잔을 비우더니,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자네하기 나름 아닐까? 조금 전에도 그랬듯, 현재의 자네 행동에 따라 내 과거의 기억도 연동될 가능성이 높을 테니 말이지.
쯧. 할 말 없게 만드는군. 내가 천 년 전에 이 친구에게 저질렀던 범죄(?)가 이제라도 밝혀지는 건 쫌 그렇지? 예를 들어, 군용 88담배 ‘돛대’ 하나로 천이단 무상 이용권을 거진 날로 먹었던 일 같은 거 말이지. 크흠. 흠!
-아, 알겠네. 그 문제는 신경 좀 쓰지.
-흐으~음. 난 그냥 해 본 소리였는데, 이제 보니 유준 자네. 켕기는 것이 꽤 있는 모양이군.
-어허~ 내가 켕기는 일은 무슨! 난 천 년 전에도 지금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그게, 그러니까…
「주인니임. 드뎌, 다들 바람의 저택에서 출발 중이십니다요!」
-오우, 나이스 타이밍, 요몽!
「어, 무슨 타이밍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여하간 이번 이벤트는, 화려한 조명도 음악도 없고, 조금 밋밋한 분위기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대교님께서 그냥 자연스러운 상황이 좋겠다고 하셔서리.」
훗. 이 녀석은 꽤나 화려하고 요란뻑적지근한 연출의 이벤트가 아니어서 소위 ‘흥행’이 걱정되기도 하는 모양이군. 대교는 본래가 인위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이벤트를 생각한 것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야. 그런데 일이 생각보다 커져서 대교도 내심 조금 부담스럽겠군.
나와 천우신이 미리 눈치깐, 여자분들의 이벤트는 ‘한복 패션쇼’였다. 아직 자신의 애잔 울트라 파워에 의한 주변 주목 흡수 능력’을 잘 모르는 소교 녀석은 사람들이 자신을 주목하는 이유가, 자신만 튀는 한복을 입고 와서 그런 것이라 오해하고, ‘차림을 잘못 선택했다’고 후회하는 눈치였다. 그걸 눈치깐 대교가 소교의 부담을 자연스럽게 덜어주기 위해서 자신도 한복을 입기로 했던 모양이었다.
기왕이면 나와 호크의 놀라는 모습도 볼 겸, 피비를 부추겨서 함께 한복을 준비하러 갔던 건데, 이를 알게 된 다른 아가씨들이 하나둘, ‘나도,
나도’라고 나서게 된, 그런 상황이었던 거야. 뭐, 상황이야 어쨌든, 나는 아무래도 눈에 익은 한복에 대한 흥미도가 떨어지는 편이니, 오늘 처음 한복을 접하는 이들, 특히 이벤트에 나선 아가씨들의 짝꿍들 반응이나 구경해 볼거나?
-자, 자! 이제 다들, 잠시 저쪽을 좀 주목해 주실까요?
나는 대교의 뜻에 따라 우리 테이블 가족들에게만 동시 전음을 보냈다. 우리 몇 명의 시선이 러브 하우스쪽으로 향한 직후, 현관문이 빼꼼이 열리며 피비가 얼굴부터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웨인가의 퍼스트레이디’치고는 소심한 등장이었으나, 곧 용기를 내어 전신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예상대로 호크의 입에서 놀라워하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피비? 오우~ 멋지군!”
호크는 ‘우리나라 한복을 입은 애인에게 경탄하는 표정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결국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피비가 계단을 다 내려오기도 전에 그녀 앞으로 이동했고, 그녀의 손을 잡고 에스코트하여 돌아오기 시작했다. 피비의 놀라운(!) 한복 차림을 목격한 이들 모두가 호크 정도는 아니어도, 다들 꽤 놀라고 감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사실은 한 사람, 나만은 약간의 난감한 기분을 느껴야했다.
피비는 백인에 속하면서도 동양미가 섞인 스타일의 미소녀이어서 그런지, 우리 한복의 아름다움과도 상당히 잘 어울리는 것 같기는 해. 저 옷의 나풀거리는 띠(맞나?)도 피비의 붕대 소녀 모드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미지의 일관성도 느껴지고 말이지. 그렇지만 나로서는 저것도 우리 전통 한복이 맞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소 거시기 하구먼.
「첫 번째 모델(?)은 ‘나누크 마법 선녀! 후훗~! 첫 번째 모델(?)부터 너무 튀었나요?」
-그래, 많이 튄다. 저걸 뭐라고 해야 하냐? ‘하늘나라 선녀님의 날개 옷?
「아하하~ 맞아요. 딱 그 디자인이죠? 저것 좀 보세요! 다들 진짜 하늘나라 선녀님을 만난 표정이 되고 있어요!」
훗. ‘선녀와 나무꾼’ 동화를 떠올리며 어색해하는 건 나뿐인 건가? 그런데 그나저나, 초장부터 저렇게 튀는 스타일을 내놓으면, 다음 모델(?)들이 주목을 끌기 어려운 거 아닌가 모르겠네.
「자아~ 다음 순서는, 수백 년 동안 쌩얼과 칙칙한 중세 마법사 패션을 고집했던 산드라의 화려한 변신, 되겠습니당!」
오, 곧바로 산드라인가? 나는 솔직히, 피비보다도 산드라의 한복 자태가 더 궁금했 응? 이건 이거대로 신선하다고 해야 하려나?
산드라는 피비와 달리, 그야말로 정통(?) 조선시대 양반집 아가씨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조금 지나쳐서, 외출할 때 머리에 쓰는 천(명칭을 모름)으로 얼굴과 상체까지 포옥 덮고 있는 차림이었다.
집 앞 마당으로 나오는데 저런 모습은 쫌 그러네. 피비의 화려한 등장 때문에 관객들이 급속으로 늘어나고 있는 참이고, 그중에는 시그마도 있어. 하지만 산드라의 저런 차림 때문에 시그마도 자기 애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거 같군. 시그마에게 텔레파시로 알려 줄, 에? 이런, 이런! 산드라 저 아가씨, 여기서 여고괴담, 아니, ‘전설의 고향’을 찍어 버리네.
산드라는 많은 이들의 시선에 수줍음을 타는 태도로, 얼굴 앞을 더욱 여미는가 싶더니, 파팟! 시그마 앞으로 워프해 버렸던 것이다.
‘산드라! 당신이었나?”
시그마는 이런 생각의 표정이 되어 멍하니 산드라를 보았고, 그녀는 잠시 더 망설인 끝에야 조심스럽게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오~ 정녕 그대가 나의 산드라 낭자였던 것이오?”
‘네에, 저여요, 시그마 도령님. 유준 대감님 감시를 피하여 도령님을 뵈러 왔사와요.’
‘우오오오~ 이것이 꿈이요, 생시요! 어디 손 한번 잡아 봅시다!’
‘아이~ 차암~ 부끄럽사와요.’
끄음. 이쯤에서 멈추자. 저 커플의 텔레파시 대화를 멋대로 상상해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아가씨들을 무시하면 안 되겠지? 「왓! 우리 페트라 언니가 3번 타자예욧!」
페트라? 어디, 어디!
페트라는 ‘인도계’ 아가씨이고, 한복에도 그런 성향이 반영된 것 같았다. 한복 고유의 디자인을 기반으로, 그 위에 인도의 무희들이 몸을 장식하는 장신구들이 연상되는 은빛의 무늬가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었던 것이다.
페트라의 무표정한 듯 하면서도 묘하게 요염한 표정과 분위기도 인도 미녀 무희를 보는 기분이 드네 그려. 가만, 저온통 은빛인 장식은 혹시 몽몽의 머리카락을 생각해서? 이것 봐라? 몽몽의 반응이 엄청 궁금한데, 녀석이 모습을 드러낼 리가, 어랏? 몽몽이 보인다?
몽몽은 페트라의 화사요염한 자태에 얼이 빠진 듯 반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고, 요몽이 그 뒤에서 참지 못하고 외쳤다.
「주인님! 제가 몽몽 오라방의 영상 데이터를 해킹했어염! 저 잘했죵?」
「요, 요몽!」
화들짝 놀란 몽몽이 순간적으로 사라졌고, 다음 순간에는 허공에 무시무시한 분위기의 ‘은빛 쇠사슬’이 등장했다. -잠깐! 스톱! 멈춤! 이번만은 요몽을 용서한다! 이건에 관한한, 모든 징계 금지!
「주, 주인님.」
몽몽의 힘없는 음성과 함께 은빛 쇠사슬도 사라졌다. 요몽은 안심하고 폴짝폴짝 뛰며 만세까지 부르고 있었다.
「주인님 만세! 만쇄이! 땡쓰! 땡쓰예염!」
으으음. 요몽 덕분에 잼난 몽몽 모습을 잘 보긴 했는데, 요몽 녀석이 몽몽을 해킹할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니, 이건 이거대로 놀랍군. 이런
상항에서의 몽몽 표정을 꼭 보고 싶다는, 그런 요몽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으려나?
「히힛~ 이번에는 자룡대주 차례네용.」
요몽의 웃음기는 조금 전 상황 때문이고, 자룡대주를 소개하는 말에는 성의가 별로 없지 싶었다. 솔직히 나도 약간 그런 마음이긴 했으나, 자룡대주의 비주얼 역시 만만치는 않았다. 자룡대주는 앞서 나온 아가씨들과 달리, 순수한 동양 미녀로서, 기본기(?)부터 다른 분위기였던 것이다. 저건, 궁중한복? 등극한지 얼마 안 된 왕과 함께 나들이에 나선 왕후의 모습 같다고 할까? 당당한 기품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화사한 아름다움도 장난이 아니로군. 어? 그런데 조담 녀석의 반응이 어째 시원치가 않네? 저렇게 아름다운 왕비, 아니, 여왕님께서 자신쪽으로 납시는데도 그리 놀라거나 감탄하지 않는 듯한… 아, 아닌가? 에구, 저 녀석, 아예 선을 넘어 버렸군. 조담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나타샤가 어이없어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버리고 있어.
조담 녀석은 술을 마시던 자세 그대로 굳어진 것이었고, 녀석의 입과 코 옆으로 넘친 술이 줄줄 흘러서 옷과 테이블 위까지 흥건히 적시고 있는 데도, 녀석 자신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담!”
토르가 안 되겠다 싶어서 옆구리를 찔렀지만, 조담은 ‘어버버~’ 모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자룡대주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쯧쯔~ 녀석도 참.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저 정도로 정신줄 분실하면 남자로서의 체면이……………
「주인님?」
조담에게 혀를 차던 나의 의식도 불연 듯 허공으로 떠올라 저 먼 안드로메다로 날아갈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나의 그녀, 대교의 한복 자태도 내 눈앞에 강림했기 때문이었다.
「주인니임! 주인님! 정신 챙기세염! 어떻게 된 게, 조담씨보다도 심한 거 같아요.」
-어, 그, 그건 아니지이! 난 그냥 잠시, 크흠! 어쨌든, 난 조담 녀석 정도는 아니었잖아, 임마!
「단순 비교하자면 그렇지만, 조건이 다르잖아요, 조건이! 조담씨는 저런 모습의 자룡대주의 자태를 처음 목격하는 거지만, 주인님은 그게
아니잖아요. 더구나 대교님은 지금 지난번에 주인님 부모님께 인사드릴 때 입으셨던 차림, 그대로시라구요! 어쩌면 매번 이렇게 잘도 정신 분실을 하시는 거죠?」
-그, 그야, 우리 대교는 뭘 입어도 매번 새로우니까, 커흐흠! 알긋다, 이제 정신 챙기마.
요몽의 발칙한 태클을 참고, 오히려 녀석 말에 따르게 된 것은, 녀석이 왜 이러는지를 알기 때문이었다. 나는 슬며시 맞은편 자리의 소교를 살폈는데, 녀석은 다행히 별다른 기색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교를 맞이하고 있었다.
「다시 봐도 불쌍한 울 소교님! 어쩌다가 울 주인님한테 꽂혀서, 매번 이렇게 가까이서 눈꼴신 모습을 봐야 하게 된 건지!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늘이 뭐 어째? 이 녀석, 한복 분위기라고 탄식도 사극스럽게한 건가?
-짜식이, 자꾸 그럴래? 소교 본인은 이제 마음을 거의 정리한 거 같은데, 네가 왜 더 설쳐대냐?」
「그게요, 주인님. 소교님은 넘 착해서 자기 맘도 잘 표현하지 못하시잖아요. 그러니 저라도 대신 나서 드려야죠. 이제부터라도 소교님 앞에서는, 염장 모드를 더 신경 써서 삼가주세염!」
-쳇. 알긋다. 알겠어, 임마.
나는 요몽의 시건방진 태도에도 계속 참아 줄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천년에 걸쳐 소교에게 지은 죄가 너무 큰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젠장맞을! 나도 억울해. 내가 소교를 일부로 유혹하거나 그런 것도 아닌데, 우째 소교처럼 슈퍼 아이돌급 소녀가 나한테 꽂혔을꼬? 이게 다 이 몸이 너무 잘나서,는, 절대로 아니겠고! 이건 혹시 소교에게 내려진 하늘의 형벌…? 소교가 천상에 있을 때 실수로 타임씨의 커피잔을 깨먹었다거나 하는 일 때문에 지상에서 나 같은 놈한테 반하는, 그런 끔직한 형벌을 받게 된, 에고, 이건 너무 자학성 생각인거 같네.
자학 흐름을 애써 멈추고 대교와 소교를 보았지만, 그녀들은 서로의 한복을 칭찬하며 돈독한 자매의 정을 나누고 있을 뿐, 나를 돌아 볼 기미는 없어 보였다. 대교가 내게 눈인사만 남기고 소교와 저러고 있는 것도 이해가 되어서, 나는 천천히 다른 이들의 상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가까이로는 천우신과 소령이 커플부터였다.
훗. 소령이 녀석, 이 녀석은 소위 ‘색동저고리로군. 너무 유아틱하긴 해도, 녀석 특유의 사랑스런 인형스러움이 배가 되어서 그런지, 내 친구
천우신의 혼을 빼놓기에는 충분한 거 같군. 보통은 소령이와 세트 메뉴인 미령이, 요 녀석은 천우신에게 언니를 양보하고 어디로, 아, 금동이 자리로 가있군.
미령이 역시 소령이와 비슷한 디자인의 색동저고리 차림인 듯 했으나, 자신의 불꽃 헤나를 의식해서인지, 붉은 색감이 더 중점이 된 것 같았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내게는 왠지, 천 년 전 ‘교아루’에서 뭍 사내들을 홀리던 ‘묘미미’ 버전인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훗. 그때와 달리, 지금은 인간이 아닌 요괴들의 테이블에서 요괴들을 홀리고 있는 분위기이니, 이상한 방향이긴 해도 어쨌든 나름 업그레이드를 한 셈인가?
약간 돌아서(?) 건너편 자리의 호크와 피비 커플을 보니, 이쪽도 자기들끼리 딴 세상에 빠져 다른 모두를 왕따시키는 분위기였다. 호크는 부활한 이후, 여러 가지 급한 일처리를 하느라 다소 소홀했던 연인에게 사죄라도 하는 양, 정말이지 열정적인 눈으로 피비만을 바라보고 있었고, 피비는 그런 연인의 뜨거운 눈빛을 무한 행복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 했다.
‘그냥 방 하나 내줄까?’라는 말이 입에서 맴돌지만 참자. 민망한 19금 대사라서이기 보다, 지금은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자신들의 시간을 방해하면, 당장 마력 만땅 살수를 날려 올 분위기라고 할까? 에고, 그러고 보니, 난 또 은따가 되어 버린 건가?
가까운 주변 커플들이 노골적으로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진 상태라면, 다른 전체 파티 참석자들은 아까까지와 달리, 거의 두 패로 나뉘어져 각 패별로 뭔가에 몰두해 있는 상태인 것 같았다.
「헤에~ 누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남녀로 나뉘어서 저러는 모습이 재밌네요.」
-훗. 그러게? 지금 남정네들은 대부분 ‘한복 아가씨들에게 홀려있는 거고, 여인네들은 대부분 ‘나도 저 신기하고 예쁜 한복을 입어보고 싶다!’가 되어있는 거지?
「넵! 그리고 우리 페트라 언니가 지금 열심히 ‘한복 체험 신청을 접수하고 있는데, 오늘 이 자리의 여인네들은 거의 열외가 없을 거 같네염!」
-끄음. 대교들의 한복, 그걸 이렇게 빨리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리치몬드 덕분이었다고?
「그러믄요. 리치몬드양이 망토 속에서 소환해준, ‘해골 마법 재단사’가 아니었으면, 어림도 없었습지용!」
정말이지 탐나는, 아니, 그건 아니고, 하여간 망토 구경하러, 아니, 이것도 아니고, 고마운 우리 리치몬드양에게 감사를 표하러 가봐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