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7권 20화 – 흡성대법을 익히고 싶어
흡성대법을 익히고 싶어
뭔가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아르티어스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시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봐, 뭐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말씀이야…….”
시녀는 공손히 대답했다.
“예, 하명하시옵소서.”
“너 혹시 흡성대법이라는 무공을 알고 있느냐?”
그 말에 시녀는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소녀는 미천하여 그런 뛰어난 무공을 익힐 수가 없사옵니다.”
아르티어스는 활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오오, 그 말은 알고는 있다는 거로구나. 그걸 어디에 가면 익힐 수가 있느냐?”
“소녀는 알지 못하옵니다. 하지만 한 번씩 여기 들르시는 냉비화녀 부대주님께 물어보시면 답을 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사옵니다.”
“그래? 너, 당장 가서 그 부대주를 데려오너라.”
잠시 후, 중년의 여인이 시녀의 안내를 받으며 실내로 들어왔다. 확실히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마나의 기운은 시녀와 격을 달리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아르티어스는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너 혹시 흡성대법이라는 무공을 알고 있느냐?”
아르티어스의 말에, 마화는 다소곳이 대답했다. 묵향이 아르티어스를 대할 때의 태도로 봤을 때, 그가 얼마나 아르티어스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묵 향에게 소중한 사람은 자신에게도 소중한 사람인 것이다.
““예.”
마화의 대답에 아르티어스는 반색을 하며 말했다. 그는 묵향의 전설에 대해 이야기꾼 노인에게 흡성대법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그것을 배우고 싶어 좀이 쑤 셨던 것이다.
“오오, 그래? 그거 어떻게 하면 익힐 수 있지?”
“아마, 마존무고(摩尊武庫)에 비급이 있을 겁니다. 없다면 수하들을 시켜 찾아보라고 이르겠습니다. 지금 필요하십니까?”
“응, 그래. 될 수 있으면 빨리 가져다주면 좋겠구먼.”
몇 시진 후, 아르티어스에게 시녀가 다가와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냉비화녀 부대주께서 이것을 전해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르티어스가 급히 받아서 보니 「흡성대법」이라고 표지에 쓰여 있었다.
아르티어스는 음흉스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흐흐흐, 바로 이거야. 이거라구.”
아르티어스는 열심히 탐독하기 시작했다.
“이걸 나도 써먹어야지. 아들놈도 할 수 있는데, 나라고 못할쏘냐!’하는 마음으로 그는 열심히 비급을 읽어 나갔다. 하지만 잠시 후 책을 집어던지며 신경질을 버럭 냈다.
“이런, 제기랄! 이게 도대체 뭔 소리들인지 당최 이해를 할 수가 있어야 익히던 말든 할 거 아냐!”
아르티어스는 시녀를 노려보며 외쳤다.
“도대체 그놈의 마존무고라는 데가 어디 있느냐?”
엄청난 광기를 드러내고 있는 아르티어스의 눈과 마주치자, 시녀는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교의 상위급 고수들도 자주 접해 봤지만, 이 정도로 자 신에게 위압감을 준 사람은 맹세코 단 한 번도 구경해 본 적이 없었다.
시녀는 재빨리 땅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처박은 후, 마존무고로 가는 방법을 아뢰었다.
한동안 묵향으로서는 바쁜 시간들이 지나갔다. 중원의 각 성(省)에 분타를 하나씩 설립하는 것만도 보통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 무림맹 쪽에서 마교의 확장 을 눈치 챈다면 방해 공작 내지는 정면충돌까지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기에 이 모든 일은 비밀리에 아주 조심스럽게 진행되었다.
마교가 활기차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중원 각지에 구축된 거점들과 주고받는 문서들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군사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사항들도 종 종 발생하고 있었기에, 묵향으로서도 바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르티어스도 그 나름대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오옷! 이런 기가 막힌 수련 방법이 있었다니!”
지금 그가 탐독하고 있는 비급은 흑시마조(黑屍魔爪)라는 마교가 자랑하는 최강의 조법이었다. 물론 아르티어스에게 이것이 조법이든 장법이든 뭐 그런 것은 관 심도 없었다.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오로지 그 엽기적인 수련 방법이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소의 뇌수에 손을 담근 후 익힌다고? 그런 다음, 2성 이상 익힌 상태에서는… 2성이라는 게 뭔 소리지? 하기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 넘어가고… 그러니까 그때부터는 시체를 이용해야 한다 그 말씀이군. 시체에 손을 박아 넣고 시독(屍毒)을 흡수한다……. 오! 이보다 더 흥미로운 수련법이 있다 는 소리는 내 들어 본 적이 없어. 정말 기가 막히군. 그러니까 수련을 하기에 가장 알맞은 장소는 시독이 풍부하게 함유된 반쯤 썩은 시체를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 는 공동묘지와 인접한 비밀스러운 장소다.”
성질 급한 아르티어스는 당장 흑시마조를 익히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비급을 들고는 대전으로 달려왔다.
아르티어스는 상기된 얼굴로 시녀에게 외쳤다.
“여봐랏!”
“옛!”
시녀가 달려 나오자 아르티어스는 다급히 외쳤다.
“소의 싱싱한 뇌수를 가져와라, 빨리!”
시녀가 달려간 후, 아르티어스는 싱글거리며 외쳤다. 그의 머리에는 자신의 단짝 친구 레드 드래곤 브로마네스가 떠오르고 있었다.
“으하하핫! 브로마네스여. 네놈이 아무리 까불어도 나를 따라오려면 한참 멀었다는 걸 나중에 돌아가서 가르쳐 주마. 내가 이렇게 기가 막힌 유희를 즐기고 있다 는 것을 알면 부러워서 죽으려 하겠지? 잠시만 기다리라구. 으흐흐흐.”
아르티어스는 이 순간, 이런 재미있는 유희를 즐긴 사실을 필히 고향에 돌아가서 모든 드래곤들에게 알려 줘야 할 사명감마저도 느꼈다. 이런 흥미진진한 유희를 들려주면 모든 드래곤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생각만 해도 어깨가 으쓱해지는 아르티어스였다.
이윽고 시녀가 뇌수를 가지고 왔다. 아르티어스는 뇌수 옆에다가 비급을 펴놓고는 비급의 내용을 힐끔거리며 수련을 시작했다.
“먼저 뇌수에 손을 박고…, 으흐윽! 물끄덩거리는 감촉이 그야말로 예술이구먼. 그런 다음 어디 보자..
헤벌쭉거리며 아르티어스가 비급의 뒷장을 넘겼을 때, 그의 안색이 흡사 똥이라도 씹은 듯 일그러졌다.
“도대체 이게 뭔 소리들이야?”
그 뒷장부터 복잡한 도식과 함께 말도 안 되는 복잡한 소리들이 쓰여 있었다.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안 가는 문구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무공비급이라는 것이 밖으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중요한 대목은 일부러 어려운 말로 함축해서 표현하거나 수많은 암호로 나열해 놨다.
그렇기에 스승으로부터 그 뜻을 해석받거나 전수받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아르티어스는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비급을 집어던지며 외쳤다.
“이런 젠장! 이것도 그 모양이잖아. 좀 더 쉬운 책은 없는 거야?”
아르티어스는 수건에 손을 쓱쓱 닦으며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손만 버렸군.”
하지만 무공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었던 아르티어스는 또다시 마존무고로 향하고 있었다. 자신의 취향에 걸맞은 뭔가 엽기적인 수련법이 기록되어 있으면서 도 손쉽게 익힐 수 있는 그런 비급을 찾아가는 것이리라.
마사코는 마교에 도착한 후, 그야말로 최상의 대접을 받고 있었다. 영주들이나 입는 최고급 비단옷이 몇 벌씩이나 주어졌다. 그리고 간소하면서도 맛있는 식사. 처 음 왔을 때는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았지만,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시녀에게 말하자 그다음부터는 그녀가 원하는 식으로 요리된 음식이 나왔다. 그리고 모든 사람 이 그녀에게 친절하기 그지없었다.
마사코는 시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목욕을 끝냈다. 그녀가 목욕을 마치고 나왔을 때, 깨끗한 새 옷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주 단순한 형태의 옷이기는 했지만, 비단 으로 만든 것이어서 감촉이 너무나도 좋았다.
식사와 차를 즐긴 후 그녀는 언제나 대전 뒤에 만들어진 후원을 산책하기를 즐겼다. 처음 그녀가 후원으로 나왔을 때, 그 규모에 놀라움을 감추기 힘들었다. 야마 토의 정원은 아주 작고 아기자기한 맛을 풍긴다. 하지만 이곳은 대국답게 그 엄청난 규모로 사람을 압도하는 것이다.
그날 마사코가 정원을 산책하고 있을 때, 뒤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마사코가 뒤로 시선을 돌리자, 중년 여인이 미소 띤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 는 게 보였다.
“안녕하세요?”
중년 여인은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입을 열었다.
“이곳은 교주님을 위한 정원이에요. 참 아름답죠?”
“예.”
“그분이 실종되신 후, 설무지 군사께서 만드신 거죠. 여기가 본교 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일 거예요.”
“정말 아름다운 곳이네요.”
중년여인은 잠시 아무 말이 없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말을 들어 보니 당신은 한족이 아니군요. 고향을 떠나 이 먼 곳까지 왜 그분을 따라오신 건가요?”
“주군을 따라가야 하는 것은 가신(家臣)의 의무라고 배웠습니다.”
“물론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걸 그분께서 원하셨을까요? 그분은 오랫동안 먼 곳을 떠돌아다니셨던 분이에요.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떠도는 자의 고통을 알 고 계신 분이시죠. 아마 그분께서는 따라오지 말라고 하셨을 게 분명한데, 왜 따라온 거죠?”
마사코는 대답하지 않았다. 밀무역을 원했던 후지와라 영주님의 명령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교주와 친분이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지 만, 그것만으로 이런 중요한 비밀을 털어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뭐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상대의 말이 들려왔다.
“설마, 그분에게 연정을 품었기에 따라온 것은 아니겠죠?”
그 말에 마사코는 문득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아아, 이 여인이 교주의 부인이거나 아니면 첩인 모양이야. 그렇다면 당연히 내가 달가울 리 없겠지. 그래서 나한테 왜 따라온 거냐고 물은 거였군.’
여인의 질투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괜히 적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느낀 마사코는 황급히 말했다.
“그건 당신이 오해하고 계신 거예요. 저는 절대로 그분을 사랑하지 않아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강한 부정은 오히려 긍정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마사코는 미처 하지 못했다. 기를 쓰고 부인하는 마사코를 잠시 바라보던 상대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분은 사람이 아니라 묵룡(墨龍)이십니다. 여인이 사랑할 대상이 아니에요. 조금이라도 연정을 품고 있다면 버리는 것이 좋을 거예요.”
그 순간 마사코의 머릿속에는 별의별 생각이 교차했다. 인간이라는 생각이 도저히 들지 않을 정도로 묵향은 강했다. 게다가 겉모습까지도 자유자재로 바꾸지 않는 가. 아르티어스만 황금빛 나는 괴물인 줄 알았는데, 이 여인의 말을 듣고 보니 묵향도 괴물인 모양이다. 그것도 묵룡이라니.
마사코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버렸다. 공포스러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왔다 갔다 하는 영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에, 마사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 다. 하지만 상대는 그녀의 침묵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즉, 그것을 묵향을 사랑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한동안 가만히 마사코를 바라보던 상대는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다. 그러면서 그녀는 마사코에게 중얼거렸다.
“당신은 너무나도 험난한 길을 택했군요. 그 선택에 후회가 없기를 바라요.”
이윽고 정신을 차린 마사코는 뒤돌아서서 걸어가는 상대를 향해 황급히 말했다.
“잠, 잠깐만요.”
상대는 슬쩍 뒤로 돌아서며 말했다.
“무슨 일이지요?”
“저…, 어떻게 그런 일을 잘 알고 계시죠? 그러고 보니, 당신은 교주님과 아주 친하신 것 같더군요. 혹시,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실 수는 없을까요? 서로 친하게 지 내고 싶어요.”
상대는 살포시 미소 지으며 중얼거렸다.
“나는 마화라고 해요.”
“아아, 그러십니까? 저는 마사코라고 합니다. 당신은 그분이 묵룡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시는 모양이군요. 너무나도 존경스러워요.”
용과 사람의 사랑이라니……. 마사코는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기에, 그녀는 존경스럽다고 말하며 슬쩍 넘겨 버린 것이다. 마화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사랑이라구요? 어떻게 사랑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겠어요. 사랑이라는 것은 둘이서 하는 거예요. 나는 그분을 40년 가깝게 흠모해 왔을 뿐이에요.”
40년이라는 말에 마사코의 눈이 더욱 휘둥그레졌다.
“그분이 옆에 계시다는 것, 또 나를 여전히 아껴 주신다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려고 노력하죠.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런 고통을 당하는 것은 나 하나로 족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말을 했던 거였어요. 그분은 그 어디에도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시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그분의 필요 여하에 따라 존재감을 부 여받아요. 그런 상황에서 사랑이란 감정은 너무나도 사치스러운 거예요. 사랑은 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거든요.”
마화의 말에서 마사코는 깊은 슬픔을 느꼈다.
“당신은 묵룡과 너무나도 가슴 아픈 사랑을 하고 있었군요.”
묵향은 밀실로 은밀히 군사를 불러들였다. 밀실 중앙에는 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커다란 중원 지도가 놓여 있었다. 군사가 들어와 예를 갖춘 후, 묵향은 군 사에게 자신의 계획을 털어놨다.
“군사.”
“예.”
“배를 타고 서쪽으로 이동했더니 강소성에 도착했다면, 어디서 출발하면 그렇게 되겠는가? 자기들은 야마토라고 하던데, 나로서는 확실한 지명을 알지 못하겠 다.”
잠시 궁리를 하던 군사는 이윽고 자신의 생각을 묵향에게 말했다.
“강소성에서 동쪽이라면 왜국이나 고려일 것입니다.”
“자기들 말로는 야마토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아마 왜국이 맞을 겁니다. 저도 고려 말을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만, 고려를 야마토라고는 읽지 않습니다.”
“왜국이라고? 흐음…….”
잠시 생각에 잠겼던 묵향은 지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국과 무역을 하려면 어디쯤에다가 비밀 분타를 설립하는 것이 좋을까?”
“왜국과 말씀이십니까? 무역을 시작하시겠다면 당연히 고려의 벽란도와 가까운 산동성(山東省)이 좋겠죠.”
그 말에 묵향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왜국과 거래를 하는데, 어째서 고려의 벽란도하고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아야 하나?”
군사는 당연하다는 듯한 어조로 설명했다.
“그거야, 왜국과의 직거래가 불가능하니 그렇습니다. 모든 물품을 고려 상인에게 팔면 되는데, 그들이 1년에 수입하는 물량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워낙 이문 이 큰 장사인지라 대상(大商)들이 그 물량을 독점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 시장을 파고들기는 아주 힘들 겁니다. 그렇다고 무력을 동원하려고 한다면 그들의 뒤를 봐 주고 있는 무림맹과 충돌을 일으킬..
설명이 길어지자 묵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퉁명스레 말했다.
“아아, 본좌는 관허 무역이 아니라 밀·무·역을 하자는 말일세. 중개 무역을 하는 고려를 통하지 않으니까 이문은 더욱 커질 게 아닌가?”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 일대의 제해권은 고려 수군이 잡고 있기에, 밀무역은 너무 어렵습니다.”
“그거야 방법이 있을 거 아닌가? 예를 들면, 본국의 수군으로 가장을 한다든지..
“물론 최선을 다한다면 수군을 피해 가는 것도 큰 문제는 안 될 겁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저희들과 교역을 할 대명(大名)을 찾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군사의 말에 묵향은 어리둥절한 듯 되물었다.
“대명? 대명이 뭔가?”
“그러니까 우리 쪽 말로 하자면 지방 영주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 말에 묵향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아아, 다이묘 말이군.”
묵향의 말에 군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이묘라니요? 혹시 그게 왜국 말입니까?”
“그건 알 필요 없지 않은가?”
“옛, 그러니까 우선 우리와의 밀무역을 원하는 대명을 포섭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국에서도 밀무역은 철저히 단속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서 이쪽에서 왜국으로 사람을 보내어 밀무역을 원하는 대명을 무슨 수로 찾겠습니까? 거기에다가 왜놈들은 우리 쪽과 삶의 방식이 너무나도 달라서, 협상 자체가 매우 힘듭니다. 만약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누구나 밀무역을 했겠지요.”
“그건 다 본좌가 알아서 처리해 주겠네. 자네는 밀무역을 할 비밀 분타나 설립할 계획을 짜 보게. 자네 생각에는 어디에다가 설립하는 게 좋겠나?”
“밀무역을 원하신다면 당연히 절강성(浙江省쪽이 좋습니다.
“그래?”
“예, 고려와 본국의 무역은 산동성에서 고려의 벽란도를 축으로 이뤄집니다. 또 고려와 왜국과의 무역은 고려의 벽란도에서 왜국의 복강福岡 : 후쿠오카)을 축으 로 이뤄집니다. 이 삼국을 연결하는 주요 무역로를 보호하기 위해 각국의 병선(兵船)들이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있죠. 그런 만큼 무역로와 인접한 강소성(江蘇省)도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거리가 좀 떨어지더라도 절강성 쪽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고 사료됩니다. 또 고려 쪽에서 거리가 많이 떨어지게 되기에 고려 수군의 순시선(巡視船)을 만나게 될 가능성도 거의 없고 말입니다.”
“좋아. 그럼 절강성 쪽에 비밀 분타를 한번 설립해 보게.”
“옛.”
“최대한 기밀을 요해야 하는 만큼, 자성만마대에서 무사들을 뽑아다가 배치하도록.”
“존명.”
마교의 현재 상황에 대해 수하들과 장시간의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묵향에게 아르티어스가 다짜고짜 짜증 어린 어조로 질책했다.
“아니, 네가 이럴 수가 있는 거냐?”
“뭐가 말이에요.”
“고생고생해서 여기까지 데려다 줬더니 그 이후부터 애비를 홀대해? 요즘 네 얼굴 구경한 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알기나 하냐?”
지금 아르티어스는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상태였다. 아들놈은 바쁘다고 놀아 주지도 않고, 또 무공을 익힌다는 계획도 영 결과가 신통찮았다. 가장 중요 한 부분에서 뭔 소린지 알 수가 없으니 배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잔뜩 욕구 불만이 쌓인 아르티어스가 사랑하는 묵향을 통해 위안을 받고자 찾아온 것이었다.
짜증스럽게 말을 하고는 있었지만, 이것도 다 아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기 위한 방법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 묵향이 살뜰한 말 한마디만 해 줘도 그의 짜증은 순식간에 풀릴 테니 말이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아르티어스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린 것이었다.
“심심하신 모양이죠? 옛날처럼 일거리를 좀 드릴까요? 아버지 일 잘하시잖아요.”
돌아온 묵향의 대답은 퉁명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예전에 예쁜 여자 애의 모습일 때는 그것도 하나의 매력으로 봐줄 수 있었다. 하지만 시커먼 사내놈 모습을 하고 있는 지금은 더욱 아르티어스를 짜증스럽게 만들 뿐이었다.
아르티어스는 도저히 참지 못하겠는지 노성을 터뜨렸다.
“뭣이? 이 녀석이 나를 뭐로 생각하는 거야?”
“뭐긴 뭐예요, 아버지지. 시녀도 붙여 드렸으니 지금까지처럼 혼자서 노시면 되잖아요. 내가 부하들한테 물으니 무공을 익히신다고 여념이 없으시다면서요. 왜요, 무공 익히는 게 잘 안 되세요?”
갑자기 묵향이 아르티어스가 가장 찝찝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공격해 들어오자, 아르티어스는 움찔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아르티어스는 버럭 신경질을 냈다. 지금 까지 단 하나의 무공도 익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무척 자존심이 상해 있기도 했지만, 그런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이 애비를 뭐로 보고 그딴 소리를 하는 거냐? 골드 드래곤의 역사상 불가능이란 없다는 것을 모르냐? 조금만 기다려 봐. 내가 그놈의 무공이라는 걸 익혀서 보여 줄 테니까 말이야.”
아르티어스는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가 버렸다.
“에구, 단순하기 그지없기는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군. 아무리 익혀 보세요. 무공 익히기가 어디 쉬운 일인지……. 게다가 동기가 그렇게 불순해서야 아버지가 그딴 마공들을 익히시게 제가 가만히 놔둘 것 같아요.”
아직까지도 아르티어스가 무공을 배우지 못하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수하들의 얘기를 들어 보니, 아르티어스가 찾는 무공은 그야말로 엽기적인 마공들뿐이 었다.
중원에 도착해서 아르티어스가 떠든 말들을 기억하고 있던 묵향은 그것을 좌시할 수 없었다. 아르티어스가 그걸 익히면 분명히 그 무공의 위력을 시험해 보기 위 해 중원을 떠돌 것이 분명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것만은 막아야 하는 것이다. 묵향은 지체 없이 수하들에게 엄명을 내렸었다.
“아버지가 비급을 확보하도록 최대한 협조를 아끼지 마라. 단, 그것을 익히는 방법은 절대로 알려 주지 마라.”
교주의 명령은 수하들에 의해 성실하게 이행되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