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이드 – 160화


“저 자식은 잠이란 잠은 혼자 코까지 골아가면서 자놓고는….. 누가 들으면 비행기 타고 저 혼자 생고생 한 줄 알겠군. 하….”

그러는 사이 일행을 태운 낡은 트럭이 비포장 도로를 향해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덜컹… 덜컹덜컹…..

“꺄악…. 아우, 아파라…. 이러다간 그 무슨 석부에 들어가 보기도 전에 지쳐서 뻗어 버리겠어. 씨이…. 도대체 숙소까지 얼마나 더 가야 되는 거예요?”

비포장된 도로의 그 울퉁불퉁함과, 그로 인한 충격을 전혀 흡수하지 못하는 고물 트럭의 덜컹거림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 신우영이 아픈 엉덩이를 살살 얼르며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딱히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숙소의 위치를 모르는 데다 알고 있는 한 사람인 남손영도 주위가 깜깜한 밤 시간인 덕분에 전혀 거리를 재지 못했던 것이다. 그사이 엉덩이를 얼르던 신우영은 다시 한번 튀어 오르는 차에 부딪혀야 했는데, 그 옆에서 트럭의 쇠기둥과 딘의 한 쪽 팔을 동시에 잡고 있던 세이아가 그 모습에 사뭇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자신 역시 잡고 있는 두 손 중 하나라도 놓치게 되면 곧 장 신우영과 같은 상황이 될 것이기에 쉽게 도와주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지금 트럭을 타고 있는 세 명 여성들의 공통된 상황이었다.

세 명, 원래는 네 명이었는데, 어째서 세 명인가.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들과 같은 어려움을 아니, 어쩌면 그녀들보다 더욱 충격에 힘들어했어야 할 라미아가 마치 편안한 침대에 누운 듯한 지극히 편안한 모습으로 천화의 품에 안겨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라미아가 천화의 품에 안긴 것은 거의 차가 출발할 때쯤으로 상당히 오래 되었다. 차가 출발할 때를 시작으로 조금만 덜컹거려도 기우뚱거리는 라미아의 모습에 상당한 불안감을 느낀 천화가 아예 라미아를 자신의 품 안에 답싹 안아 버린 것이었다. 물론, 그 순간 주위의 시선이 한 순간 야릇하게 빛나며 모여들긴 했지만 곧 상황을 이해하고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라미아는 천화와 같이 느긋하게 주위를 둘러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뭐, 그러는 중에도 트럭이 끝없이 덜컹거리긴 했지만 천근추(千斤錘)의 수법으로 몸을 고정시키고, 유수행엽(流水行葉)의 신법으로 트럭의 충격을 부드럽게 흡수해 흘려버리는 천화에게는 전혀 상관이 없는 상황이었다. 어쨌든 나머지 세 명의 여성에겐 상당히 부러운 장면일 뿐이었다.

그때 트럭이 다시 한번 크게 덜컹거렸고, 신우영의 얼굴은 다시 한번 보기 싫게 찌푸려졌다. 그 모습이 안 되어 보였는지 남손영이 저 멀리를 내다보고는 다시 신우영을 바라보았다.

“쯧쯧…. 그러게 제대로 좀 잡고 있지. 조금만 참아봐. 지금까지 달려온 시간으로 봐서는 산 아래 마련된 숙소까지 얼마 남지 않았을 꺼야…. 아마도….”

하지만 그 말은 지금의 신우영에겐 전혀 도움이 돼지 못했다. 그녀에겐 지금 당장이 문제였던 것이다. 더구나 뒷말을 흐리는 남손영의 말은 전혀 신뢰감이 들지 않는 신우영이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뛰어 오르는 트럭의 바닥을 바라보며 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것에 대한 결론을 내린 얼굴로 주위를 휘 둘러보고는 천화와 라미아에게 그 시선을 멈추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트럭의 덜컹거림이 멎는 한 순간. 지금까지 트럭의 움직임에 정신차리지 못하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재빠른 동작으로 천화에게 몸을 내던진 것이었다. 정말 앗! 하는 한 순간의 일이라 모두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표정은 신우영을 품에 안아 버린 천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얼떨결에 날아드는 신우영을 반사적으로 안아 들긴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에게 그런 표정을 자아낸 장본인은 그다지 넓다고 할 수 없는 천화의 품에 안겨 상당히 만족스런, 배불리 배를 채운 고양이와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라미아가 처음부터 편안한 표정을 지었던 게 이해가 가는걸. 조금 비좁긴 하지만 너무 편안하다. 전혀 트럭을 타고 있다는 느낌이 안 들어….. 라미아, 미안하지만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만 같이 사용하자 알았지?”

“에…. 그, 그런 게….”

전혀 어색함 없이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신우영의 말에 라미아는 멍해 있던 표정을 지우고 황당한 표정과 싫은 표정을 떠올리며 급히 대답을 하려 했지만 그녀의 의지와는 달리 말을 쉽게 이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신우영은 허락이라도 받은 듯 고마워 라고 인사하고는 눈을 살짝 감고 편안하게 천화에게 기대어 버렸다. 지금까지 이리저리 흔들리느라 꽤나 힘들었으리라. 신우영의 그런 모습에 뭐라고 말을 하려던 라미아는 흐지부지 되어 버린 상황에 허탈한 웃음을 흘려 버렸다.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로 황당함과 부러움—남성들은 두 명의 미인을 안고 있는 천화에게, 여성들은 편안한 표정으로 안긴 신우영의 모습에—을 썩어 헛웃음으로 흘려버렸다. 그러나… 정작 신우영을 안고 있는 천화의 상황은 또 달랐다. 안기던 업히던 전혀 거부감이 없는 라미아와는 달리 별다른 신체적 접촉이 없었던 신우영을 안게 되자 기분이 묘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차가 달린지 다시 15분. 일행들의 눈에 웅장한 산세 아래 자리잡은 자그마한 촌락이 눈에 들어왔다. 이어지는 메른의 고함이 아니더라도 그곳이 일행들의 목적지임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 촌락은 다른 곳의 촌락이나 마을보다 작았는데, 외지에 따라 떨어져 형성되어진 때문인 듯 했다.

“저곳이 바로 평선촌(平宣村)입니다!!! 임시 가디언 본부가 자리한 곳이지요. 그리고 그 뒤의 산이 던젼이 발견된 평정산(平頂山)입니다!!!”

메른의 목소리의 강약을 그대로 따라서 해석하는 딘이었다. 그리고 금새 마을 앞에 도착한 트럭은 마을 입구 부분에 세워졌다. 그 곳에는 일행들이 타고 온 트럭 이외에 한 대의 트럭이 더 서있었다. 트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트럭의 시동이 꺼지고 운전석의 두 사람을 시작으로 한 사람씩 차에서 내려서기 시작했다. 한 사람, 두 사람…. 이태영은 자신의 일행들이 차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을 보다가 이상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다른 일행들과는 달리 내릴 생각이 없는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뚱뚱한 그림자.

“이상하네…. 팽두숙 형님이 빠져서 일행 중에 저렇게 뚱뚱한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데…. 누구야? 안 내리고 거기 서 있는 사람이…. 천화잖아. 거기다….. 라미아하고…. 우영이?”

이태영은 천화의 품에 안긴 두 사람. 특히 신우영의 모습에 생각도 못한 걸 본 사람처럼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알기로 신우영이란 여자는 저렇게 다른 사람의 품에 안기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 지금의 상황을 십여 분간 보아온 덕분에 익숙해진 남손영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트럭 위의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은 다 내렸는데, 그 세 사람만 꿈쩍도 하고 있지 않은 것이었다.

“야! 안 내려오고 뭐해? 여기가 너희들 안방인 줄 아는 거냐?”

“……..”

“뭐야? 왜 아무 대답이 없어?”

남손영 등은 그의 말에 아무도 대답이 없자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 거렸다. 특히 신우영은 이런 말을 들으면 뭐라고 반발을 했어야 했는데….. 그때 그런 그들의 귀로 천화의 조용조용한, 무언가 조심하는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저기….. 두 사람 다 잠….. 들었는데요.”

“……”

순간 천화의 말을 들은 일행들은 일제히 황당하다는 기분을 넘어서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천화에게 안겨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까 신우영이 안기면서 편하다느니, 트럭에 탄 것 같지 않다느니 하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렇다고 잠들어 버리다니.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이 상황에 한국어를 어리둥절해 하는 메른을 제외한 모든 일행이 원래 그러기로 했다는 식으로 일제히 돌아서 마을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런 일행들의 모습에 뭔가 해결책을 바라던 천화가 당황한 표정으로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그보다 남손영의 말이 먼저 이어졌다.

“쯧쯧…. 어쩌겠냐? 우리라고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쨌든 두 사람 다 네가 재웠으니까. 네가 알아서 해. 우린 먼저 가서 기다리지.”

“그……… 크윽….”

남손영의 말을 듣고 있던 천화는 순간적으로 뭔가 확 올라오는 느낌에 뭐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막상 소리치려는 그 순간 품 안에 안겨 곤히 잠든 두 사람의 모습에 작은 침음성을 발하며 입을 닫아야만 했다.

한편 메른은 이태영에게 끌려가며 한가득 아쉬움과 부러움이 섞인 눈으로 천화와 그 품에 안겨 잠든 라미아를 바라보았다. 딘으로부터 대충의 상황 설명을 듣긴 했지만 솔직한 그의 심정으로 잠든 두 사람을 깨우거나, 두 사람 중 한 사람 – 라미아를 자신이 안고 갔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저런 아름다운 미인이라니….. 솔직히 메른이 지금까지 사귄 여자가 몇 명 있었지만 저렇게 아름답고 호감이 가는 여성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접근해 보고 싶었는데… 그런데 그런 여성이 지금 다른 남자의 품에 잠들어 있으니…. 비록 그 상대가 친한 팀 동료라지만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의 상황이 이런 걸. 괜히 지금 나서봐야 이상한 시선만 받을 뿐이란 생각에 메른은 다시 한번 라미아를 바라보고 일행들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빨리 천화와 라미아의 관계를 설명해줘야겠다고 생각하는 이태영이 따르고 있었다.

천화는 일행들이 마을 입구로 들어서는 모습을 바라보며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제일 먼저 깨우려고도 해봤지만, 곤하게 너무나도 편안하게 잠든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별수 없지. 조심조심 안고 가는 수밖에….. 원래 이런데 쓰는 게 아닌데… 부운귀령보….”

스스스스…..

웅얼거리는 듯한 천화의 목소리와 함께 천근추를 풀고 부운귀령보를 시전한 천화의 신형이 허공에 뜬 구름을 탄 것처럼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가며 저기 있는 일행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러는 중에도 유수행엽의 신법을 시전하고 있었기에 천화 품 안의 두 사람은 여전히 그 편안함을 맛보고 있었다.

“휴~ 그나저나 라미아는 이해가 가지만…. 이 누님은 어째 익숙하지도 않은 사람한테 안겨서 이렇게 잘 자는 건지…. 앞날이 걱정된다. 정말….”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