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179화
더구나 지도에도 숲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았다.
“… 그게… 지도에도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아서요. 그런데…. 저희 목적지에 대해서는 왜 물으시는 거죠?”
금세 부끄러움을 지워 버린 이드가 남자를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물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갑작스레 일행들의 목적지를 물어오니 당연한 일이었다. 비록 그 상대의 인상이 아무리 좋다 해도 말이다. 아니, 오히려 그런 사람일수록 더욱더 무서워질 수도 있고 잔인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강호와 그레센에서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는 이드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남자의 말에 이드는 경계의 눈초리를 스르르 풀고 말았다. 상대는 전혀 경계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 나쁜 뜻은 없으니까 그런 눈으로 쳐다볼 건 없고, 내가 묻는 건 안내자가 필요하지 않는가 해서 말이야.”
갑작스런 그의 말에 세 사람이 그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멀뚱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남자는 뭔가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려는지 반쯤 돌아앉은 몸을 완전히 돌려 이드들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손에는 원래 마시고 있었던 듯한 커다란 맥주잔이 들려 있었는데, 그 안으로 반 정도밖에 남지 않은 황금빛 맥주가 찰랑이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덕분에 이야기를 들었는데, 미랜드 숲을 찾아가는데 초행길인 것 같아서 안내자가 필요 없나 해서 말이지. 지도에 잘 표시돼 있긴 한데, 막상 찾아가면 잘 찾을 수 없는 숲이라서 말이야…”
“그래서….. 안내해 주시겠다구요?”
“아아… 뭐, 그런 거지. 거기에 좀 더 하자면 호위까지 같이해서 말이야. 몬스터가 언제 어디서 공격해 올지도 모르고… 특히 숲에 가까워질수록 몬스터가 더 자주 공격해 오거든. 혼자서 무턱대고 가기엔 상당히 살벌한 곳이니까 말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며 슬쩍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자신의 등 뒤에 있는 테이블을 가리켜 보였다. 그 테이블엔 이 남자의 동료로 보이는 삼남 일녀가 앉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덩치 좋은 세 남자와 화려한 금발의 조금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의 여성. 모두 실력이 좋아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이드는 그들의 모습과 자세에서 본능적으로 그들의 대략적인 실력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네 명 모두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특히, 그중 금발 여성의 실력은 눈앞의 이 사내를 제외하고 가장 뛰어나 보였다.
‘이런 실력들을 가지고 호위와 안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라….’
이드는 경운석부의 일로 만나게 된 브렌과 밀레니아를 떠올렸다.
“상당히 뛰어나 보이는 동료분들이네요. 그런데, 그런 실력으로 이런 말을 하시는 걸 보면… 용병?”
빙긋.
이드의 말에 사내는 긍정의 표시로 빙긋 웃어 보였다. 사실 그것 말고는 다른 특별한 것도 없었다. 용병이 아닌 바에야 어떤 사람이 이런 식으로 접근하겠는가.
“그런데 왜 저희들의 의뢰를 받으시려는 건데요? 여러분 정도의 실력이면…. 우리들보다 훨씬 좋은 보수를 낼 사람이 많을 듯한데요.”
순간 이드의 말에 사내의 눈이 의외라는 빛을 띄었다. 지금까지 가디언들이 아니고선 자신들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한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헌데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예쁘장한 소년이 자신들의 실력을 논했다?
조금 전 이드가 ‘뛰어나 보이는 동료분들…’이라는 말을 쓰긴 했지만 그땐 그냥 으례하는 말이려니 하고 지나쳤던 그였다. 헌데 그것이 자신들의 실력을 파악하고 한 말이라니.
사내는 눈앞에 있는 이 어린 여행자들을 다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 상당히 눈썰미가 좋은데? 우리 팀원의 실력을 알아보다니 말이야. 사실 자네 말이 맞긴 해. 자화자찬 격이긴 하지만 우리들의 실력을 꽤나 소문이 나 있긴 하지.”
사내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들은 ‘디처’라는 팀명으로 이곳뿐 아니라 그 주변 넓은 지역에 그 이름이 꽤나 알려져 있었다. 이곳의 위치가 위치이다 보니,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만큼 호위를 하는 용병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그런 덕분에 용병들의 실력이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평가되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용병팀이 바로 ‘디처’였던 것이다.
덕분에 그들의 몸값은 최상급에 속했다. 분명 그런 그들이 이드들의 호위를 자청한다는 것은 누가 생각해도 이상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디처’에게도 이드들의 호위를 자청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들의 휴식이 그 이유였다.
몰려드는 의뢰 속에 재충전을 위해 휴식을 취했던 그들은 이틀 전에서야 다시 용병일을 시작한 것이었다. 얼마간의 휴식으로 몸이 굳은 그들은 어려운 일보다는 가볍게 몸을 풀 수 있는 일을 찾았고, 때마침 이드 일행이 그들의 눈에 든 것이었다.
세 명이라는 많지 않은 일행에 미랜드 숲이라는 멀지 않은 목적지. 바로 그들이 찾던 일거리였던 것이다.
“…. 게다가 나이 어린 여행자들이 가기엔 좀 위험한 곳이라 신경을 쓴 거였는데. 그런데 우리가 잘못 본 모양이야. 우리 팀의 실력을 알아보는 자넬 몰라봤다니. 어때? 호위는 몰라도…. 안내자. 필요한가?”
대충 짐작한다는 그의 말에 이드는 정중히 거절했다.
이드의 말에 사내는 그럴 줄 알았는지 쉽게 물러났다. 사실 걸어서 간다면 이드도 안내자가 있는 편이 편하다. 하지만 이드와 라미아로선 그렇게 느긋하게 걸을 생각이 없었다. 오늘 오후처럼 제이나노를 안고서 빠르게 이동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안내자는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다. 더구나 날아가는 상황에서라면 숲을 찾지 못할 이유가 없다.
얼마 후 잠시 더 의견을 나눈 이드들은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다음날.
이드는 여관 밖의 시끌시끌한 웅성임에 좀 더 침대의 편안함을 만끽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일단의 상인들이 서둘러 출발하기 위해 이런저런 짐을 꾸리고 있던 덕분이었다. 하지만 굳이 불평을 늘어놓거나 하진 않았다. 자신들 역시 일찍 출발할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두 사람을 깨운 이드는 간단히 세수를 마치고 세 명분의 도시락과 아침을 주문했다.
이드는 서둘러 출발해서 목표한 지점까지 여유 있게 도착할 생각이었다. 도착 지점에 마을이 없는 관계로 노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빨리 도착하면 할수록 좋은 잠자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드의 그런 생각은 그들이 여관을 나서며 마주친 한 인물에 의해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제 이드들에게 말을 걸어왔던 남자. 바로 그가 척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대형검을 등에 매고 일행들을 향해 손을 번쩍 들어 보인 것이었다.
“여, 벌써 출발하는 모양이지?”
그런 그의 뒤로는 디처의 나머지 팀원들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 모두 어제의 가벼운 모습과는 달리 각자의 무기로 보이는 물건들을 매거나 들고 서 있었다.
이드들은 그들과 앞의 남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 빨리 도착해서 쉬는 게 편할 것 같아서요. 그런데….. 에…. 아저씨… 찾던 일거리를 구한 모양이네요.”
남자의 이름을 몰라 아저씨라고 말하려던 이드는 그 말이 완성됨에 따라 구겨지는 그의 인상에 급히 말을 삼키고는 급히 뒷말을 이었다.
그들의 모습이나 그 뒤로 보이는 상인들의 모습. 아마 저 상인들이 이번에 디처를 고용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아침 일찍 이드들의 자명종 역할을 해준 상인도 저들일 것이고….
그런 이드의 생각이 맞았는지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급하게 부탁을 하길래. 원래 저 사람들을 호위하기로 한 용병들이 있긴 한데, 일이 좀 틀어진 모양이야. 급하게 호위할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해서 말이야.”
“네….”
과연 그의 말대로 상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상당히 분주해 보였다.
그때 남자가 다시 무언가 말하려는 듯한 모습에 이드는 다시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우리도 지금 출발할 생각인데… 어때? 자네들도 우리들과 동행하는 게. 이 정도의 인원이면 몬스터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거든. 게다가 느리긴 하지만 저 트랙터가 끄는 화물차를 타고 갈 거라서 걷는 것보다 편하고 빠를 거야.”
하지만 이번에도 이드는 미안한 표정으로 정중히 그의 제의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호의를 가지고 제의한 것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엘프를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차를 타지 않고 걸어왔는데, 여기서 다시 차 신세를 질 순 없었다.
“죄송하지만 저희끼리 가겠습니다. 호의를 가지고 말해주신 건 고맙지만, 저희들도 사정이 있거든요.”
“음… 같이 가면 편할 텐데. 우리도 그 쪽 사제 도움을 받을지도 모르고 말이야. 뭐, 사정이 있다는데 할 수 없지. 그럼 미랜드 숲까지 무사히 가게나.”
그는 그 말과 함께 돌아서 자신의 일행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이드가 그 모습을 보고 라미아와 제이나노와 함께 막 출발하려 할 때였다.
저기 걸어가고 있던 남자의 목소리가 일행들의 귓가를 때린 것이었다.
“아, 참! 내가 아직 내 이름도 말하지 않았구만. 내 이름은 하거스. 하거스 란셀이라고 하지. 그럼 인연되면 또 보자고.”
골목 구석구석을 울리는 듯한 그의 목소리에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피식 웃어 버렸다.
그러고 보니 서로의 이름도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러고도 이야기가 잘도 오간 것을 생각하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