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이드 – 188화


“호~ 그럼 내가 청령신한공을 제대로 익히고 있다면 널 어떻게 평가하던지 그에 따른다는 말인가?”

이드는 하거스가 비켜나자 다시 오엘에게 비꼬듯이 말했다.

지금 자신의 말은 방금 전 흥분해서 소리친 오엘의 말을 조금 변형한 것이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기에 그녀는 아니라고 하지 못 할 것이다.

과연 이드의 생각대로 오엘이 뭐 씹은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드는 그녀의 모습에 만족스런 미소를 머금으며 자신의 허리에 걸린 일라이져를 꺼내 들었다.

사르릉 거리는 맑은 소리와 함께 빠져 나온 아름다운 은빛 검신과 여태껏 이드의 옷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아름다운 검집이 주위의 시선을 모았다.

그 아름다움엔 화가 날 대로 난 오엘까지 상황을 잊고 황홀한 듯이 바라보게 만들 정도였다.

일라이져에 모여드는 시선을 부드럽게 검을 휘돌리며 떨궈낸 이드가 슬쩍 사람들의 앞으로 나서며 오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뭔가 의미심장해 보이는 그 시선에 오엘은 가슴 한쪽이 뜨끔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앞에 오간 말들을 생각해 보면 확실히 상대는 자신보다 청령신한공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있을지 모른다.

특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드의 누님이 청령신한공을 익혔다고 했다.

그렇다면 만에 하나 이드가 청령신한공을 익히고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청령신한공이 일인단맥의 무공이긴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중국과 영국 양국으로 나누어져 이어져 오지 않았던가.

만약 자신의 생각대로 이드가 청령신한공을 익히고 있고 그것이 자신이 펼치는 것보다 더욱 강하다면….

‘설마…. 아닐 거야. 만약 본인이 익혔다면, 날 보는 순간 바로 알아봤을 거야.’

오엘은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었는지 내심 이유를 들어가며 강하게 부인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은 앞서 들었던 모욕을 그대로 감수하고, 저 나이도 어린 이드라는 소년을 사숙으로 모셔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기대와는 상관없이 방금 전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나선 이드는 어떤 것을 펼쳐 보여야 저 오엘을 한 번에 승복시킬 수 있을까 하고 생각 중이었다.

옥빙 누님에게서 전수받은 무공은 모두 네 가지였다.

보법 한 가지와 각각 공격과 방어의 묘미를 가진 이 초(二招)의 검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호환법(淏換法)이라는 강호 여 고수들의 미용법.

‘지금 생각해 보면, 보법과 이 초의 검법은 호환법을 익히게 하려고 일부러 넣은 것 같단 말이야.’

이드는 갑자기 떠오르는 누님들의 장난기 어린 행동에 자신도 모르게 스르륵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다면 실제로 펼쳐 보일 수 있는 것은 세 가지다.

하지만 그중 유한보(流瀚步)의 보법은 이미 오엘이 앞서 어설프게 펼쳐 보였던 것으로 상대가 없으면 그 묘용이 잘 드러나지 않으니 제외하고, 또 그와 같은 이유로 방어를 위한 검초도 제외하면 남는 것은 공격을 위한 일초(一招)의 검법뿐이다.

그렇게 결정이 내려지는 것과 함께 이드가 들고 있는 일라이져의 검신에 오색영롱한 검강이 쭉 뻗어 나왔다.

청령신한공의 내공인 청령신한심법을 모르는 이드이기 때문에 그와 비슷한 내공이랄 수 있는 오행대천공의 내공을 일으킨 것이었다.

“휘익~ 대단한데…..”

“아직 어린데, 벌써 저런 검기를 가지다니….”

이드의 오색 검강을 본 용병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사실 이 자리에서 검기를 내뿜을 수 있는 용병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용병들은 이드의 검강을 검기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그중 검기를 사용하는 덕에 일라이져에 어려 있는 것이 검강임을 눈치 챈 용병들과 디처의 팀원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입을 꼭 다물고 검강을 주시할 뿐이었다.

그때 검결에 따라 검을 잡고 있던 이드의 목소리가 오엘들의 귓가로 들려왔다.

“잘 봐둬. 이게 네가 어설프다 못해 흉내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청령신한공 상의 검법인 신한검령(晨瀚劍玲) 중 그 다섯 번째 초식인 신천일검(晨天日劍)의 진정한 모습이니까! 흐읍!!”

피잉.

한순간 이드의 호흡이 끊어지는 듯한 기합성과 함께 공간을 가르는 듯한 날카로운 소성이 허공을 갈랐다.

그 소리가 사람들의 귓가를 울리는 순간 이드의 몸은 어느새 허공을 누비고 있었고 일라이져의 검신에서 시작된 검기의 파도는 마치 수평선처럼 주위로 넓게 퍼져나갔다.

만약 그 앞에 적이 있었다면 검기의 파도를 피해 저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어느새 땅에 내려선 이드는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다시 뛰어올라 검기의 파도 사이를 헤치고 일라이져를 깊게 베어 올렸다.

가히 새벽 하늘에 떠오르는 태양을 상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또한 그 이면엔 뒤로 물러서는 적의 허리를 끊어 내는 무서움을 가지고 있는 초식이기도 했다.

그런 신천일검의 위력은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 오엘이 제일 잘 느끼고 있었다.

또한 이미 자신이 익혔다고 생각한 신천일검의 진정한 모습 앞에 그녀는 그대로 굳어 버린 듯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아직 검강을 형성할 실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해도 펼쳐낼 수 없는 초식으로, 검강이나 내공 이전에 초식에 대한 이해와 생각의 차이 때문에 생겨나는 차이였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오엘 자신의 잘못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오엘은 굳은 표정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

하거스는 고개를 숙인 오엘의 모습에 쯧쯧거리며 내심 혀를 차 보였다.

자신의 생각대로 이드는 청령한신공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펼치기까지 했다. 그로 인해 확인된 것은 청령한신공이 오엘이 사용할 때와는 너무도 다른 상승의 무공이라는 것이다.

‘하여간 오엘에겐 잘 된 일이다. 제대로 청령신한공을 가르쳐 줄 사람을 만났으니….’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면 저렇게 화를 내지도, 직접 무공을 내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거스는 검을 거두며 제자리로 돌아가는 이드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반면 이드는 부모님께 야단맞은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오엘의 모습에 만족스런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자신이 펼쳐 보인 일초의 검공으로 오엘의 기세가 완전히 꺾인 것이다.

“좋으시겠어요. 생각대로 되셨으니…”

“후아~ 실력이 대단할 줄은 알았지만…. 그 검기를 사용할 정도라니, 정말 대단해요.”

이드는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라미아와 제이나노를 향해 미소로 답해 주었다.

이어 시선을 오엘에게 향한 이드는 화가 풀린 듯한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 정도면 네게 인정받을 만 하겠지?”

그 말에 오엘이 슬쩍 고개를 들어 이드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네 사숙이라는 것 역시도?”

잠시 머뭇거리긴 했지만 이번의 질문에도 오엘은 축 처진 모습으로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연이어지는 이드의 말에도 오엘은 별달리 반항하지 않고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상대를 사숙으로 인정한 만큼 다른 요구에 불응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하거스는 두 사람의, 아니 이드의 일방적인 요구가 끝나자 오엘에게 다가가 위로하듯 어깨를 톡톡 두드려 주며 이드에게 웃어 보였다.

“하하…. 이거이거, 처음 만날 때부터 뭔가 인연이 있다 했더니, 일이 이렇게 되는구만. 오엘의 사숙이라니… 정말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일이야.”

“저도 그렇습니다. 헌데 죄송해서 어쩌죠? 이렇게 불쑥 나타나서 디처의 팀원을 빼가게 됐으니 말입니다.”

요구 조건 중엔 오엘이 이드를 따라 나서기로 한 것도 끼어 있었다.

이드가 디처에 남아 오엘을 수련시킬 수는 없는 상황이니 거꾸로 오엘을 데리고 다니며 수련시키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뭘 그런 걸 가지고. 한 사람이 빠진다고 해서 휘청일 정도로 우리 팀은 약하지 않아. 그리고 기다리다 보면 저 녀석이 더 강해져 돌아올 테니 우리들에게나 이 녀석에게나 오히려 득이지. 그러니 우리 막내 녀석 잘 부탁하겠네.”

“그건 걱정 마세요. 저도 대충 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제 눈에 차는 실력이 되지 않는 한은 놓아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

그 말과 함께 이드의 시선이 자연스레 오엘에게로 옮겨졌다.

“좋아, 좋아. 그럼 상황도 정리됐으니까….. 일하던 걸 마저 해야겠지? 구경 그만하고 빨리들 움직여.”

“이봐, 하거스. 그러지 말고 자네가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지 그래?”

“모범은…. 난 그것보다 더 힘든 감독일을 맡고 있잖아. 내가 아니면 이런 일을 누가 하겠냐?”

이드와 오엘 간에 일어나는 일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용병들은 하거스의 재촉에 투덜거리며 각자 하던 일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엔 하거스의 부탁에 의해 이드도 투입되게 되었다. 방금 전의 검술 시범으로 그 실력이 증명된 덕분이었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이 달려든 덕분에 예상했던 세 시간보다 한 시간 빠르게 일을 마친 그들은 다시 화물을 가지고 출발할 수 있었다.

그 후 두 차례에 걸친 몬스터의 습격이 있었지만 별다른 피해 없이 그것을 막아낸 상단은 늦은 밤 목적했던 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 덕분에 이드와 용병들은 라미아의 바람대로 푹신한 침대에 몸을 누일 수 있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