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190화
“하.. 하…. 나타나길 바라긴 했지만….. 이런걸 바란 건 아닌데….”
삼십 분 전쯤이었다. 숲길을 걷고 있던 이드는 주위를 어른거리는 몇 개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동물은 아닌 것이 아무래도 엘프 같았다. 하지만 그 거리가 멀었기에 확인하지 못하고 가만히 걸음만을 옮겼었다.
헌데 다음 순간부터 그들이 가까이 접근하더니 정령과 활 등 여러 수단으로 이드들 주위를 맴돌며 갈 길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이드뿐 아니라 나머지 사람들까지 그들의 존재를 알기에 이르렀고, 결국 그중 일행과 조금 떨어져 있던 오엘이 한 엘프에게 검을 휘두르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다행히 그 엘프가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부터 엘프들의 공격은 좀 더 분명해지고 심해졌다. 이드들은 그들의 반응에 도대체 왜 이러는 건가 하는 생각에 그 공격을 묵묵히 막아내며 앞으로 전진했고 결국 지금의 상황에 이른 것이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거지? 이유 없이 공격할 종족이 아닌데…”
이드의 말에 일행들 옆으로 다가와 있던 오엘이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녀는 또한 처음 보는, 또 실제로 보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던 엘프란 종족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 제가 검을 뽑아 들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라미아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그건 아니예요. 처음 공격을 한 건 저들인 만큼 언니가 검을 쓴 것은 당연한 행동이지 저들을 화나게 할 행동이 아니었어요. 그건 저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거구요.”
“좋아, 그럼 내가 나서서 말해 볼께. 이래 봬도 명색이 대사제 아니겠어. 엘프들도 사제는 알아보겠…. 히익!!”
파팍!!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서던 제이나노는 순간 자신의 발 앞에 사정없이 내려와 박혀 부르르 떠는 두 대의 화살에 한 발 앞으로 내디디던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그 뒤 제이나노에게서 흘러나오는 힘없는 말에 이드는 라미아를 바라보았다.
“엘…. 프 중에는 리포제투스님의 신도는 없는가 보네… 요.”
“….”
“휴우~ 아무래도 네가 나서는 게 좋을 것 같다. 엘프어 할 줄 알지?”
“할 줄 알긴 하지만…. 원래 제가 있던 곳과 차원이 다른 만큼 엘프어도 다를지 모르는데….”
이드는 라미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수십, 수백 개나 되는 이 세계의 언어보다는 나을 것이다. 또한 차원은 다르지만 엘프어란 원래가 자연의 목소리와 같은 것. 저들이 엘프인 이상 최소한 알아듣지 못해도 어떤 반응은 보일 것이란 것이 이드의 생각이었다.
그런 이드의 생각을 들은 라미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슬쩍 앞으로 나섰다. 이번엔 다행히 화살이 날아오지 않았다. 덕분에 제이나노가 남녀 차별이라느니 어쩌느니 했지만 그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앞으로 나선 라미아의 입에서부터 마치 듣기 좋은 바람소리 같고 시원한 물소리 같은 숲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보통의 사람들은 배울 수 없다고 하는 엘프의 언어. 인간의 성대로는 소리내기도 어렵거니와 일, 이십 년의 시간으로 이해하고 배우기도 어려운 언어이다.
하지만 원래가 검이었던 라미아이기 때문에 엘프 이상으로 익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엘프어는 잠시 동안 그렇게 노래처럼 라미아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라미아의 노랫소리와 같은 엘프의 언어가 그치자 마치 하나의 연주가 끝난 듯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더욱이 주위를 포위하고 있는 엘프 쪽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어 그 침묵이 무게를 더 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 그 무게에 이드가 직접 나서려 할 때였다.
이드들의 전방에 서 있는 엘프들 사이로 짧은 머리가 인상적인 중년의 엘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당히 부드러운 표정의 엘프였지만 이상하리만치 짧은 머리 덕분에 보는 이로 하여금 강한 인상을 남기는 그는 이드를 시작으로 나머지 사람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더니 마지막으로 라미아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어 열리는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방금 전 라미아를 통해 들었던 것과 같은 엘프어였다. 그의 말에 라미아가 다시 앞으로 나서는 걸 보며 이드와 제이나노, 오엘은 안심이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쨌든 말은 통하게 되었으니 안심할 만한 일이지 않겠는가.
과연 그런 세 사람의 생각이 맞았는지 잠시 후 주위에서 병기와 마법으로 일행들을 겨누고 있던 엘프들이 일제히 경계를 풀고 뒤로 물러섰다.
“미안하데요. 자신들이 지나쳤다고, 갑자기 바뀌어 버린 세상에 경계심이 상당한 모양이예요.”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지 라미아가 이드들을 바라보며 엘프들이 필요 이상으로 경계하는 이유를 가르쳐 주었다.
“특히 숲으로 몇 번 진입한 인간들마다 본적 없는 이상한 물건들을 들고 들어온 덕분에 인간에 대한 경계심이 가장 강했던 모양인데…. 마침 그러던 차에 저희가 들어섰고, 또 공교롭게도 그들의 마을을 향해 직선으로 움직이자 그 방향을 바꾸기 위해 화살을 쏘고 방해한거래요.”
“마을?”
“네, 숲의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바로 이 길을 따라 직선 방향에 자리잡고 있데요. 다행이 마법으로 숨기고는 있지만 마을이 있는 건 사실이라 어쩔 수 없었나 봐요. 참,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는 김에 우리들이 자신들을 찾고 있다는 걸 이유를 들어서 말해 줬어요.”
이드를 포함한 세 명은 라미아의 말에 자신들이 가던 길 저 앞을 바라보았다. 엘프를 만나려 한 만큼 방향하나는 확실히 잡은 것인가? 이드는 뒤로 물러났던 엘프들이 마을이 있다는 곳을 향해 하나 둘 향하는 것을 바라보며 라미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표정이 좋은 걸 보아 일이 잘 풀린 듯 한데….
“따라오래요. 마을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인간을 초대한다고…. 생각보다 일이 훨씬 잘 풀릴 것 같아요.”
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다. 잠시 후 네 사람은 짧은 머리의 엘프의 안내에 따라 그들의 마을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엘프를 따라 걷는 숲길은 왠지 잘 다듬어진 정원 길을 걷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일행들이 숲을 지날 때와는 달리 얼굴을 때리는 나뭇가지도 없었고, 발길을 붙잡는 잡초의 방해도 없었다.
그렇게 편하게 숲길을 이 십분 정도 걸었을 때 였다. 갑자기 푸른색으로 물들어 있던 숲이 한순간 빛 을 발하며 열리는 듯 하더니 곧 그 앞으로 조용한 모습의 엘프들의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몇 걸음 전에 만 해도 보이지 않던 마을의 모습이었다. 아마도 결계 마법과 일루젼 마법의 일종인 듯 했다. 확실히 이 정도의 마법이라면, 이 숲에 들른 사람들이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그냥 숲을 나서야 했을 것이다. 이드들이 마을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그들의 소식이 전해 진 때문인지 꽤나 많은 수의 엘프들이 모여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얼굴엔 불안감과 함께 숨길 수 없는 호기심이 떠올라 있었다. 그들로선 태어나 처음 대하는 인간일 테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마을에서도 계속 안내를 받은 일행들은 수십 채의 집중에서 조금 외곽에 있다 십은 한 채의 집으로 안내되었다. 별로 크지도 않고 깔끔하게 정리된 집으로 그 내부도 상당히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어 일행들의 귓가로 예의 노랫소리 같은 엘프어가 흘러들어 왔다. 그리고 그 노랫소리를 그저 듣고만 있는 세 사람과는 달리 정확하게 알아들은 라미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슬쩍 미소를 지어 보이며 뒤돌아 나섰다.
“여기서 좀 기다려 달라는데요. 마을의 장로들을 데려 올거라구요.”
라미아의 통역이었다.
“그래? 그럼 그때까지 편하게 쉬어 볼까?”
그의 말에 일행들은 각자의 짐을 내려놓고 거실 한 가운데 놓여 있는 작은 테이블 주위로 모여 앉았다. 하지만 그런 세 사람과는 달리 제이나노는 인간의 별장과 별 다를 것도 없는 실내를 신기한 듯 두리번거렸다. 그 모습에 뭔가 핀잔을 주려는지 이드가 막 입을 열때였다. 갑자기 자신들이 들어선 집을 중심으로 묘한 마나의 파동이 일었다. 그것은 자연적인 것이 아닌 마법을 사용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그것을 느낀 이드는 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그와 동시에 라미아도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향해 다가갔다.
“사숙, 갑자기 왜 그러세요?”
이드와 라미아의 갑작스런 행동에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두 사람이 불안한 마음에 급히 되물었다. 그러나 이어 들려오는 라미아의 말에 두 사람 역시 당황한 표정으로 실내를 두리번거릴 수밖에 없었다.
“문이…. 잠겼어요. 락의 마법으로…”
문뿐만이 아니었다. 거실 양측 벽에 달려 있는 창문으로도 아무 것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문과 마찬가지로 열리지도 않았다. 다만 집안의 다른 문만이 정상적으로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뿐이 아니었다. 곧 이어 두툼한 겨울 이불을 덮은 듯 둔감한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그 마나의 흐름이 뜻하는 마법은 결계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이드와 라미아는 당황하거나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실력이라면 언제든지 결계를 부수고 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연이어 들리는 짧은 머리 엘프의 말에 가만히 있는 것뿐이었다.
“갑작스런 행동에 놀랐겠지만 이해하고 기다려 달라는데요. 마을에 인간이 들어온 것이 처음인 만큼 경계할 수밖에 없다는 데요.”
“칫, 어째 일이 잘 풀린다 했다.”
이드가 다시 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자 그를 따라 라미아도 자리에 앉았다. 덤덤한 두 사람의 행동에 오엘과 제이나노도 조금 진정이 되는지 주춤거리며 따라 앉았다. 하지만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는 덕분에 묘한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그런 침묵이란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제이나노가 끼어 있는 일행이다 보니, 그 침묵은 자연히 오래가지 못하고 그에 의해 깨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손놓고 기다리기만 해도 될 까요? 저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잖아요.”
“그건 걱정 마세요. 믿을 수 있는 종족이니까.”
“…. 벌써 한번 속았잖아요. 이곳에 오면서….”
이어진 그의 말에 대답하던 라미아가 당황스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들도 어쩔 수 없으니까 그렇게 했겠죠. 갑자기 바뀌어 버린 세상. 한번씩 숲에 들어오는 낮선 인간이라는 종족. 낮선 도구들. 그러던 중에 자신들의 마을로 향하는 우리와 대면하게 된 거죠. 거기에 자기네들의 언어를 구살 할 줄 아는 저 라는 존재가 있으니… 잘됐구나 하고, 데려왔겠죠. 밖의 상황에 대해 알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가둘 필요는 없잖아. 그런 것 정도라면 충분히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문제니까.”
“언니 말도 맞아요. 하지만 저희는 그들이 처음 보는 인간이란 종족이죠. 물론, 옛 이야기를 통해 인간에 대해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그런 이야기에 인간에 대한 칭찬이 있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거든요.”
“그래도 이렇게 갇힌다는 건…..”
오엘이 답답한 표정으로 주위로 시선을 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나갈 수는 없는 것. 이드는 그녀의 모습에 옆에 있는 라미아의 다리를 베고 누우며 말을 이었다.
“정 그렇게 불안하면, 차분히 심법수련이라도 해둬. 그렇게 불안하게 앉아 있는 것 보단 훨씬 도움이 될 테니까. 단, 너무 깊게 빠지지는 마. 그런 마음상태라면 마음이 가라앉기도 전에 주화입마 할 테니까.”
“….네.”
이드의 말에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오엘은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는지 거실의 한 쪽 벽 앞으로 다가가 그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저기… 그럼, 난 뭘 하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자기가 할 일은 자기가 해야지 말이야.”
전혀 불편한 표정을 짓지 않고 다리에 놓인 이드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라미아의 모습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던 제이나노의 말이었다. 하지만 퉁명스레 되 받아치는 이드의 말에 그는 다시 한번 남녀차별이나 뭐니 투덜거리며 그의 짐 중 유일한 한 권의 책을 꺼내들어 읽기 시작했다. 그런 책의 겉 표지엔 진언(眞言)이란 제목이 자리하고 있었다.
“흐음… 점심시간이 다 돼 가는데. 점심은 주려나?”
이드는 작게 중얼거리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다행이 점심은 나왔다. 고기가 없는 야채와 과일로 이루어진 요리뿐이지만 점심은 나왔다. 화살과 검을 든 전사처럼 보이는 엘프들이 들고 들어온 것이라는 게 문제 긴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점심에 이어 저녁까지 얻어먹고 나서야 일행들은 다시 그 짧은 머리가 인상적인 엘프의 방문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 그의 옆에는 상당히 어려 보이는 그래봤자 보통의 인간보다 훨씬 나이가 많을 엘프 소녀가 함께 하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 보는 인가들이 신기한 것인지 연신 눈을 굴리며 네 명의 일행들을 살피고 있었다. 그 모습에 소녀에게 슬쩍 주의를 준 그 엘프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손에 든 유백색의 우윳빛 구슬을 테이블의 중앙에 내려놓았다.
이유 모를 그의 행동에 일행들의 시선이 그를 향하는 사이 그는 내려놓은 수정구 위에 손을 얹고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헌데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분위기와 형식이 다른 엘프어 였다. 특히 간간히 썩여 들어가는 인간의 언어는 그런 느낌을 더욱 더 해주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는 순간. 구슬에서부터 시작된 유백색의 빛이 거실을 하나가득 채우고 사라졌다. 그와 함께 들리는 라미아와 엘프의 말에 이드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통역을 위한 마법구 예요.”
“시… 실례… 했습니다.”
귓가에 들리기는 여전히 노래 소리 같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말의 내용과 의미를 정확하게 알아듣는 기분은 상당히 묘한 것이었다.
“우선은 사과를 드려야 할 것 같군요. 본의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여러분께 폐를 끼치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특히, 상황이 그랬다고는 하지만 리포제투스님의 대 사제께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 아니요. 별로….. 괜찮습니다.”
제이나노는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엘프의 모습에 급히 손 사레를 떨어 보였다. 그 모습에 그 엘프는 곧 미소를 지으며 이드들에게 자리를 권하고 자신도 테이블 옆에 자리했다.
“우선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이 마을의 수행장로의 직을 맞고 있는 츠멜다라고 합니다. 편하게 메르다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여기 이 아는 저의 아이로 비르주라고 합니다.”
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비르주라는 아이에게 모였다 떨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 메르다와 별로 닮아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라미아가 나서 이드를 비롯한 나머지 동료들을 간단히 소개했다.
서로간의 통성명이 끝나고 나자 메르다는 일행들을 강제로 이 곳에 가둔 이유를 설명하고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우수운 일이지만 그 이유라고 설명한 것이 이미 라미아가 짐작해서 이야기했던 내용 그대로였다. 몇 가지 덧붙이자면, 옛부터 내려온 인간에 대한 이야기 내용이 상당히 좋지 못했던 탓에 엘프들은 인간을 필요 이상으로 경계하고 있다고 한다. 거의 하급 마족이나 몬스터 정도로 보면 맞을까?
인간에 대한 평가가 그 정도일 줄은 몰랐던 네 사람은 헛웃음만 지으며 그의 말을 들었다.
메르다의 말에 의하면 자신들이 이곳 집에 갇히고 난 후 마을에서는 장로들에 의한 회의가 있었다고 한다. 그 나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장로들조차 처음 보는 인간. 더구나 자신들의 언어까지 할 줄 아는 사람이 끼어있는 일행들의 처리에 이런저런 많은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쉽게 결정이 날 문제가 아니었기에 회의는 길어져만 갔다. 그때 나선 것이 바로 메르다였다. 그는 장로는 아니지만 다음 대의 장로라는 수행자로의 신분인 만큼 회의에 참가하고 있다가 의견을 낸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에 그들의 말을 아는 라미아와 리포제투스의 대사제. 그리고 충분히 반격할 수도 있었는데도 묵묵히 방어만 일행들의 행동을 들어 일행들에게 좋은 의견을 내놓았고, 장로들은 다음 대의 장로인 그의 말을 존중해 좋은 쪽으로 결론을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저희 마을에 들어오시는 것을 허가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여러분들을 믿고 받아들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한두 명 정도의 감시자가 붙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만남에서 라미아님을 통해 들었던 여러분들의 목적은 이틀 후 있을 장로님들과의 만남에서 해결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장로분들과의 만남…. 이요?”
이드가 반문했다. 그 말에 잠시 이드를 살피듯 바라보던 메르다는 곧 이유모를 친근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여러분들이 저희들에게 알고 싶은 것이 있는 만큼 저희 역시 갑자기 바뀌어 버린 세상에 대해 확인하고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밖에 나갔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확실히… 아직 엘프를 봤다는 사람들이 없는 만큼, 그들도 밖의 세상에 대해 잘 모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드의 눈에 메르다 옆에서 눈을 반짝이며 빤히 자신을 바라보는 비르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귀여운 모습에 이드가 그녀에게 미소 지어주는 사이 오엘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럼 내일 하루도 이 집에만 머물러 있어야 하나요?”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아까 말했다시피 여러분들은 지금 저희 마을의 손님으로 되어있죠. 비록 감시자가 붙긴 하겠지만…. 참, 여러분이 마을 구경을 하시겠다면 제가 직접 안내해 드리죠.”
그 말에 비르주를 향해 재밌는 표정을 만들어 보이던 이드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 주신다면 저흰 오히려 좋습니다. 다른 분들보다는 메르다님이 좀 더 편할 듯 하거든요.”
“좋습니다. 그럼 내일 제가 여러분이 식사를 마쳤을 때쯤 들르도록 하지요. 그럼 피곤하실 텐데, 편히 쉬도록 하시죠. 아담해 보이는 집이긴 하지만, 방이 세 개나 되기 때문에 쉬시는 데는 별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렇게 말을 끝낸 메르다는 이드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비르주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는 두 사람을 배웅한 일행들은 처음 보단 편한 마음으로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다. 메르다의 말에 마음을 놓은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네 사람을 각자 방을 잡아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있을 엘프 마을 구경을 기대하고서 말이다.
“그러니까 이 숲과 저 산 일대엔 몬스터가 거의 없다는 말씀이군요.”
이드는 작은 살구만 한 이름 모를 과일 하나를 집어들며 메르다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들은 지금 메르다를 따라 마을을 대충 한바퀴 둘러보고 난 후였다. 구경이 끝난 그들은 메르다의 안내로 작은 연못이 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 앉아 점심을 해결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드의 옆으로 오늘 아침부터 친근하게 달라붙어 있는 비르주가 큼지막한 과일 하나를 들고 귀엽게 오물거리고 있었다.
“그래요. 가끔 눈에 뛰는 오크나 고블린 몇 마리가 있긴 하지만 그 수가 상당히 적을 뿐만 아니라 마을 근처까지 다가온 몬스터들이 저희들에게 혼이 난 후에는 이 근처에 들어오지 않아요. 덕분에 우리 마을 일대는 몬스터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 상태죠.”
“아하, 그래서 마을이 그렇게 평화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군요.”
“꼭 그런 것만도 아니죠. 아직도 갑자기 바뀌어 버린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엘프들이 꽤 되거든요. 거기에 더해 한번씩 숲을 뒤적이는 인간들의 모습은 우리들을 저절로 긴장하게 만들고 있으니… 그렇게 평화롭다고 말할 수도 없겠군요.”
이드는 메르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기분은 같은 경험을 해본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고개를 주억이던 이드의 눈에 마침 비르주가 들어왔다. 괜히 모르게 자신에게 친근하게 대하는 아이. 하지만 그녀뿐이 아니었다. 메르다 역시 어제 이후 자신들의 언어를 알고 있는 라미아 이상으로 자신에게 친절히 대해주고 있다. 그 모습에 라미아에게 엘프에게 인기 있어 좋겠다는 말까지 들었을 정도였다.
“흠… 그런데 말입니다.”
“음?”
“혹시 비르주가 이렇게 저에게 붙어 있는데… 이유가 있나요? 아, 귀찮다거나 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요. 메르다님도 어제부터 제게 유난히 친절하게 대해 주기 길래…..”
“아아…. 그거야 이드 군이 정령에게 사랑받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런 만큼 우리 엘프들에게 익숙한 기운을 풍기게 되니까 비르주가 친하게 접근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