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198화


그리고 그것이 절정에 이르렀다 생각되는 순간, 라미아의 고우면서도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텔레포트!!”

벤네비스산.

영국의 수도인 런던과 정반대에 위치한 이 산은 영국 내에서는 수도인 런던만큼이나 유명한 산이다.

높이가 천삼백사십여 미터를 넘어가는 영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높이만큼 벤네비스가 이루고 있는 산세 역시 명산이라 할만큼 아름다웠다.

덕분에 한창때는 등산가를 비롯해 휴가와 관광을 즐기기 위해 찾아드는 사람들의 발길이 흔했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모두 봉인의 날 이전에나 있었던 일이다.

지금은 산에 가득한 몬스터들 덕분에 산에 오르려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슨 득이 있다고 몬스터가 가득한 산을 오르겠는가.

특히 거기에 더해 은근히 퍼지기 시작한 한 가지 소문은 사람들로 하여금 산 근처에도 다가가기를 꺼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소문이란 것은 바로 드래곤.

바로 그 무시무시한 생명체의 레어가 벤네비스산에 생겼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그 산에서 드래곤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때문인지 산의 모습이 멀찍이 보이는 곳에 태연히 인간들의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산이 가까워 자주 출몰하는 몬스터 때문인지 아니면 알게 모르게 퍼져나간 소문 때문인지 마을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마도, 만약 벤네비스산에 드래곤이 살고 있어 그 드래곤이 날아오르기라도 하는 날이면, 이 작은 마을은 금세 유령의 도시가 되어버리겠지만 말이다.

그런 마을이 멀리 보이는 무너져버린 고인돌처럼 보이는 거대한 바위가 있는 곳.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바위 위쪽 허공 3미터 정도에서 신기하게 생겨난 작은 불꽃이 점점 그 크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츄바바밧…. 츠즈즈즈즛….

시각적인 그 장면은 굳이 청각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런 소리가 들릴 듯한 그 빛은 점점 그 강도를 더해 종국에는 똑바로 바라보기엔 눈이 아플 정도의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한순간, 그 빛은 절정에 달한 듯 크게 폭발하며 주위로 흩어져 나가 버렸다.

갑자기 사라져버린 빛 덕분에 한순간 어둡게 느껴지는 공간.

그곳에 빛 대신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네 명의 인형들이 균형을 잡지 못해 허우적대는 모습으로 허공에 자리하고 있었다.

“우…. 우아아악!!”

“이잇!”

“꺄악! 왜 또 허공이야!!!”

“칫, 빨리 잡아.”

네 명에게서 각자에 맞는 불평과 당황성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 중 한 명만은 예외인 듯, 마치 땅에서 움직이듯 허공 중에서 자연스레 몸을 움직여 추락하고 있는 두 인형의 허리를 양팔로 끌어안고서 여유 있게 땅에 내려섰다.

하지만 그 인형의 팔이 두 개인 덕분에 그런 도움에서 제외된 세 번째 인물은…

쿠우웅.

“커어어어헉!!!”

묵직한 충돌음과 잘 어울리는 비명을 합창하듯 토해내며 그대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그 모습에 두 사람의 허리에서 팔을 풀어낸 인영, 이드가 전혀 안쓰럽지 않다는 표정과 말투로 땅에 뻗어 있는 제이나노의 안부를 물었다.

“괜찮아? 워낙 급하게 가까이 있는 두 사람을 잡다 보니, 널 신경 쓰지 못했지 뭐냐.”

“….. 크으윽… 쿨럭…. 커헉….”

그때서야 겨우 숨이 트이는지, 내던져진 개구리처럼 뻗어 있던 제이나노가 겨우 몸을 뒤집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런 제이나노의 얼굴은 이마와 코, 턱. 이 세 곳이 붉게 물들어 있어 상당히 우스워 보였다.

그 모습에 어느새 다가왔는지 내려다보던 이드와 라미아, 오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 괜찮은 것 같군. 허기사 이게 몇 번째인데…. 어떻게 된 텔레포트 포인트의 좌표가 전부 이 모양인지.”

황당하다는 듯 말하는 이드의 모습에 충격을 삭히던 제이나노가 원망 가득한 눈길로 이드를 바라보았다.

“그래…. 이게 벌써 몇 번째지? 근데 말이야. 어떻게 된 게 그 몇.번.의. 상.황.마.다. 네가 구해주는 사람은 저 두 사람이고 난 항상 이런 황당한 충격을 맛봐야 하냔 말이다. 왜 항상 네 가까이 있는 사람이 저 두 사람인 거냐고!!”

상당히 분했던지 평소 쓰던 말투가 완전히 평어로 바뀌어 버렸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이드나 제이나노의 말처럼 지금과 같은 상황—그러니까 텔레포트 된 장소가 허공인 경우—이 여러 번 있었던 것이다.

네 사람은 모르고 있었지만, 가디언들이 쓰는 텔레포트 좌표는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지상에서 3~4미터 정도 위쪽으로 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 만약의 상황이란 텔레포트가 끝나는 지점에 존재할 어떤 물체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만에 하나 텔레포트가 끝나는 지점에 생물이나 커다란 벽이 존재하게 되면, 그때 생기는 쌍방의 이질적인 마나의 분열로 사람이고 무엇이고 간에 공기 중에 완전 분해되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뭐… 그 텔레포트를 실행하는 사람이 라미아라는 것을 생각하면 큰 문제가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모르는 네 사람은 텔레포트 때마다 번번이 이런 상황을 겪어야 했는데, 불행하게도 그때마다 라미아와 오엘은 항상 이드에게 안겨 안전하게 땅에 내려선 반면 제이나노는 항상 대지의 열렬한 환영을 몸으로 경험해야 했던 것이다.

뭐, 처음 몇 번은 여자보다는 남자인 자신이 땅에 떨어지는 것이 나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매에는 장사 없다고, 뼛속까지 울려오는 그 고통에 결국 제이나노가 발작해 버린 것이다.

이때 이드가 그런 제이나노를 향해 그가 환영할 만한 소식을 알렸다.

“걱정 마. 이제 그럴 일이 없을 테니까. 다 왔거든. 두 번째 목적지로 삼았던 벤네비스 산에 말이야.”

이드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들어 멀리 보이는 벤네비스 산을 바라보았다.

그런 이드의 모습에 나머지 세 명의 시선 역시 자연스레 산을 향해 돌아갔다.

그런 네 사람의 탁 트인 시야 안으로 웅장한 몸체를 자랑하고 있는 거대한 산의 모습이 보였다.

사실 네 사람은 이미 처음 목적지로 잡았던 데르치른 지방을 지나온 상태였다. 그리고 이곳에 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데르치른에선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그곳엔 특이하게 변해버린 늪지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덕분에 땀 꽤나 흘린 일행들이 얻은 것이라곤 모기 때문에 얻은 가려움뿐이었던 것이다.

“쳇, 정말 저기에 드래곤이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어느새 존댓말을 다시 사용하고 있는 제이나노가 가기 싫다는 뜻을 역력히 내비치며 입을 열었다.

사실 데르치른에서 고생한 만큼 저만큼 높은 산에 올라가려고 생각하니 막막했던 것이리라.

“그런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일어나기나 해. 오늘내일은 체력도 회복할 겸 저 마을에서 쉴 거니까 빨리 가야지.”

이드는 그렇게 말하며 제이나노의 놀란 근육을 풀어주며 그를 세워 일으켰다.

이어진 이드의 재촉에 라미아와 오엘도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세워져 있는 마을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빨리 가서 편히 쉬자는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점점 마을에 가까워지며 눈에 들어오는 마을은 지금까지 거쳐왔던 어느 도시나 마을보다 중세풍의 느낌이 강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느낀 것이지만, 런던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욱더 그런 것 같았다.

“흐음… 여긴 조금 특이하네요. 방책이나 벽이 쌓아져 있는 게 아니라… 높다란 망루가 세워져 있는 걸 보면 말이에요.”

오엘과 함께 걷던 라미아가 딱히 누구에게 말한다고 보기 어려운 말을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에 제이나노가 고개를 끄덕이며 몇 마디 말을 더했다.

“특이한 경우긴 하지만, 제 경우엔 처음 보는 건 아니죠. 돌아다니던 몇몇 지역에서 저렇게 몬스터를 경계하는 걸 본 적이 있거든요. 확실히 효과는 좋더라고요.”

“흐음… 그래.”

이드들은 제이나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마을로 들어섰다.

높은 망루에서 망을 보고 있는 사람 때문인지 따로 보초를 서고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마을에 들어서며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네 사람은 곧 짐을 풀 여관을 잡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일행들은 하나의 여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그레센 대륙에 존재하는 여관 중 하나를 떼어다 놓은 듯한 고풍스런 여관. 입구에는 굵은 글씨로 여관의 이름이 써 있었다.

‘만남이 있는 곳’

“특이한 이름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