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223화
이드와 라미아는 파리로 올 때와 마찬가지로 두 번의 텔레포트를 통해 너비스에 도착했다. 한 번의 텔레포트만으로도 이동이 가능하긴 하지만, 좌표점이 흔들리는 장소로의 초장거리 텔레포트는 사서 하는 고생이나 다를 바가 없기에 시도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파리로 급하게 날아가는 상황에서도 두 번으로 나누어서 텔레포트를 했겠는가. 파리에서 두 사람이 머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덕분에 오엘이 두 사람을 찾아 나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나가면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온다는 것은 너비스 사람이라면 모두 다 아는 때문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너비스의 벤네비스 산에 도착한 시간이 정오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엘이 두 사람을 찾아 나서는 대신 이드와 라미아는 도착하자마자 다시 너비스 마을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항상 두 사람이 점심을 먹는 자리에 놓여 있는 텅 비어 버린 소풍 바구니 때문이었다. 더구나 소풍 바구니는 텅 비었을 뿐만 아니라, 이리저리 흩어져 묻어 있는 음식 찌꺼기로 인해 상당히 지저분해져 있었다. 그 모습에 두 사람은 세르네오가 권했던 점심 식사의 메뉴가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와 동시에 소풍 바구니를 이 지경으로 만든 상대에 대한 분노가 맹렬히 일어나는 느낌이었다. 항상 느긋했던 점심 식사를 못 하게 한 것에 대한 것과 번거롭게 너비스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런 두 사람에게 소풍 바구니 한켠에 떨어진 독수리 깃털이 보인 것은 독수리들에게 있어서 정말 불행이었다. 잠시 후 산 정상에 서 있던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는 순간. 하늘 가득히 독수리들의 비명성이 울려 퍼졌다. 그 후로 몇 주간. 벤네비스 산 주위를 나는 독수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 기간 동안 절뚝거리는 몸으로 먹이를 쫓아 산을 내달리는 독수리의 모습이 몇 번 목격되었다고 한다.
“응? 어쩐 일로 두 사람이 벌써 들어오는 거야? 도시락까지 싸 갔으면서…”
이드는 양손에 무언가를 가득 들고서 의아한 듯이 물어오는 루칼트를 바라보며 손에 들고 있던 소풍 바구니를 흔들어 보였다. 이곳 ‘만남이 흐르는 곳’ 역시도 점심시간이라 한창 바쁜 모습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많이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 용병들이 식당 안을 가득히 메우고 있었다. 루칼트는 그런 용병들이 앉은 테이블 사이를 누비며 양손에 들고 있는 음식을 나르고 있다가 지금 막 들어서는 이드와 라미아를 보고 물었던 것이다. 덕분에 그의 손 위에 쌓여 있던 접시들이 약간 기우뚱하기는 했지만, 용병으로서의 운동신경이 있어서인지 금세 다시 중심을 잡아 보였다.
“빈 것 같은데… 이번에 가지고 갔던 음식이 모자랐냐?”
“아니요.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털렸어요. 그것도 아주 예의 없는 녀석들에게…”
이드는 그렇게 말하며 소풍 바구니 안쪽을 보여 주었다. 여기저기 찌꺼기가 남아 있는 바구니 안을 말이다. 루칼트는 그런 모습에 피식 웃어 버렸다. 이드가 말하고 있는 예의 없는 녀석들이란 것이 산 짐승이란 것을 짐작한 때문이었다. 험할 뿐 아니라 몬스터까지 바글거리는 벤네비스에 이드와 라미아를 제외한 사람이 있을 가망성이 없기 때문이었다. 우선 자신부터 벤네비스에 오르는 것은 사양하고 싶은 일이었으니 말이다.
“쯧, 그동안은 아무 일 없더니… 그래서 그냥 온 거냐?”
이드는 루칼트의 물음에 독수리의 날개 깃털 몇 개를 흔들어 보였다. 그것들은 라미아의 마법에 두드려 맞던 독수리들로부터 떨어진 것들이었다.
“아마… 요번 한 주 동안은 꼼짝도 못 할 것 같았어요. 그보다 저희도 점심 먹어야 하니까 좀 챙겨 주세요.”
루칼트는 머릿속에 그려지는 추락하는 독수리들의 모습에 애도를 표하며 이드와 라미아에게 비어 있는 테이블을 내어 주었다. 대부분의 테이블이 용병들에게 점령당해 있긴 했지만, 두 개 정도의 테이블은 항상 비어 있는 상태였다. 실제 ‘만남이 흐르는 곳’은 규모가 상당히 컸던 때문이었다. 이드는 항상 시끌벅적한 이곳의 식사 풍경을 바라보다 한쪽 테이블의 그릇을 정리하고 있는 루칼트를 향해 물었다.
“루칼트, 그런데 오엘은요?”
“아, 그 예쁜 전직 용병 아가씨? 그 아가씨라면 아마 방에 있을걸?”
그의 말에 라미아가 슬쩍 윗 층으로 향하는 계단 쪽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몇 시간 전 파리의 전투가 생각나며 어디가 아픈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었다.
“왜요? 아침에 봤을 때 어디 아픈 것 같지는 않았었는데.”
“걱정 마. 아파서 그런 게 아니니까. 그 아가씨는 점심시간이 좀 지난 후에 내려올 거야. 자기 말로는 한창 용병들이 몰려드는 지금 시간이 너무 시끄러워서 부담스럽다더구먼. 뭐, 시끄러운 게 사실이기도 하고 말이야.”
확실히 지금 시간의 식당은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거친 용병들이 모이는 식사 시간인 만큼 시끄러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 말에 라미아는 오엘의 요리까지 부탁한 후 윗 층으로 향했다. 같이 점심을 먹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잠시 후 이드의 눈에 라미아와 함께 내려오는 오엘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막 샤워를 끝마친 때문인지 뽀얀 뺨이 발그레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라미아와 함께 테이블에 앉으며 방금 전 루칼트에게 했던 것과 같은 질문을 던져 왔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사숙. 이 시간에 이곳에 있다니, 혹시 벤네비스에서 찾고 있던 걸 찾으신 건…”
이드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아니야. 카르네르엘의 레어는 아직 그림자도 찾지 못했으니까. 우선 식사부터 하고 이야기해 줄게.”
이드는 그렇게 말하며 오엘의 등 뒤쪽 루칼트를 가리켜 보였다. 그곳에선 루칼트가 양손에 요리 그릇들이 가득 놓여진 커다란 쟁반을 받쳐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한 달 가까이 그런 일을 해서인지 제법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법 괜찮은 맛을 자랑하는 루칼트의 요리로 점심을 해결한 세 사람은 루칼트에게 후식으로 나온 차를 받아 들고 윗 층. 이드와 라미아의 방으로 향했다. 꼭 숨길 일은 아니지만, 함부로 떠들고 다닐 만한 이야기가 아닌 때문이었다.
방에 들어서며 오엘과 마주 앉은 이드와 라미아는 벤네비스 산에서 받은 디엔의 알람 마법에 대해서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파리에 도착하면서 제이나노와 나누었던 이야기와 두 사람이 직접 나서서 싸웠던 전투에 대한 이야기까지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오엘은 상당히 침착해 보였다. 두 사람의 이야기에 따로 놀라거나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몬스터에 대한 것이야 이전부터 이야기해 오던 것이기 때문에 놀랄 것도 없이 이해한 듯했고, 이드와 라미아의 진짜 실력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그대로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딱히 이드와 라미아의 실력에 한계를 정해 두고 생각한 적이 없는 때문이었다. 다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는지 지나가는 투로 한 마디를 더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저번에 사숙의 절반에 달하는 실력이 되기 전에는 떠나지 않는다는 말은 취소할 수밖에 없겠는 걸요.”
확실히 그랬다. 그녀가 들은 이드의 실력의 반만 생각해 보더라도, 결코 쉽게 올라설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재능이 있다고 해도 평생을 수련해야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경지. 오엘이 천재가 아니거나 평생 이드 옆에 붙어 있을 생각이 아니라면,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앞으로 그 혼란이라는 것이 끝날 때까지 이곳에 머물게 되는 건가요?”
“글…. 쎄…”
이드는 오엘의 말에 머리를 긁적이며 라미아를 돌아보았다. 그것에 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오엘의 말을 듣고 보니, 지금 상황에서는 가장 알맞은 대답처럼 들리기도 했다. 제로에 관한 일만 없다면 말이다. 오엘은 자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드와 라미아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카르네르엘은 계속 찾을 생각이세요? 이미 그녀에게서 들으려던 몬스터의 이상한 움직임에 대해서는 답이 나온 것과 같잖아요.”
하지만 라미아는 오엘의 말에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맞아요.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죠. 아직 무슨 이유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모르는 상황인데다… 몬스터와 함께 미쳐 날뛰는 블루 드래곤의 문제도 있으니, 한 번은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어요. 물론….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쉬어야겠지만요.”
라미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피곤하단 표정으로 방에 놓여 있는 하나뿐인 침대로 걸어가 쓰러지듯 누워 버렸다. 실제로 피곤할 것도 없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사숙. 만약에 그 카르네르엘이 레어에 없으면 어떻하실 거예요? 따로 연락할 방법이라도 가지고 계신 거예요?”
오엘로서는 며칠째 벤네비스 산을 뒤지는 두 사람이 헛걸음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이드는 그런 오엘의 물음에 씨익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주 이드의 입가에 자리하는 웃음. 하지만 지금의 웃음은 왠지… 꺼림직해 보인다고 오엘은 생각했다.
“물론 연락할 방법이 있지. 아주 확실하고도 간단명료한 연락 방법이 말이야.”
“그, 그러… 세요.”
오엘은 이드의 말에 몸을 슬쩍 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카르네르엘의 레어가 비어 있으면 구경하러 올래? 어떻게 연락하는지…”
구경이라니. 연락이라는 것을 하는데 구경할 만한 꺼리가 있을까?
“아, 아니요. 저는 괜찮아요.”
오엘은 이드의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이드와 라미아가 카르네르엘을 만날 때까지 산에 오르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