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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227화


이드와 라미아가 돌아온 그날 밤. 생각대로 오엘은 자지 않고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라미아는 그런 오엘에게 카르네르엘을 만난 사실을 알리고 대충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지만 카르네르엘과의 약속대로 신들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또 들어서 좋을 것도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에 덧붙여 오랫동안 이곳에 머무를 거란 이야기도 더했다. 다음 날부터 이드에겐 딱히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그래도 카르네르엘을 만나기 전엔 그녀를 만나 봐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지만, 그 일을 끝내고 나니 할 만한 거리가 없었던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웬만해야 용병들이 하루 종일 검을 들고 대련만 해대겠는가 말이다. 반면, 이드와는 달리 라미아는 놀면서 시간을 잘 보내고 있었다. 바로 도박으로서 말이다. 한번 해 본 내기에 완전히 맛이 들려 버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라미아가 이쪽으로 운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드의 영향으로 승부를 보는 눈이 길러진 것인지. 매일 조금씩이지만 돈을 따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 했을 때는 한 푼도 따지 못했으면서 말이다. 그 재미가 꽤나 쏠쏠한지 대련이 끝난 후에는 그녀의 입가로 항상 싱글벙글한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그 모습에 저러다 도박에 빠지는 게 아닌가 은근히 걱정을 해 보는 이드였다.

“근데… 켈더크란 사람이 요즘 잘 보이지 않던데… 어떻게 된 거예요?”

이드는 여관 뒤편에서 대련으로 인해 들려오는 날카로운 파공음을 들으며 마주 앉은 루칼트를 바라보며 물었다. 오엘에게 연심(戀心)을 품고 있던 쑥맥 켈더크. 며칠 전 카르네르엘을 만나던 날 아침부터 술을 부어 대던 그의 모습을 본 후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그였다.

“크아…. 실연의 상처는 묻는 게 아니야….”

루칼트는 맥주 거품이 묻은 입가를 쓱 닦아 내며 씁쓸히 대답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눈은 어떤 의미인지 짐작 못할 뜻을 품고서 웃고 있었고, 그의 입은 앞서 말했던 말과는 달리 현재 켈더크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처음 켈더크와 오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짐작한 사실이지만, 친구의 아픔보다는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에 더 재미를 느끼는 듯한 루칼트였다. 정말 이러고도 어떻게 주위에 친구들이 남아 도는지 알 수가 없다. 이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어질 루칼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실연이란 아픈 거야. 그 녀석 말이지 그렇게 술을 잔뜩 퍼마신 다음에 그 전직 용병 아가씨한테 도전했거든. 꿀꺽꿀꺽… 푸아… 그리고 술 퍼마신 대가로 당연하게 처절하게 깨졌지. 제 깐엔 좋아했던 감정을 정리하기 위한 것 같았지만… 쯧… 좌우간 여간 보기 좋지 않더만. 하여간 그 후 이틀 동안 하늘만 보고 있었지. 그런데 말이야.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구. 그 후에는 말이야… 크크큭….”

이드는 마귀 같은 웃음소리를 애써 참으며 뒤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루칼트가 저렇게 웃을 정도라면 뭔가 일이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시나쥬라는 마을 처녀에게 끌려 다니고 있단 말이지. 하하하… 내가 본 바로는 한 성질 하게 생겨서 당차 보이는 아가씨였는데, 여느 때 같이 하늘을 보고 있는 켈더크 놈을 끌고는 이런저런 일에 부려 먹더란 말이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말이야. 더 재밌는 건 켈더크가 그 박력에 죽어서는 꼼짝 못 하고 그 아가씨한테 끌려다닌다는 거지. 뭐, 이번 일을 끝으로 평생 장가도 못 갈 것 같던 놈이 구제될 것 같으니… 좋은 일이긴 하지. 옆에서 보고 있는 우리도 재밌고.”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드는 대충 하나의 그림이 그려졌다. 괄괄한 여자 친구에게 꼼짝도 못 하고 잡혀 사는 남자.

“그럼… 그 아가씨가?”

“맞아. 그 아가씨가 켈더크 놈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야. 내가 그 아가씨 친구들에게 슬쩍 알아봤는데… 그 놈의 그 우직한 성격이 맘에 들었다는구만. 또 쉽게 말 못 하는 점도 그렇고. 크윽, 젠장. 어떻게 그런 게 좋아 보인다는 건지…”

이드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동안 켈더크는 마을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된 덕분에 그 성격과 성품이 확실하게 밝혀졌으니,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잘됐네요. 더구나 아가씨 쪽에서 그렇게 적극적이면… 조만간 국수 얻어먹을 수도 있겠고…”

“국수?”

“결혼하면 축하해 주러 온 하객들에게 해 주는 음식인데, 저희 쪽 전통이에요.”

“음, 확실히 조만간 그렇게 될지도… 아~ 난 어디 그런 아가씨 안 나타나나?”

그때였다. 신세 한탄이라도 할 태세로 의자에 기대앉던 루칼트의 어깨 위로 손 하나가 턱 하니 올려졌다. 그 손의 주인은 다름 아닌 이 여관에 머물고 있는 용병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씨익 웃으며 루칼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넌 아가씨 따로 필요 없잖아. 임마. 넌 넬이 있잖아. 넬이.”

순간 그의 말에 루칼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 붉은 기운은 꼭 술기운만은 아닌 듯했다.

“…. 뭐야?”

“왜! 내 말이 틀렸냐? 뭐… 그렇다면 잘 된 거고. 이 기회에 넬이 돌아오면 내가 한번 대시해 볼까나?”

“그…. 그러거나 말거나…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임마.”

루칼트는 능글맞은 상대의 말에 발끈해서 소리쳤다. 이드는 그 모습에 평소 다른 사람의 일로 재밌어 하던 루칼트의 상황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루칼트가 넬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재밌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투닥거리던 두 사람은 잠시 후 와 하는 탄성과 함께 또 하나의 대련이 끝나며 우르르 몰려들어오는 사람들의 모습에 자연스레 투닥거림을 멈췄다. 대련이 끝난 시간이 점심 시간인 덕분에 루칼트는 지금부터 점심을 준비해야 되기 때문이었다.

“너! 있다 보자.”

그 말에 그 용병은 루칼트가 앉아 있던 자리에 앉으며 가운데 손가락을 흔들어 보였다.

“있다 보잔 놈 하고 나중에 보잔 놈은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던데…”

그 모습에 루칼트가 참을 수 없었는지 부엌 문 앞에서 바로 몸을 날렸을 때였다.

우아아앙!!
우아아앙!!

“긴급. 긴급. 마을 안에 있는 모든 용병들과 남자들은 지금 당장 마을 중앙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긴급 사항입니다. 지금 당장 마을 안의 남자들은 지금 당장 마을 중앙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아아앙!!

처음 이곳 너비스에 왔을 때 들어봤었던 시끄러운 경보음이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울리고 방송이 멎었다. 순간 너비스 마을 전체에 적막이 흘렀다. 결계가 형성되고 난 이후 한 번도 울리지 않았던 경보음이 시끄럽게 마을 전체를 들쑤셔 댄 것이다. 루칼트도 상대 용병의 멱살을 잡고 있던 것을 놓고 굳은 표정으로 마을 중앙 쪽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그에게 멱살을 잡힌 용병과 여관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멍하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재빨리 생각을 정리했는지 루칼트는 멱살 잡을 것을 풀고는 급하게 소리치며 항상 두르고 있던 앞치마를 거칠게 벗어 던졌다.

“자, 빨리 움직여. 경보음이 울렸어. 결코 보통 일이 아니야. 전부 무기 챙기고 뛰어. 오랜만에 몸 풀 기회가 돌아왔다.”

루칼트의 고함과 함께 여관 안 여기저기서 그 소리에 동조하는 고함 소리들이 외쳐졌다.

“좋았어!!”

“확실히 몸 풀어 봐야지. 빨리 움직여라. 자식들아. 늦으면 너희들 몫은 없어!”

“웃기지 마…. 브레이, 내 칼도 갖고 와.”

여기저기 용병들이 바쁘게 여관 안을 뛰어다니는 것을 보며 루칼트는 카운트 안쪽에서 네 개의 단봉을 꺼내 그것들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단봉들은 순식간에 하나의 길다란 검은색 장창으로 변해 그의 손에 쥐어졌다. 장창을 바라보는 루칼트의 얼굴 위로 오랜만에 흥분이 떠올라 있었다. 그런 그의 뒤로는 이드와 라미아, 그리고 오엘과 몇 명의 용병들이 다가와 있었다. 이드와 라미아는 말할 필요도 없고, 방금 전까지 대련에 열중한 오엘과 용병들은 무기를 손에 쥐고 있었던 때문에 방으로 올라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가자!”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루칼트를 선두로 준비를 마친 사람들이 여관을 뛰어 나갔다. 그 뒤로 라미아의 허리를 감싸 안은 이드가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이드의 손에 일라이저가 쥐어져 있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몬스터의 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데…’

그랬다. 이드와 라미아. 두 사람은 몬스터의 기운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또 드래곤의 결계를 부수고 들어올 몬스터가 있다고 생각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무슨 일일까. 이드는 의아함에 더욱 걸음을 빨리 해 루칼트를 앞질러 버렸다. 그리고 그런 이드의 뒤를 오엘이 따르고 있었다.

마을 중앙. 그곳엔 커다란 녹색의 드래곤 스커일이 마을의 상징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미 마을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드래곤 스케일 앞으로 몇몇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방송을 듣고 마을 중앙 바로 옆에 있던 남자들이 모여든 것 같았다. 그런 사람들의 중앙에는 봅이 난처한 표정으로 서성이고 있었다. 이드는 그 모습을 보며 빠르게 그의 앞에 가서 서며 라미아를 내려놓았다.

“무슨 일입니까? 봅씨.”

“아, 자네들도 왔는가. 잠깐만 기다리게. 모두 모이면 이야기를 하겠네.”

그렇게 말을 하는 봅의 표정은 평소와 같은 딱딱함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몬스터가 나타나진 않았으나 그와 같거나 그보다 더한 일이 벌어진 건 확실한 듯했다. 그런 이드의 뒤를 이어 오엘과 루칼트들이 뛰어왔고, 잠시간의 시간 차를 두고서 마을의 용병들과 남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너비스는 그리 큰 마을이 아니었다. 처음 결계가 세워지기 전 언제 몬스터의 공격이 있을지 모르는 이 마을에 사람이 많이 모여들 리가 없는 탓이었다. 그렇다고 작은 마을도 아니었다. 덕분에 모든 사람이 모인 것이 아닌데도 지금 마을 중앙에 모여든 사람은 그 수가 백을 넘어 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고 생각되자 이드와 함께 가장 선두에 서 있던 루칼트가 봅을 다시 한번 재촉했다.

“봅씨 무슨 일입니까? 몬스터가 나타난 건 아닌 모양인데… 무슨 상황입니까?”

“그게 말이지… 이것… 참!”

봅은 난처한 표정으로 얼굴을 한번 쓸어 내리고는 루칼트를 비롯한 모여든 남자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모두 내 말 잘 들으십시오.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마을의 아이들 다섯 명이 없어졌습니다.”

웅성웅성….

그 말에 모여든 사람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없어지다니. 이드는 그 웅성거림에 봅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듯하자 내공을 실어 입을 열었다.

“모두 조용하세요. 나머지 이야기를 들어야죠!”

순간 모든 웅성임이 멈추었다. 봅은 그런 이드에게 고맙다는 눈빛을 보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입 앞으로 작은 마나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 뒤에 일어지는 봅의 목소리는 확성기를 사용한 듯 엄청나게 커져 있었다. 바로 라미아가 마법을 사용한 덕분이었다. 봅은 갑작스런 변화에 잠시 당황하다 곧 진정하고는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또 제가 가지고 있던 결계의 열쇠도… 없어졌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열쇠를 가지고 결계 밖으로 나간 것… 같습니다.”

“이… 이보게 봅. 누, 누군가. 그 다섯 명 이름이 뭔지 말해 보게.”

“맞아. 다섯 명이 누군가.”

모여 있는 사람들 중 몇몇의 남자들이 봅의 말을 끝나기가 무섭게 소리쳤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집에 아이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또 결계 밖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만약 그런 곳에 아이들이 나가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 봅과 마찬가지의 난처함과 급박함이 떠올라 있었다.

“콜린, 구루트, 베시, 토미, 호크웨이. 이렇게 다섯 명입니다. 모두 며칠 전부터 몬스터를 잡겠다고 장난치던 녀석들입니다.”

봅은 그렇게 대답하며 주먹을 쥐었다. 다름 아니라 그 중 자신의 아들의 이름도 들어 있는 때문이었다. 이름이 호명됨에 따라 여기저기서 탄성과 함께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들이 울려 나왔다.

“구… 구루트. 이 놈이… 결국 일을 내는구나…”

“… 봅, 봅. 아이들은 언제 나간 건가. 언제.”

“빨리요. 빨리 움직입시다.”

소리치는 사람들은 당장이라도 결계 밖으로 달려갈 모양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 곁에는 같은 마을 사람들이 그들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그때 다시 봅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귓가를 울렸다.

“아이들이 나간 시각은 알 수 없습니다. 길게 잡으면 두 시간. 짧게는 한 시간 정도. 제가 열쇠 관리를 잘 했어야 하는 건데… 정말 면목 없습니다.”

봅은 그렇게 말하며 깊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그 모습에 루칼트가 나서며 봅의 몸을 세웠다.

“지금 봅씨의 잘못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우선 아이들부터 찾아 봐야죠. 열쇠가 하나 더 있죠? 그리고 혹시 아이들이 어딜 갔을지 짐작 가는 곳이 있습니까?”

“짐작 가는 곳은 없네. 하지만 아이들이 갔다면… 저 산뿐일 거야. 나머진 한 시간 정도의 거리로 탁 트여 있으니까.”

봅이 가리키는 곳엔 나지막한 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결계를 나서서 20분 정도의 거리에 자리하고 있는 산. 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작은 것도 아닌 산이 지만 부드럽고 완만하게 생긴 산세를 보아 꽤나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가 자리를 틀고 앉아 있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곳이다.

산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젠장!!” 이란 한마디가 강렬하게 떠올랐다. 저런 곳이라면 몬스터도 몬스터지만, 아직 아이들이 살아 있을지부터가 걱정이었던 것이다.

“제기랄… 모두 무장을 다시 한번 확실하게 점검하고 챙겨 들어. 이번엔 막는 게 아니고 우리들이 쳐들어 가는 거야.”

확실히 그랬다. 마을을 목표로 달려드는 몬스터를 단순히 막아 내는 것과 몬스터들이 바글거릴 산 속으로 달려 들어가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인 것이다. 그렇게 모두에게 소리친 루칼트는 봅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열쇠 주세요. 그리고 산에 가는 건 저희들. 용병들만 가겠습니다. 아이들을 빨리 찾으려고 사람은 많이 모으신 건 알겠지만… 몬스터와 싸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가 봤자 사상자 수만 늘릴 뿐이니까요.”

급한 마음에 사람들을 불러 모은 봅이지만 카르네르엘이 열쇠를 맡겼을 만큼 상황 판단은 뛰어났다. 봅은 초록색의 작은 드래곤 스케일 조각을 루칼트의 손에 넘겨주며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보였다.

“꼭… 부탁하네. 아이들을 찾아주게.”

하지만 그 말에 루칼트는 뭐라 딱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미 산에 들어간 아이들을 무사히 찾아오는 것은 정말 하늘에 돌보아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해서 별로 자신이 없었다. 루칼트는 봅에게서 몸을 돌리며 손에 들고 있던 열쇠를 이드에게 던졌다.

휙!

이야기 시작부터 루칼트와 봅을 바라보던 이드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열쇠를 받아들며 루칼트를 바라보았다.

“이 중에서 네가 가장 강하잖아. 두 개밖에 없는 열쇈데 가장 강한 사람이 가지고 있어야 제일 든든하거든.”

이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루칼트는 모여 있는 사람 중 용병들만 따로 모았다. 결계가 쳐진 후 여관을 경영하며 용병들을 통제한 덕분에 용병 대장처럼 되어 버린 루칼트였다. 그는 따로 모인 용병들 중에 이번 일에 빠지고 싶은 사람을 빠지게 했다. 하지만 빠지는 사람은 없었다. 오랫동안 머물며 정이 들어 버린 너비스 마을 사람들의 일이기에 남의 일 같지가 않았던 때문이었다. 그러는 중에 따라 나서겠다는 남자들과 아이들의 가족들이 나서긴 했지만 그들은 봅이 나서서 진정시켰다. 이드는 대충 상황이 정리되자 라미아와 오엘을 데리고 앞장서서 산 쪽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세 사람의 뒤로 루칼트를 선두로 한 용병들이 뒤따랐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어린 녀석이 선두에 선다고 건방지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미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그들이었기에 아무런 불만도 표하지 않았다. 이드와 직접 검을 맞대 본 사람은 몇 없지만, 오엘의 실력은 이미 증명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고, 그런 오엘이 사숙으로 모시는 이드의 실력은 보지 않아도 확인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결계를 벗어난 후 이드들은 각자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른 속도로 목표한 산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빨리 도착하면 도착하는 만큼 아이들의 생존 확률이 높아지는 때문이었다. 이에 라미아는 용병들 중 그 실력이 뛰어난 스무 명을 자신과 함께 마법으로 뛰어서 날아가기 시작했고, 이드 역시 오엘의 허리를 부여잡고는 신법을 전개해 엄청난 속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사실 이런 일엔 관여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이드였다. 하지만 직접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었고, 항상 얼굴 보고 생활하는 사람들의 일이기에 나서게 된 것이었다. 또 이미 카르네르엘의 보호를 받고 있는 너비스는 이드가 충분히 관여해도 괜찮은 마을인 때문이었다. 이드와 라미아의 도움으로 스무 명의 용병들과 오엘은 순식간에 목표로 했던 산 아래 설 수 있었다. 20분의 거리를 단 2분으로 줄여 버린 것이다. 나머지 용병들의 모습은 아직 저 멀리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라미아와 이드의 수법에 감동받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루칼트는 재빨리 스무 명의 인원을 네 명씩 다섯 개의 팀으로 나누어 산 속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이드들이 산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흐음… 조용하네.”

이드는 산의 전체적인 기운을 느끼고는 중얼거렸다. 아이들 다섯 뿐이지만 그들이 들어왔다가 몬스터들에게 발견됐다면, 뭔가 소란스러운 기운이 감돌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산은 조용했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두 가지. 아직 큰일이 없거나, 벌써 일이 벌어지고 난 후라는 것. 나머지 세 사람 역시 그런 이드의 뜻을 알아들었는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안도의 한숨임과 동시에 좋지 않은 상황을 생각한 아픔의 한숨이기도 했다.

“우선 어디서부터 찾아봐야… 참, 탐지 마법!”

이드는 어디서부터 찾을까 하는 생각으로 주위를 빙 둘러보다 갑작스레 떠오르는 생각에 라미아를 바라보았다. 왜 진작 탐지 마법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그와 동시에 오엘과 루칼트의 시선도 자연스레 라미아를 향해 돌려졌다. 라미아는 세 사람의 눈길에 귀엽게 머리를 긁적여 보이고는 두 손을 모았다. 그런 라미아의 행동에 주위의 마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알았어요. 하지만 바로 알아보진 못해요. 좌표점이 흔들려 있는 덕분에 그것까지 계산에 넣어야 되거든요. 그러려면 잠시 시간이 걸려요.”

“그래도 해 봐. 이렇게 무작정 찾으러 다니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라미아는 이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스펠을 되뇌기 시작했다. 루칼트는 그런 라미아의 모습을 바라보다 이드와 오엘에게 시선을 돌렸다.

“역시… 마법사가 있으면 편하단 말이야. 그런데 이렇게 되면 다른 곳으로 흩어진 녀석들을 불러 보아야 되는 거 아닌가?”

“아니요. 혹시 흩어진 쪽에서 먼저 찾을지도 모르잖아요. 또 라미아가 아이들의 위치를 알아내도 저희들 넷이면 충분할 것 같구요.”

“그것도 그렇군.”

“그런데… 아이들이 아직까지 무사할까요. 저희들이 들어서자마자 저렇게 움직이는 녀석들이 바글대는 이 산에서요.”

츠아앙!

소호검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뽑혔다. 그 뒤를 이어 이드가 일라이저를 뽑아 들며 라미아 곁으로 자리를 옮겼고, 루칼트도 장창을 든 손에 힘을 더하고서 앞으로 나섰다. 그런 세 사람의 앞쪽. 그러니까 산 속에서 열두 마리의 오크가 씨근덕거리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오크들의 손에는 입고 있는 엉성한 가죽옷과는 달리 척 보기에도 날카로운 칼(刀)이 들려 있었다.

‘확실히… 카르네르엘의 말이 맞기는 맞는 모양이야. 보자마자 저렇게 살기를 드러내다니…’

일행들을 바라보는 오크들의 싸늘하다 못해 살기 어린 눈길에 이드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보통의 오크는 약탈을 위해 접근하는 것이 보통인데 반해 지금 모습을 보인 녀석들은 마치 원수를 보는 듯한 그런 눈길인 때문이었다.

“오엘. 더 볼 필요 없어. 가까이 오기 전에 처리해 보려. 단, 조심해. 녀석들이 죽기 살기로 덤빌 기세니까.”

이드의 말에 오엘은 네. 하고 대답하고는 소호검을 들고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루칼트 역시 창을 한 바퀴 회전시키며 그 뒤를 이었다.

“오래만에 시원하게 몸 좀 풀어 보자구.”

그의 외침 뒤에 이어진 것은 오엘과 루칼트가 일방적으로 승기를 잡아 가는 장면이었다. 이미 검기를 능숙히 다룰 줄 아는 오엘이었고, 장창의 장점을 확실히 살린 실전 위주의 창술에 열두 마리의 오크들은 접근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엘과 루칼트도 승기를 잡았으면서도 감히 오크들을 경시하지 못했다. 정말 철천지 원수를 만난 듯 살기를 품고 달려드는 오크들 때문이었다. 아무리 자신보다 하수라도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상대를 가볍게 상대할 수는 없는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나와 있지.’

이드가 싸움의 결과를 그렇게 결정할 때 뒤에서 라미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드님. 완성됐어요.”

그 말에 돌아본 라미아의 손 위엔 하나의 입체 영상이 만들어져 있었다. 현재 일행들이 올라와 있는 산의 모습을 그대로 축소해 놓은 듯한 산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로 깜빡이는 붉고 푸른 점들. 그 중 한 곳은 네모난 모양으로 네 개의 푸른 점과 아홉 개의 붉은 점을 감싸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드들을 표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중에 다시 눈에 띄는 것이 다섯 개 있었다. 바로 옅은 푸른색을 띠는 다섯 개의 점. 네 개의 옅은 푸른색 점은 산 속 깊이 두 개씩 따로 떨어져 있었고, 나머지 하나만 산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특히 산 아래로 내려와 있는 푸른 점의 앞뒤로는 붉은 점 여덟 개와 푸른 점 네 개가 반짝이고 있었다.

“푸른색은 인간. 붉은색이 좀 많죠? 몬스터를 포함한 산 속에 사는 맹수 급에 속하는 생물체들이에요. 옅은 푸른색은 어린아이구요. 아이들은 그 가진 바 기가 약해서 찾는데 엄~청 고생했어요. 아무튼 기적적으로 다섯 명 모두 살아는 있는 것 같아요. 그 중 한 명은 쫓기고 있는 중이지만요.”

“수고 했…. 어.”

티잉!!

맑은 쇳소리가 울렸다. 라미아에게 말을 건네던 도중 자연스레 고개를 한쪽으로 젖히며 파리를 쫓듯 손을 흔드는 순간 울려 퍼진 소리였다. 좌우간 이드의 뒤통수를 향해 날아든 그 무언가는 이드의 내력이 가득 담긴 손가락에 되튕겨 이드들 주위에 서 있는 많은 나무들 중 한 그루에 가서 푹 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박혀 버렸다. 그렇게 박히고서야 그 모습을 제대로 보이는 그것은 다름 아닌 등 뒤에 격전 중인 오크 중 하나가 던져 낸 칼이었다. 그 모습에 뭐라고 경고를 보내려던 오엘과 루칼트는 입맛을 다시며 다시 검과 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어진 이드의 말과 행동에 그들의 손엔 좀 더 많은 힘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안 끝난 거야? 아이들의 위치는 모두 파악했어. 우리들은 천천히 먼저 올라갈 테니까 빨리 처리하고 따라와.”

말을 마친 이드는 라미아의 손을 잡고서 산을 올라가 버리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산을 올랐을까. 급하게 오크들을 처리한 듯 숨을 헐떡이며 오엘과 루칼트가 달려와 이드와 라미아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이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엔 황당함이란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설마 정말 먼저 가 버릴 줄이야. 덕분에 서둘러 오크들을 베어 넘겼고, 그 과정에서 옷 여기저기에 칼자국이 생겨 버렸다. 급하게 서두른 대가였다. 하지만 느긋하게 오크를 상대했다가는 이드와 라미아를 놓쳐 버릴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것인지. 그냥 그러려니 하는 오엘과는 달리 루칼트는 여기저기 흉터가 남아 버린 자신의 옷과 허둥댔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자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너 무슨 생각으로 먼저 가 버린 거야? 설마… ‘장난이예용.’ 이라는 시덥잖은 말을 하진 않겠지?”

벙긋 웃으며 콧소리를 내는 루칼트의 말에 그를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의 몸에 파르르 닭살이 샘솟으며 뒤통수에 커다란 땀방울이 하나씩 매달렸다 사라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루칼트의 정신 공격에 의한 부작용으로 일어난 닭살을 진정시킨 이드는 슬쩍 고개를 돌려 루칼트를 한심하다는 듯 한번 바라본 후 입을 열었다.

“당연하잖아요. 시간을 너무 끌었으니까 그랬죠.”

자신이 시간을 끌었던가? 루칼트는 자신과 오엘이 오크를 상대하던 상황을 다시 회상해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언제!”

“그랬어요. 아이들을 찾아내는 것도 바쁜데 두 사람이 너무 신중하게 상대하느라 시간이 길어졌죠. 오크들이 대단한 각오로 덤벼온 건 사실이지만 실력 차가 있는 이상 조금은 대담하게 공격하면 금방 끝날 텐데… 너무 신중했다구요. 지금 봐요. 서둘렀지만 어디 상처 입은 곳도 없잖아요.”

루칼트는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입을 닫았다. 이드의 말이 모두 맞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자신이나 오엘, 두 사람 모두 다친 곳이 없었다. 또 상대의 기세에 긴장한 것도 사실이지만… 쉽게 수긍하기엔 분한 느낌이다.

“… 입었어. 상처. 지금 내 옷의 꼴을 보라고… 이건 고치더라도 흉터가 남는단 말이다.”

이드는 투정 부리는 듯한 그의 말에 설핏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네, 네. 돌아가면 제가 대수술… 이 아니라. 새것으로 교체해 드리죠.”

“험… 뭐, 그럴 것까지야. 그럼 이것과 같은 걸로 부탁하지.”

“예예… 그보다 좀 더 빨리 움직이자구요.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진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이드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잡고 걷고 있는 라미아의 허리를 살짝 안아 올리며 발을 좀 더 바쁘게 놀렸다. 그 모습에 뒤따르던 두 사람 역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속도를 높였다.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네 사람이 맡은 일은 아이들의 구출. 언제까지 노닥거릴 순 없는 일인 것이다.

이드와 라미아는 산을 오르는 중간중간 멈춰 서서는 주위의 산세를 살피고 확인했다. 탐지 마법이 펼쳐졌을 때 이미 아이들이 있던 위치를 외워 둔 두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위치의 기준은 아이들이 있는 주위 지형의 형태였다. 그러기를 서너 차례. 이드는 탐지 마법으로 확인했던 지형을 찾을 수 있었다. 나무가 우거졌다기보다는 커다란 바위가 많아 황량해 보이는 주위의 경관과 보란 듯 돌출되어 있는 지형이 사람이 몸을 숨기기에는 여러모로 좋지 않은 위치였다. 숨기 좋은 곳이라기보다는 주위를 관찰하기 좋은 그런 지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탐지 마법엔 이곳에 두 명의 아이들이 숨어 있다고 나와 있었다. 라미아 역시 이드와 같이 주위 지형을 확인한 후였다. 이드와 라미아는 머리를 맞대고 두 아이가 숨어 있던 위치를 떠올려 보았다. 탐지 마법에 나온 아이들의 위치와 지금 현재 자신들이 서 있는 곳의 위치를 따져 봤을 때, 아이들이 있는 곳은.

“저 쪽!”

이드와 라미아의 손이 동시에 한 쪽 방향을 가리켰다. 그와 동시에 네 쌍의 눈길이 한 곳을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커다란 두 개의 바위뿐. 그 주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또 숨을 만한 장소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마법으로 확인한 사실. 네 사람은 천천히 두 개의 바위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네 사람이 얼마 움직이지 않았을 때였다. 나란히 서 있는 두 개의 바위가 닿아 있는 곳의 아래쪽. 딱딱한 흙바닥과 돌이 자리하고 있을 그곳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며 튀어 나왔다. 작은 몸에 갈색과 푸른색, 하얀색의 흙으로 엉망진창이 된 옷을 입고 있는 일고 여덟 살 정도의 어린아이들이었다. 뭔가 좁은 곳에서 겨우 빠져나온 듯한 모습의 두 아이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네 사람에게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흙 범벅이 된 아이들의 얼굴엔 어느새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전혀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었다.

“콜린… 토미?”

이드도 이름을 알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자신들의 이름이 불려서일까. 달리는 속도를 더한 두 아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루칼트의 품에 안겨 들었다. 라미아도 오엘도 아닌 남자인 루칼트의 품에 말이다. 루칼트 본인도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안겨 들기에 안아 주긴 했지만 어색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바로 이드와 라미아, 오엘보다 루칼트가 아이들에게 더욱 친숙한 때문인 것이다. 너비스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세 사람과 결계가 쳐지기 이전부터 너비스에서 생활하며 얼굴을 봐 왔던 루칼트의 차이인 것이다. 성인들도 슬픈 일이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가족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겨드는 경우가 더 많다. 그것은 그 사람이 마음에 의지가 되는 때문인 것이다. 그것처럼 아이들도 급박한 순간에 좀 더 마음에 의지가 되는, 좀 더 친숙한 루칼트에게 달려가 안겨든 것이었다.

“후훗… 녀석들. 항상 장난만 쳐 대더니 이번에 아주 혼이 나는구나. 괜찮아. 이 형이 왔잖냐. 이제 걱정 마.”

아이들이 안겨 오는 상황에 잠시 당황해 하던 루칼트는 곧 두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아이들과 시선을 맞추었다. 그에 따라 아이들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이 더욱 많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런 모습에 의아하게 생각하던 루칼트에게 콜린과 토미의 양 볼과 입이 불룩한 모습이 보였다. 특히 벌려진 두 사람의 입술 사이로 무언가 천 조각 같은 것이 삐죽이 튀어 나와 있었다.

“너희들… 이게 뭐… 뭐야?!?!”

“… 천?… 아니… 옷?”

루칼트는 아이들의 입가로 삐져나온 천 조각을 쓱 잡아 당기다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그것은 이드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루칼트의 손에 들려진 엉망진창으로 찢어진 천 뭉치. 원래 무언가의 일부분인 것처럼 보이는 그 천 뭉치는 아이들의 침에 범벅이 되다 못해 침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으윽…. 으아아아앙!!!!”

“으윽… 으윽… 흑…. 루…. 카트… 형… 흐윽…”

잠시 천 뭉치를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던 네 사람의 귓가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막혔던 입이 열렸다는 듯 아무런 소리도 없던 아이들의 입이 드디어 열린 것이었다. 확실히 이런 천이 입을 막고 있다면 말하고 싶어도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얼마나 오랫동안 입을 막고 있었는지 혀 짧은 소리까지 내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자자… 괜찮아. 괜찮아… 근데 너희들 이건 왜 입에 물고 있었던 거니?”

루칼트는 울음소리와 함께 다시금 안겨드는 두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기를 어느 정도. 콜린과 토미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천 뭉치가 입에 들어 있는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그건… 소리 내지 않으려고… 그래서 입에 물고 있던 거예요. 조금만 소리 내면… 몬스터가 오는 것 같아요”

“옷을 찢어서 입에 넣었어. 쿵쿵거리는 몬스터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서… 그래서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오려고 해서… 그래서 입을 막았어. 소리를 지르면 몬스터들이 달려올 테니까.”

그 말에 네 사람의 시선이 잠시 허공에서 부딪혔다. 확실히 입을 막을 만한 상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입을 천으로 막아 버리다니. 보통은 그냥 손으로 입을 막고 말 것인데. 그리고 조금 익숙해지면 비명도 나오지 않을 테고. 확실히 아이는 아이다. 좌우간 말하는 폼이나 모습을 보아 이번 일로 확실하게 뜨거운 맛을 본 것 같았다. 너비스의 다섯 말썽쟁이로 불리는 녀석들이지만, 지금의 꼴을 보면 앞으로 그 명성은 전설로만 전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번에 돌아가면 며칠간은 악몽에 시달리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이드는 슬며시 웃음을 흘리며 콜린과 토미를 불렀다.

“그런데 너희 둘 나머지 녀석들은 어디 있는 줄 아니? 구르트, 베시, 호크웨이. 세 녀석 말이야.”

그 질문에 콜린과 토미는 서로를 마주보다 똑같이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형. 호크웨이는 겁이 난다고 산 입구에서 기다리다고 했지만… 베시와 구르트는 잘 모르겠어요.”

“올라오다가… 오크를 만나서 도망치다가 떨어졌어요. 내가 봤는데… 음… 저쪽으로 도망간 것 같았어.”

토미가 좀 더 높은 산의 한 부분을 가리켜 보였다. 탐지 마법에 나타났던 또 다른 곳과 대충 맞아떨어지는 위치였다. 이곳의 지형이 주변을 바라보기 좋은 위치인 덕분에 확인이 쉬웠다.

“좋아. 그럼 그 두 녀석을 찾으러 가야 하는데…”

이드는 그렇게 말하며 슬쩍 콜린과 토미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울고 땅에 뒹굴었는지 새까만 얼굴에 두 줄기 눈물자국만 선명하다.

“너희들… 베시와 구르트를 찾아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래? 너희 둘이 말이야.”

씨익. 이드의 입가로 짓궂은 미소가 매달렸다. 이럴 때 왜 장난기가 슬며시 고개를 치켜드는지. 이드의 말을 들은 콜린과 토미의 얼굴에 한가득 두려움이 떠오르더니 주르륵, 수도꼭지를 열어 둔 것처럼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어 두 녀석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내저으며 이드의 양쪽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리고는 뭐라 말도 하지 못하고 서럽다는 듯 울어 대기 시작하는 콜린과 토미였다.

“참나. 그렇지 않아도 잔뜩 겁먹은 애들을 놀리며 어떡해요? 정말 못됐어. 자자… 괜찮아. 너희들만 두고 가는 일은 없으니까. 뚝! 그만 울어.”

라미아는 이드를 향해 눈을 한번 흘겨준 라미아가 두 아이들을 달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옆에 서 있던 오엘도 토미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며 진정시켰다.

“후후후… 두 번 다시 결계 밖으로 나간다는 말은 안 하겠구만. 저 꼴을 보면…”

루칼트는 여유롭게 미소지었다. 두 여성의 노력으로 금세 콜린과 토미가 진정되자 곧 두 아이는 루칼트와 이드의 품에 안겨지게 되었다. 콜린과 토미 때문에 구르트와 베시를 찾아 나서는 일행들의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일단 목적지가 정해지자 네 사람은 빠르게 산길을 헤쳐 나갔다. 탐지 마법으로 확인했을 때 산 입구 부근에서 용병들과 몬스터들에게 포위되어 있던 녀석이 호크웨이 같았으니 남은 두 녀석만 찾으면 임무 완료인 것이다. 정말 하늘의 보살핌이 있었다고 생각되는 일이다. 열 살도 되지 않은 녀석들이 몬스터가 바글대는 산 속에 들어와 한 시간하고도 반을 무사히 견뎌냈으니 말이다. 또 다섯 모두 무사한 덕분에 너비스 마을로 돌아간 후에도 아이들의 부모를 보기 편하게 되었다.

만약 한 녀석이라도 무사하지 못했다면 아이들의 부모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용병들의 책임이 아니지만 말이다. 목적지로 다가가는 이드들의 발걸음은 콜린과 토미를 찾을 때보다 더욱 빠르고 여유로웠다. 지금은 정확하게 목적지의 위치를 알고 있는 때문에 주위 지형을 살필 필요가 없어 자연히 발걸음의 속도가 빨라진 것이었다. 그렇게 목적지를 얼마 남겨 두지 않았을 때였다.

움찔!

“젠장!!”

평지를 달리듯 나아가던 이드의 몸이 순간 멈칫거리며 짧은 욕설이 튀어 나왔다. 그런 이드의 귓가로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애처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그 말에 오엘과 루칼트의 시선이 이드를 향했고, 라미아는 곧바로 이드가 느낀 기척을 느꼈는지 찡그린 얼굴로 보이지 않는 저 앞을 바라보았다.

“… 들킨… 거냐?”

루칼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상황에 이드가 반응을 보일 만한 일이 아이들이 몬스터에게 발각되는 일밖에 없는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드에게서 들려오지 않았다.

쿠어어어엉!!

묵직한 포효 소리가 산 속 사이사이를 내달렸다. 이보다 더 확실한 대답은 없을 것이다.

“보통 녀석은 아닌 모양인데…”

네 사람은 어느새 그 자리에 서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네 사람의 행동을 재촉하는 듯 다시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이드는 그 소리를 들으며 안고 있던 콜린을 오엘과 라미아 앞에 내려놓았다.

“내가 먼저 가 볼 테니까… 아이들하고 천천히 오도록 해.”

“아, 같이 가자.”

이드의 말에 루칼트 역시 토미를 내려두고 창을 거꾸로 세워 들어 빠르게 뛰어나갈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이드는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운귀령보를 시전했다. 순간 이드의 몸이 쭈욱 늘어나는 듯하며 저 앞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치잇… 따라가려면 땀 좀 뽑아야겠구만…”

루칼트는 어느새 작게 보이는 이드의 모습에 순간 ‘따라가지 말까?’ 하고 생각하다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고는 급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루칼트의 발도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 간단한 보법을 익힌 듯했지만, 고급의 보법은 아닌 듯 이드의 그림자만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속도만은 보통 사람이 낼 수 없는 그런 속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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