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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261화


이드의 숨결에 따라 철황기의 정해진 경로로 모여든 내력이 양팔을 검게 물들이며 한여름 아지랑이처럼 일어나 꿈틀거리는 독사마냥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지금까지 이드에게 신나게 얻어맞았던 기사들을 오금이 저리도록 움찔하게 만들었다.

이드는 기사들의 넋 나간 표정들을 훑어보며 얄궂은 웃음을 짓더니 검은 기운에 휩싸인 양팔을 앞뒤로 휘둘렀다.

“이제 편히들 쉬라구. 철사…… 분영편[鐵蛇分影鞭]!”

쉬리릭

순간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검은 그림자가 직선과 곡선의 무수한 선을 그리며 사방을 검게 뒤덮었다.

이드의 팔에서 일어난 아지랑이 같은 기운, 바로 강기가 꿈틀거리는 뱀처럼 또는 날카로운 채찍처럼 오십 명의 기사들을 향해 뻗어 나간 것이다.

“큭, 이게…….”

“커억!”

두 가닥의 강기는 정말 번개와 같은 속도로 뻗어 나가 남은 기사들의 팔다리를 꿰뚫어 그들을 완전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단순히 상처의 정도만 본다면 앞서 쓰러진 기사들보다 확실히 중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십여 명의 기사들이 순식간에 피를 보며 쓰러졌다.

그러나 정작 쓰러진 기사들의 얼굴엔 상처로 인한 고통보다 자신이 어떻게 당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더욱 진하게 떠올라 있었다.

나름대로 번거로운 방법을 써 가며 기사들을 정리한 이드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 이젠 아예 돌처럼 느껴지는 길과 코널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마지막 남은 두 사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생각하기 위해서였다.

코널은 낮게 침음성을 발하면서 최대한 덤덤한 표정을 유지하고 입을 열었다.

“으음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상대는 최소 그레이트 상급 아니면 그랜드 마스터다. 과연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다.”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길에게 하는 말인지 애매한 말이 여전히 듣기 좋은 목소리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까지 여유가 생겨 흘러나온 말 같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정반대라고 해야 할 것이다. 떨려 오는 마음에 길의 어깨에 올려져 있던 그의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고 그 악력이 얼마나 강한지 길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정작 어깨에 시퍼런 멍이 생기고 있는 길은 크게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육체의 아픔보다 마음이 더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적을 앞에 두고 정신을 놓고 있는 것은 죽여 달라는 말과 같다는 걸 잘 아는 코널이었다.

“이걸 가지고 뒤로 물러나 있어라. 우리 목숨을 취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만, 전장의 일이란 쉽게 생각해선 안 되지.”

코널은 자신이 끼고 있던 낡고 볼품없는 반지를 길에게 쥐어 주며 그의 어깨를 자신의 뒤로 밀어냈다.

[텔레포트 마법이 깃든 반지네요.]

두 사람이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던 이드의 마음속에 반지의 정체를 알아본 라미아의 목소리가 생겨났다.

이드는 그녀의 목소리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척하면 착이라고, 코널의 생각이 대충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목숨이 위험할 경우 반지를 이용해서 길을 탈출시킬 모양이었다.

길도 마침 그런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들어 코널을 바라보았다.

“단장님!”

“만약을 위한 일이다. 그의 행동으로 보아 죽일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기록으로 남은 마인드 마스터의 성격을 생각해 봐도 그렇다. 그러니 일단 물러나 있어라.”

“……알겠습니다.”

이어지는 말에 길은 결심하듯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괜히 고집을 부릴 상황이 아니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게 길로서는 더욱 가슴 아리는 일이었다.

코널은 길이 순순히 물러나자 작은 한숨과 함께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제발 이대로 상황이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이드는 코널의 그런 마음은 몰랐지만 그가 더 이상 싸울 생각이 없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정확히는 싸울 생각이 없다기보다는 이드가 내보인 강하디 강한 힘에 온전하게 패배를 인정했다고 보아야 할까.

이드는 날카롭게 독을 품은 철황기를 거두고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코널을 향해 다가갔다.

쓰러져 맥을 못 추고 있는 기사들과 길의 시선이 두 사람을 향해 모여들었다. 부상에 끙끙거리던 기사들도 신음을 주워삼키고 이어지는 상황을 살폈다.

“우리가 패했네. ……선처를 바라네.”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마주 선 두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코널이 고개를 숙이며 패배를 시인했다. 이미 결정이 나 버린 상황에 도장을 찍었다고나 할까.

그런 코널을 꼼짝도 못 하고 지켜봐야 하는 기사들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다. 평소 신뢰하고 존경하던 단장이 자신의 수많은 부하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난생 처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그 속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글쎄요. 딱히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좀 전에 당신이 말했던 대로 목숨을 빼앗을 생각은 없으니 말입니다.”

이드는 별것 아니라는 듯 빙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 코널은 이드의 말에 순간 움찔했다. 그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작은 속삭임을 들었다니. 하지만 곧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기사단을 대신해 감사하네.”

“별로요. 힘자랑을 했으니 구경꾼이 많을수록 좋아서 그런 것뿐이니까요. 대신 이런 일은 이번뿐입니다.”

“……기억하지.”

코널은 이드의 말에 눈을 질끈 감았다.

뒤집어 말하면 다음번엔 죽인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살고 싶으면 다시 오지 말라는 말인데, 직접 협박하는 것보다 더 깊게 가슴에 와 박혔다.

이드는 코널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태도로 보아 다음번 또 이런 일이 있더라도 최소한 그의 기사단은 나서지 않을 것이란 것을 분명하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황궁에 전해주세요. 난 이 대륙 어느 나라에도 속할 생각이 없다고, 구십 년 전에 그랬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어느 나라든 원한다면 나와 적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확실히 전해 주세요.”

“그 말대로 전하지.”

이드는 이번에도 바로 들려오는 코널의 대답에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십여 미터 뒤로 물러서 있는 길을 손짓해서 부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잇고 있는 것은 이드라는 이름뿐이 아니니 분명하게 전하세요. 넌 빨리 이리 안 와? 내가 오라고 손짓하는 게 안 보여?”

그저 기억이나 해두라는 듯이 코널을 향해 말한 뒤에 이드 자신의 손짓에 주춤거리고 있는 길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잘못한 것이 있는 길로서는 쉽게 이드의 말을 따를 수도 없었다. 이번 일에 가장 앞장서서 나선 것이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또 앞서 이드와 마주 서서 자신감에 차 했던 말들을 떠올리면 이드가 어떻게 나올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내 목숨을 원하는 겁니까?”

“하하, 내가 방금 한 말 뭐로 들었어. 이번엔 아무도 죽일 생각이 없다. 더구나 지금 널 죽여서 득이 될 게 없거든.”

“그럼 어째서…….”

“앞서 받지 못했던 사과! 그걸 받고 싶어. 그러니 빨리 와. 네가 늦을수록 누워 있는 놈들 상처가 악화된다. 절반이 관통상이라 병신이 될 수도 있다구.”

이드는 귀찮다는 투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길은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바로 걸음을 옮겼다. 자기 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관철시키는 성격이었지만, 적어도 자기 편의 고통을 저버리는 비겁자는 아닌 길이었다.

그리고 한 번 시작한 일은 망설이지 않는 성격도 가진 것인지 이드의 앞에 서자 바로 고개를 숙였다.

“앞서 제가 했던 행동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그 사과 받아들이지. 하지만 정말이지 기분 나빴어. 이익을 위해서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의 뒤를 치는 것 말이야. 다음부턴 조심하는 게 좋아. 난 그런 걸 특히 싫어하거든. 다음에도 이런 모습을 보이면…… 그 마인드 로드와 마나를 내가 거두어 가겠어.”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그리고 진심이 아닐 확률이 높았지만 이드는 길의 사과를 받아들이고는 한마디 충고를 더하고 돌아섰다.

‘생각 같아서는 함부로 나댔던 길을 확실히 교육시키고도 싶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래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하튼 하고 싶은 일과 말을 다 했으니 여기서는 완전히 볼일이 끝난 셈이다. 이드는 더 이상 꼴도 보기 싫다는 듯 냉큼 돌아섰고, 뭐가 그리 재밌다는 것인지 연신 싱글벙글거리며 눈웃음을 치고 있는 일행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마치 재미난 구경거리를 감상한 표정을 역력히 드러냈는데, 이드는 그게 영 찜찜한 게 아니었다. 암만 즐거워도 적어도 내색하지는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자, 일도 끝났으니 그만 떠나죠. 여기서는 쉬지 못할 것 같으니까. 다음 마을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수고했어, 라미아.”

이드는 방어벽을 거둔 라미아를 챙기고는 검 끝에 묻은 흙을 닦아 냈다.

[뭘요. 이드야말로 수고했어요.]

이드의 칭찬과 손길이 좋았는지 라미아의 목소리에 활기가 돌았다.

“그만하고 어서 가자. 네 말대로 여기 더 있어 봐야 좋은 꼴은 못 보겠다.”

채이나는 이제는 자연스럽게 들리는 라미아의 목소리에 그 사이를 비집고 들며 이드의 등을 떠밀었다.

채이나가 재촉하고 나서자 이드와 마오는 그녀를 선두로 마을을 가로질러 나갔다.

세 사람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자 길은 하늘을 향해 큰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골치 아프겠군.”

과연 누구의 골치가 더 아플까. 그건 아직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멀쩡한 기사단 하나를 몇 달간 활동 정지시켜 버리고 마을을 나선 일행이지만, 마땅히 쉴 만한 곳이 없었다.

상황 파악을 하느라 공연히 길과 벌인 말장난이 시간을 잡아먹었고, 눈에 보이게 위력을 과시하느라 또 터무니없이 시간을 소모하는 바람에 이미 저녁 시간이 가까워진 때였다.

대충 둘러봐도 하룻밤 묵어 갈 만한 곳은 쉬 보이지 않았다.

뭐 딱히 쉴 만한 마을이 없으면 적당한 곳에 노숙을 해도 그만이었지만, 그러고 싶은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얼마 안 있어 이드에게 호되게 당한 기사들을 수습하기 위해 더 많은 병력이 파견될지도 몰랐다. 그럼 또 어떻게 시끌벅적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 말이다.

기사들을 수습하고 나면 자신들의 행방을 찾기 위해 수색조가 만들어질 것은 눈에 안 봐도 선했다. 이건 길이 계획했다고 해서 이쯤에 끝날 일이 아니었다. 그의 계획을 밀어 주는 배후가 어마어마한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하나의 국가, 그것도 그 이름도 대단한 제국이었다. 이 정도에서 포기하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너무도 단순한 생각일 것이다.

“별수 없네요. 그냥 날아가죠.”

이드는 주위를 휘둘러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채이나에게 말을 건넸다.

정령을 불러 주위를 탐문하고 있던 채이나가 무슨 말이냐는 듯 되물었다.

“날아가?”

“예, 대충 둘러봐도 주위에 쉴 곳도 없고, 여기 더 있다가는 또 귀찮은 일에 휘말릴 테니까 바로 드레인으로 이동하잔 말이에요.”

“그러니까 텔레포트를 하자?”

“그렇죠. 이 나라에 있는 동안에는 저런 녀석들이 끈덕지게 따라붙을 게 뻔하잖아요. 쓸데없는 싸움은 피하는 게 좋죠.”

이드는 그렇게 말해 놓고는 슬그머니 채이나의 눈치를 살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긴 했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일리나의 행방을 들을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은 이드의 절실한 마음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이드의 의중을 간파하지 못할 채이나가 아니었으므로 이드는 내심 찔리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드의 주장은 처음 여행을 나서는 마오의 경험을 최대한 쌓아 주겠다는 채이나의 알뜰한 계획에 완전히 어긋나는 말이기도 했다.

“싫어.”

그러나 이드의 잔머리는 채이나의 한마디에 바로 꺾여 버렸다.

오히려 채이나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이드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네 속을 모를 줄 아니? 흥이다. 나는 처음 계획한 대로 걸어서 갈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알아둬.”

“푸, 좋아요. 하지만 이 근처에선 정말 쉴 곳이 없잖아요. 그렇다고 다음 마을까지 뛰어가기도 그렇고…….”

이드는 채이나의 매몰찬 거절에 바로 자신의 생각을 포기해 버렸다. 처음부터 통할 거란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었다. 대신 솔직한 현재 상황을 말하기는 해야 했다.

정말 이드의 말처럼 날아가지 않는 이상에는 뛰어가야 할 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채이나도 딱히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방금 지나온 마을을 돌아보고는 이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좋아, 지금 상황이 이러니 뾰족한 방법이 없지 뭐. 네 말대로 텔레포트하자.”

결국 채이나도 자신의 생각을 조금 굽히고 마는 듯했다.

하지만 이드의 말을 모두 들어 줄 생각은 없었는지 바로 덧붙였다.

“그러나! 바로 드레인으로 가진 않을 거야.”

“설마 다음 도시까지 그렇게 가자고 하는 건 아니죠?”

“물론이야. 난 국경 부근까지 이동해 갈 생각이거든. 네 말대로 이 부근에 계속 있긴 힘들고 또 이대로 국경까지 가려면 수도 부근을 지나야 하는데…… 그건 나도 피하고 싶으니까.”

채이나는 그건 정말 끔찍한 일이라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지금 이렇게 조직적으로 몰려와 다짜고짜 무력으로 해결하려는 걸 보면 많은 기사들과 병사들이 항시 지키고 있는 수도 부근에서는 과연 어떤 상황이 연출될지 상상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시 이들과 부딪히게 된다면 그때는 이 정도 숫자가 아닐 것이다. 얼마나 많은 수가 몰려올 것인가?

그건 채이나가 생각하는 마오를 위한 여행과 마오의 생생한 체험 만들어 주기 이전에 무모한 생고생이고 애꿎은 전쟁이었다.

“흠, 국경까지라……. 뭐 그것만 해도 충분하긴 하죠.”

이드는 이 정도만 해도 다행이라는 듯 만족스런 표정을 그리고는 빙글빙글 웃었다.

‘정말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조금만 돌려놓고 생각하면 이드의 생각이 지극히 상식적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상황에 따라 그건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절대로 텔레포트를 사용하지 않겠다던 채이나의 고집을 절반쯤은 꺾었다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는 것 자체가 어딘가 기형적인 상황인 것이다.

어쨌든 그것으로 거의 한 달이나 걸려야 가는 거리를 한 번에 줄일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이 지금 이드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좌표는 알아? 구십 년이면 도시가 생겼다가 사라지기엔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라 옛날 좌표는 그다지 신뢰할 수 없을 텐데 말이야.”

“우선 가장 큰 도시를 목표로 가보는 거죠. 게다가 저 위에서 보면 주변에 마을이나 도시가 있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기도 하니까요.”

이드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텔레포트를 저 하늘 까마득한 곳에서 마치면 그 일대가 한눈에 들어올 테니 말이다.

채이나는 알아서 하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번에는 바로 떠나자고 했다.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 변심하기 전에 얼른 해치워야겠다는 생각에 이드는 채이나와 마오를 양옆으로 두고 냉큼 라미아를 꺼내 들었다.

“라미아, 그럼 부탁한다.”

[네. 맡겨만 두시라고요.]

보통의 인간 마법사라면 한참을 끙끙거려야 할 일을 물 한잔 마시는 일보다 간단하게 대답하는 라미아의 목소리였다.

우우웅

그리고 그녀의 말과 동시에 은은한 마나의 공명과 함께 세 명의 발밑으로 복잡하게 만들어진 둥근 마법진이 생겨났다.

거기엔 텔레포트를 위한 모든 정보가 담겨져 하나의 완벽한 그림을 이루고 있었다.

이드는 그런 마법진을 바라보다 문득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다름이 아니라 약간의 오차가 있는 것처럼 꾸며 국경 부근이 아니라 드레인 안쪽으로 텔레포트 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얄팍한 생각은 그저 생각으로만 그쳐야 했다. 바로 조용히 들려오는 라미아의 음성 때문이었다.

[한국에 이런 말이 있었죠, 아마? 오 분 빨리 가려다 오십 년 먼저 간다고. 이드, 채이나의 성격을 생각하라고요. 모르긴 몰라도 그렇게 했다가는 그 성격에 이 자리까지 걸어서 되돌아오려고 할걸요.]

물론 그럴 것이다. 채이나의 성격을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을 생각이라는 데 누구나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르긴 몰라도 몇 주의 시간을 줄여 보려다 몇 달을 손해 보게 될 게 뻔했다.

애초에 오차와 실수라는 말이 허락되지 않는 마법이 텔레포트다. 오차와 실수는 곧 죽음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실수라고 믿어 주지도 않을 것이다.

이드는 가만히 자신의 생각을 접어서 저 멀리 내던져 버렸다.

“안 가?”

“아, 가야죠. 자 자, 그럼 빨리 마을이나 도시를 찾아서 쉬어 보자 라미아.”

[호호…… 네, 그럼. 텔레포트!]

‘뭐 낀 놈이 성낸다고, 괜히 속으로 했던 생각이 찔리는지 절로 목소리가 크게 나오는 이드였고 그를 놀리기라도 하듯 라미아는 말괄량이 같은 웃음소리와 함께 시동어를 가볍게 외웠다.’

순간 세 사람은 마법진에서 시작된 오색의 빛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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