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66화
503화
이드는 놀란 에단의 반응이 오히려 신기하다는 듯 되물었다.
“응? 이런 거 처음 봐?”
중원에서 이런 내공을 이용한 기교는 검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경지에 이른 무인이라면 대부분 가능한 일이었다. 일반 양민이나 내공이 경지에 이르지 못한 수련자라면 놀라워 할 일이지만, 적어도 에단처럼 검기를 다루는 검사가 신기해할 장면은 아니라는 것이 이드의 생각이었다. 주르륵.
이드는 다시 잘 보라는 듯 손수건에 물을 적셔 조금 전처럼 손수건을 털었다.
파팡!
다시 뿌연 물안개가 생겼다. 이번엔 보여 주기 위해서 물을 넉넉히 부었더니 물안개가 마차 안을 가득 메웠다. 안개는 열린 창문을 통해 빠르게 사라졌다.
이드는 한번 만져 보라는 듯 에단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손수건을 손에 든 에단은 본 그대로 바삭바삭하게 마른 손수건에 신기해했다.
“마스터, 전 이런 식으로 손수건을 말리는 건 처음 봅니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뽀송뽀송한 손수건을 얼굴에 대어 보는 아이 같은 에단의 행동에 이드가 허탈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난 오히려 이런 걸 처음 보는 네가 신기하다. 검기를 어느 정도 능숙하게 다루는 경지에 오르면 가능한 기법인데 말이야. 정말 처음 보는 거야?”
“당연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이드는 에단이 깊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손수건과 에단을 번갈아 바라보다 손수건을 다시 물에 적셔 그에게 건네주었다.
“한번 해 봐.”
이드가 주는 손수건을 의심 없이 받아 들던 에단은 이드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처음 보는 기술이 신기해서 놀라고, 배우고 싶어서 물었는데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도 않고 갑자기 해 보라면 어쩌란 말인가?
생각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에단의 표정에 이드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누구나 같을 것이다. 차라리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은 상황에서 손수건을 말리라고 하면 의문을 가졌겠지만 행동하기는 쉬웠을 것이다. 손수건의 물을 짜고 바람과 햇살에 말리면 되니까.
하지만 지금처럼 예시를 보여 주고 따라하라면 그 예가된 기술을 분석하고 궁구하고 연구해야 한다. 행동이 먼저가 아니라는 소리다.
이드는 그런 에단에게 자신이 무공을 배우며 사부로부터 들었던 말을 해 주었다.
“일단 해 봐. 아까 내가 하는 걸 봤으니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할까, 혹시 이런 방법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을 테지? 그걸 직접 해 보란 말이야. 이미 완성된 방법을 배우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자신의 생각을 실험하고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는 것도 무공을 배우는 사람에게는 꼭 필요하거든.”
이드는 기분이 묘했다. 자신이 무공을 배우면서 사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이제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이전 동료와 친구, 그리고 동생 같은 아이에게 무공을 가르칠 때와는 달랐다. 그때는 차근차근 깊이 있게 가르침을 전할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
그저 무공을 익히기 위한 핵심적이고 기술적인 방법들만 전했을 뿐이었다.
지금처럼 무공을 익히는 무인의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한 무언(武言)을 전하는 일은 없었다.
이드는 어쩐지 자신이 좀 더 어른이 된 것 같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사실 이드가 전한 말은 모든 분야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 미술이나 음악의 경우는 연주자의 개성과 아이디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에 대한 교육은 처음부터 그 개성과 아이디어를 해치지 않고 더욱 그것을 키우고 확장시킬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 기초를 다져 나가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무공은 달랐다. 무공은 스스로의 몸을 단련하며 결과적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해치기 위한 방법이다. 잠시 잠깐 긴장을 푸는 순간 상대는 물론이고 자신의 몸도 크게 다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엄하게 규율을 잡아 가르치고 절대 다른 시도를 하지 못하도록 단속하며, 배운 것만을 반복하여 몸에 배게 만든다.
이 같은 교육 방법은 문파를 가리지 않고 동일했다. 특히 명문으로 이름 높은 문파와 가문일수록 더욱 엄하게 가르쳤다. 이를 어기면 바로 파문하는 일도 흔했다.
앞서 이드가 에단에게 말했던 내용과는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이드는 에단의 경지에 맞는 내용을 전했을 뿐이었다. 마치 게임에서 레벨이 올라가면서 사냥 맵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중원에서는 이런 제약이 달라지는 시기를 내공을 뜻대로 운용하게 되었을 때로 보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심법으로 단련하고 정련한 내공을 실제적인 힘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점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가 되면 그때까지 그들을 철저하게 묶고 있던 규율 중 일부가 사라진다. 그리고 이 시기 무인은 자연스럽게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바로 육체의 힘을 초월하는 내공이라는 미스터리에 대한 생각으로 말이다. 어째서 내공을 사용하면 몸이 빨라지고 힘이 세어질까? 어째서 이 초식을 사용하면 검기가 생길까? 내공이 어떻게 인간의 몸에 쌓이는가? 어떻게 해야 검기를 검에서 분리시킬 수 있을까? 등의 의문에 대한 생각이다.
이것은 매운 중요한 것이다. 보통 내공을 익힌 무인은 기(氣)와 무공에 대한 근본적인 깨달음을 통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는데, 이 깨달음이 바로 저런 의문을 통해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무인은 새로운 무공이나 기법을 접하게 되면 그 원리를 배우기 위해서 따라 하고, 분석한다.
한데 지금 에단의 행동을 봐서는 그런 사고가 한참 모자란 것 같았다.
“에, 어흠!”
에단은 알 듯 모를 듯 애매한 표정이 되었다.
그는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그렇지 않으면 트와이스 같은 첩보 조직에서 일하지 못한다. 때문에 이드가 하고자 하는 말의 뜻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느냐고 하면 그건 아니었다.
특히 그가 마인드 마스터의 무공을 배울 때 몇 번이나 들었던 말이 바로 절대 배운 것 이외의 일은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지금 이드의 말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말이다.
게다가 이 룰을 어긴 대가로 오버로드, 중원식으로는 주화입마에 빠져 버린 많은 동료들을 에단은 직접 봤다.
그것은 에단을 포함한 동기들에게 일종의 트라우마와 같은 금기로서 위치하고 있었다.
“저, 마스터. 저는 무공을 배울 때 절대 배운 것 이외의 섣부른 짓은 하지 말라고 배웠는데요.”
“맞는 말이야. 당연히 처음 무공을 배울 때는 그래야지. 걷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뛰라고 하면 다치기만 할 테니까. 하지만 이미 달릴 줄 아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걷기만 하라고 말할 필요 없잖아?”
이때 가만히 옆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일리나가 입을 열었다.
“무공을 배울 때 들었던 주의 사항은 누구에게서 배운 건가요?”
“그거야 당연히 교관과・・・・・・ 아!”
일리나의 말에 대답하던 에단은 새삼 놀란 눈으로 이드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이 지금 누구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가. 자신이 배우면서 들었던 룰이 누구에게서 왔던가.
“그럼 해 보겠습니다.”
에단은 축축한 손수건을 펼쳐 들었다.
그는 새삼스럽게 눈앞의 인물이 어떤 존재인지를 떠올렸다.
‘마인드 마스터. 모든 마인드 로드의 주인. 전설!’
그런 대단한 인물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그리고 그런 존재에게서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에단은 이드의 말대로 그가 생각하고 있던 방법에 따라 손수건을 털었다.
철썩!
“……………아무래도 제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에단은 마차의 벽에 점점이 뿌려진 물방울과 자신의 손에 착 달라붙은 손수건을 떼어 내며 말했다. 아직은 가슴의 두근거림을 따라잡기 힘든 교육 방법인 듯했다.
이드가 그 모양에 껄껄거리며 웃었다.
“아하하. 그게 그렇게 간단한 수법은 아니지. 그래도 포기가 너무 빠른 것도 보기 좋지는 않으니까 좀 더 생각하고 해 봐. 일단 검과 이 손수건의 차이점부터 확실히 생각해 본 후에 말이야.”
이드는 슬그머니 내밀어진 에단의 손수건을 도로 밀어내며 말했다.
“뭐야, 그래서 없단 말이야?”
이드가 타고 있는 마차가 포함된 상행의 지휘를 맡고 있는 모지 상단의 상단주 타르코지는 마음에 들지 않는 부하의 보고에 언성이 올라갔다.
“정확하게 확인한 것 맞아? 내가 일락 부지부장에게 부탁받을 때 분명 일행에 엘프가 끼어 있다고 했어! 너 또 대충한 거 아냐?”
타르코지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런 시선을 받은 코시는 내심 뜨끔했다. 그의 앞을 막아서는 젊은 검사 때문에 제대로 확인을 하지 못한 때문이었다. 하지만 언뜻 보기로 미녀의 귀는 분명 길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아닙니다. 제가 확실히 봤습니다. 귀가 길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랜만에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었다.
“쓰으읍.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 엘프가 있다고 했는데 말이야.”
상단주는 여전히 코시가 미덥지 못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선 그 말을 해 준 것이 하이탈 용병길드의 부지부장이기 때문이고, 둘째로 코시라는 사내가 몇 번인가 자신 앞에서 거짓말을 하거나 사실을 제대로 말하지 않거나 해서 넘긴 전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상단주에게 거짓말을 하는 직원을 계속 쓰는 이유는 간단했다. 코시의 취직을 부탁한 인사와의 관계 때문이었다.
‘그것만 아니면 확 잘라 버리는 건데. 이 똥 덩어리 같은 놈.’
타르코지는 인맥 관리 차원에서 코시라는 사내를 자르지 못한다는 사실과 엘프가 없다는 사실에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쩝. 엘프만 있었으면…….”
타르코지는 코시의 보고가 너무 아쉬웠다. 평소 그의 행동과 합쳐져 그가 더욱 미워 보일 정도였다.
“하여간 저놈이 끼면 될 일도 안 돼!”
코시는 난데없는 비난에 속이 상했지만 듣지 못한 척 마차의 천장만 바라보았다.
타르코지는 짜증이 솟았다.
“빌어먹을 꼴란 놈은 무슨 운이 그렇게 좋아서…………… 나도 엘프만 만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데 말이야.”
타르코지는 자신의 상단과 경쟁 관계에 있는 힌 상단의 상단주, 꼴란의 얼굴을 떠올리며 투덜거렸다. 그의 모지 상단과 꼴란의 힌 상단은 비슷한 규모의 중소 상단이었다.
그러던 관계가 갑자기 바뀌게 된 것은 힌 상단에서 귀한 약재이면서 요리 재료인 샬롯의 재배에 성공하면서부터였다. 샬롯은 지금까지 순수하게 약초꾼들의 채집에만 의존하고 있었는데, 힌 상단에서 인공 재배에 성공하면서 샬롯의 유통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귀해서 약으로 쓰는 것이 대부분이던 샬롯을 요리 재료로서 많이 보게 된 것도 힌 상단 덕분이었다. 현재 아나크렌에서 소비되는 샬롯의 가격은 오로지 힌 상단의 의지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대륙에서 유일하게 샬롯의 재배에 성공한 힌 상단은 한 해 한 해가 다르게 그 덩치를 키워 나가고 있었다.
덕분에 샬롯의 인공재배에 성공한 사연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많았다. 확인된 바에 의하면 인연이 닿아 대접하게 된 엘프가 꼴란의 진심 어린 친절과 호의에 대한 보답으로 그가 알고 있는 샬롯의 재배 방법을 알려줬다는 것이다.
타르코지는 그 사실이 너무 배가 아팠다. 그런 일이라면 자신도 잘할 자신이 있었다. 엘프가 원하는 대로 먹이고, 입히고, 꾸며 줄 수 있었다. 그저 자신은 꼴란처럼 엘프와 엮일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을 뿐이었다.
거기다 타르코지를 더욱 배 아프게 만든 것은 엘프의 도움과 함께 떠도는 은밀한 소문이었다. 바로 꼴란이 샬롯의 재배 방법만 알아낸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알려 준 엘프와 은밀한 로맨스도 나눴다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정말 부럽단 말이다. 아름다운 엘프와 재미도 보고 돈도 벌고. 완벽한 일석이조가 아니냐!”
타르코지는 꼴란을 생각할 때마다 배가 살살 아팠다. 소화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저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엘프라는 존재가 그렇게 자주 볼 수 있는 존재도 아니었으며, 원하는 대로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쉬운 존재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이탈에서 고생한 보답인지 이번 상행에 엘프가 함께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잘 엮여 볼 생각으로 청한 것인데 확인차 직접 다녀온 저 코시가 엘프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아, 정말 하늘은 이 타르코지를 버리시는가. 저 역겨운 꼴란 놈이 이 제국을 지배하는 꼴을 봐야만 한단 말인가!’
그때였다.
타르코지와 이야기하던 중에 갑자기 들어온 코시 덕분에 한쪽에 조용히 서 있던, 머리에 커다란 흉터를 가진 대머리 사내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혹시, 그 엘프가 두 명의 검사와 같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중 하나는 검은 머리에 굉장히 잘생긴 젊은 검사 놈이고 말입니다.”
제리 용병대대장 제리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