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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67화


504화

“호오, 그자들을 아는가?”

타르코지가 관심을 보였다.

“어쩌다 일락 부지부장과 함께 있는 모습을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제리가 타르코지의 눈을 바라보며 자신 있게 웃었다.

‘으흐흐흐. 이걸 어떻게 처리한다?”

제리는 현 상황에 속으로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상단과의 계약을 위해서 땅바닥을 굴러 가며 하이탈을 달려 나올 때는 짐작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어떻게 잘만 하면 그 빌어먹을 년놈들에게 아주 큰 엿을 먹여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기회를 살려서 돈도 좀 만져 볼 수 있을 것 같고.

‘영주성에 그놈들의 정보를 팔아서 번 돈도 꽤 됐지! 크흐흐. 그러고 보면 이놈들이 제법 돈을 벌어 주고 있단 말이지.’

제리는 산적과 이드들이 만나던 모습을 보고했을 때 영주를 보좌하는 집사가 건네준 묵직하던 돈주머니가 아직도 눈에 아른거렸다.

그래도 아직은 적자였다.

보상금에 용병길드 지부장에게 사건 무마를 위해 건넨 로비 자금, 그리고 부하들을 치료하기 위한 치료비까지. 영주성에서 제법 묵직한 돈주머니를 받아 나왔지만 결국 남은 것은 용병대가 원래 가지고 있던 자금의 반도 되지 못하는 돈이었다.

더구나 그 후에 영주성이 무너지고 영주가 죽어 버리는 어마어마한 사건이 벌어졌다. 설마 이번 일에 자신이 일러바친 정보와 그 젊은 놈과 엘프 년이 엮여 있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그래서 하이탈의 출입 통제가 풀리자마자 떠나는 상단의 호위에 달라붙은 것이다. 돈도 벌고, 하이탈을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설마 그렇게 따라붙은 상단에 자신의 용병대를 거의 해체시킬 뻔한 년놈들이 섞여 있을 줄은 몰랐다.

더구나 지금 타르코지가 하는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자니, 이놈이 그 화근덩어리 엘프를 노리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말이다.

‘이거 정보를 넘기고 넉넉히 의뢰금만 챙겨야 하는 거야, 아니면 이놈들에게 엿을 먹여야 하는 거야?”

이 상황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까 고민하는 제리에게 타르코지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 자네가 보기에는 어떻던가? 그중에 엘프가 있었나?”

“있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그때 거기 있던 많은 사람들이 확실히 봤습니다. 당장 상행을 호위하는 용병들 중에서도 찾아보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제리가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내심 타르코지가 따로 확인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했다. 일의 당사자들이 있는 용병대를 이끄는 대장으로서 망신스러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망신은 하이탈에서 한 번 겪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래? 그럼 부지부장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군. 그럼 저들 말대로 엘프가 먼저 하이탈을 떠난 것인가?”

일락과 코시를 의심하던 타르코지는 제리의 확신 어린 말에 실망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제리의 말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상단주님.”

“음?”

“제가 생각하기에 그때 그들은 그렇게 쉽게 헤어질 것 같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처음 보고를 들은 타르코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말을 의심하는 제리의 말에 코시가 그를 성난 눈으로 노려보았다.

“하지만 여기 코시가 엘프가 마차 안에 없는 걸 확인했네만?”

타르코지의 말에 제리가 코시를 슬쩍 돌아봤다. 그가 제법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지만, 거친 용병 생활을 오래 한 제리에게 코시가 눈을 부릅뜬 모습은 그저 어린아이 재롱일 뿐이었다.

“예, 저도 뜻하지 않게 보고하는 내용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만, 지금 보고 온 여자가 아주 미인이라지요.”

은근히 목소리를 까는 제리의 말에 코시가 코웃음을 치며 끼어들었다.

“이봐, 지금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러는 거야? 이쁘면 다 엘프라도 된다는 말이야, 뭐야? 내가 그 여자 귀가 길지 않은 걸 봤다고. 그런데 무슨 잔말이 그렇게 말아?”

분명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인간의 귀를 가진 엘프? 과연 그런 존재가 엘프로 인정받을 수는 있을까? 타르코지는 불편한 눈으로 제리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리는 그런 타르코지의 눈을 당당히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상단주님, 엘프는 여러 방면에 뛰어난 존재입니다. 물론 마법에도 뛰어나지요. 그들이라면 모습을 바꾸는 마법 정도는 손쉽지 않겠습니까?”

탁!

타르코지가 무릎을 내리쳤다.

“그렇지! 마법! 마법이 있었구나. 그래, 마법을 사용하면 귀 정도야 짧게도, 길게도 보일 수 있지. 아무렴”

타르코지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얼굴로,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속에는 엘프를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욕심과 안도가 함께하고 있었다.

타르코지는 코시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말 들었지? 너, 그 여자 귀가 마법으로 만든 가짜 귀가 아니라는 건 확인했어? 그거 확인하고 나한테 보고한 거야?”

코시는 타르코지의 어처구니없는 다그침에 입을 딱 벌리고는 할 말을 잃었다.

“아, 아니, 상단주님. 말을 되는 말씀을 하십시오. 검사인 제가 어떻게 마법을 알아보겠습니까?”

“왜 못 알아봐? 직접 만져 보면 될 거 아냐? 부지부장이 엘프가 있다고 했는데, 없으면 그 정도는 해봐야지!”

‘이런 씨벌 놈이!’

코시는 어처구니없는 강짜를 부리는 타르코지의 말에 짜증을 참지 못하고 순간 주먹을 쥐었지만, 곧 힘없이 주먹을 풀고 말았다. 아무리 뒷배가 있는 자신이지만 타르코지를 구타했다가는 그 뒷배도 소용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코시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상단주님! 어느 미친년이 모르는 사람이 귀를 만지도록 그냥 둡니까? 그리고 어떤 남자가 생판 남이 자기 여자 귀를 만지는 꼴을 그냥 두겠습니까? 세상천지에 그렇게 확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코시는 평소 예의를 모르는 망나니라고 욕을 먹는 자신이 입바른 소리를 하고 있는 지금 상황이 못내 황당하고 웃겼다. 하지만 절대 웃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타르코지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에잉, 그러니까 네가 그 모양 그 꼴인 거야! 명령을 받았으면 분위기를 봐 가면서 그 정도는 해야지! 그렇게 하지 못하겠거든 마법사를 같이 데려가든가. 하여간, 쯔쯔쯔.”

타르코지는 손을 흔들어 뭐라 더 말을 하려는 코시의 입을 막고 제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코시는 씩씩거리며 타르코지를 바라보다 마차를 뛰쳐나가 버렸다. 더 있다가는 화를 참지 못하고 기어코 사고를 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꽝!

마차문이 부서져라 닫히는 소리에 타르코지가 다시 한 번 혀를 차고는 제리를 불렀다.

“하여간 미련한 놈 같으니. 그보다 자네.”

꿀꺽!

타르코지의 지목을 받은 제리는 마른침을 삼켰다. 모지 상단의 상단주 성격이 지랄 같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코시가 당하는 모습을 보니 감당이 힘들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함부로 그 년놈들을 이 상단주와 엮어 놓으려고 했다가는 나까지 잘못되는 수가 있겠다. 적당히 한 발만 걸쳐야겠어.’

제리는 타르코지의 성격에 까딱 잘못하면 이드와 칼을 들어야 할 상황이 올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머리 쓰는 것은 둔하지만 눈치까지 없지는 않은 제리였다.

“말씀하십시오, 상단주님!”

“자네, 그럼 엘프의 얼굴은 기억하고 있겠구만?”

“당연합니다. 그 아름다운 얼굴을 쉽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좋아. 그러면 내가 그들을 저녁식사에 부를 테니까 자네가 그 여자가 엘프가 맞는지 한번 확인해 보게. 마법으로 얼굴까지 바꿨으면 어쩔 수 없지만, 나머지 놈들 얼굴이 그대로인 걸 보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은 것 같으니 알아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말과는 달리 타르코지는 그 정도에서 끝낼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으흐흐흐. 빌어먹을 놈들. 어디 제대로 당해 봐라.’

제리는 타르코지 상단주에게 시달릴 이드를 생각하고 속으로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크흠. 그런데 말입니다, 상단주님. 아무래도 확인해야 할 상대가 엘프라서 그냥 움직이기에는 제가 좀 부담스러운데 말입니다.”

타르코지는 난데없는 제리의 말에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는 얼굴로 그를 보다가 곧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랍을 열었다. 

“아! 그래, 확실히 이번 일은 상단 호위와는 관계없는 일이니까 말이야. 받게.”

제리에겐 보이지 않는 서랍 속에는 돈주머니가 크기별로 들어 있었다. 타르코지는 그중 세 번째로 작은 주머니를 꺼내서 제리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이번 일이 잘 풀리면 호위 대금도 내 넉넉히 잘 쳐 주겠네. 따로 챙겨 주는 것도 있을 것이고 말이야. 그러니 확실히 해 주어야 하네!”

그 말에 작은 주머니를 보고 내심 쪼잔한 놈이라고 타르코지를 욕하던 제리가 얼굴을 펴고는 고개를 숙였다.

“물론입니다. 제가 확실히 확인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좋아, 좋아. 흐하하하하!”

이미 일락이 중요한 손님이라며 부탁한 사실은 완전히 잊은 듯한 타르코지였다.


현재 상행의 속도로는 아나크렌에 도착하기까지 삼 일이 걸린다.

최소한 두 번 정도는 노숙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당연하지만 마차를 이용하는 손님은 숙박까지 상단에서 책임을 지고 있었다.

저녁시간이 가까워지자 상행은 적당한 자리에 멈춰서 야영을 준비했다. 마차를 외곽에 둘러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하고 그 안에서 천막과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딸깍.

이드는 마차에서 내려서는 에단을 어이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 손수건은 버려라. 도저히 못쓰겠다.”

그 말에 먼저 마차에서 내린 에단이 얼굴을 붉히며 손에 들고 있던 손수건을 슬그머니 등 뒤로 감추었다. 그의 손에 들린 손수건은 너덜너덜하게 찢어지고 구겨져서 걸레로도 쓰지 못할 모양으로 변해 있었다.

이드는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이 힘으로만 밀어붙일 수 있는 건지.”

“면목 없습니다, 마스터.”

에단은 등 뒤로 숨기고 있던 손수건을 아예 주머니 속으로 넣어서 감춰 버렸다. 이드의 말이 이어질수록 단순한 부끄러움을 지나 자신의 치부를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이 불쌍해 보였는지 슬그머니 라미아가 한마디 하고 나섰다.

[그러지 말고 이드가 좀 도와주지 그래요? 이드 말대로 이미 시도는 몇 번이나 해 봤잖아요.]

순간, 얼굴을 붉히고 있던 에단이 감격한 눈으로 라미아를 바라보았다. 자주 투닥거리던 그녀가 지금 같은 상황에서 자신의 편을 들어 준 사실에 감동한 것이었다.

그리고 에단의 편을 들어 준 것은 라미아뿐만이 아니었다. 일리나 역시 같은 생각이라는 듯 이드의 곁에서 말했다.

“그래요, 이드. 무엇보다 제가 가지고 있는 손수건은 이제 한 장뿐이라구요.”

그러고 보면 에단이 걸레로 만들어 놓은 손수건은 일리나의 것이었다. 이드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는지 에단이 주머니에 숨긴 손수건을 받아내고는 말했다.

“뭐, 두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 그러도록 하죠. 하지만 난 정말 쉽게 할 줄 알았다고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초인기를 가진 에단이라서 더욱 기대했는데, 설마 이렇게 헤맬 줄은 몰랐어요.”

이드는 조금 어이없다는 듯 에단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대로 간파의 눈이라는 초인기를 가지고 있는 에단이기 때문에 더욱 쉽게 해결할 줄 알았는데, 뜻하게 않게 헤매는 모습에 이드는 오히려 살짝 실망하고 말았다.

에단은 실망한 이드의 모습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마인드 마스터를 실망시켰다는 사실이 너무 죄스러웠다. 슬금슬금 숨을 곳을 찾아 굼실거리던 에단이 결국 라미아와 일리나의 뒤로 자리를 옮기고 말았다.

피식-

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이드는 그 모습에 결국 가볍게 웃고는 저녁을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주변을 둘러보다 말했다.

“에단, 어울리지 않는 짓 그만하고 빨리 우리가 쉴 천막이나 찾아!”

“옛. 마스터.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민망함을 해결할 기회다. 에단은 자신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명령에 힘차게 대답하며 이드와 일리나를 막 배정받은 천막으로 안내하려고 할 때였다.

그런 네 사람의 앞을 가로막는 남자가 나타났다.

“……”

에단은 갑자기 앞을 막아선 남자의 모습에 인상을 섰다. 그는 낮에 마차를 찾아와서 강짜를 부리던 예의 없는 남자였다. 

“또 뭐요?”

당연히 좋은 말이 나오지 않는 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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