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68화
505화
‘이놈이!’
아무런 말도 없이 앞을 막아서고 있는 코시의 행동에 에단의 눈초리가 치켜 올라갔다.
에단이 이드 앞에서야 푼수처럼 가볍게 행동하지만, 그건 상대가 이드이기 때문이다. 이드가 전수한 무공을 배운 에단에게 이드는 검의 아버지요, 스승 같은 존재다. 아이가 아버지 앞에서 재롱을 떠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평소에는 가벼운 성격에 방정맞게 행동하지만 사실 에단은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누구나 인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비록 지금은 아니지만 바로 수 주 전까지만 해도 누구나 부러워하는 제국의 기사였다. 또 어디 떠들고 다니지는 못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알아주는 트와이스의 일원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소드 팰러스, 검사들의 성지라고 불리는 곳의 검사였다.
뿐인가. 몇 년 전부터는 초인기를 얻어 초인으로 각성까지 하면서 상부로부터 각별한 관심을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실, 이만하면 누구라도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만했다. 오히려 자만에 빠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좋은 상황이었다.
함부로 이야기하고 다니기 힘든 강점들이 많았지만, 일단 제국의 기사라는 사실만 가지고도 누구도 그를 함부로 하지 못했다.
이런 이름도 들어 보지 못한 상단의 보안 책임자라는 작자가 길을 막아서는 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정체를 감추고 트와이스의 임무를 수행하다 보면 이런 일도 종종 겪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랐다. 그는 지금 이드를 모시는 중이었고, 상대는 그런 이드의 연인인 일리나를 노리고 접근했던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왜 말도 하지 않고 길을 막고 서 있는 거요? 혹시 지금 시비라도 걸 참이요?”
말을 하는 에단의 자세와 말투가 삐딱해지기 시작했다.
크큭, 완전 양아치네!’
이드는 그 모습을 보고 내심 킥킥거렸다. 에단의 자세가 영락없이 길에서 마주친 양아치와 같았기 때문이다.
이드는 두 사람이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 . . . . . .”
코시는 한번 엉겨 보라는 듯이 띠꺼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건들거리는 에단의 모습에 속이 끓었다. 자신이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되었나 싶었다. ‘이게 다 그놈의 대머리 용병 놈 때문이지. 빌어먹을!’
코시는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은 마음을 겨우 눌러 참고는 일을 이렇게 만든 빨간 대머리의 용병 놈을 마음속으로 씹고 또 씹었다.
당장 이 상단을 그만두고 나갈 생각이 아니라면 일단은 상단주가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상단주는 그에게 이드들을 초대해 데려오는 일을 맡겼다. 한 번이라도 얼굴을 본 사람이 익숙할 거라면서 말이다.
‘빌어먹을 단주 새끼. 내가 지 성격을 모르나? 지가 내 성격을 몰라? 내가 가면 좋은 꼴 보기는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날 보냈겠지. 빨리 상단에서 떨어지라는 말이지.’
코시는 빨간 문어 대가리의 용병 놈을 대신해서 이번에는 타르코지를 머릿속에서 밟아 대기 시작했다. 코시가 이드들을 찾아가서 절대 예의 바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 보낸 그 비열한 성깔이 정말 싫었다.
코시는 스스로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타르코지 상단주처럼 속이 배배 꼬인 치사한 인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시펄! 내가 왜 나가? 안 나가!’
사실은 안 나가는 것이 아니라 못 나가는 것이다.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별로 선한 인물이 되지 못하는 코시는 평소 도박을 즐겼고, 덕분에 빚이 제법 있었다. 이대로 때려치우고 나갔다가는 꼼짝없이 빚에 쫓기고 말 것이다. 자신을 상단에 억지로 꽂아 준 인물도 그런 일이 벌어지면 더 이상 자신을 돌봐 주지 않을 것이다.
그사이 여전히 아무런 말이 없는 코시로 인해 에단은 폭발하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코시는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에단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코가 바닥에 닿을 듯이 말이다.
‘이왕 주는 거 홀딱 벗고 준다!’
코시가 눈을 꽉 감고 크게 외쳤다.
“낮의 일은 대단히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쩌렁쩌렁!
커다란 목소리에 주변의 관심이 쏠렸다. 웅성이는 소리와 수많은 시선에 코시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타르코지의 뜻대로 털려 나갈 수는 없었다.
‘홀딱 벗고 준다!”
코시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다시 크게 외쳤다.
“부디 낮의 무례는 용서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쩌렁쩌렁!
다시 한 번 고막을 때리는 코시의 고함 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서 이쪽을 살피던 사람들이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그게 부탁이냐!’
전혀 부탁처럼 보이지 않았다. 저런 박력 쩔어 주는 부탁이 어디 있는가 말이다. 이건 숫제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그건 갑작스러운 코시의 행동에 움찔 놀라서 뒤로 물러났던 에단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행동이 가관이었다. ‘이 미친 새끼 진짜로 해 보자는 거지!’
에단은 얼굴을 붉히며 주먹을 쥐었다. 단순히 허리를 굽히는 행동에 놀라 물러선 것이 부끄러운 때문이었다.
웅성웅성.
와글와글.
“이리 와 봐. 여기 재밌는 일 생겼다.”
이드는 사람들의 웅성임과 함께 모여드는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심사가 편치 않았다.
“끙!”
한편으로는 기가 막혔다.
‘설마 이딴 식으로 사과하는 놈이 있을 줄이야.’
머리가 좋은 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막무가내인 것은 확실하다.
이렇게 사람의 시선이 많이 모여서야 화를 풀 수도 없을뿐더러, 사과를 받지 않을 수도 없게 되었다. 이드는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에단에게 눈짓을 했다.
‘그냥 사과 받고 빨리 보내라. 무슨 속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저놈이 이긴 것 같다.’
끄덕.
에단은 얼치기한테 바보같이 당한 거나 마찬가지인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드가 시끄러운 상황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너, 오늘 운 좋았다. 제발 아나크렌에서는 부디 마주치지 마라!’
에단은 주변을 둘러보고 목소리를 다듬어 말했다.
“사과는 받겠소. 그러니 그만 물러나시오. 당신이 이렇게 큰 소리를 치는 것이 더 우리를 곤란하게 하는 거니까.”
하지만 코시의 허리는 여전히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이번에는 아까와 같이 큰 목소리는 아니었다.
“사과를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상단주님께서 낮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크게 화를 내시면서 꼭 용서를 받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용서를 받거든 상단주님께서 부하가 저지른 무례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저녁식사에 초대하셨다는 말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 하…….”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이드는 그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누가 시켰는지, 스스로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우네, 여우야.’
이건 용서를 한 이상 따라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이드는 여전히 허리를 숙인 코시의 모습을 보며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는 에단의 어깨를 두드려 뒤로 보내고는 앞으로 나섰다.
“안내하시오.”
“감사합니다. 이쪽입니다.”
코시가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부탁드립니다!
타르코지는 멀리서 들려오는 코시의 목소리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으흐흐흐. 곧 오겠군. 저녁을 준비해라.”
타르코지가 옆에 서 있던 시종들에게 저녁을 준비시켰다. 그러자 비어 있던 테이블이 화려한 그릇으로 빠르게 채워졌다.
제리가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저게 저놈 특기거든.”
·목소리 큰 것 말씀입니까?”
제리는 야영장의 정반대 쪽에 있는데도 여기까지 쩌렁쩌렁 울리는 코시의 목소리를 생각하고는 물었다.
타르코지가 재미있다는 듯 피식 웃었다.
“하하하. 분명 그것도 특기이기는 하구만. 하지만 그놈 진짜 특기는 사과하기지.”
“하하하. 그런 특기도 있습니까?”
“있지. 사고와 실수를 밥 먹듯이 하고, 사과도 그만큼 하고 다니다 보니 요령이 생긴 모양이야. 저놈은 상대가 용서를 할 수밖에 없는 시간과 장소와 상황에서 저렇게 목소리를 높이거든. 그러면 상대는 어쩔 수 없이 그 사과를 받아 줄 수밖에 없지. 특히, 처음 당하는 사람에게는 효과 직빵이고.”
타르코지가 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상단주님도 당해 보신 모양입니다.”
“끌, 당했지. 아주 제대로 된통. 생각 같아서는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높으신 분이 함께 있어서 용서해 줄 수밖에 없었지.”
타르코지는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나는 듯 눈가에 살기가 돌았다.
제리는 그 모습에 오히려 궁금증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타르코지와 코시라는 자가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둘 다 성격이 보통이 아니란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중 타르코지가 용서를 했다고 하면서도 아직 살기를 품는 사건이란 뭘까?
“도대체 무슨 사고를 친 겁니까? 그 사람이.”
“상단의 물건을 넘겼지.”
저리 말하는 것을 보면 정상적인 상대에게 넘긴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제리가 물었다.
“누구에게 말입니까?”
“뿌득, 도박 빚 대신에 일리나스 국경 수비대에게!”
제리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곧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입을 떡 벌렸다.
“국경………… 미친…..”
말이 국경 수비대지 해당 영지의 영지병을 말하는 것이다.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가 아니라면 일반적인 국경은 그 근처의 영지가 관리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들이 영지 내부의 일을 하면 영지병이고, 외부의 일을 하면 국경 수비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 들어가는 물건들은 웬만한 것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연줄을 통해 팔려 나가고, 그보다 덩치가 큰 것은 모시고 있는 영주에게 진상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만한 상단이 취급하고 있는 물건이라면 일반 병사들이 처리하기는 힘든 물건일 터. 자연히 영주인 귀족의 손에 넘어갔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귀족의 손에 들어간 물건이라면, 그것을 찾아오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넘긴 물건이 어떤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것을 찾기 위해서 타르코지가 엄청난 고생을 했으리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아니다. 찾아오지도 못한 거 아냐? 허, 참. 목이 붙어 있는 것이 용하네.’
“그렇지. 미친놈이야. 중요한 물건이라 찾지 않을 수도 없었는데 그걸 되찾아 오는 데 그 물건을 구매한 금액의 세 배의 돈이 들었네. 정말 죽일 수만 있었으면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리고 싶었지.”
‘도대체 그 인간 뒷배가 누구야? 무슨 백작이나 자작의 먼 친척이라도 되나?’
제리는 정말 궁금했다. 심지어 타르코지가 아니라 코시로 줄을 갈아타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사고를 쳤는데도 이 성질 더럽기로 유명한 타르코지가 목을 치지 못한 상대라는 배경이 탐이 났다.
하지만 그것은 이후의 일이었다. 두룩두룩 눈을 굴리고 있는 제리를 타르코지가 불렀다.
“그런데 자네, 여기 계속 있을 건가? 얼굴은 보이고 싶지 않다고 하지 않았나?”
이야기를 듣느라 정신이 없던 제리는 그 말에 곧 정신을 차리고는 타르코지의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타르코지의 야영장은 야영장 안에 다시 만들어진 마차 벽 안이었다.
제리가 직접 이드와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일로 함께 있는 것도 아니고, 타르코지의 성격과 이드의 실력이 어떤 문제를 만들어 낼지 알 수 없어서 일단 자리를 피해 있기로 한 것이었다.
대신 일리나의 얼굴을 확인한 후에 마차 반대쪽에 있는 하인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달해 주기로 정해 두고 있었다.
제리가 마차에 오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삐죽이 열어 놓은 두 대의 마차 사이로 네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제리는 그 모습을 빼꼼히 열린 마차의 창문 틈으로 엿보기 시작했다.
“저쪽에 계신 분이 상단주님이십니다.”
제일 앞에는 역시나 코시가 서 있었다.
그 뒤에는 살짝 가벼워 보이지만 유쾌한 인상의 남자와 아름다운 검은 머리의 검사가 있었다.
‘역시 저놈들이지. 잔인한 놈!’
그리고 마지막으로 머리카락을 뒤로 질끈 묶어 올려 귀와 목을 드러내고 검은 머리 검사와 나란히 붙어 서 있는 여성이 따라오고 있었다. “X발. 저 얼굴을 가지고 귀만 짧게 만든다고 해결이 되냐? 크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