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09화
546화
무공의 시작은 마인드 마스터다.
오래전 마인드 마스터는 친분이 있던 몇몇 사람들과 기사단에 무공을 전했고, 그것이 전 대륙의 무인들에게 퍼져 나갔다.
대륙의 무인들에게 무공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그때까지는 오로지 타고난 재능에 맡기고 있었던 마나 수련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기 때문이다. 마인드 마스터가 전했던 무공 중에 귀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대륙의 무인들은 무공의 최고 가치는 마나 운용과 축척 방법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드의 무공은 재능과 관련 없이 마나를 수련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것이다.
덕분에 무공은 무인들의 전유물로 남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일급 연구 대상이 되었다. 그 연구자들 중에는 기사를 주축으로 한 무인들도 있었고, 마법사들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일반 학자도 있었다.
무공은 실로 다양한 사람들의 손에서 해체되고, 분해되고, 해석되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무공을 변형하고 응용한 수많은 기술과 그에 따른 이론들이 생겨났다.
자연히 무공에 대한 정보가 쌓이고 경험이 축적되었다.
이와 같은 노하우를 통해서 단편적인 무공을 익히는 것만이 아니라, 뼈대부터 무공의 정수가 들어간 검법과 창법 등 제대로 형태와 뜻을 품은 무공을 만들어 내는 수준에 도달하고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힘든 일이지 새로운 기술이나 이론을 다양한 방법으로 알뜰하게 써먹는 데에는 도가 튼 것이 인간이지 않은가.
이미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기술이 생겨났고, 지금도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이드의 감시 보고서에 에단이 새로운 기술을 보였다는 내용이 있어도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가 새로운 무공을 풀었다는 것에 주목했지 기술 자체에는 주목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런 기술도 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이것은 에단이 보여 준 무공이 검법이 아닌 탓도 있었다. 만약 에단이 새로운 검법을 펼치거나 검식을 보였다면 소드 팰러스에서도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드 팰러스는 오히려 이드가 이후 얼마나 무공을 더 공개할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 살피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 이드가 움직인 것이다.
그것도 에단이 아니라 소드 팰러스의 어린 수련생을 가르치고 있다지 않겠는가. 비록 소드 팰러스에서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검법이 아니라 수련생이 직접 제작한 특이한 창에 대한 것이긴 했지만, 가볍게 지나갈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클라인 백작이 한걸음에 연무장으로 달려온 이유였다.
아무리 검술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드가 가르치는 것은 마인드 마스터의 무공. 그 가치가 어디 가는 것이 아니다.
그가 전하는 무공에 아직 개발되거나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무공 이론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그 새로운 기술과 이론에서 어떤 기술이 파생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문제였다.
앞서 마인드 마스터가 전한 무공의 가장 위대한 점이 바로 마나를 운용하고 축적하는 점에 있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전수한 다른 무공들의 가치가 가볍다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당장 검후가 평생을 수련한 비전의 검법만 해도 마인드 마스터가 직접 전수한 무공이었다.
그 검법은 검후와 아나크렌 황궁의 비전으로 남겨져 한 초식도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인드 마스터가 전한 다른 무공들은 이미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데도 말이다.
이는 검후와 아나크렌 황궁에서 이 검법을 얼마나 대단하게 생각하는지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저 아이들의 가치도 절대 가볍게 볼 수가 없어지는 것인가.”
클라인 백작은 연무장에 있는 케마란과 네리베르를 바라보다 턱을 쓰다듬었다. 검후가 마인드 마스터에게 가르침을 받아서 절대의 경지에 올랐듯이 미래, 저 아이들이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이다.
“기록에 보면 마인드 마스터가 검만을 쓴 것도 아니지. 저 이드가 검만큼 창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어?”
말을 하고 보니 정말 그랬다. 당장 마인드 마스터가 검후에게 전한 것과 같은 최상위의 창법이 전해지면 저 아이가 얼마나 발전하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때는 소드 팰러스가 아니라 랜스 팰러스, 혹스 링스피어 팰러스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쯧쯧. 나도 검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던 건가? 검이 아니라 단단한 몽둥이를 가지고서도 높은 경지에 오를 수도 있는 일인데 말이야.”
클라인 백작은 제 머리를 툭툭 쳤다.
“아무래도 초인 녀석들은 여기까지 계산이 된 거겠지? 이드가 어떠한 무공이든 풀어 내는 순간 대륙 무인들의 무력 평균이 그대로 올라간다. 그러면 자연히 초인들이 세력 싸움에서 밀리는 경우가 생겨날 수 있지.”
벌써 긴급대책위와 이드 사이의 불화설이 돌아서 빠르다 싶었는데, 초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싶은 클라인 백작이었다.
소드 팰러스에 입성해서 퍼질러 놓은 일들만 열심히 수습하다 보니 판단력이 떨어진 모양이다. 상대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인데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자 자연스럽게 자신이 보고 있는 장면이 초인들의 귀에 들어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놈들이 어떻게 나올지 자세히 좀 살필 필요가 있겠어.”
클라인 백작은 오랜만에 정보부 부장을 좀 쪼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자네도 왔나?
움찔.
귓가를 울리는 늙수레한 목소리에 놀란 숨을 삼킨 클라인 백작의 눈이 빠르게 사방을 살폈다.
‘이 목소리는 철벽의 검왕 존 워스다.’
삼검왕 중의 일인으로 가볍게 움직이지 않지만, 한번 움직이면 결코 상대를 살려 두지 않는 무서운 인물이었다.
-오른쪽 가장 높은 건물이네.
워스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비록 티를 내지 않았으나 클라인이 자신을 찾지 못한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서로간의 실력 차이를 생각한다면 당연한 일이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매번 실력차를 느낄 때마다 클라인으로서는 입 안이 썼다.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약 1km 정도 떨어진 가장 높은 건물의 지붕에 올라 있는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한 사람은 목소리의 주인인 존 워스가 맞았고, 다른 한 사람은 삼검왕 중 가장 말이 많은 마르텔이었다.
‘도대체 언제 온 거야?”
아무리 봐도 보고를 받고 바로 달려온 자신보다 먼저 와 있었던 것 같지 않은가.
긴급대책위에서 이드에 대한 감시와 대응은 클라인이 책임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아직 삼검왕에게 보고가 올라가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이것은 삼검왕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다른 감시 체계가 있다는 뜻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조용히 보고 가지 않고 자신을 부른 것은 어떤 이유인가?
클라인은 머리를 굴리며 간단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꾸벅.
삼검왕과 달리 먼 거리를 넘어 오러텅으로 말을 전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저 아이들이 누군지 알고 있나?
클라인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첫 만남부터 빠트리지 않고 보고를 받고 있으니 모를 수가 없다.
-이번 일은 앞서 에단이란 요원 때처럼 그냥 넘어가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끄덕.
클라인의 생각도 같았다.
-초인과 황궁에서 본격적으로 움직일 거야. 타국에서도 반응을 보일지 모를 일이고, 쯧쯧. 쭉 겪어 왔던 일이지만 정말 맘에 들지 않아. 감히 소드 팰러스의 정보가 이렇게 새어 나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게 말이네.
“…….”
-검후가 계셨다면 그분께 기대어 이 체제를 유지했겠지만………… 검후께서 계시지 않은 지금은 조금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을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빌어먹을.’
클라인은 얼굴에 표정이 드러나지 않게 최선을 다했다.
있는 무게 없는 무게 다 잡고 있는 노인네들이 여유를 부리고 정치에 정신이 팔린 사이 이드와 은색 기사단장의 도움을 받아 검후를 찾고, 동시에 소드 팰러스의 분위기를 바꿔 볼 생각을 가지고 있던 클라인으로서는 생각지 못한 타이밍이었다.
‘시작은커녕 아직 이드란 작자와 말 한 마디로 나눠 보지 못했는데 제기랄.’
클라인은 똥을 밟은 더러운 기분이었다. 하지만 저 노인네가 하는 말이 딱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검후가 없는 상태에서 급하게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치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 속에 들어 있는 시커먼 속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신들만 닥치고 있어도 내가 참 편하겠다고 악을 쓰고 싶지만, 세상 마음대로만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클라인은 크게 공감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미운 놈 떡 준다는 생각으로 두 번 끄덕여 주었다.
-역시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군.
‘젠장, 날 어디다 가져다 붙이는 거야?”
클라인의 입가가 씰룩였다. 워스의 한마디에 순식간에 그와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인간이 되어 버렸다.
ᅳ아무렴 나보다 젊은 자네의 생각이 훨씬 젊고 새롭지 않겠나?
클라인은 이야기의 흐름이 일방적으로 흘러간다 싶었다.
이런 젠장! 외통수다.’
어쩌면 워스가 이곳에서 오러텅으로 자신을 부른 것은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스만이 이야기하고 클라인은 일방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는, 논박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그럼 자네가 어떻게 해야 검후께서 돌아오실 그때까지 소드 팰러스가 좀 더 안전할 수 있을지 며칠 생각을 정리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세. 나도 생각한 것이 있지만 아무렴 자네가 나보다 낫지 않겠나?
결국 생각하던 이야기가 나왔다. 이야기를 나눠 본다지만 삼검왕이 나서서 반대하면 자신의 생각이야 중요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결국 그렇게 자리를 마련하고 자신들의 생각대로 판을 벌이겠다는 소리다.
클라인의 속이 새까맣게 탔다.
소드 팰러스를 운영하는 데 정신을 쏟느라 수련할 시간은 별로 없었지만, 검후님을 보좌한다는 생각에 그저 기쁘기만 했다. 실력이 늘지 않아도 불만이 없었는데, 지금 만큼은 저 멀리까지 오러텅을 날릴 수 없는 자신의 하찮은 실력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그때 저기 아이들이 저자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저자와 어떠한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도 듣도록 하지. 저 아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네. 이번 기회에 그에게 마인드 마스터의 다른 무공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니까. 그럼, 우리들은 자네를 믿고 먼저 가지. 수고를 좀 해 주시게.
“..후우…….”
클라인이 노려보는 중에 두 노인네의 모습에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클라인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목을 조이는 옷을 느슨하게 풀어 냈다.
“더럽게 꼬이면 안 되는데.”
클라인은 사람이 사라진 지붕 위를 잠시 바라보다 링스피어를 휘두르는 케마란의 자세를 교정하고 있는 이드를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왜 하필 이때 이런 짓을 벌여서는………………
일을 벌인 것은 케마란이지만 클라인은 그 사실을 몰랐다.
잠시 연무장을 말없이 바라보던 클라인이 작게 중얼거리며 몸을 돌렸다.
“좀 어색하더라도 어쩔 수 없지. 원인 제공자가 편하게 쉬는 꼴을 그냥 볼 수는 없는 일 아니겠어?”
연무장관리 사무소를 나선 클라인은 빠른 걸음으로 화원을 향했다.
“아무래도 서로 편한 관계는 아닌 모양이야.”
“L||?”
“네 이야기 아니야. 그보다 몸을 더 낮춰!”
이드는 사정없이 일그러지던 클라인의 얼굴을 떠올리며 케마란의 어깨를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