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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230화


667화

익숙한 듯 그림자 아래 숨어 건물을 감시하던 에단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이쿠, 왕창 기어 나왔구나.”

에단의 시선이 향한 끝에는 소형 상단이 운영하는 상점과 창고, 그리고 그 주변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태까지 감시하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빠른 움직임이었다. 상단에 사람이 모이고 바쁜 거야 당연한 일이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간파의 눈을 발동한 에단이 보기에는 확실히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도대체 어떤 미친 상단이 초인들로 상단을 꾸리나?”

눈에 들어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인이었다. 용병 일을 하는 초인을 고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직원까지 초인을 쓸 정도로 돈이 썩어나는 사람도, 초인이면서 상단에 취직해서 직원으로 일할 정신 나간 자도 없다.

에단은 저게 모두 위장이란 사실에 그동안 쌓은 자신의 경력 모두를 걸 수 있었다.

“일단 초인파 놈들 지부라는 건 확실해진 것 같네. 놀란 개미 떼처럼 기어 나온 걸 보면 쉴라 경의 정보가 잘 흘러 나간 모양이군.”

소드 팰러스를 떠나기 전에 이후에 진행될 일에 대해 들어서 알고 있던 에단은 대충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왜 저들이 움직이게 됐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동시에 씁쓸하기도 했다.

계획대로 일이 잘 돌아가는 것은 좋았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자신의 본거지인 소드 팰러스에서 정보가 줄줄 새고 있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정보를 흘린 놈들에 대한 분노도 함께 일었다.

“내가 진짜 언젠가는 깔끔하게 쓸어버린다. 정말!”

에단이 뿌드득 이를 갈 때, 소리 없이 열린 문으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2구역이 움직였다.”

평범한 얼굴처럼 목소리나 말투도 물처럼 흐릿한 특이한 남자였다.

“재미없는 농담이다. 지금 보고 있잖아.”

에단은 비올라가 확보한 좌표를 1구역과 2구역으로 나누어 감시하고 있었다. 남자가 말한 2구역은 당연히 지금 에단이 직접 감시하고 있는 상단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맡은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지.”

남자, 검은돌에서 나온 암살자의 말대로 그들의 임무는 1, 2구역의 감시였다.

“……그렇다 치고, 1구역은 어때?”

“2구역에서 나온 자들 중 일부가 1구역으로 들어가고 있다. 나오는 자는 없다.”

남자의 말에 에단은 바쁘게 움직이는 상단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들이 공격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상태에서 한쪽은 인원을 충원하고, 한쪽은 떠난다?”

“원래 무식한 놈들이 용감하지. 2구역이 진짜다, 부엉이.”

“그렇겠지. 그런데 그 부엉이 소리 좀 그만하지?”

고개를 끄덕이던 에단이 인상을 쓰며 짜증을 부렸다. 부엉이는 트와이스 시절 그와 적대하던 자들이 간파의 눈을 사용할 때의 특징을 잡아 붙인 별명이었다.

“아, 입에 붙어서 말이지. 설마 부엉이, 아니, 고용주가 소드 팰러스 사람인 줄은 몰랐지.”

이후의 일 때문에 대략적인 정보를 전해 받은 남자가 싱글거리며 말했다.

“그 말 그대로 돌려주마. 설마 나도 검은돌이 이렇게 말이 많을 줄은 몰랐다.”

“하하, 이전 고용주들 앞에서야 분위기를 잡아야 하기에 그랬지만 이번엔 다르지. 일단 동종 업계 종사자였잖아.”

익히 암살자라고 하면 떠오르는 모습과는 달리 유쾌한 듯 이야기하는 남자의 모습에 에단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암살단 중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을 가진 자들의 평소 모습이 이럴 줄이야. 자신이 속한 트와이스도 밖에서 파악하는 모습과는 그 속이 달랐지만 검은돌도 만만치 않은 것 같았다. 그런 걸 보면 정보 계통의 인간들이 모두 음험하다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닌 듯했다.

“그만 웃고 저놈들 밟을 준비나 해 줘.”

“움직일 준비는 이미 끝내고 왔다. 언제든 출발 가능해.”

“확실히 실실거리면서도 실력은 확실하군.”

“웃든 울든 검은돌의 이름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남자는 잠시 말을 끊고 에단의 뒤에 있는 문을 슬쩍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저 마법사, 이번 추적에도 함께하나?”

“당연. 저 인간이 초인에 대해서는 빠삭하거든. 도움이 될 거야.”

“부엉이, 아니, 고용주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기대하지. 그럼 마법사에 대한 준비도 같이 하도록 하겠다.”

검은돌 암살단은 유명한 만큼 다양한 사람들과 엮여 있었다. 그런 만큼 그들은 각 인물에 맞는 다양한 대응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동행자와 암살 대상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말이다.

“아, 그리고 네 편지는 오늘 상대에게 전달됐다.”

몸을 돌리던 남자는 깜빡했다는 듯 짧은 말을 남기고 방을 나섰다.

에단은 닫힌 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일어나 비올라가 있는 방의 문을 두드렸다.

“나다.”

원래 에단이 이런 예의를 잘 지키는 편은 아니지만, 비올라가 침입자를 대비해서 만들어 놓은 마법에 당한 후에는 잊지 않게 된 새로운 습관이었다. 

“들어와.”

“…….쯧”

짧은 허락의 말이 떨어지자 에단이 혀를 찼다. 매번 문을 두드리고 비올라의 허락을 받은 뒤 이 방에 들어갈 때마다 상관의 방을 찾은 부하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그렇다고 상대에게 무방비 상태로 있으라고 할 수도 없으니 그저 속으로 삭이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저 자신의 몸을 살펴 줄 실력자를 옆에 두는 대가라고 생각할 수밖에.

비올라의 방에서는 옅은 피비린내가 풍겼다.

에단은 방문할 때마다 달라지는 방의 환경에 미간을 좁혔다.

“환기 좀 해라. 넌 숨 막히지도 않냐?”

“무슨 일이냐?”

에단의 불평을 무시한 비올라가 물었다. 문을 등지고 책상에 앉은 그는 고개도 들지 않은 상태로 무언가를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대놓고 무시하는 태도였지만, 한두 번 겪은 상황이 아니기에 에단은 신경을 끄고 말했다.

“놈들이 움직였다. 곧 추적을 시작할 거야. 준비해.”

“따로 준비할 건 없어. 이것만 마무리하면 끝이니 조금만 기다려.”

대놓고 명령을 내리는 듯한 말투에 에단은 속에서 끓는 화를 긴 한숨으로 뱉어 냈다.

“시간이 넉넉한 건 아니다.”

“이젠 대답도 안 하냐?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데?”

에단은 불쑥 솟은 호기심에 비올라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고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야! 이거 뭐야. 너, 내 머리카락과 피를 가져가서는 하는 짓이 저주 인형 제작이냐?”

ᆞ저주 인형이라니. 어디 그딴 천박한 물건을 여기 가져다 붙여?”

저주인형 발언이 마법사로서의 자존심을 긁은 것인지 무성의하던 말투에 감정이 실렸다.

하지만 지금 에단에게 그런 건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아니, 지금 현장을 보면 누구라도 저주 인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비올라는 칙칙한 회색의 광택을 가진 실과 머리카락을 엮어 작은 인형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으로 인형을 만드는 것만 해도 기분이 나쁜데 회색의 실과 머리카락의 끝이 모두 붉은 피로 찰랑거리는 그릇에 담겨 있다는 점이 더 기분 나쁘고 섬뜩했다.

방에서 풍기는 옅은 피 냄새의 근원지가 바로 저것인 듯 보였다.

무엇보다 에단의 기분을 나쁘게 한 것은 머리카락의 출처가 자신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바로 전날 에단의 상태를 연구하기 위해 꾸준히 피를 뽑아 가던 비올라가 연구를 위해 필요하다며 머리에 동전만 한 구멍을 만들며 한 움큼 머리카락을 잘라 갔기 때문이었다.

“이봐, 내 머리카락 색깔하고 똑같잖아. 여기 그릇의 피도 내 피지? 야! 피와 머리카락으로 인형을 만드는데 그게 저주 인형이지 뭐냐? 이건 저주 초보도 알고 있는 상식이잖아!”

“일단 그런 얼뜨기와 날 비교하는 근거를 이해할 수 없는 건 둘째 치고, 너 따위를 저주해서 어디다 쓰지? 그런 쓸데없는 일에 바칠 노력과 시간이 아깝다. 내가 마음만 먹었으면 그딴 허접한 저주가 아니라 좀 더 고차원적인 저주를 사용했을 거다. 원한다면 즉시 내려 주지.”

자존심이 상한 듯 이글거리는 비올라의 눈을 본 에단은 한 걸음 주춤 물러나고 말았다. 까딱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진짜 위험한 저주를 퍼부을 기세였기 때문이다.

“아,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아무렴. 내가 좀 당황해서 나온 소리야. 내 피와 머리카락으로 인형을 만들고 있는 걸 보니 저주 인형이 딱 떠올라서…………”

“쯧쯧쯧. 제대로 알아 둬라. 저주 인형 같은 건 네 말대로 어린 수련 마법사들이나 하는 애들 장난이다. 진짜 흑마법사들은 그딴 물건 안 써.” 물론 고위 흑마법 중 드물게 인형을 쓰는 경우가 있다. 단순히 저주를 위해서가 아닌, 좀 더 파괴적이고 차마 말로 하기 힘든 정신과 영혼의 파괴라는 참혹한 목적을 위해서 하지만 그런 깊은 사실을 알 리 없는 에단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몰랐던 사실이네. 그럼 내 피와 머리카락을 가지고 뭘 하는 거냐? 저주 인형이 아니라도 솔직히 보기 좋지 않다. 기분도 나쁘고.” 

“흥, 어차피 네 기분 좋으라고 하는 일은 아니다.”

말하는 사이에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은 비올라가 곧 인형을 완성했다. 그는 완성된 인형을 피가 담긴 그릇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피가 남김없이 인형에 흡수되어 사라졌다. 그 괴기스러운 모습이 아무리 봐도 저주 인형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게 했다.

‘저거 아무리 봐도 그쪽인데…………?’

에단이 혹시나 하는 의심에서 검은돌에 성물의 조달을 의뢰할 결심을 굳히는 사이 검은 상자를 꺼낸 비올라가 인형을 그 안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동시에 굳게 닫혀 있던 비올라의 입술이 다시 열렸다.

“이 인형은 너와 연결될 인형이다.”

“……그게 저주 인형 아니냐?”

“그렇게 원한다면 효율은 나쁘지만 이 인형으로 저주를 내려 줄 수도 있다.”

농담이 아니라는 듯 비올라가 검은 상자의 뚜껑을 살살 문지르며 말했다.

“아하하, 미안. 이제 저주 인형 말은 꺼내지 않을 테니까 계속 말해.”

에단이 이전 상사를 향해서 손바닥 비비던 실력을 발휘했다.

“…………너도 알겠지만 꾸준히 분석하는 중에도 네가 초인력을 흡수한 이유에 대해서 알 수 없었다.”

끄덕끄덕.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자신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자자수 영지에 도착한 후에도 연구를 명목으로 피를 요구했으니까. 저 인형이 퍼마신 피가 하루 이틀 만에 모인 것이 아니었다.

덕분에 비올라의 존재가 감시 임무에 방해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걱정으로 끝나 버렸다. 혹시나 하는 생각과 다르게 초인을 살피는 일도 없이, 방에 틀어박혀서 식사 때를 제외하고는 얼굴도 비치지 않았었다.

사실 에단으로서는 아무리 비올라가 생명의 관에서 초인을 연구한 초인 전문가라고 하지만, 기본적인 마법 실력이 더 뛰어난 라미아가 없는 상태에서 그가 무엇을 알아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만약의 상황을 대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저 인간 앞에 대놓고 말할 수는 없지.’

아무렴. 그랬다가는 아직 용도를 알 수 없는 인형이 진짜 저주 인형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성물은 구해 두기로 결심했다. 그 사이 비올라의 말이 이어졌다.

“몇 가지 가설을 세우고 분석한 결과, 이 현상을 밝히기 위해서는 네가 초인력을 흡수하는 그 순간의 변화를 알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 인형은 바로 그 순간의 변화를 기록하고 알려 주는 용도다.”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었지만 에단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그거 결국 내가 초인을 죽여야 한다는 말이잖아. 위험하다고 마스터께서 금지하신 일이라고.”

“나도 일부러 초인을 죽이라고 할 생각은 없다. 당장 죽일 초인도 없고 말이지. 하지만 이번 일을 하다 보면 초인을 죽일 가능성이 높지. 이 인형은 그때를 위한 준비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 다시 실험을 위해서 초인을 잡으러 다닐 수는 없으니까.”

“뭐, 확실히 위험한 임무란 건 틀린 말이 아니지만…….”

어쩐지 굉장히 뒤가 찝찝해지는 발언이기도 했다. 혹시 비올라가 자신이 만든 인형의 성능과 연구를 위해서 일부러 초인을 유인하거나 사건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니라고 하지만…… 연구에 있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비올라의 속성을 봐서는 크게 믿음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지금은 그 말을 믿는 수밖에.

“진짜 당부하는데 엉뚱한 짓 하지 마라.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지? 믿는다!”

“걱정 말도록.”

끝까지 약속한다는 말이 없다. 맹세라도 강요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른 에단이 문으로 향했다.

“그럼 가자. 밖에서는 준비가 끝났으니까.”

“그러지.”

비올라를 뒤에 둔 에단은 이번 임무의 안전을 간절히 기도했다.

“아, 그전에 이드 님께 보고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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