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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236화


673화

마차가 소드 팰러스의 정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자신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이드는 오랜만의 여행으로 기분이 가벼워졌다.

생명의 관과 검후의 숲 일로 외부에 다녀오기는 했지만, 마법을 통한 이동을 여행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도착하고 나서도 싸우기 바빴고.’

그렇다고 해서 소드 팰러스가 좁다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후작 성을 중심으로 건설된 곳이 작을 턱이 있나.

당장 일리나가 살던 시온 숲보다 넓은 곳이 소드 팰러스였다. 전 대륙에 이름 높은 명소인 만큼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시설과 상단이 입점해 있어서 제국의 수도처럼 없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좁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형식적이지만 소드 팰러스 외부로 나가는 것을 제한당했기 때문인지, 이드를 경계하는 삼검왕의 행태 때문인지 정확하게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어쩌면 이드가 너무 넓은 세상을 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중원도 그랬고 대륙의 평민도 그렇지만, 그들은 소드 팰러스보다 작은 마을에서 타지를 모르고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보통이니까.

그와 비교하면 이드는 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먼 곳을 돌아보고 있었다. 하나의 나라가 다 뭔가. 나라와 차원과 대륙과 시간을 넘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을 자랑하며 돌아다녔다.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한곳에 묶여 있으니 갑갑증을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무엇보다 시온에서는 스스로 원해서 머물렀기 때문에 갑갑함 대신 편안함을 느꼈지만, 소드 팰러스에서는 작은 인연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고 멈춰 있어야 했으니까.

“어쩐지 저택을 답답해하는 일리나의 감각을 알 것 같다. 시원하네.”

코끝을 스치는 속도감에 스르륵 눈이 감겼다.

[흐응, 과연 그럴까요? 모를 것 같은데?]

라미아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뭘 몰라? 너도 나오니까 시원하고 좋잖아.”

[기분이야 그렇죠. 하지만 일리나가 느끼는 감각은 그것하고 조금 달라요. 조금 산소가 부족한 느낌이랄지, 아끼는 인형과 떨어진 느낌이랄지. 아무튼 그런 거예요.]

그 애매한 느낌은 뭐냐? 그리고 너도 결국 자세히는 모르잖아!”

[이드보다는 잘 아네요, 뭐.]

‘휴~ 다행히 기분 상한 일은 없나 보군.’

시시한 말싸움 중인 둘의 모습을 살피던 벤 자작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일리나를 남겨 둔 일로 혹시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했는데, 지금의 분위기로 보아 그런 것은 아니다 싶었다.

벤자작은 마차의 상자에서 항상 읽던 책을 한 권 꺼내 손에 들었다. 길고 지루한 마차 여행에서 책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하지만 사실 그 모습은 위장이었다.

책을 펼쳐 든 벤 자작의 정신은 온통 이드와 라미아에게 가 있었다. 혹시라도 편하게 나누는 이야기 사이에 쓸 만한 정보가 있을지 모르니까. 그의 이런 행동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잊지 않고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책장까지 넘기고 있었다.

그러나 벤 자작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었다.

마음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두 사람에게 말로 하는 이야기는 작은 유희, 진짜 중요한 이야기들은 마음으로 주고받았다.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벤 자작은 한 번씩 이어지지 않고 툭툭 끊어지는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마차가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조금 넘었을 때 식사 때가 되었다.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멈추게 되면 그만큼 도착이 늦어져 이동 마법진을 이용할 수 없을 겁니다. 해서 마차에서 먹을 수 있는 정도로 가벼운 도시락을 준비하기는 했지만, 원하신다면 마차를 멈추겠습니다.”

“이동 마법진을 이용하지 못해요?”

“예. 긴급 상황이 아니라면 밤에 이동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벤 자작의 대답을 들은 이드는 망설임 없이 고를 외쳤다.

“마차 안에서의 도시락도 나쁘지 않죠.”

대중교통의 꽃이 바로 도시락이지 않겠는가! 마침 기차 안에서 먹던 도시락이 생각나던 참이었다.

“하면 동행하신 분들의 도시락은 기사를 통해 전달하겠습니다.”

벤자작이 좌석 아래서 작은 아이가 들어갈 만큼 커다란 바구니 두 개를 꺼내며 말했다.

동행이 있을 거라는 이드의 말에 미리 준비한 것으로 보였다. 후작과 황궁의 후광을 등에 업고 호화롭게 꽃길만 걸어 다녔을 것 같은데 이런 걸 준비했다니, 참 꼼꼼한 성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기사 분들의 식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걱정 마십시오. 다 그들만의 방법이 있으니까요.”

이드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말 위에서의 식사에 익숙해지는 것 말고 방법이 있을 리가 있나.

“그래도 마음이 쓰이는군요. 그렇다고 이동을 멈출 수는 없으니, 자작님만 허락하신다면 돌아가며 마차 위에서 식사를 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마차 지붕도 그렇게 안락한 것은 아니지만, 말안장 위보다는 백배 편할 것이 분명했다.

“하하하, 기사들이 좋아하겠습니다.”

“이 도시락 바구니도 제가 전달하도록 하죠.”

“호오, 어떻게 말입니까?”

이드가 도시락 바구니를 잡아 들자 벤 자작이 흥미 가득한 눈으로 살폈다.

그에 빙긋 웃은 이드가 바구니를 창밖으로 내밀더니 격공섭물의 공력을 이용하여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저런! 어엇……………”

그 모습에 놀란 벤 자작이었지만 곧이어 바구니가 물 찬 제비처럼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뒤따르는 마차의 창문 안으로 날아드는 모습에 탄성을 발하고 말았다.

마법을 이용하면 쉬운 일이기는 하지만, 바구니를 던진 사람은 마법사가 아니라 이드였기 때문이다.

소드 팰러스에서 기사 수련을 한 벤 자작은 허공을 나는 바구니에서 연상되는 것이 있었기에 놀라운 현상을 금세 이해했다.

“정말 대단합니다. 방금 것은 플라잉 소드의 응용이 아닙니까?”

비행하는 검.

플라잉 소드라는 것이 정확히 어떠한 기술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무슨 형태인지는 짐작이 갔다.

‘비검술일까? 어검술일까?’

“비슷합니다.”

“역시 마인드 마스터의 무공입니다. 굉장하군요. 검도 아니고, 무거운 바구니를 저와 같이 날리다니요. 어허허, 사람을 태워서 날릴 수도 있겠습니다.”

감탄하며 농담으로 던진 말에 이드가 고소를 머금었다.

‘어검비행이라고, 어검술의 한 갈래지요.’

문득 농담이 아니라 진짜 가능한 기술이라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 주면 어떤 모습을 보일까 궁금했지만, 그랬다가는 또 한바탕 시끄러워질 것이기 때문에 이드는 생각만 해 볼 뿐이었다.

벤 자작이 준비한 도시락은 제법 맛이 있었다.

아무렴, 자작이 특별히 지시해서 준비한 도시락이니 맛이 없을 턱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목적지로 하고 있는 이동 마법진이 있는 곳은 어느 영주님의 영지입니까?”

도시락을 뒤적이던 이드가 포크 끝을 물고 물었다.

“부르마탄은 황제 폐하의 땅입니다. 황제 직할령이지요.”

“이동 마법진의 반대쪽도…………?”

“황성과 한나절 거리에 있으니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확실히 수도에 해당하는 범위다.

“역시 수도로 통하는 이동 마법진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나 보군요.”

소드 팰러스를 경계하는 황궁의 속내를 거침없이 표시하는 이드의 말에 벤 자작이 어색하게 웃었다.

“한나절 거리라면 저희도 바로 황성에 들지는 못하겠군요. 황궁으로 바로 통하는 이동 마법진은 없는 겁니까?”

“반대편 집결지에 방문자용 저택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 하룻밤 주무시면 됩니다.”

벤 자작은 식은땀이 나는지 수건을 꺼내 이마를 닦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황궁에는 이동 마법진을 두지 않습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사고를 대비한 것이지요. 더구나 지금처럼 좌표에 이상이 생긴 때는 있던 마법진도 없애야 할 때가 아니겠습니까. 잘못해서 황궁의 심처로 이동되기라도 한다면 끔찍한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벤 자작은 자신이 말하고도 두렵다는 듯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정말 그의 말처럼 황궁의 고위 관리나 황제가 있는 곳의 좌표가 겹쳐서 황제가 죽기라도 하면 제국에 큰 분란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큰 사건이 아니라도 황후와 후궁들, 그리고 황자, 황녀들의 거처에 누군가 이동되어 그들의 알몸을 목격하거나, 한창 사랑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 민망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일 아니겠는가. 더구나 황가(皇家)의 인물들이 그 대상인 만큼 민망함으로 끝나지 않는다. 반드시 목격자의 목이 떨어질 것이다.

그때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라미아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래도 황궁에서 밖으로 향하는 일방통행의 이동 마법진은 있겠죠. 만약을 대비해야 하니까.]

벤 자작이 굳은 얼굴로 입을 닫았다.

라미아의 방금 이야기는 국가 최고 기밀이기 때문이다. 언급한 것만으로 목숨이 위험한 이야기.

“그와 같은 이야기는 이후 아무에게도 해서는 안 된다. 혹시라도 네 주인께 해가 될 수 있다.”

벤자작이 마치 아이에게 하듯 엄한 얼굴로 경고했다.

[비밀 통로야 어디든 있는 거 아닌가요. 뭐 중요한 일이라고. 하지만 조심은 하죠. 대신 궁금한 게 있어요. 이동 마법이 불안정해졌다면 초인들은 어때요?]

라미아는 혀를 쏘옥 빼물었다. 우선 큰일로 정신을 빼고, 진짜 궁금한 것을 물어 답을 얻는다. 그녀는 검후의 숲에서 확인한 황금 장막을 떠올리고 있었다.

“흠, 그건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초인들이 없어서. 특히 공간계 초인기는 드물다. 그러나 들리는 말로 공간계 초인기는 여전히 이상이 없는 것 같다고 한다. 어차피 공간계 초인기로 장거리 이동은 무리니까.”

[흐응, 장거리는 무리란 말이죠. 그럼 영지 사이를 이동하는 건 힘들겠네요?]

“그렇지.”

단호한 긍정에 라미아가 빙긋 웃었다. 그럼 검후의 숲에서 자자수 영지까지 이동한 황금 장막은 뭔가?

[수십 명을 한 번에 이동하는 것도 역시 힘들겠죠?]

“하하하하.”

이번엔 아예 대답도 없이 웃기만 한다.

“이드 님의 아티팩트가 어디서 초인들에 대한 허황된 소문을 듣고 왔나 봅니다.”

“뭐, 그럴지도요.”

건성으로 답한 이드가 도시락을 뒤적였다.

말하는 것으로 보아, 검후의 숲에서 은색 기사단을 습격한 자들에 대해서 자작은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황궁에서 모르는 건지, 자작만 모르는 건지 모르겠네. 그럼 자자수 영지의 초인에 대해서는 알까?’

은색 기사단이 그들을 제압한 후 반응을 보면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은…………….

“냠, 이것 참 맛있군요. 실력이 좋은 요리사를 아시나 봅니다.”

맛있게 도시락을 즐기는 일에 집중할 때였다.

그렇게 이드가 식사를 즐기고 있을 무렵.

두다다다다.

케마란과 네리베르가 성난 표정을 한 채 전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

아무 말 없이 입술을 질끈 깨물고 달리는 박력에 그녀들 앞에 있던 사람들이 다급하게 길을 터 주었다.

그 덕분에 두 사람은 지금까지 중 가장 빠르게 저택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익숙해서 이제는 자신의 집과 같아진 저택의 문을 열어젖힌 케마란이 바락하고 소리쳤다.

“마스터어!”

불안감과 서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일리나가 쿡쿡 웃으며 읽고 있던 전자책을 덮었다. 지구에 대해 배우며 라미아에게 받은 책이었다. 

“왜 대답이 없으세요? 씨잉! 정말 우리만 빼놓고 황궁에 가신 거 아니죠! 그럼 진짜 거짓말쟁이 되는 거예요!”

“…….”

케마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평소라면 이때쯤 말렸을 네리베르도 조용했다. 말은 안 했지만 그녀의 마음도 케마란과 비슷한 듯했다. 이후 무슨 이야기가 더 나올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 뒤 부끄러워할 두 아가씨를 배려해서 일리나가 늦지 않게 문을 열고 나섰다.

그녀의 등장에 우물쭈물하던 케마란과 네리베르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휴우.”

“으아~ 다행이다. 일리나 님이 계셨어. 괜히 쓸데없는 소문 때문에 땀나는 것 좀 봐.”

안도하는 네리베르의 한숨을 뒤로하고 케마란이 삐질삐질 배어 나오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일리나 님. 지금 밖에 마스터가 황궁의 자작과 소드 팰러스를 떠났다고 소문이 나고 있어요. 어떤 나쁜 놈이 그딴 헛소문을 퍼트렸는지 모르지만, 그 때문에 저희도 깜짝 놀란 거 있죠. 일단 마스터께 헛소문이 돈다고 알려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자신이 무례하게 소리쳤던 사실이 마음에 걸리는지, 소문 탓을 하며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는 케마란의 모습에 일리나가 뺨을 감싸며 흥미롭게 말했다.

“지켜보는 사람이 많은 걸 알았지만, 그 소식이 벌써 두 사람의 귀에까지 들 줄은 몰랐는데. 인간의 소문이란 대단하네요.”

“…네?”

“일리나 님?”

“두 사람이 들은 소식은 사실이에요. 이드는 아까 벤 자작과 함께 먼저 황궁으로 출발했어요.”

방글 웃으며 사실을 고지하는 일리나의 말에 그대로 잠깐 굳어 있던 케마란이 갑자기 소드 팰러스의 정문을 향해 휙 돌아서며 소리를 질렀다. “마스터는 거짓말쟁이!”

그리고 그 옆에서 네리베르가 작게 속삭였다.

“흠흠…… 소소하게 동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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