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99화
836화
이드는 제압한 마수의 아가리를 강제로 벌려 이빨을 확인하고는 실망했다. 딱 봐도 어제의 놈과 똑같아 보였지만, 그래도 마수라는 놈들이 워낙 별난 놈들이 많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같은 놈이다.
마수 체면에 발톱 한 번 못 휘둘러 보고 꼼짝없이 치아 검사를 당하던 마수는 애처로운 으르렁거림을 남기고는 내력의 그물 안에서 검은 재가 되었다.
놈의 특성을 모르면 몰라도, 알고 있으니 처리가 쉽다.
이드는 곧이어 세 개의 상자를 열었다.
“쭛.”
아니나 다를까. 상자 안에는 전날 보았던 대로 두 눈이 파내지고, 회색 뇌를 노출한 사람의 머리가 들어 있었다. 어제 보고 다시 보지만 어째 다시 보는 지금 느끼는 혐오감이 더 크다.
“험한 세상 미련두지 말고 저세상으로 가시오.”
상자에 든 머리를 꺼내어 화장한 이드가 세 사람의 명복을 빈 후, 남은 상자의 안팎을 삼매진화의 불길로 정화하고는 아공간에 던져 넣었다.
“어째 감시조로 와서는 장의사 일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네.”
검은 마수가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시신을 확인한 이드는 작게 한숨을 쉰 후 알단테와 조원들을 불러 시체를 확인시켰다.
“꺄아아아악!”
또 손가락이 깨지고, 미친 비명이 터졌다.
“어머나, 또?”
전날과 달리 이론 연구 중이던 붉은 입술의 여 마법사, 프리실라가 안경을 벗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는 여인을 보며 안경다리를 물고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방 안의 분위기 때문인지 손을 타고 흐르는 피와 살점 때문인지 전혀 귀여워 보이지 않았다.
“어제는 6번, 오늘은 3번이네? 너희 고양이들 강화시켜 두지 않았니?”
“아닙니다. 말씀하신 대로 1단계 리미트를 풀어 두었습니다.”
프리실라가 제작한 마수는 에너지 소모가 격렬해서 리미트가 붙어 있었다. 리미트는 각각 마수에 달린 초인의 수명과 마수를 깎아 내는 형태의 2단계로 되어 나뉘어 있었다.
“흐응, 그런데도 당했단 말이지. 제법 혈기 왕성한 놈이 온 모양이네. 그럼 나머지 리미트를 해제해도 어떨지 모르겠네. 좋아, 일단 너희는 지금 가서 고양이들 남은 리미트도 모두 해제해. 그리고…………….”
잠시 고민하던 프리실라는 곧 재미있는 것이 떠올랐다는 듯 붉은 유리병을 꺼내 주며 말했다.
“이것도 같이 먹이고 와.”
“다, 다 먹일까요?”
78번이라는 숫자가 적힌 유리병에 안색이 파래진 연구 마법사가 두 손으로 조심해서 받아들며 묻자 프리실라가 화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이드는 알단테들이 시체에 대한 조사를 마치자 어제와 마찬가지로 정령을 불러 그들을 화장시켰다.
“휴~ 어떻게 된 것이 어제도 오늘도 단서를 남긴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알단테가 그 모습을 모며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그만큼 약이 강하다는 거겠지.”
“그래도 감시자들 중에는 고문 훈련을 받은 사람도 있는데, 아깝습니다. 차라리 인간에게 잡힌 거였으면 작은 단서라도 남겼을 텐데요.”
“이쪽의 판단 실수지, 마법사들이 평범한 가드를 세웠을 리가 없다는 걸 생각했어야 하는데 말이야. 그래도 아직 남은 곳이 많으니, 다른 것이 있나 기대해 봐야지.”
과연 기대할 수 있을지. 조금 회의적인 느낌을 받은 알단테가 이야기를 돌렸다.
“그런데 여기 마수가 어제하고 같은 놈인데도, 어제보다 훨씬 빨리 죽이신 것 같습니다. 마수 놈들의 힘이 달랐던 겁니까?”
“아니, 똑같은 놈이야. 다리 힘은 좀 강했던가? 그래 봤자 어차피 짐승이지.”
뭐, 어려울 것 있느냐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 이드다.
마수를 직접 제작한 프리실라가 들었다면 자존심에 제대로 스크래치 생길 발언이었다. 마수 제작에 들어간 초인의 수명을 2배 빠르게 소모하는 리미트를 해제하고도 고작 다리 힘이 좀 강했던가 하는 말을 듣고 있으니.
그러나 이드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개미의 힘이 두 배 강해져 봤자, 개미는 개미일 뿐이니까.
“그럼 이 패턴으로 남은 놈들도 사냥해 보자고. 알았지?”
이드의 말에 알단테가 이드가 보던 것과 같은 지도를 꺼내 들고는 정신의 관을 중심으로 이드가 그렸던 것과 같은 동그라미를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 패턴대로라면 앞으로 여덟 마리 남았습니다.”
“거기에 한 마리 추가해 두지. 작은 이빨 놈. 이 영역에 그놈이 있을 거라고 여겼는데 없는 걸 보면, 영역에 구애받지 않는 특별한 놈일 가능성도 있으니까.”
“그럼 산 정상으로 조원들을 둘 더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넷을 더 보내.”
이드는 자신 대신 정상에 남은 조원을 떠올리며 말했다. 자신의 말대로 영역의 구분 없이 떠도는 마수가 있다면 셋으로는 도망칠 시간도 벌기 힘들다.
“그리고 남은 조원들은 나와 함께 다음 영역으로 넘어가지. 지금까지 놈이 사냥을 했으니, 이번엔 우리 차례다.”
마침 화장도 끝난 시점.
“충.”
가슴을 두드린 알단테의 지시에 따라 조원 넷이 산으로 달려갔다.
이드와 남은 조원은 그들과 반대 방향을 향해 앞으로 나갔다. 예상되는 마수의 위치가 있으니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향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이 향기도 어지간한 마약보다 더 강력하지?’
이드는 공기 중에 떠도는 향기를 압축해서 상자와 같이 아공간 한쪽에 던졌다. 마수도 마수지만, 토벌대를 생각하면 오히려 이 향기가 더욱 위험할지 몰랐다.
중요한 순간 전장에 이 향기가 살포된다면 어떻게 될까?
내공의 운용이 능숙한 기사들은 괜찮겠지만, 적지 않은 기사들이 감시조의 조원들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중요한 전투에서 그런 인원이 조금만 나와도 문제는 심각해질 수가 있다. 막말로 저 향기에 사람을 유혹하는 기능뿐 아니라 사람을 미쳐 날뛰게 하는 기능이라도 붙어 있다면?
희생자도 적지 않을 것은 물론, 그 전투는 패배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 어째 생각할수록 심각하잖아.”
아무래도 상자와 달리 이 향기는 용기사를 불러서라도 긴급으로 토벌대로 보내 분석해서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았다.
라미아라면 빠르게 대응 방법을 찾아 줄 것이 분명했다.
“일단 택배는 남은 마수를 처리한 후에 신청하도록 하고, 손님 받아라!”
향기의 경계점에 알단테들을 두고 온 이드는 눈앞에 선 검은 나무를 향해 손을 뻗어 당겼다. 순간 이드의 손에서 뿜어진 내력의 그물이 감나무에 달린 감따는 집게처럼 상자만을 나무에서 떼어 냈다.
상자에서 검은 마수가 재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옭아매는 것은 당연!
“벌써 세 번째 같은 놈인데 일은 능률적으로 해야지. 쓸데없이 힘 뺄 필요 없는 거 아니겠어.”
이드는 그 자리에서 형상 그대로 잿더미로 변해 날리는 검은 나무의 모습을 보고는 이제는 익숙하게 상자의 뚜껑을 따고 안에 든 초인들에게 안식을 주었다.
삼매진화로 상자의 소독까지 마치고 아공간에 던지는 데까지 걸린 시간 30초. 워낙 빠르게 끝난 사냥에 일대에 퍼진 향기도 흩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풍련장으로 회오리를 만들어 향기를 모아 흩어 버리고, 알단테들을 불러 시체를 확인하고 화장하는 등, 뒤처리에 수십 배의 시간이 걸렸다.
일단 그렇게 패턴이 정해지자 사냥 작업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드는 차례차례 세 마리의 마수를 더 사냥할 수 있었다. 놈들의 영역에는 감시조가 오지 않았는지, 시체를 널어놓지 않은 놈도 있었다.
그런 사냥 중에 변화가 생긴 것은 여섯 마리째를 사냥할 때였다.
분명 마수의 영역 안에 들어왔는데, 향기가 나야 할 시점에 아무런 향기도 나지 않은 것이다.
“단장님?”
“조장과 조원들은 영역 경계선까지 물러서서 대기하도록. 이 앞은 나 혼자 갔다 오지.”
지금까지 모든 사냥을 이드 혼자 했는데, 상황에 변화가 있다고 뭐라고 하겠는가. 오히려 가까이 갔다가 갑자기 향기에 취해 버리면 이드에게 짐만 될 뿐이다.
“충.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닭 모가지를 비틀듯 마수를 상대하는 이드에게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것도 웃긴 일. 알단테들이 조용히 물러나자 이드가 쏘아지듯 앞으로 튀어 나갔다.
변화가 생긴 이상 신중할 필요도 있지만, 빠르게 대처할 필요도 있는 법.
후자를 선택한 이드는 영역의 중심으로 빠르게 달렸다. 혹시라도 놈이 앞의 마수들과 달리 영역의 중심에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으니까. 뭐, 결과적으로 그럴 필요는 없었다.
“왜 향기가 없나 했더니. 뉴 페이스가 있어서였군.”
앞서는 검은 나무가 있어야 할 자리.
그곳에 거대한 뱀이 머리를 빳빳이 세우고 있었다. 아름드리 통나무 같은 굵기에 롱소드 같은 독니를 가진 뱀은 검은 마수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와 힘을 뿜어내고 있었다.
“과연 정신의 관에서도 드디어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갑자기 패턴이 변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검은 마수와 같이 검은 광택이 흐르는 가죽과 뱀의 대가리에 박혀 있는 세 개의 상자를 보면 검은 마수와 그 근원이 같아 보였던 것.
“그런데 입에 물고 있는 게 설마 여의주는 아닐 테고.”
놈을 살피던 이드는 뱀의 입에 물려 있는 붉은 유리병을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정신의 관에서 더 이상 손쉬운 사냥감을 내어 주기로 하지 않았다면 이유 없이 붉은 병을 입에 물려 놓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챙강.
그런 이드의 의문에 대답하듯 검은 뱀이 병을 깨고 그 안에 든 내용물을 마셨다.
“쿠와와와!”
생긴 건 뱀인데. 울음소리는 여전히 마수다.
길게 울부짖은 놈이 부들부들 떨더니 병이 깨진 주둥이를 시작으로 붉은 선이 생겨났다. 그리고 붉은 선이 꼬리까지 이어지자.
치이이익!
쩌억 벌린 검은 뱀의 입에서 호스로부터 물이 뿜어지듯 검은 액체가 쏘아졌다.
하지만 겨우 물대포 속도에 잡힐 이드가 아니다. 이드가 피한 자리에 쏟아진 액체는 땅을 녹이며 검은 독연을 뿜어 댔다.
순식간에 그 주변에 있던 풀과 나무가 죽어 나갔다.
이드는 그 모습에 붉은 병과 그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변한 모습이나 갑자기 증폭된 기세.
“이제는 짐승도 도핑을 하는 놀라운 시대로구나. 그래 봤자 짐승은 짐승이지. 안 그래?”
만독불침의 이드에게 독을 사용해 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드는 검은 독연 속을 거침없이 내달리며 검기를 쏘았다. 은색의 검기가 부챗살처럼 쏟아지며 정확히 뱀의 목을 노렸다. 어차피 검은 마수와 근본이 같다면 이놈 역시 상자만 빼면 사라질 놈일 테니까.
퍼퍽!
“꾸와와와!”
하지만 이드의 노림수와 달리 놈의 목은 잘리지 않았다. 검기가 닿는 순간 놈의 목이 순식간에 세 배 이상 두꺼워져 버린 탓이다.
무극검강의 강렬한 검기에 구멍이 나긴 했지만, 목이 너무 굵어 잘리지 않은 것.
“꾸와와와!”
우우우웅!
무엇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사자후와 같은 음파 공격까지.
우우우우~
“마수와 다른 건 겉모습만이 아니란 건가”
투명한 검막으로 공격을 막아 낸 이드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