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03화
840화
그레센 대륙의 늑대인간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지성과 이성을 가지고 인간과 교류할 수 있는 라이칸과 인간의 피에만 관심 있는 몬스터인 웨어울프가 그것이다.
같은 피가 흐르는데도 아인종과 몬스터의 모습을 동시에 가진 희귀한 생명체가 그들이다.
하지만 이들을 보기는 결코 쉽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는 엘프나 드워프보다 더 보기 어려운 이들이다.
이런 늑대인간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바로 뛰어난 신체 능력이다.
웨어울프도 라이칸도 마법은 사용할 수 없지만, 정말 순수하게 강한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나 강한가 하면 한 점의 마나도 깃들지 않은 순수한 육체 능력만으로도 중급의 소드 마스터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프리실라가 부리는 베릴이라는 놈은 단순히 웨어울프의 외형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런 신체 능력까지 잘 흉내 내고 있었다.
‘그나저나 웨어울프라니. 메르시오가 생각나네.’
똑 닮은 외형도 있지만, 카린의 기억에서 그를 보았기 때문일까. 베릴을 보며 이드는 메르시오를 떠올렸다.
사실 베릴이나 메르시오나 외형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같은 늑대인간이라면 구분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드에겐 늑대인간의 얼굴을 알아보는 재주 같은 것은 없었으니까.
굳이 차이점을 찾자면 검은색 털과 은색 털이라는 색깔의 차이 정도일까.
아니, 하나가 더 있었다.
‘가장 크고 중요한 힘의 차이.’
“컹컹!”
입을 쩍 벌린 베릴이 손톱을 흔들자 검기가 솟았다. 정확히 따지면 손톱에서 솟았으니 조기라고 해야겠지만, 손톱의 길이가 단검만 하니 조기라고 부르는 것은 영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봤자 메르시오의 은빛 송곳니에 비교하면 귀여운 수준. 어른과 아이 정도가 아니라 자전거와 불도저만큼의 차이다.
“미안하지만 좀 더 큰 다음에 와라.”
심드렁한 눈을 한 이드가 기묘한 손놀림으로 휘몰아치는 검기를 헤치고 베릴의 쩍 벌어진 아래턱을 잡아챘다.
“켕!?”
베릴이 당황한 듯 소리를 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드의 손이 닿자 빼곡히 앞을 메운 검기가 어째서 기름 위의 삼겹살처럼 미끄러지며 산산이 흩어지는 건지, 자신의 턱은 왜 이드의 손에 잡혀 있는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르겠지? 그러니 더 커서 와라.”
물론 오늘 자신의 손에서 살아난다면 말이다.
휘리릭!
턱을 잡은 이드의 팔이 철연영의 무리를 따라 움직인 결과, 허공에서 회전한 베릴의 몸뚱이가 달려오던 힘을 더해 바닥에 깊이 처박혔다. 콰앙!
동시에 이드는 손가락 끝에서 지검을 뽑아 베릴의 목에 있는 상자를 노렸다.
이놈들의 약점은 심장이나 머리가 아니라 상자라는 것은 지겹도록 확인했다.
푸확!
그리고 이드의 지검이 휘둘러지는 순간 바닥에 박힌 베릴이 사라지더니, 프리실라 앞에 나타났다.
“흐응~ 역시 실력은 뛰어나네. 하지만 우리 베릴을 앞서 잡은 멍청한 놈들과 같다고 생각하면 큰일 날 거야.”
공격을 하다 되레 당한 베릴의 모습에 놀라던 프리실라는 베릴이 이드의 손에서 벗어나자 우쭐하며 말했다.
“글쎄. 그놈이 그놈인 것 같은데?”
이드가 천천히 그녀를 향해 돌아서며 말하자 베릴의 목에 있던 상자 중 하나가 빠각 하고 쪼개지며 검은 연기를 뿜어냈다.
검과 공간 이동이 교차하는 찰나의 순간 이드의 지검이 상자를 베어 낸 것이다.
“보자, 이제 아홉 개 남았나? 그 똥개하고 미리 작별 인사라도 해 두는 건 어때?”
“흥. 고작 열 개 중 하나 가지고 오만한 거 아닐까?”
이드의 말이 기분이 나빴던 듯, 독기 오른 눈으로 노려보던 프리실라가 지팡이 끝으로 베릴의 목을 두드렸다. 그러자 쪼개진 상자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거기서 새어 나온 검은 연기가 베릴의 몸을 두 배로 키웠다.
“그리고 다 깨진다고 해서 끝날 것 같아? 이 아이 옆에 내가 있는데 말이야. 호홋.”
프리실라의 말과 함께 베릴이 컹 하고 짖으며 이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놈은 단순히 덩치만 커진 것이 아닌 듯, 힘도 속도도 더 빨라져 있었다. 하지만 자전거 한 대가 두 대 된다고 불도저를 이길 수 있나.
무엇보다 웨어울프의 강대한 신체 능력을 모사한 베릴이지만, 가장 중요한 야수의 본능은 가지지 못했다. 하드웨어는 좋은데 소프트웨어가 엉망인 격이랄까.
앞서의 공격보다 빨라진 공격을 한 뼘의 거리를 두고 피해 낸 이드는 세 번 발을 놀려 베릴와 위치를 바꿔 프리실라와 마주하고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주인을 잡으면 자동적으로 얌전해질 똥개인데. 굳이 힘들게 다 깰 필요 있겠어?”
“막아라! 베릴.”
순간 자신과 이드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오싹함을 느낀 프리실라가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의 명령보다 이드의 발이 베릴의 등허리에 닿는 것이 먼저였다.
허리를 꺾어 버릴 듯 깊숙이 파고든 이드의 발에 베릴과 이드가 서로 반대편을 향해 날아갔다.
즉, 프리실라와이드의 거리가 순식간에 줄어든 것.
이드는 그 속도 그대로 프리실라를 둘러싼 붉은 보호막을 두드렸다.
퉁! 쿠웅! 쿠쿵!
이드의 손바닥과 주먹이 붉은 보호막에 닿을 때마다 거대한 북을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프리실라가 급히 주문을 외워 보호막을 강화하자, 붉은 그물 같던 보호막이 고치처럼 변했다.
그에 이드도 손에 힘을 더했다. 딱 보호막이 강해진 만큼의 힘이다.
덕분에 충격이 약해지지 않자 프리실라는 베릴을 부르며 미친 듯이 빠르게 주문을 외워 나갔다.
동시에 프리실라의 부름을 받은 베릴이 흉흉한 기세로 이드의 등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소프트웨어가 엉망이다. 웨어울프의 형상을 하고 제대로 싸울 줄을 모른다. 이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베릴의 공격을 모두 피하며 무위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프리실라의 보호막을 두드리는 손길도 쉬지 않았다.
베릴은 이드를 쫓고, 이드는 베릴의 공격을 피하며 보호막을 두드리는 뺑뺑이가 한동안 이어졌다.
어찌 보면 바보 같은 뺑뺑이 속에서 이드가 한쪽 허공을 눈에 담았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데도 반응이 없어. 설마 죽어도 좋다는 건가?’
이드가 바라보는 곳. 거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의 덩어리가 떠 있었다. 이드는 그 힘으로부터 은밀한 시선을 느꼈다.
일정한 법칙을 가지고 변화하는 마나의 흐름을 더한 원견의 마법이 분명했다.
분명 프리실라가 나타날 때는 없던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났다. 이드가 일부러 힘을 줄이고 있는 이유도 바로 저 지켜보는
자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적당히 프리실라가 위험해지면 뭔가 반응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혹시 이 여자, 버리는 카드인가?’
6장로씩이나 되는 자를 버리는 카드로 쓸까 싶지만, 묘하게 천둥벌거숭이 같은 모습을 보면 그럴듯하기도 하다.
“이봐, 당신 혹시 정신의 관에서 왕따야?”
“그게 뭔지 모르지만 아니다!”
뜻은 몰라도 짜증나는 어감에 프리실라가 바락 소리쳤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했는데.
의심스럽지만 확인해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이드는 아쉬움을 느꼈다. 하지만 원인이 무엇이건 무슨 상관인가. 그녀에 대한 지원이 없다는 게 중요한 것이지.
‘더 이상 간을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으니, 슬슬 기어를 바꿔 볼까.’
보는 눈이 있는 만큼 힘 조절을 해야겠지만, 언제까지 똥개, 마법사와 놀아 줄 수는 없다.
이드가 마음을 바꾸는 순간, 귀신같이 그것을 감지한 프리실라가 이를 악물었다.
“저게 어딜 봐서 평범한 기사란 말이야?”
평범한 기사라면 베릴의 공격을 저렇게 손쉽게 피할 수가 없었다. 어떤 미친놈이 감시자로 저런 실력자를 보냈는지 모르지만,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사냥에서 오히려 자신이 잡아먹히게 생겼다.
프리실라는 이렇게 된 이상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겨우살이의 가지 끝에 박힌 손톱 넷. 베릴. 1번에서 4번까지 한정 해제를 명령한다.”
영창을 쉬지 않던 프리실라의 목소리가 기묘하게 갈라지면서 한 입에서 두 가지 말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동시에 정신없이 이드의 등만 쫓던 베릴이 목덜미에 매달린 상자 네 개를 뜯어 입에 털어 넣고는 으적거리며 씹어 삼켰다.
“이 빌어먹을 개새끼가! 토하지 못해!”
이드는 그 모습에 욕지거리를 쏟아 냈다. 베릴이 씹어 삼킨 상자에 살아 있는 초인들의 머리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법사가 저 좋을 대로 흉흉한 실험 재료로 삼아 써먹는 걸로도 모자라, 개 먹이 신세라니!
돌아선 이드의 손에서 뿜어진 열네 개의 권형이 내장도 토해 내게 만들 정도로 강렬하게 베릴의 턱과 복부에 틀어박혔지만, 순식간에 녹아 사라진 솜사탕처럼 녀석의 입 밖으로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처음 상자의 연기를 흡수했을 때처럼 놈의 몸이 부풀어 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크던 몸이 이제는 프리실라의 보호막을 중심으로 뺑뺑이 돌지 않고 가랑이 사이에 넣어 둘 정도로 커졌고, 두 쌍의 다리가 더 생겨난 하체는 거미처럼 변했다.
넓은 등짝에서는 코끼리 상아 같은 뿔이 솟아올랐으며, 손가락과 손톱은 사라지고 커다란 팔치온이 솟아났다.
“강자는 강자의 대우를 해 줘야겠지? 지금부터는 다를 거야. 정해진 수명의 45%를 소모시켜서..”
베릴의 변화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설명하려던 프리실라였지만, 곧 눈앞을 가득 메운 철황십사격의 권영에 말을 멈춰야 했다. 투투투퉁!
마치 자동 소총을 갈기는 것 같은 소리를 따라 철황십사격이 베릴의 전신에 박혀 들었다.
“흥, 그런 걸로는 어림도 없………….”
퍽!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 허공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역시 들켰군.”
갑자기 끊어진 영상에 랜달이 눈을 떴다. 들킬 줄 알았지만, 그래도 좀 더 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랜달은 검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지켜보는 걸 알고 실력을 숨긴 건가?”
프리실라를 단숨에 끝내지 않는 이드를 보며 랜달은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라도 그럴 것 같았다. 적진을 앞에 두고 날 죽여 달라고 광고할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도 좀 더 화려했으면 했는데. 어쩔 수 없나. 그래도 일단 프리실라가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확정인가.”
기대한 만큼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최소한 자신에 대한 탑주의 눈을 돌릴 정도는 된다.
일단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 같다.
랜달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얼마 후면 프리실라의 사고 때문에 정신의 관이 시끄러워질 테니까 말이다.
“원견마법…….”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일어난 폭발에 흠칫 놀라던 프리실라가 곧 그 원인을 파악하고는 이를 갈았다.
폭발 그 자체보다는 그 속에 섞여 흩어지는 마나의 흔적을 알아차린 것이다. 정신의 관의 장로 자리는 장난으로 딴 것이 아니었다.
머리가 좋은 그녀는 그 흔적을 통해 두 가지를 알아차렸다. 하나는 누군가 이곳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 그 목표가 자신인지, 적 기사인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몰랐던 모양이지? 부정하더니 왕따 맞잖아.”
이드가 비꼬았지만, 프리실라는 이미 듣고 있지 않았다.
“감히 어떤 놈이!”
만약 탑주나, 관주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녀가 아는 두 사람은 이런 짓을 할 성격이 아니었다. 돌아가는 대로 찾아 자신의 수치를 구경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다짐하는 프리실라였지만 그 문제는 둘째였다.
지금 중요한 건 적 기사가 자신보다 먼저 원견의 마법을 알아차리고 있었다는 사실. 적에게 자신의 카드를 모두 내보이지 않는 기본 전략을 생각하면 적 기사는 상당한 실력을 감추고 있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한정 해제를 한 베릴도 쉽게 상대하고 있는 적 기사가 지금도 실력의 일부를 감추고 있다고?!
프리실라는 오소소 닭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하하하. 이거 큰일 난 것 같네?”
“안타깝네. 아는 게 좀 늦었어. 저 똥개와 당신, 그렇지 않아도 찾고 있었거든. 몰살당한 내 조원들을 위해서 말이야.”
스르르르륵.
말을 마침과 함께 어느새 뽑아 든 일라이져의 검 끝에서 수라검강의 붉은 강사들이 너울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