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05화
842화
질질질.
이드가 프리실라를 끌고 산을 올랐다.
“악! 아악!”
울퉁불퉁한 산길에 쓸려 부러진 다리에 충격을 받은 프리실라가 비명을 질렀다. 하도 비명을 질러 쇳소리가 났다. 가만있어도 아플 다리를 바닥에 질질 끌고 있으니 당연하다.
프리실라에게는 불행인 것이,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면 편할 것을 마법으로 단련된 정신력 때문에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마법사의 강한 정신력이 독이 된 경우다.
털썩!
그런 중에 부러진 다리가 튀어나온 돌부리에 걸려 버렸다.
“아아악! 아파! 아프다고! 이 개자식아! 이러다 죽을 것 같다고! 설마 이렇게 괴롭히다 천천히 죽일 생각인 거냐!”
“풋. 스스로를 너무 대단하게 보는군. 괴롭히다 죽일 방법이라면 수없이 많은데 굳이 이렇게 끌고 다닐 리가 있나.”
“그럼・・・・・・ 크으으윽……. 이제 그만해라. 이러다 정말 죽을 것 같다.”
프리실라는 벌벌 떨리는 팔을 들어 애원했다.
가슴에 칼이 박히고 두 손이 잘렸으니 누구라도 그렇게 볼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칼은 교묘하게 내장 사이를 파고들어 상처를 더 만들지 않았고, 가장 큰 손목의 상처에서도 피가 흐르지 않았다. 절단면의 혈관이 검강에 의해 순간적으로 타 버렸기 때문이다. 즉, 죽을 듯 아프긴 해도 죽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안 죽어. 걱정 마. 고생해서 생포했는데, 얻는 것 없이 죽으면 곤란하지. 적어도 지금은 죽이지도, 죽게 하지도 않아.”
정말이다. 얼마나 귀한 포로인데 편안하게 자살하도록 그냥 둘 수 있겠는가. 최대한 오래 살려서 빼먹을 수 있는 정보는 다 빼먹어야지. 뭐, 애초에 두 손이 없어 자살도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호, 호호호……. 내가 어리석었어. 쿨럭. 처음부터 최고의 수법으로 최선을 다해야 했는데.”
후회란 언제나 늦은 법. 후회의 가장 나쁜 점이다.
허탈한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리던 이드가 그 말에 혀를 찼다. 그렇게 치면 싸우겠다고 나오질 말았어야지. 아니면, 아예 태어나질 말던가. 아니, 태어나는 건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쳐도 최소한 마법사를 하지 말았어야지.
“쯧쯧. 최선을 다했다면 달라졌을 것 같은 모양이지?”
프리실라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분명 그랬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자신이 가진 상자를 빼앗기지 않고 잘 썼다면 계산상으로 소드 팰러스의 오색 기사단 급의 힘을 내게 되어 있었으니까…….
“네놈이 아무리 강해도, 쿨럭쿨럭. 오색 기사단을 홀로 상대할 수는 없을 테지.”
“오색 기사단급 전력이라. 대단하군. 패배는 했어도 정신의 관의 장로라는 건가 보지?”
“그렇다. 정신의 관의 장로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6장로였던가? 그럼 당신이 막내?”
“……크크, 쿨럭・・・・・・ 어설픈 유도 신문이지만 대답해 줄까. 그래. 내가 막내다.”
그렇게 티가 났나?
이드는 볼을 긁적이며 입을 닫았다. 자연스럽게 정보를 캐 보려 했는데, 의도를 들켰으니 쓸데없이 심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겠다 싶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상자만 다 쓰면 오색 기사단 급이라고? 베릴이란 마수를 보면 꼭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글쎄……’
이드는 프리실라의 자신감이 허상일 거라고 짐작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제대로 싸우는 방법조차 몰랐던 베릴을 보면 그녀가 저렇게 아쉬워하는 힘의 약점이 무엇인지 대략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사단급의 힘을 가지고 있으면 뭘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면 힘센 바보와 다를 게 없는데.
유도 신문이 발각당한 이드는 간간이 들리는 비명을 배경 음악 삼아 묵묵히 산을 올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점에 도착했지만, 거점에 남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음. 여기 없는 걸 보면 더 후방으로 물러나 있는 모양이네.”
그 말에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한숨을 쉬던 프리실라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설마…… 또 움직이겠다고? 안 돼! 난 안 가! 못 가!”
“어차피 올라올 때도 직접 올라온 건 아니잖아?”
이드는 악을 쓰는 프리실라를 무시하고 그녀의 옷깃을 다시 잡았다. 그러자 프리실라가 두 손이 사라진 팔로 다시 싹싹 빌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그만해 궁금한 건 다 답하고, 내가 아는 건 다 말해 줄 테니까. 제발~”
“어차피 그래야 하는 건데 뭘 새삼스럽게? 자, 그만 다시 가 보자.”
“아아악! 이 쓰레기 고철덩어리 같은 칼은 왜 더 박히지도 않는 거야!”
다시 시작될 고통에 아득해진 프리실라는 자살할 생각으로 힘을 썼지만, 꿈쩍도 않는 일라이져에 절망했다.
이드는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발걸음도 가볍게 산을 내려갔다. 이드의 내력과 의지가 머무는 한 일라이져는 한 치도 움직이지 않는다.
허공섭물? 고통을 줄여? 뭐가 이쁘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다.
내공이 아무리 남아돌아도 프라실라 따위에게 그런 편의를 제공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이드였다.
산을 내려온 이드는 전날 조원들과 함께 왔던 길을 거슬러 올랐다.
그리고 숲의 경계선에서 그를 기다리는 조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단장님!”
“역시 무사하실 줄 알았습니다.”
이드는 전쟁 중 헤어진 가족을 만난 듯 자신을 반기는 조원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별일은 없었나?”
“다행히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거점에 먼저 들렀는데 아무도 없더군.”
“예상보다 폭음이 컸습니다.”
즉, 거점도 위험할 것 같아 여기까지 후퇴했다는 말이다.
명령에 의한 후퇴이긴 했어도,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는 알단테의 모습에 이드가 그의 판단을 칭찬했다.
“잘했어. 토벌대가 도착할 때까지 이렇게 조심해 주면 내가 편하겠어.”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이드의 칭찬에 내심 가슴을 쓸어내린 알단테가 파김치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진 프리실라를 보며 물었다.
이제는 목이 쉬다 못해 완전히 맛이 가서 비명도 지르지 못하는 그녀는 한순간에 이십 년 정도는 늙어 버린 듯 변해 있었다.
“이 꼴을 보면 대략 짐작하겠지만. 마수 퇴치 중 생포한 포로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 단장님! 토벌대에 가장 큰 공일 겁니다.”
알단테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아직 시작도 않은 토벌에 공은 무슨.”
“아이고,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전투 전에 적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보다 굉장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나저나 빨리 가슴에 박힌 검도 제거하고 치료를 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미 반쯤 시체라 이대로 두면 그대로 숨이 넘어갈 것 같은데요.”
“우선 검부터 제거할까요?”
알단테의 말에 동조하던 조원들 중 프리실라를 살피던 이들의 말에 이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가슴의 검은 그냥 둬. 그 여자의 마법을 봉인하려고 박아 둔 거니까.”
“역시 일부러 제거하지 않으신 거군요. 그래도 칼을 이대로 두는 건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은데, 제대로 된 물건으로 바꾸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알단테가 수갑 형태의 물건을 꺼내 들며 말했다.
정신의 관에 대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유일한 포로다. 알단테가 보기에 그녀의 가치는 감시조 전원보다 컸다. 실수로라도 죽어 버려서는 곤란하다.
이드는 수갑을 바라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말했다.
“글쎄. 그걸로 제압이 가능할까. 저래 보여도 고위 마법사야.”
“이런 중상이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겁니다. 아무렴 저대로 칼을 박아 두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알단테가 마치 오래 사귄 친구의 사면을 요청하는 것처럼 간절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 진심을 느낀 것인지 프리실라가 겨우 눈을 떠 알단테를 고맙게 바라보았다.
이드는 웃음이 나는 걸 참았다.
저 두 사람은 절대 저런 걱정과 눈빛을 주고받을 관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위험하긴 하지. 그런데 조장은 이 여자가 누군지 아나?”
“당연히 모릅니다. 혹시 따로 알아낸 정보가 있으십니까?”
“물론, 굳이 알아낼 필요도 없이 당당하게 자랑하더라고. 자신이 마수들의 주인이라고 말이야. 그런데도 검을 뽑아 주고 싶은가?”
“하아…….”
이드의 말에 알단테가 긴 한숨을 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어린 동물 보듯 귀하게 바라보던 조원들의 눈빛에도 시퍼런 살기가 돌았다.
“그럼 이년이 바로…………….”
모두 감시조를 마수의 먹이로 던져 준 놈을 찾아 죽이겠다고 다짐한 기억이 생생했다.
그런데 마침 그 다짐의 대상이 눈앞에 포로로 나타났다.
포로가 원한 문제로 상해를 입는 것은 흔한 편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던 알단테가 입가를 문지르며 말했다.
“단장님도 너무하시는군요. 그런 사실을 이렇게 말씀해 주시다니.”
“훗, 그런가? 어차피 신문하다 보면 알 일이잖아. 그보다 어때? 아직도 검을 뽑아야 한다고 보나?”
“생각 같아서는 하나 더 박아 주고 싶지만, 예. 칼은 뽑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죽이는 거야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정보는 살아 있어야 얻을 수 있는 것. 그렇게 얻은 정보로 전우들의 희생이 줄어들 수 있다면, 전멸당한 조원들도 그러기를 바랄 겁니다. 그렇지 않나?”
“충.”
알단테의 말에 조원들이 가슴을 두드리며 동조했다.
제법 멋진 광경에 이들의 단장인 이드는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멋진 대답이 마음에 드는군. 자네 말대로 칼은 뽑도록 하지.”
“의견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음?”
“그래도 만약을 위해서 나머지 다리도 부숴 놓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하하하하. 여기 와서 쭉 생각한 일이지만, 난 자네를 포함해서 조원들이 참 마음에 들어. 후작께서 정말 대단한 친구들을 붙여 주신 것 같단 말이지.”
이드는 껄껄 웃으며 알단테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후 프리실라의 팔에 마법 수갑을 채우고, 일라이져를 뽑았다.
“고, 고맙다.”
프리실라가 부르르 몸을 떨며 감사해했다. 검이 뽑히는 고통보다 그것이 주던 압박이 사라졌다는 안도감과 함께 딱딱하게 굳었던 써클에 청량감이 느껴진 것이 컸다. 어쩌면 써클이 회복되면 탈출할 가능성이 조금은 생길지도?
하지만 이드는 그런 일말의 여지도 남겨 줄 생각이 없었다.
타타타탁!
“심기점혈이라고, 내 내공을 타인의 몸에 심어 제압하는 기술이야. 방금 뽑아낸 검과 비슷한 효과를 내지. 그러니 헛된 희망은 품지 말자고. 서로의 육체와 정신 건강을 위해서 말이야.”
”…….”
상큼한 미소를 지은 이드의 말에 프리실라가 아무 말 없이 주르륵 눈물만 흘렸다.
그 후 프리실라를 넘겨받은 감시조는 그녀가 걸친 옷과 장신구를 벗겨 조사하고, 상처를 간단히 치료했다. 늘씬한 여인의 알몸이 나타났지만, 그녀에게 욕정을 느끼는 조원은 하나도 없었다.
이드는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알단테가 건넨 술잔을 받아 들고 있었다.
“후작님께서 단장님을 위해 따로 준비해 주신 포도주입니다. 중요한 포로를 잡았으니, 이럴 때 열어야겠지요.”
“음. 맛이 좋군. 자네도 한잔하지. 용기사는 불렀나?”
“예. 해가 진 후 도착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곧 오겠군.”
이드는 이미 반쯤 가라앉은 해를 보았다. 제법 알차게 오늘 하루를 보낸 것 같다 싶었다.
“용기사 편으로 포로도 같이 보낼 수 있습니다만.”
“아니. 확보한 물건만 보내도록 하지.”
“충.”
이드의 말에 알단테가 두말하지 않고 가습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