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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414화


851화

그런 이드의 모습에 모욕감을 느낀 베일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비록 하찮은 수작에 제자 둘을 잃은 건 사실이지만, 합공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 긴장은 하지 못할망정 웃다니.

“정체를 밝혀라!”

자신을 하찮게 보지 않고서야 저럴 수는 없다. 무시당했다 여긴 베일록이 더 크게 화를 냈다. 꼽추로 태어난 그는 콤플렉스덩어리 같은 사람이었다. 관의 장로가 되면서 많이 해소되어 평소엔 조용하지만, 특정 키워드가 맞아떨어지면 지금처럼 쉽게 분노하기도 한다.

휘이이이잉-

그 분노를 표현하듯 베일록을 휘감은 바람이 거칠고 맹렬해졌다.

“우리가 말랑하게 자기소개나 할 사이는 아니잖아.”

이드는 과하게 흥분하는 베일록에 오히려 놀리듯 더욱 진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한편으론 휘도는 바람에 눈을 반짝였다.

절대 일반적인 바람이 아니었다. 자연적인 바람을 저렇게 두르고 있을 수 있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신선이겠지.

그렇다고 바람을 조종하는 마나의 구성도 감지되지 않았다. 신선까지는 아니더라도 마법보다는 조금 더 자연스러운, 정령이나 초인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그나저나 마법사면서 하고 있는 꼴이…………. 무투파인가? 이런 경우도 있나?’

바람을 몸에 감은 모습만 봐도 견적이 나온다. 게다가 적의 코앞까지 달려 나온 것을 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가. 마법사면 마법사답게 멀리 떨어져서 마법이나 날려야지, 이렇게 접근할 이유가 없다.

프리실라도 이런 이야기는 없었는데.

“처음으로 옳은 소리를 하는구나. 그럼 사지를 잘라 놓고 듣겠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베일록이 주먹을 휘둘렀다.

그냥 주먹이 아니었다. 우선 크기부터가 남달랐다.

손을 든 순간부터 커진 주먹은 순식간에 오우거의 주먹만 해졌는데, 오우거가 사람 머리를 호두알 쥐듯 쥘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크기였다. 게다가 동시에 변한 피부는 딱 봐도 오우거 이상으로 단단하고 질겨 보였다.

씨이잉~ 씨이이잉~

거기에 바람이 깃들기 시작했다. 베일록의 육신을 휘감고 있던 기류가 이리저리 꼬여 무한의 궤도를 만들더니, 결국 주먹에 바람으로 이루어진 건틀릿을 만들었다.

이드는 그 주먹을 보며 손바닥을 펼쳤다. 그 장심에는 베일록의 그것과 잘 닮은 바람의 구슬이 쥐어져 있었다. 풍령장이다.

무극신기가 경지에 이르며, 풍령장도 단순히 바람을 쳐 내는 장법이 아니게 되었다. 실려 나가는 손바람 한 올 한 올에 내력이 실리게 되었다. 사납기는 베일록이 부리는 바람보다 더할 것이 분명하다.

“취향이 비슷한가 봐. 최근에 나도 그거 써 봤거든. 효과는 장담하지.”

“이놈. 감히 누굴 두고 하는 말이냐!”

최근이라면 그 대상은 누구일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두 명의 제자지만, 프리실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그런 생각이 들자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이드는 더욱 거칠어진 주먹질에 손바닥을 내밀었다. 거인의 주먹이 가진 패도는 강력했지만, 일부러 그 공격을 정직하게 받아 줄 생각은 없었다. 지이이익-

베일록의 그것과 동일한 바람의 힘이 깃든 풍령장이 무한의 궤도를 찢고 들어가 품고 있던 힘을 풀어냈다.

피리리리릭-

바람과 바람이 힘겨루기를 했다. 꺾이고, 찢기며 요란한 피리 소리가 났다. 그리고 상쇄되어 폭주한 바람이 작은 토네이도를 만들어 자신의

원주인들을 양쪽으로 밀어냈다.

이드는 그 힘을 타고 적당히 거리를 벌렸다. 순식간에 거리가 벌어지자 베일록도 일단 멈춰 섰다. 그 뒤로 급히 달려온 제자가 섰다.

“…..·정신의 관 장로, 베일록 모제다.”

비히더와 티엔이 베일록을 향해 슬금슬금 자리를 옮기고 있을 때, 베일록이 입을 열었다.

뜬금없는 자기소개에 이드의 고개가 삐딱하게 기울어졌다.

“자기소개 할 사이가 아니랄 때는 언제고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나? 토벌대 감시조. 이드다.”

“그걸로 끝인가?”

베일록이 화를 참으며 부릅뜬 눈으로 이드를 노려보았다.

함정과 기습, 그리고 이어진 순간의 공방까지. 어떻게 봐도 평범한 감시조의 병사는 아니다. 저런 게 제국의 일개 병사라면, 제국은 벌써 대륙을 지배해야 옳다.

“현재로서는? 안타깝게도 적에게 친절하게 정보를 제공하는 취미는 없어서.”

이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다 들은 후 그대로 죽어 준다면 말해 주지 못할 것도 없지만, 아무래도 순순히 자살할 인간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감시조가 일을 이렇게 크게 벌이다니. 이해할 수 없다. 초인이기 때문이냐?”

초인에게 원망받을 짓을 하고 있다는 자각은 있나 보다. 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알긴 아나 본데. 하지만 난 초인이 아니다.”

“나무를 조종하고도 아니라고? 멍청한 거짓말이군.”

“아, 그건 이 작은 친구가 도와준 덕분이고.”

이드가 손을 내밀자 내내 목덜미에 붙어 있던 드라이어드가 폴짝 뛰어내렸다.

“고생했어. 분위기 험악하니까. 오늘은 그만 돌아가.”

파스락!

드라이어드가 나뭇잎 몇 장을 날리며 사라졌다.

그 모습에 베일록은 분노를 잠시 잊을 정도로 놀라워했다.

“설마, 초인이 아니라 정령사였나? 도대체 어째서 정령사가 우릴 공격한 거지?”

“말은 바로 해야지. 정령과 상관없이 이쪽은 공격받고, 반격한 것뿐이라고.”

“우린 아직 공격한 적이 없다.”

일단, 틀린 말은 아니다. 정찰만 했지, 아직 공격하진 않았으니까.

“훗, 설마 진심으로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

베일록이 침묵으로 긍정했다. 누구보다 말한 자신이 개소리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전쟁과 싸움에 내로남불과 기만은 필수적인 기본기다. 나는 온갖 속임수와 비겁한 방법을 사용해도 되지만, 적은 정직하기를 바란다. 절대 정의롭고 공평할 수 없는 것이 전쟁이다.

“프리실라를 잡아간 것도 너냐?”

“흐음. 프리실라가 누구지?”

한 손으로 턱을 받친 이드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열심히 네 사람을 살핀 결과, 그는 한 가지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들은 프리실라와 자신이 싸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저 짐작만 할 뿐, 증거도 확신도 없다.

분명 프리실라와 만났던 당시에는 훔쳐보는 눈이 있었다. 당연히 그 사실이 알려졌다면 자신의 얼굴을 모를 리가 없다.

이 세상에는 머릿속에 든 것을 꺼낼 수 있는, 스케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이미지라는 좋은 마법도 있고, 원견 마법으로 사용한 수정구에 기록도 남았을 테니까.

그런데도 자신을 모른다는 것은, 누군지 몰라도 마법을 사용한 자가 알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능성은 두 가지다.

정보 통제일 수도 있고, 딴생각을 품은 반동분자의 새싹이 자라는 것일 수도 있다. 일단 어느 쪽이라고 해도 나쁠 건 없다.

두 가지 가능성 모두 정신의 관이 정상적으로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반증이니까.

“정령사는 피를 싫어한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일에서 빠져라. 지금 간다면 보내 주겠다.”

“그건 당하고 있는 인간이 할 말이 아니야.”

“허접한 수에 어처구니없이 당하긴 했지만, 전력은 이쪽이 압도적이다.”

어디까지나 외견상으로는 4 대 1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그 속은 정반대지만.

“허접한 수에 둘이나 잃은 사람이 할 말은 아닌데, 거기다 그렇게 압도적이면, 잡지, 왜 굳이 날 보내 주려는 거지?”

“그쪽에서 잡고 있는 프리실라를 풀어줘라. 그게 조건이다.”

“아, 글쎄, 그게 누군지 모른다니까.”

뿌드득.

베일록이 이를 갈았다. 이 일대는 완전히 정신의 관의 지배 아래에 있다. 이곳에 무단으로 침입한 것은 제국이 보낸 감시조밖에 없는데, 그들이 아니라면 도대체 프리실라가 누구에게 당했단 말인가!

빤히 보이는 거짓말에 열불이 났다.

무엇보다 그를 확신하게 만드는 것은 자신의 공격을 가볍게 받아 낸 이드의 실력이었다. 언뜻 봐서는 초인의 초인기 같아 보이지만, 가만히 되새겨 보면 무공이 분명했다.

순간 느껴진 힘이 자신의 아래는 아닌 것 같았다. 무공만 해도 그런데 거기에 정령까지.

그가 알고 있는 프리실라라면 싸움에 익숙하지 않으니, 저런 자를 만났다면 패하고 잡혔을 가능성이 다분했다.

그런데 끝까지 모른다고 잡아떼고 있으니, 가슴에 돌덩이를 올린 듯 갑갑했다.

“방금 사지를 잘라봤다 했지? 그건 누굴 말함이냐.”

이드는 그 질문에 뿌득 뿌득 어깨를 풀었다. 자신의 간단한 질문은 듣씹하면서, 본인이 알고 싶은 것만 묻는 베일록에게 답변을 해 줄 생각은 없었다.

“사지를 자른 건 아니고 그 비슷한 건데. 아, 걱정 마. 당신이 버리고 간 두 사람을 상대로 한 건 아니니까. 얼마 전에 까만 똥개를 타고 나타난 여자가 있어서, 제압할 생각으로 해 봤지. 혹시, 그 여자가 프리실라인가?”

“이・・・・・・ 이 죽일 놈! 감히 프리실라에게 손을 댔단 말이냐!”

“어감이 좀 이상하지만, 확실히 내가 손을 보긴 했지.”

“죽인다! 네놈을 죽이고, 프리실라를 되찾겠다!”

뿌드드득.

두 눈에서 불길 같은 분노를 흘리는 베일록의 몸에서 콩을 볶는 것 같은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들으면 뼈마디가 부딪히는 소리 같은데 저렇게 요란해서야 남아나는 뼈가 있을까? 하지만 이어지는 변화를 보면 확실히 뼈가 어긋난 것 같기는 했다.

꼽추이기 때문에 보통 성인 남자보다 체격이 왜소하던 베일록의 몸이 거인처럼 거대하게 변했다.

몸을 쭉 펴고 서니 건장한 남자는 그의 가슴까지밖에 오지 않을 정도로 컸다. 거기에 근육도 부풀어 올랐다. 크기와 형태만 보면 오거보다 더 커 보였다.

아까 손을 크게 만든 것과 같은 능력일 것이다. 딱 봐도 갈색으로 변한 살이 질기고 단단해 보인다. 실로 아름다운 육체미라 하겠다. 평범해 보이는 얼굴도 몸이 커지면서 미남형으로 변했으니까. 화룡정점이랄까.

개인적으로 몸보다 얼굴을 더 신경 써서 변화시킨 게 아닌가 싶다.

구우우우-

몸만 커진 것도 아니었다.

그를 휘감은 바람의 힘도 몸만큼이나 크고 웅장해졌다. 속도가 빨라진 만큼 주변의 바람을 빨아들이며, 고래의 울음소리를 닮은 소리가 은은하게 이어졌다.

“육체미를 뽐내는 마법사라. 귀한 경험하겠군. 그런데 한 가지 질문. 몸이 다 달라졌는데, 등에 혹은 왜 그대로야?”

“으득! 그 나불대는 입을 뭉개 주마!”

퍼서석!

이드의 말이 콤플렉스를 제대로 찌른 듯했다.

베일록이 부서져라 이빨을 갈고는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그의 발아래 있던 돌이 가루가 될 정도의 도약력이었다. 워낙 몸이 커서 그런가 도약력도 높아 보이고, 휘두르는 팔에 실린 힘도 무지막지해 보인다.

하지만 고수 간의 싸움은 보이는 걸로 판단할 수 없는 법.

이드는 베일록의 공격을 화경으로 받아 남기며, 커진 덩치 덕분에 때릴 곳이 많아진 몸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몸 전체에 갑옷처럼 둘러진 단단한 바람의 기류 때문에 그냥 때려서는 답이 없지만, 이드에게 그런 방어 따위 파훼할 방법은 썩어 남아돈다. 타타타탕!

검은 표범 같은 권격, 철사파경이 기류를 뚫고 베일록의 몸을 두드렸다.

“음?”

그런데 주먹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묘했다. 그냥 봐서는 천하의 강골로 변한 것 같은데. 주먹 끝에 느껴지는 느낌은 어째 푹신한 솜 같다. 

“물살?”

반문과 동시에 이드의 주먹이 닿은 곳을 중심으로 바람이 와류를 이루며 이드의 팔이 지난 자리를 타고 역류해 들었다.

“그따위 멍청한 주먹은 통하지 않는다!”

베일록이 발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팔다리와 바람이 아주 따로 놀았다.

마치 머리가 두 개 있는 쌍두사를 보는 느낌이다.

딱 봐도 경험이 적지 않은 모습니다.

“역시 장로 자리를 허투루 딴 사람은 프리실라뿐인가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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