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23화
860화
휘청휘청. 파스락. 파스락.
휘청휘청.
파스락, 파스락.
“가마 타는 게 그렇게 재미있니?”
오크가 든 가마가 흔들릴 때마다 어깨에 올라앉은 드라이어드가 신이 나 춤을 춘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딸바보의 심정이 이해되는 이드였다.
그런 산뜻한 분위기와 반대로.
“웁~ 우웁~ 우웨엑~”
가마 한쪽에서는 당장이라도 가마 밖으로 떨어질 듯 상체를 내민 알단테가 속에 든 걸 게워 내는 소리로 시끄럽다. 페리코가 그 옆에서 리더 홀을 한 손에 든 채 알단테의 등을 두드리고 있지만 전혀 소용이 없는 것 같다.
“좀 어때?”
“으어~ 죄송하지만, 죽을 것 같습니다.”
“드라이어드의 각성향도 소용이 없나 보네. 설마 조장이 이렇게 가마 멀미가 심할 줄이야.”
가마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단테가 멀미를 시작했다. 혹시 오크의 냄새 때문인가 싶어 실프를 불러 악취를 흩어 버리고, 드라이어드를 불러 청량한 향기를 뿜어내게 했지만.
그런 배려가 무색하게 알단테의 멀미는 조금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저도 이런 멀미가 있는 줄은 지금 처음, 웁~ 알았습니다.”
차돌처럼 단단하게 훈련받은 군인이 고작 가마 위에서 힘없이 무너지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이드가 혀를 찼다.
하기야 알단테라고 짐작이나 했겠는가. 훈련 중에 말도 타고, 마차도 타고, 배도 탔겠지만, 어디 가마를 타 볼 일이 있었겠는가. 타는 사람도 극소수로 대륙에서 거의 자취를 감춘 탈것인데 말이다.
“지금이라도 그만 조원들에게 돌아가는 게 어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못난 모습 보여 드렸지만, 포로를 관리하고 단장님을 보좌하는 것이 제가 할 일입, 우웩~”
알단테가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다시 가마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사람 고집하고는…………….”
이드는 못말리겠다는 듯 잘래잘래 고개를 저었지만, 한편으로는 대견하게 보았다. 몸이 힘든 중에도 자신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모습이 싫을 턱이 있나.
지금은 저래도 막상 필요한 상황이 되면 멀쩡히 견딜 것이 분명했다. 아무렴 감각이 무뎌진다고 멀미를 멈춰 줄 점혈도 마다한 고집인데, 그 정도는 할 것이다.
그런 고집이 없고서는 작전 중인 이드를 대신해서 포로인 페리코를 자신이 관리하겠다고 끈질기게 그를 설득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톡톡톡.
“좀 더, 우욱~ 세게 두드려 줘어~”
다만 지금 현재는 관리해야 할 포로에게 관리를 당하고 있는 형편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드는 향기가 멀미에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드라이어드를 돌려 보내지는 않았다. 알단테와 관계없이 가마에까지 배어 있는 오크의 냄새가 싫었으니까.
페리코는 알단테를 돌보는 중에도 오크를 자신의 손발처럼 능숙하게 움직였다. 이런 능력자를 두고 왜 기존의 능력이 모자란 마법사를 리더 홀의 주인으로 두었는지 이상했다.
뭐, 대충 짐작은 갔다.
결국 정신의 관이라고 해도 어차피 사람이 모여 있는 곳. 당연히 알력이라거나, 인맥이라거나, 자리 나눠 먹기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실력도 모자란 자가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자부하는 마법사들도 마법사 이전에 인간인 이상. 피해 갈 수 없는 관계의 일그러짐이라고 하겠다.
“지연, 학연, 혈연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지.”
어차피 이드가 주인인 곳도 아니고. 어떻게 돌아가건 상관도 없었다.
만약 이드가 정신의 관과 같은 단체를 만든다면 저런 일은 아예 있을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들 생각이다. 해결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인간이 비이성적인 판단을 내린다면, 인간이 아닌 존재를 중간에 두면 되는 것이다. 가령 엘프라거나, 드워프라거나. 에고라거나. 지연, 학연, 혈연 어디에도 들이댈 수 없는 그들 앞에 인간의 비이성적인 논리는 물거품처럼 의미 없이 스러질 테니까.
“여기서 정지.”
페리코를 통해 정신의 관의 문제점 하나를 파헤치는 중에도 꾸준히 움직인 오크들 덕분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에 함정이 있는 겁니까?”
이드를 따라 후들거리는 다리로 가마에서 내린 알단테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첫 번째 포인트라고 할 수 있지.”
“후웁! 그럼 이제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명령보다. 일단 자네는 거기 앉아서 좀 쉬어.”
이드는 크게 심호흡하고는 몸이 힘을 넣던 알단테의 의욕을 가차 없이 꺾어 버린 후, 노르캄을 불러 땅을 파헤쳤다.
꾸구구구ᅳ
마치 거대한 불도저로 축구 구장을 통째로 밀어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마어마한 흙이 파도치듯 양쪽으로 밀려나며 갈라지고, 삼 미터 아래 있던 속살을 드러냈다.
“아무것도 없는데, 여기에 함정이 있는 겁니까?”
“그냥은 보이지 않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이는 알단테의 말에 이드는 신안을 열었다. 그러자 파헤쳐진 땅 위로 마나가 기하학적인 형태의 마법진을 만들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앞에 확연히 드러났다.
마치 투명한 물에 형광색 물감을 탄 듯하다.
이는 만물에 깃든 기를 느끼는 경지를 넘어 그것을 볼 수 있는 경지에 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무형의 존재를 유형으로 인식하는 것은 그 사람의 격이 상대의 것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즉, 현재 이드 앞에 있는 마법진의 흐름은 이드의 눈에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그 속을 내보이고 있다는 뜻이 되겠다.
“오크 열두 마리, 앞으로.”
“예? 아, 예.”
이드의 말에 페리코가 급히 오크들을 움직였다.
우웅!
이드는 허공섭물로 앞으로 나선 오크의 글레이브를 움직였다. 오크들은 반사적으로 글레이브를 놓지 않으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헛손질을 피해 허공에 떠오른 열두 자루의 글레이브는 곧 이드의 손짓에 따라 마법진의 중요 포인트로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끼이이이-
순간 마치 덫에 걸린 동물처럼 마법진이 꿈틀거렸다.
“흡! 다, 단장님. 지금 여기서 마나가!”
순간적이긴 하지만 이번엔 알단테도 느낀 듯 호들갑을 떨었다.
“이번엔 느꼈나 보지?”
“네, 강렬한 마나를 느꼈습니다. 정말 함정이었군요.”
이드의 말을 의심하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보니 혹시나 했던 마음이 씻은 듯 사라지는 모양이다. 직후 이드는 페리코를 시켜 오크로 하여금 땅에 박힌 글레이브를 잡고 있도록 했다.
빠지지직.
마법진의 중요 포인트에 박혀 강력한 마나의 흐름에 간섭한 글레이브를 잡자 오크의 손이 순간 타들어 가며 허연 연기가 뿜어졌다.
“크르르르르.”
오크가 작게 으르렁거리며 우는 소리를 들으며 이드가 다시 가마 위로 올랐다.
“이걸로 하나는 끝났고.”
“이걸로 끝입니까? 해체하거나 폭발시키지 않으시고요?”
“하나가 아니니까. 지금 손을 쓰면 다른 함정들이 도망가잖아. 도망 다니는 걸 하나하나 쫓아다닐 건가? 준비했다가 한 번에 터트려야지. 그래야 정신의 관에서도 함부로 복구를 못 할 테니까.”
“그럼 저기 오크를 세워 두신 것도?”
“설마 내가 마법진을 지키라고 세웠겠나? 저 글레이브들은 모두 마나의 주요 맥락에 박혔지. 지금은 그 흐름을 방해하고, 마법진이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끝이지만, 글레이브들이 동시에 뽑히고 막혀 있던 마나가 강력하게 뿜어져 충돌하면, 알지?”
“펑! 이겠군요.”
알단테가 두 손을 모았다 펼치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맞아. 거대한 불꽃놀이가 시작되는 거지.”
불꽃놀이가 본래 비싼 만큼, 정신의 관에서는 제법 휘청이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때 두 사람과 달리 멍하니 마법진을 살피고 있던 페리코가 크게 탄성을 터트리고는 복잡한 눈으로 이드를 돌아보았다.
“왜? 할 말 있습니까?”
“어…… 떻게 아신 겁니까? 저 포인트를 조절하면 마법진이 폭발한다는 것을. 저도 말씀을 듣기 전에는 알지 못했는데, 혹시, 마법도…………….”
“지식은 있죠. 하지만 이런 거 하는데 마법 지식까지 꺼내서 계산할 필요는 없어요. 중요한 건 마나의 흐름이니까. 이 정도는 꿰뚫어 봐야 무인이라고 할 수 있죠.”
세상 무인이 다 기죽을 소리를 태연하게 하고 있는 이드였다. 이만한 마나의 흐름을 꿰뚫어 보려면 최소 그레이드 소드 이상이어야 하니까. 그레이트 소드가 어디 애 이름인가 말이다.
하지만 이 부분만 제외하면 모두 옳은 소리였다. 인체의 내부를 휘도는 마나의 흐름 역시 마법진 못지않게 복잡한 것.
마법진을 분석하라고 하면 거의 모든 무인들이 질색을 하겠지만, 마법진의 흐름, 맥락, 약점을 찾으라고 하면 그 이야기는 또 다르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상생과 상극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다면 마법진을 자폭시키는 것도 무리 없이 가능하다.
바로 지금 이드가 한 것처럼 말이다.
“……”
다만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던 페리코에겐 큰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떡 벌어진 입이 충격을 전혀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드는 그런 페리코를 흔들어 다음 장소를 향하게 했다.
“빨리빨리 움직입시다. 관에서 오늘 해질 때까지 처리하고 했다면서요. 그럼 그렇게 해 줘야지. 오늘 밤에는 화려한 불꽃놀이를 볼 수 있도록.”
정신의 관은 배산임수는 아니지만, 산을 등지고 있었다. 그래서 함정이 전방을 향해 부채꼴로 형성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이드가 파악한 정신의 관 영역 중 삼분의 일 지점이라고 할까.
“다행이지. 밖으로 삼분의 일이 아니라 안으로 삼분의 일이었으면 불꽃놀이가 아니라 발파 작업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이드의 말에 수일 전까지 정신의 관에 있었던 페리코가 반사적으로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정신의 관이 이만한 폭발에 무너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잘못했으면 아무것도 모르고 생매장당할 수도 있었으니까.
“이제 세 개만 더 돌면 끝난다.”
남은 오크는 221 마리. 살아 있는 뇌관의 숫자는 넉넉했다.
“그런데 이렇게 일이 진행되는데 정신의 관에서는 모르는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 어차피 흐름 자체가 끊어진 것은 아니니까. 이런 마법진을 관리하는 방법은 마나의 강도가 아니라 흐름이거든.”
즉 전류의 세기가 아무리 약해졌다 해도 흐르고 있다면 경보가 울리지 않는 것과 같다. 그것도 마지막 함정에 글레이브가 박히고 나면 흐름에 노이즈가 생기겠지만, 그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
알아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나저나 자네 정말 괜찮겠어? 얼굴이 말이 아닌데.”
아닌 게 아니라 가마 위에 널브러진 알단테의 모습이 가관이다. 몸은 말린 오징어처럼 늘어졌는데, 눈은 움푹 들어가 시커멓고, 볼은 홀쭉하다. 아침까지 멀쩡하던 남자가 한나절 만에 중환자로 변해 버렸다.
“괜찮습니다. 제국의 군인은 고작 멀미에 질 정도로 약하지 않습니다.”
“……뭐, 힘내,”
괜찮다고 하는데 어쩌겠는가.
피싯!
“헉!”
회의에 참가해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랜달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 모습에 좌중의 눈이 그를 향했다.
“음? 무슨 일입니까?”
“지금 벨리훌의 목줄이…….”
“음?”
“목줄이 끊어졌습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랜달이 소리치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벨리훌의 목줄이라면 정신의 관 외곽에 설치된 함정 마법의 통칭인데, 목줄이 끊어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끊어지는 것을 모를 수가 없는 일이었다.
거기에 그 관리는 무려 생명의 관 부관주인 랜달이 하고 있었다.
생명의 관을 잃기는 했지만, 그의 실력에 대해서는 누구나 인정하는바. 목줄에 이상이 생길 때까지 그가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랜달 님. 제대로 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지금 말은……………”
쿵!
설명을 요구하는 해더웨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
랜달이 바닥을 찍자 그를 중심으로 방안을 가득 채우는 마법진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교묘하고, 아름다운 마법진 위로 잡음처럼 어지러운 형태의 선이 새롭게 그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