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84화
920화
오조의 유지와 전력 보충. 발터의 요청 두 가지가 받아들여졌다. 그렇다고 회의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 다음으로 암살 기사에 대한 대책을 논의해 보도록 합시다.”
록마틴 후작이 말했다. 어쩌면 오 조의 문제보다 이쪽이 이번 회의의 진짜 주제라고 해도 모자라지 않다. 절대 강자의 출현은 그만큼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그럼 우선 암살 기사가 기사인지, 초인인지에 대한 결론부터…”
“정신 차리세요. 이 시점에 그런 걸 왜 따집니까?”
“정신 차리라니? 그게 남작이 자작에게 할 소리요!”
“어차피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강자를 상대하려면 그만한 강자를…….”
그래서일 것이다. 회의에 참석한 이들은 앞서보다 더 격렬하게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애써 초인을 무시하지만, 그 힘은 진짜다. 초인의 힘은 절대 기사에 뒤지지 않는다. 적은 그런 오 조를 무인지경으로 휘저은 자다. 늑대 수백이 모여도 어쩔 수 없는 숲의 제왕인 오우거나 다름없다.
그런 자에게 오조가 당했다. 다음은 자신일지 모른다. 그런 불안감이 등을 밀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드에겐 이미 답이 보이는 문제였다. 절대 강자를 잡으려면 그만한 강자가 필요한 법. 괜히 목소리를 높여 봤자.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이거 어떻게 회의에서 빠질 방법이 없나?’
이드는 도망갈 기회를 찾아 머리를 굴렸다.
회의가 있은 다음 날.
공략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오 조가 계기가 되어 인원 구성을 조금 바꾼 이 조가 12층 공략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공략조가 공략에 들어가면 지상은 여유로웠다. 다음 조야 긴급 상황에 대비해서 개인 정비와 전투 준비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기사들은 평소 만나기 힘든 기사들과 교류하거나, 수련, 또는 연애에 열을 올리며 긴장을 풀었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달랐다.
이 조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조원 구성을 바꿀 수 있게 되자 함께할 기사단과 기사를 찾아 치열한 유치전을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
대상이 되는 조건은 다양했다. 효율성, 친밀감, 전술적 동일성 등.
목숨이 걸린 일인 만큼 결혼 상대를 고르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면이 고려되었다. 하지만 모든 조건들 중 가장 우선된 것은 역시 하나였다. 강력한 전력! 단체건 개인이건 강력한 힘으로 적을 부수고, 조원을 지킬 수 있는 전력이라면 제1 영입 대상이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언급된 것이 이드와 오색 기사단, 그리고 청색 깃털 기사단이다.
이드는 이 중에서도 영입 0순위였다.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이며 제국의 명예 후작이다. 거기다 삼검왕의 블러디 혼을 이겼으니, 실력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뭐해? 영입할 수가 없는데.”
“꼭 그렇게 부정적일 필요 있어? 영입 불가라고 써 붙인 것도 아니고.”
“그럼 네가 해 보든가. 다른 기사단도 아니고 아이넬 기사단의 단장님이시다. 황녀 전하의 기사를 빼 오자니, 말을 꺼낸 순간 반역 혐의로 끌려가도 난 몰라.”
“크흐~ 아깝다! 황녀 전하만 아니면 어떻게든 모셔 오는 건데.’
그 말대로다. 아무리 간이 배 밖에 나와도 황녀를 지키기 위해 황제가 붙인 이를 빼 올 담력을 가진 인간은 없었다.
덕분에 이드는 언급과 동시에 영입 대상 목록에서 광탈당했다.
그리고 삼조의 조원들 역시 비슷한 이유로 영입전에서 제외되었다. 조원들 입장에서야 영광스럽게 황녀와 같은 조에, 암살 기사를 상대할 수 있는 이드가 있는 삼 조를 떠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토벌 중인 현재 시점에 황녀와 이드 앞에서는 모든 조건이 무용했던 것. 그러니 모두 한발 물러서서 피 튀기는 영입전을 구경하게 되었다. 물론 접근하는 사람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많았다. 모두가 삼조에 들고 싶은 기사들이었는데, 대부분은 그간 쌓은 친분으로 접근했다.
“무슨 일이야?”
“크흠. 별건 아니고, 삼 조가 기사를 영입할 생각이 있으면 나는 어떤가 싶어서. 자네가 위에다 말 좀 해 주면 안 될까?”
“휴…… 일단 적어 보게.”
“이게 뭔가?”
“자네하고 똑같은 소리를 하고 간 친구들이네. 한둘이어야 내가 기억을 하지! 자넨 가장 아래쪽에 이름을 적으면 되네.”
“…….”
삼조 막사 주변 곳곳에서 이와 비슷한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영입전에서 제외된 것은 각 조의 조장들 역시 마찬가지. 영입전에 가장 적극적이어야 할 사람이 영입당해서야.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그게 아니라고 해도 옮길 이유는 없었다. 어떤 조건도 조장 자리보다 더 매력적이지 못했으니까.
이와 반대로 영입전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들도 있었다.
바로 적색 기사단이었다. 다른 오색 기사단이나 청색 깃털 기사단과 달리 단장이 조장을 맡고 있지 않아 충분히 영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인데.
이때 의외의 모습을 보인 것이 오 조였다.
오로지 초인만으로 조직될 것이라고 보았던 오 조에서 적극적으로 적색 기사단의 영입에 나섰던 것이다.
“혹시 오조 안에도 모이엔의 첩자가 있는 거 아닐까? 그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소드 팰러스가 원하는 그림대로 착착 움직여 줄 수가 있냐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드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초인파와 적색 기사단을 함께 처리하려는 것이 모이엔의 계획인데. 저처럼 알아서 세트로 묶여 주려 하고 있으니 보고 있는 입장에선 기가 찰 수밖에.
당연히 초인파가 알고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가장 믿을 수 있는 전력을 얻으려 했을 뿐이다.
적색 기사단은 그 기사도를 몸에 새긴 듯한 라발만큼이나 신용이 두터웠으니까.
어쩌면 이를 노리고 모이엔이 오 조의 백업으로 적색 기사단의 기사를 끌어들인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계기가 아니었다면 오 조에서도 적색 기사단을 영입하기 위해 과감히 나서지는 못했을 테니까.
“어떻게, 언질이라도 해요?”
“아니, 일단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볼 거야. 라발 단장이 알아 봤자 어색해지기만 할 테니까.”
앞서 털어놓은 사실로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던 모이엔과의 관계가 더 나빠졌다. 본인은 티를 내지 않으려 하는 것 같은데, 옆에서 보면 어설프다. 그나마 싫어하던 감정이 더 심해진 것이라 모이엔이 이상하게 여기지 않은 것이지, 라발에게 특별한 행동을 요구했다면 발각될 확률이 매우 높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드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라발에게는 아예 알리지 않는 쪽이 좋다고 봤다.
거기에 아직 적색 기사단이 오 조에 합류한다고 결정된 것도 아니고 말이다. 과연 적색 기사단이 오 조와 함께할까?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을 때였다.
와글와글
토벌대 외곽에서 소란이 일었다. 순식간에 시선이 모이고, 사람들이 모였다. 그러자 주변이 온통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토벌대가 순식간에 시장판처럼 변했다. 사람들의 관심이 어찌나 집중되었던지, 뜨겁던 영입전이 중단될 정도다.
“손님이 오신 모양인데.”
누가 왔나 하고 고개를 돌린 이드의 말이었다.
사탕에 달라붙은 개미처럼 모여든 사람들 사이로 30명의 남녀를 본 것이다.
“어제 말한 보충 전력인 모양이에요.”
이드의 시선을 공유한 라미아의 말이다. 인원도 딱 맞게 30명이 아닌가.
그리고 그 짐작은 정확했다.
“설마 저 사람. 아니, 저분. 캐논의 부리뉴?”
“그 부리뉴 백작? 그분 청색 깃털 기사단에서 은퇴한 거 아니었어?”
“그뿐 아닙니다. 저기 저 미녀분이요, 저 부운!”
“그래, 보인다. 보이니까 진정 좀 해. 인마!”
“지금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세릴 님이라고요! 전장의 요정. 오~ 내가 실물을 보게 될 줄이야. 이런 영광이!”
30명 중 몇몇은 유명인인 듯 얼굴을 알아본 기사들과 초인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특히 그중 아직 젊은 초인 하나는 감격에 눈물까지 줄줄 흘렸다. 하지만 그럴 만했다. 그가 말한 세릴이란 여성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당당하고, 패도적인 위압감을 두르고 있어 보는 사람을 홀리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이드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미모에 홀려서 오조 조원이 되겠다고 모여드는 바보들이 꽤 많을 것 같은 건, 내 착각일까?”
도리도리, 라미아가 고개를 저었다.
“오조 막사 앞에 구름처럼 모이겠네요. 그보다 저 사람들 좀 봐요. 진짜 굉장한 사람들로 보충 전력을 짠 것 같은데, 가장 앞에 있는 노기사가 은퇴했던 청색 깃털 기사단 부단장인가 봐요.”
간간이 들리는 인물들의 내력에 라미아가 혀를 내둘렀다.
언급되는 사람들 중 평범한 사람이 없었다. 나머지 절반이 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없지만, 저만한 유명인들과 함께하고 있으니 무언가 한 수가 있는 이들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발터가 얼마나 날카로운 이빨을 준비했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저만한 인물들이 나선 이상 이건 단순한 전력 보충의 수준을 넘었다고 봐야 했다. 간단히 계산해도 저들의 합류로 오 조의 전력이 두 배는 껑충 뛰게 될 테니까.
“저런 전력이 모이면 존 워스가 세우고 있는 계획도 꼬꾸라지지 않을까요?”
마치 여우를 잡으려 판 함정에 곰이 나타난 것처럼 말이다. 보충 전력으로 나타난 사람들의 면면을 생각하면 분명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드는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존 워스도 모이엔도 그런 바보들은 아냐. 얼마나 오랫동안 세워 온 계획인데. 설마 그렇게 날뛰어 놓고 저런 전력이 튀어나올 줄 몰랐을까.”
막말로 제국에서 힘 좀 쓴다 하는 초인들만 다 긁어모아도 숫자가 어마어마할 텐데 말이다.
그때 보충 전력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듯, 뒤늦게 록마틴 후작과 발터가 나타났다.
라미아와 마찬가지로 록마틴 후작도 꽤나 놀란 얼굴을 했다. 그러나 곧 아는 얼굴을 확인하고는 반갑게 그들을 반겼다.
발터는 그 모습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의 어깨가 은근히 올라가 있다. 왜 그러지 않을까. 그가 요청한 보충 전력에 토벌대 전체가 놀라고 있으니. 뿌듯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암살 기사 놈. 제발 다시 나타나 주길 바란다.”
리벤지를 바라며 흉흉하게 눈을 빛내는 발터 옆으로 라발이 다가섰다.
“저만한 전력이면 암살 기사가 아니라 진짜 그레이트 급 기사라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습니다.”
“후배의 부탁에 단숨에 달려와 주신 것이 고마울 뿐이지요.”
“과연 지금 오조에 적색 기사단의 힘이 필요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함께하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국의 귀중한 전력을 지키는 일 또한 기사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라발의 수락에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는 발터다.
오 조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초인. 오늘 보충된 전력으로 그 색깔은 더욱 진해졌다. 자연 적색 기사단은 오 조의 공략에서 뒤로 밀릴 것이 분명했다. 오 조의 던전 공략은 이제 단순히 전공을 따질 단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라발은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오 조의 영입 제안을 수락했다.
평소 그의 성품을 보자면 제국의 전력을 지킨다는 저 말은 진심이겠지만, 서로 빛나기 위해 애쓰는 곳에서 뒤에서 남이 빛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 더욱 고마운 마음이 드는 발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