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89화
925화
이드가 몸을 날리고, 그 모습을 본 용병들의 얼굴이 허옇게 질려 갈 때,
라미아의 보호 아래 있던 기사들은 검을 들고 갈팡질팡하는 중이었다. 그런 기사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라미아와 실드 마법을 두드리는 공격이었다.
투두두두둥-
공격이 실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마치 유명한 드러머의 연주 같았다. 다만 문제라면 기사들은 북 안에 있는 것과 같은 상태라는 것?
그리고 어둠을 꿰뚫어 보는 그들의 감각에는 적의 공격은 보이지만, 푸른빛을 뿜고 있는 실드 마법은 보이지 않아 맨몸으로 적의 공격에 노출된 것 같은 느낌에 공격이 들어올 때마다 반사적으로 검을 움찔거리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기사들을 가장 고민하게 만드는 문제는 따로 있었다.
“라미아 님. 저희들이 나가서 싸울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아직 여러분이 싸울 때가 아니니까. 잠깐 기다리세요.”
바로 저거다. 자신을 라미아라 불러 달라고 한 인자한 후작 부인이 자신들이 싸우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
단순히 그걸로 끝이냐, 아니다. 자신들은 후작 부인, 라미아의 마법 아래 지켜지고 있었다. 부상자들이야 보호를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자신들은 아니다.
귀부인을 보호해도 모자를 판에 기사인 자신들이 라미아의 보호를 받고 있다니.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나가고 싶지만, 라미아가 허락하지 않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거기에 거리가 멀어 희미하지만 이드가 적들을 순식간에 파괴하고 있는 모습까지 보인다. 소검후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이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상대하던 자들이 모두 쓰러지고 나면 두 분이 밖에서 공격하는 놈들을 쓰러트리러 오실 텐데. 그때까지 이러고 있을 순 없다.’
이래서야 남겨진 조원들에게 할 말이 없다. 입술을 질끈 문 딜런이 다시 라미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라미아 님, 싸우게 해 주십시오. 라미아 님의 마법이 강력한 것도 알고, 저희를 지켜 주시려는 마음도 알지만, 저희는 기사입니다. 모름지기 기사라면 적과 싸워야지, 마법 안에 숨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싸우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적을 물리치겠습니다!”
딜런의 열정 어린 말에 다른 기사들도 목소리를 더했다.
그에 라미아가 곤란한 표정으로 볼을 감쌌다. 기사들이 보호받고 있다는 것에 자존심 상해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거 참 곤란하네요.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닌데.”
라미아가 그들을 막은 이유는 간단했다.
실드 마법을 깨기 위해 발악을 하는 적의 모습을 관찰해 그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던전에 나타나는 초인들은 모두가 마탑에서 만든 초인 마법의 결과물이다. 이는 하나하나가 중요한 연구 자료이기 때문에 일거수일투족을 관찰, 기록하고 수집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차후 이와 같은 자들이 나타났을 때 아군의 피해를 줄이고, 적을 쉽게 상대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런 작업을 이 성급한 기사들이 다르게 이해한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그게 아니라고, 보호가 아니라 관찰 중이라고 사실대로 말해 주기도 힘들었다.
‘사실을 알면 얼마나 뻘쭘하겠어.’
어쩌면 여기서 수치사로 인한 사상자가 추가될지도 모른다. 특히나 가장 앞서서 부탁해 온 딜런이라든가.
“알았어요. 하지만 일부러 유리함을 버리고 불리하게 싸울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아 주세요.”
말과 함께 라미아가 실드 마법의 중앙 지점을 가리켰다. 그 상태로 라미아가 주문을 외우자, 손가락 끝에서 빛이 뻗어 나가 바닥에 닿고 넓게 퍼지며 항마에 관한 전승을 가득 담은 마법진으로 변했다.
“……그리하여 비니블렌스의 자애의 빛이 가득 차니라. 홀리 브레싱!”
화아아아-
라미아의 시동어가 끝나는 순간, 은은하게 빛나던 마법진에서 반딧불 같은 빛이 퐁퐁 솟아올랐다. 처음에는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적었지만, 곧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실드 안의 어둠을 먹어 치웠다.
“…….”
갑자기 어둠이 물러가고 환하게 밝아지며 시야가 트이자 기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온 사방에 빛이 가득했다. 그림자조차 없다. 그러면서도 은은해서 눈을 찌르지도 않는다.
보통 어둠 속에 오래 있다가 빛을 보면 시큰거리며 적응되지 않기 마련인데, 그런 것도 없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떻게 빛이? 라, 라미아 님. 이 빛은 뭡니까?”
“마법적으로 비니블렌스 님의 힘을 빌린 신성 마법이에요. 신성한 빛으로 어둠을 잡아먹은 거죠.”
“하지만 입구에선 어둠을 제거할 수 없다고…….”
혹시 추궁하는 것으로 비쳐질까 조심스럽게 꺼내 놓는 딜런의 의문이다. 그건 다른 기사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어둠을 물릴 수 있다면 애초에 지원조가 필요 없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 의문에 라미아가 고개를 저었다.
“물론이에요. 하지만 모든 일에 절대는 없잖아요. 지금도 신성 마법으로 빛을 밝히긴 했지만, 이 공간에 한정된 거예요. 여길 벗어나면 이 빛은 사라지죠.”
즉, 13층 전체를 살펴야 하는 삼조의 입장에선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입구 주변만 살피고 끝낼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 그런 점은 몰랐습니다.”
딜런이 새로운 지식을 머리에 박아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환하게 밝아진 주변을 살폈다. 피 흘리고 쓰러진 동료 기사들과 환하게 빛나는 마법진, 자신들을 보호하고 있는 실드의 푸른빛.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는 기사들과,
투두두둥!
실드를 두드리는 하얀 송곳과 다양한 공격들!
그중엔 실드에 바짝 붙어서 두드리는 놈들도 있었다.
마침 신성한 빛으로 인해 어둠이 물러가 실드로부터 일 미터 떨어진 곳까지는 시야가 확보되었는데, 덕분에 실드 가까이 붙은 놈들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입이 없는 놈. 눈이 없는 놈. 팔이 네 개인 놈. 머리에 뿔이 난 놈. 입으로 불을 뿜는 놈 등등.
제각각으로 기괴하게 생긴 놈들투성이었지만, 한 가지 통일된 점은 있었다. 바로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
그 모습을 확인한 기사들은 모두 크게 놀랐다.
“으윽! 무슨 놈의 얼굴이…………….”
“저게 사람이야? 몬스터야?”
“……저건 설마!”
“왜?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있나?”
엉뚱한 질문에 두 눈을 크게 뜬 기사가 질문을 한 자를 노려보았다. 저 끔찍한 모습을 보고 아는 사람이 있냐니. 그건 욕이나 다를 바가 없다.
“크흠, 난 그냥 자네가 크게 놀라기에 혹시나 싶어서 물어 본 거야. 기분 나빴다면 사과하겠네.”
“사과는 받지. 그리고 내가 놀란 건 저 모습이 내가 알고 있던 흑마법의 키메라와 같기 때문이네. 오, 자비로운 니스크리드여, 라미아 님. 제 말이 맞습니까? 저들이 혹시 키메라입니까?”
신실한 신자인 듯 성호를 그은 기사가 딱딱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에 라미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요반 기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키메라를 만드는 기술의 한 종류인 것은 맞아요.”
기본적으로 초인기가 없는 사람에게 초인기를 가진 사람의 어떠한 인자를 주입해서 그 힘을 사용하게 하는 것. 그건 기존에 없던 능력을 더해서 강력한 괴물을 만들어 내는 키메라와 동일한 주제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해도 좋았다.
그리고 그런 기존의 기술이 있는 이상, 마탑에서도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보다는 키메라를 제조하는 흑마법에서 필요한 부분을 상당 부분 차용했을 것은 당연한 일.
즉, 마탑의 초인들은 모두 키메라 시술을 받은 인간이라고 보아도 틀리지 않으리라.
“다만 다른 점은 마족이나 악마가 주관한 계약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따로 마기에 물든 사악한 존재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에요.”
“그래도 인간을 저렇게 이어 붙이고, 끼워 맞추다니.”
“역시 사악한 놈들 맞잖아! 뭐가 초인 마법이야. 이런 사악한 흑마법사 놈들!”
하지만 라미아의 추가 설명에도 기사들은 키메라의 기술이 사악한 흑마법에서 출발했다는 점에만 주목했다.
사실 그게 편하기도 하다. 자의든 아니든, 자신들을 공격하고 있는 자들을 불쌍하게 여기기만 해서야 제대로 싸울 수 없을 테니까. 기사들이 검을 단단히 잡았다. 신호만 하면 당장 달려나가 피를 뿌릴 기세다.
“라미아 님은 저희들이 나가면 즉시 실드를 닫아 주십시오!”
“아니, 그러니까 이점을 버릴 필요가 없다니까요. 컨버젼!”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린 라미아가 기사들에게 마법을 걸었다. 그러자 마법사들의 몸이 실드와 같은 푸른빛을 내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여러분의 몸과 무기는 실드를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어요. 그러니 이 밖으로 나갈 필요 없이 실드 가까이 접근한 적을 우선 쓰러트리세요. 멀리 있는 적은 적당히 유인하시고요.”
갑작스러운 마법에 놀라던 기사들은 라미아의 말에 자신과 실드, 그리고 적을 번갈아 보고는 아! 하고 탄성을 터트렸다.
그제야 아군의 이점을 버리지 말라는 라미아의 말이 이해가 된 탓이다. 동시에 조금 힘이 빠지기도 했다.
“…..이러면 확실히 안전하겠군요.”
뜨겁게 타오르던 기사들의 열의가 모닥불 크기로 쪼그라들었다. 이래서야 방패 뒤에서 칼을 휘두르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아니, 그보다 더 안전하다.
그렇다고 치열하게 싸우겠다며 일부러 밖으로 뛰쳐나갈 수도 없는 일.
“전 기사들은 실드에 접근한 적들 위주로 처리한다. 가자!”
“적을 처단하자!”
딜런의 명령을 복창한 기사들이 실드에 딱 붙어서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위층에 배치된 초인들하고는 너무 다르네. 너무 여러 가지를 합치려고 한 부작용일까?”
중앙에 서서 그 모습을 보던 라미아의 고개가 갸우뚱했다. 지금 보이는 적들의 모습이 너무 엉망이기 때문이다.
저 모습을 보면 이 던전이 사악한 흑마법사의 던전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 같았다.
“어쩌면 이 어둠은 저 흉한 모습을 가리기 위한 장치인지도.”
정말이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적들의 모습은 흉측했다. 동시에 불쌍했다. 저들이라고 원해서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 어떤 사람이 원해서 저런 모습을 하고 있겠는가. 노예든 아니든 상관없다. 모두 마탑에 의한 희생자인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어떻게 해 주고 싶지만, 정신까지 손상된 이상 손쓰긴 늦었지.”
원수인 마탑의 명령에 토벌대를 공격하는 모습이 어디 정상인가.
어쩌면 저들에겐 죽음이 구원인지 모른다. 모습은 다르지만 결국 저들도 상자 안에 담긴 초인 희생자들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드가 그들을 보고 편한 죽음을 주었듯, 그 결과 역시도.
그러는 사이 실드를 두드리던 적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갔다. 안전이 확보된 기사들의 활약은 뛰어났다.
과연 토벌대에 참가한 실력자들이라고 할까?
실드에 붙어 있던 적뿐 아니라 멀리서 공격하던 자들도 능숙하게 유인해서 쓰러트렸다. 또 유인되지 않는 자들은 적당한 인원이 움직여 쓰러트리기도 했다.
거기에 먼저 적들을 처리한 이드와 일리나까지 합류하자 싸움이 끝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휴~ 밝아서 좋네. 빛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꼈어.”
실드 안으로 발을 들인 이드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그러자 그 앞으로 라미아가 다가와 생글생글 웃는 것이 아닌가.
“・・・・・・ 물론 이 빛을 만든 라미아는 두말할 것도 없고.”
“우후후, 그렇죠?”
이드는 우쭐한 라미아의 머리를 툭툭 두드리고는 사상자를 살폈다.
“부상자들은 어때?”
“모두 괜찮아요. 지금이야 정신을 잃었지만, 깨어나면 움직이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예요.”